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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혁명 | 인문/사회/역사 2011-09-14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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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신자유주의

데이비드 하비 저/최병두 역
한울아카데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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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아래로부터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혁명은 위로부터도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신자유주의 혁명은 위로부터의 혁명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저자는 신자유주의 혁명을 “계급권력의 회복을 위한 프라젝트”라 정의한다. 그 혁명은 황금기의 종말에 대한 반응이었다. 2차대전 이후 닉슨 쇼크까지를 자본주의의 황금기로 보는 데는 좌건 우건 이견이 없다. 그러나 그 황금기가 왜 끝날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이책의 저자를 포함해 좌파에선 그 원인을 이윤율 저하경향 때문이라 보는데 대체로 이견이 없다. 문론 좌파에서도 이윤율 저하경향이 왜 나타났는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그에 대해선 전에 리뷰한 ‘자본의 반격’과 브레너의 ‘Boom and Bubble’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그 원인보다 결과에만 관심이 있다. 원인이야 어쨌건 결과는 동일하고 신자유주의 혁명은 그 결과에 대한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혁명은 사회에 embedding된 자본을 disembedding하는 프라젝트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전후 “유럽에는 사회민주주의, 카톨릭 민주주의, 그리고 통제국가 등 다양한 국가들이 등장했다. 미국 자신은 자유민주주의 국가형태로 전환했다. 이런 다양한 국가형태들은 공히 완전고용, 경제성장, 그리고 시민들의 복지에 초점을 둬야 하며 국가권력은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할 경우 시장에 개입하거나 이를 대체했다. 경기순환을 완화하고 합리적으로 완전고용을 보장하기 위해 흔히 ‘케인즈적’이라 불리는 재정/통화정책들이 채택되었다. 국내평화와 안정의 보증으로 자본과 노동 간 ‘계급타협’이 주창되었다. 국가는 적극적으로 산업에 개입했고 다양한 복지체계들을 구축하여 임금의 사회적 표준을 설정했다. 이는 시장과정과 기업활동이 경제/산업 전략의 방법을 유도하는 사회적. 정치적 제약들과 규제환경의 그물에 의해 어떻게 둘러싸여 있는지 알려준다. 신자유주의적 프라젝트는 이런 제약들로부터 자본을 탈착근(disembedding)하는 것이다.”

시절이 좋을 때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나누어야 할 파이가 쪼그라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후 안정조건의 하나는 상위 계급들의 경제적 힘이 제약되면서 경제적 파이의 훨씬 더 많은 몫을 노동자들이 갖게 하는 것이었다. 성장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이런 제약이 문제되지 않았다. 파이는 계속 커져갔으므로 그 파이의 안정적인 몫을 챙기는 것으로 족했다. 그러나 1970년대 성장이 붕괴되어 실질이자율이 마이너스가 되고 매우 낮은 배당 및 이윤만을 받게 되면서 상위계급들은 위협을 느꼈다. 상위계급들은 파멸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단호하게 행동해야만 햇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는 그들의 혁명이었다.

혁명의 목적은 당연히 이윤율의 회복이었다. 방법은 여러가지이다. 그러나 가장 쉽고 분명한 방법은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을 줄이는 것이다. 저자식으로 말하자면 전후 복지국가에 embedding되어있던 자본을 disembedding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후합의의 파기엿다. 상위계급으로의 “재분배효과와 사회적 불평등의 증가는 신자유주의화의 지속적 특징이었다.”

그러면 국가를 장악해야 햇다. “방법은 다양했다.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영향이 기업, 대중매체 그리고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제도들-대학, 학교, 교회, 그리고 전문가단체 등-을 통해 유푀더었다. 하이에크가 1947년에 이미 예견했던 이러한 제도들을 통한 신자유주의적 사고들의 ‘긴 행군’ (기업에 의한 후원과 기금으로) 싱크탱크의 조직, 대중매체의 장악, 그리고 많은 지식인들의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으로의 전향등은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여론을 형성했다. 이러한 운동은 그 이후 궁극적으로 국가권력을 장악하면서 공고해졌다.” (신자유주의의 지적/정치적 계보는 복잡하다. 이책에선 개요정도만 다루어진다. 미국의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에 대해선 크루그만의 ‘미래를 말하다’가 쉽고 자세하게 다룬다. 영국의 경우엔 박지향의 대처평전인 ‘중간은 없다’가 볼만하다)

신자유주의자 혁명의 날자는 레이건과 대처가 국가를 장악한 해이다. 그러나 정치혁명으로서 신자유주의는 그보다 일찍 뉴욕에서 시작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본주의적 재구조화와 탈산업화는 여러 해 동안 도시의 경제적 기반을 침식했으며 급속한 교외화는 중심 도시의 대부분을 빈곤상태로 방치햇다. 결과는 1960년대 동안 주변화된 주민들의 일부에 의한 사회적 불안, 즉 '도시 위기'로 알려진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1970년대 "경기후퇴가 진행되면서 뉴욕 시 예산의 수입과 지출 격차는 증가햇다(수년에 걸친 무분멸한 차입으로 부채규모는 상당히 컸다)." 처음엔 뉴욕 상업은행들도 적자를 메우는 것을 도왔지만 은행들도 한계에 부딪히고 채무연장을 거부하면서 뉴욕은 기술적 파산상태에 들어간다. '포드가 뉴욕시에게: 죽어라'란 헤드라인처럼 연방정부는 지원을 거부한다. 뉴욕시로선 자신의 힘으로 살아남아야 했다. 이때 시정부의 긴급구제를 맡은 뉴욕 은행가들에 의해 뉴욕시의 정책방향이 우회전을 한다. "공적 고용 및 교육, 공공보건, 교통 서비스 등의 임금동결과 인력 삭감으로 이어졌으며 수직자 부담금을 부과(뉴욕시립대에 처음으로 수업료 체계가 도입되었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출을 줄여야 하니 당연한 조치이긴 했다. 그러나 이전까지 뉴욕의 리버럴 정책기조가 이때부터 신자유주의화되어 고정된다. "수년 사이 뉴욕 노동계급이 일궈낸 많은 역사적 업적이 해체되었다. 도시의 사회적 인프라의 상당부분이 감축되었고 물리적 인프라(예로 지하철 체계)는 투자는 커녕 유지조차 어려울 정도로 퇴락했다. 그러나 뉴욕의 투자은행가들은 도시를 벗어나지 않았다. 이들은 자신의 의제 적합한 방식으로 도시를 재구조화활 기회를 포착했다. '좋은 경영분위기'의 창출이 우선이었다. 이는 경영을 위해서 적절한 인프라(특히 원격통신)의 건설에 공적자원을 사용함을 의미했으며 결국 자본주의적 기업을 위한 보조 및 조세유인책과 결합되엇다. 기업복지가 사람복지를 대체했다. 시정부는 사민주의적 기구라기보다는 기업주의적 기구로 변질되었다. 투자 자본을 위한 도시간 경쟁은 시정부를 공사파트너십을 통한 도시 거버넌스로 전환시켰다. 도시경영은 점차 폐쇄된 밀실에서 이뤄졌고 지방 거버넌스의 민주적, 대의적 요소들은 사라졌다.

