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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맨_ 역사는 달라지겠지, 하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아 | 나의 서재 2020-08-08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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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플라스틱맨

백민석 저
현대문학 |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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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소설이 마치 평행 우주처럼 펼쳐지는, 기묘한 기시감을 경험하게 하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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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소설이 마치 평행 우주처럼 펼쳐지는, 기묘한 기시감을 경험하게 하는 소설!  

전 대통령 탄핵 소추의 기각, 이 가정법에서 출발하는 낯설지만 낯익은 불안 그리고 공포!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2016년, 우리는 아직도 대통령 탄핵을 앞세운 대한민국 역사상 유례없던 대규모 촛불 시위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정부 출범 이전부터 각종 정책에 비선실세인 최순실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이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전면에 드러나면서 국민들은 분노했다. 이로 인해 국회에서는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어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었으며, 이듬해 3월 헌법재판소의 만장일치로 대통령 박근혜는 파면되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이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으며 또 변화한 것은 무엇일까. 만약, 그날 헌법재판소가 탄핵 결정이 아니라 탄핵을 기각했다면 과연 역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현대문학 핀 시리즈 스물여덟째 작품, 백민석의 『플라스틱맨』은 바로 이러한 가정법 아래에서 출발하는 소설이다. 탄핵 결정과 기각, 실제 우리가 경험했던 현실과 소설의 가정법이 마치 평행 우주처럼 펼쳐지는 듯한 이 놀라운 느낌은 낯설지만 또한 너무도 낯익어서 기묘한 불안과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어떤 일이 닥쳐도, 어떤 상황을 맞닥뜨려도

얼굴색이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마음의 열전도율이 낮아 얼굴까지 전해지지 않는

사람이거나, 마음이 아예 없는 사람이거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사람이다.

그 플라스틱이 어느 날 말을 하기 시작했다. / 12p

 

 

 

우리는 모두 플라스틱맨을 알고 있다

 

 

 

   “이번 주 금요일까지 청와대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무고한 시민 한 명을 토요일에 살해하겠다.”

   대통령이 물러나지 않으면 무고한 시민을 살해하겠다는 협박이 담긴 USB가 각 언론사에 도착하면서 경찰이 수사에 나선다. USB가 담긴 우편물에는 지문이나 머리카락 같은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고, USB는 어디서나 흔히 살 수 있는 제품이었으며, 무슨 기기로 녹음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만한 단서조차 없다.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억양이 없는 목소리, 흡사 마네킹 혹은 플라스틱 인간이 떠들고 있는 듯한 협박범의 말투는 듣는 이로 하여금 묘한 불쾌감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경찰 내부에서는 협박범의 신원이 밝혀질 때까지 그를 ‘플라스틱맨’이라 부르기로 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은 USB에 담긴 진의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대통령더러 물러나라는 협박인데도 청와대로 보내지 않고 언론사로 보낸 것 하며, 누굴 어떻게 해치겠다고 특정하지도 않는 데다 그저 이번 주 금요일, 토요일이라고만 한정할 뿐 날짜도 특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협박범은 날짜가 지나도 협박을 실행에 옮겼는지, 안 옮겼는지의 여부도 알려오지 않는다. 온 언론이 대통령 탄핵 이야기를 하고 있고, 토요일마다 광화문에서는 대규모 집회가 벌어지는 중이며 국회에서는 탄핵소추를 논의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렇게 모호하기만 한 플라스틱맨에 대한 관심은 점점 사그라지고, 단독으로 사건을 전담하게 된 하 경감조차 온 나라가 대통령 퇴진을 두고 소란스러운 가운데 마치 복사해 붙인 똑같은 파일로 한 달 반이나 협박을 반복하고 있는 협박범 태도로 보아서는 어떤 게으른 놈이 그저 농담을 지껄이는 게 아닌가 싶다. 그나마 있는 제보자들의 전화를 받으면 한결같이 “내가 플라스틱맨을 알아요…….” 라고 말하지만 늘 모른다는 사실로 통화는 끝난다. 하 경감은 그저 평범한 시민들이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화가 나 있고, 그들을 얼마나 망쳐놓고 싶어 하는가 하는 사실만 깨닫게 될 뿐이다.

 

 

 

기자는 침묵을 지키다 입을 열었다.

“자기 의견을 가질 만한 놈은 아닌 것 같던데.”

