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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무기력이다-박경숙] 오랜 숙성기간 끝에 만난 희망 | Memento 2021-12-2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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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문제는 무기력이다

박경숙 저
와이즈베리 | 2013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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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이라는 포로수용소에 갇힌 나를 발견하고, 뜨거운 사막을 벗어날 북극성이 되어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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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을 키운 게 8월이 바람이라면, 나를 키운 건 8할이 포기였다. 신포도 전략. 실패의 위험이 크다면 가질 수 없는 것이라 믿었다. 부족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질 수 있는 것만 시도했다. 실패는 용납될 수 없다. 두 번은 없다. 단 한번, 나에게는 단 한번 만의 기회만이 있다 믿었다. 그래서 신중했고, 완벽해야 했다. 중간에 잘못되면 안 되었기에 수시로 확인해야 했고, 결과가 잘 못될까 늘 불안했다. 최악의 상황만을 생각했기에 작은 목표를 달성한 순간 기뻐할 수 있었다. 분명 정상적인 대응, 방어기제는 아니지만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스스로에 대해 잘 안다고 믿었다. 자존감이 낮았기에 나를 믿지 못한다. 그래서 계속해서 확인해야 했다. 이러한 삶의 전략은 피곤하고 힘들긴 했지만, 어느 정도 도움은 되었다. 어느 정도의 완벽주의와 강박증, 불안함을 과도하게 느끼는 성향은 내 밥벌이의 전략이 되었다. 업무의 진행상황을 지속적으로 체크하고, 늦지 않게 일을 처리하게 했다. 항상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했기에 큰 문제없이 업무를 처리해내곤 했다. 소소하게 인정까지 받았다.

  하지만 스스로를 아는 것, 그렇게 믿는 것만으로 부족했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지한다고 믿었지만, 실재로는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상황은 생각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불안함은 정신을 집어 삼켰다. 독서는커녕 10분도 집중하기 힘들었다. 강박증과 완벽주의는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체중이 5kg 줄었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았다. 지금껏 유지해온 생존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할 수 없었다. 결국 고장 난 몸과 정신을 부여잡고 병원을 찾아야만 했다.

  내가 받은 진단은 불안장애다. 예측 불가능과 통제 불가능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 상담을 하며 실소가 났다. 짧은 생을 살면서 내가 활력을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이것저것 재지 않고 도전한 적이 있었던가. 불안장애는 내가 가진 방어기제를 촉매로 언젠가 터질 일이었다. 예측 불가능한 일, 통제 불가능한 상황을 인력으로 어떻게 하겠는가.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것을 통과해 내겠는가. 이때까지 운이 조금 좋았을 뿐이었다.

  <문제는 무기력이다>를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나 보다. 책을 처음 발견한 것은 2015년이다. 6년의 숙성기간이 지나고 필요한 순간이 되었지만, 정작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없는 상태였다. 하루에 4페이지를 넘길 집중력이 없었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읽었다. 아니 읽어야만 했다. 저자는 대한민국 1호 인지과학 박사 학위자로, 자신의 겪었던 고통의 순간들을 바탕으로 책을 집필했다. 무기력이 어떻게 사람을 옥죄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무기력을 벗어나 온전한 자신을 회복할 수 있는지를 말한다.

  심리학적 용어로 무기력은 “‘하고 싶으나 에너지가 바닥나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스스로의 힘으로 처지를 바꿀 수 없는 상황’(p.15)”이라 정의한다. 무기력은 삶의 한계 앞에서 꾸준하게 학습된다. 차곡차곡 쌓인 무기력은 “‘은밀히 속이며 인생의 발목을 잡는 강력한 방해자’(p.7)”가 되어 자발성을 고갈시킨다.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p.53)”으로 전락시킨다.

  무엇이 우리를 무기력하게 하는가. 바로 예측 불가능과 통제 불가능이다. 무기력이 자발성의 상실이라면, 결과를 통제할 수 없고, 인력으로 불가능한 상황이 생기는 순간 자발성은 조금씩 사라진다. 반응과 결과 사이에 관련이 없다는 비수반성 인지가 형성되면 유기체의 행동은 느려지고 능력과 희망이 없다고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생각해 욕구의 충족이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통제 능력을 상실한다.(p.86)“는 것이다. 사람이 무기력을 배우게 되는 것은 자극 자체가 아니라 그 자극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p.86)“

  바로 생각, 인지 체계를 바꾸는 데 실마리가 있다. 동기, 인지, 정서를 변경하여 행동을 이끌어 낸다면 자발성과 유능감을 회복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다만, 두 가지를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는 자신이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는 포로 신세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막 여행과 같은 지루한 여행을 해야 한다는 것(p.207)”이다. 그만큼 쉽지 않고 단기간에 해낼 수 없는 일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나서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 살아오면서 늘 되새겼던 말이다. 노력하되 결과는 하늘에 달렸다. 하지만 노력만으로 부족한 세상이다. 모든 게 불확실하고 결과는 알 수 없다. 결국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 뿐이다. 나는 인생의 1/3지점에 이르러서야 무기력이 뭔지 알아가고 있다. 포로수용소에 갇힌 나를 만날 시간이다. 그리고 뜨거운 사막을 헤맬 테다. 그 시작을 이 책과 함께 한 이 순간을 위해 이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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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은 내부에서 생겨나며 일종의 습관 같은 것인 반면, 무기력은 외부에서 가해지는 유기체를 반대하는 자극 때문에 의식과 무의식에 남게 된, 행위 하지 않으려고 하는 힘이다. ... 그래서 무기력을 은밀히 속이며 인생의 발목을 잡는 강력한 방해자라고도 부를 수 있다. p.7

하고 싶으나 에너지가 바닥나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스스로의 힘으로 처지를 바꿀 수 없는 상황’. 이를 심리학적 용어로 무기력 helplessness 이라 한다. p.15

하루가 쌓여 일생이 되는 것을 고려할 때, 의미 있는 인생을 살려면 하루하루를 승리로 장식해야 한다. 매일매일 승부를 걸어 내가 이긴 날이 많을 때 인생에서 승리할 수 있다. p.18

꿈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느리게 달려서가 아니라 달리지 않기 때문이다. p.19

꿈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심리적인 공백이 무기력을 유발하는 것이다. p.29

성격은 선천적으로 주어진 유전자와 후천적인 환경, 교육의 결과로 형성되는데, 한 인간 안에는 여러 가지 성격적 특질이 혼재한다. 여러 가지 성격적 특질 중에서도 의존적인 성격과 강박적인 성격이 특히 무기력에 취약하다. p.47

사는 것살아내는 것은 비슷한 단어처럼 보이지만 의미는 극과 극이다. 우리는 매일 오늘 하루를 보낼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살 것인가, 살아 낼 것인가? 어떤 방법을 택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하루를 보내게 된다. 이 둘은 전혀 다른 정신 레벨에서 비롯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 ‘살아내는 하루는 아프고 슬프다.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그가 하루만큼의 시간을 견뎌냈다는 의미이다. 다른 이가 시키는 일을 수동적으로 해내는 노예의 삶이다. (p.53) ... 이에 반해 하루를 산다는 것은 포효하는 사자처럼 사는 방식을 말한다. 하루를 사는 사람은 사자 같이 주도적이고 스스로가 고용주가 된다. p.54

무기력은 자발성을 상실한 상태이므로 자발성을 회복하는 단계까지 올라가면 무기력은 극복되었다고 볼 수 있다. p.64

자신을 구하는 유일한 길은 남을 구하고자 애쓰는 것이다.” <그리스 인 조르바> p.56

모든 고통은 위장된 축복이다. p.65

마음의 고통이란 마음이 해결하지 못하는 자기 한계를 벗어난 문제에 봉착했을 때 느끼는 부정적 에너지다. 그러므로 고통을 이겨낸다는 것은 한계를 벗어나 성장한다는 의미다. p.67

한계가 분명하고 모든 것이 통제된 상황에서 자유로운 유기체는 없다. p.84

학습된 무기력은 반응이 결과를 통제할 수 없다는 인지 양식에서 비롯된다. 이렇게 반응과 결과 사이에 관련이 없다는 비수반성 인지가 형성되면 유기체의 행동은 느려지고 능력과 희망이 없다고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생각해 욕구의 충족이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통제 능력을 상실한다.” p.86

사람이 무기력을 배우게 되는 것은 자극 자체가 아니라 그 자극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p.86

무기력을 부르는 또 다른 요소는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p.95

분명한 것은 예측 불가능이나 통제 불가능이나 양쪽 모두 불행을 준다는 사실이다. 어느 쪽이든 아프고 고통스럽긴 마찬가지다. p.99

유능감이란 무기력의 반대 개념이다. 심리학자들은 무기력에서 벗어나려면 유능감을 획득하라고 하는데 유능감이란 단기간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노력해 어떤 일에서 전문가가 되었을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다. 유능감을 얻기 위해선 오랜 헌신과 자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p.108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위해 타인에게 다가가라. 당신을 위해 용서하고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 타인을 사랑하라. 처음에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그들과의 관계가 호전되면 그것은 작은 성공을 경험한 사례가 된다. 그것을 단초로 성취감과 유능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유능감이 마음을 관대하게 만들어 당신은 점차 좋은 동료, 좋은 이웃이 될 수 있다. / 무기력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관대하지 못한 것은 자신의 문제가 너무 커 그것을 해결하는 데 에너지를 다 쏟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기력함 없이 자기 일에 몰입하는 사람은 긍정적인 시각의 소유자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당연히 사람들과의 관계도 개선될 수 있다. 아동기에는 받기만 할 수도 있었지만 성인이라면 주체가 되어야 한다. 줄 수 없는 사람에겐 점차 줄 것조차 사라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p.113

미국을 세계 최고로 만들어낸 하면 된다는 사고는 우리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하면 된다해도 안 되더라라는 무기력을 양산하기 쉽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p.122

인간은 회복력과 창의성이 다른 동물에 비해 탁월한데 조직을 위해서는 인간답게 일하고 있지 않다. 인간의 회복력과 창의성을 고갈시키는 조직에 문제가 있다. 정확성과 원칙, 절약, 합리성, 서열, 결과물 등을 강조하는 경영 프로세스는 예술성, 독창성, 대담성, 비약성에는 가치를 두지 않는다. 대부분의 회사는 직원의 특성과 능력 일부분만 활용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직장에 출근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몽유병 환자나 다름없다. 그들의 잠재력을 체계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조직이 낳은 결과이다.” - 게리 해멀, <경영의 미래> p.128

(에미) 워너는 무엇이 역경을 이기게 하고 정상적인 삶을 유지시켜주느냐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 마침내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제대로 성장해나간 아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성장 과정에서 그 아이의 입장을 무조건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어른이 적어도 한 명 이상 있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베푼 무조건적인 사랑이 그 아이의 인생을 바꿔놓은 셈이다. ... 40여 년에 걸친 연구를 정리하면서 내린 탄력성의 핵심적인 요(p.149)인은 인간관계. , 관계성이 높은 사람이 탄력성이 높고, 무기력에 빠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p.150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나 아무리 원해도 그것을 얻을 수 없다는 절망, 자신의 능력에 대한 신뢰와 미래의 희망이 사라질 때 우리는 무기력해진다. 그런데 마음이란 가만히 내버려두면 게으름과 무기력, 나태와 절망 같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마음을 지키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p.515

