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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를 읽기 위한 기본공구서 | 인문/사회/역사 2010-11-13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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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시절 중국학 분야의 기본 서적은 이러했다. 당시 서클이 사서강독을 하던 곳이었는데 그 서클의 기본 텍스트는 이러햇다.

한문 자전으로는 보통 민중서림에서 나온 두꺼운 ‘한문대자전’을 사용했다. 개인적으로는 들고다니기 좋은 사이즈로 나온 금성출판사의 자전을 사용했었다. 그걸 보고 선배가 민중서림의 것을 쓰지 않는다고 이상하게 보던 기억이 난다. 민중서림의 자전은 지금은 가죽장정에 인디언 페이퍼를 사용하지만 그 당시는 판지장정이었기 때문에 선배들 자전을 보면 너무 자주 펴보다보니 장정이 헤어진 경우가 많았다.

중국학 분야에선 전공이 어떻든 꼭 보아야 하게 마련인 것이 사서였다. 사서의 기본 텍스트는 당연히 주자의 사서집주였는데 강독에 사용하는 판본은 성대에서 사서집주대전을 영인한 것을 사용했다. 종이질은 그리 좋지 않아 갱지였었는데 본문에 더 작은 글씨로 주자가 달리고 그 주자주에 대한 세주가 한칸에 두줄로 달려있었다. 강독을 하려면 여러가지 구할 수 있는 모든 주석을 다 참고해야 했기 때문에 당연히 세주까지 보아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더듬더듬 해석해야 했던 세주를 논어만이지만 번역한 책이 나온 것을 보니(‘세주완역 논어집주대전’) 세월이 참 좋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날개를 단 노자’란 이상한 제목으로 나온 이책은 그런 서적의 하나이다. ‘세주완역 논어집주대전’과 마찬가지로 노자를 읽을 때 볼 수 밖에 없는 기본서적을 번역한 것이다.

보통 제자백가의 기본판본으로 유통되는 것은 19세기 일본에서 완성된 ‘한문대계’ 판본이 기본 텍스트이다. 학부 다닐 때 학교에 외서 영인본을 팔러오는 양복 입은 아저씨들을 통해 보통 구입했었는데 시중에선 대만에서 복각한 것으로 명동에 가면 국제우체국 옆에 대만정부가 운영하는 대한문화예술공사에서 낱권으로 싸게 구할 수 있다.

한문대계는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과 함께 19세기 일본 중국학의 위업 가운데 하나이다. 서클에선 강독을 사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방학 중엔 사기열전, 고문진보를 햇기 때문에 자전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럴 때면 대한화사전을 펴보아야 하는데 판형이 백과사전만한 13권짜리 사전으로 동아백과사전보다 글씨는 더 작고 페이지수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만큼 되는 인디언 페이퍼에, 영어사전 정도의 글씨로 다단 편집된 엄청난 분량이었다. 한자의 의미를 거의 다 정리했고 그 의미마다 중국고전의 용례들을 찾아 달아놓은 대작이다. 콜린스의 영어사전의 용례를 생각하면 된다. 아직도 이 사전을 넘어서는 것은 나오지 않았고 나올 것같지도 않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한문대계는 한문전통에서 기본서적으로 간주되는 서적들을 선정하고 기본이 될 주석본을 골라 전집으로 묶어 인쇄한 것이다. 이 전집이 세기의 업적이 된 것은 그냥 선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구두점을 찍고 일본식 토를 달았다는 데 있다. 텍스트의 기본적인 의미를 확정했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중국학의 캐논을 확정하고 그 캐논의 기본 해석이 될 주석서를 선정하면서 그 의미까지 정립했기 때문에 그때까지 일본 중국학의 업적을 모두 정리했다고 볼 수 있다.