기자는 이 세상에 자기 의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드문지 아냐고 물었다. 협박범도 그저 남들이 대통령 쫓아내자니까 그게 역사의 소명인 줄 아는 어중이일 수도 있다고 했다. 하 경감은 동의할 수 없었지만, 냉소적인 게 어쩐지 기자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 62p

 

 

하 경감은 잠에 빠져들면서도 생각의 한끝을 놓지 않았다. 흉포는 플라스틱맨의 특징이 아니었다. 플라스틱맨은 너무나 흉포해서 누구의 눈에나 띄도록 생겨먹은 놈이 아니었다. 그 정반대였다. 제보자들을 저마다 자기도 안다고 착각하게 만들 만큼 흔하고 평범하고 레디메이드 같을 게 분명했다. 공장에서 찍어낸 대량생산 플라스틱 마네킹 같은. / 86p

 

 

“촛불집회에 100만 명씩 나오는데 그게 무슨 증거가 돼요?”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있어요. 이놈의 사회는 충격이 필요하다.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박근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청와대 앞길에 생피가 뿌려지는 꼴을 보게 될 거다……. 유튜브에 나온 협박하고 똑같죠.”

제보자는 무슨 큰 비밀이라도 털어놓는 양 소곤소곤 목소리를 낮췄다. 하 경감은 한숨을 쉬었다. 이 나라는 ‘죽고 싶다’란 말과 ‘죽여버린다’는 말이 일상적으로 쓰이는 나라다. / 92p

 

 

 

 

 

 

 

   그렇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제보된 인적 사항들을 통해 플라스틱맨 용의자들을 추적하던 도중, PC방 살인사건의 용의자이자 플라스틱맨으로 추정되는 이를 쫓다가 동료가 상해를 입는 사건이 발생한다. 연이어 처음 USB 파일을 제보하고 유튜브로 공개하면서 용의자 찾기에 도움을 주었던 시사주간지 기자마저 실종된다. 그러는 사이에 마침내 탄핵 최종 선고일이 다가오고, 탄핵이 거의 확실시 되는 가운데 이야기는 뜻밖에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대통령 탄핵이 기각된 것이다. 하 경감으로서는 이 판결의 여파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짐작도 할 수 없는 가운데, 601번 버스가 폭발하고 헌법재판관이 살해되며, 성당 예배당에서 폭탄이 터지는 사건이 연이어 벌어진다. 이 모두가 플라스틱맨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고 단언할 수 없지만, 하 경감은 플라스틱맨 사건이 의미나 가치 없는 사건으로 치부되던 신세에서 벗어나 드디어 실체를 가지게 된 것에 내심 설레는 것을 느낀다.

 

 

 

하이디는 요들송의 화창한 음표들 너머로, 검은 해일이 일본 열도를 휩쓰는 장관을 바라봤다. 가고시마를 덮치고 후쿠오카를 지나 쓰시마섬을 삼키는 모습을 봤다. 해일은 계속 밀려들었다. 거제도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덕유산 국립공원이 잠기고 곧바로 대전이 사라졌다. 해일이 그 모든 것을 덮친 시간은, 하이디가 요들송 한 소절을 부르는 시간보다 짧았다. 검은 해일은 평택을 집어삼켰고 과천이 사라졌다. / 57p

 

 

 

 

 

 

 

   이쯤 되면 『플라스틱맨』은 마치 추리소설처럼 용의자의 정체가 드러나고 마침내 사건이 종결되는 수순으로 나아갈 듯하지만, 소설은 예상을 철저히 깨부순다. 청와대에서 지시가 내려와 테러사건이 경찰청 최우선 선결과제가 되고, 경찰청 내에서 유능하다고 소문난 수사관들이 차출되어 위기대응팀이 꾸려지는 긴박한 상황이 벌어지지만 하 경감은 그곳에서 철저히 배제된다. 테러가 일어나던 순간까지도 플라스틱맨을 쫓고 있었고 그에 대한 가장 많은 자료를 갖고 있던 그녀지만, 고작 떨어지는 명령이라고는 ‘우악스런 촛불집회 시위대로부터 평화염원집회의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광화문에 나가라는 지시만 내려올 뿐이다.

 

 

 