뉴욕 재정위기관리는 1980년대 '레이건 정부에 의해 국내뿐 아니라 IMF를 통해 국제적으로도 신자유주의적 관행을 위한 길을 선도했다. 이는 금융기관들의 위원회 및 채권소유자들의 수익과 시민들의 복지가 대립하는 경우 전자에 특혜를 제공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정부역할이 구성원 대부분의 필요와 복지를 보살피기보다는 좋은 경영분위기를 창출함에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레이거노믹스는 뉴욕 시나리오를 확대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여기에 신자유주의의 모순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공식적으로 신자유주의의 세계에 국가의 자리는 없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강한 시장과 강한 국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들의 자유는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이론가들은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몹시 회의적이다. 다수결 원칙에 의한 통치는 개인적 권리와 헌정적 자유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된다. 민주주의는 사치스럽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전문가와 엘리트에 의한 통치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민주적이고 의회에 의한 의사결정보다도 행정적 지시체계나 사법적 결정에 의한 정부를 강력히 선호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중앙은행과 같은 주요 기구들을 민주적 압력으로부터 격리하려 한다." 그 이유는 이들이 말하는 자유가 소유적 개인주의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소유적 개인주의의 이해관계는 공동체의 이익과 충돌한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그런 사적 이익을 마음대로 추구할 자유이다. 그런 자유와 공동체가 충돌해 "집단적 개입을 추구하는 사회운동에 봉착할 경우" 신자유주의의 자유를 지키려면 그런 운동을 억압할 국가가 필요하다. 그런 국가는 "반대를 진압하기 위해 설득, 선전 또는 필요하다면 적나라한 폭력을 사용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폴라니가 두려워했던 점이다. 즉 자유주의적 (확장하면 신자유주의적) 유토피아 프라젝트는 궁극적으로 권위주의에 의존함으로써 유지된다. 대중의 자유는 소수의 자유를 위해 제한될 것이다." 신자유주의에서 네오콘으로의 진화는 필연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신자유주의는 축적위기에 대한 해답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면 그 해답으로서 신자유주의는 얼마나 성공적이었는가?

“병든 경제의 치유에 관한 모든 수사와는 달리 영국과 미국 모두 1980년대에 높은 수준의 경제적 업적을 달성하지 못함으로써 신자유주의가 자본가들의 기도에 대한 해답이 아님을 제시했다.

세계 전체의 성장률은 1960년대 3.5% 정도였으며 심지어 어려웠던 1970년대에도 단지 2.4%로 떨어진 정도엿다. 그러나 1980년대와 1990년대의 1.4%, 1.1%라는 성장률(그리고 200년 이래 거의 1%에 불과한 성장률)은 신자유주의화가 세계적인 성장을 촉진하는데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확실히 인플레이션은 낮아졌고 이자율도 떨어졌지만 이는 높은 실업률이라는 희생을 대가로 한 것이었다. 국가복지와 인프라 지출의 축소는 많은 사람들의 삶의 질을 악화시켰다. 전반적으로 저성장과 소득불균등 증가의 어색한 혼합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단지 동아시아와 동남아 그리고 최근 인도에서 신자유주의화가 약간의 긍정적인 성장 기록을 보였지만 이는 전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이라고 할 수 없는 발전주의 국가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실패작인 신자유주의가 그 ‘자유’로 하려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저자는 신자유주의의 숨은 의제는 성장이 아니라 분배엿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화의 본질적이고 주된 업적은 부와 소득의 창출보다는 재분배에 있었다.” 저자는 그 메커니즘을 ‘탈취에 의한 축적(accumulation by disposseion)’이라 부른다. 맑스가 말한 원시적 축적의 의미를 더 분명하게 드러내는 ‘탈취에 의한 축적’은 원시적 축적이 그랬듯이 강한 국가의 지지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신자유주의의 핵심의제 중 하나였던 민영화를 보자. “공적 자산이었던 것들의 법인호, 상품화, 민영화는 신자유주의 프라젝트의 징후적 양상이다. 이의 우선된 목적은 그간 이윤가능성의 산정에서 제외되었던 영역에서 자본축적을 위한 새로운 공간을 개발하려는 것이ㅏㄷ. 모든 종류의 공적사업들(물, 통신, 교통), 사회복지(공공주택, 교육, 보건의료, 연금), 공적기관들(대학, 연구실, 감옥) 그리고 심지어 전쟁(이라크에서 정규군과 함께 작전을 수행하는 민간 용병)도 민영화되었다.

그러나 탈취에 의한 축적의 본질은 민영화보다는 금융화에 있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워싱턴 콘센서스에서 민영화와 항상 짝을 이루었던 탈규제(또는 규제개혁)은 사실 금융의 탈규제가 핵심의제엿다. 경제의 세계화를 위해선 금융의 세계화가 따라야 한다고 주장햇지만 통계는 주장과는 다른 사실을 보여준다. 2001년 세계금융시장의 거래량은 연간 40조달러였다. 그러나 “국제무역과 생산적 투자 흐름을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액수는 8000억 달러”에 지나지 않앗다.

금융의 세계화를 가능하게 한 “탈규제는 금융 시스템을 투기, 강탈, 사기, 그리고 도둑질에 의한 재분배의 핵심으로 만들었다.” 90년대 이후 미국에서 금융부문의 “고용은 급격히 성장했다. 그러나 이점이 얼마나 생산적인가에 관해서는 심각한 문제들이 제기된다. 금융업의 많은 부분들은 단지 금융에 관한 것일뿐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투기 이득만이 부단히 추구되엇고 이러한 이득은 각자가 수단을 가리지 않고 동원할 수 있는 권력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실현 여부가 결정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 금융업은 미국에서 가장 이윤율이 높았다. 그 비결은 이제는 명백해졋듯이 투기였다. 그 투기가 어떻게 돈을 만들어냈는지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주식상장, 폰지형 사기, 인플레이션을 통한 구조적 자산 파기, 흡수합병과 취득을 통한 자산 박탈, 심지어 선진 자본주의국가에서도 전체 인구를 부채 노역자로 전락시키는 부채 부담 수준의 증대. 기업적 사기는 말할 것도 없고 신용과 주식 조작에 의한 자산 탈취 등은 자본주의 금융시스템의 핵심이 되엇다.