카를 융이 80세가 넘은 나이에 자기 인생 전체를 돌아보면서 자신의 일생을 한 마디로 규정하여 (p.161)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 역사다라고 한 것처럼, 나 역시 나의 변화와 성장이 무의식이 의식화해 나를 끌고 가면서 만들어 낸 운명적인 결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p.162

지금 무기력하다고 느끼는가? 그렇다면 우선 이 두 가지를 받아들이길 바란다. 하나는 자신이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는 포로 신세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막 여행과 같은 지루한 여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막과 수용소는 뜨겁고도 차가운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무기력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사막의 결기보다 더 뜨거운 삶의 의미를 찾아내야 하고, 수용소의 교활한 간수를 넘어설 수 있는 차가운 자기 극복을 이루어내야만 한다. p.165

그 어떤 곳에서든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인간은 혹독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조차도 영적 자유와 마음의 독립성을 보존할 수 있다. 진정한 자유란 혹독한 운명에 대처할 방법을 선택하는 자유,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다. p.175

냉혹한 현실 직시는 최후의 안전장치다. p.182

냉혹한 현실 직시와 굳은 믿음, 이 이중적인 개념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기업만이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 진화했다는 것이 짐 콜린스가 말하는 스톡데일 패러독스다. 순진한 낙관주의자도, 매사를 비관하는 자도 위대해질 수 없다. p.183

무기력이 우리를 가두는 수용소와 같다면, 그곳을 벗어나는 길은 마치 사막과 같다. p.185

미로가 분석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퍼즐이라면 미궁은 일종의 움직이는 명상 공간이다. 미로가 갈피를 못 잡게 하는 반면, 미궁은 중심으로 인도한다. 미로에서 길을 잃을지 모르지만 미궁에서는 자기 자신을 잊을 수 있다. 미로는 좌뇌를 움직이게 하고 미궁은 우뇌를 자유롭게 한다.” - 대니얼 핑크 p.196

得樹攀枝無足奇 懸崖撒手丈夫兒 득수반지무족기 현애살수장부아 가지를 잡고 오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되 벼랑에서 잡은 가지마저 놓을 수 있는 사람이 가히 장부로다.’ p.203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지식을 습득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지식을 버리는 데 있다.’ - G.K.체스터턴 p.203

점진적인 변화가 안전해 보이지만, 점진주의로는 관성과 저항을 이기는 데 필요한 힘이 부족하다. 멈칫거리면 실패하고 만다. 일단 변화가 시작되면 후퇴는 치명적이다. 배수의진을 쳐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 때문이다.” - 칼리 피오리나 p.210

단 한 가지라도 전문가가 되는 것만이 우리가 사는 길이다. 한 분야에서 숙달되어 유능감이 생기면 비로소 언덕을 치고 오르는 자동차가 될 수 있다. 이때는 인내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시도해야 한다. 행동이 필요하다면 즉각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선택이 무기력의 사막에서 탈출할 동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p.211

인지 과학과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간을 움직이는 엔진은 인지, 동기, 정서, 행동이다. p.221

무기력이란 인간이나 동물이 통제 불가능한 상태를 경험하며 겪는 동기, 인지, 정서 장애를 나타내는 현상이다.” -마틴 셀리그만 p.223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 무기력을 일으키는 동기 장애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 p.249

무기력을 유발하는 사건에서 우리를 보호하려면 스스로의 삶을 끌고 갈 의미를 찾아야 한다. 의미를 찾는다면 거기에서 스스로 흔들리지 않게 할 재미와 자신의 분야에 기여하고 있다는 감정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p.250

문제를 유발한 사고 체계로는 문제의 해답에 이를 수 없다.” - 아인슈타인 p.252

의미가 없는 인생은 저급한 욕구와 환경에 따라 흔들리지만 삶(p.253)의 의미를 찾은 사람은 하위 욕구를 뛰어넘어 자신을 완성할 수 있다. p.254

무기력하다고 느끼는 것은 실제 무능력해서가 아니라, 할 수 없다는 생각의 오류 때문일 가능성이 많다. p.262

자존감 회복은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귀중하고 독특한 존재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모두 소중한 존재로 태어났고 각자의 강점이 있음을 잊지 말자. p.273

자기 인생에서 소중한 것만 남기는 일은 자신에 대한 애정인 자존감이 있어야 가능하다. ... 자신이 가장 잘하는 방식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자존감의 원칙에 입각한 삶이라 보는 것이다. p.276

대부분의 정신적인 문제는 세상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의 오류에서 비롯된다. p.285

자기 감정을 모르면 인생을 바꿀 수 없다. 자기 감정을 이해할 때 인생에서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알 수 있다.” -게리 주커브, 물리학자 p.316

심리학자들은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유능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지나치게 경쟁적이다. 타인의 성공이 곧 나의 실패를 의미한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동료와 함께 성장하라고 배우지 않고 타인보다 유능하게 보이고 돋보여야 한다고 배운다. (p.318) ... 하지만 최근, 경쟁을 강조하는 환경에서는 유능감을 키울 수 없다는 보고가 쏟아지고 있다. p.319

승자는 경쟁에서 이김으로써 자기도취에 빠지고 패자는 심각한 자기비하에 빠진다. 더군다나 승자가 실패를 경험했을 때 겪는 실의와 낙담은 매우 심각하다. 경쟁은 기본적으로 실패 지향 체제다.” - 대니얼 에임즈 p.321

인간이 유능감을 가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으로 나쁜 사태가 개선될 수 있다는 예상이 전제되어야 한다. p.323

전문가란 자신의 스키마에 따라서 행동과 결과에 대해 평가하고, 일이 잘되어가면 자기 스키마에 대한 확신과 자율성을 갖는다. 동시에 자신의 실력이 성장하는 듯한 만족도 스키마를 통해 얻는다. 이 느낌이 바로 유능감이다. 일을 지속하면서 키지는 유능감이 점점 그 일에 빠져들게 할 것이다. 이것(p.336)이 우리가 어느 한 분야에 숙달되면 무기력과는 멀어지는 이유다. p.337

숙달이 되기 위해서는 자율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누가 시켜서 잘하는 것보다 스스로 시도해서 잘할 때 강한 유능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숙달은 무엇을 잘하고 싶다는 욕망에서 시작되고 숙달에 이르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율성이 필요하다. p.343

노력은 우리의 삶에 의미를 주는 요인이다. 노력이란 우리가 삶에서 중요한 무언가에 신경 쓰고(p.348) 있으며 그 무언가를 위해서 기꺼이 일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목적으로 삼고 전념을 다해 노력하는 그 무언가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우리는 참으로 불쌍한 존재가 되고 만다.” -캐롤 드웩 p.349

프로가 된다는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는 날에도 열심히 한다는 뜻이다.” - 줄리어스 어빙, 농구선수 p.349

무기력이란 한 사람의 심적 에너지와 육체적 에너지가 이전보다 떨어졌을 때 그 유기체가 느끼는 자신에 대한 자체 평가다. p.360

지금 새로운 시작을 꿈꾼다면 그 출발점은 당신이 서 있는 그곳이다. p.371

- 터키 혁명 시인 나짐 히크메트의 <진정한 여행> p.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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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김영민] 그럼에도 불구하고 | Memento 2021-12-22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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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김영민 저
어크로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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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렇듯, 정치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를 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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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수많은 선택지에서 최선의 결과를 추구하지만, 마주한 현실은 녹록치 않다. 삶은 고통스럽고, 밥벌이는 지루하다. 매일 같이 지옥으로 출근해야 하며,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내 몸 편히 누울 자리 하나 얻는 일조차도 쉽지 않다. 어쩌면 밥벌이의 지루함을 느끼고, 누워 쉴 집이 있는 것 자체가 행복인지도 모르는 세상이다. 살아가기 위한 모든 행동 자체, 모든 선택지가 고통을 요구한다. 산다는 것은 고단함을 집요하게 견디는 일(p.10)”이다. 포기하고 싶고 그만두고 싶지만, 질긴 목숨. 그것도 쉽지 않다. 삶은 계속된다. 선택을 강요한다.

  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는 한 정치는 계속된다. 인간은 타인과 함께하지 않고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존재, 혹은 타인과 더불어 살 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는 존재기 때문이다. 인생이 그렇듯, 정치 역시 선택의 연속이다. 그 선택이 우리를 구속한다. 지옥 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하는 수많은 선택들은 정치에 제약을 받는다. 밥벌이의 수단, 몸을 뉘일 장소를 고르는 일에 있어서 정치의 힘은 어마어마하다. 아무리 무관심하고 염증을 느껴도 정치를 벗어날 수 없다. 살면서 하는 모든 선택에 정치가 관여한다.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p.12)”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이 고단한 만큼 정치 역시 얼마나 비루한가. 정치는 고단한 우리의 삶을 나아지기는커녕 우리를 괴롭게 한다. 정치인들의 선택은 현실과 괴리되어 삶을 더 고단케 한다. 차악이라 믿었던 선택은 최악처럼 보인다. 정치적 동물이 정치를 불신하게 한다. 냉소, 불신, 무관심, 생각 없음은 무책임, 부패, 방종, 표퓰리즘을 낳는다. 그 결과 우리는 우리 수준에 맞는 정치를 가지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우리의 삶을 더 고단하게 하고, 우리의 선택을 제한한다.

  그렇다면 어쩌란 말인가. 김영민 교수는 말한다. “nevertheless”, “그럼에도 불구하고고단한 삶을 이어갈 희망은 어디서 나오는가. 희망이라 이름 붙이기도 민망한, 최소한 삶을 견딜 수 있는 끈은 어디에 있는가. 지옥 같은 현실에 있다.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는 현실을 충분히 인식한 채 정치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반성된 삶과 숙고된 정치를 위해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관심이 정치로 향해야만 한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의 문제이며, 정치는 그에 대한 응답이다.(p.14)” 책의 제목은 여기서 비롯한다. 우리의 삶과 선택은 하나의 문제이며, 그 문제를 푸는 것은 결국 정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통이 마음의 잔을 넘재앙신이 된 사람들이 도처에 있(p.197)”, 만병통치약을 파는 이들(p.205)”이 현실을 주도한다. 과거의 축복이었던 자식은 도저히 감당 못 할 자식을 많이 두게 되리라는(p.235)”이 저주로 변했고, 책임자는 위험과 책임을 하청 주는 데 열심(p.282)”이다. 산업화의 서사를 넘어 민주화의 서사마저 붕괴한 채 길을 잃었다. 대한민국은 소수의 부자와 가난한 노인들이 불안하게 동거하는 소진된 사회가 목전에 있다.(p.315)” 이 지랄 맞은 세상을 어떻게 하면 답 없는 정치를 통해 바꿀 수 있을까. 늘 그렇듯 김영민 교수는 답을 주지 않는다.

