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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6~7권-박시백] 역사의 진가, [35년]의 진가 | Memento 2020-08-15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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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고화질세트] 35년 6~7권 (총2권)

박시백 저
비아북 |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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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과거의 이야기지만 현재에 살아 있고 미래를 지향한다. 박시백 화백의 [35년]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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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75주년 광복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축사에서 전쟁, 외환위기, 금융위기 이어 일본 수출규제 위기 이겨냈다고 평가하며 자주독립의 나라를 넘어, 평화와 번영의 통일 한반도를 미래로 제시했다. 이에 대해 동의하건 안하건, 확실한 바는 아직 우리는 완전한 독립을 이뤘다고 평가하기 힘든 상황이다.

역사의 흐름은 얄궂게도 전범국가인 일본이 아닌 한반도를 분단하도록 만들었다. 역사는 한반도를 반으로 두동강 냈다. 긴 수탈과 식민지배의 영향으로 부족한 인적난 속에 반민족 청산은커녕 반민족행위자들이 유임되는 결과를 낳았고, 남북 모두 사회전반에 걸쳐 일제의 잔재를 솎아낼 시간이 부족해졌다. 여기에 6.25. 동란은 쐐기를 박았다. 양국 모두 독재체재를 구축했고, 감정의 골은 깊어졌다. 쌍방의 대립은 상호 경쟁과 발전이라는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소수의 지배층을 위한 명분이 되었을 뿐이다.

역사는 과거의 이야기지만, 현재에 살아 있다. 완전한 독립이 이뤄지지 않았듯, 일제 강점기의 유산은 현재에 새겨져 있다. 그리고 바꿀 수 없다. 상처만 말끔히 도려내는 방법은 없다. 몸에서 살을 1파운드를 떼내면서 피 한방울 흘리지 않는 방법은 없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세대가 앞으로 더 줄어드는 만큼 유예된 청산은 앞으로 더 이루기 힘들테다. 남는 것은 기록과 기억 뿐이다. 박시백 화백의 <35>이 완결되었다. 여기에 또 다른 기록과 기억이 남겨졌다. 저자의 표현대로 더 많은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활약상을, 기개를 담아내지 못한 아쉬움너무 많은 사람, 사건, 이야기를 담으려한 모순의 결과물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한민족이 존재하는 한 이 모순은 영원히 지속될 테다. 다만 우리가 기록하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역사는 현재에 살아 있지만, 미래를 향한다. 과거의 이야기를 복원해 오늘날 기록하고 기억함은 미래를 지향하는 일이다. 앞으로 잊지 않고,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역사의 진가, <35>의 진짜 의미는 여기에 있다. 당분간은 이보다 더 나은 기억은 보기 힘들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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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김동진] 기록하지 못하고 기억하기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 Memento 2020-08-13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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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

김동진 저
서해문집 | 2016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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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지 못하고 기억하기 힘든 이들을 위한 기록과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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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공동체의 의식적인 집단 기억이다. 긴 세월을 거치면서 우리 공동체가 겪은 일들은 이 의식적인 집단 기억에 주목한 누군가의 기록을 통해 역사가 된다. 그런데 모든 기억이 역사로 남는 것은 아니다. 어떤 기억은 거대한 힘에 의해 끊임없이 되살려지고, 어떤 기억은 무관심 속에 잊히고, 또 어떤 기억은 잊힐 것을 강요받는다. p.5

 

우리가 기억하고 기록해야 하는 이유다. 저마다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이 역사가 될 수 있다.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고 하지만 정답은 아니다. 때로는 패배자일지라도, 피해자일지라도 기록한 사람이 역사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독립운동사는 승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록을 많이 남기지도 못했다. 기록을 남길 수 없는 위치였다. 기록을 남겼다가는 자신 뿐만아니라 동지와 가족이 위험해질 우려가 높다. 그렇기에 기록에 남지도, 기억에 남지도 못한 수 많은 독립운동지사들이 있을 테다. 정당한 평가는커녕 영원히 역사 속에서 사라지는 경우도 많았을테다.

그래도 저자의 노력으로 <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이 책으로나오고, <암살>의 영화가 만들어 졌다. 그 후 이들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다. 혹자들은 의열단의 존재에 대해 불편해 할지 모르겠다. 의열단 단장 김원봉은 북한의 고위급 지도자로(비록 김일성에게 숙청당했지만) 6.25. 전쟁의 원수로 인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북한으로 가게 된 이유는 너무도 유명하다. 결국 해방기에 그를 포용해 내지 못한 남한 사회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남에서도 북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진정한 독립을 이룬 조국을 원했지만, 3의 세계, 자그마한 광장조차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들에게 과오를 정당히 평가해줄 역사마저 없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독립운동사를 만들어갈지 궁금할 따름이다. 해방기 일본 순사출신의 고문에 통곡을 하며 월북을 했다고 하는데, 정당한 평가는커녕 우리 역사에서 한켠 내어주지 못한다면 똑같은 일은 반복하는게 아닐는지.

