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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불리는 것이 불편합니다-이건범 외] 유예된 논쟁, 예견된 분쟁 | Memento 2020-09-1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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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나는 이렇게 불리는 것이 불편합니다

이건범,김하수,백운희,권수현,이정복,강성곤,김형배,박창식 공저
한겨레출판 | 201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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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한 시대에 호칭의 문제는 관심 밖이 었다. 첨예한 갈등과 대립의 씨앗을 남겨둔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갈 수 있지다. 이 책은 그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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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관관계에서 호칭은 가변적이다. 누구냐에 따라, 어떤 사람과 있느냐에 따라, 상황에 따라 변한다. 호칭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람의 정체성은 하나로 정해지지 않는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남성이자, 한 가정의 아들이자, 한 직장의 일원이고, 누군가의 배우자가 될 사람이다. 여기에 누군가의 친구이자, 선배이기도, 후배이기도 하다. 여기에 친밀한 정도에 상황적 맥락까지 추가 된다면 같은 사람도 무궁무진한 호칭을 가질 수 있게 된다. 호칭의 다양성은 어쩌면 축복일지도 모른다. 다양한 나의 정체성을 대변해주는 만큼, 개인의 존재가 풍부하게 비쳐질 수 있는 면이 있기도 하다.

문제는 호칭의 강압성이다. 호칭은 내가 호출 당하는일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불러주지 않는다. 사회적 위치, 신분적 차이, 문화적 맥락 등 여러 조건들에 따라 불합리하게 불려진다. 특히, 조선 후기부터 시작된 가부장적 제도의 정착은 현재 다양한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한겨레출판에서 나온 <나는 이렇게 불리는 것이 불편합니다>는 이러한 논쟁을 살펴보기에 적합하다. 한겨레에서 책을 쓴 이유는 서두에 나오듯, 본인들의 기사에서 호칭 문제로 호되고 논란을 당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도 이게 왜 문제가 되었는지 이해가 잘안되지만, 이 책이 그 논란의 해명에 그치지지 않기를 바랬다. 제목과 목차를 보고 책을 집어든 이유는 우리 전체 사회에 호칭의 문제에 대해서 궁금했지,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부분들은 많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p.233p.240에서 <한겨레>에서 문제가 생겼던 사안이 책을 쓰게 된 계기라고 했고, 그 계기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분석을 빙자한 소극적 해명 혹은 시대의 흐름이 본인들의 표현에 따르지 못했다고 오해할 수 있는 내용일지 모른다. 개인적으로 해당 문제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기에 일반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저자가 제시한 보다는 가 적절하다고 본다. 뉴스는 객관성을 중시하는 만큼 이라는 표현보다는 를 통해서 누구든 동등하게 평가함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의 문제는 호칭의 사용을 공평하지 못하게 했다는 점이지, 개인적으로 가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라고 느낀다.

호칭은 인정의 문제라는데 깊은 공감을 한다. 결국은 상대방을 어떻게, 얼마만큼 존중해주고 인정해주냐는 차이점에서 문제가 생긴다. 호칭은 오랜 역사적 맥락을 지니겠지만,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이 있다면 바꿔야 겠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줄 방법을 찾아가고 고민해야 할텐데, 쉬운길은 아닐테다. 책에 소개된 다양한 호칭 문제들에 대해서 동의하는 부분도, 이건 아니다 싶은 부분도 많다. 각 기업에서 실시한 호칭의 변화도, 시민단체에서 실시했던 캠페인의 한계도 여기서 비롯되었을 테다. 시대가, 시대 의식이 바뀐만큼, 호칭도 따라가야 했지만 우리는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아왔다. 결국 미뤄진 토론은 싸움으로 번질 수 밖에 없다. 그렇게라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뀐다면 좋은 현상이겠지만...