 

생각은 침잠이 아니라 모험이며, 그것이야말로 저열함에서 도약할 수 있는 인간의 특권이다. 타인의 수단으로 동원되기를 거부하고, 자극에 단순히 반응하는 일을 넘어, 타성에 젖지 않은 채, 생각의 모험에 기꺼이 뛰어든 사람들이 만드는 터전이 바로 생각의 공화국이다. p.330

 

  “더러운 세속의 정치를 외면하고 싶겠지만, 복수의 인간이 사는 곳에서 정치는 불가피하다. 정치를 외면하는 것은 세속의 삶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다. 쿠데타는 하루아침에 일어나도 세속의 정치는 하루아침에 개선되지 않는다. 많은 퇴보와 갈지자걸음을 거쳐 아주 조금씩 전진한다. 그 느리고 비천한 과정(p.303)”을 미나리 마냥 버텨야 한다.(p.206) 그리고 생각의 모험을 해야 한다. 지루한 삶이 계속되어야 하듯, 정치 역시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의 특권을 멈춰서는 안 된다. 그것은 직무유기다. 고통스러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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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가 폴 비릴리오는 비행기의 발명은 추락의 발명이며 선박의 발명은 난파의 발명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인생의 발명은 고단함의 발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비행기나 선박의 운행에서 사고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듯, 삶의 운행에서 고단함의 제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삶이 고단하다는 것은 상당부분 동어 반복이다. 산다는 것은 고단함을 집요하게 견디는 일이다. p.10

오늘보다 좋은 내일, 내일보다 좋은 모레, 매일매일 행복한 나. 제멋대로 미래를 꿈꾸는 것도 미망에 홀리는 것이다. 이것이 정도를 넘으면 죄를 짓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꿈이 결락되어 있는 인간은 무력한 사람이 된다. 인생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 기리노 나쓰오 p.11

인간은 타인과 함께하지 않고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존재, 혹은 타인과 더불어 살 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는 존재다. 즉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그러나 타인과 함께하는 일이 어디 쉬운가. p.12

우리는 혼자 있을 수 없었기에 벌을 받는 것이다.” - 스가 아쓰코 p.12

나는 삶이나 정치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혼한 배우자와 다시 결합하기로 결심하는 것처럼, 어떤 사람은 인생이 고단하고 허(p.13)망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살아내기로 결심한다. 어떤 사람은 정치의 세계가 협잡과 음모로 얼룩져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거의 유혹을 떨치고 정치의 세계로 나아간다. 그들의 인생이나 정치는 그러한 자각이 없는 인생이나 정치와는 다를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냥 사는 인생이나 마냥 권력을 쥐려는 정치가 아니라 반성된 삶과 숙고된 정치다.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정치적 동물의 길>은 바로 그러한 삶과 정치에로 초청하는 작은 손짓이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의 문제이며, 정치는 그에 대한 응답이다. p.14

인간이 그저 행복해지는 게 불가능할 때 정치가 시작된다.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이며, 그 문제를 다루는 데 정치가 있다. p.17

수십 년에 걸친 한국의 민주화 과정이 남긴 성취 중의 하나는 시민에 대한 물리적 탄압의 정도와 가능성이 그전 시대에 비해 현저히 줄었다는 것이다. 질서를 유지하겠다며 존재했던 폭(p.36)압이 꽤나 사라진 곳에 이제 무엇이 남았나 물어볼 때다. 폭압에 의존하지 않아도 삶에 필요한 질서를 창출하고 향유할 수 있을 때까지 민주화는 완성되지 않는다. 반드시 폭력을 동반하지 않더라도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적 상태를 일종의 자연 상태로 새삼 바라볼 필요가 있다. p.39

무릇 천하의 재앙 중에서 담백하게 욕심이 없는 상태보다 더 참담한 것은 없다.” - 연암 박지원 <명론> p.45

인간이 천사라면 정치처럼 피곤한 일은 필요 없을 것이다. 천사가 아닌 존재들이 어떻게든 견딜 만한 공존의 질서를 모색하고 유지하는 일이 바로 정치다. 무인도에 표류한 소년들에게 닥친 시련은 경제적 시련이기 이전에 정치적 시련이다. p.50

욕망과 목표가 있으면 권력은 존재하게 되어 있다. p.56

권위는 권력의 가장 말랑말랑한 형태다. 권위는 권력자가 권력을 휘두르지 않는 순간 발생한다. p.62

자신이 가진 힘 이상으로 상대가 두려워하는 것이야말로 권력자가 원하는 바이며, 그렇게 정도 이상으로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권력의 작동이다. 권력은 약자로 하여금 권력의 증강 현신을 체험하게 한다. p.64

정치는 파워를 지향하고, 파워는 소프트 파워를 지향하고, 소프트 파워는 생각 없음(p.71)을 지향한다. 진짜 소프트 파워는 먹음직스러운 소프트 아이스크림과 같다. 저걸 왜 먹어야 하는지 생각할 필요도 없다. 혹은 생각할 틈이 없다. 당신은 이미 먹고 있으니까! 다 먹고 나서 제정신이 돌아온 뒤에야 자신이 왜 먹을 수밖에 없었는지 비로소 자신을 설득하기 시작한다. 정당화는 소프트 아이스크림 제조업체의 몫이 아니라 소비자의 몫이다. 마치 궁극의 정치적 정당화가 권력자가 아니라 추종자의 몫인 것처럼. p.72

정치에 참여하지 않으면 인간은 타고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없고, 결과적으로 끝내 온전해지지 않는다. 마음에는 언제나 공터가 남아 정치가 들어오길 기다린다. 비계가 있어야 삼겹살이 완전해지듯, 정치가 있어야 삶이 완전해진다. p.100

만약 그대가 진정 살기 원한다면/하루하루 새로이 힘을 내어/미친 듯 날뛰는 삶, 거칠게 콧김을 내뿜는 삶/굴복당하지 않으려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 기 샤를 크로 p.101

저항 세력이 권력자가 되어 개혁의 예리함을 잃어갈 때는 곧 정치적 냉소가 자라나기 쉬운 시기이기도 하다. p.103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서도 자신과 타인에게 모두 좋은 길을 얻는 것은 위대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 권적 <지리산수정사기> p.106

근대 정치 이론의 초석을 놓은 토머스 홉스는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그처럼 한갓 사적 인간이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 그들은 죽지 못해서 변신하는 것이다. 변신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으므로. “지속되는 두려움과 난폭한 죽음의 위협으로 인해 인생이 고독하고, 열악하고, 고약하고, 잔인하고, 짧아질까 봐변신하는 것이다.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정도로 괴롭기(p.120) 때문에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것이다. 그 변신 덕분에 인간은 비로소 삶을 견딜 수 있게 된다. 투표는 인간이 정치적 인간으로 변신했던 그 위대한 상상을 되살리는 축제다. p.121

사람들이 재현을 통해 원하는 것이 진실보다는 자기 욕망의 실현이라면 이미지를 볼 때 상상해야 할 것은 재현 대상이 된 원본이 아니라 그 재현물에 묻은 욕망이다. 원본은 여기 없다. p.129

어느 것에도 몰입하지 않기 때문에 거리를 둘 수 있고, 모든 일에 거리를 두기에 전체를 볼 수 있다. / 몰입하지 않는 이가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 그는 상황으로부터 필연적으로 소외된다. 모두 기뻐 날뛸 때 뒤로 물러나 그 장면을 찍어야 하는 촬영기사처럼, 그는 상황으로부터 소외되어(p.135)있다. 그는 어떤 상황에도 몰입하지 않기 때문에 몰입이 주는 쾌감을 누릴 수 없다. 그는 모든 야단법석에 함께하되 그 일부가 되지 않고 늘 거리를 두면서 상황 전체를 생각한다. 게임에 참여하되 게임의 룰과 시작과 끝을 생각한다. 그는 행동하는 자라기보다는 생각하는 자다. (p.136) ... 몰입의 쾌감 대신 아득한 피로와 슬픔이 있다. 그것이 전체를 생각하는 리더가 치러야 하는 대가다. p.137

갱스터는 영화에서 협박을 가하고, 총을 쏘고, 목을 조르고, 피 묻은 손을 씻는다. 그리하여 세상은 강자들의 잔치 같아 보이지만 사실 갱스터는 약자다. 갱스터의 세계란 신대륙에 뒤늦게 건너온 약자들이 합법적인 경로를 찾지 못했을 때 도달하는 곳이다. 아직 기력이 남아 있는 누군가가 그저 약자로만 찌그러져 있지 않겠다는 야심을 가질 때, 그러나 합법적인 통(p.191)로로는 도저히 권력에 접근하기 어려울 때, 갱스터의 길을 가게 된다. / 사회의 진정한 강자는 갱스터처럼 명시적인 폭력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p.192

누구나 역치 이상의 자극을 받으면 돌진하고, 고통이 마음의 잔을 넘치면 재앙신이 된다. 신은 도처에 있다. p.197

삶에 아이러니가 존재한다는 말은 우리가 우리 행동의 결과를 다 통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고, 의도하지 않았던 일이 발생한다. 그래서 나는 예언자들을 기피하고, 쉽게 단정하는 이들을 의심하며, 만병통치약을 파는 이들을 경계하고, 쉽게 확신하는 이들을 불신한다. p.205

아이러니로 가득한 이 삶을 통제할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영화 <미나리>버티라고 말한다. 미나리는 버티는 식물의 대명사다. 실로, 삶에 아이러니가 있다는 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다. 아이러니가 있기에 희망도 있다. 생각하지 못했던 불행이 있는 만큼 예상치 못했던 선물도 있다. 아칸소주 시골로 이사 왔을 때, 그 환경 변화가 손자의 심장 상태를 개선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나쁜 일만 있는 게 삶이라면 삶은 예측 가능하리라. 삶은 예측 가능하지 않기에, 좋은 일도 있다. 삶의 아이러니는 좌절할 이유도 되지만 버틸 이유도 된다. p.206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p.209

아이를 낳지 않는 일이란 이와 같은 집요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 끝에 내린 주체적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 한때 그런 선택이 원천 봉쇄되던 시절이 있었다. 과거에는 자식이 없으면 안정된 노후를 기대할 수 없고, 친족집단이 없으면 사회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몰렸으며, 자신의 유한한 삶에 영생의 환상을 부여할 방법이 딱히(p.234) 없었다. 그러한 시절에 자식이 없으리라(무후 無後)는 것은 최대의 저주가 된다. ... 이제 최대의 저주는 자식이 없을 것이라는 예언이 아니라 도저히 감당 못 할 자식을 많이 두게 되리라는 예언이다. p.235

더 엄혹한 시절에도 인구는 이처럼 빠르게 줄지 않았는데, 왜 하필 이 시대에 이토록 빨리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가? 이제 하나의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인간이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인구가 줄고 있다. 국가의 관점에서 인구 감소는 문제일지 몰라도 재생산을 거부하는 개개인에게 인구 감소는 문제라기 보다는 나름대로 문제에 대처한 결과다. 사람에 따라서 출산 거부는 삶의 난관에 대한 하나의 주체적인 해결책일 수 있다. 그러한 각성에 이른 인간은 1억을 빌려준다고 해서 낳지 않으려던 애를 갑자기 낳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p.237

정치학자 유홍림에 따르면, “혼란을 공동체 의식에 호소함으로써 극복하려는 시도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특히 약자는 계약서의 조항보다 강자의 가변적인 선의에 의존하게 된다. p.254

단일 원인을 찾아내어 단죄하려는 유혹은 강렬하다. 그러나 분명하고 단순한 원인을 찾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아니, 그런 것은 없다. 어떤 문제가 오래 잔존해왔다는 것은 다른 것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다른 많은 것들이 존(p.280)재하기 때문에 그 원인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세월호 비극의 뿌리가 한국 사회 전체에 산포되어 있는 것처럼, 많은 문제의 원인은 대개 해당 사회 전체에 퍼져 있다. p.281

조직의 장이 되겠다는 사람은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까(p.281)지 책임지겠다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조직의 장이 된 사람은 책임을 지기보다는 보신에 힘쓰는 경우가 많다. ... 그래서 위험과 책임을 하청 주는 데 열심이다. 스스로 판단할 문제를 부하에게 미루고, 책임 소재를 흐리기 위해 위원회를 증설한다. p.282