이른바 금융 및 통제기능을 하는 소위 글로벌시티들은 부와 특권의 장엄한 섬이 되었으며 이러한 운영이 가능한 장소를 제공하고자 고층건물이 치솟고 수백만 제곱피트의 사무공간이 건설된다. 이러한 고층건물들에서의 층 사이의 거래는 엄청난 부를 창출한다. 맨해튼, 도쿄, 런던, 파리, 프랑크푸르트, 홍콩 그리고 오늘날 상하이으 빠르게 변하는 스카이라인은 경이로울 지경이다.” 그 도시들이 경이로운 이유는 재분배 또는 탈취에 의한 축적의 열매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탈취에 의한 축적의 가장 현란한 묘기는 위기의 관리와 조작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금융위기는 항상 자신의 자산을 온전히 유지하면서 신용을 창출할 수 잇는 위치에 잇는 사람들에게로 소유권과 권력의 이전을 유발한다. (1997-1998년) 아시아의 위기도 예외는 아니다. 서구와 일본 기업들이 큰 승자라는 점은 의심할 바 없다. 현저한 평가절하, IMF에 의해 강제된 금융자유화, 그리고 IMF가 촉진한 회복의 결합은 지난 50년간 평상시에 세계 모든 곳에서 일어난 자국 소유자로부터 외국인 소유자로의 가장 큰 자산이전보다도 더 컸으며 1980년대 라틴아메리카나 1994년 이후 멕시코에서 자국 소유자로부터 미국인 소유자에게 이전되었던 것을 왜소하게 만들 정도다. ‘침체기에 자산은 그들의 적법한 소유자에게로 되돌아간다’는 멜론의 말을 기억하게 된다.”

그러나 저자는 신자유주의 체제가 한계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 예로 미국의 방대한 쌍둥이 적자는 “신자유주의가 자본축적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한 실용적인 이론 지침으로서 수명을 다했다는 강력한 조짐이다.” 그 이유는 탈취에 의한 축적이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라 저자는 보는 것같다. 더 이상 뽑아낼 것이 마땅치 않은 단계에 달한 것이다. 그리고 저자가 이책을 이번 위기 이후에 썼다면 이번 위기를 신자유주의의 사망선고로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남은 것은 뒷처리뿐이라 덧붙일 것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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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을 질서로 | 경제경영 2011-09-1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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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상사를 관리하라

브루스 툴간 저/박정민,임대열 공역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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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거대 멀티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수석 생산관리자는 ‘우리 회사에는 시스템적인 문제가 많아요’라고 이야기했다. ‘예를 들어 제 직속상사는 제 옆에 바짝 붙어 서서 제 부하직원들에게 지시를 합니다. 제가 이전에 말했던 내용과 다른 이야기를 할 때가 많죠. 정말 우리 회사는 너무나 혼란스러운 동네입니다. 그러면 제 부하직원들은 도대체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까요? 또 어떤 때는 생산과 관련된 이해관계자들이 동시에 여기저기서 저에게 전화와 이메일을 날려댑니다. 다른 부서의 부서장도 있고 스폰서나 광고주도 있지요. 온라인 저작물, 다른 채널, 영화, 본사, 잡지사의 담당자들도 모두들 연락을 합니다.’”

저자가 소령님이라 부르는 이 관리자는 현 직장에서 일하기 전에 육군에 있었다. 소령이 될때까지 군에서 일한 그녀에게 민간기업의 시스템은 이해불가의 혼돈이다.

“군대에서 나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의 지시는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배웠어요,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에게 보고를 해야 하는지 명확했죠. 누가 내 지휘관인지도 분명했고요.” 물론 군대라고 모든 것이 분명한 것은 아니다. 일이란 어디나 불확실성이 있게 마련이고 서로 상충하는 요구들이 난무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적어도 군에선 명료한 조직도가 일의 우선순위를 결정해주었다.

그러나 질서정연한 조직에서 혼란스런 조직으로 옮겨온 그녀는 혼란에 먹히지 않았다. “소령님은 그 조직의 역사상 전설적인 인물로 알려진 사람이다. 매우 차분하고 냉정한 사람, 최고의 전문가,. 성공한 생산관리자로 평판이 자자하다.” 그런 평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혼란을 다스릴 전략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어떤 근무환경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열쇠는 작업패턴의 리듬을 익히는 것이라 할 수 잇죠. 물론 어떤 관리자는 부하직원 관리를 매우 잘해서 그들이 일을 하는데 원활하게 리듬을 탈 수 있게 해줍니다. 그런 관리자는 갑자기 일의 우선순위가 바뀌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어 일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게 도와주지요. 각 개인이 그에 맞춰 움직여나갈 악보를 가지고 있고 전체(가장 상위 직급부터 가장 하위직급까지)를 위한 체크리스트를 가지고 있어서 모두 함께 서로의 리듬에 맞춰 조윬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겁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관리자는 천연기념물이란 점이다. 관리자가 그 자리에 있는 이유는 관리를 잘해서가 아니다. 관리자로 승진하기 전에 실적이 좋았거나 사내정치를 잘했거나 다른 이유 때문이다. 대개 관리자는 관리능력을 쌓을 기회가 없이 그 자리에 앉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관리자들의 꿈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높은 성과를 내는 부하직원과 함께 일하”는 것이다. “이들은 그 어떤 지도나 지원을 받지 않아도 엄청난 양의 일을 매우 훌륭하고 빠르게 해낸다. 실수를 하는 경우는 없으며 상사에 대해 별 기대나 바람도 없다.” 이런 인재와 일하는 것은 관리자의 로망이다. “문제는 세상에 이런 부하직원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형편없는 관리자들은 이러한 환상 속의 직원이 존재하는 듯이 관리를 한다.”