정작 중국학의 본고장이 되어야 할 중국에서 한화대사전과 같은 사전은 나온 일이 없다. 한문대계와 같은 작업은 20세기 들어 진행되긴 했지만 한문대계의 규모로 진행된 것은 없다. 그와 비견될만한 작업으로는 중국정부 차원에서 진행한 25사의 편찬작업이 있었다. 80년대에 완료된 것으로 아는 이 작업의 내용은 사기에서 시작해 청사로 끝나는 중국의 정사에 구두점을 찍는 것이엇다. 지금은 인터넷에서 바로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이책은 한문대계에 노자의 텍스트로 선정되어 있는 老子翼에 대한 번역이다. 대한문화예술공사에서 보통 주석서가 아니라 노자만 달랑 사면 기본 텍스트에 왕필주가 달린 것을 준다. 사서에서 주자주가 그렇듯이 노자는 왕필주가 기본이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90년대에 왕필주를 번역한 것이 나왔었고 그후에도 다른 번역이 나왔었다. 그러나 한문대계에 선정되어 있기 때문에 노자의 기본서적으로 통용되는 노자익은 어쨌든 알아서 보는 것이었다. 어차피 그건 전문가의 기본일 뿐이고 그런 사람은 당연히 한문이야 기본능력이니까.

그러나 그렇게 보아야 했던, 각자 알아서 능력껏 해석해보던 그 텍스트를 번역했다는 것이 이책의 의의이다.

한문대계의 텍스트가 다 그렇듯이 노자익 역시 그때까지 전해오는 주석서들의 종합이다.

노자익의 성격을 보자면 노자익은 그러나 사서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보통 기본주석으로 생각되는 것을 중심으로 보지 않는 주석서들이 선정되었다. 사서의 경우 주자주가 부기되기는 하지만 앞에는 다른 주석들이 채택된다. 노자익도 왕주를 포함하긴 하지만 첫머리에 오는 주석은 대개 소자유의 것이고 왕주는 뒤로 배치되어 있다. 경우에 따라선 사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왕주를 아예 빼버린 경우도 있다. 주자학을 정통으로 보지 않았고 대륙의 학풍에서도 자유로웠던 일본의 학풍을 반영한 편집이랄 수 있다.

그러면 노자익의 번역인 이책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무난하다. 그러나 어차피 한문대계의 원본 없이 이책만 보기는 그리 권할 만하지는 않다. 번역자 역시 이책만으로 보기 보다는 한문대계의 보조로서 원문을 같이 볼 것을 생각한 것인지 직역 위주이며 주석의 원문을 빠져 있다.

말하자면 대중적인, 교양서로 읽힐 책이 아닌 것이고 시장성이 별로 없는 서적이란 말이다. 그런데도 이런 책이 나오기 시작햇다는 것이(세주완역 논어집주대전도 그렇고) 놀라운 일이다. 이런 책이 나올 수 잇다는 것이 그만큼 한국의 수준이 올라가고 잇다는 증거이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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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코를 기억하시나요? | 경제경영 2010-11-12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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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2011 대한민국 소비지도

김난도,최인수,윤덕환 공저
한국경제신문사(한경비피)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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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된지 꽤 되기 때문에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대우에서 소형차 티코가 나왔을 때 인터넷에 돌던 우스개 소리이다.

뒤를 보면 실망, 앞을 보면 절망, 타고 가면 사망.

소형차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잘 요약하는 말이다. 이 농담에서 ‘사망’은 그리 오버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토바이와 티코가 살짝 부딛혔다. 오토바이는 멀쩡한데 티코에 문제가 생겼다. 뒤집힌 것이다. 오토바이는 멀쩡한데 차가? 가벼운 사고라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차주인의 속은 당연히 뒤집혔다. 구경하던 사람들 몇 명이 뒤집힌 티코를 바로 세우려 차를 들었다. 그런데 타이밍이 맞지 않아 티코는 다시 반대로 뒤집혔다. 차주인의 속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갈 것이다.

