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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김영민] 죽음을 대하는 자세 | Memento 2021-08-14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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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저
어크로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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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죽음은 우리가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죽음의 방식을 배워야 한다. 이미 살아남는 법, 살아가는 법은 지겹도록 배워왔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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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우연한 기회로 독일을 방문했다. 생애 첫 해외 방문. 모든 것이 색달랐다. 언어부터 건물, 식사, 사소한 습관까지 사람 사는 곳이면 다 똑같다는 말이 무색했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건물이었다. 수 백년 넘은 건물이 주민들의 삶과 함께 했다. 불과 수십년 만에 새 건물을 짓고, 오래된 문화재는 보존을 위해 주민들의 생활과 격리되는 우리와는 사뭇 달랐다. 특히, 성당 건물들은 여전히 삶 속의 일부로서 기능했다. 평소에는 주민들의 쉼터, 관광명소로 살아 있었고, 주말에는 마음의 안식처이자, 예배 장소였다. 그 성당 시계탑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메멘토 모리. 어디에 있었던, 어떤 성당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문구가 새겨진 시계탑의 모습은 오롯이 기억에 남있다.

<아침에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시계탑이 떠올랐다. 여전히 주민의 삶 속에서 죽음을 상기시키는 시계탑처럼, 김영민 교수는 아침 댓바람부터 죽음을 생각하라고 말한다. 칼럼계의 아이돌로 불리는 김영민 교수. 이번에는 죽음과 고통, 그리고 성장을 얘기한다. 우리는 영화를 볼 때 스포일러를 경계한다. 결말을 알면 흥미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삶은 다르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모두가 결말을 안다. 사람은 결국 죽는다는 게 인생에 대한 스포일러(p.101)”. 우리는 태어나고, 자라고, 상처 입고, 그러다가 결국 자기 주변의 사람의 죽음을 알게 된다. 인간의 유한함을 알게 되는 이러한 성장 과정(p.39)”을 거친다. 소소한 근심에 인생을 소진(p.7)”하다가, 휴식의 궁극죽음(p.96)”에 다다른다. 이 명확한 스포일러 때문일까. 우리네 삶은 재미 없고 엄청나게 불행하다.

우리는 왜 불행한 걸까. 죽음이라는 인생의 스포일러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죽음은 멀리 있지 않다. 잘 산다는 것은 잘 죽는 것과 다르지 않다.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삶을 충실히 살려는 노력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 나이가 든다는 건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쉽지 않다. 끝이 있음을 받아들이고, 겸허히 마지막을 준비한다는 일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설계되어 있지 않다. 그렇게 살도록 배우지도 않는다. 유전자는 1초라도 더 생존하여 자신을 복제하도록 강제하고, 그 덕분에 지금 이 글을 읽고 쓴다. 각자도생의 경쟁사회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타인을 넘어서도록 배웠다. 우리는 살아가는 방법, 살아남는 방법은 알지만, 어른이 되어 나이들고 죽어 가는 방법은 외면해 왔다.

먹고사니즘.평생 다만 목숨을 부지하는 데 급급하면 불행해지기 쉽다. 살아남는 게 직업이 되면 안 되는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적잖은 사람이 그런 지경에 몰(p.365)”렸다. 저자는 이 때 필요한 것이 정치라고 말한다. 저자가 정치적인 사람이라서 그럴까? 아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유전자 뿐 만 아니라,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쳐 줄 사회가 필요하다. 인간의 삶은 사회가 존재해야 완성될 수 있다. 정치는 그 사회를 움직이는 운영방식이다. 결국 우리의 불행은 개인에게 만 온전히 남겨져 있지 않다. 정치는 외면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우리네 삶의 일부다. 하지만 스포일러, 죽음 만큼이나 정치를 싫어한다.

그렇기에 시계탑 속 문구, 메멘토 모리를 떠올린다. 아침 댓바람부터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

 

어느 자리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 삶은 선택할 수 없지만 죽음은 선택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은 전적으로 자유와 존엄이 박탈당한 상태에서 시작되지만, 개개인은 자기 삶의 이야기를 조율하여 존엄 어린 하나의 사태로 마무리하고자 노력한다. 비록 우리의 탄생은 우연에 의해 씨 뿌려져 태어난 존재일지언정, 우리의 죽음은 그 존재를 돌보고자 한 일생 동안 지난한 노력이 만들어온 이야기의 결말이다. 스스로를 어찌할 도리 없는 지경에 그저 처박아버리기 위해 일생을 살아온 것이 아니다.(p.189)”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우리가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다. 개인의 삶이건, 공적인 삶이건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죽음을 생각하고, 정치를 고려해야 한다. 그저 쳐박아버리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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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근심에 인생을 소진하는 것은, 행성이 충돌하는데 안전벨트를 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p.7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이 자리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수명은 전례 없이 연장되고 있다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회적 죽음과 육체적 죽음 사이의 길고 긴 연옥 상태다. 이것은 어저면 새로운 관광자원이다. 한국으로 여행 오시면 멸종 위기의 공동체를 구경할 수 있어요. 한국은 사라지는 중이에요. 상영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p.19