한국 현대사에서 운동권은 하비 덴트였다. p.287

정치 공동체의 유지와 지속에 필수적인 공적인 가치와 서사가 부재하는 한, 그에 기초한 의소소통 능력과 갈등 해소 능력이 고양되지 않는 한, 자연 상태로부터의 탈피는 요원하다. p.291

정치 공동체는 곧 기억의 공동체라는데,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어떤 서사 속에서 살아갈 것인가. p.294

나의 우월함을 드러내는 연민이 아니라, 서로에게 원하는 것이 있어 바치는 아부가 아니라, 나에게도 있고 타인에게도 있는 외로움이 있어 우리는 작은 원을 그렸다. ... 소극적으로 사귀었고 말없이 헤어졌지만, 나는 이것이 우정이 아니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한정원 <시와 산책> p.298

세계를 변혁할 역량이 없을 때는 치장을 통해 환상이라도 가져보는 것이 인간이다. p.302

더러운 세속의 정치를 외면하고 싶겠지만, 복수의 인간이 사는 곳에서 정치는 불가피하다. 정치를 외면하는 것은 세속의 삶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다. 쿠데타는 하루아침에 일어나도 세속의 정치는 하루아침에 개선되지 않는다. 많은 퇴보와 갈지자걸음을 거쳐 아주 조금씩 전진한다. 그 느리고 비천한 과정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그 답답한 과정을 견디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예식을 통해 꿈을 꾸는 일이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격렬히 충돌하는 지점에 심미적 형식을 부여하여 자칫 비천해질 수 있는 정치 과정을 고양하는 것이다. p.303

그 경제 대국이 도달한 지점은 일종의 번 아웃(burn out) 상태다. 사람들은 지쳤고, 싫은 것은 도대체 더 할 수 없다. 현 지점에 오기까지 정말 말 그대로 미치거나 죽을 뻔했기 때문이다. 이제 종신고용을 거부하는 직장의 소모품으로 살다가 부실한 사회 안전망 속으로 버려지고 싶지 않다. 개처럼 일하며 인생을 살다가 사라진 전 세대처럼 되고 싶은 생각이 이제 없다. 다수를 참고 견디게 했던 비약적인 경제성장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산업화의 성장 동력은 고갈되어가고, 민주화의 정치적 상징 자원은 퇴색하고 있으며, 모든 권위는 빠르게 몰락 중이고, 그 몰락을 틈타 사이비 역사 서술이 창궐한다. 소수의 부자와 가난한 노인들이 불안하게 동거하는 소진된 사회가 목전에 있다. p.315

시인 신해욱의 표현을 빌리면, 이 사회에 태어나 살아간다는 것은 곧 수동태 문장으로 된 자서전을 쓰는 일이다. 수동태 문장으로 하루에 한 줄씩 삶을 당하는일이다. “타성에 젖는 맹렬한 쾌락에 사로잡히지 않고 능동태 문장으로 된 자서전을 쓸 때 새로운 공동체는 시작될 것이다. 그 새로운 공동체의 사회계약의 내용은 무엇인가? 이것이 21세기의 새로운 10년을 맞는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이다. 이 질문에는 벗(p.321)어나고 싶은 현재가 주는 참담함이 있다. 우리가 건축한 현대는 부실 건물이었다. 허겁지겁 베껴온 제도들은 헛돌고 있다. 시민이 대거 출현하는 데 마침내 실패했다. 자신들이 추구할 공동선을 정교하게 정의하는 데 기어이 실패했다. 우리의 성취는 꼭 성취가 아니었다. 미국의 SF 소설가 할런 엘리슨은 자신의 작품에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는 제목을 붙인 바 있다. 우리는 대답할 입이 없다. 그리고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p.323

중년이 되고서야 깨닫는다. 중년의 위기가 찾아온 것이 아니라 인생은 늘 위기였는데 그저 중년이 찾아왔을 뿐이라는 걸. 허울 좋은 선진국이 되고서야 깨닫는다. 사회는 아직 문제로 신음하고 있는데, 선진국이 갑자기 찾아왔을 뿐이라는 걸. “절대빈곤에서 출발, 30여 년간의(p.326) 피나는 노력을 통해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된 나라가 어떻게 헬조선이 아닐 수 있겠는가. ... 한국은 지옥불에도 무너지지 않은 그을린 가옥이며, 한국인은 지옥불을 견디고 기어이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이 바이러스 방역에 성공하는 것은 놀랍지 않다. 한국이 방역에 상대적으로 성공한 것은 선진국이어서가 아니라 헬조선이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인적, 물적 자원을 갈아 넣을 수 있는 곳. 원하면 통신사 기지국을 통해 시민의 동선을 샅샅이 복구할 수 있는 곳. 와불처럼 달관하는 대신, 보란 듯이 살아남고야 말겠다는 결기를 가지고 너나 할 것 없이 추노꾼처럼 전력 질주하는 곳. 이곳에 안온한 선진국형 게으름과 권태가 들어설 자리(p.327)는 없다. ... 헬조선에는 독한 역동성이 넘친다. 사람들은 여전히 밥을 사냥하듯 먹고, 자신이 굴릴 돌을 앞장서 고르는 시시포스의 심정으로 직장을 고른다. 각자도생에 분투하는 동안 삶은 빨리 지나가고, 영혼은 간헐적으로나 존재한다. p.328

올리버 색스는 죽음을 앞두고 <나의 삶>이라는 글을 썼다. ... “지각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서 이 아름다운 행성에 살 수 있었다는 것이야말로 대단한 특권이며 모험이었다.” 실로, 생각은 침잠이 아니라 모험이며, 그것이야말로 저열함에서 도약할 수 있는 인간의 특권이다. 타인의 수단으로 동원되기를 거부하고, 자극에 단순히 반응하는 일을 넘어, 타성에 젖지 않은 채, 생각의 모험에 기꺼이 뛰어든 사람들이 만드는 터전이 바로 생각의 공화국이다. 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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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현대사(개정판)-유시민] 과거에서 희망을 얻는 법 | Memento 2021-10-1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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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나의 한국현대사 1959-2020

유시민 저
돌베개 | 202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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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보다 최초로 못사는 세대, 과거에서 희망을 얻어본다. 늘 올바른 길을 갈 수 없지만, 당장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최소한의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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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낙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살아간다. 쓸데없는 고민으로 고통 받는다. 더 나은 삶을 고민하지만, 손에 쥔 것은 개뿔도 없다.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에 떤다. 세상 그 누구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을 테다. 그러나 그 고통 덕분에 내가 현실에 존재한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선조들의 피와 땀, 고통과 고뇌가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한 셈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나의 뿌리가 무엇인지 깨닫고, 그 뿌리를 밑천 삼아 앞으로의 삶을 버텨나가는 것. 과거의 경험과 기억은 미래의 희망과 자산이 될 수 있다. 비록 놓쳐버린 기회가 있을지라도, 다가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나의 한국 근현대사(개정판)>은 우리 근현대사를 통해 앞으로 다가올 희망을 갖게 한다. 사람의 세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없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인간의 상상력을 넘어선 극한까지 치닫곤 했다. p.11” 주어진 독립 이후 혼란 속에서 나라를 세웠다. 미성숙한 민주주의 체제하에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 했고, 군부 독재를 겪었다. 당장 먹고 사는 일이 힘들었고, 군부독재를 용인했다. 그렇다고 선배들이 포기했는가? 아니다. 주어지지 않은 미래를 믿고 싸워서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미래는 내일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 각자의 내면에 이미 들어 있다. p.658” 선배들이 믿고 싸웠기에 세계 유래 없는 국가, 식민지 경험과 내전의 상처를 딛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었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항상 올바른 선택을 한 것도 아니다. 덕분에 지금 우리 삶은 팍팍하다. 부모세대보다 최초로 못사는 세대가 되었고, 포기를 일찍이 체감해야 했다. 과거에 흔했던 기회는 점점 사라졌고, 불확실성만 가득하다. 책임과 의무는 다해야 하지만 주어진 기회를 쟁취하기는커녕 꿈꾸기도 쉽지 않다. 우리세대에게 남은 것은 처참한 현실과 향할 곳 없는 원망뿐일지 모르겠다.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할아버지 세대는 죽음의 위협 속에서 살아남아야만 했다. 아버지 세대는 배고픔을 이겨내고 내 가족의 안정적인 삶을 만들고자 했다. 그 결과 우리가 살아남았고,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모두 선배들의 잘못이기만 할까. 우리들이 부족하고 약하기 때문일까.

 

확실한 것은 우리는 희망을 잃었다. 남은 것은 과거에 대한 원망, 현실에 대한 절망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잊고 있다. 언제나, 어느 시대나 젊은이들은 같은 고민을 하고 살았다는 것을. 고통은 비교 불가능한 주관적인 영역이지만, 모든 세대는 그 고통 속에서도 한걸음씩 나아왔다. 그 걸음은 완벽하지 않다. 완벽할 수 없다.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인간이 만드는 역사도 거기에는 도달할 수 없다. 우리는 다만 그런 상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p.20)” 나 역시 그렇다. 시골 깡촌의 지독히도 가난했던 어린 학생이 이렇듯 최소한의 사람구실 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우리의 선배들이 만든 제도가 나를 그래도 밥 벌어먹고 살게는 해줬다. 다소 성에 차지는 않을지라도...

 

주어진 시대의 환경을 운명으로 받아 안고 의미 있게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소.(p.660)’라고 담담히 말하는 저자의 말에 작은 희망을 가져본다. 그와 동년배는 아니지만, 그들이 만들어준 후대를 사는 입장에서 선배들이 겪었던 고통과 고뇌의 크기를 가늠해 본다. 수 십년이 지나 그들이 자신들에게 고생했다.’ ‘수고했다.’라고 말하며 위로를 얻듯이, 우리 역시 그럴 수 있으리라 작은 그림을 그려본다. 완벽하지 않겠지만, 조금씩 걸어가 본다. 부끄럽고 두렵지만 올바르다 믿는 선택을 해본다. 양극화, N, 불확실성, 주어진 현실들은 분명 만만치 않을 것이고, 어느 하나도 해결하지 못할 거다. 그럼에도 감히 희망을 가져본다. 내 선택들을 믿어 본다. 미래를 이미 우리 안에 와 있기에. 선배들이 그러했듯 우리들도 살아갈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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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세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없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인간의 상상력을 넘어선 극한까지 치닫곤 했다. 호모사피엔스가 생물학적 진화를 이루지 못하는 한, 미래의 역사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환멸과 절망감이 세상을 뒤덮을 때도 반전의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역사는 나를 격려해줬다. 역사는 또한 환희와 낙관이 넘쳐나는 시대가 비극과 몰락의 시간을 예비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런 두려움을 안고 격려를 받으며 나는 오늘의 역사를 산다. 그 과정에서 모인 생각과 감정을 나누며 독자들께 말하고 싶다. ‘역사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p.11

모든 역사는 주관적 기록이다. 역사는 과거를 실제 그러했던 그대로보여주지 않는다. 방송뉴스와 신문보도가 현재를 실재 그대로전해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p.13

