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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교토의 1만 년-정재정] 역사에서 그랬듯 앞으로도 | Memento 2020-08-09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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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서울과 교토의 1만 년

정재정 저
을유문화사 | 2016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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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를 통해 한일관계사를 살펴보고, 앞으로 양국의 관계도 고민해 볼 수 있는 책. 더불어 교토 여행시 필수 참고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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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나라 이웃나라. 일본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단어다. 주변 이웃국가에 중국과 러시아가 있지만 워낙 대국이다보니 이웃나라라고 해도 친근감이 덜하다. 반면 일본은 (한반도 보다 확실히 크지만) 비교적 규모 면에서도, 문화 면에서도 비슷하다. 인정하기 싫을 수 있겠지만, 일본과 한반도는 끊임없이 교류를 해왔다. “한국은 일본의 고대 문명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일본은 한국의 근대 문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p.8)” 먼저 교류를 주도 했다고 우쭐할 필요도 없고, 나중에 기회를 주었다고 자만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얽히고 설킨 두 민족간의 갈등은 그칠줄 모른다. 역사 그 자체가 나라간의 관계에 이렇게 직접적인 변수로 영향을 주는 사례도 많지는 않을 듯 싶다.

<서울과 교토의 1만 년>은 일본사에 정통한 정재정 교수의 시각에서 본 교토의 역사다. 나의 관심은 사실 교토보다 서울이었다. 일본에 관심은 많지만 정작 직접 방문해 볼 기회가 없다보니 그저 먼 나라에 불과했다. 그 중에서도 교토라면 문화재가 많고 대학이 많은 도시정도의 이미지다. 그런데 교토와 서울과 1만년 동안 무슨 관계를 맺어왔다는 말일까. 아니면 양국의 오랜 수도였던 만큼 교토 역시 비교대상이란 뜻일까. 개인적으로 교토와 경주를 비슷하게 여겼는데, 서울과 대비한다고 해서 남다른 궁금증을 가졌다. 실질적으로 서울 그 자체보다는 한반도를 의미하는 느낌이다.

지금은 코로나19 상황 등 해외에 대한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쿄토와 오사카는 한국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장소다. 그래서 자주 방문했거나, 내용에 대해 충분히 아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교토를 자주 방문해보지 못했거나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는 사람에게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다. 무엇보다 교토의 형성부터 시작해서 일본과 현재 관계까지 고민케 하는 흐름은 역사를 어떻게 봐야할지 생각하게 해준다. 일본과 한국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오랜기간 교류해 왔고, 교류해 갈 것이다. 교토에 묻힌 많은 유적들이, 양국간 얽혀 있는 다양한 유전자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늘어갈 수 많은 양국의 관광객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자기본위로만 바라보면 갈등과 대립의 측면이 부각되고, 두 나라 국민은 서로 좋지 않은 기억과 감정을 갖게 된다.(p.75)” 지금 한일 양국, 먼나라이지만 가까운 이웃나라 간에 기로에 섰다. 역사는 쟁점화되고, 군사관계는 약화되고 있다. 미국은 양국을 압박하고 있고, 중국은 날로 위세를 높여 간다. 여기서 두 국가의 연대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역사가 교묘하게 가로막고 있다. 그렇다면 발전적으로 나아가기 위해 역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한일 양국은 충분하지는 않지만 역사 문제를 다뤄 온 경험, 수법, 실적을 이미 많이 축적하고 있다. (p.709)”

이 책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지구가 파괴될 때까지 아마도 티격태격 두 나라는 살아갈 것이다. ‘유년기를 함께 보낸 쌍둥이 형제는 그렇게 함께 성장한다. 서로에게 큰 상처를 남기며. 그리고 그 상처를 어떻게 극복해 내는가가 유년기를 넘어 청장년기를 넘어 인생 전체를 현명하게 보낼 수 있게 한다. 양국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그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작은 실마리를 교토에서 찾아보자. 정재정 교수의 이 책이 충분한 답이 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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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일본의 고대 문명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일본은 한국의 근대 문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문명의 교류는 평화롭게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침략을 통해 강제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런 우여곡절을 거쳐 한국과 일본은 지구상에서 인종적, 문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가 되었다. 미국의 저명한 문명사가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 , >라는 명저에서 이런 한국과 일본을 유년기를 함께 보낸 쌍둥이 형제로 비유했다. 역사 인식을 둘러싸고 갈등과 대립을 되풀이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에게 한일 관계의 역사를 새롭게 인식하라고 촉구하는 그의 경구에 백 퍼센트 동의할 수는 없지만 교토의 유적, 유물에는 그런 충고를 뒷받침해 주는 사연이 너무나 많이 깃들어 있다. p.8

