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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생활 사나이 | 인문/사회/역사 2012-02-19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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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기다림의 칼

야마모토 시치헤이 저/박선영 역
21세기북스 | 201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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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해 저자가 내리는 판결은 간단하다: 재미없는 바른 생활 사나이.

 

사후 장례식이 치러지는 과정을 보면 육친이나 측근 외에 과연 그의 죽음을 애통하게 여긴 사람이 있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그는 정말 대중적인 인기가 없는 인물이엇다. 히데요시처럼 죽은 뒤에도 다이묘는 물론 서민들에게도 인기가 지속되는 현상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현상은 이에야스라는 인간을 고찰할 때 정말 흥미로운 문제다. 사람들은 분명히 그를 신뢰했다. 이에야스는 노부나가나 히데요시처럼 이치에 어긋나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

 

그는 분명 신뢰받는 지도자였다. 그러나 그 신뢰는 컴퓨터에 대한 신뢰와 마찬가지였다. 요즘 말로 하자면 그는 로봇 같이 완벽한사람으로 보였던 것같다. 예를 들어 히데요시의 헤픈 눈물을 보아 온 사람들은 인간같지 않은 이에야스의 눈물을 볼 수가 없었다.

 

죽음의 병상에 누웠을 때 아들 다테마루의 어머니가 그 죄를 용서해달고 애원하자이에야스는 눈물을 비췄을뿐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아들을 만나겠다고 하지 않았다. “정말 눈물을 닦을 정도로 울었던 적은 있었을까? 아마도 노신인 도리이 모토타다와 헤어질 때뿐이었으리라. 이에야스는 정말 냉혈인간으로 느껴지는 면이 있다. 따라서 사사로이 정에 빠지는일이 없었다. 그의 냉철함이 무엇보다 확실히 드러나는 부분은 여성과의 관계다. 이에야스가 사랑했다고 할만한 여인은 없었다. 여자 때문에 정치를 그르치는 일은 없었지만 남성으로서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다.”

 

그렇다고 이에야스가 아스퍼거 증후군이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사람의 정을 느끼고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자식에게 실망하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아버지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도 사람이니 때때로 감정이 격해지기도 했분노를 폭발시키는 일도 있어서 사실은 다혈질이 아니었을까생각되지만 강한 의지력으로 자신을 통제했다.권력을 쥔 이후에도 누부나가나 히데요시처럼 감정적이거나 잔혹한 행동은 하지 않앗다. 권력을 쥐면 3년만에 멍청이가 된다고 하고 또 많은 권력자들은 실제로 그런 모습을 보이지만 이에야스는 결코 냉정을 잃는 일이 없었다.”

 

그는 더불어 즐길 수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무엇에도 빠지는 법이 없었다. 폭음, 폭식은 물론 여자에게도 빠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금욕주의자도 아니니 한마디로 절제가라 할 수 있다. ‘술 때문에란 변명은 그에게 통하지 않았다. 식사도 마찬가지로 지나치지 않게 먹는 것을 최상으로 여겼고 과식은 의지가 약하기 때문으로 보앗다. 만사는 적당한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절연은 금연보다 어렵다고 하듯이 만사를 적당하게 절제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이에야스는 평범하지만 어려운 이 적당히를 평생 지속했다.

 

아무리 봐도 사람같지 않은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신뢰하지만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에야스가 스스로를 그렇게 몰아세운 것은 그의 모토가 주의와 경계였기 때문이다. 그런 이에야스를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말로 표현하며 이에야스는 어린 시절 인질 생활로 고난을 겪었고 그 경험이 훗날 그의 성격이나 삶에 큰 영향을 끼졌기 때문이라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저자는 묻는다.

 

실제 이에야스의 일생은 당시 다이묘의 삶으로서는 순탄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선 인질이라는 것도 당시의 인질은 현대의 인질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생명의 안전을 보장하고 우대해야 하는 동맹관계의 보증인인 경우도 있다. 그래서 당시에는 인질을 증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따라서 그 시대의 일반적인 정황에서는 인질이 되어 편안한 생활을 했다고 표현할 수는 있어도 적어도 고생을 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에야스를 인질로 받은 요시모토는 인질보다는 피후견인으로 돌봐주었고 이에야스는 유년 시절동안 미카와를 보존하고 동시에 자신을 보호해주고 양육해준 요시모토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었다고 인질로 있던 시절의 이에야스는 후대가 상상하는 만큼 불행하지 않았다.”

 

주의와 경계의 진짜 이유는 하극상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이에야스의 조부와 아버지는 부하에게 살해당했다. 당시에 그런 일은 흔했다. 그런 세상에서 믿을 것은 실력뿐이었고 그것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실력 즉 무력이었다.

 

이에야스가 유년기를 보낸 이마가와 가문은 센코쿠 시대에는 별천지였다. “전통적인 형식과 질서가 남아 있었다. 그곳에는 백성들이 귀인으로 받드는 명문가의 슈고가 있었고 교토 조정의 귀족인 구게(公家)와 혼인관계를 맺어 활발하게 교토 문화를 수입해으며 많은 구게들도 직접 이 지역으로 이주한 결과 이마가와 가문 자체가 상당히 귀족화되었다. 노부나가가 무시한 오가사와라류의 제례집이 이곳에서는 모든 질서의 기본이었고 귀족들이 즐겨 읊던 고전 시가인 와카나 상류층의 공놀이인 게마리(蹴鞠)도 유행했다. 귀족적인 문화에 휩쓸려 기개를 잃은 모습도 보였지만 동시에 하극상과 같은 살벌한 기운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에야스에게선 그 귀족문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그는 이마가와 가문을 반면교사로 생각했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미카와의 영주라는 자각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방의 소영주가 통치하는데 가장 필수적인 능력은 무력이었다. 개인적인 무술과 무공이 없다면 백성들을 다스릴 수도 지배권을 확립할 수도 없었다. 센고쿠 시대에는 당연히 개인적인 무공보다 전투 지휘 능려과 뛰어난 용병술이 높이 평가되었다. 그러나 전장에서 부하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려면 지휘관 자신의 개인적인 무력도 필요했다.” 지방의 소영주에 불과했던 이에야스의 출발점은 소부대의 최전선 지휘관이었다.”

 

개인적으로 뛰어난 무인이기도 했고 지휘관이기도 했던 이에야스는 스스로 훈련을 통해 무공을 닦았으며 무술훈련은 일종의 취미와 같았다.” 그러나 이마가와 가문에서 교육을 받았으면서도 한시나 와카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렌가나 다도에도 취미가 없었으며 춤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한 마디로 이런 교양 계통에는 모두 서툴렀다.” 물론 이에야스가 학문을 즐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에게 학문이란 당시 통용되던 한시에 능하고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학문은 정치학이고 군사학이었다.