   대통령 탄핵 결정이 기각된 이후, 태극기 부대니 친박집회니 탄핵반대집회니 하고 여러 이름으로 불리던 집회들이 이제는 평화염원집회라 불리게 되고, 특정 세력이 오랜 기간 독점하는 상황은 불합리하다는 서울행정법원의 판단에 의해 광화문 광장은 더 이상 촛불 집회가 아닌 평화염원집회들을 위한 자리로 뒤바뀌게 된다. 더욱이 서울행정법원은 연이은 테러의 책임 역시 촛불 세력에 있을 가능성을 무시하지 못하는 바, 촛불집회 자체가 수사 대상이 될 수도 있음을 직시한다. 전에는 시민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던 행정부와 사법부가 권력의 논리에 따라 편을 바꾸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도 플라스틱맨의 협박은 계속된다. 한두 주에 한 번씩 우편물이 방송국에 보내지고, 과연 그가 했는지 증명할 수 없는 테러사건들이 일어나 희생자들을 낳는다. 대통령은 꿈쩍도 하지 않고, 경찰의 진압은 갈수록 강경해지고, 개헌 논의는 불이 붙는다. 광장마다 꾸역꾸역 흥분한 시민들이 몰려나오고, 다시 협박이 방송을 타고 테러가 일어난다. 하 경감은 마치 양면이 뒤바뀐 필름지를 겹쳐놓은 듯 어제는 저쪽이었던 이들이 오늘은 이쪽이 되어버린 광경의 중심에 서서 결코 끝나지 않을 끝과 마주한 기분을 느낀다. 이로써 소설을 읽고 있던 독자들은 더 이상 플라스틱맨이 누구인지, 탄핵이 선고되었든지 기각이 되었든지의 여부는 그리 중요치 않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진영의 논리와 이익을 지키려는 집단의 폭력성은 여전하고, 권력의 실세에 따라 움직이는 기득권은 기생충 같은 습성을 버리지 못하며, 공감을 상실한 우리들은 마음의 온도를 잃어버린 채 틀에 넣어 만들어진 것처럼 양산되고 복제되고 반복되는 저 수많은 플래스틱맨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무력감으로 인해 그만 허무해지고 마는 것이다. 그건 어쩌면 직접 목격했고, 경험했던 우리 시대의 역사여서 더 비참하고 서글픈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간 읽었던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 『목화밭 엽기전』, 『죽은 올빼미 농장』, 『아바나의 시민들』, 『멜랑콜리 해피엔딩』의 단편수록작 <냉장고 멜랑콜리> 그리고 이번 작품에 이르기까지. 어쩌다보니 작가 백민석은 내가 한국 문학이라는 걸 처음 접하게 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듬성듬성이지만 변함없이 찾게 되는 몇 안 되는 작가인 듯하다. 다소 냉소적이지만 시대의 절망과 폐허 같은 현대인들의 삶의 허기를 독특한 상상력으로 직조해낼 줄 아는 그의 작품들은 시간이 지나서도 늘 생각난다. 다음에는 또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줄까, 『플라스틱맨』을 읽고 나니 나는 이전보다 기대하는 마음이 더욱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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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스텔라_ 너의 오른쪽 뇌에도 별이 박혀 있을지 몰라 | 나의 서재 2020-08-06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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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내 이름은 스텔라

유니게 저
특별한서재 | 2020년 07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소외당하고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전하는 특별하고도 따뜻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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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별처럼 빛나는 존재들이야, 그걸 잊지 마!

소외당하고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전하는 특별하고도 따뜻한 이야기!

 

 

 

나는 왜 태어났을까?

무슨 특별한 사명이라도 있는 걸까?

 

 

   『내 이름은 스텔라』 의 주인공 소녀처럼, 나 역시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화 <어벤져스>에서 타노스가 “나는 필연적인 존재다”라고 말했듯, 나란 존재는 세상에 태어날 수밖에 없는 어떤 필연적인 이유가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건 일종의 마법 주문과도 같아서 상처와 좌절로 점철된 그 어떤 순간마다 나는 이겨낼 수 있다는 용기를 주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저마다 특별하고도 반짝이는 빛을 간직하고 있다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이 아닐까. 아니, 그런 믿음이 있어야만 살아가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러므로 이 땅의 모든 ‘스텔라’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만약 어딘가에서 상처입고 그늘 속에서 괴로워하는 ‘스텔라’가 있다면 반드시 당신과 내가 먼저 다가가 말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는 별처럼 빛나는 존재들이야, 그걸 잊지 마!

 

 

 

 

 

 

세상의 모든 스텔라에게

 

 