인구 150만 명에 불과한 교토가 어떻게 이렇게 세계에 자랑할 만한 학술 기관과 첨단산업을 많이 보유할 수 있게 되었을까? 나는 그 답이 옛것을 우려내 새것을 창조한느 노하우, 곧 자신의 문화와 전통을 시대 변화에 맞게 변형하고 발전시켜 가는 혁신에 있다고 생각한다. 법고창신 즉, 옛것에 토대를 두고 변화를 주어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지혜야말로 교토의 역사 그 자체고, 발전의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p.71

한국과 일본의 문명 교류를 파악하는 데는 세 가지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편리하다. 인간의 이동, 전쟁의 충격, 물자의 교역이 그것이다. 물론 이 세 가지 요소는 서로 엉켜 있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분리하여 설명하기는 어렵다. p.73

한일관계의 역사를 이렇게 자기본위로만 바라보면 갈등과 대립의 측면이 부각되고, 두 나라 국민은 서로 좋지 않은 기억과 감정을 갖게 된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역사 인식을 둘러싼 충돌이 정치, 외교를 제약할 정도의 비중을 가진 만성적인 현안으로 대두되어 있다. 두 나라 지도자가 이른바 아시아 패러독스에 빠져 정상회담조차 꺼려하고 있는 요즈음의 현실은 편협한 역사 인식의 덫이 한국과 일본 사(p.75)이를 얼마나 강하게 옥죄고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p.76

한국과 일본의 문화 교류를 이야기 할 때 조심할 사항이 하나 있다. 흔히 아시아 대륙과 일본열도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한반도 일대가 문화 교류에서 교량의 역할을 해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교량은 인간이 건너다니는 연결고리일 뿐,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다. 한반도 일대는 옛날부터 한국인이 살아왔고, 독특한 문명을 발전시켜 온 역사 전개의 무대이다. 따라서 한반도 일대가 아시아 대륙 문명을 일본열도에 전달하는 고량의 구실을 해 왔다는 표현은 자칫하면 한반도 일대에 살아 온 한국인의 존재와 그 역할을 무시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역사 인식의 왜곡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p.83) ... 아시아 대륙 문명은 한반도 일대에 수용된 후, 이곳의 주인공인 한국인에 의해 한국식으로 소화되고 변형되어 일본으로 건너갔다. 아시아 대륙의 문명만이 아니라, 한반도 일대에 산 한국인의 창조적 활동에 의해 형성된 개성적인 한국 문명이 일본에 전해진 것이다. p.84

역사를 이야기할 때는 이웃 나라 간에 이루어진 사람의 이동과 문화의 교류를 균형 감각을 가지고 파악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p.103

동서고금의 역사 전개에서 어떤 나라가 선진 문명을 직접 받아들일 만한 지리적 위치에 있지 못하거나 그것을 직접 소화해 낼 내재적 능력이 모자랄 때, 인접 국가에서 일단 걸러지고 새김질한 문명을 수용하는 것은 자주 볼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한국과 일본은 문명 전환에서 서로에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p.106

어떤 이가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의식과 소비 양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받아들인 것을 한 번 쓰고 내버리는 설사 문화, 일본은 받아들인 것을 꼭꼭 쌓아 두고 우려먹는 변비 문화라고. p.149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4백 여 년 전에 죽은 역사의 인물이 아니라 교토인들의 일상 속에 살아 있는 현실의 위인이다. p.305

이런저런 사정을 고려하여 나는 19세기 이래 조선이 점차(p.402) 쇠약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세계정세의 변화와 국제무역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변방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당시의 위정자들이 이런 상황을 간파하고 적절한 대책을 강구했더라면 조선은 외세의 압박을 극복하고 스스로 근대국가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을 것이다. p.403

근대국가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인력의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갑신정변은 그 주력을 제거해 버린 뺄셈의 쿠데타였고, 메이지 유신은 그 대군을 키워 낸 덧셈의 혁명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p.424

료마가 일본에 남긴 최대의 업적은 메이지 유신을 추진하는 세력이 표방한 존왕양이 사상에서 양이(오랑캐를 물리침)’를 빼고 그 자리에 막부가 시도한 근대화를 집어넣은 데 있었다. 곧 두 적대 세력이 각각 지향하는 좋은 점만 골라서 황금 결합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메이지 유신을 적은 비용을 들여 많은 이익을 거둔 저비용 고수익의 혁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면, 그 공적의 많은 부분을 료마에게 돌려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p.426

역사를 추체험(追體驗)하는 것은 역사 인식을 달련하는 데 유익 p.521

일본은 민족주의가 신앙과 결합하여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반면에 한국의 민족주의는 직설적인 언설로 주입하여 억지로 마음에 담겨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p.537