그 결과 저자가 ‘부실관리’라 부르는 현상이 조직에 만연한다. “그들은 일상적인 업무상황에서 제대로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업무 프로세스의 각 단계에서 (부하직원들에게) 어떤 것을 바라는지 이야기하지 않으며 필요한 자원들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부하들의 업무수행과정을 모니터하지 않으며 실수가 있을 때 피드백을 해주지 않고 좋은 성과를 올려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들은 어떻게 관리를 해야 할지 모르기도 하고 관리를 하고 싶어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관리를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의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부하가 아니다. 프라젝트의 목적이 무엇인지 왜 그것을 해야하는지, 언제까지 되어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으면 부하는 짐작 밖에 할 수 없고 대개 그 짐작은 일을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부하가 알아서 필요한 예산을, 필요한 사람을 동원할 수 있기를 기대하지만 그러면 왜 보스가 필요한가? 일을 어찌어찌 해본다 해도 제대로 된 피드백을 주지 않으면 일이 큰그림과 맞아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다. 어떻게 일을 끝내도 보상을 바랄 수 없다면 사기는 땅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당신은 조직 안을 휘졌는 혼돈의 파도를 타고 자신의 진로를 개척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소령님의 말을 들어보자. “저는 이런 조언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이 어디에서 일하든 당신의 관리자가 당신을 잘 도와주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일이 가지고 있는 리듬에 집중하고 당신이 그 음악에서 담당하고 있는 역할을 열심히 익히세요. 그렇게 되면 어느 상황에서다로 어떻게 행동해야 정확하게 알게 될 겁니다. 미처 예상 못 했던 일이 일어나더라도 일의 리듬을 잘 익히고 있다면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저는 그걸 군대에서 배웠습니다. 그곳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때가 바로 이제까지 배웠던 것을 총동원해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때라고 가르쳤거든요.” 구체적으로 리듬을 타는 방법을 소령은 표준업무진행 프로세스라 부른다. “가장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는 상황이야말로 당신이 표준업무 프로세스가 가장 필요한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명확한 업무규정이나 표준업무 프로세스가 없는 곳에서 일한다면 반드시 표준업무체계를 만들 것을 권합니다. 스스로 활용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를 만드십시오. 즉 자신의 악보를 만드는 거죠. 일의 리듬을 이해할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주위에 아무도 없다면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 되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소령의 조언은 재즈 음악가처럼 그때 그때의 변칙에 맞춰 연주할 수 잇는 능력, 즉흥연주의 능력을 가지란 말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저자는 그 첫단계를 이책에서 말한다. 자신의 업무환경을 명확하게 구조화하라 저자는 말한다. 그 열쇠는 우선 상사를 관리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이 떨어졌을 때 그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을 얻을 수 있는 원천은, 그 일을 제대로 해나가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일을 끝냈을 때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모두 상사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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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 경제경영 2011-09-11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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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틀 벳

피터 심스 저/안진환 역
에코의서재 | 201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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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말이다. 아무리 먼 길이라도 한 걸음 한 걸음으로 나누지 않으면 갈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 당연한 것을 잊어버린다. 이책은 그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보자고 한다.

사람들은 큰 성공 뒤에는 무언가 큰 것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이 너무나 거대하므로 그 성공은 거창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사람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먼저 거창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전에 내가 벤처 자본가로 일하면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성공한 기업들은 처음부터 뛰어난 아이디어를 가지고 출발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발견한다는 점이다.”

거대한 성공의 시작은 거의 보잘 것없고 사소했다. 다시 말하자면 성공은 백조다. 물위로는 한가하고 우아하게 보이지만 물밑에선 두발을 열심히 움직여야 한다. 에디슨이 1%의 영감과 99%의 땀이라 말한 것은 물 아래 두발을 말한 것이다.

“한 시간짜리 공연을 개발하고 완성하려면 최고의 코디디언초차 반년에서 1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 회 분량의 완전한 레퍼토리를 짜는 과정을 보면 록은 수백 개의(수천까지는 아니더라도) 예비 아이디어를 시도해보고 그 가운데 소수만 엄선하여 실제 공연 무대에 올린다. 종종 예닐곱 개로 성공적인 농담을 만들어낸다. 독창적인 아이디어라는 것이 완벽한 형태를 갖춘 채 머릿 속에 치고 들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성공을 향한 열의에 불타는 코미디언은 할 수 있는 한 매일 저녁 무대에 오르며 특히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는 단계일 때는 더욱더 그러하다. 그들은 매주 적어도 5회, 때로은 7회까지 무대에 올라 모든 요소와 표현들을 시험하며 구슬땀을 흘린다. 매일 반복적으로 말이다.”

일이란 것이 원래 그렇다. “만일 1만 가지의 방법을 시도했는데 모두 효과가 없다고 해도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다. 나는 실망하지 않는다. 한 가지 방식이 잘못된 것으로 밝혀질 때마다 나는 한 발짝 전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에디슨의 말이다.

학교에선 정답이 있지만 그러나 학교 밖에선 사지선다로 고를 수 있게 정리된 정답이란 희귀하다. 특히 새롭고 불확실한 것은 반드시 그렇다. 물론 모든 일이 그렇지는 않다. 잘 정리된 프로세스가 있고 업무 매뉴얼이 있는 일상의 업무는 확실성의 세계이다. 그러나 ‘뻔한’ 세상에서 한발짝만 벗어나도 세상에는 정답이 없다. 그 세상은 불확실성의 확실성이 지배한다. 그런 세상에서 정답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지 준비된 것이 아니다.

이책은 그 정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대해 말한다. 저자는 불확실성에 대한 유일한 방법으로 실험적 접근법을 말한다. 실험적 접근법의 핵심은 정답을 “발견하고 검증하고 개발하기 위해 작은 실험(little bets)을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실험적 접근법 또는 그 구체적인 실행인 리틀 벳은 “불확실성이 확실성을 대체할 때 또는 문제를 해결할 통찰력이나 경험, 전문성이 부족할 때 유리한 접근법이다.”

예를 들어 경영대학원에서 가르치는 것과 실제 기업가가 하는 방식을 비교해보자. 학교에선 요리를 이렇게 하라 가르친다. “요리사 메뉴를 선택하고 조리법을 결정한 뒤 재료를 구입하고 요리도구가 갖춰져 있는 주방에서 조리를 한다. 각 단계에서 할 일이 미리 정해져 있기 때문에 조리 과정을 순차적으로 계획할 수 있다. 즉 1단계가 끝나면 2단계가 시작되고 마침내 3단계에서 요리가 완성되는 식이다.” 교실에서 세상은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고 세상은 선형적(linear)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교실 밖의 세상은 교실에서 가르치듯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는 선형적으로 돌아가는 곳이 아니다. 교실 밖의 요리사는 어떤 메뉴를 선택해야 할지도 모륵고 “어떤 재료를 사용할지도 모른 채 완전히 낯선 주방에 들어간다. 요리사는 찬장을 뒤져 재료를 찾아내고 그것들을 잘 조합하여 즉석에서 음식을 만들어내야 한다. 결과는 훌륭할 수도 잇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잇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결과를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기업가가 오류나 돌발 상황을 결코 피하여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때로 요리사가 임기응변을 통해 새로운 조리법을 찾아내듯이 기업가들은 새로운 상황에서 교훈을 얻으려 한다.”