사실의 선택과 선택한 사실의 해석, 역사 서술의 핵심인 이 두 가지가 모두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역사를 둘러싼 다툼이 생기는 것이다. 역사 중에서도 현대사는 특별히 민감하다.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은 현재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 주역들이 살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죽고 없더라도 그들의 행위로 인해 억울하게 고통(p.14)을 겪었거나 정당한 또는 부당한 이익을 얻은 사람들은 살아 있다. 우리는 이승만부터 박근혜까지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과 그들이 한 행위에 대해 강한 호불호의 감정을 느낀다. 그들을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왕처럼 느긋하게 대하지 못한다. p.15

나는 냉정한 관찰자가 아니라 번민하는 당사자로서 우리 세대가 살았던 역사를 돌아보았다. 없는 것을 지어내거나 사실을 왜곡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사실들을 선택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인과관계나 상관관계로 묶어 해석할 권리는 만인에게 주어져 있다. 나는 이 권리를 소신껏 행사했다. p.18

훌륭함은 아무 오류가 없는 완전무결함이나 지고지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 아니다.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인간이 만드는 역사도 거기에는 도달할 수 없다. 우리는 다만 그런 상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만약 어떤 사회가 추하고 불합리하며 저열한 상태에서, 완전하지는 않지(p.20)만 더 아름답고 합리적이며 고결한 상태로 변화했다면, 그 과정을 기록한 역사가 훌륭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한국현대사 55년이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역사라 생각한다. p.21

민주주의 선거제도는 훌륭한 사람의 당선을 보장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악한 인물이 권력을 쥐어도 악을 마음대로 행사할 수 없게(p.34)한다는 강점 덕분에 문명의 대세가 됐다. 이른바 국정농단이후 한국에서 펼쳐진 상황은 그런 역설을 증명해 보였다. p.35

경제발전 공로를 인정한다고 해서 독재와 인권유린까지 옹호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p.37

고령 유권자들은 투표행위를 통해 자신의 삶과 시대를 인정받으려 했다. 그들은 일제강점과 해방공간의 혼란, 참혹한 전재오가 절대빈곤의 고통을 견뎌냈다. 길었던 군사독재의 어둠을 뚫고 오늘에 이르는 동안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룸으로써 대한민국 사회를 바꿔놓았다.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일에 모든 것을 쏟고 빈손으로 노후를 맞았다. 박근혜 후보와 보수정당에 표를 준 것이 그 삶과 시대를 인정받으려는 소망을 표현하는 적절한 방법은 아니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달리 그 소망을 드러낼 방법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것은 하나의 가설에 지나지 않지만 고령 유권자들의 투표행위에 대한 이성적설명이 될 수는 있으리라 믿는다. / 박근혜가 단지 박정희의 딸이어서, 문재인이 오로지 노무현의 친구여서 대통령이 됐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p.39) ‘박정희의 딸노무현의 친구가 아니었다면 그들은 유력한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2012년과 2017년의 대통령선거는 박정희 시대와 김대중, 노무현 시대가 맞부딪친 역사의 전장이었다. p.40

지난 두 차례의 대통령선거는 단순한 정당 사이의 권력다툼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관과 인생관의 투쟁이었고, 서로 다른 문화 간의 갈등이었으며, 서로 다른 역사인식의 충돌이었다. p.46

현재는 과거의 산물이며 미래는 현재의 연장이다. 그런 점에서 미래는 내일 오는 게 아니라 우리 내면이 이미 들어와 있다. 내가 이 책에서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것은 우리 안에 있는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감정이다. p.46

역사는 주관적인 기록이다. 누가 쓴 어떤 역사도 과거를 원래 그러했던 그대로보여주지 않는다. ‘현재는 가상의 개념일 뿐이다. 현재의 모든 사실은 즉각 과거로 들어간다. 흐르는 시간에 실려온 모든 사실은 과거라는 거대한 수용소에서 망각과 소멸의 운명을 기다린다. 어떤 역사가의 손길이 닿은 사실만이 그 운명의 집행을 잠시 유예받은 역사적 사실이 된다. 사실에게는 선택할 권리가 없다. 선택은 역사가의 몫이다. 그래서 한 시대에 대(p.47)100명의 역사가는 100가지의 서로 다른 역사를 쓸 수 있으며, 한 시대에 대해 한 사람이 상이한 역사를 쓸 수도 있다. / 역사적 사실은 진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실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며 역사가가 허락할 때만 말을 한다. 역사가는 제멋대로 사실을 만들거나 바꿀 수 없지만 사실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사실과 역사가는 평등한 관계에서 서로를 필요로 한다. 자신만의 사실을 갖지 않은 역사가는 뿌리 없는 풀과 같고 자신의 역사가가 없는 사실을 죽은 것이다. p.48

대립하는 역사인시그이 배후에는 대립하는 이해관계뿐 아니라 서로 다른 경험과 인생관이 놓여 있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면서 끊임없이 자신과 타인을 비교한다. 어떤 사람은 좋아하고 존경하며, 어떤 사람은 싫어하고 경멸한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되도록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p.49) ... “당신, 가치관에 문제가 있어. 인생을 잘못 사는 거야!” 이런 말을 듣고 기분이 좋을 사람은 없다. 그런데 같은 말도 역사를 가지고 하면 부담이 덜하다. “역사를 잘못 아시는군요!” 하지만 이런 말도 단순히 가거 사실에 대한 인식과 견해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그 사람의 철학과 인격에 대한 비난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뉴라이트의 한국사 교과서나 <반일 종족주의>를 둘러싼 논쟁이 친일파’, ‘극우’, ‘좌파’, ‘종북이라며 서로를 손가락질하는 감정, 정치적 공방으로 번진 것이다. p.50

우리 역사에서 모든 청년에게 제대로 된 일자리가 주어진 적은 한 번도 없다. p.62

대한민국이 모두에게 살기 좋은 나라는 아니다. 고르게 가난했던 독재국가 대한민국은 풍요롭지만 고르지 않은 민주국가로 변신했다. p.74

나는 한국현대사를 만든 힘이 대중의 욕망이었다고 생각한다. 욕망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느낌 때문인지 사람들은 욕구라는 말을 선호하지만 어(p.80)느 것을 쓰든 상관없다. ‘대한민국의 기적과 같은 변화를 이뤄낸 동력은 대중이 개별, 집단적으로 분출한 욕망이었다. 사람은 충족되지 않은 욕마을 안고 산다. 욕망은 행동을 일으키고 행동은 사회를 바꾼다. 만약 모든 욕망을 다채워서 어떤 결핍도 느끼지 않는다면 더는 행동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새로운 욕망을 끝없이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끼 때문에 그런 상태에 이르지 않는다. p.81

모든 민주주의는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국가의 정부는 주권자인 국민의 수준을 반영한다는 뜻이다. 나는 젊었을 때 프랑스 정치가 알렉시 드 토크빌에게 저작권이 있다는 이 말의 역도 성립한다고 생각했다. 표현의(p.102) 자유를 탄압하고 언론을 통제해 여론을 조작하며 정부를 찬양하는 교과서로 아이들을 세뇌하고 공포를 조장해 대중을 길들이는 독제체제에서는 정부가 국민의 수준을 반영하지 않는다. 우리 국민은 훨씬 더 훌륭한 정부를 가질 자격이 있으니 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이루면 우리도 미국이나 서유럽처럼 수준 높은 정부를 세울 수 있다고 믿었다. p.103

역사에서는 가정이 없다지만, 가정은 때로 역사를 이해하는 데 유용하(p.111). 만약 우리가 신탁통치를 받아들여 좌우가 동거하는 통일 정부를 만들었다면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됐을까? 그랬으리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다. p.112

국가의 정통성은 외부에서 오지 않는다. ‘유엔이 인정한 한반도의 유일 합법 정부라는 구호는 정치적 수사에 지나지 않으며 남북 모두 유엔 회원국이 된 후에는 그런 의미마저 사라졌다. 국가의 정통성은 특정한 이념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빛나는 이념을 내세운다고 해도 사회 구성원의 다수가 인정하고 수용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국가의 정통성은 국민이, 민중이, 인민이 또는 대중이 그 나라의 국민임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국가의 결정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복종할 때, 외부의 침략과 내부의 무질서에 대항해 공동체를 지키려고 헌신할 때 형성된다. p.114

외국의 식민지였다가 자주권을 되찾은 신생국가는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정통성을 세울 수 있다. 첫째는 역사의 대의명분이다 신생 대한민국의 긴급과제는 일제 잔재를 청산해 민족의 자주성을 세우는 일이었다. 그러려면 조국의 광복을 위해 노력하고 헌신한 사람들이 국가를 세우고 운영해야 했다. 둘째는 경제적 효율성이다. 민중을 빈곤에서 해방하고 물질적 삶을 개선해야 국민이 최소한의 기대를 품고 국가에 복종, 협력하게 된다. 셋째는 민주적 정당성이다. 헌법에 따라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고 주권재민 또는 인민주권의 원리를 실현해야 한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은 권력의 단맛을 누리는 데만 몰두했지 그 일을 하지 않았다. p.115

20136월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p.121) “남쪽이 자주성이 결여되어서남북관계가 풀리지 않는다고 거듭 비판하는 대목이 있다. ‘자주이념이 지금까지도 북한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남아 있다는 뜻이다. 반면 대한민국의 민족주의자들은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채 미국에 종속되어 산다는 열등감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독재가 공존했던 1980년대 한국사회 한복판에서 탄생한 주사파는 뿌리 깊은 민족주의적 열등감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p.122

혁명과 쿠데타를 구분하는 기준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쿠데타는 민중의 동의와 지지와 참여가 없이 폭력으로 국가질서를 전복하고 권력을 장악하는 행위를 가리키며 군대를 동원해 그런 일을 하면 군사쿠데타라고 한다. (p.139) ...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운영을 잘해서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고 해도 5.16이 군사쿠데타였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p.140

여가가 없는 시민에게 자유와 민주주의는 아무 의미가 없다. 90% 사람들은 항상 일만 하고 여가가 없는 반면 10% 사람들은 늘 놀면서 전혀 또는 거의 일하지 않는다면 자유란 허깨비에 지나지 않는다. 마그나카르타, 권리장전, 미국 헌법, 자유와 평등이라는 프랑스의 모토는 한갓 종잇조각에 불과한 것이다. -G.버나드 쇼, <쇼에게 세상을 묻다> p.148

역사에는 연습이나 실험이 없으며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는 바꿀 수 없다. ... ‘사고실험을 할 수는 있지만 그 실험의 결론이 타당한지 여부는 검증할 방법이 없다. p.151

[그림2(한국 경제의 비행궤적, GNI)]60여 년에 걸쳐 수천만 국민이 수행한 분투의 기록이며 그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은 사람들과 죽어간 사람들이 느꼈던 기쁨과 슬픔, 자부심과 분노를 느끼게 한(p.170). 역사가 그들의 인생에 각인한 성공과 좌절의 침전물인 동시에 대통령들이 품었던 야심과 포부의 흔적이기도 하다. ... 오늘 우리가 누리는 어느 것 하나도 하늘에서 거저 떨어지지 않았다. 오늘의 청년들은 그 모두를 원래부터 있던 것으로 여길지 몰라도, 나는 꿈을 꾸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많다. p.171