남한과 일본은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일제강점기 말기의 천황숭배 군국주의 체제와 전혀 다른,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체제를 지향하는 미국의 통치를 함께 경험했다. ... 현대의 한일 관계는 바로 이런 공통의 문명 기반 위에서 맺어지고 영위됐다고 할 수 있다. / 반면 북한은 일제강점기 말기와 오히려 유사성이 강한 소련군의 통치를 겪었다. 그리고 6.25 전쟁과 그 이후에는 일당 독재정치와 사회주의 통제경제에 익숙한 중국과 소련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이는 일제강점기 말기의 유산과 결합하여 북한식의 독특한 사회 체제를 만들어 내는 기반이 되었다. 오늘날 서로 다른 문명 기반을 지닌 북한과 일본이(p.641) 서로 어떤 관계를 맺을지 예측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남북한의 통일 또한 그러하다. 그것은 3국 모두에게 또 한 차례의 문명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p.642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은 역사 문제로 인해, 일본에 자주 민족 감정을 표출하거나 사죄와 반성을 촉구했다. 일본은 한국에 대해 지은 죄가 있는데다가 훨씬 발전한 선진국이라는 자부심도 있어서 한국의 거친 언동을 어느 정도 받아 주었다. 한국과 일본은 다른 나라와는 달리 특수한 관계라는 점을 서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패전과 해(p.707)방 이전 세대를 체험한 인물들이 사회의 중추에서 물러나게 되자 특수 관계에 대한 공통 인식도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일 관계는 이제 보통 관계처럼 되어 버렸다. 지금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발생하고 있는 잦은 충돌과 갈등은 특수 관계에서 보통 관계로 변한 상황에 대해 두 나라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p.708

그렇지만 한국과 일본은 70년의 현대사에서 잦은 마찰과 갈등을 겪었지만, 세계의 수준에서 보면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성과를 꽤 많이 거두었다. 두 나라는 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주의, 인권 옹호 등 글로벌한 가치를 공유하는 동질의 국가를 이룩하였다. 그리고 각가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동아시아의 안전과 평화를 담보하는 지렛대 역할을 했다. 또 국민의 생활양식과 문화 수준에서도 한국과 일본은 선진성과 보편성을 공유하고 있다. 국민 속에 침투한 한류와 일류라는 대중문화가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증거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이 서로의 성취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협력의 방법을 모색한다면 세계 문명 발전에 함께 기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p.708)이다. p.709

양국 국민은 먼저 역사 문제의 책임을 다음 세대에 미루기보다는 지금 세대에서 해결하겠다는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 그리고 양국의 정치가와 여론 주도층은 인류가 지향해 온 보편적 가치의 기준에서 한일 관계의 역사를 해석하는 식견을 가져야 한다. 나아가서 자신들이 솔선하여 역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이와 함께 양국의 국민을 납득시키고 선도할 수 있는 전략과 방법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일 양국은 충분하지는 않지만 역사 문제를 다뤄 온 경험, 수법, 실적을 이미 많이 축적하고 있다. p.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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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이희영] 너는 어떤 부모이고, 어떤 가족을 꾸리고 싶으냐 | Memento 2020-08-02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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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페인트

이희영 저
창비 | 201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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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떤 부모이고, 어떤 가족을 꾸리고 싶으냐. 소설은 나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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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했다. 그래서 어른들은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하며 신세 한탄을 한다. 비로소 나도 어른이 되고, 결혼을 준비하며, 부모가 되어야 하나를 고민하는 시점에서 어른들의 말씀을 귀담아 듣는다. 분명 결혼 할 때도, 너는 절대 하지말라고 했던 사람들이 그래도 한 번은 해봐라고 말하더니, 자식을 낳는 일도 마찬가지다.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그래도 그만큼의 보람과 행복을 준다고. 나 역시 그런 마음에 흔들릴 때가 있지만, 아직까지는 확고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나는(혹은 우리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설사 준비가 되더라도 이 고통을 물려줄 마음이 없다.

이러한 마음은 어떻게 보면 자식을 선택하는 부모의 과욕일지 모른다. 입맛대로 자식을 기를 수 없으니, 차라리 낳지 않겠다는 선택. 자만심이 극에 달해 자연의 섭리를 거부하는지도 모른다. 여기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이야기가 있으니 이희영 작가의 <페인트>. 그의 전작은 읽어 보지 못했지만, 완득이나 아몬드를 재미있게 읽었던터라 창비청소년문학상에 대한 일정부분 신뢰가 있었다. 게다가 부모를 선택하겠다는 도발적인 내용이 눈길을 끌었다. 자녀를 가질지 말지, 몇 명을 가질지에 대한 최소한의 선택을 하는 부모와 달리 그저 태어날 수 밖에 없는 자녀들의 입장을 생각해본다면 흥미로운 역발상이었다.