성장은, 익숙하지만 이제는 지나치게 작아져버린 세계를 떠나는 여행일 수밖에 없다. 익숙한 곳을 떠났기에 낯선 것들(p.36)과 마주치게 되고, 그 모든 낯선 것들은 여행자에게 크고 작은 흔적 혹은 상처를 남긴다. 그 상처는 우리를 다시 성장하게 한다. 혹은 적어도 삶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킨다. ... 이 세계는 결코 전체가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어떤 불가해한 흐름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되는 일, 우리의 삶이란 불가해한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위태로운 선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일. 이 모든 것이 성장의 일이다. / 그렇다면 성장은 무시무시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성장은 무시무시하게 확장된 시야와 더불어 심미적 거리라는 선물도 함께 준다. p.37

우리는 태어나고, 자라고, 상처 입고, 그러다가 결국 자기 주변의 사람의 죽음을 알게 된다. 인간의 유한함을 알게 되는 이러한 성장 과정은 무시무시한 것이지만, 그 과정을 통해 확장된 시야는 삶이라는 이름의 전함을 관조할 수 있게 해준다. 그 관조 속에서 상처 입은 삶조차 비로소 심미적인 향유의 대상이 된다. 이 아름다움의 향유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시야의 확대와 상처의 존재다. / 시야의 확대가 따르지 않는 성장은 진정한 성장이 아니다. 확대된 시야 없이는 상처를 심미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할 수 없다. 동시에 아무리 심미적 거리를 유지해도 상처가 없으면, 향유할 대상 자체가 없다. 상처가 없다면, 그것은 아직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캔버스, 용기가 없어 망설이다가 끝낸 인생에 불과하다. 태어난 이상, 성장할 수밖에 없고, 성장 과정에서 상처는 불가피하다. 제대로 된 성장은 보다 넓은 시야와 거리를 선물하기에, 우리는 상처를 입어도 그 상처를 응시할 수 있게 된다. p.39

한국의 현대사는 19세기 유한계급 양반들이 게걸스럽게 먹고 남긴 설거지를 하느라 이토록 분주한 것이 아닐까요? 후대의 사람들이 자칫 설거지만 하며 인생을 보내지 않으려면, 각 세대는 자신의 설거지를 제대로 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세대 간의 정의입니다. p.42

기분 좋게 일을 마친 후 한잔의 차를 마신다. 차의 거품에 어여쁜 나의 얼굴이 한없이 무수히 비치어 있구나. 어떻게든, 된다.” -다이자 오사무 <생활> p.54

이렇게 혼자 살면 기운 빠져서 못 살고요, 아이가 생기면 없던 기운이 나요. 그 힘을 자기한테는 못 쓰지만. 그래도 아이한테 쓸 힘은 나요. 그 힘을 쓰면서 나이 먹어가는 거예요.” p.58

그러나 아이를 낳는 것은, 대체로, 세상에 뿌리를 내리는 한 방법이다.” p.60

누가 그랬던가. 휴식의 궁극은 죽음이라고. 쉬고자 하는 욕망의 끝에는 죽고자 하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고. p.96

사람은 결국 죽는다는 게 인생에 대한 스포일러라면, 진리를 결국 다 알 수 없다는 게 학문에 대한 스포일러입니다. 진리를 알기 위해서라기보다 자신의 무지를 깨닫기 위해서 학문을 하는 셈이죠. p.101

어느 소설가가 그랬다잖아요. ‘왜 책을 읽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남이 침범할 수 없는 내면을 갖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요라고.” p.114

삶이 진행되는 동안은 삶의 의미를 확정할 수 없기에 죽음은 반드시 필요하다.”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p.122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소멸의 여부가 아니라 소멸의 방식이다. p.134

분노나 폭력이나 강제는 위력이 잘 작동할 때 보다는, 위력이 자신의 실패를 절감할 때 나타나는 징후다. p.141

파국을 넘어, 사회적 삶은 의외로 오래 지속된다. 사회적 삶이 지속되는 동안은 공적인 의미를 확정할 수 없기에 역사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역사는 사회에 대해 죽음이 삶에 행하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한다. p.146

이 땅에 희망이 있어서 희망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기에, 희망을 가진다. p.169

