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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이 바꾼 세계사-도현신] '유토피아'는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 Memento 2018-05-28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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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실업이 바꾼 세계사

도현신 저
서해문집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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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는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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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의 사전적 정의는 '생업을 잃음'과 '일할 의사와 노동력이 있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일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생"일 테다. 노동과 일에 대한 정의는 시대마다, 신분마다, 개인마다 차이가 있었다. 특히 과거에는 노동보다는 고귀한 어떤 일에 전념하는 것을 올바르게 인식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노예만이 '생'을 위한 노동을 하는 노예제 사회였고, 우리 나라 역시 조선

시대에는 양반이 '생'을 위한 노동을 한다면 천박하게 여겼다. 사농공상의 네 글자가 이를 대변한다. 단순하게 먹고 사는 일(생), 밥벌이 하는 일을 천하게 여긴점은 인간이라는 존재는 단순히 존재함을 넘어서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해야만 한다는 목적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입맛이 씁쓸하다.
근대사회를 거치면서 이런 밥벌이는 숭고함을 넘어 중요한 가치로 자리잡는다. '근로'라는 말, '근로자'라는 단어는 '부지런히'라는 뜻을 포함하며, 단순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함을 말한다. 속된말로 '노오력'이 필요하다는 뜻일텐데, 산업화와 근대화의 시대는 근면함이 최고의 덕목이다. 동등한 기회를 바탕으로 누구나 노력을 한다면 신분 상승의 기회가 주어 지는 희망의 시대, 의미를 쫓을 수 있는 시대가 이뤄졌다. 따라서 밥벌이 만큼 숭고한 것이 없으며, 밥벌이의 수단은 '장래희망'을 넘어서 우리의 '꿈'이 되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IMF 이후(다른 나라라면 대공황 이후일까), 이 꿈은 묘하게 변질되었다. (사실 직업이 꿈이 된 것 자체가 변질의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신자유주의의 물결 아래 신분 상승의 통로는 닫혀만 가고, 밥벌이는 생을 이어준다는 숭고함 보다는 오늘도 구차한, 희망이 없는 삶을 겨우겨우 이어주는 지겨움이 되었다. 지금에는 '의사와 노동력'이 있음에도 '기회'를 얻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지겨움'조차 복에 겨운 소리라는 핀잔을 듣는 시대지만.
<실업이 바꾼 세계사>는 이런 대량 실업. 혹은 밥벌이를 잃은 고통이 어떻게 사회를 파괴하고 역사를 뒤흔들었는지를 보여준다. 동, 서양을 막론하고, 경제가 흔들리면 사회가 흔들린다. 흔들림은 사회를 구성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의 불만으로 이어지고, 대부분은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다. 목차를 보라. 14개의 대량 실업 사태 뒤에 모두 전쟁, 약탈 혹은 폭력이 함께한다. 전쟁과 민란, 혁명과 폭력, 세상을 향한, 사회를 향한, 기득권을 향한 분노는 누구를 구원하는 것일까.
잘나신 귀족과 양반들은 밥벌이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일반 민중, 노동자, 근로자는 개, 돼지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먹고 사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을까. 사람마다 차이가 있고, 우선순위가 다르겠지만 '생'을 위해서는 '밥'있어야 하고, 결국 '밥'이 있어야만 내가 '존재'한다. 그래야만 '의미'도 찾을 수 있다. 물론 '밥'과 '의미'가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처럼 서로의 층위별로 보기 좋게 구분되지 않겠지만.
애석하게도 현재 우리는 '근로' 외에는 '밥'을 벌만한, '생'을 이어가기 위한 수단이 흔치 않다. 가난은 나랏님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고, 책에서 보여주듯 역사는 실업의 역사가 완벽히 해소된 '유토피아'는 영원히 오지 않을지 모른다. 지금 이 사회와 세상이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면,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지. 국가는 어떤 일자리를 주어야할 것인지. 함께 고민하고 토론해야 하지 않을까도 싶지만.