국민총생산을 늘리는 방법은 네 가지가 있다. 첫째, 더 많은 노동력의 투입. 그렇게 하려면 인구가 늘어야 하며, 인구가 늘지 않는다면 고용률을 높여야 한다. 둘째, 더 많은 자본의 투입. 그러려면 투자를 해야 한다. 투자는 생산한 것 가운데 일부를 소비하지 않고 자본을 형성하는 쓰는 행위를 말한다. 투자율이 높으면 성장률이 높아질 가능성이 커진다. 셋째, 생산기술의 향상, 기술수준이 높으면 같은 양의 노동력과 자본으로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다. (p.186),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 합리적 규칙이 있고 자본가와 노동자, 정부와 기업, 공급자와 수요자 그리고 시민 각자가 모두 그 규칙을 지키면서 남들 역시 그렇게 할 것이라고 믿는 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회에 비해 더 많은 부를 생산할 수 있다. p.187

민주주의는 단순히 제도의 총합이 아니라 제도와 행태와 의식의 복합물이다. 합리적인 제도가 있어도 행태가 비뚤어지면 소용이 없다. 권력집단과 유권자의 행태는 욕망과 감정, 의식과 관습을 비롯한 여러 요소가 좌우한다. 좋은 헌법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집권세력 또는 통치자가 헌법과 민주주의 기본원리를 존중해야 하며 시민이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알고 행사해야 한다. p.274

민주주의는 최선의 인물이 권력을 장악해 최대의 선을 실현하도록 하는 제도가 아니라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잡아도 악을 마음껏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제도다. 그것은 현실에 존재한느 구체적인 악을 최소화함으로써 사회를 지속적으로 개량해나가는 데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다. p.276

사람은 누구나 성공한 경험을 소중하게 여긴다. 그래서 과거와는 성격이 다른 도전에도 예전에 성공했던 방식으로 응전하는 경향이 있다. 민주주의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전략과 행동양식이 등장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p.286

독재정권이 대중의 욕망을 거스를 수 없(p.366)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1980년대의 혁명전사들도 대중의 욕망을 무시하지 못했다. p.367

누가 하는 어떤 것이든, 민주주의와 관련한 헌법의 규정을 실현하려는 활동은 민주화운동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대통령에 대해서, 정당에 대해서, 통일문제에 대해서, 혁명에 대해서, 그 무엇에 대해서든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가 있다. 표현의 자유는 정부가, 또는 압도적 다수의 국민이 옳다고 생각하는 견해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대다수 국민이 터무니없다고 판단하는 견해까지도 제한 없이 표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비록 진리가 아니라 할지라도 그 견해를 표현하는 행위가 다른 사람(p.405)의 자유와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는다면 제약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헌법의 정신이며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다. p.406

자이실현을 하려면 살아가는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살아가는 방식은 신념이나 이상 같은 철학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일상생활을 설계하는 취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p.422

저출산 현상은 자유주의적 각성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했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며 사람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우리의 도덕적 직관은 그렇게 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의 생명과 존엄성도 희소성지불 능력이라는 경제논리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사람도 너무 많으면 대접 받지 못한다. 물질적 능력이 없는 경우에도 그렇다. 많은 사람이 비참하고 가난하게 사는 사(p.435)회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사람답게 대우하지 않으며 집단은 개인을 존중하지 않는다. 산업화의 성공과 저출산 현상은 사람의 희소성과 가치를 높였다. p.436

권력자는 역사에 자신의 인격을 각인한다. 한국현대사(p.495)에서 가장 뚜렷한 각인을 남긴 지도자는 박정희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러나 때로는 아무 지위도 권력도 없는 사람이 역사에 자신의 인격을 각인하기도 한다. ‘영원한 청년 노동자또는 노동열사전태일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p.496

소설가 김훈 선(p.510)생은 합동분향소를 다녀와서 이렇게 한탄한다. “나는 다만 울음을 듣고 돌아왔다. 늙은 어머니와 젊은 아내는 땅을 치며 울었고 뒹굴면서 울었다. 왜 이런 참사가 거듭되는가. 수많은 박사학위 논문, 연구보고서, 특집기사, 세미나, 공청회, 국무회의, 긴급대책회의, 총리 지시가 있었다. 이 산더미 같은 담론은 대체 무엇인가. 모두가 말짱 헛것이고 꽝이고 도루묵이다. 우리는 왜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가. 우리는 왜 넘어진 자리에서 거듭 넘어지는가. 우리는 왜 날마다 명복을 비는가. 우리는 왜 이런가.” p.511

물질의 결핍이나 불합리한 제도만이 아니라 낡은 관념도 인간의 자유를 억압한다. p.540

페미니즘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나는 미국 문화비평가 리베카 솔닛의 생각을 받아들인다. 페미니즘은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존엄한 인간이라는 사상이다. 누구도 내놓고 부정하지 못할 만큼 당연해 보이는 이 사상이 혁명성을 띤 것은 현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p.543

우리는 평등 이슈를 노동문제농민문제와 동열에 놓인 여성문제로 취급했다. p.545

역사에 대한 지식은 어떤 유형의 정부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으며 또한 어떤 유형의 정부가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가에 대해서도 실마리를 제공한다. 사실 성공적인 정부의 세 가지 주요 적은 이데올로기, 도덕성, 공포다. 이데올로기에 의존하는 정부는 실패하기 쉬운데, 이데올로기는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는 경험을 받아들이는 데 필수적인 개방성을 낳지 않고 오히려 폐쇄적인 사고 체계를 낳는다. -버넌 보그다너, <역사, 시민이 묻고 역사가가 답하고 저널리스트가 논하다> p.556

레드 콤플렉스는 단순한 반공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이념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과 안전을 지키려는 삶의 방편이었다. 북한 편으로 몰릴 위험을 피하기 위해 양심의 자유를 포기하고 자유와 권리의 박탈을 묵인한 정신적 병리현상이었다. p.565

오늘날 40, 50대가 20년 후 지금의 60, 70대와 비슷해진다면 별로 희망이 없다. 지금의 40, 50대는 다른 연령층에 비해 수가 많다. 그들이 변화를 기피하는 보수적 또는 과거 회귀적 고령 유권자가 된다면(p.657) 대한민국은 일본처럼 혁신이 불가능한 사회가 되어 물질에 대한 개별적 욕망과 북한에 대한 감정적 증오가 지배하는 나라로 머물 것이다. p.658

미래는 내일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 각자의 내면에 이미 들어 있다. 지금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것이 시간의 물결을 타고 나와 미래가 된다. 역사는 역사 밖에 존재하는 어떤 법칙이나 힘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사람의 욕망과 의지가 만든다. 더 좋은 미래를 원한다면 매 순간 우리 각자의 내면에 좋은 것을 쌓아야 한다. 우리 안에 만들어야 할 좋은 것의 목록에는 역사에 대한 공명도 들어 있다. p.658

짧지 않은 그 이야기를 마치면서, 나는(p.659) 내 자신과 동시대의 벗들을 위로하고 싶다. ‘주어진 시대의 환경을 운명으로 받아 안고 의미 있게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소.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살면서 오늘을 만들었으니 이제 젊은이들이 살아가는 역사를 지켜봅시다. 우리 각자의 내면에 아직도 아름다운 감정과 소망이 남아 있다면 저마다의 방식으로 풀어내면서 삶의 마지막 날까지 서로 등 두들기며 걸어갑시다.’ p.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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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이영채 외] 중요한 것은 지금, 바로 현실이다. | Memento 2021-10-11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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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우리나라의 과거와 미래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국가다. 오랫동안 지속적인 교류를 해왔고, 앞으로도 중요한 파트너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일본이 좋은 파트너인가에 대해서는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식민지의 기억은 너무나도 강력하다. 아픈 경험은 여전히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수많은 피와 땀에도 불구하고 독립은 급작스럽게 주어졌다. 해방 후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었다. 국가를 재건하기 위한 모든 자원이 부족했다. 친일파의 재등용은 어쩌면 불가피했는지도 모르겠다. 친일파 청산의 당위성과 별개로 막 독립한 혼란스러운 국가를 재건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는 분명히 존재했다.

 

실재로 일본 제국대학 출신의 엘리트들은 남북한을 재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들은 자연스레 기득권이 되었다. 문제는 한 번 주어진 기득권은 되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정현종의 <제국대학의 조센징>에서 김연수-김상협 부자의 사례를 들어구한말의 지주는 식민지 산업자본가를 낳았고, 그 산업자본가는 군사정권의 국무총리를 낳았다.(p.54)”고 말했다. 친일파 청산에 철저했다고 하는 북한 역시 다르지 않았다. 제국대학은 일본만이 아니라 식민지 및 남북한에서도 국가 엘리트 육성 장치(p.22)’로 기능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역사를 보다보면 그 시대마다 주어진 임무가 있다. 친일파 청산과 국가 재건은 당시의 소명이었고, 하나는 그럭저럭 해냈다. 다음으로는 산업화와 민주화였다. 한국은 그것을 (수많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해내었다. 그리고 맞이한 새 시대에 주어진 사명은 무엇일까. 양극화 해소, 통일, 사람 사는 세상, 아직은 합치된 의견이나 해결책은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눈길은 자연스레 과거로 돌아갈 법 하다. 우리가 해결하지 못한 소명, 남은 것은 친일파 청산이다. 쉬운 문제가 아니다. 식민지 경험과 제도, 친일파를 도덕적인 이분법으로 모두 이라 규정하고 그것을 적출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환상(p.296)‘이다.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는 일조차 수많은 논란과 얘기를 낳지 않았던가. 그저 폭파만으로 해결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은 그 해답을 바로 지금을 정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친일파 정리는 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하는 게 아니라” “친일파를 누가 이어받았는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가?(p.173)”를 밝힘으로써 그들의 힘을 깨야한다고 주장한다. 과거가 아닌 현재에서 싸워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를 알아야 하고, 현재를 이해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다툼은 불가피하다. 과거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서 들춰내야 하며, 현재를 기준으로 관계를 다시 세워야하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은 한국대로 분노하고, 일본은 일본대로 피로하다. 결국 역사분쟁은 경제보복으로 번졌다.

 

이 분쟁은 일본 극우 세력의 정치적 기반이 된다. 북한을 포함하여 한반도와의 갈등은 일본이 전쟁이 가능한 정상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자양분이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에 성공했고, 드넓은 식민지를 경영하며 아시아를 호령했다. 다시 한 번 전성기를 찾고자 극우 세력은 과거로 눈을 돌린 셈이다. 팽창을 위해서는 전쟁 능력이 필요하고, 정상국가로의 복귀는 이를 위한 사전작업이다. 특히 야스쿠니 신사는 완벽한 군국주의의 시설로 근대 일본의 정신적인 구심점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야스쿠니 신사가 공식적인 국가시설로 전환되는지 여부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팽창전략을 수행하기 위한 정신적인 기반을 되살려,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초석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야스쿠니를 둘러싼 논쟁은 일본의 보수 세력들이 어떤 형태로 재편될 것인가 가늠할 수 있는 핵심 요소(p.87)”.