어느 자리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 삶은 선택할 수 없지만 죽음은 선택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은 전적으로 자유와 존엄이 박탈당한 상태에서 시작되지만, 개개인은 자기 삶의 이야기를 조율하여 존엄 어린 하나의 사태로 마무리하고자 노력한다. 비록 우리의 탄생은 우연에 의해 씨 뿌려져 태어난 존재일지언정, 우리의 죽음은 그 존재를 돌보고자 한 일생 동안 지난한 노력이 만들어온 이야기의 결말이다. 스스로를 어찌할 도리 없는 지경에 그저 처박아버리기 위해 일생을 살아온 것이 아니다. p.189

부재를 견디고 그리워하는 것으로 소진되는 생. p.201

오늘날 투표하는 사람들에게 영웅적인 면이 있다면, 그 모든 허황된 약속의 역겨움에도 불구하고 투표장에 가고자 한 결단에 있다. p.202

디즈니랜드는 실제의나라, ‘실제의미국 전체가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거기 있다고 오래전 누군가가 말한 적이 있다. 적대를 일삼는 이 사회의 정치언어는 사실 모두가 한패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거기 있는 것은 아닐까. p.239

정치는 구분에서 출발한다. 구분을 지음에 의해 비로소 복수의 단위들이 생(p.239)겨나고, 복수의 단위들이 존재할 때 비로소 관계가 존재한다. 그 관계가 특유한 정치의 역학을 만든다. 그렇다면 오늘날 정치의 중요한 과제는, 앙상해진 도덕적 진정성에 너무 의지하지 않으면서 그 구분을 재정의하는 일이다. p.340

우리에게 영화는 무엇일 수 있는가? 이 세상 것이면서 이 세상 것이 아닌 것들에 사람들이 열광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이 날것으로서의 세상을 못 견뎌하고 있다는 증좌라고, 나는 본다. p.285

우리가 가장 상관하는 것은 늘 자신의 삶이며, 삶이란 저녁식사와 같은 일상의 집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 저녁식사 순간이 예술의 경지가 된다면, (바로 그 부분의) 삶이 예술이 되는 것이다.(한니발은 그러한 순간을 망가뜨리는 무례한놈들을 싫어하며, 그들을 먹어치운다.) 즉 예술의 인간에 대한 궁국의 공헌은, 만들어내거나 향수하기 위해 사들인 예술품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그(p.317)러한 예술품을 만들거나 향수하는 과정에서 동시에 고양된 자신의 생 자체에 있다. 가장 위대한 예술가는 예술이 궁극적으로 실현되는 장소가 일상임을 아는 사람이다. p.318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에의 헌신으로부터 온다.(이를테면 사무라이 됨의 근본 조건은 주군에 대한 헌신에 있듯, 선생의 정체성은 교육에 대한 헌신에 있듯, 가수의 정체성은 노래에 대한 헌신에 있듯) 그 헌신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의 삶은 구겨진 종이에 불과하다. 우리 삶의 의미는 우리가 무엇엔가 헌신함으로써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이라면 우리는 누구나 주군이 필요한 사무라이들인 셈이다. 그런데 결국 우리를 파괴하는 것은 바로 헌신했던 그 주군이(p.324)라는 점에서 인생의 역설이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한숨은 이 헌신과 배반의 스토리로 번안할 수 있다. 우리가 헌신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좀처럼 우리를 배반할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 헌신하고 싶어 하는 동물이다. p.325

우리는 소나기로부터 배울 것이 있지. 소나기를 만났을 때 젖지 않으려 빨리 뛰어가곤 하지만 결국 젖기 마련이지. 처음부터 젖을 각오를 하고 있으면, 젖더라도 적어도 당황하지는 않는다.” p.327

인간이 평생 다만 목숨을 부지하는 데 급급하면 불행해지기 쉽다. 살아남는 게 직업이 되면 안 되는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적잖은 사람이 그런 지경에 몰리고 있다. 이때 정치가 필요하다.” p.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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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차별주의자-라우라 비스뵈크] 우리 모두 이 문제의 원인자 해결책 | Memento 2021-08-14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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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내 안의 차별주의자

라우라 비스뵈크 저/장혜경 역
심플라이프 |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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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차별에 관해서는 가해자이자 피해자이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만 이 문제를 풀 수 있다. 이것은 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책임이자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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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대화의 서두에 붙어버렸다. “절대 ~하려는 건 아니지만이란 문구다. 이를테면, “절대 여성을 비하하려는 건 아니지만, 이러 이러한 경우도 있다.”, “절대로 장애인을 모욕하는 건 아니지만, 저러저러한 얘기도 있다.” ‘절대로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나의 발언은 분명한 차별이었다. 상황이 어떠했건 차별의 말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솔직함을 가장한 나의 언어습관은 분명히 누군가에겐 아픔이었을 테다.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그별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 외면했다. 내 안의 차별주의자가 있음을 부정하고자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엄청나게 나쁜 사람은 아니지 않나라고 자위했다. 해야 할 말을 하지는 못할지언정, 하지 말아야 할 말은 하지 않도록 다짐했다. 그러던 차에 <내 안의 차별주의자>를 읽으며 서두부터 신나게 두드려 맞았다.

