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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평범하지 않은 소녀와 용 콤비 - 《피어클리벤의 금화 1》신서로 저 | 문학 2019-09-21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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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피어클리벤의 금화 1

신서로 저
황금가지 | 2019년 09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케미폭발하는 소녀와 용 판타지 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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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곤란하게 됐군.’

1권을 덮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이렇게 나를 난처하게 만든 소설은 오랜만에 읽어보는 것 같다. 왜냐고? 누군가에게 이 소설을 추천해 주고 싶어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냥 일단 읽어 봐.’ 이기 때문이다. 책의 리뷰를 써야 하는데 어디서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할까 고민하면서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스포일러에 특별히 신경 써야 하는 추리소설이 아닌 판타지 소설인데 말이다.

책의 내용을 미처 읽기도 전에 잠재적 독자님들께 내가 ‘이런 이런 인물들이 나오고 이런 일들이 벌어져요’라고 섣불리 말해버리면 재미를 빼앗을 것 같아서였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나는 이 소설이 절대적 힘과 지성의 공존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너를 먹겠다.”

지상의 그 어떤 생물이 자신의 ‘한 끼 식사’를 향해 이러한 선언을 할 기회나, 필요가 있을까? 그것이 가능하려면 허기진 자와 ‘한 끼 식사’ 모두 지성과 언어를 같은 수준으로 공유해야 할 것이다.

<피어클리벤의 금화 1> , p.7

그대로 소녀가 용의 점심 식사가 되었다면 이야기가 굉장히 빨리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용 빌러디저드는 자신이 서리 해온 소녀에게 선언을 했고, 소녀 울리케는 그의 선언 한 마디에 자신의 목숨을 연장할 해결점이 있다고 본다. 소리를 지르거나, 도망가거나, 기절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거대한 용이 새카만 날개를 접고 자주색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다면 당신이라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이 이야기의 소녀 울리케는 가장 먼저 질문을 했다.


"제게 양해를 구하시는 것입니까?"

<피어클리벤의 금화 1> , p.8

여기서 또 용이 그저 대꾸하지 않고 소녀를 삼켜버렸다면 그만이었겠지만, 용 빌러디저드도 평범한 용은 아니었다. 울리케는 용과 협상을 해서 위기를 모면한다. (그것이 어떤 내용인지는 소설을 직접 일어보시길 바란다.)


지성의 힘이 어떻게 발휘되는지 지켜보시라.


소설 속에는 장사의 기술을 이해하고 있으며, 이해타산을 계산하고, 합리적인 거래를 하기 좋아하는 인물들이 나오는데, 단지 인간 장사치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용과 울리케는 경제적 시각으로 세상을 볼 줄 아는 캐릭터들이다. 그 덕분에 울리케는 용과의 첫 만남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힘과 지성을 골고루 갖춘 캐릭터들도 단순히 힘에 의지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최고의 무기라도 다루는 사람이 현명해야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듯이 말이다. 마법사 시그리드가 그런 인물 중 하나인데 그가 조목조목, 차근차근, 따져가면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걸 읽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브륀힐데 말이 옳아. 우린 지나친 돈을 받았어. 이건 부채야. 돌려주는 게 옳다.”

“제정신이오?”

“랄로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마법사는 이미 마음을 굳힌 듯하다.

“우리는 이 영지의 사정을 이미 아우셀바프에서 듣고 왔어. 숲의 마수 퇴치라는 고된 일을 자청해서 해 보려고 왔던 것은 어디까지나 좋은 의도였지. 없는 살림의 영지를 털어먹으려고 한 것이 아니야. 처음에야 일이 무사 귀환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저쪽에서 세게 부른 보수에 군말 없이 달려갔던 것이지만, 이젠 아니잖아? 이런 경우 우리가 귀족의 체면을 살려주고 실리를 챙겨주는 게 맞다. 랄로프 말마따나 다들 뜀박질 한 번 하고, 애꿎은 나무 하나 불태운 거 말고는 우리가 딱히 한 게 있나?”

그러자 랄로프가 말없이 탁자 위의 주머니를 헤집더니 금화를 꺼내 손바닥에 놓고 울상이 되었다. 이별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피어클리벤의 금화 1>, p.167



절대적 힘과 지성은 공존할 수 있을까?