차가 이러니 ‘사망’은 과장이 아니다. 실망, 절망도 이해가 갈 것이다. ‘폼’이 안나니까. 백화점 주차장에 소형차를 몰고 갔을 때 눈치를 봐야 한다는 말은 그리 드물게 듣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소형차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고 이책은 말한다. 요 몇 년 사이 소형차의 판매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의 차량보유비율은 다른 OECD 회원국들보다 낮기 때문에 아직 포화상태는 아니다. 그러나 성장세는 둔화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책의 자료에 따르면 다른 차종에 대한 수요는 제자리걸음이거나 뒷걸음치지만 경차의 수요는 시장 전체의 성장세를 뛰어넘고 있다. 저자들이 그 이유를 조사한 것을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기름값이 부담스러울 정도가 되었다. 이책의 다른 조사항목을 보면 사람들의 씀씀이에서 가장 큰 항목은 순서대로 교육비, 차량유지비, 식비의 순이다. 이번 금융위기 이후 씀씀이가 줄었는데 사람들이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은 식비 이하의 항목들이다. 그러나 차량유지비는 어떻게 할 여지가 많지 않다.(참고로 이책의 다른 항목인 교육 부분을 보면 교육비와 차량유지비는 경제가 어려워도 줄지 않는 부분이었다.)

둘째 환경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경차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 이런 이유로 늘어난 경차수요는 하이브리드카에 대한 수요와 겹치는 부분이다.

셋째 차량보급율은 1가구 1대에 근접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차의 판매신장율의 증가는 경차의 용도가 세컨드 카인 경우가 높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책의 자료를 보면 경차의 용도를 장보기라든가 아이들 통학용 등 실용적인 특정한 목적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높다. 중대형차를 가지고 있고 그런 특정용도를 위해 경차를 별도를 구입하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유지비가 적고 세제혜택이 많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책의 ‘경차와 에코차’ 부분을 정리해본 것이다. 이상에서 이책의 특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책의 특징은 방대한 조사에 근거해 소비자들의 인식과 소비성향을 보여주는데 있다. 그리고 단순히 자료를 제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자료의 의미를 저자들이 해석해 트렌드를 읽을 수 있도록 한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위에서 요약한 경차 시장의 트렌드처럼 저자들은 휴대폰, 아이패드/넷북/이북리더, SNS, 미디어 소비, 헬스캐어, 여가, 교육, 육아, 자산관리시장 등을 분석한다.

방대한 조사에 근거한 데이터들은 최근 시장의 트렌드가 어떻게 변하고 잇고 그런 변화가 왜 일어나는가를 소비자들의 인식을 근거로 설명하고 있다. 단순히 이러이러한 느낌이 있더라고 말하는 짐작에 지나지 않는 다른 소비트렌드 서적들과는 차별되는 책이다.

그러나 이책의 크기는 노트만하지만 240페이지 내외의 분량은 많다고 할 수 없다. 더군다나 화려한 그래픽으로 처리되어 눈을 즐겁게 하는 표와 그래프들로 넘쳐나는 페이지에서 글의 비중은 전체의 반 정도이다. 그런 분량에 다루는 분야도 많다. 더군다나 이책에서 다루는 것은 개별 시장들만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까지 다루고 잇다.

적은 분량에 너무 많은 주제를 포괄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사실 이런 책은 컨설팅 업체의 홍보용인 경우가 많다. 얼마 전에 출간된 보스턴 컨설팅의 ‘여자는 무엇을 더 원하는가’란 책과 이책의 성격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BCG의 책 역시 이책처럼 방대한 실제 조사에 근거한 소비 트렌드 보고서이다. 책 팔아봐야 그리 크게 남지도 않는데 엄청난 자금이 소요된 데이터를 왜 공개하는 것일까? 홍보이기 때문이다.

홍보용이기 때문에 모든 데이터를 책에 담지는 않는다. 책에 소개된 트렌드를 이용해 마케팅 전략을 세울 때는 자신들을 찾아오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물론 책에는 뼈대가 되는 트렌드를 충실하게 다룬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맛보기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책에 ‘㈜트렌드모니터’ 이용권이 따라오는 이유이다.