영화의 이미지가 너무나도 강해서 아쉽지만, 그래도 한 번은 읽어봄직하다. 우리가 알고 있고 기억하는게 전부가 아님을 알고 있다면. 그래서 꾸역꾸역 무슨 말이라도 남겨본다.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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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만든 공간-유현준] 공간이 만든 역사, 역사가 만들 공간 | Memento 2020-08-09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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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공간이 만든 공간

유현준 저
을유문화사 |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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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생각을 만들고, 생각이 공간을 만든다. 위기의 시대 우리는 어떤 공간과 생각을 만들어야 할까. 그것은 인류의 생존이 걸린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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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모리스의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에 따르면, 생물학과 사회학은 전 지구적 유사성을 설명하는 반면 지리학은 지역적 차이를 설명한다(p.94)”고 말한다. 이 지리가 사회발전을 추진하는 한편 사회발전은 지리의 의미를 규정(p.96)”하는데, 여기서 핵심은 지리에 따른 기후다. 지리에 따른 기후가 사회의 발전 정도를 규정했고, 이 발전 정도가 역으로 지리의 의미를 변화시키면서 한계에 봉착했을 때 어떻게 돌파하느냐에 따라 역사는 발전해 왔다고 한다. 이 한계를 어떻게 돌파하느냐에 따라 역사의 흐름은 뒤바꼈다.

유현준 교수의 <공간이 만든 공간>은 이러한 역사적 흐름에 맞춰 건축이 발전해온 모습을 자세히 설명해 준다. 이 지리와 기후의 변화에 따라 건축이 어떻게 변화해 왔고,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어떻게 융합하고 발전해 왔는지를 살펴본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에서 두 가지 법칙체계-생물학과 사회학-가 지구적 규모에서 역사의 모습을 결정하는 반면, 세 번째 법칙체계-지리-는 동양과 서양이 이룬 발전의 차이를 결정(p.111)”했는지가 건축물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두 문명 모두 사람이 무리를 이루고 살아가는 공통점이 있지만, 지리와 기후라는 변수에 의해서 서양은 벽 중심의 건축을, 동양은 기둥 중심의 건축을 발전시켜 왔다. 여기에 누가 뛰어나고의 차이는 없다. 인류라는 공통적 특성을 바탕으로 기후에 각자의 방식으로 적응했을 따름이다.

 

공간은 생각을 만들고, 생각은 공간을 만든다. 기후, 농사법, 공간의 성격 그리고 이를 통해서 만들어진 생각, 이 네 가지는 때로는 한 방향으로 영향을 주고, 때로는 상호 영향을 미치면서 수천 년간 고유의 문화적 특징을 형성해 왔다. (p.223~224)”

 

이런 차이가 전혀 다른 문명을 창조했지만, 현재까지는 서양의 건축이 한계를 먼저 돌파했다. 과학의 발전은 새로운 건축 재료를 제공했고, 서양의 지배력은 동양의 문화를 먼저 흡수케 했다. “지금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나 콘크리트로 높게 지어진 국제주의 양식만 남아 있는 세상이 되었다. (p.319)” 서양의 전 세계적인 영향력 확보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다양성의 소멸이다. “21세기 문화 다양성의 멸종 문제는 기술적 요소만 도입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p.402)” 세계 어디에 살더라도 같은 공간이 생기고, 같은 생각을 하는 세상이다.

다양성의 종말은 우리에게 새로운 위기를 몰고 온다. 도시와 건축물 역시 생명체와 다름없다. 다양성의 소멸은 그만큼 변화에 대응력을 떨어뜨린다. 코로나19, 기후위기 등은 이러한 위기를 가속화하고, 인류와 도시의 생존에 위협이 될테다. 이언 모리스는 말했다.

 

어떤 시점에서 발전의 역설은 진정으로 혁신적인 변화로만 뚫을 수 있는 단단한 천장을 만들어낸다. 사회발전은 이러한 천장에 구속되며 필사의 경주를 펼친다. 우리는 사회가 문제 해결에 실패할 때 끔찍한 재앙들-기아, 전염병, 통제 불가능한 이주, 국가실패-이 한꺼번에 사회에 밀어닥치기 시작해 정체를 후퇴로 바꾸는 실례를 줄줄이 목격하게 될 것이다. ... 후퇴는 수 세기에 걸쳐 파국적인 붕괴와 암흑 시대로 탈바꿈한다. (p.91)”

 

우리는 그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공간은 생각을 만들고, 생각은 공간을 만든다. 우리의 생각은 어떠할 것이고, 우리는 어떤 공간을 만들고, 어떤 공간에서 살아갈 것인가. 그것이 우리의 목숨줄을 쥐고 있다. 유현준 교수의 전작들이 공간에 대한 생각이었다. 이 책은 공간에 대한 생각을 역사적 측면에서 살펴보고, 우리에게 생각을 촉구한다. 위기의 시대, 우리는 이런 공간에서 살아왔다. 앞으로 어떤 공간을 추구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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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가 가지고 있던 기술적, 사회적, 경제적 제약 들 속에서 환경적 제약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문화가 되었고 그 문화의 물리적 결정체가 바로 건축물이다. p.11

모든 창조는 온도 차에 의해서 시작된다. p.13

서로 다른 생각들이 충돌하고 융합하려면 많은 사람이 좁은 공간에 모여서 살아야 한다. 도시는 그런 환경을 제공해 준다. 도시는 문명 발전의 필요조건이다. p.17

차이융합에 이어서 새로운 창조를 만드는 요소는 기술이다. p.22

건축물은 그 시대의 지혜와 집단의 의지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결정체로, 그 시대와 그 사회를 대변한다. p.40

빛을 느끼기 위해서 그림자가 필요하듯, 빈 공간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물체가 필요하다. 역으로 추론해 보면, 물체가 만들어지면 동시에 빈 공간도 부산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간의 건축 행위는 일차적으로 물체를 만드는 것이지만, 최종(p.51) 목적은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빈 공간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 빈 공간을 프레임하기 위한 물체를 만드는 일은 엄청나게 큰 에너지와 돈이 들어가는 일이다. ... 그렇기 때문에 그 빈 공간이 구축되는 형식과 모양을 보면 만든 사람의 생각과 문화를 비추어 볼 수 있다. 따라서 그 공간을 분석하고 이해하면 사람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p.52

서양의 건축은 벽 중심의 건축을 하면서 내부와 외부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공간의 성격을 갖는 반면, 동양은 기둥 중심의 건축을 하면서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모호한 성격의 공간을 갖는다. p.88

인류 문명은 다양하게 계속 진화하는 것 같지만 사실 본질을 들여다보면 1만년 전이나 지금이나 문명은 단순한 인공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p.