   흔히 사춘기의 청소년들이 그러하듯 공상과 상상하기를 좋아하던 소녀 수민은 책을 읽다가 ‘스텔라’라는 이름과 우연히 마주한다. 수민은 별이라는 뜻을 지닌 이 아름다운 이름을 거듭 되뇌어보다가 문득, 자신의 이름을 스텔라라 부르기로 한다. 스텔라, 하고 부르면 왠지 별처럼 빛나는 사람이나, 아주 특별하고도 소중한 존재가 된 것 같기 때문이다. 한때 수민은 굳이 스텔라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자신이 매우 특별한 아이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학교 성적은 좋지 않고, 간혹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받기도 하며, 평범한 외모에 부모의 이혼까지 겪으면서 자신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만다. 그저 이 잔인한 지구라는 별에서 자신을 구해줄 흑기사가 나타나주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수상쩍은 한 남자가 수민 앞에 나타난다. 자칭 소설가인 그는 자신이 머물만한 곳을 찾아 수민이 사는 동네까지 찾아오게 된 것인데, 이 날부터 수민은 창고처럼 쓰이던 허름한 방 안에서 그와 함께 살게 된다. 이때 수민은 생각한다. 그동안 기다리고 있던 흑기사가 혹시 이 남자가 아닐까 하고, 어쩌면 이 소설가는 ‘나는 왜 태어났을까? 나에게 주어진 특별한 사명은 없는 걸까?’에 대한 궁금증을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가 자신이 기다리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자신이 태어난 이유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기는커녕 너무 후져 보이기까지 하다. 맛없는 할머니의 요리를 엄청 열성적으로 먹는 데다 할 일이 없는지 동네 초등학생들을 불러 모아 구슬치기나 하고,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겨드랑이가 잔뜩 늘어진 러닝셔츠 꼴을 보고 있으려니 ’닝구 씨‘라는 별명이 딱이다.

 

 

학교생활도 쉽지 않다. 애들은 벌써 세 번째 나를 따돌렸다. 역시 셋은 불안하다. 둘이거나 넷이어야 한다. 셋이 되면 꼭 한 명을 따돌리려 한다. 그게 열네 살 소녀들이 가지고 있는 사악함이다. 그 희생자는 번번이 내가 된다. / 8p

 

“이럴 거면 뭣 하러 쟤를 낳자고 했어?”

엄마가 울면서 소리쳤다.

그 ‘쟤’가 아무래도 나인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한번은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 등 뒤에서 엄마를 안았다.

“너도 이젠 좀 컸잖니? 엄마를 좀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되겠니?”

엄마가 내 팔을 뿌리쳤다. / 34p

 

나의 고독과 사색은 “쟤는 왜 저렇게 청승을 떠누,” 하는 할머니의 한마디로 정리되었다. 예민한 감수성은 ‘속 좁은 계집애의 소심함’으로 비난을 받았다. 사람들은 이제 나를 특별한 아이가 아니라 공부 못하는 찌질이로 보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궁금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나에게 주어진 특별한 사명은 없는 걸까? / 46p

 

 

 

 

  다행인지 불행인지 독감에 걸려 견학을 가지 못하고 집에서 요양을 하고 있던 날, 수민은 닝구 씨의 제안으로 서울 투어 버스를 타러 나서게 된다. 서울 여기저기를 구경하고 맛있는 식사도 한 후 나지막한 산으로 이어지던 비탈길을 걷던 도중, 수민은 닝구 씨로부터 뜻밖의 말을 듣는다. 너는 참 친절해서 함께 지내는 사람들이 행복할 거라고, 오른쪽 뇌에 별이 박혀 있는 사람들처럼 너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준다. 덕분에 수민은 닝구 씨가 자신에게 찾아와준 행운이자, 유일한 친구이며 아빠가 떠난 자리를 채워준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는 자신의 편이라고는 한 명도 없었던 때에 내 편이 되어 주었으며, 내가 누군지 아무도 몰라줄 때에 나를 알아봐준 사람이다. 무엇보다 특별하다는 것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내가 상대방에게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는 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듯 『내 이름은 스텔라』는 자신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고 믿게 된 소녀 스텔라처럼 상처와 좌절로 괴로워하는 세상의 모든 ‘스텔라’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전하는 성장 소설로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정말 진심이야. 게다가 넌 받아야 할 칭찬이 많이 밀려 있는 것 같아서…….”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칭찬에 인색한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건 힘든 일이잖아.”

나는 묵묵히 닝구 씨의 말에 대해 생각했다. 고개가 떨어졌다. 내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아 울컥해졌다.

“그건 사과도 마찬가지지.” / 88p

 

 

“행복을 느끼는 것은 마음의 일이란다. 보람이나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것도 마음의 일이고. 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도 마음이야. 그래서 마음이 병들면 아무것도 할 수 없거나 잘못된 행동이 나오게 되는 거지.”

닝구 씨가 나의 표정을 살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진심이 통할 때 진정한 관계도 맺어지는 거잖아. 사실 친구가 꼭 많아야 하는 것도 아니야. 소중한 것은 본래 흔치 않잖니?