 

꼭 멸시의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된다. 몰래 조용히 무시하고 외면하는 방법으로도 특정 집단의 관심사가 표현될 수 있다. 또 멸시하거나 경멸할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그 멸시를 당하는 당사자에게는 비슷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p.19)”

 

말하지 않고 무시하고 외면하는 것 역시 당사자에게는 유사한 효과를 낸다. 점점 더 어려워진다. 배려를 위해 모른척 한 것도 상대에게는 차별의 힘으로 작용하는 걸까. <내 안의 차별주의자>의 저자는 라우라 비스뵈크다. 오스트리아의 사회학자로 사회 불평등의 원인과 행태, 그 결과를 연구한다. 특히 성적 평등의 사회학, 권력, 언어, 이민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집필 및 연구 활동을 한다. 관심분야만 봐도 책의 내용을 짐작케 한다. 서두에 책의 목적을 분명히 밝힌다. 소속 범주로서의 우리가 노동, 성별, 이민, 빈곤, 재산 범죄, 소비, 관심, 정치의 영역에서 어떤 구조를 띠는지, 또 그 안에서 남들을 바라보는 독선적 시선이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살피고 그를 통해 타인의 자질과 능력에 대한 폄하가 경계 짓기와 소속감, 인정 욕구를 반영 한다는 사실을 밝히려 한다. (p.20~21)”. 이를 통해서 함부로 타인에게 손가락질하지 않고, 자신과 타인의 판단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p.21)”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폄하. 폄하는 경계 짓기소속감”, “인정욕구를 반영한다는 대목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구분을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이유는 흰색인 종이와 검은색인 글씨를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나라는 존재와 타인을 구분할 수 있어야 자의식을 가질 수 있다. 구분을 통해서만 남과는 다른 나를 인지할 수 있는 셈이다. 그렇기에 구분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오히려 필수적이다. 경계 짓기는 불가피하다. 세상은 복잡다단하기에 한 명의 개인이라도 성별, 인종 등 다양한 기준에 따라 구분된다. 여기서 소속이 생긴다. 한 개인이 다양한 구분에 따라 소속이 생긴다면, 어떤 소속을 따르는 게 유리할까. 어떤 기준에 속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 하게 될까.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에게는 필수적인 선택이 된다. 생존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소속감을 통해 자아를 고양하고, 자신의 소속에서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는 구분에서 파생된 당연한 결과다. 결국 경계 짓기가 소속을, 소속이 소속감과 인정욕구를 유발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인간에게 불가피한 행위다.

문제는 폄하. 소속감이 고양되고, 인정욕구가 강해지면서 경계 간 점점 깊은 참호가 만들어진다. 상호 간 저열한 비난과 비판으로 불신의 참호는 점점 깊어진다. 두 소속 간의 권력이 비슷하다면 그나마 타협의 여지가 있겠지만, 약자는 일방적으로 폄하당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런 참호와 전선이 수 없이 펼쳐진다. 개개인의 소속과 정체성이 여러 개듯, 한 사회 내에서도 다양한 참호가 중첩해서 구축된다. 사회 전반에 참호가 생기고, 돌격 앞으로! 차별과 구분은 개개인의 소속감을 강화하고 인정욕구를 자극한다. 상대를 낮추면 자신이 높아지는 것을 느끼게 한다. 차별과 구분은 민주주의 사회의 안정과 결속을 해친다. 구분과 멸시가 우선시되면 사회적 불이익은 정치적 참여가 아닌 도덕적 분노를 낳(p.153)”는다.

여기에 정체성 정치는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런 경계를 강화한다. 에이미 추아의 <정치적 부족주의>는 집단본능을 통해 생겨난 정치적 부족주의 현상을 파헤친다. 인간의 집단 본능소속 본능인 동시에 배제 본능이다. 미국 내 집단 본능으로 갈라진 부족과 기록적인 수준의 불평등, 정체성 정치로 인한 혼란이 결합하면서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했다. 자유주의 질서가 유지되려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일정 정도의 불확실성을 견디면서 쉬지 않고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p.300)” 하지만, 불평등과 경제적 위기는 불확실성을 강화했고 차별과 구분, 멸시는 정치적 부족주의와 정체성 정치를 가속화했다. 그리고 그 역으로도 작용하며 순환고리를 만들었다. 이제 사람들은 명확하고 확실한 영웅을 고대하게 된다. 애매하고, 불확실한 정치인이 아니다. 세상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불확실한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 해줄 영웅을 선택한다. 그 영웅 중 한 사람이 히틀러였다. 히틀러 역시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