 

일본의 극우화는 동아시아 국가들에게서 중요한 문제다. 일본의 성공은 주변국 모두에게 불행했다. 풍선은 무한대로 부풀어 오를 수 없다. 한계에 다다르면 큰 소리와 함께 터지기 마련이다. 실패한 과거로 회귀하려는 일본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돌아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야스쿠니 신사를 통해 일본 우익세력의 동향을 살펴보며, 한국 내 동조세력을 견제하는 일은 한국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다. 전 세계적으로 극우세력이 득세하고, 포퓰리즘, 폐쇄적인 민족주의가 대두하는 상황에서 세계 평화를 보전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일본의 위기는 곧 한국의 위기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 거울 같은 존재(p.326)”. 무조건적인 화평은 불가하지만, 일본을 배제한 채 살아갈 수 없다. 긴밀히 연결된 만큼 서로 간에 좋은 파트너가 되어야 함은 양쪽 모두에게 당연하다. 그렇기에 과거사 청산은 현실을 개혁함으로써 해야(p.175)”한다는 주장은 중요하다. 과거에 얽매여 서로를 악으로 규정하고 배제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가능하다고 주장한다면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결국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를 향해 나가야 한다. 평화세력의 연대를 통해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한 실마리를 <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 자세히 보여준다. 과거에 남아 있는 흔적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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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으로 어떤 한 국가나 사회가 고립되어 있을 때 이를 풀어갈 수 있는 것이 소프트파워, 즉 문화교류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경제와도 연결되고, 그러면서 정치 영역의 교류도 활성화된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국제정치 이론으로 봤을 때 한일관계는 경제교류가 지금까지 지속되었고 문화적으로 더 밀접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 영역은 오히려 악화되어가는, 이상한 비대칭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p.42

한국은 19438월에 독립했다기보다 미국의 동아시아 점령 정책 속에 편입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p.48

일본에는 아시아 주변국의 역사반성 요구를 받아들일 기본 토양조차 부족하다는 현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p.55

야스쿠니를 폐지하라는 말은 천황제를 폐지하라는 말이고, 나아가 근대국가 일본을 해체하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야스쿠니 폐지라는 주장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p.68

야스쿠니는 완벽한 군국주의의 시설이었습니다.(전후 군국주의 시설에 대한 비판으로 현재는 예제 날짜를 422, 1018일로 변경해서 진행하고 있음.) 그래서 신도가 일본의 전통 종교이긴 하지만, 야스쿠니는 신도의 이름을 빌린 군국주의 시설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p.78

헌법 개정이나 안보법 개정보다도 야스쿠니가 공식적인 국가시설이 되었을 때야말로 일본이 진정한 군국주의로 돌아섰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전후 일본은 평화국가를 만들어왔기 때문에 국민들이 전전과는 다르게 전쟁을 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수상들이 야스쿠니 참배를 계속하고 야스쿠니를 공식화해서 일본인들이 전전처럼 전쟁에 대한 준비를 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보수세력의 노림수인 것입니다. p.83

야스쿠니를 둘러싼 논쟁은 일본의 보수 세력들이 어떤 형태로 재편될 것인가 가늠할 수 있는 핵심 요소입니다. 어떻게 주장하든 일본의 보수세력은 공통적으로 야스쿠니를 인정해야만 자신들이 집권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앞으로 야스쿠니를 국립추도시설로 삼으려는 운동이 훨씬 더 대중화되리라 예상됩니다. p.87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바라볼 때 민족적 관점이 중요하긴 하지만, 오로지 민족적 관점으로만 보면 안 됩니다. 보편적 관점이 중요합니다. 인권의 문제, 평화의 문제로 여겨야 합니다. 우리를 반일 종족주의자라고 몰고 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사실 종족주의자입니다. 보편적인 기준을 갖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자가 누구냐만 갖고 따지는 것이 편협한 종족주의이지요. 전강수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혐한 종족주의자라고 불러야 마땅합니다. p.97

네덜란드 학자 카렌 판 볼레펜은 The Enigma of Japanese Power(일본이 지닌 힘의 수수께끼)라는 유명한 책에서 일본을 머리 없는 괴물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군국주의 일본은 독일 나치즘의 히틀러나 이탈리아 파시즘의 무솔리니 같은 수괴가 없다는 뜻입니다. 고노에 후미마로나 악명 높은 도조 히데키도 그런 수괴는 아니었습니다. p.128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일본의 식민지배가 한반도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하지만, 오히려 우리에게 처참한 비극이었던 한국전쟁을 계기로 일본이 회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p.130

박정희가 1945년 이전에 물리적으로 한 친일은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박정희가 친일파가 되기 위해 긴 기간 준비운동만 한 셈입니다. 대구사범학교부터 일본 육사까지 문무를 겸비해 제국에서 출세하기 위한 발을 내디디자마자 일본제국이 패망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박정희를 원조 친일파라고 하는 이유는 집권한 이후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대한민국을 일본 극우파가 생각했던 방향으로 끌고 갔기 때문입니다. 바로 일본이 만주국을 경영했던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 과정에서 박정희의 사상적 지도자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세지마 류조고, 그 배경에 황도파 사상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p.136

친일파 정리는 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지금을 정리하면 친일파는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입니다. 중요한 건 현실입니다. 오늘 친일 문제의 싸움터는 1920년대, 30년대, 40년대의 역사연구가 아닙니다. 친일파를 누가 이어받았는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가? 그 힘을 깨버리는 게 친일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연구는 그 다음에 숨 돌리면서 하면 되지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주전장은 여기, 지금 이 순간입니다. p.173

과거(p.174)사 청산은 현실을 개혁함으로써 해야 합니다. 지금을 바로잡으면 과거가 바로잡힌다는 생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과거를 바로잡아서 지금을 바로잡으려는 생각은 잘못되었습니다. 우리의 과거 청산이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중요한 이유가 그런 방식이었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p.175

물론 우리에게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맹아론은 말하자면 죽은 자식 나이 세는 격이지 싶습니다.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요? 제국주의 침략을 당하고 그 싹이 짓밟혀버려서 결국 발전하지 못했다면 그 싹이 실제로 있었던 건지도 불분명하고, 있었다 해도 어떻게 발전해갔을지 증명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싹보다는 씨앗에 가깝지 않았나 싶습니다. p.91

재일조선인을 둘러싼 여러 문제들은 여러분의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미묘하게 얽혀 있습니다. 그 속에는 한일관계뿐 아니라 남북관계, 북일관계까지 숨어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재일 조선인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한일관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p.218

해방 이래 조선학교가 겪은 고난사는 재일조선인이 겪은 차별과 인권 문제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권리는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주어야 하는 것임에도 한일관계나 북일관계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고 심지어 인질처럼 다뤄졌지요. p.250

재일조선인들은 해방 이래 지금까지 줄곧 똑같은 질문을 받아왔습니다. “당신의 정체성은 일본입니까, 남한입니까, 북한입니까?” 예전 한 재일조선인은 이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정체성이 그렇게나 중요합니까? 왜 정체성에 그 정도로 연연합니까? 밤하늘에 반짝이는(p.264) 별이 수없이 있는데, 어떤 별은 한국 것이고, 어떤 별은 일본 것입니까?” p.265

한국과 일본은 서로 거울 같은 존재입니다. 공통적으로 지니는 특성이 너무 많아서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나라이지요. 어느 한 나라가 반면교사인 것이 아니라 서로 그렇습니다. p.326

일본이 조선 식민지 정책에 근대화 및 개발의 측면이 있다는 것은 전면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착취와 종속을 주장할수록 그들의 근대화 및 개발 논리 역시 계속해서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할 뿐입니다. 역사수정주의에 대해서는 통계나 논리만이 아닌 역사 현장에서 당시의 개발이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로 누구를 위해서 이루어졌는지 한일 시민사회가 함께 현장을 검증하는 새로운 연구모델이 필요합니다. p.330

일본은 한국의 통일을 이루어주지 못하지만, 우리의 통일을 방해할 힘이 있는 나라입니다.’ ... ‘일본은 한국이 20년 뒤에 겪게 될 모순된 사회상을 보여주면서도, 우리 사회가 현재 안고 있는 모순을 배우지는 않는 나라입니다.’(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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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잘한다는 것0야마구치 슈 외] 기술을 넘어 인문학적 감성까지 | Memento 2021-08-22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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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일을 잘한다는 것