언어에 민감하신 분들이셔서 그런지 고유어를 많이 써서 좋다. 언어나 호칭등에 관심이 많으신게 드러난다. 그러나 그만큼 영어식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다양한 저자들이 참여한 만큼 개개인의 특성의 차이까지 강제할 수는 없었을 테다. 하지만 불필요하게 느껴질 정도로,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부분도 있다. 전문적인 용어라 어쩔 수 없다지만, 반드시 그런 단어를 써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누군가의 글을 첨삭하거나 할 처지는 아니지만, 호칭과 국어의 얘기를 하면서 굳이 외국의 전문적인 용어만을 차용해서 쓰는 모습은 좋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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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은 인정의 문제고, 인정의 출발점이다.(p.26) ... 누군가 나를 부르는 호칭에는 이 정체성의 일부분이 담겨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기대하는 호칭으로 불리길 원하고, 그런 기대와 현실이 어긋날 때 자신이 남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여긴다. 그것은 곧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부정 또는 도전으로 느껴진다. p.27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호칭은 단순히 정체성 인정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서열 인정의 성격을 강하게 띤다. 그래서 호칭을 둘러싼 갈등은 그 양상이 치열하고 졸렬하다. p.27

호칭은 개인이 속한 크고 작은 사회에서 그의 정체성과 서열을 인정받으려는 욕구와 바로 맞닿아 있다. p.28

호칭 문제는 단지 인간관계와 사회구성이 복잡해진 데에서 비롯하는 것만은 아니다. 민주사회라는 선언과 갑질 사회라는 현실의 충돌이 더욱 결정(p.31)적이다. p.32

호칭은 인정의 문제이므로, 호칭을 개혁함으로써 새로운 인정의 문화, 서열(p.34) 인정이 아닌 인격 인정의 문화를 시작할 수 있다. p.35

우리 사회의 호칭 민주화에서 관건은 나이지위남녀의 차이에 따른 호칭의 서열을 어떻게 녹여버릴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세가지는 어쩔 수 없는 차이를 인격의 차이로 확대시켜 차별을 정당화하는 전통적인 서열 기준이다. p.35

나이는 왜 깡패 노릇을 하게 되었을까?(p.40) ... 나이는 다른 무엇으로도 왜곡되지 않는 공평한 서열 기준이라는 믿음이 있어서다. ... 사회적 조건이 결부되지 않은 자연상태에서 가장 공평한 서열 기준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이에 따른 호칭과 높임법은 공평한 서열 기준에 걸맞는 권리와 의무일 뿐이다. p.41

우리 사회의 위계질서는 한 개인의 삶에서 나이를 기준으로 처음 세워지고, 그것은 호칭과 높임말로 뚜렷하게 틀지워져 굳는다. p.44

서열 기준은 곧 인정 기준이다. p.45

이 자연적 평등에 기초한 서열은 어떤 방법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인지(p.45)라 너무도 폭력적이고 권위주의적이다. ... 오직 나이 든 사람들만의 천국이다. 그러니 한국 사회에서 나이는 사회적 불평등에 반감을 지닌 사람들이 자연적 평등을 빌미로 디미는 유일한 잣대이지만, 어찌 보면 못난 자들이 인정받기 위해 마지막으로 디미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p.46

1980년대 후반의 민주화로 정치적 권위주의가 무너진 뒤에도 큰 변화가 없었으나 결정적으로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혼란에 빠졌다. 나이와 직위가 발을 맞추는 연공서열체계가 순식간에 무너진 것이다. p.51

일터에서 호칭과 높임법은 이 서열 질서를 확인하는 신분증 노릇을 한다. p.55

인정 욕구는 인간관계의 친밀성이라는 속성과 대화관계의 사회적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p.74

말 문화는 계속 바뀌므로 훗날을 대비해 이름 없는 일자리, 새로운 일자리에 번듯한 이름을 붙이는 일을 쓸데없다고 내팽개쳐선 안 된다. p.90

조직 분위기가 억압적이지 않다면 반드시 수평적이어야만 창의력이 높아진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p.105