벼농사를 지었던 사람들은 농사짓는 방식 때문에 결속하게 되고, 집단의식을 키우고, 주변인과 협업하도록 가치관과 시스템이 발달해 왔다. p.98

뒤에 산이 있고 앞으로 강이 흘러야 대지가 자연스럽게 앞으로 기울어지게 되고, 그래야만 비가 와도 배수가 잘 돼서 땅의 침하가 적고, 습기가 적어서 나무로 만든 건축물이 오래 유지될 수 있다. 남쪽으로 기울어진 땅이어야지 단위 면적당 더 많은 햇볕을 받게 되고, 비가 온 후에도 땅과 건물이 잘 말라서 건축물이 더 잘 유지될 수 있다. 그래서 배산임수라는 풍수지리 원리가 나온 것이다. 기둥 중심의 건축으로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건축 공간이다 보니 여러모로 주변과의 관계가 중요한 건축으로 발전했고, 이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비쳤을 것이다. 벼농사를 지으면서 집단행동이 필요해져 사람 간의(p.116) 관계에 무게를 두는 가치관이 형성됐다면, 건축을 통해서는 사람과 건축과 주변 자연 환경과의 관계에 무게를 두는 디자인관이 발전하게 되었다. p.117

강수량의 차이는 농업 품종의 차이를 만들고, 품종의 차이는 농사 방식의 차이를 만들고, 농사방식의 차이는 가치관의 차이를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건축에서 동서양의 강수량 차이는 건축 디자인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발전시켰고, 건축 공간은 행동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행동 방식은 궁극적으로 사람의 생각에도 영향을 미쳤다. 서양은 밀 농사의 혼자 농사하는 방식에 따라 개인주의 성향이 커졌고, 외부와 단절된 창문 없는 벽 중심의 건축으로 바깥과 교류가 적은 성격의 공간으로 발전했다. 건축물(p.121) 역시 독립된 개별적인 건축물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건축적 개인주의가 발전했다. 반면 벼농사는 집단 농사 방식으로 사람 간의 관계가 중요한 가치였으며, 많은 강수량 때문에 사용하게 된 재료인 목재를 이용한 기둥 중심의 건축 양식은 외부 자연 환경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생활양식으로 발전되었다. 강수량 차이로 인해서 서양은 독립된 개인이 중요한 사회가, 동양은 관계를 중요시 하는 사회가 되었다. p.122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 둘 다 절대적인 진리의 세계가 있는 것으로 보는 공통점이 있다. 때문에 그 둘을 바탕으로 한 서양의 사고방식에는 절대 진리의 세계가 있으며, 그곳에 이르는 길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길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개념이 깔려 있다. 이 같은 사고방식이 있었기에 수학이 서양 문화에서 큰 영향력을 갖는 학문으로서 위치할 수 있었고, 그 토대 위에 과학혁명이 가능했던 것이다. p.149

사람들은 존재하는 즉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게 되는데, 동양에서는 그 관계 속에서 가치를 찾으려고 했다. 이는 집단 노동 방식으로 벼농사를 지으면서 만들어진 가치관이다. p.156

서양 문화는 절대성’, ‘수학으로, 동양 문화는 관계비움으로 문화적 성격을 설명했다. ... 동서양 각 문화권의 패러다임은 기후가 만들어 낸 농사 방법과 건축 공간에 의해서 서서히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천재적인 사상가가 어느 날 갑자기 동서양 문화의 특징을 세웠다기 보다는 그 시대 그 지역의 패러다임이 그런 생각을 만들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p.165

일방향성과 다방향성은 두 건축문화가 각기 가지고 있는 다른 특징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서양 문화는 세상을 절대자가 만든 수학적 규칙의 조합으로 보고, 동양은 세상을 관계의 집합으로 보는 시각 차이에서 나온 것이(p.173)라 여겨진다. p.174

서양 건축은 육중한 벽이 공간을 구획하고 있는 중심의 건축이고, 동양 건축은 기둥중심의 건축이다. 서양은 벽을 세워서 그 안에 만들어진 방을 사용하는 방식인 반면, 동양은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으면 그곳이 곧 건축 공간이 된다. ... 동양 건축에서는 영역성이 건축 평면도에서 점으로 표현되는 기둥으로 만들어져서 안팎의 경계가 모(p.189)호하며 빈 공간 자체의 모양이 규정되기 힘든 공간이다. 따라서 빈 공간은 성격상 내외부를 관통하여 흐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반면 서양 건축의 빈 공간은 평면상 선으로 표현되는 벽이 만드는 공간으로, 안과 밖의 공간 경계가 벽에 의해서 명확히 구분되는 딱딱한 느낌의 공간감을 가지고 있다. p.190

동양 건축의 주요 기본 요소들은 기둥, 지붕, 낮은 담장이라는 세 가지로 규정할 수 있다. 동양의 건축 공간은 이 세 가지가 구획하면서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요소들의 가치는 바둑판 위의 돌처럼 상대적인 관계에 의해서 결정된다. p.217

서양 건축, 특히 종교 건축에서는 기하학적으로 점점 더 복잡하게 진화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반면 동양에서는 건축 양식이 진화라고 할 만한 양식적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동양 건축은 격자와 기둥에 기초한 공간 구조가 수천 년간 반복되어 왔다. p.216