저자는 그 교훈을 얻는 방법은 (HP의 공동창업자인 빌 휴렛이 말한) 리틀 벳이라 말한다. “HPrk 휴대용 전자계산기 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접근법 덕분이다. 1972년 HP의 첫번째 전자계산기인 HP-35가 나왔을 때만해도 공학용 전자계산기 시장은 존재하지 않았다. HP 계산기는 놀라운 기술을 적용하였을 뿐 아리나 호주머니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았다. 그렇지만 값싼 계산자에 비하면 너무 비쌌다.” HP는 시장조사를 의뢰했다. 시장조사 결과는 ‘이건 안 팔릴겁니다’였다. “빌 휴렛은 동의할 수 없엇다. ‘천대만 제작해서 한번 상황을 보는게 어떨까?’ 그 정도면 감당할 수 있는 도박(리틀 벳)이었다. 마침내 5개월도 지나지 않아 HP는 하루에 천대를 판매하고도 제품이 부족해 간신히 수요를 맞출 수 있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불확실하다. 될지 안될지 알 수 없다. 빌 휴렛의 리틀 벳은 “어느 정도의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느 정도의 손실을 감당할 수있느냐”를 묻는다(affordable loss principle). 그러다보면 실패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나는 오랫동안 서툰 실수를 연발하면서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성공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잇는 모든 방법을 시도하고 난 뒤에 남는 것은 성공할 수 밖에 없는 길뿐이기 때문이다. 기업가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항상 가장 마지막에 찾아오는 듯하다. 일단 그때가 되면 모든 게 명백해보인다.” 리틀 벳은 그 명백한 순간을 위한 준비이다.

“에드 캣멀은 픽사의 창조적 프로세스에 대해 ‘개판에서 개판이 아닌 것으로 가는 과정’이라 묘사햇다. 영화에 대한 픽사의 아이디어는 개판에 가까운 스토리보드에서 출발해 개판이 아닌 수준에 이를 때까지 수천 수백가지의 문제 해결 과정을 거친다. 물론 단순히 실패하는 것이 핵심은 아니다. 핵심은 바로 실패를 통해 체계적인 학습을 거치는 데 있다. ‘우리는 불편해지는 것에 편해져야 합니다.’ 적은 비용을 들여 견본을 만들어보면 빠른 학습을 위한 신속한 실패가 가능해진다. ‘내가 구사한 전략은 언제나 같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잘못하는 거죠. 간단히 말하자면 일을 망쳣을 경우 그걸 곧바로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실패하는 걸 두려워하지는 맙시다. 가급적 빨리 실패해서 해답을 얻는게 좋아요. 처음부터 일을 잘 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아주 빨리 신속하게 망칠 수는 있지요.”

요점은 아이디어에 너무 많은 자원을 들이지 않으면 잃는 것보다 배우는 것에 집중할 수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과정을 “행동하기 위해 생각하기 보다는 생각할 수 있게 행동하는” 것이라 말한다. 다시 말해 연역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귀납적으로 행동하라는 말이다. 인간은 컴퓨터가 아니다. 컴퓨터는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온다 (GIGO) 그러나 인간은 쓰레기를 보물로 바꿀 수 잇다. 그 열쇠는 귀납적 행동에 있다. “딥 블루의 사례는 왜 우리가 연역보다 귀납을 선호하는지 그 이유를 보여준다. 연역은 단지 장기의 수처럼 매우 잘 정의된 문제에만 효과가 있다. 연역이 작동하려면 그 문제가 어떤 정보를 잃어버리거나 모호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연역은 추론을 하는데 매우 강력한 방법지만 본질적으로 차갑고 냉담하다. 귀납은 연역보다 잘못될 경향이 잇지만 보다 유연하고 우리가 흔히 부딪히는 불완전하고 모호한 정보 상황에서는 더 적합하다. 따라서 우리가 귀납 쪽으로 치우치게 되는 것은 진화론적으로 설득력이 있다.” 계획을 앞세우는 MBA 스타일은 경제학자들처럼 세상은 투명하게 모든 정보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완전 합리성은 우리가 100% 연역적이며 딥 블루처럼 언제나 명확하고 잘 정의된 그런 문제만 다룬다고 가정한다. 또한 우리는 학습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우리가 완전하다면 무엇을 더 배울 필요가 있느냐는 말이다.” (에릭 바인하커)

리틀 벳은 실패를 전제한다. 그러나 그 실패는 배움의 수단이다. 그리고 우리는 실패에서 성공을 배운다. “크리스 록의 농담은 때때로 폭소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소리를 죽이고 킥킥거리는 웃음을 유발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로써 록은 자신이 좋은 농담거리가 될 테마를 발견했음을 알게된다. 이것이 바로 그가 후에 성공의 기반으로 삼을 수 있는 작은 성공이다. 작은 성공은 전진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불확실성의 한가운데를 높인 발판, 또는 구성재료와 같다. 그들은 표지(landmark)의 역할을 수행하며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잇는지 확인시켜주거나 어떻게 방향을 바꿔야 할지 알려주는 전환점 역할을 한다. ‘일단 한 번의 작은 승리를 달성하게 되면 다시금 똑 같은 일을 부추기는 힘이 작용하기 시작한다.’”

작은 성공은 기세를 만든다. 그리고 기세를 타고 작은 승리가 누적되면서 큰 승리로의 길이 열린다. 큰 승리는 작은 실험에서 작은 승리의 누적에서 만들어진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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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20세기의 끝에서 | 인문/사회/역사 2011-09-11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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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국은 무너졌다

자크 사피르 저/박수현,김병권 공역
책보세(책으로 보는 세상) | 2009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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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다보스포럼의 화두는 ‘G-Zero’란 말이었다. G-제로란 “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 같은 신흥국 세력이 날로 강해지며 국제사회의 세력이 점점 균등해지는 가운데 향후 10년 동안 뚜렷한 지도국이 없는 체제를 말한다.”