진심이 통하는 친구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서글펐지만, 나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야. 게다가 그런 재능 덕분에 그들에겐 태어날 때부터 특별한 사명이 주어졌지.” / 91p

 

 

“자신의 사명을 소중히 여기는 용기.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못한다고 해도 실망하지 말고 꿋꿋이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는 용기 말이야.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하지. 그래야 비로소 자신의 운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 그런 용기가 없으면 별은 소멸해버리고 말 거야.” / 93p

 

 

 

 

  닝구 씨가 그러했던 것처럼 문득, 학교와 집에서 상처받고 외로워하는 아이들을 위해 그 아픔을 진심으로 위로해줄 수 있는 진짜 어른이 세상에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이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물론, 부모가 꼭 함께 읽어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오늘 이 아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어른인지 늘 질문할 수 있는 삶을 살자고, 스스로 다짐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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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과 열심_ 사소해서 괜찮은 이야기, 그렇게 글이 된다 | 나의 서재 2020-08-04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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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심심과 열심

김신회 저
민음사 |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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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작가 김신회, 글 쓰는 행위에는 모든 감정이 들어있다던 그녀의 솔직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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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에세이 작가 김신회, 글 쓰는 행위에는 모든 감정이 들어있다던 그녀의 솔직한 이야기!

 

 

 

   13년 동안 에세이를 쓴다는 건 어떤 마음일까. 나의 일상을, 그것도 여러 권의 책에 걸쳐 쓰인다는 건 매번 고민스러운 일이 아닐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써야할 지, 이걸 글로 써도 되는 것인지, 나를 아는 지인들이 모두 이 글을 볼 텐데 나는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을 지, 무엇보다 이게 책으로 나올 만한 것인지. 더욱이 전업 작가에 프리랜서라면 내가 쓴 글로 얼마나 벌어서 먹고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은 늘 따르기 마련이지 않을까.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아무것도 안 해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등의 에세이집을 통해 익히 알려진 저자 김신회는 신간 『심심과 열심』을 통해 글 쓰는 삶이란 무엇인지, 어째서 그 긴 시간동안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인지를 담담하게 써내려간다. 글을 쓸 때, 글을 쓰지 않을 때, 글이 상처가 되고 또 응원이 될 때, 일상이 글이 되고 글이 일상이 되는 그 모든 순간에 대한 진솔한 감정을 담아내고 있다. 덕분에 우리는 글을 쓰는 사람이 지닌 글에 대한 진심을 들여다본다. 또 그러함으로써 느끼게 된다. 우리는 꼭 무언가를 쓸 때 진짜의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을.

 

 

 

 

 

 

글쓰기란 결국, 나를 들여다보는 일

 

 

   『심심과 열심』에서 김신회는 심심한 일상을 열심히 쓰는 것, 그게 바로 에세이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첫 장 ‘나는 이렇게 쓴다’에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책을 쓰게 된 순간에서 시작해 글쓰기를 일상으로 만드는 방법, 좋은 글을 쓰는 여러 방법들을 써내려간다. 그 중 글을 쓰고 싶지만 망설이는 이들을 위한 몇 가지 조언들은 새겨둘 만하다. 이를 테면 시작부터 머뭇거리며 첫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에게 에세이를 쓸 때는 첫 문장보다 마지막 문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에세이는 일상의 깨달음에 대해 쓰는 글인 만큼 첫 문장이 떡 벌어질수록 뒷이야기가 초라하게 느껴질 수 있고, 첫 문장에 들인 힘을 끝까지 유지하면 지나치게 비장한 다짐과 교훈으로 점철된 글이 완성되기도 하는 까닭이다. 무엇보다 첫 문장을 쓰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일단 글쓰기를 시작하는 것이라고.

 

 

 

   그러고 보면 나 역시 글을 쓸 때 첫 문장에 유독 과할 정도로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첫 문장이 잘 풀리면 글이 수월하게 진행되는 편인데, 첫 문장에서부터 막혀버리면 내내 더듬거리며 써내려가는 듯한 기분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각 문단의 첫 문장이 명확해야 글의 방향성도 뚜렷해진다고 믿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나서부터는 빈 페이지 위에 깜빡이는 커서를 내내 지켜만 보고 머리 아파하기 보다는 고치면 된다는 마음으로, 이번만큼은 마지막 문장에 더 힘을 실어보자는 마음으로 여유를 가져볼까 한다. 일단 쓴다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초고를 다 쓰고 나면 논다. 2주 정도 원고는 쳐다보지도 않고 휴식을 취한다. 친구들과 놀고, 술도 마시고, 여행을 가거나 가족과 시간을 갖는다.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 읽거나 영화를 왕창 보기도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글쓰기라는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던 나를 일에서 분리시키는 것이다. 최대한 글쓰기와 상관없는 일을 하면서 ‘그 글을 쓴 나’가 아니라 ‘그 글을 읽을 나’를 만든다. / 24p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통해 깨달은 끝 문장 쓰는 법은 다음과 같다.