우리는 시간과 대화의 힘을 믿어야 한다. 새 신을 처음 신었을 때는 발이 편할 수 없지만 신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편해지는 것처럼 새 말과 새로운 호칭도 그렇다. p.124

말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만들어 낸다. 현실이 말의 체계를 통해 파악되는 한, 말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할 뿐 아니라 현실을 만들어나가는 체계이자 구조다. 말이 말로 그치지 않는 것이다.” -임지현 교수 p.134

우리는 이 호칭을 가짐으로써 우리가 원하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나하고 이야기 좀 하자고 요구할 수 있는 강력한 언어적 능력(권능)’을 지니게 되었다. 물론 그 요구를 받아들일지의 여부는 상대방의 권력과 더 큰 관계가 있다. p.153

호칭은 모든 대화의 첫 번째 관문을 여는 열쇠다. p.153

그러나 대화는 아무렇게나 시작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지켜야 할 규칙이 있고, 예의가 있으며, 공동체의 인습이 있다. 다시 말해서 말하는 사람이 임의로 무언가를 말하는 것 같지만 그 구조 속에서 타당하게 인정되는 언어 사용법을 중심으로 대화가 전개되는 것이다. 이것이 대화의 규칙이다. p.154

한국 사회는 더욱더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면서도 언어적으로는 끊임없이 차별화’, ‘차등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큰 문제로 꼽지 않을 수 없다. 사회의 지향점과 언어 사용의 실태 사이에 서로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말로는 4차산업혁명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면서도 사실은 사회구조를 유지시켜나가는 접착제로서의 언어는 아직도 1차산업혁명 이전의 사회를 모델로 삼고 있는 셈이다. p.161

현재 한국 사회를 풍미하고 있는 호칭의 다양성은 사실 사회적 우위를 차지하려는 측과 바닥으로 내몰리지 않으려는 또 다른 세력 간의 숨가쁜 수싸움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p.171

사회 혁신 에너지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한다. 일상에서 나날이 사용하는 언어를 새로운 가치에 걸맞게 바꾼다면 익숙지 않은 새로운 것을 사용할 때마다 새로운 삶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새로운 책임감이 솟구치지 않겠는가. p.172

어린이는 어른의 물리적 과거가 아니다. 대개 좀 작을 뿐, 본연의 오롯한 인격체다. 함부로 다루지 말아야 할 것이다. p.277

필자의 주장은 앞에서 압축, 제시 됐다. / “상대에게 꼭 들어맞는 호칭을 힘들여 찾기 보다 맥락에 맞는 상황어를 발굴하는 것이 가치가 있다.” “대인고나계의 상대성을 일일이 따져 고정적 호칭을 찾기 보다는 새로운 호칭을 위한 기제를 개발하는 게 훨씬 더 의미 있다.” p.277

미래는 초연결사회의 특징을 띌 것이라 한다. ‘연결을 위해서는 협력연대가 밑받침돼야 함은 물론이다. 그것도 익숙한 것과의 물리적 결합이 아닌 이종간의 화학적 결정이 절실하다. 바로(p.278) 잡종과 혼성의 힘, 하이브리드다!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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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공무원 어쩌다 글쓰기-장훈] 삶과 글에서 중요한 것은 끈기, 끊기 | m o r i 2020-09-1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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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어쩌다 공무원 어쩌다 글쓰기

장훈 저
젤리판다 | 2019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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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서 삶을 보고, 끈기와 끊기를 되새겨 본다. 공무원도 근원적으로는 월급쟁이, 직장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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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특성상 글쓰기를 지속해야 한다. 문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빈 칸을 채우다보면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회의감이 든다. 잘하고자 하는 욕심과 잘 할 수 없는 능력의 괴리 속에 끝없이 가라앉는다. 완벽함은 꿈이다. 그저 적당한 분량, 적당한 내용으로 하루하루를 잘 버티기도 쉽지 않다. 글은 생계의 수단에 불과한 걸까. 정훈의 <어쩌다 공무원 어쩌다 글쓰기>를 통해 말한다. 글은 삶이라고.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라고 말한다. 어쩌다가 정무직(별정직) 공무원으로 삶을 시작했고, 그렇게 글쓰기를 업으로 삼게 되었다. 연설문, 메시지 작성만큼 말과 단어의 무게에 짓눌려 사는 사람도 드물 테다. 무엇보다 자신의 말이 아닌 남, 다른 사람의 말을 만드는 일만큼 머리털 빠질 일도 없겠지 싶다. 그런 그가 출퇴근 시간 짬을 내어 글을 썼다. 그리고 책 한권으로 묶어 냈다.