무엇보다 NC센터의 시스템이 흥미로웠다. 출산율이 급전직하로 떨어지고 있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시도해봄직한 고민이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많은 난관이 있겠다. 책에서 언급했 듯 비용문제는 남북한의 전쟁위협이 사라진 덕분이라지만, 비용은 제외하더라도 이러한 전격적인 시도는 의미있다고 본다. 특히, 주어진 소중한 생명조차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는 현실을 고려해 본다면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들을 소중히 품어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테다. 많은 비판에 직면하겠지만 한때 유아 수출국(?)의 오명을 가진 한국에서 체계적인 관리를 고민해본다는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소설의 구조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주어진 시스템을 거부하는 조숙한 주인공과 이를 알게 모르게 지지해주는 사연을 가진 가디’(박과 최), 그리고 여기에 양념을 쳐주는 주인공의 동생과 친구. 이들이 겪어나가는 일상 속에서 주어진 길을 거부하는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다. 중요한 점은 이들이 시사하는 바다. 가족의 해체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또 다른 가족을 강제로 찾아야만 하는 억압 속에서 차별을 앞둔 존재가 독백을(가장한 저자의 생각) 우리는 각자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다. 결국은 부모가족의 의미가 무엇일까.

가족은 최소한의 사회 단위고, 부모는 그 사회를 구성하는 기준이 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가족은 지옥 그 자체이거나, 지옥을 가르는 차별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꽤나 근본을 중시했다. 원산지를 따져 가며 농수산물을 사 먹듯 인간도 누구에게서 생산되었는지에 지대한 관심을 보(p.55)”인다. 부모가 그렇듯 자녀도, 자녀가 그렇듯 부모도 서로를 지켜주고 최소한의 예의를 가지지 못한다면 가족은 지옥이 된다. 서로에게 고통을 주거나 서로가 무관심해지고 만다. 반대로 자기 가족끼리만의 이익을 생각한다면, 우리 외의 가족은 원산지를 따져서 배제해야 할 불량품이 된다.

그렇기에 가족의 구성,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 고민이 필요하다. 과연 지금의 혼인 관계로만 가족 제도를 지탱할 수 있을까. 현실도, 소설도 말한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같은 가족 구조로만 유지될 수 없음을. 부모가 친구일 수는 없을까, 가족의 범위는 꼭 혈연으로만 이뤄져야 할까, 가족의 구성원이 꼭 결혼한 남녀와 자녀라는 구조만을 지녀야 할까? 이런 저런 의문들 속에서 제누301의 삶을 응원한다. 그가 어떤 가족을 꾸리더라도, 나 역시 어떤 가족을 꾸릴 것이기에. 그리고 그 가족이 늘 맑은 삶을 살지 않더라도, 최소한 사막은 아닐 것을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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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꽤나 근본을 중시했다. 원산지를 따져 가며 농수산물을 사 먹듯 인간도 누구에게서 생산되었는지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내가 누구에게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일까? 나는 그냥 나다. 물론 나를 태어나게 한 생물학적 부모는 존재할테지만, 내가 그들을 모른다고 해서, 그들에게서 키워지지 않았다 해서 불완전한 인간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나는 누구보다 나 자신을 잘 알고 있으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이, 나의 부모가 누구인지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 아닐까? p.55

누군가가 나를 꿰뚫고 있다는 기분은 썩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감사한 경우도 있다. 나를 잘 알고 있음에도 전혀 내색하지 않고 배려하는 모습이 그렇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 쉽게 말하고 또 쉽게 생각한다. 내가 알고 있는 상대가 전부라고 믿는 오류를 범한다. 그런 사람 중에서 진짜 상대를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자기 마음조차 모르는 인간들인데. p.76

진실은 자신에게 이득이 될 때만 쓸모가 있다. 그게 진실의 역할이었다. p.129

원칙과 규율을 칼같이 지키는 것보다 힘든 것은 원칙을 어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를 허락하는 일이었다. p.141

재능은 얼마나 잘하는가에 달려 있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절대 멈추지 않는 것, 그게 재능 같았다. 싸우고 다투고 매일같이 상처를 입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어지지 않는 가족처럼 말이다. 아니, 그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는 무엇 아닐까. p.209