1. 뭔가를 느끼지 않아도 된다.

2. 교훈이 없어도 된다.

3. 이야기의 결론을 꼭 내지 않아도 된다.

4. 다짐과 희망 사항에 대해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된다. 안 물어 봤다! / 31p

 

 

좋은 글을 쓰려면 무엇보다 나를 들여다봐야 한다. 나를 알고, 내 감정을 파악하며 쓰는 글은 모두를 지키는 글이 될 수도 있다. 마음이 편안하고 풍요로울 때, 좋은 글이 나온다고 믿는다. 우울하고 괴로울 때 멋진 글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 우울하고 괴로울 때는 그저 그냥 우울하고 괴로운 글이 나오더라. / 73p

 

 

 

 

 

 

   2장 ‘근로자입니다, 또 고용주이고요’에서는 작가로서의 삶에서 겪는 여러 가지 고충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대목들이 눈에 띤다. 글을 쓰면서 계산기를 두드리게 되는 자신에 대한 실망, 이 책은 안 팔리겠지 하며 펑펑 울었던 기억, 원고 청탁과 강연을 요청하면서도 강연료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미루는 업계의 행태에 대한 지적, 요샌 개나 소나 책을 쓴다는 사람들의 모욕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말한다. 더 많이 팔리는 책을 쓰고 인기 작가가 되기 보다 그저 이 일을 앞으로 10년만 더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또 10년이 지난 후에 한 번의 10년이 주어진다면 바랄 게 없겠다고. 적은 돈을 주고 많은 일을 시키는 것을 예술이라 부르는 사람을 멀리하고, 노동에 대한 적절한 임금을 받을 권리와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돈 이야기를 포기하지 말자고. 나를 포함해 더 많은 개나 소가 글을 써서 더욱 많은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이다.

 

 

 

결국 망한 책이 새로운 책을 쓰게 한다. 책이 잘되었다면 결코 떠올리지 못했을 아이디어가 그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내가 쓴 대부분의 책이 기대한 만큼의 성적을 보이지 못했다는 점. 그렇다고 해서 글을 그만 쓸 수는 없었다는 점. 나는 어제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답 없는 생각을 하고, 달성되지 않을 계획을 세우며 방구석에서 혼잣말을 끄적이는 사람이라는 점. 그런 사람이 경험하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 평범한 사람이라서 낼 수 있는 목소리가 분명 있다는 발견. / 103p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파악하고, 그런 나와 잘 지내는 일이다. 내가 어떤 것에 강한지를 알고, 어떤 것에 취약한지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삶에 대한 면역력을 기를 수 있다. ‘이럴 땐 이렇게!’ 하고 나를 다루는 방법을 알면 수시로 넘어지고 무너지는 자신을 일으킬 수 있다.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내는 사람이 결국은 인생 전체를 잘 살 수 있다고 믿는다. / 158p

 

 

시인 박준은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난다, 2017)에 이렇게 썼다. “편지는 분노나 미움보다는 애정과 배려에 더 가까운 것”이라고. “편지를 받는 일은 사랑받는 일이고 편지를 쓰는 일은 사랑하는 일”이라고. 읽을 때마다 마음이 누그러지는 이 문장을 참 좋아한다.

그러고 보면 글쓰기 역시 편지를 쓰는 일이다. 우리가 쓰는 글은 누군가를 향한 편지이며, 마음을 보여 주는 도구다. / 206p

 

 

 

 

 

 

   끝으로 3장과 4장에서는 사소한 일상이, 사람이 어떻게 가장 빛나는 글감이 되어주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내 일상을 되돌아보고 좋으면 좋은 대로, 맘에 안 들면 맘에 안 드는 대로 무언가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할 것을 다짐한다. 내 안에서 퐁퐁 샘솟는 이야기를 그저 꾹 삼키지는 않는 것, 결국 나를 파악하고 그런 나와 잘 지내는 일이야말로 좋은 글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또 자기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작가는 글을 쓰고, 그 일을 계속해 나갈 수 있다고 말하며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굳게 믿고 또 그만큼 나를 믿으며 꾸준히 쓰려 한다. 비록 나는 진즉에 소설 쓰기를 잊어버리고 말았지만, 꽤 오랜만에 그녀처럼 쓰는 자와 읽는 자가 같이 호흡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글을 나도 써보고 싶어진다. 그러니 언젠가는 나도 나의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지금의 쓰기를 멈추지 말아야지. 글쓰기는 곧, 나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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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한 위로_ 다들 어떻게 견디며 살아가고 있나요 | 나의 서재 2020-08-0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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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희한한 위로

강세형 저
수오서재 |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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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자신의 자리에서 역량껏, 애써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모두를 위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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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위로는 얻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자신의 자리에서 역량껏, 애써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모두를 위한 위로!