 

영주로서 가장 필요한 능력은 휘하 토호들의 영지를 보장해주는 것(소령 안도)이었고 센코쿠 시대에 그 능력은 무력이었다. “따라서 센고쿠 시대의 장수에게 무력은 절대적이었다. 물론 무력과 동시에 모략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에야스의 생애를 살펴보면 모토나리처럼 하나의 모략에 이어 또 다른 모략을 세우거나 하지는 않았다. 늘 정정당당하게 대진해서 결전을 벌였다. 그는 그런 전투를 통해 승리를 얻지 못한다면 심복도 얻을 수 없다고 믿었고 그 신념은 틀리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아케치 미쓰히데가 잘못 생각한 점이다.그는 혼노 사에서 노부나가를 쓰러뜨렸지만 아무도 그 휘하로 달려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를 쓰러뜨리면 주도권을 쥘 수 있으므로 오히려 모두가 노리는 먹잇감이 되었다. 미쓰히데가 노부나가를 쓰러뜨린 것은 대규모 암살사건이었지 정정당당한 전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방식의 승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에야스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이에야스는 너구리 영감이라 통용된다. 이런 이미지는 히데요시가 죽은 후나 오사카 성 함락 후에 생긴 듯하다. 그전까지 이에야스는 의리의 사나이로 통했으며 센코구 무장치고는 분명히 의리파였다. 마음만 먹으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지만 그는 히데요시나 히데요리 모두 암살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는 명분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부나가가 쇼군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지만 죽이지 않고 정치적으로만 대결한 것과 같은 이유엿다.

 

노부나가의 천하포무는 히데요시에게도 이에야스에게도 적용된다. 말하자면 무력으로 천하를 통일하고 무력의 위압으로 정권 질서를 수립하는 일은 당시로서는 상식 이전에 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단지 무력으로 제압하려면 암살과 같은 잔꾀는 소용이 없었고 어디까지나 정정당당히 전투에서 승리하는 과시적 이벤트 효과가 필요했다. 이에야스가 천하라는 것은 스스로가 지닌 운명이 있어 인력이 미치는 곳이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단순한 운명론자라는 뜻은 아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전자으이 승패 또한 운명에 따른 ㄴ것, 따라서 천하를 손에 넣으냐 마느냐 또한 운명이라는 의미엿으리라.”

 

그런 이에야스였기에 상대방이 자신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면 깨끗하게 복종햇고 일단 따르기로 햇다면 그에 맞게 상대방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 그는 이마가와에 복종했으며 오다와의 동맹에서도 그의 지위는 좀더 특별대우를 받는 오다 가문의 무장에 지나지 않았다. 고마키-나가쿠테의 경우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종합적인 전력에서는 자신이 히데요시에게 뒤처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엇다. 히데요시와 이에야스는 대등하게 강화를 맺었지만 이에야스의 위치는 또다시 도요토미 정권 속에서 조금 특볋란 대우를 받는 일개 부장, 히데요시의 명에 복종하는 일개 제후였다. 그런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그로선 자기보다 약하면서도 자신을 따르려고 하지 않는 자는 이해할 수도 없었고 일종의 증오심마저 느꼈던 듯하다. 요도기미와 히데요리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에야스는 상대가 자신보다 강력하다고 판단하는 한 동요하지 않았다. 이에야스가 문제삼는 것은 오로지 무력뿐이엇다.”

 

그러나 그가 그런 신념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생애 대부분을 그다지 권모술수가 필요하지 않은 위치에 있었기때문이며 그의 적성이기도 했다고 저자는 본다. “그의 전투는 늘 평범하고 재미없는 정공법이었다. 그 때문인지 사람들의 인상에 남는 것은 세키가하라 전투와 오사카 전투 그리고 또 하나가 미카타가하라의 패전 정도다. 게다가 이런 전투에서 세운 무공의 대부분은 오다 노부나가의 그늘에 가려져 눈에 띄지 않았다.”

 

센고쿠 영주로서 이에야스는 특별하게 순탄했다. 그것은 그의 운이기도 했지만 주의와 경계란 그의 태도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센고쿠 시대라 하면 흔히 무법천지를 떠올린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기 쉬운 사건들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신겐은 아버지 노부토라를 추방했고 아들 요시노부를 죽였다.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잔혹하기 그지 없는 일이었지만 당시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었다. 노부나가도 모토나리도 자신의 동생을 죽였고 히데요시도 조카를 죽였다. 이에야스도 자신의 자식인 노부야스와 아내, 손녀 사위인 히데요리까지 죽였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권력층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사건이었고 일반인들까지 같은 상황이었던 것은 아니다. 백성들이 이런 짓을 했을 때는 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당연한 일이다. 민중들까지 무법천지에 빠진다면 가장 곤란한 것은 센고쿠다이묘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영내의 투쟁과 혼란은 호시탐탐 국경을 넘보는 이웃 지역에게 틈만 보일 뿐이다. 지배자들은 무력으로 대내외적으로 투쟁하면서도 영내에서는 가능한한 평온한 법치체제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이에야스가 인질 생활을 한 이마가와 가문이 좋은 예이다. “이마가와 가문도 당대에는 혁신적인 통치자였다.” 이에야스가 천하를 통일한 후 보여준 법치주의의 신념은 이마가와 가문에서 유년기를 보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것이 이마가와 가문의 인질로 있던 시절의 이에야스에게 미친 가장 큰 영향인지도 모른다.”

 

법치주의는 단지 이마가와 가문만의 것은 아니었다. 법치주의는 영지경영의 한 방법일 뿐이었다. 영지가 안정되어야 경제력이 생기고 무력을 유지하는 것은 경제력이다. 따라서 생산력 증강은 당시 센고쿠 무장들의 지상과제였으며 유능한 다이묘들은 모두 영내 개발에 힘을 쏟았다. 이런 점에서 센고쿠 시대는 경제성장과 기술개발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전제는 영내의 치안 유지엿고 이것이 방위의 기본이었다.”

 

만일 노부나가와 히데요시, 이에야스 세명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다면 이에야스는 미적 감각이 가장 떨어지고 번득이는 재능도 재치도 느낄 수 없는 인물일 것이다. 노부나가도 히데요시도 이에야스를 건실하고 의리 바르며 충실한 2인자로 취급했다. 만일 이에야스가 히데요시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면 역사가들은 히데요시가 만년에 가장 실력있는 신하를 잃어 큰타격을 입었다고 기록했을 것이다. 이에야스는 당시 사람들에게 다양한 측면에서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그렇다면 이런 재능을 싹틔우고 자라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가?

 

우선 이에야스는 가이도 제일의 활잡이로 전투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뛰어난 지휘자였다. 이에야스가 자신의 무용을 자랑하지는 않았지만 남들이 스스로 이에야스의 무공과 지휘 능력에 고개를 숙였다. 다음은 통치력과 부하들을 이끄는 통솔력이다. 이는 속전속결로 이루어진 간토 영지 이동과 또 새로운 봉지에서 일사천리로 진행된 지배권 확립과정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세번째가 그의 재정능력이다. 노부나가와 히데요시, 이에야스 세사람 중에서 이에야스는 화려한 것을 싫어했으며 가장 검소했다. 구두쇠나 다름없었지만 세사람 중에서 재정능력이 가장 뛰어난 자는 이에야스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능력을 키운 바탕이 바로 그의 학문이었다.”