삶이 그렇듯 글쓰기도 끈기끊기의 절묘한 줄타기다.(p.62)” 변화의 시대에 꾸준함이 더 필요하다. 실력과 운도 중요하지만 성공할 때 까지 버텨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꾸준하게, 틈나는 대로 쓰되, 적당하게 끊어 낼 수 있다면 그 나름대로 성공이 아닐까. 게다가 글쓰기는 성찰이다. 커서의 깜빡임에 따라 반복적으로 생각하게 한다. 단어를 다르게 보고, 문장을 나눠보고, 입으로 읊조려 본다. 자연스레 관찰과 통찰을 이끌어 낸다. 그래야만 글을 쓸 수 있다. 일필휘지로 써내려갈 지라도 평소에 생각한 바가 없다면, 글이 나올 수 없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자신이 드러난다.

장훈의 글을 보니 그 사람이 누군지 자연스레 느껴진다. 자신이 배운 바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느끼게 한다. “기록은 곧 존재의 증거(p.107)”이기에, 이 책은 그의 존재다. 자신을 돌아보고, 일터를 고민하는 모습은 여느 직장인과 다를 바 없다. 어쨌든 공무원이 되었고, 어쨌든 공무원도 직장인이다. 일반 직장인과 다른 의무감이 있어야겠지만, 결국은 월급쟁이다. 관계에서 상처받고 후회한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지 못함을 깨닫기도 하고, 숫자 놀음에 가슴 아파한다. 하지만 우리의 고민이 그렇듯 정답은 없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특별할 것 없는 직장인의 이야기로 보아도 좋다. 별정직 공무원이니 만큼 일반적인 공무원과는 조금 차이가 있겠지만 공무원의 삶과 생각법이 어떤지 궁금하다면 읽어 봄직도 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장훈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엿볼 수 있다. 더불어 나 역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다. 내 작은 꿈을 돌아보며 꾸준히 버텨내는 삶, 기다리는 삶을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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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순발력이고 글은 지구력이다. 말은 재치를 더해 주고, 글은 정확성을 더해 준다. 글을 쓴다는 것은 혼자만의 유희가 아니다.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다. ... 메시지를 기획하고 완성하는 일이다. p.27

글쓰기도 끈기끊기의 절묘한 줄타기다. p.62

살아가다 보니 관찰과 통찰을 이끄는 힘이 끊임없는 성찰임을 깨닫게 된다. p.77

관찰의 핵심은 다르게 보기이다. ‘낯설게 보기라고도 할 수 있다. 규칙적이고 일상적이지만 의미 있게 느끼고 보는 힘이다. (p.79) ... 통찰의 핵심은 묶어서 보기이다. 잘 묶으려면 잘 나누어야 한다. 나눔도, 묶음도 바른 가치관과 틀이 있어야 한다. (p.80) ... 성찰의 핵심은 솔직히 보기이다. 나의 내면을 보는 힘, 나를 나대로 볼 수 있는 힘이다. 나를 제대로 봐야 세상도 제대로 볼 수 있다. 세상을 보는 좋은 틀은 성찰에서 시작된다. p.81

기억이 존재다.’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기록은 곧 존재의 증거다. p.107

