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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평범함 | 인문/사회/역사 2011-06-2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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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증오의 세기

니얼 퍼거슨 저/이현주 역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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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4월 4일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가 암살당했다. 아이오와의 초등학교 교사인 제인 엘리엇은 학생들에게 그의 암살 사건에 대해 설명해주고 싶었다. ‘나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때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학교에 입학한 첫날부터 줄곧 인종차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달 전 ‘이달의 영웅’으로 뽑횐 킹 목사의 암살 사건을 학생들에게 설명하기란 너무 어려웠다.’

다음날 그녀는 학생들이 편견에 대해 확실히 실감하길 원했다. 그녀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두 집단으로 분류했다. 갈색 눈의 아이들과 푸른 눈의 아이들이었다. 그런 다음 엘리엇은 아이들에게 충격적인 선을 했다. 갈색 눈을 가진 아이들이 푸른 눈을 가진 아이들보다 훨씬 우수하다고.

두 집단은 분리되었다. 푸른 눈의 학생들은 교실 뒤쪽에 모여 앉아야 했고 갈색눈의 학생들은 푸른 눈의 아이들보다 더 똑똑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쉬는 시간을 추가로 더 길게 즐 길 수 있었다. 푸른 눈의 학생들은 멀리서도 눈 색깔을 구분할 수 있도록 목에 특별한 칼라를 달았다. 두 집단은 쉬는 시간에 함게 어울리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엘리엇은 학생3들의 급격한 변화를 목격하고 엄청난 충격을 바ㅏㄷ았다. “아이들은 갑자기 심술궂어졌고 친구들을 차별하고 못되게 굴었다. 정말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갈색 눈의 아이들이 푸른눈의 친구들을 놀리고 경멸하기 시작하면서 우정이 급속도로 파괴되었다.”

다음날 엘리엇은 교실에 들어가 자신이 틀렸다고 말했다. 사실은 갈색 눈이 더 열등하다는 것이엇다. 푸른 눈의 아이들은 환호했고 갈색눈의 아이들에게 달려들어 목에 달았던 칼라를 붙여주었다.

열등한 집단에 속하게 된 학생들은 스스로에 대해 슬프고 나쁘고 심술궂고 멍청하다고 묘사했다. 한 소년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나쁜 쪽에 속해 있을 때는 나한테 세상 나쁜일이란 나쁜 일은 다 일어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우수한 집단에 속하게 되자 학생들은 즐겁고 착하고 독똑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엘리엇의 실험은 학생들에게 편견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체험하게 해주었다. 잔인할 정도로 구체적으로. 학교를 졸업한 지 15년 후 엘리엇의 학생들은 그때의 경험이 얼마나 깊은 영향을 주었는지 털어놓았다. 단 하룻밤 사이에 자신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변했는지 생생히 기억하는 레이 한센은 ‘그것은 내 일생을 통틀어 가장 심오한 경험이었다’라고 말했다. 수 긴더 롤랜드는 ‘때로 나는 편견에 사로잡히게 되면 잠시 생각을 멈추고 3학년 때를 떠올린다. 그러면 차별을 당한다는 게 어떤 기분이지 깨닫게 된다.’” (칩 하스, 댄 하스)


차별은,,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란 것을 엘리엇의 학생들은 깨달았다. 특별할 것 없는 초등학생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아우슈비츠에서 보스니아와 르완다에서 그리고 고대 그리스와 중국에서 인간이 해왔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이웃을 ‘어버버’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라 경멸하는 의미로 바바리안이라 불렀다. 그리스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은 열등한 인간이었다. 그 이웃은 그리스인들이 야만을 헤맬 때 인류 최초의 문명을 만든 사람들인데 말이다.