다른 세계관을 인정하고 용인하며, 그것을 토론의 장으로 이끄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가 유지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p.303)” 가짜뉴스와 혐오, 개소리가 넘쳐나는 전선에서 우리는 참호를 향해 무비판적으로 돌격할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춰서야 한다. “내가 동의할 수 없는 의견도 인권 규약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항상 관용으로 대하고거슬리더라도 의 생존권을 인정(p.289)“해야 한다. 또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치는 싫다고 말하지 말라. 정치에 관심 없어요! 그렇게 말하는 것은 특권 행위다. 비정치적일 수 있는 것도 특권이다. 비정치적이어도 괜찮을 수 있다면 성별, 재산, 인종, 성적 지향 덕분에 특권적 지위를 누릴 수(p.300)”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 역시 노력해야 한다. 무너진 신뢰를 찾아야한다. “오늘날 정치의 중요한 과제는, 앙상해진 도덕적 진정성에 너무 의지하지 않으면서 그 구분을 재정의”(김영민 교수)해야 한다.

이 모든 행위들이 함께 이뤄져야 참호전의 비극을 막을 수 있다. <내 안의 차별주의자>는 말한다. 우리가 이 문제의 일원이기에 우리가 먼저 나서야 한다고. “쉬지 않고 새로운 주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해묵은 주제도 다시 따져보며 자신의 태도를 성찰하기란 말처럼 쉽지는 않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자유주의 질서 유지의 기본 조건(p.290)”이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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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멸시의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된다. 몰래 조용히 무시하고 외면하는 방법으로도 특정 집단의 관심사가 표현될 수 있다. 또 멸시하거나 경멸할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그 멸시를 당하는 당사자에게는 비슷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p.19

이 책은 소속 범주로서의 우리가 노동, 성별, 이민, 빈곤, 재산 범죄, 소비, 관심, 정치의 영역에서 어떤 구조를 띠는지, 또 그 안에서 남들을 바라보는 독선적 시선이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살필 것이다. 그를 통해 타인의 자질과(p.20) 능력에 대한 폄하가 경계 짓기와 소속감, 인정 욕구를 반영 한다는 사실을 밝히려 한다. p.21

함부로 타인에게 손가락질하지 않고, 자신과 타인의 판단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그것이 이 책의 바람이다. p.21

그러나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외침은 위장되고 은폐된 엘리트주의이다. 항상 열정만 좇으며 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p.30

열정을 바친 직업은(p.30) 특권층에서 자기 최적화의 우아한 몸짓이 된다. 그들이 생각하는 직업은 돈과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실현의 행위이다. 자아는 직업을 통해 마침내 정당화된다. p.31

그런 그녀에게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비슷한 처지의 인턴들과 모여 근로 조건을 논의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고민할 시간이 있을까? 10시간 중노동에 시달리고 퇴근하면 쓰러져 자기 바쁠 것이고, 기껏해야 요가나 몸에 좋다는 샐러드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것이다. 그렇기에 한병철은 말한다. “번아웃과 혁명은 서로를 배제한다.” p.36

에랭베르는 우울(p.40)증은 규율과 죄가 아닌 책임과 자발성에 기초한 질병이라고 말한다. 결핍감, 가능성과 불가능성, 현실과 불가능은 없다의 분열을 말해주는 질병이라고 말이다. p.41

열정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접근 방식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모토는 좋아하는 일을 하라가 아니라 네가 하는 일을 좋아하라!’가 될 것이다. p.41

카를 마르크스도 말했다. “자연 시스템에서 머리와 손이 짝을 이루듯 노동 과정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결합한다.” p.43