 

그리고 이에야스의 능력에는 정략도 포함된다. 무장으로서 이에야스는 정공법을 선호했다. 그것은 모략으로 이기는 것은 이긴 것이 아니라는 그의 판단이기도 했고 그의 위치가 그리 모략을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당대 센고쿠다이묘들처럼 모략을 쓸 줄 몰랐던 것이 아니다. 단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 뿐이다. 그러나 전쟁은 정치의 수단이다. 그가 전쟁을 수단으로 선택할 수 있는 정치가가 되었을 때 그에겐 다른 능력이 있어야 했다. 무장의 전쟁과 정치가의 전쟁은 다르며 이에야스가 무장으로서 싸웠던 전투와 그가 정치가로서 싸웠던 전투는 다르다. 이에야스 정권의 미래가 걸려있었던 세키가하라가 “‘작전의 전투가 아니라 정략의 전투’”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눈앞에서 승부가 결정되는 전투와 정치는 다르다. 정치는 정책이란 결과를 낳는 일이지만 정책이란 결과를 얻기 위해선 권력을 얻고 유지해야 한다.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 일은 소모적인 일이다. 그러나 그런 소모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정책을 실현할 수 없다. 그 소모적인 일을 정략이라 한다.

 

모스카가 말하듯 권력을 지향하지 않으면 권력을 얻거나 행사할 수 없다. 그러므로 권력욕이 없는 자는 통치력이 없다는. 권력욕이 없는 자를 통치자로 삼고 싶다. 민중의 꿈은 말 그대로 꿈이다.” 그리고 (다른 리뷰에서 다루었듯이) 그것이 유교의 성왕론이 허구일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모스카는 능력있는 정치가란 정책적 능력과 정략적 능력을 함께 갖춘 사람이라 했다. 또한 유감스럽게도 그런 인간은 극히 드물며 만일 그런 정치가를 가진 국민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라 햇다. 그의 기준으로 보면 이에야스는 정책능력과 정략능력을 함께 갖춘 희귀한 정치가였다. 이에야스가 정략가로서 유능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점만 지나치게 부각해서 그를 너구리 영감으로 평가한다면 정책가로서 그가 보여준 탁월한 재능을 간과할 수 있다. 그저 모략만 뛰어난 너구리 영감이 267년이나 이어지는 도쿠가와 막부의 평화체제를 수립할 수 있었겠는가. 이에야스는 아시카가 말기부터 오다와 도요토미 시대를 거치면서 천하의 백성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잘 알고 있었다. 또 그 바람으로 정책적으로 실현하는 수단과 능력을 지녔다. 사람들의 바람은 한 마디로 전쟁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평화로운 법치체제 아래서 생존할 권리를 보장해달라였다. 그리고 이에야스가 실현한 사회는 결국 모든 사람들이 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고 법치제도 아래에서 사적인 권력 생사를 제한하며 보수적인 질서가 형성된 사회였다.”

 

물론 천하의 바람을 실현하는 것은 그 자신과 가문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야스토키나 이에야스나 모두 근본을 따지자면 모두 현지에서 세력을 키운 관리이거나 혹은 지방의 호족 출신으로 하극상을 통해 천하를 손에 넣은 자들이다. 이 하극상의 권력자가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것은 후계자가 나타나 자신이 그랫듯이 하극상을 일으켜 자신을 쓰러트리는 일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자기 대에서 하극상ㅇ르 끝내고 이후로는 자신의 통치 아래 질서있고 영속적인 법치사회를 만들고 싶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노부나가의 노선을 따를 수 없었다.

 

노부나가는 天下爲公이란 비전을 위해 살았던 이상주의자였다. 자신의 가문을 위해서도 아니엇고 자신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그린 이상에 따라 세상을 디자인하기 위해 살았다. 그가 그렸던 천하에는 온세상을 불태우는 다이묘들의 자리는 없었다. 그렇기에 얼마든지 쇼군이 될 수 있었으면서 쇼군이 되지 않았다. “’’시바 료타료는 노부나가가 봉건제를 배제하고 중앙집권제를 수립했을 것이라 예측했다. 사실 그런 시각에서 노부나가의 행동을 살피면 히데요시와의 차이점을 알 수 있다. 노부나가는 다이묘 절멸 작전을 시행해 센코구다이묘들의 가문을 잇달아 멸망시켰다. 확실이 전쟁으로 획득한 영토는 일단 부하에게 하사하지만 대대로 소유권을 보장하지 않으며 상속권도 인정하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명령을 내려 빼앗고 다른 영지를 준다. 그 지위를 유지한다면 다이묘지만 파면된다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히데요시는 내심 이런 정책에 비판적이었다. 왜냐하면 다이묘들이 항거한다면 스스로가 곤란한 입장에 처하기 때문이다. 그는 오히려 반대정책을 폈다. ‘본령 안도를 미끼로 상대방의 전의를 꺽고 항복시켰으며 그 대가로 자신의 부하로 이용했다. 히데요시의 방식은 학실히 능률적이며 센고쿠의 통합이라는 점에서보면 가장 희생도 적고 손쉽다.”

 

이에야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에야스는 당시 다이묘, 특히 히데요시의 은혜를 입은 장수들로 불리는 신흥 중소제후의 심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한마디로 히데요시 님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출세를 하고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얻었다. 동시에 오랜 전란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이제는 오로지 손에 넣은 것을 보존하고 유지하면서 누군가가 일가의 안전을 보장해주기만을 바랐다.” 히데요시 사후 2인자인 이에야스에게 자연스럽게 힘이 모아진 이유이다.

 

그러나 이에야스는 히데요시 시스템의 문제를 잘 알고 있었고 언제 자신의 위치가 뒤집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렸다. 사람을 끄는 강한 매력이 있었던 히데요시와 달리 이에야스는 인기가 없었다. “이에야스의 명성은 천하를 제압했지만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그가 두려워 굴복했을 ㅃ누 좋아서 따른 것은 아니었다. 이에야스는 특히 인간미나 유머 감각, 장난기, 그리고 상대에 대한 서비스 정신이 부족햇다. 히데요시라면 현대 서비스 업계에서도 최고경영자로 당당히 성공했을 인물이지만 이에야스라면 불가능햇을 것이다. 이에야스는 평생 놀이도 모르고 장난기도 없었다. 반면 히데요시는 늘 유머러스하고 흥겨웠다. 그러나 이에야스는 항상 빈틈없고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인기가 없는게 당연하지만 그 자신도 인기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는 얄미울 정도로 자율적인 인간이었다. 이에야스는 사람들이 신뢰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경우너시하게 되는 타입이었다. 도요토미 가문은 대체적으로 관대했지만 이에야스가 천하를 손에 넣으면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시대가 올거라고 사람들도 예감했다. 물론 센고쿠의 혼란이야 지긋지긋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속에서 맛보았던 자유는 읽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센고쿠다이묘들이 원한 것은 신중하고 온화하고 관용적인지도자, 즉 전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면서도 자신들을 일일이 간섭도 않고 소령 몰수도 않는 지도자 고도의 자치권과 자주성을 인정해주고 자신들이 영지 내에서 왕처럼 ㅅ행세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지도자엿다ㅣ. 배부른 소리다.”