아우슈비츠에서 ‘쓰레기’들을 청소한 사람들은 엘리엇의 학생들과 다를 것 없는 보통 사람들이었다. 한나 아렌트가 말했듯이 아우슈비츠에서도 르완다와 보스니아에서도 악은 평범했다. “대량학살과 거기에 비교할만한 집단 폭력에서 우리는 광기와 사악함을 보고 이런 일을 어떤 사람들(‘피에 굶주린 세르비아인’)이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나 라트코 믈라디치처럼 미친 사람 또는 그 집단의 비정상적인 성격 탓으로 돌리고 싶어한다. 이런 설명들은 대량 살상이 인간 세계의 ‘정상적인’ 작동이 아니라 돌발적인 지진이나 화산폭발처럼 비정상적인 것이라 생각하면서 안심시키는 힘이 잇다. 그러나 우리가 바람직한 사회적 결과를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운 산물로 보면서 동일환 인간 본성이 만드는 어두운 면을 외면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역사를 돌아볼 때 인간이 가진 증오와 폭력의 능력도 분명히 우정과 협력의 능력과 똑같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협력을 통해 힘든 추수를 해 냈고 적을 방어했고 땅과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여 이웃 집단을 살육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개인이 가진 이타적인 본성은 역설적으로 집단으로 인해 생겨난다. 개인이 개인을 돕는 행위로만 보아서는 이타주의를 설명할 수 없다. 개인들이 뭉쳐서 사회를 이루고 집단 단위로 경쟁한 결과로만 이타주의를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집단에 대한 가장 명백한 사실 하나는 그것을 저으이하고 특징을 부여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집단의 구성원은 뭔가를 공유하는데 이것은 국적일 수도 있고 피부색 복장 나이 거주지역 말투 등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특정집단을 싫어핟나는 공통점만으로ㅓ도 집단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러한 표지들은 심리적인 힘을 행사해 많은 사람들은 원천적으로 차별하며 피부색이나 종교., 옷 따위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게 만든다. 민족주의적 증오, 인종주의적 혐오, 또는 다른 문화에 대한 증오는 사회적 역설이다. 사람들을 불화하게 하는 이런 힘이 협력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마크 뷰캐넌)

물론 보스니아와 같은 일이 언제나 어디서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 사이를 정의하던 질서가 무너질 때, 그 질서를 재규정해야 할 무질서가 떠오를 때, 무질서가 흩어놓은 집단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할 때 보스니아와 같은 일은 일어난다.

“강한 민족적 증오의 주요 원인은 같은 공동체에 속한 다른 민족들이 어떤 이유로 사업이나 거래를 하지 못하게 되면서 민족 간의 사회적 연결이 무너져 통상적인 사회역학이 붕괴하기 때문이다. 경제가 혼란스럽거나 내전이나 혁명이 일어나 건전한 사회적 상호작용이 무너지면 사람들은 신뢰할만한 사람들을 구별하기 위해 원시적인 메커니즘에 매달리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성격과 평판을 알아보기 위해 정교한 판단의 근거를 찾으려는 노력은 무력해지고 조악한 인상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국외자와 외국인, 다른 인종의 사람들이 갑자기 위험 인물들로 보인다.” (마크 뷰캐넌)

이책은 홀로코스트와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은 전간기의 특수한 조건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오늘날 경제의 낙관주의자들은 ‘지구가 평평하다’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100년전에도 상품과 자본, 노동이 영국으로부터 지구 끝까지 자유로이 이동하는 비슷한 방식의 세계화가 찬양받았다. 그러나 1914년 세계화의 첫 시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이슬람 지역에서 세르비아인의 과격한 테러로 깜짝 놀랄 충격을 안기며 끝났다.” 1차대전이 끝나고 전전의 질서로 돌아가려 안간힘을 썼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벨르 에포크라 불리며 세계의 질서를 규정했던 세계화는 위태로웠으며 1차대전과 함께 사라진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그리고 오스만 제국의 폐허는 질서의 진공 상태에서 회복되지 않았다.

2차대전은 제국이 사라진 진공지대를 채울 공기, 질서를 만들려는 시도 때문에 일어났다. 그러나 그 질서는 다민족이 공존했던 과거의 제국일 수 없었다. 제국이 무너진 폐허에 세울 질서는 이질성의 조화가 아닌 동질성의 통합이 선호되었다.