 

 

 

   “나 이거라도 하지 않았으면 아마 우울증 왔을 걸.”

   종종 남편에게 이런 말을 할 때가 있다. 매일 같이 책을 읽고, 때로는 새벽이 될 때까지 책을 읽은 감상을 글로 정리하는 나를 보면서 남편은 돈이 되는 일도 아닌데 뭐 하러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고 밉살스럽게 말하곤 한다. 아이들 보느라 피곤할 텐데 좀 쉬지, 피곤하게 잠도 안자고 그러느냐고 걱정스러워 하는 말인 줄은 안다. 하지만 육아를 하면서 나의 시간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에 잦은 우울감을 겪었을 때 책은, 아니 나의 생각이나 하고 싶은 말을 쓴다는 것은 나를 위로할 수 있는 가장 큰 ‘발견’이었다. 어쩌면 위로는 무언가로부터 얻어지는 것보다 내가 발견했을 때 더 가깝게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희한한 위로』의 저자 강세형, 그녀 역시 이렇게 말을 한다. ‘나는 가끔 내가 위로를 발견하는 건 아닐까’ 라고. 너무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거야라는 작정하고 내뱉어진 의도된 말보다는 엉뚱하고 희한한 곳에서 두리번거리다 발견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나는 오늘도 이렇게 위로를 챙깁니다

 

 

   『희한한 위로』는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와 『나는 다만, 조금 느릴 뿐이다』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은 강세형 작가의 신작 에세이다. 이 책은 오늘도 어딘가에서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을, 위로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 쓰인 책이 아니다. 내가 나를 위로하고 싶어서, 엉뚱한 곳을 두리번거리다 희한한 곳에서 발견한 위로의 순간들을 스스로 잊지 않기 위해 쓴 글이다. 그녀는 위로라는 건 애당초 작정하고 덤빈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에, 그저 필요한 순간에 발견하게 된 위로들이, 우리의 위로를 발견하는 데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덕분에 우리는, 참 희한하게도 그녀에게 위로가 필요했던 일상의 어느 순간으로부터 나를 겹쳐보게 되고, 그녀가 발견한 위로 속에서 나를 위로하는 법을 저절로 배우게 된다. 제목의 그것처럼 말이다.

 

 

 

   첫 장에서 그녀는 자신이 베체트라는 희귀병 환자임을 고백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세형 씨 몸 안에, 그 인자가 있어요.”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나서 오히려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철마다 감기에, 알레르기 비염에, 장염에, 습관성 구내염에, 심지어 1년에 한두 번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고열로 응급실에 갔던 그녀는 늘 죄책감을 가져야만 했다. “동양 사람 중에 입 자주 허는 사람들 많아요. 그냥 잘 먹고 잘 자고, 자기 관리 잘하면 됩니다.”고 말하면서 간단한 피검사 정도만 하고 돌려보냈던 숱한 병원들, 때문에 자기 관리도 잘 못하면서 별것도 아닌 일로 종합 병원까지 찾아온 꾀병 환자가 된 듯한 기분을 느껴야 했던 그녀였다. 더욱이 ‘이만한 스트레스도 못 견디고 병이 나면, 이 험한 세상을 대체 어떻게 살래?’ 하며 통증을 노력 부족으로 치부하는 주위의 말들까지.

 

 

 

   그렇게 오랫동안 알 수 없는 통증을 달고 살며 괴로워했는데, 자신의 몸 안에 희귀질환의 일종인 베체트 유전인자가 들어 있었다니. 분명 희귀병을 선고 받았는데도 ‘네가 덜 노력해서 아픈 게 아니야. 너의 잘못이 아니야’ 라는 말을 듣는 것 같았다던 그녀는 그때부터 마음의 짐이 훨씬 덜어지는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평소 타인을 위로한답시고 좀 더 노력해보라는 말을 쉽게 꺼내지 않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안 그래도 힘든데 네가 더 노력하지 않아서 힘든 거라니. 이미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열심히 버티고 있는 사람에게 노력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이 얼마나 가혹하고 무의미한 일인지, 그녀의 글을 통해 새겨보게 된다.