부모가 된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자신이 바라는 아이로 만들려는 욕심보다 아이와의 시간을 즐기는 마음이 먼저다. 부모는 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되어가는 것이다. 아이를 가르치려 들지 말고 아이와 함께 놀고 즐기면 된다. 글쓰기가 늘 즐겁지만은 않듯 근래 들어 아이와의 관계가 삐걱거릴 때가 잦았다. 하지만 맑은 날만 계속되면 세상은 사막으로 변한다.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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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해석-말콤 글래드웰] 타인의 해석, 두렵다면 존중해야 한다 | Memento 2020-08-02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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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타인의 해석

말콤 글래드웰 저/유강은 역/김경일 감수
김영사 | 202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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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다는 것은 두려움의 다른 말이다. 모른다면, 두렵다면 우리는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자제와 겸손을 통해 천천히 알아가야 한다. 그것이 유일한 길이고 이 지옥에서 공존할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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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만나는 일은 두렵다. 행사나 회의장에 가면 항상 구석을 찾는다. 너무 튀지 않게 중간 자리에 숨는다. 맨 앞자리와 뒷자리는 위험하다. 맨 뒷자리는 언제고 사라져서 비어있는 맨 앞자리로 이동해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중간이 제일 안전하다. 전화하는 일도 무섭다. 아직도 전화할 생각만 하면 두근거린다. 특히 주문을 취소하거나, 계약상의 문제로 통화를 하는 일은 더더욱 그렇다. 심지어 내가 갑의 위치에 서있을 지라도 떨림은 멈추지 않는다. 매번 고민하고 대화할 내용을 주욱 써서 통화를 시도하지만, 순간 머리가 새하얗게 되면서 할 말을 다하지 못하고 만다. 나를 만나는 일만큼 타인을 만나는 순간들은 늘 긴장의 연속이고, 두려운 일이다.

<타인의 해석>은 말콤 글래드웰의 신작이다. 저자의 전작 <아웃라이어>를 흥미진진하게 본 만큼, 개인적으로 책의 내용에 대해서 의심이 불필요하다. 더불어 당신이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라는 부제는 타인을 만날 때 공포에 빠지는 나에게 뭔가 작은 실마리를 주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나만 공포를 느끼는 걸까. 아닐테다. 타자는 지옥이다. 그렇다면 도시는 지옥이다. 도시에서의 삶은 불가피하게 익명성을 전재로 한, 수 많은 타자와 함께 살아야만 한다. 내가 살아가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지옥이다. 지옥의 세상에서 말콤 글래드웰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선을 던진다. 타자를 해석할 때 어떻게 해야하는 지를.

인간은 타인을 해석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타인을 대할 때 우리는 진실을 기본값으로 둔다. 그리고 상대방은 겉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투명성을 지닌 존재로 본다. 다양한 실험과 사례, 석학들의 논문을 통해 증명한다. 우리는 진실에 편향(p.283)”돼 있고 사람들의 태도를 근거로 정직성을 판단하는 경향은(p.288)” 우리가 형편없는 거짓말탐지기(p.290)”. 그럼에도 우리는 착각을 한다. 상대를 잘 알고 있고, 잘 알아 낼 수 있다고. 하지만 책에서 소개한 바 우리는 거짓말쟁이를 우연보다 조금 더, 아주 조금 더(54%) 잘 알아챌 뿐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모든 것을 의심하고 살아야 하는걸까? 그것은 불가능하다. 늘상 모든 것을 믿지 않고 살아간다는 일은 정말이지 불가능하다. 당신이 땅을 딛고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무의식적으로 땅이 단단함을 믿기 때문이다. 매순간 땅이 단단함을 의심한다면, 걸음은커녕 삶 자체를 유지할 수 가 없을테다. 우리가 진실을 기본값으로 하는 이유는 이와 비슷하다. 의심은 믿음의 적이 아니다. 의심과 믿음은 동반자다. (p.203)” “이따금 거짓말에 취약해지는 대가로 우리가 얻는 것은 효율적 의사소통과 사회적 조정이다. 이득은 대단히 크고 그에 비해 비용은 사소하다. 물론 우리는 가끔 기만을 당한다. 이는 일처리의 비용일 뿐이다. (p.178)”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 부수적인 비용이라면 그저 감내할 뿐이고, 당한 사람은 재수없는 일로 털어내면 그만일까. 아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우리가 양자택일의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에 강제 될 때다. 특정한 조건에서 타인과 결합하는 요인들은 우리에게 낯선 사람을 모호하고 복잡한 존재 자체로 보도록 강요한다. (p.456)” 여기에 우리가 포착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존재한다. (p.483)” 이런 복잡함은 소개된 수많은 사례와 같이 비극적인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그 비극은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에만 머무른다.