금융위기로 선진국 특히 미국의 리더십이 약화되면서 그 빈자리를 G20이 메웠다. 1,2회 G20 정상회담은 성공적이었다. 워낙 현실의 압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회담은 실질적 내용이 없는 말잔치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위기가 수그러든 이상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현실적으로 G20을 대체할 마땅한 대안이 없다. 그렇다고 “기존에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했던 국가들은 현재 국내문제에 정신이 없어 글로벌 거버넌스를 할 여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보스포럼에서G-제로 이론을 주장한 블레머는 기존의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던 국가들이 글로벌 리더십 부재가 2013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 후에는 글로벌 리더십은 지역적 리더십으로 나뉘어질 것이라 본다. “남미, 북미, 걸프 지역을 대표적인 예로 꼽았다. 그러나 그는 아시아의 경우 지역적 리더십을 발휘할 국가가 없다고 본다. 중국과 인도는 서로 갈등을 일으키고 일본은 리더십을 발휘할 의지가 없다.” (매경)

이 지경이 된 이유는 간단하다. 금융위기로 미국이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와 함께 미국의 방식은, 신자유주의라 불리던 모든 것은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는 마지막 결정타일 뿐이었다. 제국의 죽음은 10년 전 아시아 금융위기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20세기 마지막 10년이 시작되던 순간 미국은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등 모든 차원에서 완전한 패권을 장악하는 듯 보였다. 미국은 한마디로 ‘지배 권력’의 모든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미국은 걸프전을 통해 압도적인 힘을 과시한 후에 더 이상 직접적인 무력에 의존하지 않고도 모두에게 영향을 줄 수 있었고 특히 자신의 명시적이고 암묵적인 표상체계와 담론을 강요함으로써 국제정치 공간에 헤게모니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당대에 싹텄던 희망에도 두려움에도 결코 부합하지 않았다. 오늘날 판단할 때 1990년대 초의 상황은 기만적인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진정한 단절은 1997~1999년 국제금융위기였다.”

90년대 최고의 유행어였던 세계화는 “실제로는 두가지 과정의 결합이다.” 첫째는 ‘중국과 인도의 산업혁명’이라 불러야 할 것으로 자본주의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과정이었다. 둘째는 미국이 정의한 세계화로 데이비드 하비에 따르면 ‘신자유주의화’라 불러야 할 과정이다. 이 과정은 무역과 금융의 개방이라 요약된다.

무역과 금융의 “문호개방은 국제관계를 바라보는 미국적 시각의 근간을 이루는 개념이다. 1985년에서 1995년에 이르는 시기는 이러한 미국의 비전이 절정에 달한 시기다. 이 시기동안 자본 이동을 구속하는 제약들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 자유무역의 중요성이 WTO 같은 국제기구들의 핵심의제로 등장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그러나 미국이 주장한 문호개방의 핵심은 금융개방이엇다.

“신자유주의화는 모든 것들의 금융화를 의미했다. 이 점은 경제의 다른 모든 영역들과 국가잧이는 물론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금융의 장악을 심화시켰다. 이는 또한 세계적 교환관계에 가속적인 변동을 유발했다. 의심할바 없이 생산으로부터 금융의 세계로 권력이행이 있었다. 이제 제조능력에서의 이익이 필수적으로 1인당 소득의 증가를 의미하지 않게 된 반면, 금융서비스에의 집중은 분명 소득의 증가를 의미했다.” (데이비드 하비)

물론 금융화의 소득은 소수 국가의 소수의 손에 집중되었다. 아리기가 말하듯 신자유주의화의 시대는 미국의 Belle Epoque였다. 20세기의 벨르 에포크는 19세기 영국의 벨르 에포크처럼 금융화 덕분이었다. 클린턴 집권기 미국의 번영은 그 비결이 “미국이 세계의 다른 곳에서 금융 및 기업 운영(직접 투자 및 포트폴리오 투자)을 통해 자국으로 높은 수익률을 끌어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같이 세계 여러 다른 곳들로부터의 공물(tribute) 흐름은 1990년대 미국에서 성취된 부의 상당 부분을 구성했다.” (데이비드 하비, 이에 대해 더 자세한 것은 전에 다룬 ‘자본의 반격’ 리뷰와 앞으로 다룰 리뷰 참조)

“1985-1998년 동안 미국의 이데올로기적 승리의 가장 큰 특징은 금융 자유화가 실제로는 개별 이해관계에 기여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금융자유화를 잠재적인 공공재로 제시할 수 잇었다는 점에 잇다.”

그러나 1997-1999년의 금융위기는 금융자유화가 공공재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었고 위기를 통제하지 못한 미국의 무능력을 보여주었다. “금융위기는 미국 헤게모니의 정당성을 뿌리째 뒤흔들었으며 1980년대 말 이후 정립된 이데올로기적 지배의 위기가 도래했다.

아시아를 시작으로 러시아를 거쳐 라틴 아메리카까지 확대되었던 금융위기의 원인은 미국의 권유에 따라 도입된 자유화 정책, 그중에서도 특히 금융 자유화 정책” 때문이엇다. “이 위기의 정치적 차원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오늘날 차베스나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의 성공도, 아르헨티나와 에콰도르 등 다른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서 국가 주권 담론과 사회적 담론을 결합한 세력의 승리도 푸틴 대통령 집권 아래의 러시아 변화도 이해할 수 없다.

미 재무부가 모든 강력한 수단을 동원했지만 위기의 논리가 시스템 통제에 대한 모든 의지를압도햇다. 한 마디로 창조주가 피조물에 먹힌 셈이다.” 재앙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0년에 터진 나스닥 위기와 인터넷 버블 붕괴는 신경제의 신화를 무너뜨렸다. 엔론과 월드컴 스캔들은 미국이 옹호하는 ‘거버넌스 모델’의 한계를 빠르게 보여주었다.”

“1999년부터 전개된 자유주의 이데올리기에 대한 비판도 바로 미국이 금융위기관리에서 보여준 무능력의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결과다. 금융위기로 인한 정치, 경제, 이데올로기적 결과들은 미국의” 헤게모니를 뿌리째 뒤흔들었다.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 담론이 갑작스럽게 신뢰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저자는 2000년대 세계경제를 정의하는 글로벌 불균형을 위기의 결과로 본다. 미국이 금융위기를 통제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아시아 국가들은 국제금융의 변덕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된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를 위해 내수를 줄이고 극히 공격적인 무역정책을 감행했다.” 국제무역에서 아시아 국가들의 “‘약탈자적 전환’은 1999년과 2000년에 시작되었다. 진정한 국제무역 자유화는 각국이 합리적인 수준으로 내수를 확대하는 정책을 조정할 수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만약 어떤 국가가 의도적으로 소비를 억제한다면 이 국가의 발전 전략은 해외시장에서 자국 상품의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밖에 없다. 또 여러 국가들이 동일한 방식으로 사고할 경우 그 결과는 이들 국가의 정책을 모방하지 않는 국가들에서 디플레이션과 고용 파괴로 나타난다.”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은 것은 미국이엇다고 저자는 말한다. “미국은 국제금융 자유화로 인해 다음과 같은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첫째 자신이 강제한 시스템의 조절국가임을 천명한 경우다. 이 경우 미국은 통화정책을 국내 정책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둘째 통화정책을 계속 국내 경제정책의 도구로 사용할 경우 미국은 시스템의 조절국가임을 천명할 수 없다. 따라서 미국은 자신이 만든 세계시스템의 운영을 우선시하고 국내통화정책을 조정변수로 만들든가, 통화정책의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세계시스템을 국내정책의 조정변수로 만들어야 한다.” 아시아국가들이 약탈자로 돌변하면서 미국의 딜레마는 더욱 심화되었고 세계시스템의 “모순이 미국에 집중된다.