강수량이라는 환경 요소가 동서양에 두 가지 다른 공간적 특징을 만들었다. 서양에서는 벽으로 강간의 경계가 명확하게 나누어져 있다. 서양 건축의 지붕에는 처마도 거의 없다. 반면 동양에서는 띄엄띄엄 놓인 기둥과 긴 처마로 인해 내외부 공간의 경계가 모호한 특징이 있다. 안팎의 경계가 모호한 동양에서는 철학자의 생각도 구분보다는 융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 동양의 건축 공간은 항상 내부와 외부, 자연과 건축물의 융화를 통해서 두 개체 간의 일치를 추구해 왔(p.222). 따라서 동양의 빈 공간은 규정되어 있기보다는 유동적이며 내외부를 관통해서 흐르는 듯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강수량은 농사의 주요 품종을 결정하고 농사법은 사람의 가치관과 생각을 형성했다. 또한 강수량은 건축 재료를 결정했고, 그에 따라서 건축 공간의 성격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간은 사람의 생각에도 영향을 미쳤고, 반대로 생각은 건축 공간의 디자인을 결정하기도 했다. 결국 자연환경이라는 부모는 사람의 생각과 건축 공간이라는 두 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생각과 건축 공간은 같은 부모 아래에서 태어난 자녀처럼 공통된 성격이 있다. 그리고 이 둘은 상호 영향을 미친다. 공간은 생각을 만들고, 생각은 공간을 만든다. 기후, 농사법, 공간의 성격 그리고 이를 통해서 만들어진 생각, 이 네 가지는 때로는 한 방향으로 영향을 주고, 때로는 상(p.223)호 영향을 미치면서 수천 년간 고유의 문화적 특징을 형성해 왔다. p.224

가뭄이 농업의 시대를 열었듯이 편서풍이라는 제약은 새로운 기술의 시대를 여는 방아쇠가 되었다. p.257

서양인들은 심할 정도로 정원의 자연을 기하학에 끼워 맞춰 왔다. 서양의 조경 디자이너들은 정원을 디자인하면서 대지를 기하학적으로 분절하고 그 안에 자기 완성적인 우주를 창조하는 데 주력했다. 조경 디자인은 자연을 인공적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조경 디자인을 보면 그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엿볼 수 있다. p.276

강철과 콘크리트라는 재료와 엘리베이터라는 기계, 이 두 가지 기술 혁명이 전 세계의 건축을 바꾸었다. 이 두 기술의 힘은 너무나도 강해서 20세기부터 인류의 건축 문화는 이 두 엔진이 이끄는 대로 갔다. 결과는 지금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나 콘크리트로 높게 지어진 국제주의 양식만 남아 있는 세상이 되었다. p.319

서양의 건축은 벽의 건축’, 동양의 건축은 지붕의 건축’ p.334

사실 르 코르뷔지에가 이야기한 근대 건축의 5원칙이라는 것이 두 번째 항목인 옥상 정원을 제외하고 나면 다 동양의 기둥식 구조의 건축에서 보이는 디자인과 거의 똑같다. (p.359) ... 근대 건축의 5원칙은 동양의 기둥식 구조의 건축 양식이 서양에 전파되어 산업혁명의 새로운 재료인 콘크리트와 함께 만들어진 문화적 변종이라고 볼 수 있다. p.363

문화 변종의 탄생은 패러다임 변화의 결과다. 생각은 창작자 자신이 의식을 하건 안 하건 상관없이 영향을 받고 진화하는 법이다. p.364

시대가 노동자를 위한 저렴하고 빠르게 지을 수 있는 건축 디자인을 필요로 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손이 많이 가는 장식을 없애는 것이었고, 마침 이들에게 매력적이고 이국적인 나라인 일본의 건축에 장식이 없었다. p.369

역사상 뛰어난 생각은 모순되는 서로 다른 것들을 하나로 호합시키기 위한 노력의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p.396

제대로 된 창조는 문화와 기술 두 마리 토끼를 잡았을 때 만들어진다. 문화적 요소의 융합이 배제된 상태에서 기술적인 부분만 적용하면 다영성이 소멸된다. 21세기 문화 다양성의 멸종 문제는 기술적 요소만 도입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p.402

시간이 돈이고, 공간이 돈’ (권터 니츠케) ... 미국과 같이 공간이 넘쳐 나는 지역에서는 시간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 거리를 줄이는 방향으로 건축이 발전해 왔다고 한다. 고속도로가 대표적인 예다. 멀리 떨어진 도시로 이동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발전한 건축 시스템이다. 이와 반대로 일본 같은 섬나라에서는 공간이 부족하고 시간은 오히려 남는다. 이런 경우에는 공간을 극대화하기 위해(p.449)서 시간을 지연시키는 쪽으로 건축이 발전해 왔다는 그의 주장이다. 같은 면적의 공간이라도 이동 시간을 늘리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면 많은 기억이 남게 되고, 따라서 공간이 더 넓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p.450

문화인류학적으로 한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은 서로 비슷한 생각과 공감대를 공유하게 되는데, 이와 유사하게 같은 컴퓨터 언어, 즉 같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디자이너들의 생각과 결과물들은 서로 비슷하게 나올 수밖에 없다. p.507

컴퓨터를 이용한 작업의 효율성이 높아진 점은 장점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서 다양성의 소멸이라는 치명적인 결함을 갖게 된 것(p.511) 도 사실이다. p.512