울리케가 만용을 부린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자평했다. 그 스스로는 아직 자신이 빌러디저드에게 납치되었다가 풀려나고 동행하게 되면서 자신의 내면에서 이루어진 급격한 변화를 진단해낼 여유가 없었다. 울리케가 (중략) 적극적인 강짜를 부릴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변화와, 아울러 마음 한편에 용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데서 나오는 용기 덕분이었다. 그러한 보험이 없었다면 그가 보인 모든 행동과 말들은 단지 그의 상상 속에서 그쳤을 것이다. 철들 무렵부터 지금껏 언제나 그래왔듯이.

<피어클리벤의 금화 1> , 107~108


용과의 조우가 소심한 십 대 소녀 울리케를 변화시켰다. 소녀의 성격과 언행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그녀가 살고 있는 작은 영지 전체의 운명, 더 나아가 영지의 주인인 그녀의 아버지를 포함한 가족, 군신 그리고 제국 전체의 힘의 균형에 영향을 주는 존재가 바로 용이다.



용에 대한 두려움은 단순히 그 거대한 육체의 괴력이나 뿜어대는 불덩이의 폭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뿐이라면 단순한 마수로서 여겨졌으리라. 작정한 용은 물리적 충돌을 야기하기 전에 기근이나 질병으로 인한 민심의 황폐화를 우선적으로 일으킨다. (중략) 사람들이 용에 대해 갖는 공포는 그만큼 거대한 것이다.

(중략) 정말로 근방에 통제되지 않는 용이 나타났다면 사태는 남작의 소관을 벗어난 일이 된다. 당장 황제에게 상신해야 할 일이며, 그는 그저 영지에 비상령을 내리고 황명이 내려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오히려 섣부르게 용을 자극했다간 제국에 화근을 불러들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피어클리벤의 금화 1> , p.58

이야기는 울리케가 이런 상식을 초월한 힘과 영향력을 지닌 존재인 용을 만나 자신의 삶의 변화, 방향 그리고 그 사이의 균형을 찾는 여정이다. (이것은 단순히 소설 속 세계관의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야기의 후반부로 갈수록 자칫 잘못하면 데우스 엑스가 되는 용이라는 카드를 어떻게 서사에 엮어 넣을 것인가 작가는 균형을 잡아야 했을 것이다.) 그 여정에서 판타지 소설에 나올법한 활지기, 방패 전사, 창지기, 마법사 같은 익숙한 동료들을 만나게 되며, 제국과 소수 민족을 둘러싼 아픈 과거에 얽힌 음모에 휘말려 들게 된다.

“뭘 하느냐?”

“요리를 하려고 합니다.”

“대구를 말인가?”

‘그럼 나겠냐!’라고 소리치고 싶은 충동을 꾸욱 참고, 울리케는 문득 멈칫한다. 그리고 용을 쳐다보았지만 그는 자세와 표정에 아무런 변화 없이 그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저 자신을 요리할 재주는 없으니까요.”

“흥미롭군.”

<피어클리벤의 금화 1> , p.16

‘무슨 일이 있습니까?’

요리가 먹고 싶다.

‘장난하십니까?’

꿈속이라 긴장이 느슨해진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기가 막혔던 것일까. 어느 쪽이든 울리케는 꿈속의 목소리에게 그렇게 빽 소리 질렀다. 잠깐의 침묵 이후, 용의 목소리가 물어왔다.

-꿈이라 생각하고 내게 대드는 것인가?

‘이게 꿈이 아니라는 증거가 있겠습니까?’

-나중에 내가 이것이 꿈이 아니었음을 말할 것이다.

‘저는 그런 개꿈 꾼 적 없다고 잡아뗄 겁니다.’

-용꿈이다.

‘아무튼 저는 잘 겁니다! 꺼지시옵소서!’

<피어클리벤의 금화 1> , p.71


특유의 유머와 정교한 세계관 구축, 속도감 있는 전투 장면, 신뢰 가는 화법으로 우리를 소설 속 세계로 이끄는 작가의 화법은 마치 장인이 날카로운 칼로 양파에서 장미꽃을 만들어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화자의 이미지가 뚜렷하게 나타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마치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화자는 차분하고 여유롭다. 재밌게 이야기를 해주다가 전문용어나 설정이 나오면 그것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넘어간다. 때문에 판타지 소설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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