 

나 부터도 오늘 하루 '퇴사'와 '근로'사이의 줄타기에 급급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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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전쟁-김진명]우리의 선택이 해답이고, 필요한 것은 용기 | Memento 2018-05-26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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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세트] 미중전쟁 (총2권)

김진명 저
쌤앤파커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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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선택이 해답이고, 필요한 것은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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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의 소설은 대부분 비슷한 구조를 지닌다. 뛰어난 주인공과 빼어난 여주인공(조력자). 주인공은 우연히 거대한 음모에 얽히고 그 음모를 움직이는 특정 세력이 세상을 좌우한다. 주인공은 그 음모를 깨어내는데, 이 순간 김진명은 소설 속 인물들의 입을 비어 우리나라(한민족)의 바른 길을 선포(?)한다. 보통 이런 형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미중전쟁>역시 다르지 않다. 가끔은 그의 소설을 볼 때마다 난감할 때가 있다.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어서, 혹은 그 뒤에서 주장을 쏟아내고 그 책임 내지는 근거(개연성)을 회피하는 것은 아닌지.

소설의 형식에 더불어 가장 큰 논쟁점은 소위 "국뽕"이라는 지점이다. "국뽕"은 김진명의 소설의 가장 크고 치명적인 단점이지만 동시에 인기가 있고 매력을 가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더불어 시의 적절하게 선정한 소재들은 그의 소설들이 유명세를 타는데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현재에 일어나는 이야기와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을 시의 적절하게 섞어서 풀어내는 솜씨는 뛰어나다. 그리고 전체적인 얼개가 유려하지 못할진 모르지만 '가능성'의 측면에서는 그럴싸하다. 외교나 전쟁과 관련된 비공개(일반 대중이 알 수 없는)의 이야기나 기록으로 남지 않은 역사에 대한 상상은 그의 소설이 지닌 매력이기도 하다. 음모론 소설로 느껴진다면 개개인이 가려 볼 필요는 있겠지만.

<미중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의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 칼날 위에 서있는 우리에게 김진명은 "Theory of everyting"을 이야기 한다. "우리의 선택이 바로 해답"이고, " 자체로는 좋은 선택도 나쁜 선택도 없다." 우리는 세계 유일의 상황을 만들어가는 주역이며, 우리가 가진 유일한 해답은 "용기"다. 우리는 이 전쟁의 칼날 위에서 "우리의 힘"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현 시점에서 한반도에 대한 그의 고민을 단순히 "국뽕" 내지는 "음모론"만으로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미중전쟁>이라는 소설이 우리에게 어떤 선택을 할지 고민하게 만들어 준다면 그것이 이 소설의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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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질투는나의힘(1991)] | 취중잡설 2018-05-2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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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 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 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입속의 검은 잎』(1991))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 자리 잡은 공허감을 쫓아내기 위해서 물건을 채워 넣는다.
이러한 사람이 바로 수동적 인간이다. 수동적 인간은 자신이 보잘것 없는 존재라는
불안한 마음에 그 불안을 잊으려 소비하고, 소비인이 된다. (...)
자극에 대한 단순한 반작용으로서의 능동, 혹은 겉보기엔 열정적이지만 외부의 힘에
의해 움직이는 능동은 아무리 과장된 몸짓을 한다해도 근복적으로는 수동이다.

<인생과 사랑> 에리히 프롬

 

문득, 5월의 달력을 보며 이번 달은 글 한 줄 남기지 못했다. 치열하지 못한 현실로의 도피.
그 속에서 읽고 읽고, 사고 샀지만. 무언가 허무하다. 작은 일상의 한 조각이 어렵고,
내가 좋아하는 일에 주저하게 되는 순간들. 무엇이 나를 가로막는 것인지 모른채 그저 버텨온 시간들.

 

그러다 문득, 내가 왜 책을 읽는지에 대한 진짜 이유를 고민해본다.

 

내가 정신나간 사람처럼 책을 사고, 읽을려고 애쓰는 이유는,
조금이라도 읽으려하고, 정돈하지 못한 헛소리라도 쓰려하는 이뉴는.

결국 내가 수동형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공허한 내면을 채우기 위함이다.

 

사람들이 이런 나에게 그래도 무언가를 하지 않느냐, 열심히 살려 애쓰지 않느냐 위로하지만
거기에 스스로 동의하지 못하고 침묵하는 이유 역시 내가 수동형 인간이기 때문이다.

 

'어리석게도 그토록' 읽어보려 애쓰고,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울 따름이다.
'쏘다니는 개처럼' '머뭇거리며' '탄식'만으로.
주어진 유일한 자산인 '청춘을 세워'두고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자.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리니
'나의 생은 미친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그래서 오늘도 질투하며,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를 기약하며.

 

그때는 무엇으로 나를 채울런지 부끄럽고 두렵기만하다.

 

에리히 프롬과 기형도. 그리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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