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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감촉1


혜린의 시체가 발견된 것은 토요일 오후였다. 그 며칠 전에는 엄청난 폭설이 쏟아졌다. 한겨울에도 따뜻한 남부의 소도시 J시에 눈이 내린 것은, 그것도 2월에 눈이 내린 것은 30여 년 만의 일이었다. 눈은 솜털처럼 가볍게 살랑거리며 J시의 모든 지붕과 거리, 그리고 J시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항구와 바다 위에 내려앉았다. 어린아이들은 죄다 밖으로 뛰쳐나와 생애 첫 눈사람을 만드느라 강아지처럼 돌아다녔고, 거리 곳곳에서는 여고생들이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으며, J시의 모든 연인들은 서둘러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도시 전체가 눈을 즐기는 동안 혜린은 호흡을 멈춘 채 눈을 덮고 누워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 눈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것을 전혀 몰랐다.
하긴, 그때 내가 몰랐던 것이 그것만은 아니었다. 남해안의 따뜻한 햇볕에 쌓였던 눈이 금세 녹아내리고, 강가에 버려진 혜린의 시체가 모습을 드러냈듯 모든 진실이 드러났을 때, 나는 그동안 내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눈 내리던 그날 밤에 나는 모든 기억과 시간이 끊어진 완벽한 암흑 속에 있었을 뿐이다. 내가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 어쩌면 그것만이 그 후로 펼쳐진 모든 사건의 핵심인지도 모르겠다.

눈은 늦은 밤부터 내리기 시작했다. 저녁에 우리 가족은 최근 새로 들어선 동강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호텔은 동강과 지천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어 전망이 아주 좋았다. 내가 어렸을 때 이 부근은 그저 갈대밭과 낚시꾼들만 모여드는 습지였지만 최근 개발 붐으로 인해 대형 마트와 함께 새로운 상가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어항(漁港) 주변의 전통적 상권을 밀어내고 새로운 중심가로 변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미리 예약해둔 1층의 한정식 레스토랑에 모여 앉았다. 창문 너머로 겨울 갈대가 마른 잎을 서로 비비며 바람에 휩쓸리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 가족은 제일 상석에 앉은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부모님과 작은아버지 내외가 자리를 잡고, 미래와 내가 마주 보며 그 옆에 앉았다. 아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아무도 아내에 대해 묻지 않았다.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특별한 기념일을 챙기기 위해 모인 자리는 아니었다. 지역 방송사에서 곧 다가올 삼일절 기념으로 할아버지의 생애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독립투사 집안에서 태어나 온갖 풍상을 겪으며 치과 의사가 되어 지역 유지로 자리 잡은 분이었다. 그전부터 할아버지의 생애를 방송에서 소개하고 싶다는 요청이 여러 번 있었지만 할아버지는 거절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버지가 국회의원 공천을 신청한 탓에 할아버지가 수락한 것이었다.
“역시 할아버지는 누구를 언제 움직여야 할지 정확하게 아는 분이셔.
촬영 때문에 고향 집으로 간 나에게, 2층 거실에 여전히 걸려 있는 나와 아내의 결혼 사진을 보며 여동생 미래가 말했다. 미래는 짧게 자른 머리카락을 이마 위로 쓸어 올리며 악동 같은 미소를 지었다. 
할아버지는 손주들의 이름을 지을 때 집안의 항렬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나에게는 현재에 충실히 살라는 의미로 ‘현재’, 여동생에게는 항상 앞을 생각하라는 의미로 ‘미래’라는 상당히 현대적인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래서 가끔 나는 어디에선가 ‘과거’라는 이름을 가진 다른 형제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이름처럼 나는 대체로 나에게 주어진 현재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았던 것 같다. 1979년생인 나에게는 학생운동도, 민주화도 아무것도 알지 못하던 초등학교 시절에 지나갔다. 그 덕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나는 그저 도서관과 강의실만을 왔다 갔다 했으니, 혁명도, 사랑도 모두 흘러간 옛 노래처럼 나와는 무관하게 비켜 갔던 셈이다. 그 결과 나에게 남은 것은 ‘범생이’라는 지루한 이미지의 딱지였다. 하지만 미래는 좀 달랐다. 
미래는 나와는 열 살 터울의 늦둥이여서 내가 서울로 대학 진학을 할 때 고작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그렇다 보니 미래와 나는 유전자적으로 남매이긴 하나 거의 남처럼 지냈다. 간간이 미래가 어릴 적부터 공부와는 담을 쌓고 오직 게임과 만화에 빠져 살 뿐만 아니라, 얼마나 고집이 센지 누구의 말에도, 심지어 할아버지의 협박과 회유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어머니를 통해 풍문처럼 들을 때도 나는 재미있다고만 생각했을 뿐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요컨대 나는 미래에게 큰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미래는 일주일을 단식한 끝에 자신의 고집대로 대안학교로 진학했고, 대안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유학이다 어학연수다 하며 외국으로 나돌았기 때문에 철이 들고 난 후 미래와 나는 얼굴을 본 것조차 몇 번 되지 않았다. 심지어 미래는 나의 결혼식 때도 “결혼이라니, 오빠의 용기에 진정으로 찬사를 보내. 행복은 장님과 같으니까 오빠한테 찾아갈 수도 있겠지”라는 축하인지 저주인지 알 수 없는 글이 적힌 카드 한 장을 달랑 보냈을 뿐이다. 
미래와 진지하달 수 있는 얘기를 나눠본 것도 사실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할아버지에 대한 다큐멘터리에 가족 모임의 모습을 넣고 싶다는 피디의 요청에 따라 고향 집으로 내려왔다. 피디는 ‘할아버지의 생애를 되짚어보는 손자’라는 콘셉트를 세워두었는데, 나는 그 콘셉트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방송이 아버지의 공천에 도움이 될 거라고 하니 모른 척할 수 없는 데다, 나 역시 방송국 밥을 먹는 처지라 피디에게 적극적으로 협조를 하는 게 동종 업계의 윤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 내가 하던 프로그램이 봄 개편에 폐지되는 것으로 결정되었고, 나는 마지막 촬영분의 편집을 모두 끝내둔 상태여서 쉽게 휴가를 낼 수 있었다. 피디는 이미 할아버지의 고향에도 다녀왔고, 여러 차례에 걸쳐 할아버지와의 인터뷰를 따두었다. 남은 것은 잘 길러낸 후손들과 행복한 노후를 보내는 할아버지의 인자한 모습이었다. 
할아버지가 아내를 어떻게 설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내도 촬영 당일 아침에는 집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었다. 아내가 할아버지를 상대로 위자료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협상 상대로는 대단히 깐깐한 분이기 때문에 아내도 방송의 소품 노릇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소품’이라는 단어를 처음 꺼낸 건 미래였다. 
“오빠와 새언니는 방송에 적합한 소품이지.
“무슨 말이야?
“유복한 집안에서 범생이로 자라, 곧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는 신혼부부. 사람들은 그런 예쁘장한 걸 보고 싶어 하잖아. 백화점에서 파는 수입 그릇 같아, 오빠와 새언니는.
나는 아내와 나를 그릇에 비교하는 것이 썩 듣기 좋지는 않았지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도 늘 아내를 도자기에 비유하곤 했던 것이다. 미래의 말을 듣고 나니 도자기보다는 수입 그릇이 더 적절한 비유처럼 느껴졌다. 방송에서는 그 값비싸 보이는 수입 그릇 세트에 금이 가 있는 것은 전혀 보이지 않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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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30일생

김서진 저
나무옆의자 | 2014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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