 

센고쿠 시대의 자유는 피가 없이는 불가능한 자유였다. “누구나 원한다면 싸워서 이긴다면 그리고 적을 죽여 없앤다면 최고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는 시대엿으며 어느 사회나 존재하는 계급의 차이가 완전히 무시된 시대였다. 그점 만을 평가한다면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시대였다.”

 

비천한 농민에서 지존까지 올라선 히데요시는 이 혁명의 시대의 총아였다. 히데요시 정권은 센고쿠 시대란 하극상 사회의 결정체였다. 그러나 그 혁명은 혁명을 가능하게 했던 조건인 자유를 지워버려야만 가능하다. 히데요시의 기적은 사람들에게 자유와 혁명이 공존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줄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 환상을 줄 수 없는 이에야스는 항상 비교당해야만 했다. 특별하게 이에야스를 싫어하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많은 다이묘들이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반대쪽에 섰고 서고 나서도 미지근하게 싸운 것은 그런 이유였다. 그러니 이에야스가 자신의 체제가 오래 갈 것이라 생각하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붉은 여왕의 체스판서 달리는 것처럼 제자리에 머물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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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부메랑

마이클 루이스 저/김정수 역
비즈니스북스 | 201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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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집은 고만고만하게 행복하지만 불행한 집은 가지가지로 불행하다' 안나 카레리나의 첫구절이다. 톨스토이의 말처럼 이책이 다루는 불행한 나라들의 모습은 가지가지이다.

 

아이슬란드, 그리스, 아일랜드 그리고 미국의 지자체들, 이책이 다루는 나라들은 모두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앙지들이다. 금융위기라는 불행은 언제나 부채의 문제이다.

 

국가든 개인이든 은행이든 간에 부책 누적을 통한 과도한 외부 자본의 유입은 곧 금융위기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과다한 부채 자금의 유입은 때때로 경제성장과 호황의 혜택보다 더욱 큰 체계적 위험을 불러온다. 민간부문에서 부채가 과다하게 차입될 경우 주택과 주식의 가격은 장기적 균형안정 수준 이상으로 크게 부풀 것이며 은행들은 자신들이 가진 생산 능력보다 안정성과 수익성이 높다고 착각할 것이다. 특히 과도하게 차입한 부채는 신뢰의 위기를 가져오고 경제를 취약하게 만들기 때문에 금융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부채의 과다 차입을 통한 경기 호황은 정부의 정책 의사결정에 그릇된 확신을 심어줄 뿐만 아니라 금융기관의 수익 뻥튀기와 국민생활의 수준이 향상됐다는 착시현상을 유발한다. 이러한 경기호황은 대부분으로 불행으로 막을 내린다.” (케네스 르고프, 카르멘 라인하트) 이책이 다루는 나라들의 모습은 이렇게 요약된다.

 

금융위기는 언제나 똑같다. ‘이번엔 다르다는 말로 시작하지만 결국 이전의 위기와 다르지 않은 과정을 거쳐 다르지 않은 결말로 끝나게 마련이다. 이번 금융위기도 다를 것이 없다. 언제나 탐욕으로 시작해 탐욕에 대한 징벌로 끝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탐욕의 이유는 제각각이다.

 

이책이 다루는 나라들의 탐욕은 두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전통적인 자산 거품이다. 아이슬란드와 아일랜드의 경우인데 자산거품의 과정은 언제나 동일하다. 그 과정을 소로스는 이렇게 정리한다.

 

1.     시장 참여자들이 트렌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이 같은 관심으로 인해 트렌드 자체와 그에 대한 해석이 모두 심화된다. 이 해석에는 인식의 오류가 수반되낟.

2.     어떤 이유에서든 트렌드가 중단될 수 있는데 이 경우 인식의 오류에 위협이 된다. 인식의 오류가 시험을 통과하지 못할 경우 버블은 확대되지 않는다. 그러나 트렌드가 중단되어도 인식의 오류가 계속 존재하게 된다면 트렌드와 인식의 오류는 더욱 힘을 얻는다.

3.     참여자들의 인식이 점차 기저현실과 동떨어지게 되어 참여자들이 서서히 모순을 인식하게 된다. 마침내 확신하는 참여자들보다 회의적인 참여자들이 많아져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에 이르게 되낟.

4.     진실이 밝혀지기 직전에는 관성으로 인해 잠시 동안은 트렌드가 지속될 수 있다.

5.     그럼에도 트렌드가 역전되는 순간은 오기 마련이다.

6.     그런 다음에는 불신이 만연해 트렌드가 반대방향으로 강화된다.

7.     어떤 형태이든 항상 신용이나 레버리지가 존재하므로 버블은 비대칭적 형태로 발전하여 서서히 확대되다 급격히 붕괴하며 결국 사라진다.

8.     이러한 과정을 형성하는 다양한 단계들은 그 순서만 사전에 정해져 잇다. 버블의 규모와 지속 기간은 예측할 수 없으며 어느 단계에서든 중단될 수 있다. 버블이 최대규모로 확대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모든 버블의 형태는 똑같다. 단지 그 버블의 내용, 즉 트렌드가 가지가지일 뿐이다. 이책이 다루는 아이슬랜드와 아일랜드는 금융자산과 부동산이란 내용이 달랐을 뿐 버블을 키우고 버블을 터트린 사람들의 탐욕과 무지, 공포는 다를 것이 없었다. 그리고 탐욕의 결과는 사회화되어 국가를 파산으로 몰아갔다.

 

그러나 이책이 다루는 그리스와 미국 지자체의 경우는 다르다. 부채로 인한 금융위기이고 그 부채를 부른 것이 탐욕이라는 점에서도 같지만 그 내용은 경제학의 대상이 아닌 정치경제학의 대상이다.

 

그리스와 미국의 지자체들이 공식적인 파산만 기다리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세입보다 세출이 많은 재정구조 때문이다. 재정구조가 그렇게 이유는 정치경제학에서 말하는 rent-seeking politics 때문이다. 정치를 돈의 관점에서 보면 결국 분배의 문제이다. 국가의 자원을 누가 더 많이 가져가는가를 결정하는 것이 정치란 말이다. 그 과정이 공평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불공평이 과도할 때가 문제이다.

 