기술이 이끄는 획일화를 어떠한 방식으로 피하느냐가 이 시대의 중요한 화두다 p.513

지금은 건축을 뛰어넘어 새롭게 바뀐 세상에 적합한 도시(p.521)의 모습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시대가 되었다. p.522

삼성전자는 더 이상 반도체 회사가 아니다. 반도체를 만드는 삼성전자는 가상 공간 속 부동산을 생산하는 재료를 공급하는 회사, 즉 가상공간을 만드(p.529)는 부동산 회사다. 현대 사회에서 디지털 가상공간이 융합의 주요 플랫폼이다. p.530

우리가 어떻게 꿈꾸느냐에 따라서 다음 시대의 도시가 바뀌고, 라이프 스타일(p.536)이 바뀌고, 사회가 바뀔 수 있다. p.537

기술은 눈에 보이지 않게 숨겨지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p.541

창조적인 생각은 항상 다른유전자와 결합으로 만들어졌다. 다름이 기후 변화에서 온 것이든, 지리적 차이에서 온 것이든, 전공 분야의 차이에서 온 것이든 상관없다. 지금 시대의 다름의 원천은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유전자다. 아날로그 유기체인 인간이 디지털과 융합함으로써 새로운 생각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p.548

역사가 말해 주듯이 기술혁명만으로는 획일화를 벗어나기 힘들다. 디지털과의 융합 없이는 진화에서 뒤처지겠지만 동시에 디지털과의 융합만으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창조적 생각을 위해서는 디지털 이외에 다른 무엇이 더 있어야 한다. 역사를 보면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루이스 칸처럼 과거에서 문화 유전자를 찾는 것이다. p.549

창조는 서로 다른 재료의 융합에서 나온다. ... 그런데 이 시대에 새로운 변수가 하나 생겼다. 다름 아닌 기후의 변화다. ... 첫 번째 지구 온난화는 자연이 만들어 낸 것이지만 우리가 사는 시대인 두 번째 지구 온(p.552)난화는 인간이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모든 문화혁명의 첫 번째 도미노가 기후 변화였다. 그 도미노가 쓰러졌을 때의 연쇄 반응을 생각하면 지금부터 시작될 또 다른 연쇄 반응은 엄청날 것이며, 어느 방향으로 갈지는 예측 불가능하다. p.553

라이프스타일 변화는 공간의 재구성을 만든다. 공간 구성의 변화는 우리 사회 내 권력의 재배치를 만든다. 코로나19는 진정되겠지만, 그 이후 우리는 공간과 권력의 재배치가 시작되는 변화의 시작을 볼 것이다. ... 기존 권력의 해체와 분산은 또 다른 종류의 문제를 만든다. 공간을 통한 권력의 재배치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는지 잘 지켜봐야 한다. p.563

새로운 생각은 시대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크게 두 가지 원리가 있다. 첫째는 제약이고, 둘째는 융합이다.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서 새로운 생각이 나오고, 서로 다른 생각이 융합되었을 때 새로운 생각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둘을 하나로 묶는 공통점이 있다. 모든 창조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변화와 새로움을 거부했던 문화는 발전을 멈췄다. 그리고 그런 문화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다면 열린 마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의 불완전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신이 완전하다고 느끼는 자는 새로운 것을 만들지 못한다. (p.571) ... 더 좋은 것으로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을 만큼 나는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지금이 진화의 마지막 단계라고 생각하는 순간 창조적 변화는 멈추게 된다. p.573

역사 속에서 새로운 생각은 위기와 다름에서 시작했다. 위기와 다름은 보통 갈등과 충돌을 야기한다. 그런데 갈등과 충돌이 있다고 자동적으로 새로운 생각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새로운 생각은 갈등과 충돌을 화합시키려는 마음이 있을 때 만들어진다. p.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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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교토의 1만 년-정재정] 역사에서 그랬듯 앞으로도 | Memento 2020-08-09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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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서울과 교토의 1만 년

정재정 저
을유문화사 | 2016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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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를 통해 한일관계사를 살펴보고, 앞으로 양국의 관계도 고민해 볼 수 있는 책. 더불어 교토 여행시 필수 참고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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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나라 이웃나라. 일본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단어다. 주변 이웃국가에 중국과 러시아가 있지만 워낙 대국이다보니 이웃나라라고 해도 친근감이 덜하다. 반면 일본은 (한반도 보다 확실히 크지만) 비교적 규모 면에서도, 문화 면에서도 비슷하다. 인정하기 싫을 수 있겠지만, 일본과 한반도는 끊임없이 교류를 해왔다. “한국은 일본의 고대 문명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일본은 한국의 근대 문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p.8)” 먼저 교류를 주도 했다고 우쭐할 필요도 없고, 나중에 기회를 주었다고 자만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얽히고 설킨 두 민족간의 갈등은 그칠줄 모른다. 역사 그 자체가 나라간의 관계에 이렇게 직접적인 변수로 영향을 주는 사례도 많지는 않을 듯 싶다.

<서울과 교토의 1만 년>은 일본사에 정통한 정재정 교수의 시각에서 본 교토의 역사다. 나의 관심은 사실 교토보다 서울이었다. 일본에 관심은 많지만 정작 직접 방문해 볼 기회가 없다보니 그저 먼 나라에 불과했다. 그 중에서도 교토라면 문화재가 많고 대학이 많은 도시정도의 이미지다. 그런데 교토와 서울과 1만년 동안 무슨 관계를 맺어왔다는 말일까. 아니면 양국의 오랜 수도였던 만큼 교토 역시 비교대상이란 뜻일까. 개인적으로 교토와 경주를 비슷하게 여겼는데, 서울과 대비한다고 해서 남다른 궁금증을 가졌다. 실질적으로 서울 그 자체보다는 한반도를 의미하는 느낌이다.