테일러주의는 혁신적 아이디어이자 이론의 뼈대였고 포드주의는 그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여 세상을 뒤바꾸었다. 비약적 지점은 전체 작업 방식에서 전문 지식과 능력을 걸러내어 그 지식을 기업이 습득하고 체계화하며, 남는 노동은 끝까지 해체하는 것이다. 이것이 테일러가 말한 과학적 운영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이 바로 머리와 손의 분리였다. / 관리자는 지금껏 개별 노동자들이 혼자 간직해온 전래의 지식을 모두 모아서 분류하고 도표로 작성하고, 그 지식을 규칙과 법칙, 공식을 만들어 노동자들이 매일 일을 할 때 도움이 되게 해야 한다. / 과거의 시스템에서는 모든 정신노동을 노동자들이 함께 거들었기에 정신노동은 노동자 개인의 경험이 낳은 결과였다. 그러나 새 시스템에서는 그 일을 과학적으로 개진한 법칙에 따라 관리자들이 떠맡아야 한다. ... 그러므로 대부분의 경(p.45)우에서 당연하게도 정신노동에는 특별한 사람이 필요하고 육체노동에는 그와 전혀 다른 사람이 필요할 것이다. /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이 분리되면서 과거의 수많은 장인들은 단순 노동자로 전락했고 소수의 관리자와 기술자들만 높은 자리로 올라갔다. 따라서 수직적 노동 분업과 육체와 정신의 위계적 평가는 지배를 고착화한다. 지식이 곧 권력이기 때문이다. 정신노동이 이끌고 통제하고 명령하면 육체노동은 그저 그 명령에 따라 생산만 하면 되기에 교체되기도 쉽다. 당연히 관리직이 생산직보다 더 오래 더 많이 공부를 해야 할 테고 임금도 더 높을 수밖에 없다. p.46

전체적으로 볼 때 몸과 머리의 분리, 그와 연관된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경계 짓기에는 은밀한 계급투쟁이 몸을 숨기고 있다. p.54

같은 행동이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전혀 다른 평가를 받는 것이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일하는 여성은 좋은 엄마가 될 수 없고 엄마는 좋은 직장인이 될 수 없다. p.62

흔히 여자는 남자보다 돈을 적게 번다는 말들을 많이 한(p.78). 하지만 돈을 적게 보는 것이 아니라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p.79

남성성은 문화와 역사에 따라 변하는 사회적 구조물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회에 몸담은 일원으로서 우리 사회가 어떤 특성과 품성을 남성성과 결부하는지, 혹시라도 여성성을 폄하하지는 않는지 살피고 책임질 의무가 있다. 연약함과 공감은 여성의 특성이 아니라 인간의 특성이다. 그런데 남자들은 그 인간의 특징을 외면하라고 배운다. p.96

우리의 공감은 반드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숫자와 관련 있지 않다. 우리의 공감은 오히려 개인에게서 솟구친다. 그를 보며 자신을, 자신의 아이들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 숫자 뒤에 숨은 개인들은 추상이 되고, 추상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지 않기 때문이다. 고통받는 사람이 가까워야, 혹은 그들의 고통이 가깝게 느껴져야 우리는 그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그 고통에 맞설 각오를 다지게 된다. p.106

핵심은 사회적 친밀도, 친숙한 개별 사례에 있다. 쫓겨나게 생긴 이주민이 평소 우리 집에도 놀러 오던 아들의 같은 반 친구이다. 개인적인 관계를 통해 공감과 부당하다는 느낌, 타인의 상황을 개선하고픈 욕망이 생겨난다. 이런 관계가 탄생할 수 있으려면 서로 알 수 있는 계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아이들은 학교에 다닐 수 있어야 하고 어른들에겐 일자리르 제공하고 여가 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런 가능성을 차단하기에 바쁘다. p.107

지역적 접촉과 결합된 취약성은 합법적 체류의 기회를 높일 수 있는 한 가지 요인이다. 또 한 가지 요인은 취약성과 정 반대적인 모습이다. 바로 영웅적 행동이기 때문이다. p.110

사회학자 노버트 엘리아스와 존 로이드 스콧슨은 1965<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에서, 사회적 불평등은 계층이나 인종만이 아니라 한 공동체에 거주한 기간에 따라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 두 학자에 따르면 기득권자들, 그러니까 오래 거주한 사람들은 새로 들어온 주민들과 거리를 두고 전혀 접촉하려 하지 않는다. 이미 기득권이 된 거주민들과 새로 들어온 아웃사이더들이 서로 나뉘어 집단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득권 집단은 아웃사이더들에게 그들의 가장 나쁜구성원의 가장 나쁜 특성을 갖다 붙이고, 반대로 자신들에겐 자기 집단의 가장 좋은특성을 갖다 붙인다. p.116

이주 그 자체는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이주를 불러온 상황이다. 그리고 그것이 누구(p.117)에게득이 되고 실이 되는지를 결정하는 관점이다. 또한 우리가 이주를 어떤 측면에서 바라보는지도 중요하다. p.118

전체적으로 볼 때 이곳으로 새로 건너온 사람들의 가치는 경제 시스템 내부의 생산성으로 평가된다. ... 경제적 조건을 다 충족했다고 해도 우파 포퓰리즘 진영의 멸시를 피할 수 없(p.119). 이들은 이주의 정의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흐려 부정적 분류의 범위를 최대한 확대한다. 그래서 이주민이 실직을 하면 사회 기생충이고, 노동 시장에서 열심히 일하면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뺏어 가는 도적이며, 자영업을 하면 남은 일자리마저 빼앗으려는 욕심쟁이라고 비난한다. p.120