 

만약 당신이 낯선 사람에 대해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의 밑바탕에 존재하는 관념, 그리고 그 관념을 중심으로 우리가 구축하는 제도와 실천을 알지 못한다면, 당신에게 남는 것이라곤 개인적인 것뿐이다. 쉽게 속아 넘어가는 등반가, 부주의한 그레이엄 스패니어, 불운한 아만다 녹스, 저주받은 운명의 실비아 플라스 등등. 그리고 이제 샌드라 블랜드. p.536”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회를 유지하고 삶을 살기위해서 우리의 본성을 바꿀 수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의 본성대로 행동하고 살아간다면 비극은 계속해서 개인적인 불운으로 남을 뿐이다. 분명히 이런 사례는 비극적이다. 하지만 비극을 피하기 위해 대안, 즉 약탈과 기만에 맞서는 방어 수단으로 신뢰를 포기하는 것은 더 나쁘다. (p.531)” 게다가 보통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의 심증을 투시력으로 꿰뚫어 보는 완벽한 기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낯선 이를 파악하기 위한 단서들을 세심하게 처리해야 한다. 관심과 주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자제와 겸손이다. (p.532)”

모른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통제 불가능한 일을 통제하려고 든다면, 충돌은 불가피하다. 두 가지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을테다. 통제를 포기하거나, 자제와 겸손으로 상대를 알아가는 법. 타인을 만날 때 마다 스스로를 내려 놓을 수 있다면 이미 이런 상황은 문제가 되지 않는 사람일테다. 타인을 아는데도 서투르고, 해석하는데도 서투르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다. 지옥에서 살아남는 방법, 지옥에서 공존하는 방법은 그것 뿐이다. 나의 공포증은 당연한 거였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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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프로닌은 ... ‘비대칭적 통찰의 착각’(p.100) ... 남이 나를 아는 것보다 내가 남을 더 잘 안다. 그리고 내가 그에게 없는 그에 관한 통찰을 갖고 있을 수 있다(하지만 그 반대는 아니다)는 확신이 있으면, 귀를 기울여야 할 때 이야기를 하고, 또 남들이 자신이 오해를 받거나 부당한 평가를 받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표명할 때 마땅히 가져야 하는 것보다 인내심을 갖지 못하기 쉽다. p.101

스파이 문제는 이렇다. 어떤 탁월한 자질이 스파이들에게 있지는 않다. 잘못된 뭔가가 우리에게 있다. p.127

팀 러바인 ... 진실기본값 이론(DTD) ... 우리는 진실을 말하는 학생을 제대로 맞히는 데 우연보다는(p.134) 훨씬 유능하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는 학생을 제대로 맞히는 데는 우연보다 훨씬 무능하다. ... 진실을 말하는 이를 잘 알아보고 거짓말을 하는 이를 몰라본다는 것이다. 우리는 진실을 기본값으로 갖고 있다. 우리의 가정은, 우리가 상대하는 사람들이 정직하다는 것이다. p.135

진실기본값 모드에서 벗어나려면 러바인이 말하는 계기가 필요하다. 약간 미심쩍은 정도나 의혹은 계기가 될 수 없다. 처음 품은 가정에 어긋나는 증거가 결정적인 것으로 밝혀질 때만 비로소 진실기본값 모드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 ... 일단 믿고 본다. 그리고 의심과 걱정이 점점 커져서 해명되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믿는 것을 멈춘다. p.136

당신이 누군가를 믿는 것은 그에 관해 아무런 의심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믿음은 의심의 부재가 아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믿는 것은 그에 관한 의심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p.142

당신을 믿음의 경계 너머로 밀어낼 만큼 충분한 위험 신호가 있었는가? 만약 없었다면, 진실을 기본값으로 삼은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었을 뿐이다. p.143

러시아 민담에는 유로지비, 바보 성자라고 불리는 원형적인 인물이 존재한다. 바보 성자는 사회 부적응자(괴짜에다가 남에게 불쾌감을 주고 때로는 광인인 경우도 있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은 사실 잘못된 표현이다. 바보 성자는 쫓겨난 사람이기 때문에 진실을 말할 수 있다. 기존의 사회적 위계 질서의 일원이 아닌 이들은 불편한 진실을 거리낌 없이 내뱉거나 우리 일반인이 당연시하는 것들에 의문을 던진다. p. 174

현대인의 삶에서 바보 성자에 가장 가까운 사람은 내부 고발자다. 그들은 사기와 기만을 폭로하기 위해, 조직에 대한 충성, 그리고 많은 경우에 동료들의 지지를 기꺼이 포기한다. p.175

바보 성자가 다른 점은 기만의 가능성에 대해 다른 감각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팀 러바인이 상기시키는 것처럼, 현실 세계에서 거짓말은 흔하지 않다. 거짓말은 극소수의(p.175) 사람들이 할 뿐이다. 이 때문에 우리가 실생활에서 거짓말을 탐지하는 데 무능한 것도 그렇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p.176