그리스인은 일단 불이 꺼지자 캄캄한 어둠 속에서 정부를 어마어마한 돈 보따리로 만들어 가급적 많은 시민들에게 한몫씩 안겨주고 싶어했다. 물론 정부를 돈 보따리로 만든 것은 막대한 대출자금이었다. 그리고 지난 12년동안 그리스의 공공부문 실질 임금은 두배나 올랐다. 이는 공무원들이 챙기는 뇌물은 계산에 넣지 않은 수치다. 그리스 공무원의 평균 임금은 민간부분의 거의 세배나 된다.” 미국 지자체들이 빚더미에 올라선 이유와 마찬가지로 그리스가 빚더미에 올라선 이유는 선심성 지출과 약속을 남발해 표를 사고 모자라는 돈은 부채로 채웠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렇게 뿌려대는 돈이 비생산적인 곳에 낭비된다는 것이며 너도나도 국가를 터는 rent-seeking politics을 맊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세금이라도 제대로 들어온다면 그나마 문제가 아니지만 그리스는 온 국민이 탈세범인 나라라는 문제가 있다. “세금을 내는 그리스인은 납세를 피할 수 없는 사람들, 즉 급여에서 세금을 공제당하는 샐러리맨뿐이다. 의사에서부터 가판대 운영자까지 자영업자들은 갖은 속임수로 거액의 탈세를 일삼았다. 이는 그리스가 모든 유럽국가들 중 자영업자 비율이 가장 높은 결정적인 이유기도 하다. 세무원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런 것이 문화적인 특징이 되어버렸어요. 그리스인은 세금 내는 법을 배우지 못햇습니다. 세금을 내지 않아도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이죠. 이제까지 탈세로 처벌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리스인의 탈세 규모와 범위는 정말 놀라었다. 그리스 의사들 중 약 2/3 1년 소득을 12000유로( 1700만원) 미만으로 신고했다 12000유로 미만은 과세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을 집행하면 그리스의 모든 의사가 감옥에 갈 겁니다.’ 그리스 경제에서 소득세 대상 중 30-40%는 공식적으로 신고를 하지 않는다. 반면 유럽의 다른 국가들은 이 비율이 평균 약 18%에 지나지 않는다. 소득에 대한 조직적인 속임수 때문에 탈세가 어려운 세금 즉 부동산세와 판매세에 대한 정부의 의존도는 점점 높아졌다. 그러자 그리스 시민들은 매매가 이루어진 가격대로 보고하지 않고 허위가격을 보고하는 방법으로 그 문제에 대응했다.” 사회적 자본 또는 신뢰가 낮은 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책에서 마지막으로 다루는 미국 지자체 역시 비슷한 이유 때문에 파산에 직면해 있다. 이 경우엔 공무원들의 집단 이기주의 때문이란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그에 대해선 로저 로웬스타인의 복지전쟁을 볼 것을 권한다. 이책에선 그 책에서 다루지 않는 캘리포니아 주를 전 주지사 아놀드 슈워츠제네거의 임기를 조명하면서 다룬다는 점이 색다르지만 전체적인 프로세스는 복지전쟁이 더 잘 되어 있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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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진리도 없는 유쾌한 세상 | 인문/사회/역사 2012-02-19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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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

다니엘 에버렛 저/윤영삼 역
꾸리에북스 | 201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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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피다한 마을에 들어론 가장 중요한 이유가 이제 아무 의미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내 삶의 여정에서 최고의 목표로 삼았던 하나니므이 복음은 피다한 문화와 전혀 맞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선교사로 아마존의 피다한 사람들을 만났던 저자가 30여년을 그들과 보낸 후에 내린 결론이다.

 

나는 스물여섯 살에 피다한 마을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은 경로혜택을 받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젊음을 바친 셈이다.” 그러나 그가 그런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게 된 이유는 이렇다. “’사람들을 구원하려면 그들의 삶에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인식을 심어줘라.’ 자신의 삶에 무엇인가 심각하게 모자란다는 인식을 하지 않는 한, 신이나 구원과 같은 새로운 믿음을 받아들일 확률은 낮다.” 예를 들어 저자는 선교사들이 하는 방법대로 자신이 왜 예수를 받아들이게 되었는가 피다한 사람들에게 간증을 했다. 그러나 이야기를 마치고 나자 피다한 사람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황당한 반응이었다. 아니 신경질 나는 반응이었다. 이전에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는 하나같이 깊은 감명을 받고는 ! 주여! 하나님 감사합니다!’ 같은 말을 연발했기 때문이다.

왜 웃어?’

네 엄마가 자살햇다고? 우하하! 참 바보같다. 피다한 사람들은 자살하지 않아.’

그들은 아무런 감동도 받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살을 했다는 사실이 피다한 사람들에게는 신을 믿어야 하는 이유가 전혀 되지 못했다. 아니 이것은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만 낳았다.”

 

피다한 사람들에게는 우울, 스트레스, 만성피로, 심한 불안, 공황발작 등 오늘날 산업화된 사회에서 우리가 겪는 심리적 질환의 기미를 전혀 찾을 수 없다. 우리와 같은 사회적, 경제적 압박이 없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피다한 사람들은 카드결제일에 쫓기거나 자식의 대학입학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말라리아, 바이러스, 세균감염, 리슈마니아 병과 같은 자칫 생명을 잃을 수 있은 질병의 위험이 늘 도사린다. 나에게는 일생에 있어 특별한 경우에만 겪는 그러한 고난을 피다한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겪는다. 아니 그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고난은 내가 아주 특별할 때 겪는 경우보다 훨ㅆ니 나빳다. 이들은 어른 아이 할 것없이 가족이 죽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다. 피다한 사람들이 기대하는 수명은 서양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의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이들은 이러한 차이를 알지 못한다. 피다한 사람들의 인식에 비춰보면 특히 미국인들의 삶의 의지는 욕심에 가깝다. 또한 이들은 가족을 위해 매일 먹을거리를 구해와야 한다. 이들의 장례식에는 이웃은 물론 가족도 모이지 않는다. 엄마가 죽어도 아이가 죽어도 남편이 죽어도 사냥을 하고 낚시를 하고 먹을 거리를 찾아다녀야 한다. 누구도 이 일을 대신해 줄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 해서 삶은 관대함을 베풀지 않는다. 그리고 이따금씩 이방인들이 침입하여 이들을 폭력적으로 위협하기도 한다.

 

우리가 산업화된 사회에서 살기 땝문에 심리적 압박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편협하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일 뿐이다. 피다한 마을에서 나는 그들보다 훨씬 더 편하게 생활하면서도 여전히 늘 짜증응ㄹ 내고 신경질을 부렸다. 똑 같은 일을 하면서도 나는 짜증을 냈지만 그들은 언제나 즐겁고 유쾌했다. 이들이 불안이나 걱정을 느낀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나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아니 피다한 말에는 걱정이라는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MIT 뇌인지과학부 연구원들이 피다한 마을을 방문하여 그들을 검사하고 나서 자신들이 지금까지 조사한 사람들 중에서 피다한 사람들이 가장 행복한 사람들로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러한 판단의 바탕이 된 지표는 여러 가지이다. 그 중 하나는 피다한 사람들의 평균적인 웃는 시간을 측정하여 이 수치를 이전에 측정한 다른 집단의 수치와 비교하는 것이다. 연구원들은 앞으로도 피다한 사람들을 이길만한 집단은 나타나지 않을 것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30여년동안 나는 20여개 아마존 원주민을을 찾아다니며 연구해왔는데 피다한 사람들만큼 유쾌하고 명랑한 사람들은 어디서도 볼 수 없었다. 애석하게도 다른 원주민들은 대부분 부루퉁하고 수줍어했다. 피다한 사람들과 달리 전통적인 문화의 자율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와 외부세계의 발달한 문명을 누리고 싶어하는 욕구 사이에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피다한 사람들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만족을 느낄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행복하고 만족을 아는 이유는 그들이 전형적인 수렵채취인들이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피다한 사람들은 (스티브 테일러가 말하는) 자아폭발을 겪지 않은 조상이나 수렵채집인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수렵채집인들은 어느 정도의 노동분화를 이루고 정주생활을 했지만 물질적인 재화를 축정하거나 지위와 권력을 얻으려 집착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그들 내면에 이러한 것들을 얻는 대가로 치러야 할 필요가 있는 근본적인 불행은 없었다는 점을 시사한다(그 대가인 정신적 불화에 대해선 자아폭발리뷰 참조) 바꿔 말하면 그들은 우리만큼 정신적 불화로 고통 받지 않았다. 이러한 문화에서는 그 이후에 등장하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 문화의 큰 특징인 죄와 억갑, 그리고 고통의 분위기가 전혀 없는 것같다. 그들에게는 그 대신 명랑하고 즐거운 분위기와 인생에 대한 신성함 그리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분위기가 있어서 그들이 정신적 불화로 고통받았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이러한 태도는 수렵채집인들과 단순원예인들의 종교생활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들과 그 뒤에 나타나는 사람들 간의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은 그들에게는 종교와 생활이 분리되는 일이 없었으며 신이 실생활과 분리된 동떨진 존재라는 생각은 분명히 없었다. 그들에게는 신이나 영은 어디에나 무엇에나 존재했다. 이는 분명히 이 사감들이 자연을 그토록 깊이 숭배하도록 만든 부분적인 이유였다. 높은 곳에서 세상을 굽어보며 만사를 관할한다는 신들에 대한 관념이 그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를 가졌을지는 의심스럽다.” (스티브 테일러) 이런 태도는 피다한 사람들의 종교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들은 영을 실제로 본다고 말한다.