근대는 낡은세계에서 새로운세계로의 이행이다. 산업혁명, 종교개혁, 계몽주의, 세속하가 그 시발점이었다. ‘낡은세계에선 종교와 공동체, 질서와 안정의 가치가 지배했다면 새로운세계에선 종교와 국가의 분리, 공동체의 해체, 평등 의식의 성장, 개인에게 전가된 채임이 특징이다. p.128

역사적으로 볼 때 유럽에서 근대와 관련이 있는 적대감(p.128)은 두 가지 형태이다. 하나는 식민지 확장을 위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형태이다. 식민지라는 목적을 위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자체적으로는 문명을 건설할 능력이 없는 무능한 인간으로 멸시하며, 자원을 약탈하고 제국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들의 문화와 역사 전체를 무시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근대화로 인해 전통이 위험해진 집단에 대한 부정적 평가이다. 대표적으로 정치 권력과 돈, 제국주의 정신을 자랑하는 유대인과 경제적 활약이 눈부신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황색 위험’)을 꼽을 수 있겠다. p.129

요즘 들어 또 다른 두 가지 형태의 적대감이 두각을 드러낸다. 이번에는 근대화를 이룬 집단이 아니라 근대와 무관하게 정체성을 형성하는 집단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다. 히잡 같은 상징을 통해 다른 전통과 종교를 드러내는 행위는 긴장을 유발하고 정체성 상실의 불안을 야기한다. 마지막으로 인종 차별은 사회의 귀퉁이로 내몰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의 표현이다. 특히 경제 위기와 노동 시장의 불안이 그런 두려움을 부채질한다. 대표적인 현상이 많이 인용되(p.129)는 백인 남성의 공포, 소위 가난뱅이 백인의 사고방식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들은 근대에 동참하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의 작동 방식은 거부한다. p.130

사회학자 빌헬름 하이트마이어는 집단과 관련된 인간 혐오에 대해 장기간 연구를 진행해, 사회적 지위가 낮을수록 장기 실업자에 대한 분노가 꾸준히 높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얼른 보기엔 좀 놀라운 결과이다. 사회적 지위가 낮으면 교육받을 기회가 적어 전문 지식을 쌓기 힘들 것이고, 그럼 당연히 실업할 위험성도 높다. 따라서 이들이야말로 실업자의 곤란한 처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것이다. 실업이 개인의 책임(p.141)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이들이 더 실업자의 부정적인 태도를 탓하며, 자신은 그들과 다르다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실제로 많은 실업자들이 자신은 다른 실업자들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상황 탓에 일자리를 잃었지만 남들은 자기 잘못으로 그렇게 된 것이라며 자신과 남들을 구분한다. 동일시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지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집단을 꾸릴 여지가 없어질 것이므로 실업자 조직을 만들어 사회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도 자동적으로 사라지고 만다. p.142

경제 성장에 기여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에게 쏟아지는 독선적 시선은 사회 통합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 시선이 불평등 이데올로기를 자극하여 약자들에게서 특정 권리를 박탈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가시적 성과와 경쟁(p.142)을 지향하는 사회에서 임금 노동을 통해 사회의 생산성에 기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저 방해 요소일 뿐이다. 이런 가파른 도덕적 경계선은 탈연대를 불러온다. 연대와 품위, 공감의 자리는 경제적 이해타산으로 넘어간다. 사회적으로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 집단에게선 권리를 빼앗기도 어렵지 않다. 실업자가 일할 마음이라고는 없는 이 사회의 게으른 기생충이라면 사회의 돈으로 그들을 지원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p.143

설사 의욕이 없고 타협의 의지가 부족해서 실업 상태인(p.145) 사람이 있다고 해도 대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정치와 사회가 해야 할 일이다. p.146

실업 급여란 것은 애당초 연대적 재분배의 원칙을 따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연대 원칙을 기반으로 탄생한 이런 사회 영역에 이르기까지 시장 논리가 밀고 들어와버렸다. p.151

차별과 구분은 민주주의 사회의 안정과 결속을 해친다. 구분과 멸시가 우선시되면 사회적 불이익은 정치적 참여가 아닌 도덕적 분노를 낳을 뿐이다. p.153