후회라는 기회비용은 늘 발생한다. 그 기회비용을 최소화 하는 것이 곧 생각의 시간이고, 글쓰기 연습이다. p.110

배려는 배려로, 호의는 호의로 끝나야 하는데 그에 상응하는 상대방의 태도를 기대하게 된다. 그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을 때 더 큰 실망으로 작용한다. p.186

내가 겪었던 과거를 보상받으려 하지 말자. 소통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p.187

다수에게도, 소수에게도 민주주의의 원리는 함께 적용되어야 한다. p.198

정치라는 것은 사람을 모으는 게임이다. 인재를 영입하고, 지지자를 넓히고, 민심을 불러오는 일이다. 누구 한 사람의 천재적인 기획력과 지도력으로 이끌어지는 세상이 아니다. p.231

모든 시민이 미디어다. 시민이 매체이자, 콘텐츠다. 모든 메시지는 시민으로부터 나온다. p.245

어른이 되면서 마음에서 출발한 감정이 몸 밖으로 나가는 출구가 닫히게 된다. p.335

숫자는 지배자의 언어이다. (p.337) 관리를 위한 효율의 표식이다. ... 개개인의 정체성과 숫자는 그리 의미 있는 관계가 아니다. 나는 나로 불려야 하고, 세상의 둘도 아닌 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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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을 쏘다-이상아] 비교해서 읽어보는 재미 | Memento 2020-09-12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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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경성을 쏘다

이성아 저
북멘토 | 2017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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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을 쏘다와 1923 경성을 뒤흔들 사람들을 함께 읽어보면 재미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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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재미는 다양성에 있다. 같은 주제, 같은 내용이라도 저자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큰 뼈대는 바뀌지 않더라도, 표현하는 방식, 무게를 두는 지점은 저자별로 다르다. 역사를 표현할 때도 마찬가지다. (소설이지만) 삼국지나 초한지 같은 고전도 전체적인 줄거리는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판본들이 존재한다. 이문열의 삼국지와 같이 정석이나 표준으로 통하는 작품도 있지만, 다양한 판본이 존재한다. 맣은 저자들과 판본 덕에 원전의 생명력이 길어진다. 소설가 이성아 <경성을 쏘다, 김상옥 이야기>와 기자 출신 김동진의 <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은 역시 그렇다. 전작은 김상옥이라는 인물에, 후자는 의열단에 초점을 맞췄지만 전체적인 큰 줄기는 유사하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었기에 큰 줄기는 동일 할 수밖에 없다.

역사도 인문학의 한 갈래로 결국은 문학 작품이다. 역사와 소설은 상상력을 동원한다는 점에서도 동일하다. 가장 큰 차이는 실재한 사실에 어느 정도 기반을 두느냐 일 텐데, 역사 소설의 경우에는 이 경계가 더욱 모호해진다. 역사 역시 망각된 부분이 많은 만큼 상상력을 기반으로 추론을 해야 하며, 역사소설도 마찬가지다. 간혹 이런 창작물과 관련해서 역사적 진실 논란이 발생한다. 지나친 왜곡이나 상상력이 가미된 경우 소비자의 오해를 살 수 있다고 걱정한다. 이것은 비단 역사소설이나 사극에만 해당하는 부분이 아니다. 전통적인 역사서도 충분히 빠질 수 있는 위험이다.

차이는 표현 방식에 있다. 개인적 취향에 따라 취사선택할 수밖에 없다. 좀 더 생동감 있고, 인물에 이입을 하고 싶다면 소설가 이상아의 책이 맞을 테다. 개인의 생각과 마음까지 상상하는 소설은 인물을 더 세밀하게 묘사할 수 있다. 감정이입이나 인물의 행동까지 추론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와 닿을 수 있다. 좀 더 객관적으로 사건을 보고 싶다면 논픽션에 해당하는 기자 출신의 김동진의 책을 보면 된다. 소설보다는 생동감이 덜하고, 딱딱할 수 있지만, 다양한 사료들이 소설보다 좀 더 객관적으로 제시 될 수 있다. 각자 장점이 있고, 재미가 있다. 중요한 것은 얼마만큼의 엄밀성을 가지느냐다.