미국은 전세계적 문호개방이라는 정치적 행위와 이 정치적 행위의 결과를 홀로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의 부재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에 부딪차게 되었다. 일극적 세계절서를 추구하는 동시에 일극적 세계경영을 위해 다극적인 협력을 기대할 수는 없으며 전세계의 문호개방을 추구하는 동시에 그로 인해 발생하는 자본, 금융, 상품 플로우를 안정화시키지 않을 수는 없다. 이 같은 모순은 재정 약화뿐 아니라 이제 무역 약화가 결합된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미국의 지도자들은 정치적 이유로 미국경제의 실제 효율성이 지탱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경제활동을 유지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는 경성권력과 연성권력을 모두 보유할 수 잇는 강대국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가 갑작스럽게 붕괴한 것이다.” 담론의 위기는 치명적이다. “담론의 상실은 미디어가 그야말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 세계에서 군사적 패배만큼이나 중요한 패배”이기 때문이다.” 헤게모니의 위기에 맞서 “미국은 군사력 즉 경성권력을 동원할 수 잇는 능력을 다시 한번 과시함으로써 자국의 헤게모니를 재천명하고자 했다. 미국은 이미 1991년 걸프전을 통해 이를 만천하에 과시한 바 있다. 이 같은 미국정책의 재군사화는 1999년 코소보 사태에서 2003년 이라크 전쟁까지 계속된다.”

미국이 재군사화란 옵션을 택한 것은 미국의 세계에 인식이 크게 바뀌엇기 때문이기도 하다. “1998년 위기 직후 미국을 사로잡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혼란은 파키스탄과 인도의 핵실험을 계기로 더욱 악화되었다. 미국이 비교적 가깝다고 생각했던 국가들마저 미국의 통제를 벗어나 독자적인 전략을 추구한다는 것을 보여주엇다. 미국의 세계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하게 된다. 외부 세계를 미국이라는 성지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으로 감작스럽게 인식하게 된 것이다. 즉 1990년대의 자신만만함이 막연한 두려움의 감정으로 변했다. 지배 국가에 대한 도전과 지배 국가의 대응 과정은 과격화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막연한 두려움은 9/11로 분명한 두려움으로 바뀐다. 그러나 테러와의 전쟁 이후 미국의 과격화는 “단순히 조지 부시 대통력을 비롯한 지도층의 신보수주의 이테올로기만의 산물은 아니다. 부시의 백악관 입성은 이 동학의 원인이라기보다 징후에 가까웠으며 기폭제라기보다 동학의 현시라고 볼 수 잇다. 그런데 이러한 군사력으로의 회귀는 정치적 군사적 이유로 인해 실패한 회귀엿다.” 그 결과는 국제무대에 중국과 인도를 신흥강국으로 올려놓았고 러시아의 부활을 이끌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미국은 군사력의 약화와 정치적 고립이라는 상황에 봉착했으며 미국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러면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저자는 다보스 포럼에서 논의된 G-Zero에 동의한다. 여전히 미국은 최강이다. 그러나 제국으로서의 미국은 끝났다. 그리고 “미래는 일극적 제국의 시기가 될 수 없다.” 미국의 헤게모니는 무너졋지만 미국을 대신할 국가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미국은 자신의 해결책을 강제할만큼 강력하지는 않지만 다른 대안적 해법들의 등장을 막을 만큼은 강하다. 미국의 딜레마는 발생 단계에 있는 질서의 위기 그 자체다. 즉 구질서는 사라졋지만 신질서가 탄생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래는 “외관상으로도 다극적 동거의 시기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 다가올 미래는 분쟁과 혼란의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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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을 정의한다? | 수신/심리 2011-09-04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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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품격

이시형 저
중앙북스(books) | 201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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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품격 또는 기품에 관한 책이다. 그런데 기품이란 도대체 무슨 뜻일까? “품격은 쉽게 말해 자기 존중감, 자기긍정감이다.” 저자의 정의이다. 정확하다. 그러나 이 한줄의 정의로 그 뜻이 잡히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품격이란 말은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보면 아는 그런 말 중의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품격 또는 기품이 무엇인지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누구나 기품이 있는 사람을 알아본다.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보면 아는 그런 말은 그 말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를 생각하는 것이 이해가 빠르다.

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것보다 바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관계를 맺을 때
 뭔가 일이 잘못 돌아가는 것을 깨달았으면서도 스스로 문제를 만들지는 않았는지, 문제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는지 생각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핑계 만들기에 급급할 때
 자기 자신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지만 스스로 해야 할 일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때
 동료들을 못살게 굴거나 놀리고 별명을 부를 때
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을 때 끼어들거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지 않을 때
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주위 사람을 관찰할 때
 다른 사람의 업무성과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많지만 자신의 생각을 생산적으로 정교화하지는 못할 때
 일을 더 잘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현 상황의 부정적인 면에만 초점을 맞출 때
 동료의 성공을 시기하며 못마땅해하고 심지어 훔치려 할 때
 혼잣말을 할 때도 분노를 폭발하거나 고함을 지를 때
                                                                                               (브루스 툴간)

직장에서 흔히 보는 꼴불견이다. 이런 사람을 기품이 있다 품격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기품의 본질은 여유이기 때문이다. 기품은 강자의 여유이다. 세상 무엇도 자신을 흔들지 못한다는 자신감이다. 기품은 귀족을 말할 때 쓰는 말이었다. 귀족은 여유를 타고 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주역인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 모든 것이 처음부터 주어진 사람,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어서 아무 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기품은 제2의 천성이다.