 

! 저기 히가가이 신령이야!’

그래 보여 우릴 위협하고 있어.’

모두 와서 봐봐 빨리! 히가가이가 강변에 나타났어!’

나는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실제로 들리는 소리인지 꿈에서 들은 소리인지 분명치 않았다. 건기가 한창인 8월의 어느 토요일 아침 6 30. 해가 눈부시게 빛났지만 아직 뜨겁지는 않았다. 피다한 사람들의 고함소리, 웅성대는 소리에 잠을 깬 나는 곧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 앉았다. 밖을 내다보니 우리 집에서 6미터 정도 떨어진 강둑에 사람들이 모여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며 소리를 질렀다. 모두들 우리 집을 등지고 강 건너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저기 안 보여? 구름 위에 사는 히가가이가 저쪽 강가에 서서 우릴 보고 소리치고 있잖아. 정글에 들어가면 우릴 죽이겠다고.’

어디? 난 안 보이는데?’

저기 있잖아!’

꼬호이는 짧게 내뱉고는 건너편 강변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저 강 뒤에 있는 정글 말이야?’

아니, 강변 모래밭에 잇잖아! 안보여?’

그는 화를 내듯이 버럭 소릴 질렀다. 정글에 들어가면 피다한 사람들 눈에는 보이는 것들이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야생생활이 익숙하지 않은 나는 그들이 보는 것만큼 많은 것을 보지는 못햇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100미터도 되지 않는 강 건너편에 하얗게 펼쳐진 모래밭 위에는 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내가 아무 것도 없다고 확신하는 만큼 피다한 사람들은 거기 무엇인가 있다고 확신했다.”

 

피다한 사람들이 집단착란을 일으켰을리는 없다. 그들은 분명 무엇을 보았지만 저자는 그것을 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우뇌의 활용도에 있지 않을가 싶다. ‘긍정의 뇌의 저자가 보여주는 우뇌만의 인식은 우리의 일상적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이다. 자아폭발을 겪지 않은 사람들은 우뇌의 활용도가 더 높고 긍정의 뇌에서 묘사되는 인식을 하는 것을 보인다. “나무들과 바위들 그리고 산들이 살아 잇게 만드는 것은 영적인 힘이 그것들 내부를 통하여 흐르기 때문이다. 모든 원주민들은 이 영적인 힘이라는 용어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아메리카 호피족은 마사우로 라코타족은 와칸탄카로 포니족은 티라와, 아마존의 우파니아족은 푸파카로 각각 부럴ㅆ다. 폴리네시아에서는 그것을 마나라고 불렀으며 뉴기니 일부 지역엣6j는 이무누라고 불렸다. 이 힘은 세상을 굽어보고 인간이 도움을 구하며 숭배하는 인간적인 존재의 신성함이 아니다. 그것은 인격도 없고 성별도 없다. 그것은 관념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실재하는 어떤 원천으로부터 나오는 내재하는 힘이며 지성이다.” 그힘은 실재로 볼 수 있는 것이었고 피다한 사람들이 토요일 아침에 본 것은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신성은 믿음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어이, 다니엘, 예수는 어떻게 생겼어? 우리처럼 피부색이 까매? 아니면 너처럼 하얘?’

음 난 실제로 그를 보지 못햇어. 그는 아주 오래 전에 살았어. 하지만 그가 한 말은 알아.’

그럼 다니엘, 네가 그 사람을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는데 그가 한 말은 어떻게 알아?’

네가 예수를 실제로 보지 못했다면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어떠한 이야기를 해도 피다한 사람드르이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모든 게 끝이다. 피다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직접 본 것만 믿는다는 사실을 그때는 아직 잘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믿기도 했지만 그것도 말하는 사람이 직접 본 경우에만 그러했다.”

 

저자는 이것이 피다한 문화의 대원칙이라 보며 경험의 직접성원칙이라 부른다.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면 어떠한 것도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직접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남아잇지 않은, 아주 오래된 과거의 이야기에 기초하여 선교해야 하는 기독교의 교리가 이들에게 쉽게 스며들지 않는 까닭이다. 이것이 바로 그토록 오랜 세월 선교사들의 끊임없는 공격에도 저항할 수 있었던 힘이다. 증거를 요구하는 이들의 문화에서는 그 흔한 창조신화조차 설 자리가 없지 않았던가.”

 

경험의 직접성 원칙은 자아폭발을 겪지 않은 사람들의 문화에 특징적인 시간의식의 한 형태라 보여진다. 예를 들어 애버리진의 수백가지 언어들 가운데 시간에 해당하는 단어는 없으며 애버리진에게는 시간이라는 개념도 없다. 그리고 애번스프리처드는 누에르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누에르인들의 시간에 대한 관점은 매우 짧은 기간으로 한정된다. 어떤 면에서는 그들은 대부분의 원시사회들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유럽적인 의미에서의 시간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 그들에게는 낭비되거나 절약되거나 추상적인 것으로써 시간에 대한 개념이 없다.’ 우리가 미래와 과거에 집착하여 현재로부터 멀어지는 반면, 그들에게는 현재가 유일한 사실이다. 홀이 설명한 대로 나바호족에게는 미래는 비사실적인 동시에 불확실하였으며 그들은 미래의보상에는 관심이 없었고 동기부여를 받지도 않았다. 아프리카의 하즈다족과 음부티족은 절대로 과거에 대하여 말하지 않으며 역사라는 개념조차 없다.” (스티브 테일러)

 