두 책을 비교해서 보면서 독립운동이 떠오른다. 독립의 길은 다양하게 이어져 있다. 그럼에도 방법의 차이, 생각의 차이로 얼마나 분열되었던가. 이는 우리 민족의 역량 문제보다 일제의 견제와 탄압, 시대적 흐름, 인간이라는 존재에 근원적 문제겠지만, 이 두 책의 모습과 유사하다. 독립운동을 기억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 기억의 목적은 동일하다. 의열단 이야기는 김동진에 의해 시작되고, 이상아의 소설로 되살아나서, 영화 <암살>로 전 국민에게 각인되었다. 혹자는 정치적, 이념적 프레임으로 불편할 수 있겠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이러한 이야기들이 우리의 과거를 기억하고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독립운동의 목표가 결국 조국의 독립이었듯, 기억을 되살리는 문제들도 결국 우리 사회를 낫게 만들기 위함이다. 방법과 방향의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가 잊어서 되는 기억은 없다. 좋건 나쁘건 그 기억의 영향들은 우리 속에 존재한다. 우리는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오히려 기억을 직시하고, 토의하고, 싸워야 한다. 그 수많은 방향 속에서 수많은 갈등 끝에 더 나은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역사와 소설, 인문학의 힘은 여기서 비롯되지 않을까. 거창한 게 싫다면 그저 재미로 두 책을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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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의 백성으로 태어난다는 건 원죄 같은 것이었다. 갓 태어난 너를 보며 기뻐할 수만은 없었던 아비를 이해할 수 있을지. 선교사들이 뭔가를 가르쳐 준다길래 무작정 다녔던 교회에서 원죄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 모두 죄인이라는 식의 숙명론적 올가미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온몸으로 거부감이 들었다. 모욕감까지 들었다. 그런데 갓 태어난 너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이 바로 원죄란 말이었다. 모욕감이나 거부감은, 그러니까 식민지 백성이라는 나 자신에 대한 자각이었던 것이다. p.43

형님은 두려움과 공포의 차이를 알아요?” / “말해 보게.” / “두려움은 예상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것이죠. 반면 공포는 미지에 대한 거예요. 물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물을 모르기 때문에 무서워하는 겁니다. 물에 뛰어들 용기만 있으면 공포는 사라지죠. 총을 한 방이라도 맞아 본 자가 한 방 더 맞는 게 별게 아니라는 걸 아는 것 처럼요. 가장 나쁜 건, 죽음 바로 직전까지 갔다 오는 거예요. 지옥문 앞에서 돌아온 자, 갔으되(p.112) 경험하지 못한 것, 그게 공포로 남는 거 아니겠어요?” / “무슨 말인지 알겠네. 끔찍하고 잔인한 육체적 고문 앞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이겠지. 하지만 그런 식의 이성적인 추론을 넘어서는 자도 있네. 그게 처음이든 백 번째든, 끝내 이겨 내겠다는 의지를 가진 자들 말이야.”/ “그런 사람이 따로 있다는 거예요?” / “나는 그렇게 믿어. 한 인간의 운명은 그 지점에서 갈린다고 생각해.” / “운명이 갈린다.”/ “똑같은 상황에서 누구는 목숨을 걸고 누구는 일신의 영달을 추구한다. 그것을 가르는 것이 무엇인 거 같은가?” / “글세요, 양심 같은 거?” / “양심, 그렇지만 목숨을 걸기에는 좀 약하지 않나?” / “그럼 뭔가요?” / “나는 존엄성이라고 생각하네. 자기 존엄성.” / “존엄성?” / “자존감이 강한 사람들은 정말 지켜야 되는 게 뭔지 알고 있지.” / “그들이 그런 사람들인가요?” (p.113) / “그들은 영혼이 순결한 사람들이야. 존엄성이니 이런 걸 생각도 하지 않는 순결한 영혼.”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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