지금은 코로나19 상황 등 해외에 대한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쿄토와 오사카는 한국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장소다. 그래서 자주 방문했거나, 내용에 대해 충분히 아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교토를 자주 방문해보지 못했거나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는 사람에게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다. 무엇보다 교토의 형성부터 시작해서 일본과 현재 관계까지 고민케 하는 흐름은 역사를 어떻게 봐야할지 생각하게 해준다. 일본과 한국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오랜기간 교류해 왔고, 교류해 갈 것이다. 교토에 묻힌 많은 유적들이, 양국간 얽혀 있는 다양한 유전자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늘어갈 수 많은 양국의 관광객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자기본위로만 바라보면 갈등과 대립의 측면이 부각되고, 두 나라 국민은 서로 좋지 않은 기억과 감정을 갖게 된다.(p.75)” 지금 한일 양국, 먼나라이지만 가까운 이웃나라 간에 기로에 섰다. 역사는 쟁점화되고, 군사관계는 약화되고 있다. 미국은 양국을 압박하고 있고, 중국은 날로 위세를 높여 간다. 여기서 두 국가의 연대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역사가 교묘하게 가로막고 있다. 그렇다면 발전적으로 나아가기 위해 역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한일 양국은 충분하지는 않지만 역사 문제를 다뤄 온 경험, 수법, 실적을 이미 많이 축적하고 있다. (p.709)”

이 책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지구가 파괴될 때까지 아마도 티격태격 두 나라는 살아갈 것이다. ‘유년기를 함께 보낸 쌍둥이 형제는 그렇게 함께 성장한다. 서로에게 큰 상처를 남기며. 그리고 그 상처를 어떻게 극복해 내는가가 유년기를 넘어 청장년기를 넘어 인생 전체를 현명하게 보낼 수 있게 한다. 양국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그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작은 실마리를 교토에서 찾아보자. 정재정 교수의 이 책이 충분한 답이 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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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일본의 고대 문명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일본은 한국의 근대 문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문명의 교류는 평화롭게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침략을 통해 강제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런 우여곡절을 거쳐 한국과 일본은 지구상에서 인종적, 문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가 되었다. 미국의 저명한 문명사가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 , >라는 명저에서 이런 한국과 일본을 유년기를 함께 보낸 쌍둥이 형제로 비유했다. 역사 인식을 둘러싸고 갈등과 대립을 되풀이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에게 한일 관계의 역사를 새롭게 인식하라고 촉구하는 그의 경구에 백 퍼센트 동의할 수는 없지만 교토의 유적, 유물에는 그런 충고를 뒷받침해 주는 사연이 너무나 많이 깃들어 있다. p.8

인구 150만 명에 불과한 교토가 어떻게 이렇게 세계에 자랑할 만한 학술 기관과 첨단산업을 많이 보유할 수 있게 되었을까? 나는 그 답이 옛것을 우려내 새것을 창조한느 노하우, 곧 자신의 문화와 전통을 시대 변화에 맞게 변형하고 발전시켜 가는 혁신에 있다고 생각한다. 법고창신 즉, 옛것에 토대를 두고 변화를 주어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지혜야말로 교토의 역사 그 자체고, 발전의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p.71

한국과 일본의 문명 교류를 파악하는 데는 세 가지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편리하다. 인간의 이동, 전쟁의 충격, 물자의 교역이 그것이다. 물론 이 세 가지 요소는 서로 엉켜 있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분리하여 설명하기는 어렵다. p.73

한일관계의 역사를 이렇게 자기본위로만 바라보면 갈등과 대립의 측면이 부각되고, 두 나라 국민은 서로 좋지 않은 기억과 감정을 갖게 된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역사 인식을 둘러싼 충돌이 정치, 외교를 제약할 정도의 비중을 가진 만성적인 현안으로 대두되어 있다. 두 나라 지도자가 이른바 아시아 패러독스에 빠져 정상회담조차 꺼려하고 있는 요즈음의 현실은 편협한 역사 인식의 덫이 한국과 일본 사(p.75)이를 얼마나 강하게 옥죄고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p.76

한국과 일본의 문화 교류를 이야기 할 때 조심할 사항이 하나 있다. 흔히 아시아 대륙과 일본열도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한반도 일대가 문화 교류에서 교량의 역할을 해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교량은 인간이 건너다니는 연결고리일 뿐,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다. 한반도 일대는 옛날부터 한국인이 살아왔고, 독특한 문명을 발전시켜 온 역사 전개의 무대이다. 따라서 한반도 일대가 아시아 대륙 문명을 일본열도에 전달하는 고량의 구실을 해 왔다는 표현은 자칫하면 한반도 일대에 살아 온 한국인의 존재와 그 역할을 무시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역사 인식의 왜곡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p.83) ... 아시아 대륙 문명은 한반도 일대에 수용된 후, 이곳의 주인공인 한국인에 의해 한국식으로 소화되고 변형되어 일본으로 건너갔다. 아시아 대륙의 문명만이 아니라, 한반도 일대에 산 한국인의 창조적 활동에 의해 형성된 개성적인 한국 문명이 일본에 전해진 것이다. p.84

역사를 이야기할 때는 이웃 나라 간에 이루어진 사람의 이동과 문화의 교류를 균형 감각을 가지고 파악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p.103

동서고금의 역사 전개에서 어떤 나라가 선진 문명을 직접 받아들일 만한 지리적 위치에 있지 못하거나 그것을 직접 소화해 낼 내재적 능력이 모자랄 때, 인접 국가에서 일단 걸러지고 새김질한 문명을 수용하는 것은 자주 볼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한국과 일본은 문명 전환에서 서로에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p.106