그러나 맛보기라도 얻을 것은 차고 넘친다. BCG의 책처럼 이책은 실제 조사에 근거한, 방대한 자료의 위력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실감하기에 충분함 이상인 책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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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문명 입문 | 인문/사회/역사 2010-11-0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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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ISLAM 이슬람

프란체스카 로마나 로마니 저/이유경 역
생각의나무 | 2008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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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리뷰에서 이 시리즈의 인도와 그리스를 다루었었다. 이슬람 문명을 다루는 이책 역시 앞에서 소개한 책들과 성격을 같이 한다. 그 문명의 역사에 대한 개요를 다루고 그 시기에 해당하는 미술과 건축을 큰 도판으로 같이 배치하는 구성으로 되어 잇다.

그러나 이책은 이탈리아에서 유럽권 또는 미국의 독자를 염두에 두고 제작된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의 경우는 이미 어느 정도 사전 지식이 있다고 가정하고 미술과 건축사의 흐름을 중심으로 쓰여져 있다.

그러나 인도나 이슬람과 같이 사전지식이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문명의 경우는 정치사의 흐름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여 문명의 역사에 대한 개요를 파악하도록 의도되어 있다. 그러나 인도의 경우는 미술사와 건축사가 정치사와 함께 균형을 이룬다.

그러나 이슬람을 다루는 이책의 경우는 정치사를 다룰 때 미술, 건축에 대해선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인도에 비해서도 이슬람에 대해선 사전지식이 더 없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동원되는 도판도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기 위한 삽화 위주로 편집되어 잇고 나머지는 그 시기에 지어진 주요건축물에 집중된다.

그외에도 이책의 특징은 예술사로 쓰여지기 보다는 이슬람 문명 자체에 대한 입문으로 쓰여졋기 때문에 이슬람 종교에 대한 서술과 과학, 철학, 문학과 같은 문화에 많은 지면이 할당된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이책은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과 달리 이슬람 문명 자체를 이해하는데 더 큰 비중이 두어져 있다. 그리고 도판은 그 시대의 분위기를 이해하는 보조수단으로 활용되는 면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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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안개 속에서 | 예술/문학/여행 2010-11-08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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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차가운 밤

바진 저/김하림 역
시공사 | 201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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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경삼림(重慶森林)’, 이책을 보면서 떠오른 이름이다. 왕가위 감독의 초기작인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왜 제목이 중경삼림이라 붙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소설을 보면서 왜 그런 제목이 붙었는지 알게 되었다.

충칭(重慶)은 안개로 유명한 도시이다. 안개. 새벽의 숲을 거닐거나 강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산뜻하면서 편안한 느낌이다. 그러나 도시의 안개는 어떨까? 원시림 한가운데 길을 잃고 헤맬 때의 기분이 아닐까? 오리무중(五里霧中), 오리에 뻗은 안개 가운데 있다는 말과 같은 느낌일 것이다.

중국인은 개인주의가 강한 민족이다. 그들의 개인주의가 화려하게(?) 만개한 홍콩. 왕가위 영화는 도시라는 바다에 갇혀 갈 곳 없이 ‘섬’처럼 고립된 개인들을 그린다. 그의 영화 역시 사랑 타령이지만 그들의 사랑은 어딘가 어긋나 있고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다. 섬끼리는 바라만 볼 뿐 다가갈 수 없기 때문이다. 바라보는 것 조차도 안개에 가려 윤곽만 보일 뿐이다.

중경삼림의 여주인공 페이(왕비)는 주인공 633(양조위)과 사랑을 꿈꾸며 그의 집에 몰래 들어가 청소를 하고 인테리어를 바꾼다. 우렁각시와 같은 페이의 행동은 ‘타락천사’의 이가흔에게 복제되는데 이는 어쩌면 모든 남자들이 꿈꾸는 판타지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슬픈 사랑이며 판타지의 사랑이다.

그렇기에 홍콩이란 거대도시의 사랑을 말하는 왕가위의 영화는 ‘영웅본색’과 같은 홍콩느와르만큼이나 암울하다.

이 소설 역시 암울하다. 이 소설의 무대는 중일전쟁이 막바지에 달한 1944년에서 45년 일본이 패전하기 충칭이다.

이 소설은 전쟁을 피해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쫓겨온 한 가족이 전쟁의 무게에 눌려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그린다.