우리 사회에는 때때로 바보 성자가 필요하다. 바보 성자는 소중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바보 성자를 낭만화한다. ... 하지만 러바인의 두 번째이자 결정적으로 중요한 부분은 우리 모두가 바보 성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재앙이나 마찬가지다. p.177

진실기본값과 거짓말의 위험 사이의 상충 관계는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하다. 이따금 거짓말에 취약해지는 대가로 우리가 얻는 것은 효율적 의사소통과 사회적 조정이다. 이득은 대단히 크고 그에 비해 비용은 사소하다. 물론 우리는 가끔 기만을 당한다. 이는 일처리의 비용일 뿐이다. (팀 러바인) p.178

의심은 믿음의 적이 아니다. 의심과 믿음은 동반자다. p.203

진실을 기본값으로 놓는 것은 우리가 두 대안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을 때 문제가 된다. 하나는 그럴듯하고, 다른 하나는 상상하기가 어려운 것일 때. ... 진실을 기본값으로 놓으면 우리는 가장 그럴듯한 해석 쪽으로 기울어진다. ... 부주의해서가 아니(p.222)라 대부분의 인간이 그렇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p.223

우리는 이 결정이 아무리 끔찍한 위험을 수반하더라도 진실을 기(p.239)본값으로 놓는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으면 사회가 굴러가지 않는다. 그리고 신뢰가 결국 배신으로 끝나는 드문 경우에 진실을 기본값으로 놓은 것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비난이 아니라 동정을 받아 마땅하다. p.240

투명성은 행동과 태도, 즉 사람들이 겉으로 드러내는 방식이 그들이 속으로 느끼는 방식에 대한 확실하고 믿을 만한 창을 제공한다는 관념이다. 이것은 우리가 낯선 사람을 파악하는 데 사용하는 결정적인 도구 중 두 번째 것이다. 누군가를 알지 못하거나 그와 소통하지 못하거나 그를 제대로 이해할 만한 시간이 없을 때, 우리는 행동과 태도를 통해 그 사람을 파악할 수 있다고 믿는다. p.253

누군가를 알게 된다는 것의 의미 중 하나는 그의 감정 표현이 얼마나 특이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p.269

낯선 사람을 마주칠 때 우리는 직접 경험을 관념, 즉 고정관념으로 치환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고정관념은 너무도 자주 그릇된 것이다. p.271

투명성 문제는 결국 진실기본값 문제와 똑같은 자리에 놓이게 된다. 낯선 사람을 대하기 위한 우리 전략에 큰 결(p.276)함이 생겼지만 이 전략은 그래도 사회적으로 필요하다. 우리는 형사사법제도와 채용 절차, 아이돌보미 선발을 인간적인 과정으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인간적 요건은 우리가 엄청난 양의 오류를 용인해야 함을 의미한다. 바로 이것이 낯선 이에게 말 걸기의 역설이다. 우리는 낯선 이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일에 서투르다. p.276

우리는 진실에 편향돼 있다. p.283

우리는 사람들의 태도를 근거로 정직성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p.288

인간은 형편없는 거짓말탐지기다. 우리가 판단하는 사람의 태도와 내면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는 형편없는 거짓말탐지기다. p.290

우리 모두는 제도적 심판의 결함과 부정확성을 받아들이면서 그런 실수는 무작위적이라고 믿는다. / 하지만 팀 러바인의 연구는 그것이 무작위적인 게 아님을 시사한다. 우리는 본인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투명성에 관한 우리의 우스꽝스러운 관념에 위배되는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차별하는 세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p.304

알코올은 근시 상태를 야기한다. “피상적으로 이해할 때 근시 상태에서는 직접적인 경험의 측면이 행동과 감정에 압도적인 영향을 미친다.” 알코올은 전경에 있는 사물을 훨씬 더 두드러지게 하고, 후경에 있는 사물을 한층 더 흐릿하게 한다. 또한 단기적인 고려사항을 더욱 부각하면서 인식에 집중하게 하고, 장기적인 고려사항은 멀어지게 한다. p.336

술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경험 말고는 모든 것을 밀어낸다. p.337

보통 우리의 충동을 억제해 주는 갈등은 우리가 인격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우리 모두는 즉각적이고 당면한 고려사항과 복잡하고 장기적인 고려사항 사이의 갈등을 관리함으로써 성격을 형성한다. 누군가 윤리적이거나 생산적이거나 책임감이 있다고 할 때가 그렇다. 좋은 부모는 자신의 직접적인 이기적 욕구(혼자 있고 싶고, 잠자고 싶다)를 장기적인 목표(좋은 아이를 길러야 한다)와 기꺼이 조화하는 사람이다. 알코올이 우리의 행동에 대한 이런 장기적인 제약을 벗겨낼 때, 그것은 우리의 참된 자아도 지워버린다. p.339