어떤 이가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의식과 소비 양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받아들인 것을 한 번 쓰고 내버리는 설사 문화, 일본은 받아들인 것을 꼭꼭 쌓아 두고 우려먹는 변비 문화라고. p.149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4백 여 년 전에 죽은 역사의 인물이 아니라 교토인들의 일상 속에 살아 있는 현실의 위인이다. p.305

이런저런 사정을 고려하여 나는 19세기 이래 조선이 점차(p.402) 쇠약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세계정세의 변화와 국제무역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변방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당시의 위정자들이 이런 상황을 간파하고 적절한 대책을 강구했더라면 조선은 외세의 압박을 극복하고 스스로 근대국가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을 것이다. p.403

근대국가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인력의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갑신정변은 그 주력을 제거해 버린 뺄셈의 쿠데타였고, 메이지 유신은 그 대군을 키워 낸 덧셈의 혁명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p.424

료마가 일본에 남긴 최대의 업적은 메이지 유신을 추진하는 세력이 표방한 존왕양이 사상에서 양이(오랑캐를 물리침)’를 빼고 그 자리에 막부가 시도한 근대화를 집어넣은 데 있었다. 곧 두 적대 세력이 각각 지향하는 좋은 점만 골라서 황금 결합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메이지 유신을 적은 비용을 들여 많은 이익을 거둔 저비용 고수익의 혁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면, 그 공적의 많은 부분을 료마에게 돌려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p.426

역사를 추체험(追體驗)하는 것은 역사 인식을 달련하는 데 유익 p.521

일본은 민족주의가 신앙과 결합하여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반면에 한국의 민족주의는 직설적인 언설로 주입하여 억지로 마음에 담겨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p.537

남한과 일본은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일제강점기 말기의 천황숭배 군국주의 체제와 전혀 다른,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체제를 지향하는 미국의 통치를 함께 경험했다. ... 현대의 한일 관계는 바로 이런 공통의 문명 기반 위에서 맺어지고 영위됐다고 할 수 있다. / 반면 북한은 일제강점기 말기와 오히려 유사성이 강한 소련군의 통치를 겪었다. 그리고 6.25 전쟁과 그 이후에는 일당 독재정치와 사회주의 통제경제에 익숙한 중국과 소련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이는 일제강점기 말기의 유산과 결합하여 북한식의 독특한 사회 체제를 만들어 내는 기반이 되었다. 오늘날 서로 다른 문명 기반을 지닌 북한과 일본이(p.641) 서로 어떤 관계를 맺을지 예측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남북한의 통일 또한 그러하다. 그것은 3국 모두에게 또 한 차례의 문명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p.642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은 역사 문제로 인해, 일본에 자주 민족 감정을 표출하거나 사죄와 반성을 촉구했다. 일본은 한국에 대해 지은 죄가 있는데다가 훨씬 발전한 선진국이라는 자부심도 있어서 한국의 거친 언동을 어느 정도 받아 주었다. 한국과 일본은 다른 나라와는 달리 특수한 관계라는 점을 서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패전과 해(p.707)방 이전 세대를 체험한 인물들이 사회의 중추에서 물러나게 되자 특수 관계에 대한 공통 인식도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일 관계는 이제 보통 관계처럼 되어 버렸다. 지금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발생하고 있는 잦은 충돌과 갈등은 특수 관계에서 보통 관계로 변한 상황에 대해 두 나라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p.708

그렇지만 한국과 일본은 70년의 현대사에서 잦은 마찰과 갈등을 겪었지만, 세계의 수준에서 보면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성과를 꽤 많이 거두었다. 두 나라는 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주의, 인권 옹호 등 글로벌한 가치를 공유하는 동질의 국가를 이룩하였다. 그리고 각가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동아시아의 안전과 평화를 담보하는 지렛대 역할을 했다. 또 국민의 생활양식과 문화 수준에서도 한국과 일본은 선진성과 보편성을 공유하고 있다. 국민 속에 침투한 한류와 일류라는 대중문화가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증거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이 서로의 성취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협력의 방법을 모색한다면 세계 문명 발전에 함께 기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p.708)이다. p.709

양국 국민은 먼저 역사 문제의 책임을 다음 세대에 미루기보다는 지금 세대에서 해결하겠다는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 그리고 양국의 정치가와 여론 주도층은 인류가 지향해 온 보편적 가치의 기준에서 한일 관계의 역사를 해석하는 식견을 가져야 한다. 나아가서 자신들이 솔선하여 역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이와 함께 양국의 국민을 납득시키고 선도할 수 있는 전략과 방법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일 양국은 충분하지는 않지만 역사 문제를 다뤄 온 경험, 수법, 실적을 이미 많이 축적하고 있다. p.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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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이희영] 너는 어떤 부모이고, 어떤 가족을 꾸리고 싶으냐 | Memento 2020-08-02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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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페인트

이희영 저
창비 | 201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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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떤 부모이고, 어떤 가족을 꾸리고 싶으냐. 소설은 나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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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했다. 그래서 어른들은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하며 신세 한탄을 한다. 비로소 나도 어른이 되고, 결혼을 준비하며, 부모가 되어야 하나를 고민하는 시점에서 어른들의 말씀을 귀담아 듣는다. 분명 결혼 할 때도, 너는 절대 하지말라고 했던 사람들이 그래도 한 번은 해봐라고 말하더니, 자식을 낳는 일도 마찬가지다.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그래도 그만큼의 보람과 행복을 준다고. 나 역시 그런 마음에 흔들릴 때가 있지만, 아직까지는 확고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나는(혹은 우리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설사 준비가 되더라도 이 고통을 물려줄 마음이 없다.