그러나 이 소설은 전쟁소설은 아니다. 이 소설에서 전쟁은 무대배경 이상이 아니다. 일본군과 중국군의 전투는 도시 멀리서 일어나고 가끔 일본군의 폭격을 조심하라는 사이렌이 울릴 뿐이다.

이 소설에서 전쟁은 지평선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그 전쟁은 때때로 일본군이 이웃도시를 점령했다, 충칭으로 진격하고 있다, 피난을 가야할지도 모른다는 루머로만 떠돈다.

그러나 전쟁은 주인공의 가족을 짓누르는 실체이다. 충칭의 안개처럼 그들의 숨을 조이는 조건이다.

대학을 나와 교육자로 일하던 주인공 부부는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당시 일제시대 조선에서도 그랬지만 대학을 나올 정도면 상당한 집안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집안일은 모두 하인이 알아서 하는 것이었고 손에 물 한방울 묻혀본 일 없던 집안이엇다. 그러나 피난을 다니면서 돈도 떨어지고 아는 인맥 하나 없는 낯선 도시에 떨어진 가족.

대학시절, 교사 시절의 꿈은 피난생활의 고달픔에 온데간데 없고 가진 것도 없이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쓸데 없는 지식뿐. 충칭에 와 얻은 것이라고는 야워어 허약해가는 몸뚱아리 뿐이고 생활고와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그의 어깨에 가족의 불화까지 더해진다.

어려울 때 의지할 곳은 가족뿐인데도 주인공의 가족은 싸움으로 지세운다. 이기적이고 보수적인 시어머니는 대학을 나온 신여성인 며느리를 이해할 수도 없고 인정할 수도 없다. 자신이 인정할 수 없는 며느리에게 아들을 뺐기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 더군다나 무능한 아들은 하고싶지도 않은 교정일이나 하면서 푼돈을 벌 뿐인데 수완이 좋은 며느리는 은행에 취직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 그러니 자존심이 상하면서 더더욱 좋아질 수가 없다.

아내는 가족의 생계를 떠안으면서 시어머니와 싸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 하루를 마감하는 생활에 지쳐간다. 남편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안다. 그녀도 남편을 사랑한다. 그러나 자신의 무능 때문에 가족이 이런 고생을 한다는 자괴감 때문에 그와 아내 사이엔 대화도 뜸해진다. 더군다나 세상에 남은 것이라고는 어머니와 아내 뿐인데 둘이 싸우기만 한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 중에서 아들은 누구 편도 들지 못하고 지쳐가고 병들어간다.

이 소설의 부부는 중경삼림에 나오는 왕비와 양조위와 비슷한 캐릭터이다. 중경삼림의 주제가로 쓰인 크랜베리의 히트곡처럼 가벼운 발걸음에 생명력이 넘치는 아내는 아무리 어려워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밝게 표정을 지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면 그녀를 맞는 것은 충칭의 차가운 안개 같은 냉냉함과 적막함. 남편은 그런 그녀에게 아무 것도 해줄 힘이 없고 의지도 없다.

전쟁이란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에 짓눌린 세 사람은 어서 전쟁이 끝나 지긋지긋한 현실이 끝나기를, 전쟁이란 안개가 걷히고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 것 밖에는.

결국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그들에게 기다리는 것은 파멸 밖에 없다. 시어머니와 다투는 것도 더 이상 인내하기 힘들어졌을 때 그녀는 집을 떠나 다른 도시로 전출한다. 이 소설의 시작이 그녀의 가출에서 시작했듯이 소설의 끝도 그녀의 가출에서 끝난다. 떠나기 전날까지도 그녀는 남편이 잡아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남편은 그녀를 잡지 못한다. 잡을 자격을 없다고 그리고 그녀를 잡을 수단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떠났을 때 그를 지탱하던 힘이 소진되어 그의 병이 악화된다. 그래도 그녀에게 마지막 배려로 병이 좋아지고 있다고 마지막 죽는 날까지 편지에는 쓴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들의 모든 행동은 본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곧 붕괴할 구사회, 구제도, 구세력이 뒤에서 그들을 지휘하고 있다. 그들은 반항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희생자가 되고 만 것이다. 나는 세 명의 주인공을 모두 동정하지만, 그러나 또한 그들 모두를 비판한다.”