“카이사르는 어머니의 애정을 한몸에 받으며 자랐다. 평생 동안 그를 특징지은 것은 하나는 아무리 절망적인 상태에 빠져도 유쾌한 기분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게 낙천적일 수 있었던 것은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나이에게 최초로 자부심을 심어주는 것은 어머니의 애정이다. 어릴 때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면, 자연히 자신감에 뒷받침된 균형감각을 얻게 된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는 적극성도 어느새 저절로 몸에 배게 된다.” (시오노 나나미)

카이사르는 모욕을 당해도 너그럽게 웃어넘기는 사람이었다. “분노나 복수는 상대를 자신과 대등하게 여기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고 일어날 수 있는 행위다. 카이사르가 평생 이것과 무관했던 것은 분노나 복수가 윤리 도덕에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우월성에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월한 자신이 왜 열등한 타인의 수 준으로 내려가서 그들과 똑같이 분노에 사로잡히거나 그들과 똑같이 복수심을 불태워야 하 는가.”(시오노 나나미) 정적을 가차 없이 제거했던 술라와 정적을 포용하고 관용을 베풀었던 카이사르는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었지만, 이 점에서는 양극단이었다. 후세 역사가 들은 이런 카이사르를 '진정한 귀족 정신의 소유자'라고 평한다.” 카이사르가 해적에게 잡혔던 이야기는 그 귀족정신의 본질을 보여준다.

“젊은 시절 해적에게 붙잡혔을 때 카이사르는 타고난 천성대로 해적을 마음껏 무시했고 이런 점은 오히려 해적들에게 큰 매력으로 작용했다. 이들은 제발 목숨만 살려달라고 빌며 공포에 빠진 포로는 익숙했지만 카이사르처럼 해적을 자신의 바쁜 일정을 잠시 방해하는 훼방꾼 이상으로 보지 않는 포로는 처음이었다. 카이사르는 자기 몸값이 겨우 20달란트(어마어마한 거액이었다)밖에 되지 않는다는데 모욕감을 느끼고 스스로 몸값을 50달란트(은화 30만냥)까지 올리기도 햇다. 카이사르는 동료 한 명과 노예 두명만 남기고 나머지 일행에게 몸값을 가져오게 햇다. 카이사르는 포로로 지내는 40여일 동안 해적과 어울려 식사를 했고 그들의 체력훈련에 동참하기도 했다. 시를 지어 들려주었다가 해적들이 시를 이해하지 못하면 천박하고 난폭한 야만인이라고 면박을 주기도 햇다. 이런저런 주문을 하기도 했고 잠자리에 들어서는 노예를 시켜 해적들에게 조용히 좀 하라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또 자신이 풀려나면 반드시 다시 돌아와 모두 책형에 처해 죽이고 말겠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하기도 햇다. 해적들은 이 대담한 젊은이를 무척 좋아햇고 몸값을 실은 배가 도착하자 아쉬움을 드러낼 정도였다. 카이사르는 떠들석하게 웃고 손을 흔들며 해적들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바로 배와 의용군을 징발해 해적들에게 돌아와 모두 체포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필립 프리먼)

그러면 더 이상 귀족이 없는 세상에서 기품은 어떤 의미인가? 기품은 타고나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질 수 잇다고 저자는 말한다.

“얼마 전 한 다큐 프로그램에서 본 91세 인어 할머니, 김화순 씨. 구부정한 허리, O자형 다리에 겨우 제 몸 가누기도 힘든 할머니다. 하지만 잠수복을 입고 뱃전에 서면 그 당당한 카리스마가 바다를 압도한다. 풍덩-. 홍합을 찾아 유연한 몸짓으로 헤엄쳐 내려간다. 누가 그를 91세 해녀라 할까. 이윽고 그물 가득 채워 배에 오른 늙은 해녀의 주름진 얼굴에 웃음이 피어난다. ‘오늘은 바다가 고바서…’ 바다가 잠잠해서 많이 땃단다. 속에서 우러나오는게 품격이라면 그리고 참 아름다움 속에서 피어오르는 내적 미가 품격이라면 저 늙은 해녀의 품격과 웃음을 누가 당하랴.”

문제는 그런 품격은 귀족으로 태어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이다. 돈으로 살 수도 없고 꾸밀 수도 없기 때문이다. “명품족을 지켜보노라면 아는 짓이 도대체 격이 없다. 큰 재산에도 베풀기는커녕, 오로지 내 것, 그리고 더 크고 화려한 것만 찾을 줄 알지 단아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모른다. 자기에게 맞지도 어울리지도 않는 걸 명품이라고 걸치고 다닌다. 졸부라 부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옹졸한 부자, 가짜 부자다.”

자신감이란 말이 어울릴 지위에 올라도 부를 쌓아도 명예를 얻어도 기품을 얻을 수 잇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기품은 얼마든지 스스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저자는 7가지 덕목을 ‘나열’한다: 절제, 포용, 배려, 정직, 신의, 배움.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가 보면 아는 ‘기품’이란 말을 분석해보면 그런 덕목을 보았을 때 말하는 것이니. 그러나 기품은 그 덕목들로 분해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기품이란 말을 할 때는 그 덕목들의 합 이상의 무엇을 말한다. 그렇지 않다면 기품이란 말을 쓸 이유가 없다.

“한국의 시위는 격렬하다. 길을 막는 건 예사고 유혈충돌, 방화, 투석, 보기만 해도 끔찍하다. 자기 회사 기물을 파괴, 불도 지른다. 구호부터 살벌하다. ‘결사쟁취’. 강한 의지를 보여줘야겠다는 의도이긴 하지만 합리적인 눈으로는 이해가 안된다.
‘목숨까지 걸다니…’
외국인 투자자가 발길을 돌리며 한 소리다. 그리곤 끝내 공장문을 닫게 된다.”

“1992년 LA에서 일어난 한국교포 상점 약탈 방화사건,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왜 한국인 상점만 당했을까? 그 옆에 중국, 일본 상점도 있는데 왜 하필 우리만 피해를 입었을까?

한국 교포들은 빈민촌에 슈퍼마켓을 열어 번 돈으로 벤츠를 타고 백인 동네에 산다. 땡볕에서 땀을 흘리며 길거리 농구를 하는 이웃 아이들에게 콜라 한병 주는 법이 없다. 유행이 지나 창고에 쌓인 신발 한 켤레 준 적이 없다. 거기가 내 삶의 터전인데 이웃 아이들에게 너무 인색햇다. 그 난리 통에도 평소 인정을 베풀었던 한인 상점은 아이들이 ‘이 집은 우리 친구야’라며 안전하게 지켜주엇다고 한다.”

저자가 절제, 배려란 덕목을 설명하면서 든 예이다. 저자가 이책에서 하려는 말은 그런 덕목 들 하나 하나를 몸에 배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이책에서 하는 말은 위에서 직장의 꼴불견을 나열한 것 이상은 아닌 것 같다. 물론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기품이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기품이 있다고 할 수도 없다. 그것이 이책의 한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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