알코올은 억제된 것을 드러내는 물질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를 변형하는 물질이다. p.340

동의는 두 당사자가 협상하는 것이며, 그 밑바탕에는 협상을 하는 양쪽이 자기가 말하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가정이 깔려 있다. 그런데 협상의 순간에 두 당사자가 각자의 진정한 자기 자신과 너무도 동떨어져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동의를 판정할 수 있을까? p.347

알코올은 모든 남자를 괴물로 만드는 걸까? 물론 그렇지 않다. 근시는 갈등이 높은 상황을 해결해준다. 우리 행동을 막는 고차원적인 제약을 제거해주는 것이다.(p.360)

타인을 존중하려면 한쪽 당사자가 자신의 욕망을 누그러뜨리고, 자기 행동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지를 검토하며, 바로 눈앞에 있는 상황 말고 다른 일에 관해 생각하면서 복잡한 계산을 해야 한다. 그러나 술에 취해서 근시 상태에 빠지면 바로 이런 계산을 하기가 너무도 어려워진다. p.363

사람들은 주취에 관해 자기가 속한 사회가 사고하는 바를 배우며, 이런 이해에 따라 행동하면서 그들은 자기 사회의 가르침을 확인하는 살아 있는 존재가 된다.” 크레이그 매캔드루와 로버트 에저턴이 1969년의 고전적인 저서<(p.363)취한 사람의 행동>에서 내린 결론이다. “사회는 개인과 마찬가지로 술 취한 사람의 용인되는 행동을 분류하기 때문에 그 결과를 감당해야 한다.” p.364

우리는 낯선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탐색에 실제적인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절대 진실의 전부를 알지 못할 것이다. 온전한 진실에 미치지 못하는 어떤 수준에서 만족해야 한다.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올바른 방법은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런 교훈을 가슴 깊이 새겼다면, 지금까지 내가 묘사한 위기와 논쟁 가운데 얼마나 많은 것을 막을 수 있었을까? p.414

우리가 낯선 사람과 조우할 때 저지르는 첫 번째 오류, 즉 진실을 기본값으로 놓는 오류와 투명성의 환상은 낯선 사람을 한 개인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력과 관계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오류들에 또 다른 오류를 덧붙이는데, 이 때문에 낯선 사람과 겪는 문제가 위기로 확(p.436)대된다. 우리는 그 낯선 사람이 움직이는 배경이 되는 맥락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p.437

낯선 사람을 대면할 때 당신은 그 사람을 언제 어디서 대면하는지를 스스로 물어야 한다. 이 두 가지 낯선 사람의 정체에 관한 당신의 해석에 강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p.444

결합하는 요인들은 우리에게 낯선 사람을 모호하고 복잡한 존재 자체로 보도록 강요한다. p.456

낯선 사람을 보고 곧바로 결론을 내리지 말라. 낯선 사람의 세상을 살펴보라. p.461

결합 개념, 즉 낯선 이의 행동이 장소와 맥락에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개념에는 우리가 포착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존재한다. p.483

샌드라 블랜드의 죽음은 사회가 낯선 이에게 말 거는 법을 알지 못할 때 일어나는 일이다. p.530

타인을 신뢰하는 우리의 본성이 모독을 당하는 사태는 비극적이다. 하지만 그 대안, 즉 약탈과 기만에 맞서는 방어 수단으로 신뢰를 포기하는 것은 더 나쁘다. p.531

중앙정보국이 조직 한가운데에 침투한 스파이를 찾아내거나, 투자자들이 모사꾼이나 사기꾼을 발견하거나, 우리 보통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의 심증을 투시력으로 꿰뚫어 보는 완벽한 기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제와 겸손이다. p.532

낯선 이를 파악하기 위한 단서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단서들을 제대로 처리하려면 관심과 주의가 필(p.532)요하다. p.533

만약 당신이 낯선 사람에 대해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의 밑바탕에 존재하는 관념, 그리고 그 관념을 중심으로 우리가 구축하는 제도와 실천을 알지 못한다면, 당신에게 남는 것이라곤 개인적인 것뿐이다. 쉽게 속아 넘어가는 등반가, 부주의한 그레이엄 스패니어, 불운한 아만다 녹스, 저주받은 운명의 실비아 플라스 등등. 그리고 이제 샌드라 블랜드. p.536

낯선 이와 이야기하는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가운데 만약 낯선 이와의 대화가 틀어졌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할까? 그 낯선 이를 비난한다. p.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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