스티브 테일러와 켄 윌버는 선형 시간 개념의 발달을 타락한자아의식의 등장과 연계시켰다. 그는 그것을 자아의식이 가져온 죽음에 대한 더 크나큰 인식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당신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더 잘 알게 된다는 것은 잠재적인 부재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기로 죽음에 대하여 더 잘 알게 되는 것은 죽음의 공포도 더 켜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윌버에 따르면 최초의 타락한 정신은 그 자신은 죽지 않을 것이며 정신이 육체를 벗어던진 다음에는 영원한 선형의 시간이 정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스스로 설득함으로써 죽음의 공포를 처리하엿다. 그러므로 선형 시간 인식의 발달은 타락한 내세 개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우리의 조상들은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고 믿었으며 이를 위해 시간을 선형으로 상상해야만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죽음에 대한 인지가 더욱 심화되면서 자아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 자신을 선형으로 꾸준히 진행되는 시간의 세상에 풀어놓음으로써 자아의 본질적으로 채워지지 않고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은 영원히 앞으로 나아갈 여지가 생겼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중요한 내용은 과거와 미래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현재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현재에 있는 동안에만 미래와 과거에 대한 생각을 갖는다. 오ㅜ리는 현재 이전에 우리에게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기억하며 현재 이후에는 무엇이 일어날 것인지를 기대한다. 선형 시간은 관면에 의하여 생각함에 의해 창조된다. 타락하지 않은 사람들은 선형 시간 감각이 없다. 단순히 그들의 마음이 우리 마음처럼 관념저그올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들이 마음이 과거를 기억해내고 미래를 기획하느라 끊임없이 재잘거리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와 과거는 그들에게는 별로 관련이 없다.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선형 시간 인식은 고도의 추상화 또는 쉬지 않느 생각의 수다가 우리 정신의 한 특징이 되었을 때 발달하였다.” (스티브 테일러)

 

피다한 사람들에게도 선형 시간 의식이 없다. 그들에겐 오로지 현재만이 있다. “밭을 일구고 마니옥을 심는 것은 사실 피다한 사람들의 전통이 아니다. 내가 오기 몇 년전 스티브 쉘던이 힘겹게 이들에게 가르쳐주고 간 것이다. 밭을 갈기 위해서는 괭이 같은 도구를 외부에서 들여와야만 한다. 그런 도구를 얻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이렇게 중요한 도구들을 피다한 사람들은 전혀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새로 거래하여 얻은 도구를 아무데나 버려두기도 하고 때로는 강물에 던져버리기도 한다. 심지어는 브라질 상인들이 가지고 온 먹을거리와 밭가는 도구를 바꿔버리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할 때 피다한 사람들의 문화적 패턴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음식을 보존하지 않는다. 도구를 소홀히 여긴다. 한번 쓰고 버릴 바구니만 만든다. 이것은 바로 이들의 문화에 미래에 대한 관심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분명 게으름과는 다르다. 피다한 사람들은 아주 부지런히 일하기 때문이다.”

 

추상화란, 구체적인 것에서 구체성이 없는,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을 만드는 추상화는 무한을 전제한다. 지금 여기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적용될 수 있다는 전제가 없으면 개념이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란 특수함을 넘어 언제 어디서나란 보편성의 극한인 무한은 선형적 시간을 전제하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다. 시간축이 과거와 미래로 제한없이 뻗어나가고 공간축 역시 그러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기 전에는 무한이란 성립하지 않는다. 무한에 의해 가능한 사고방식의 대표적인 예는 수학이다.

 

피다한 말에는 수를 세는 말이 전혀 없다. 처음에는 나는 피다한 말에 하나, 둘 많다 정도는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세가지 숫자만 있는 문명은 지구상에 많다. 그러나 피다한 말은 실제로 숫자가 없다. 모두, 각각, 온통과 같은 수량형용사도 없다그것은 단순히 그런 단어가 없다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에겐 숫자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손가락은 물론 어떠한 신체부위도 물건의 수를 세는 데 사용하지 않았다.” 숫자란 개념이 없으니 이들도 불편을 겪었다. “이들은 브라질 상인들이 가지고 다니는 돈을 이해할 줄 몰라 불리한 거래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일을 방지하고 또 항의하기 위해서 숫자와 셈을 배우고 싶어했다. 뽀르뚜갈 말로 10까지 세는 법을 가르쳤다. 하지만 자신들이 먼저 원해서 열정적으로 시작된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스스로 숫자를 배울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는 수업은 끝이 났다. 8개월동안 어느 한 사람도 10까지 세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3+1은 물론 1+1을 배운 사람도 전무하다. 1+1의 답을 2라고 어쩌다 한번 대답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일관되게 그렇게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저자는 그 이유를 경험의 직접성 원칙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들에겐 색깔을 나타내는 어휘도 없기 때문이다. “숫자란 구체적인 대상에서 직접적으로 느씰 수 잇는 속성이라기보다는 보편적이며 산술적인 속성을 공유하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색깔도 마찬가지이다. 색깔 또한 가시광선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인위적으로 경계를 나누고 이를 보편화하는 작업을 통해 성립한다.”

 

숫자가 없고 색깔을 없는 이유는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피다한 사람들은 오래된 과거나 아주 먼 미래, 또는 허구적 내용과 같이 경험하지 못한 사건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숫자를 세고 계산을 하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경험을 넘어서 보편적으로 개념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경험을 넘어서는 추상화 작업은 경험의 직접성 원칙을 위반하기 때문에 그들의 말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또한 경험의 직접성이라는 원칙으로 설명할 수 잇는 또 다른 사실을 찾아냈다. 피다한 사람들은 음식을 저장하지 않으며 오늘 하루 이상의 시간에 대해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또한 먼 미래나 먼 과거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들은 바로 지금’, 그러니까 직접적인 경험에 초점을 만춘 결과로 여겨졌다. 피다한 사람들에게 역사, 창조신화, 민담 같은 것들이 없는 것도 경험의 직접성 원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

 

고도의 추상화, 시간의 발명은 우리에게 엄청난 힘을 주었다. 과거에서 배우고 미래를 계획하는 능력을 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간다는 생각이 우리를 압박한다는 것, 그리고 현재가 쏜살같이 흘러가며 쇠퇴와 죽음은 필연적이라는 우울한 인식. 살아있다는 것은 순간이라는 인식은 타락 이후 시대를 특징짓는 염세적이고 비관주의적 분위기의 한 측면이다. 붓다는 이것이 인간의 삶이 고통으로 가득 찰 수 밖에 없는 이유라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아마도 우리가 삶의 현재 시제의 사실로부터 소외된다는 점이다. 우리가 너무 많은 시간을 미래와 과거에 대한 6생각에 몰두하며 보낸다는 사실은 우리가 충분히 현재를 살지 않는다는 rejt을 의미한다. 우리가 특정한 순간에 우리가 처한 상황이나 그 상황에서 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기보다는 과거의 어느 순간에 하던 일들 또는 처했던 상황 또는 미래에 하려고 계획하는 일들에 대하여 생각한다. 이것은 약간 기이하다. 현재는 우리가 가진 유일한 사실이다. 우리는 오직 현재에만 살 수 있다. 우리가 현재로부터 소외되었다는 것은 상당부분 우리가 실제로는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티브 테일러)

 

저자의 피다한 사람들에 대한 첫인상은 그들이 행복해 보였다는 것이다. “얼굴마다 웃음이 가득했다. 낯선 이방인을 마주할 때 보통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과는 달리 어느 한사람도 지르퉁하거나 움츠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머리 위로 날아가는 새들, 사냥길, 마을의 오두막, 강아지 등 내가 흥미를 가질만한 것들을 이것저것 가리키면서 신이 나게 설명했다.” 경험의 직접성이란 원칙은 그들이 현재로부터 소외될 수 없게 만들었고 실제로 살아 있다고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 아닐까.