이 가족의 비극은 그들보다 거대한 힘에 눌려 그 힘에 반항할 수 없었던 나약한 인간의 무함 때문에 일어난 것이란 말이다. 작가는 그 거대한 힘을 당시 중국의 모순에서 찾지만 그들이 느꼈던 자신이 어쩔 수 없는 힘에 휘둘린다는 무력감,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무력감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가족이 무너져 가는 것을 우유부단하게 손 놓고 있었던 남편에게 답답함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을 짓누르던 충칭의 안개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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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예술 | 수신/심리 2010-11-0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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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번뇌 리셋

코이케 류노스케 저/이혜연 역
불광출판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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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스즈키 선사에 관한 글에서 그를 ‘삶을 예술처럼 살았다’는 평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글을 읽을 당시에는 그 말이 왠지 좋게 들렸지만 그 의미는 알 수 없었다. 삶을 어떻게 살면 예술이 되는가? 그 말이 나온 문맥은 깨달음과 삶을 즐기는 것이 같다는, 깨달음이란 삶을 즐길 수 있는 기술(art)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엇었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지 못한 입장에선 아직도 ‘삶의 예술’이란 말이 이해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이책의 저자는 그말의 의미를 이렇게 풀고 있다. “깨달아 버리면 ‘기분 좋아’ 같은 것이 전혀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오해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깨달음이 열리면 ‘기분 좋아’를 느껴도 욕망의 번뇌에너지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기분 좋아’를 보통보다 훨씬 깊고, 섬세하게, 있는 그대로 맛보게 됩니다.

깨달음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잡념에 묶이지 않고 그저 오직 ‘기분 좋아’를 남김없이 그대로 구석구석까지 맛보는 것입니다.

욕망이란 요컨데 눈, 귀, 코, 혀, 몸, 생각의 육감에 들어오는 자극에 대하여 ‘더 갖고 싶어, 맛보고 싶어’라는 것입니다만 극히 쇼킹한 일은 욕망으로 물든 마음으로 무언가를 느낄 때 본래 그것이 지닌 자극을 오히려 대충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맛보고 싶어’라는 잡념 탓으로 도리어 맛을 다 못보고 맙니다.”

저자는 무엇을 바라는 것 자체는 건강하다고 말한다. 문제는 무엇을 바라는 자체가 아니라 바라는 무엇을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게 하는 번뇌 즉 잡념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 잡념을 털어버리고 ‘무엇’을 그대로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삶을 예술처럼 살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이렇게 볼 때 이책 역시 비슷한 시기에 번역된 저자의 다른 책인 ‘생각 버리기 연습’과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바라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바라는 것이 채워지지 않을 것이 되어버리는 ‘욕망’이 될 때가 문제이고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苦’가 된다는 것. 불교의 기본교리이며 ‘생각 버리기 연습’의 내용이기도 하다.

이책 역시 마찬가지 논리를 말한다. 그러나 이전 책보다 좀 더 불교의 논리로 확장되어 설명하고 잇다는 점이 다르다. 가령 불교에서 말하는 선악이란 윤리적인 기준에 맞춰 기준에 맞으면 선이고 악인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 있는 것을 ‘악’입니다”라고 말한다. 이전 책에선 스트레스나 화와 같이 보통 자기계발서에서 많이 다루는 주제를 불교적으로 설명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면 이책에서는 불교에서 말하는 번뇌는 무엇을 말하는가,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등과 같은 불교교리를 우리가 매일 매시간 매초마다 겪는 심리적 일상의 맥락에서 알기 쉽게 실감나게 그리고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실용적인 맥락으로 소개하는 면이 더 강하다.

다시 말하자면 ‘생각 버리기 연습’처럼 불교교리를 생활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한다는 면에서 같지만 이책은 좀더 불교교리를 더 많이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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