“세계대전은 경제적 변동성에 의해 촉발되었다. 세계경제가 30년 동안 대변동을 겪은 이유는 1차대전에 의해 세계화가 방해받았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 호황, 불황, 이 모든 경제적 변동은 유럽과 동아시아의 불안을 가중시켯고 기존 제국들을 약화시켰다. 그리고 새로 들어선 민주주의 국가들을 위협했고 인종 간의 반감을 고조시켰다. 또한 터키, 러시아, 일본 독일 같은 제국 국가의 등장에 길을 열어주었는데 각국은 민족 동질성과 위계질서를 병적일 정도로 갈망했다.”

나치의 인종청소와 스탈란의 테러는 그러한 동질성과 위계질서의 프로젝트였다. 좌든 우든 유럽이든 아시아든 파시즘이 불관용의 폭력을 휘두른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그 폭력이 인종(또는 민족)을 청소한 덕분에 “20세기 전반의 주요 전장이었던 유라시아 동서 분쟁지에서 민족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줄어들었다. 2차대전 당시와 그 이후 인종 청소로 소수 민족 수가 크게 줄면서 과거 어느 때보다 사회가 동질화되었다.”

그러나 그 폭력의 무자비함과 불관용 때문에 대동아공영권과 제3제국은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역사상 성공한 제국은 모두 관용(또는 포용) 위에 세워졌다. 제국은 타자의 협력 위에서만 성공한다. 그러나 자기 집단만의 이기심 외에는 타자가 들어설 여지가 없었던 독일과 일본의 파시즘은 타자의 협력을 원천봉쇄해버렸다.

1942년까지 독일과 일본의 제국은 세계를 지배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의 적은 그들과는 원래부터 ‘체급’이 달랐다. 인구와 경제규모에서 추축국의 몇배를 가볍게 넘기는 세 제국의 체급은 두 신생제국이 애초부터 상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승승장구할 때만 해도 잔인함과 오만함에도 불구하고 힘에 이끌린 기회주의자들의 협력을 얻을 수 있었지만 물량전에 밀리기 시작하자 협력은 배척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들의 몰락과 함께 ‘제국의 시대’는 황혼을 맞았다.

“100년전 서양은 세계를 지배햇다. 100년 동안 유럽 제국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거듭한 뒤, 서양은 더 이상 세계를 지배하지 못하게 되었다. 100년전 서양과 동양의 경계선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근방에 위치했다. 이제 그 경계선은 유럽의 모든 도시를 관통하는 듯하다(저자는 이슬람 이민자를 말하고 있다). 이는 이 새로운 단층선을 따라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만약 ㅜ20세기의 역사가 지침이라면 서로 다른 민족 집단이 같은 종교, 같은 유전자는 아닐지라도 같은 언어를 공유하며 상당히 잘 통합되어 있는 곳에서도 이 연약한 문명 체계가 급속히 무너질 수 잇다는 얘기다. 또한 20세기는 경제적 불안정이 그러한 반발의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도 증명했는데 20세기 전반기에 등장한 새로운 복지 국가에서 특히 그러하다. 그 이유는 살아가기 어렵거나 빈부의 차가 커지면 소수 민족 집단들을 적대적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20세기 중반 최악의 학살이 폴란드 우크라이나 발칸 반도, 만주 같은 곳에서 발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편 20세기 후반에 발생한 과격한 폭력 사태는 더 다양한 지역으로 옮겨 갔는데 과테말라에서 캄보디아까지 앙골라에서 방글라데시까지 보스니아에서 르완다까지 그,리고 최근에는 수단의 다르푸르까지 확산되었다. 제국이 쇠퇴하면서 분쟁이 일어난 곳이나 힘의 공백 지대에서 대량 학살을 자행하는 정권이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커졌다. 민족 통합과 경제적 변동성, 쇠퇴하는 제국, 이 세 요인은 치명적ㄹ인 공식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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