야마구치 슈,구스노키 겐 공저/김윤경 역
리더스북 | 202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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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능력은 학벌에 비례하는가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이 있다. 혹자는 고학벌이라고 해서 업무능력이 뛰어나지 않다고도 하고, 혹자는 더 뛰어나다고도 한다. 최근 취업 시 학벌을 보지 않는 경우도 많고, 공무원 시험은 같은 경우에 학벌은 상관 없다. 그럼에도 사람을 뽑을 때 학벌은 나름 중요한 기준이 된다. 고학벌이라는 것은 일정부분 개인의 능력을 반영한다고 암묵적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고학벌은 비교적 동일하게 주어진 학업기간 동안 타인보다 우위를 점했다고 할 수 있다. 핵심은 ‘우위’를 점하는 방식이다. 개인의 역량이 아닌 부모님의 부 같은 외부 요건으로 만들어진 우위라면 학벌이 업무능력에 영향을 주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부모도 능력이라면 할 말은 없지만.
학벌은 업무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개인의 역량을 어느정도 보장해 준다. 평균적으로 보장해 줄 수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어디까지나 확률의 문제다. 자격증이나 자격시험도 유사하다. 실재 업무능력을 판단할 수 없기에, 해당 분야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계량화해서 시험을 통해 증명하는 방법이다. 물론 고도의 기술과 노력을 요하기 때문에 자격시험을 두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자격을 얻었다고 해서 모두 뛰어나지 않다. 그렇다면 업무에서 탁월하다는 것, “일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으로 결정되는 걸까. 어떻게 그것을 판단할 수 있을까.
<일을 잘한다는 것>은 일본 최고의 전략 컨설턴트 야마구치 슈와 일본 최고의 경쟁전략 전문가 구스노키 겐의 대담집이다. ‘일 잘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을 분석하고 정의한다. 저자들은 업무 능력이란 “기술을 넘어서는 개념”으로 “이를 총칭해서 '감각'(p.20)”으로 정의한다. 이때 감각은 “기술에 대비되는(p.29)” 개념으로 “누가 단련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단련되는(p.23)” 능력을 말한다. 기술은 “옳은 방법의 선택과 노력, 그리고 지속적인 시간 투자(p.38)”로 향상시킬 수 있지만, 감각은 다르다.
그래서 일을 잘한다는 것은 누구나 느끼고 말로 표현하지만, 막상 구체적으로 표현해 내기 어렵다. “저 사람 업무능력이 진짜 뛰어나.”라고 평가하면서 구체적으로 무엇 무엇을 잘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능력을 계량화하거나 구체적으로 특정 수준으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평가는 지극히 주관적이다. 그래서 업무능력이라는 비계량적이고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이 아닌, 학벌이라는 계량 가능하고 눈에 보이는 걸로 평가하기 쉽다.
이때 무엇은 기술에 해당할 테다. 그리고 감각은 이 무엇을 어떻게 조합하고, 이를 근거로 올바른 판단을 해내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뛰어난 업무 능력을 위해서 기술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 이상이 필요하다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이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저자들은 ‘기초교양’을 중요시 한다. “기초교양이란 자신의 가치 기준을 자신의 언어로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으로 “자신이 스스로 형성한 가치 기준이 있다는 것, '자각적인 것'이 있다는 것(p.69)“을 말한다. 즉, 기술을 넘어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감수성이 필요하다.
일에 대한 감각을 키우기 위해서 명확한 방법이 없다. “습득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노력과 성과의 인과관계가 불명확하다.(p.38)” 과학과는 다르다. 수치화할 수 없고, 측정하거나, 일률적으로 매뉴얼화 할 수 없다. 저자들은 “예술”이라고도 표현하는데, 결국 일의 감각은 인문학적 감수성과 관련이 깊다. 대표적인 예가 애플의 아이폰이 아닐까 싶다. 기술적인 토대위에 감성을 얹은(?) 아이폰은 다른 기기들을 압도하고 있다. 근대사회에서는 대량생산에 적합한 기준이 필요했다. 그게 바로 학벌과 자격증이었다. 현대사회의 요구사항은 이전과 다르다. 기술적 토대에서 한 걸음 나아가서 다른 것과의 차별을 요구한다. 일을 잘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것을 찾아내는 여섯 번째 감각, 육감이 필요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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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 근무의 가장 큰 의미는 지금까지 자신이 해오던 일이나 업무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를 얻었다는 데 있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뀜에 따라 자신의 일에 어떠한 차이가 발생했는지, 무엇이 달라지고 무엇이 바뀌지 않았는지를 다시 차근히 짚어보면 자신이 하는 일의 본질이 보일 것이다. p.15
업무 능력이란 어떤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할 때의 기술을 넘어서는 개념이며, 이를 총칭해서 '감각'이라고 부른다. ... '작업'은 잘할지 몰라도 '일'은 잘하지 못한다. 일하는 기술은 있는지 몰라도 일하는 감각은 없는 것이다. p.20
감각은, 키울 수는 없지만 '자라난다'. 감각은 타동사가 아니라 자동사이며, 누가 단련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단련되는 것이다. p.23
(야마구치) 요즘처럼 예측 불가능한 세계에서는 논리적 경영만으로는 더 이상 비즈니스를 리드할 수 없고, 정답 없는 문제와 흑백을 가릴 수 없는 난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와는 다른 능력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p.29
(구스노키) 선생님은 과학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예술을 제시하셨죠. 저도 거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일하는 사람의 기술에 대비되는, 일하는 사람의 감각이라는 개념으로 얘기해보고 싶습니다. p.29
(구스노키) 기술적으로 일을 잘할 수 있는 열쇠는 옳은 방법의 선택과 노력, 그리고 지속적인 시간 투자입니다. ... 반면에 감각은 습득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노력과 성과의 인과관계가 불명확하다는 점이 기술과 다르죠. p.38
(구스노키) 핵심은 새로운 문제 설정이란 감각과 예술의 영역에 속한다는 겁니다. 기술이 뛰어난 사람들이 보면 이미 해결 과잉 상태지만,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에게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보이는 거죠. p.51
(야마구치) 분석이 기술적이라는 오해는 자주 일어나죠. 사실상 분석에 가장 필요한 것은 감각입니다. 감각이 필요한 이유는 문제의 원인을 직관적으로 파악해야 더욱 의미 있는 분석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p.56
(야마구치) 문제 해결을 위한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 원인이 아닐까?'하고 잡아채는 영감입니다. 이게 바로 감각이고 직관이죠. 날카로운 직관력이 있다면 매우 간단한 분석 한 방으로 강렬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p.58
(야마구치) 분석은 보텀업 방식이잖아요. 여러 개의 축(p.59)에서 잘라보고 이런 저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생각하는 겁니다. 반면에 '원인은 이것이 아닐까?'하는 직관에서 고찰을 시작하는 것은 톱다운 방식입니다. / 직관에 기초해서 이것을 어떻게 증명하느냐 하는 '땅파기'와 우선 입수해놓은 데이터를 여러 가지로 나눠 생각해보는 '땅파기', 그 양쪽이 이어짐으로써 원인이 선명하게 특정되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을 가리켜 저는 '산의 양쪽에서 터널을 판다'고 표현합니다. (구스노키) 요컨대 부분을 모아서 전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최종적인 업무 성과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부분을 어떻게 나눌지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맞게 전체를 부분으로 나누는 거죠. 그래서 '종합파'와 '분석파'로 나누거나 '직관파'와 '논리파'가 정반대에 있다는 분류 자체를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p.60
(구스노키) 기술이나 과학은 가치 기준이 외부에 확실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장점도 있지만 그로 인해 한계도 있습니다. 개성이나 다양성이 중요한 시대라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상당히 아이러니합니다. p.68
(구스노키) 기술이나 과학은 본질적으로 범용화되니까 누가 해도 결과가 똑같아집니다. 과학의 목표는 보편적 재현성, 일반성입니다. ... 야마구치 선생님은 오랫동안 '기초교양'의 중요성을 강조해오셨습니다. 기초교양이란 자신의 가치 기준을 자신의 언어로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죠. 자신이 스스로 형성한 가치 기준이 있다는 것, '자각적인 것'이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교양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교양(p.69) 형성의 본질에는 예술과 감각이 있습니다. p.70
(구스노키) 좋고 싫음의 취향 문제에 보편적인 가치 기준을 무리하게 적용하며 옳고 그름을 따지고 드는 건 정말 허무한 일입니다. p.74
(구스노키) 감각을 존중했을 때에는 이처럼 평화로워 집니다. 전쟁은 대개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람'이 시작하거든요. p.76
(구스노키) 본래 비즈니스란 각자 전략을 세워 서로 차이를 만들어가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한 업계에서 동시에 복수의 승자가 나올 수 있는 거죠. p.80
(구스노키) 기술 측면에서의 경쟁은 '희소자원 쟁탈형'입니다. (p.107) ... 일종의 '의자 뺐기 놀이' (p.108) ... 이와는 별개로 '비교 우위형 경쟁'(p.109) ... 감각은 천차만별이어서 비교의 경쟁도 성립하지 않아요. 굳이 말하자면 과거의 자신과 비교 경쟁이 된다고 할 수 있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자리를 정하고 거기서 스스로 독자적인 감각을 깊이 구축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p.109
(야마구치) 사람은 재능과 감각을 갖고 있어도 스스로 '할줄 아는 게 당연'한 일로 느껴지기 때문이 어떤 계기가 생기지 않는 이상, 그 능력이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는 자신만의 재능이고 특기라는 사실을 좀처럼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 사람이 잘하고 대단한 점일수록 자신에게는 당연한 일이어서 말로 표현해본 적조차 없을 테니까요. p.113
(구스노키) 원래 경영이라는 것은 '담당이 없는' 일이잖아요. ... 감각이란 사전에 계획하기는커녕 자기 인식이나 자기 평가조차 불가능한 면이 있습니다. p.114
(구스노키) 자기에게 너그러운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 그런면에서 자신을 객관화한다는 것은 고객의 입장에서 자신을 보는 일입니다. 일을 잘한느 사람은 항상 이런 객관적인 관점이 자신의 사고와 행동에 깃들어 있어요. p.116
(구스노키) 감각에는 범용성이 있는 반면, 기술은 범위가 좁습니다. p.119
(구스노키) 모든 조직이 그런데요, 착실히 분업해나가다 보면 최종적으로 온갖 모순이 최고경영자에게로 모이게 됩니다. 아무래도 거기에 악영향이 미치므로 그때 제대로 판단해서 우선순위를 결정할 수 있는 감각이 필요합니다. p.135
(구스노키) '분업은 하고 있지만 완전히 분단되지 않은 상태'를 만드는 것이 일의 본령입니다. 경영자라면 자신의 위치에서 모든 것을 움직이겠다는 의식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요컨대 '실무자'와 '경영자'는 업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p.136
이익의 정의는 'WTP-C=P'라는 단순한 공식으로 나타낼 수 있어요. WTP(지불용의)는 고객이 지불하고 싶어지는 수준의 금액입니다. 기업 츠에서 보면 수입이고요 C는 비용입니다. 이익은 고객의 지불의사 금액에서 비용을 뺀 나머지예요. 이익을 증대하기 위해서는 WTP가 오르든지 C가 내려가든지, 혹은 그 두가지가 동시에 일어나야 합니다. 이익을 증대하기 위해서는 이 세가지 방법밖에 없어요. p.137
(구스노키) 전체를 아울러 통합하는 능력, 총체적으로 문제를 조망하는 능력이 없다면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p.142
(구스노키) 감각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먼저 경험이 필요합니다. ... 감각은 자기 경험이 나침반이 되어주니, 기술처럼 나 이외의 타인이 감각을 알려주기란 쉽지 않습(p.150)니다. p.151
(야마구치) 감각은 의욕과도 관계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이것을 '감각과 의욕의 매트릭스'라고 부릅니다. 군대에서는 전투 감각은 뛰어나지만 의욕이 별로 없는 리더가 적합하다고 합니다. 가능하면 편하게 이기려고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감각도 뛰어나지만(p.153) 의욕도 있는 사람은 대장을 보좌하는 참모 역할이 어울린다고 하더라고요. 가장 곤란한 사람이 감각은 없는데 의욕만 앞서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조직을 휘두르거나 잘못된 판단으로 돌격을 지시하면 부대를 전멸시키기도 합니다. ... 마지막으로 감각도 의욕도 없는 사람은 KPI의 틀에만 맞춰 일을 하려 할 것입니다. p.154
감각 있는 사람의 업무 계획 방식, 우선순위 업무(A)를 결정한 뒤, A의 업무의 시퀀스에 따라 이후 발생할 업무를 구상한다(A→B→C→...). 그리고 당장 시행해야 할 우선순위 업무(A)에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 p.162
(구스노키) 물리학의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회사라는 조직 내에서도 통용되고 있습니다. 위치 에너지와 운동 에너지를 합치면 그 합은 항상 일정하다는 법칙이요. ... 일에 대한 인간의 에너지를 이 물리 법칙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전무니 사장이니 하는 직함을 위치 에너지라고 한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은 운동 에너지입니다. 젊을 때는 운동 에너지로 힘차게 일하던 사람도 점차 직위가 올라가다 보면 운동 에너지가 서서히 위치 에너지로 전환되면서 일의 동력이 줄어들고 맙니다. p.178
(구스노키) 결국은 '상태'와 '행동' 가운데 어느 쪽을 추구할 것인가의 문제겠지요. 지위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일 수 있으나, 특히 일을 못하는 사람일수록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 이런 식으로 상태만 지향하는 사람들을 저는 '살아 남기의 달인'이라고 부릅니다. 본래 리더란 살아남아 무엇을 하고 싶은지 '행동'을 밝혀야 합니다. 그런데 살아남기의 달인들에게는 그저 생존을 유지하는 '상태' 자체가 목표가 되어 있는 거에요. 방향성을 제시하거나 어떤 목표를 실현하자는 의사 표명이 본래의 경영인데 말입니다. p.183
(구스노키) 탁월한 경영자는 '처음부터 시너지 같은 건 없다. 시너지는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라는 사고를 갖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시너지를 손에 넣을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자신이 여러 가지 일과 상황을 어떤 시간 배열 속에서 조립해나간 결과로서 가능한 것임을 아는 거죠. p.204
(야마구치) [시너지는] 조합만 한다고 해서 저절로 생겨나는 시너지는 없으니까요. 전략의 결과로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p.208
(구스노키)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는 비슷한 것 같지만 전혀 다릅니다. 현상으로서 상관하고 있는 것도 거기에 논리가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결국은 인간이 하나하나 논리를 찾아내야만 차별화로 이어지는 행동을 취할 수 있는 거죠. /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정보가 늘어날수록 하나하나에 쏟아지는 관심은 줄어듭니다. 인과를 잃어가는 것이죠. p.223
(구스노키) 데이터 지상주의의 함정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실제로 세상에는 데이터에 의한 폐해가 무수히 많습니다. 인간에 대한 통찰이 무엇입니까? 한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는 상당히 복잡한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입니다. 그러니 데이터를 집계해서 평균치나 경향으로 상관(p.296)관계를 파악하는 시스템과는 맞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p.297
(구스노키) 감각의 알맹이가 무엇인가에 관해 제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구체와 추상의 왕복운동'입니다.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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