 

 

 

물론 긍정 모드를 최대로 끌어올려 생각해보면, ‘별거 아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나를 다독여주기 위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은 자신의 얘기로 화제를 돌리기 위해 그 말을 꺼내곤 했다. ‘나는 여기가 아프다, 저기가 불편하다, 이래서 힘들다, 저래서 힘들다.’ 그러니까 결국은 ‘내가 더 힘들다’ 더 나아가 ‘나만 힘들다’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 했다. / 24p

 

 

혈액형, 오늘의 운세, 용한 점집, 책을 읽다 귀퉁이를 접는 일, 서둘러 나의 플레이리스트에서 그 노래를 찾는 일, 나를 혼낼 사람이 아닌 지금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줄 것 같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일.

객관적, 논리적, 합리적, 과학적이지 않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니다. 그저 필요한 순간이 있는 거다. 인심하고 싶은 순간. 잠시라도 위로받고 싶은 순간, 아무리 감추고 눌러보아도, 어느 순간 삐죽 튀어나오는 내 안의 불안을, 잠시 잊고 싶은 순간이. / 41p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아이가 아닌 그냥 한 사람을 키우는 데도 온 마을이 필요한 걸지도 모르겠다’. 먼저 전화를 하는 법이 없는 그녀가 전화를 걸면 너무 놀란 목소리로 걱정부터 하는 사람들, 좋은 시절과 그렇지 못한 시절에도 한결같이 곁에 있어주고 믿어준 사람들, 도움을 받는 데 익숙하지 못한 그녀에게 억지로 도움을 떠안겨 주며 일으켜준 사람들, 때론 혼내기도 하고 때론 달래가며 곁에 있어준 사람들을 찬찬히 떠올린다. 그렇게 그들 모두는 ‘나’라는 한 사람을 키워내는 마을이 되어주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나도 그녀와 꼭 닮은 데가 있는 것 같다. 혹시나 바쁜 시간에 전화를 걸어 폐가 될까 전화 걸기를 망설이고, 도움을 청함으로써 상대의 시간을 빼앗거나 불편하게 할까봐 웬만한 건 스스로 해결하는 편이며, 대단한 일이 아니고서야 화를 내지 않고 심지어 누군가와 크게 다퉈본 일도 없다. 이렇다보니 점점 나의 진솔한 감정을 상대방에게 드러내는 게 두려워지고 상대방의 진정성까지 깊이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나의 성격을 너무 잘 알아서 먼저 전화를 걸어주고, 먼저 도움을 건네주거나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 보여주는 사람들이 내게도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깨달아가고 있다. 나도 이미, 이 마을 속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간 돌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그런데 정말 다른 사람들은 다, 유명해지고 싶고 주인공이 되고 싶고, 그런 걸가? 그렇다면,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이 노래에 공감하지 못하고 구석에서 멍하니 고개만 갸웃거렸던 아이는, 커서 뭐가 돼야 하는 걸까. / 53p

 

이제는 나도 안다. 이럴 땐 미안하다고 하는 게 아니라, ‘고맙다’라고 해야 한다는 걸. 나는 그동안 내가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만 있는 ‘운이 좋은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시절에도 나는 꾸역꾸역 멀리멀리 돌아 어떻게든 혼자 살아보려 어리석을 만큼 지나치게 애를 썼던 것 같다. 도와달라고 말했으면 됐을 텐데, 그럼 조금 더 가볍게 살아왔을 수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지금의 슬럼프와 위기를 극복해낼 힘도 조금 더 비축해놓았을 수 있었을 텐데…. / 85p

 

 

같은 종 내에서, 자극에 매우 민감한 아이들이 15~20퍼센트 정도의 비율로 태어난다는 것. 그 책에선 그것이, 그 종이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민감하다는 것은 우리의 몸이 더 많은 자극을 인지한다는 얘기라 쉽게 지쳐버린다는 단점이 있지만, 분명한 장점 또한 있었다.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기에 위험 신호를 더 빨리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 또한 다른 동물들은 찾지 못하는 피신처나 사냥 방법도 그 민감함으로 발견해낼 수 있다는 거였다. 아마도 나는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었나 보다.

그러니까 우리처럼 예민하기만 하고 쉽게 지쳐버리는,

세상 쓸모없어 보이는 약한 애들도,

분명 어딘가에 쓸모가 있어서 태어난 걸 거예요. / 95p

 

 

 

 

 

 

   우리는 누구나 위로가, 쉼표가 필요한 삶을 살고 있다. 늦게나마 내 안의 마을을 발견했듯, 철마다 유기비료를 주고 분갈이도 하며 열심히 키워낼 식물을 찾아냈듯, 책 속의 청년이 그림을 찾아냈듯, 이 책을 읽고 저마다 자신만의 위로와 쉼표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아무 것도 아닌 듯 희한한 위로들로 하여금 오늘도 지치고 힘든 삶을 건강하게 잘 이겨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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