이러한 마음은 어떻게 보면 자식을 선택하는 부모의 과욕일지 모른다. 입맛대로 자식을 기를 수 없으니, 차라리 낳지 않겠다는 선택. 자만심이 극에 달해 자연의 섭리를 거부하는지도 모른다. 여기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이야기가 있으니 이희영 작가의 <페인트>. 그의 전작은 읽어 보지 못했지만, 완득이나 아몬드를 재미있게 읽었던터라 창비청소년문학상에 대한 일정부분 신뢰가 있었다. 게다가 부모를 선택하겠다는 도발적인 내용이 눈길을 끌었다. 자녀를 가질지 말지, 몇 명을 가질지에 대한 최소한의 선택을 하는 부모와 달리 그저 태어날 수 밖에 없는 자녀들의 입장을 생각해본다면 흥미로운 역발상이었다.

무엇보다 NC센터의 시스템이 흥미로웠다. 출산율이 급전직하로 떨어지고 있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시도해봄직한 고민이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많은 난관이 있겠다. 책에서 언급했 듯 비용문제는 남북한의 전쟁위협이 사라진 덕분이라지만, 비용은 제외하더라도 이러한 전격적인 시도는 의미있다고 본다. 특히, 주어진 소중한 생명조차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는 현실을 고려해 본다면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들을 소중히 품어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테다. 많은 비판에 직면하겠지만 한때 유아 수출국(?)의 오명을 가진 한국에서 체계적인 관리를 고민해본다는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소설의 구조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주어진 시스템을 거부하는 조숙한 주인공과 이를 알게 모르게 지지해주는 사연을 가진 가디’(박과 최), 그리고 여기에 양념을 쳐주는 주인공의 동생과 친구. 이들이 겪어나가는 일상 속에서 주어진 길을 거부하는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다. 중요한 점은 이들이 시사하는 바다. 가족의 해체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또 다른 가족을 강제로 찾아야만 하는 억압 속에서 차별을 앞둔 존재가 독백을(가장한 저자의 생각) 우리는 각자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다. 결국은 부모가족의 의미가 무엇일까.

가족은 최소한의 사회 단위고, 부모는 그 사회를 구성하는 기준이 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가족은 지옥 그 자체이거나, 지옥을 가르는 차별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꽤나 근본을 중시했다. 원산지를 따져 가며 농수산물을 사 먹듯 인간도 누구에게서 생산되었는지에 지대한 관심을 보(p.55)”인다. 부모가 그렇듯 자녀도, 자녀가 그렇듯 부모도 서로를 지켜주고 최소한의 예의를 가지지 못한다면 가족은 지옥이 된다. 서로에게 고통을 주거나 서로가 무관심해지고 만다. 반대로 자기 가족끼리만의 이익을 생각한다면, 우리 외의 가족은 원산지를 따져서 배제해야 할 불량품이 된다.

그렇기에 가족의 구성,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 고민이 필요하다. 과연 지금의 혼인 관계로만 가족 제도를 지탱할 수 있을까. 현실도, 소설도 말한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같은 가족 구조로만 유지될 수 없음을. 부모가 친구일 수는 없을까, 가족의 범위는 꼭 혈연으로만 이뤄져야 할까, 가족의 구성원이 꼭 결혼한 남녀와 자녀라는 구조만을 지녀야 할까? 이런 저런 의문들 속에서 제누301의 삶을 응원한다. 그가 어떤 가족을 꾸리더라도, 나 역시 어떤 가족을 꾸릴 것이기에. 그리고 그 가족이 늘 맑은 삶을 살지 않더라도, 최소한 사막은 아닐 것을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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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꽤나 근본을 중시했다. 원산지를 따져 가며 농수산물을 사 먹듯 인간도 누구에게서 생산되었는지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내가 누구에게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일까? 나는 그냥 나다. 물론 나를 태어나게 한 생물학적 부모는 존재할테지만, 내가 그들을 모른다고 해서, 그들에게서 키워지지 않았다 해서 불완전한 인간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나는 누구보다 나 자신을 잘 알고 있으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이, 나의 부모가 누구인지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 아닐까? p.55

누군가가 나를 꿰뚫고 있다는 기분은 썩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감사한 경우도 있다. 나를 잘 알고 있음에도 전혀 내색하지 않고 배려하는 모습이 그렇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 쉽게 말하고 또 쉽게 생각한다. 내가 알고 있는 상대가 전부라고 믿는 오류를 범한다. 그런 사람 중에서 진짜 상대를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자기 마음조차 모르는 인간들인데. p.76

진실은 자신에게 이득이 될 때만 쓸모가 있다. 그게 진실의 역할이었다. p.129

원칙과 규율을 칼같이 지키는 것보다 힘든 것은 원칙을 어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를 허락하는 일이었다. p.141

재능은 얼마나 잘하는가에 달려 있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절대 멈추지 않는 것, 그게 재능 같았다. 싸우고 다투고 매일같이 상처를 입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어지지 않는 가족처럼 말이다. 아니, 그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는 무엇 아닐까. p.209

부모가 된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자신이 바라는 아이로 만들려는 욕심보다 아이와의 시간을 즐기는 마음이 먼저다. 부모는 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되어가는 것이다. 아이를 가르치려 들지 말고 아이와 함께 놀고 즐기면 된다. 글쓰기가 늘 즐겁지만은 않듯 근래 들어 아이와의 관계가 삐걱거릴 때가 잦았다. 하지만 맑은 날만 계속되면 세상은 사막으로 변한다.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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