 

경험의 직접성이란 원칙은 그들 언어에도 영향을 주었다. “피다한 말의 문법은 인간 언어의 본질, 기원, 활용에 관한 현대 언어학의 여러 견해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특정한 문법원칙을 알고 있다는 촘스키의 가설과 문법 구성요소들이 어떻게 함께 작동하고 조율되는지를 설명하는 그의 이론으로는 결코 피다한 말의 문법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촘스키의 이론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유전자 수준에서 결정된 언어본능이 사람에게는 있고 그 본능은 문법수준에서 나타난다는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경험의 직접성이란 문화적 원칙이 문법까지 결정하는 피다한 말의 사례는 언어본능이란 가설을 무너트린다고 말한다.

 

저자가 드는 가장 대표적인 예는 순환(recursion)이다. “언어학자들은 단문보다는 하나의 구나 절 속에 다른 구나 절이 들어가는 복문에서 문법적 특성이 자세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러한 복문은 어떤 언어에서나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피다한 말에는 복문이 없다.

 

어이 빠이타, 못 몇 개만 가져와. 다니엘이 못을 샀어, 그건 같아이말의 의미는 다니엘이 사온 못을 가져와이다. 못을 수식하는 다니엘이 사온이란 수식구를 만들 수 없기 때문에 기능적으로 같은 의미를 갖도록 3개의 문장을 늘어놓은 것이다. 피다한 말에 복문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이유는 경험의 직접성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키가 큰 남자가 집에 잇다이 문장은 두개의 작은 문장으로 이루어졋다. 주문장은 남자가 집에 있다이고 종속문장, 안긴문장은 () ()’이다. ‘() ()’는 듣는 사람이 동의할 것이라고 간주하는 정보 즉 구정보가 담겨있다. 반면에 주절 남자가 집에 있다는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장 즉 신정보가 담겨있다. 언어학자들은 이러한 신정보를 표명(assertion)이라 한다. 이런 이유로 안긴 문장이 표명의 의미로 상요되는 경우는 거의 찾기 힘들다. 표명은 경험의 직접성 원칙과 깊은 연관이 있다. 왜냐하면 표형은 듣는 사람이 직접 확인할 수있지만 표명이 아닌 정보는 직접 확인할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데 집에 남자가 있는지 없는지는 눈으로 확인할 수있지만 그가 키가 크다는 것은 확인할 수 없다. 말하는 사람은 키가 크다고 생각하지만 듣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예문을 보면 차이가 더 명확해질 것이다. ‘어제 본 남자가 여기 있다.’ 여기서 신정보 남자가 여기 있다는 청자가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안긴문장에 들어있는 구정보 ‘(내가) 어제 (봤다)’라는 사실은 직접 확인할 수 없다. 결국 안긴문장은 표명이 아니기 때문에 경험의 직접성 원칙을 위반한다. 따라서 피다한 말에는 안긴문장이 없다. 안긴절이 잇다면 표명이 아닌 말을 한다는 뜻이고 이는 경험의 직접성 원칙을 어기는 결과를 낳는다.”

 

촘스키는 인간이 유한한 두뇌를 가지고 어떻게 문장을 무한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지 알고 싶어한 최초의 언어학자엿다. 흔히 언어학에서 말하는 유한한 도구의 무한한 활용을 가능하게 하는 어떤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촘스키는 인간언어의 이러한 창조성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이 바로 순환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피다한 말에 순환이 존재하지 않는다. 피다한 말에 순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나의 주장이 옮다면 촘스키 학파들은 낭떠러지로 몰리고 만다. 순환이 언어의 핵심요소라 주장하는 이론을 가지고 순환이 없는 언어를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순환이 없다는 것만으로 피다한 말이 촘스키 이론에 치명타가 되는 것은 아니다. 피다한 말에는 문법이라 할 것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피다한 문법에는 문장구조에 대한 규칙(통사론)이 없다. 단순히 낱말들을 늘어놓고 이것을 문장으로 이해한다면 구나 절이 존재할 수 없다. 구나 절이 없다면 순환도 생길 수 없다. 실제로 피다한 문법에는 공사구, 명사구, 안긴문장 같은 것이 없다. 구나 절이 없기 때문에 문법읕 매우 단순하다. 그저 여러 낱말들을 실에 꿰기만 하면 문장이 되는 것이다 동사의 의미를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단어들을 나열하고 최소한의 한정을 덧붙이면 된다. 문장 하나당 대개 형용사나 부가와 비슷한 성분들도 하나 이상 쓸 숭 없다는 것이 규칙이라면 규칙일 것이다. 피다한 말의 모든 규칙은 통사론 때문에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규칙이 지켜지는 이유는 모두 경험의 직접성 원칙때문이다. 다시 말해 문화적 가치가 문법을 직접 제약한다는 뜻이다. 아니 ㅂ문화적 가치가 곧 문법이라는 뜻이다. ‘어이 빠이타, 못 몇 개만 가져와. 다니엘이 못을 샀어, 그건 같아여기에는 다니엘이 못을 샀어그건 같아라는 두개의 표명이 있다. 그러나 영어에서처럼 다니엘이 산 못이라 표현한다면 표명이 없는 말이 된다. 따라서 이것은 경험의 직접성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기에 쓸 수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열정을 쏟았던 연구방향은 대부분 철저하게 촘스키 노선을 따른 것이엇다. 문법은 인간게놈의 일부이고 세계언어의 문법적 다양성은 별로 중요하지 않으며 모든 문법을 포괄하는 보편문법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화가 문법에 주요한 영향을 미칠수 잇다는 나의 주장이 옳다면 이전에 내가 추구했언 가설은 틀린 것이다. 우리가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특별한 유전적 능력 때문이 아니다. 문법을 이해하기 위한 인간의 생물학적 기초는 요리를 맛보는 능력, 수학적 추론을 하는 능력, 기술을 개발하는 능력의 기초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언어능력이란 인간의 단순한 추론능력과 전혀 다르지 않아다. 무엇인지(대상), 그 대상에게 무슨일이 일어났는지(사건), 그 대상이 어떠한지(상태) 이야기할 수 없다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남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의 언어에는 반드시 동사와 명사가 있어야 한다. 이 두가지가 잇다면 이제 문법의 기본골격은 완성되는 것이다. 동사의 의미는 명사를 필요로 하고 이러한 명사와 동사가 논리적으로 규칙에 따라 결합하여 단문이 된다. 이렇게 결정된 근본적인 문법은 문화적 가치, 문맥적으로 중요한 요소, 명사와 동사의 한정등에 따라 순서가 변형되기도 한다. 이러한 진화론적 발달과정을 정리해보면서 나는 비로소 인간게놈이나 언어기관 같은 특별한 능력들이 없어도 우리는 충분히 문법을 만들어내고 이해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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