새로운 기업은 경제 활력의 필수 요소이며 혁신의 주인공으로서 일자리를 창출한다. 따라서 경제의 지속적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창업자 정신과 청년 기업 및 스타트업 지원이 꼭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이런 추세로 인해 책임이 노동 시장 정책에서 개인에게 전가되기 때문이다. 노동자보호법 그 자체가 약화되지는(p.156) 않았지만 효력 범위가 줄어들고 적용 분야도 수많은 다른 가능성들로 쪼개진다. 사업 리스크나 수입 리스크 등 과거 고용주가 짊어지던 리스크가 이제는 소규모 자영업자 개인에게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p.157

변호사와 전문 자문의 도움을 받아 현행법의 법망을 요리조리 피하는 엘리트들의 무한한 기회는 사회적 위계의 자연법칙이라 부를 준법정신의 중력공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 법의 비중은 땅에 가까울수록 무거워지고 위로 올라(p.186)갈수록 가벼워진다. 준법은 성공과 이윤 극대화를 선택할 수 있는 한 가지 가능성에 불과하다. p.187

우리가 우려해야 할 대상은 내 지갑을 털어 갈 소매치기가 아니라 우리의 세금(p.188)을 투자하여 날려먹는 엘리트들이다. p.189

국가에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안(p.189)기고 결국 국민 각자가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범죄인데도 말이다. 금융 범죄는 국가에 해를 입히고 경제 성장에 지대한 악영향을 초래한다. 이런 상황에서 밀려드는 난민들 탓에 예산에 구멍이 생겨 복지 비용을 삭감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제아무리 진지한 표정을 지어도 우습기 그지없다. p.190

모든 제품은 선언이다. p.213

상품은 남에게 인정받고 존중받고 싶은 기본 욕구를 충족하는 데 기여한다. 소비재는 근본적으로 자아의 확장이며,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누구와 친하고 싶은지, 어떤 가치를 공유하는지를 반영한다. p.221

광고는 상품 이상의 많은 것을 판매한다. p.225

소비는 (바라는) 사회적 신분을 과시하고 남들과 나를 구분하며 평균적인 대중이 따라오지 못할 저 높은 곳으로 나를 데려간다. 목표는 더 높은 집단에 소속되기 위한 불평등 조장 및 강화이다. 특정 소비재에 돈을 투자하지 않으면 가치가 떨어지고 기회가 줄고 심한 경우 중요한 인맥을 잃을 수도 있다. 따라서 소비는 항상 자유로운 결정이 아니다. 여성의 신체가 그러하듯 소비는 수많은 영역에서 사회적 강제가 된다. 최대한 소비를 조장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문제 부위를 새로 만들어내야 한다. p.228

우리의 일상적 구매 실천이 윤리적 소비 결정의 기회로 상품화된다. 윤리 그 자체가 소비 품목이 되어버린 것이다. ... 이제 상품의 용도는 욕(p.233)망 충족, 결핍 해소, 보상이 아니라 구매자가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착한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p.234

하지만 이런 생각은 제품 제작의 환경 영향만을 고려할 뿐, 진정한 환경 보호가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소비를, (p.235)품을 아예 포기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일 테고 나아가 더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시장 친화적이지 않고 기업에 유익하지 않으며 소비 지향적 상류층의 자기 과시에도 별 도움이 안 된다. p.236

관건은 포장과 라벨이다. 채식주의의 기본 사상은 환경을 보호하고 동물의 고통을 줄이자는 것이다. 매우 강력한 정언 명령이다. 하지만 이런 도덕적 우월감은 앞서도 말했듯 특별한 특징이 아니다. 채식이 아니라 고기를 먹건 아유르베다 원칙에 따른 식사를 하건, 음식 전체가 신분의 상징이며 구별의 특징이 되어버렸다. 오늘날의 영양 담론에는 어느 사이 종교적 측면까지 스며들어 있다. p.240

개인 차원에서는 환경 보호가 특권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독일 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도 말했다. “먼저 먹어야 도덕도 있지.” 지속가능한 라이프 스타일은 먼저 그럴 능력이 되어야 누릴 수 있다. 남들보다 도덕적인(p.241) 인성을 갖추자면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일상을 친환경 기준에 맞추려면 지속적인 자기 교육과 굳건한 확신이 필요하다. p.242

하지만 더 나은 세상의 비건은 인간에 대한 관심과도 함께 가야 하지 않을까? ‘무지한 인간들을 배제하는 독선적 경계짓기야 말로 1차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환경과 건강을 생각하는 신중한 식습관은 교육 및 수입과 매우 긴밀하게 관련이 있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방어의 안전지대에서 걸어 나오라고 애걸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자신의 안전지대에서 걸어 나와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들여다보는 쪽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p.242) 정직한 공동체는 윤리적으로도 바람직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런 공동체는 물질적 차이나 교육 수준의 차이가 도덕적 불평등으로 이어지지 않고 서로 다른 시각을 관용으로 대할 수 있을 때 생겨난다. p.243

내향성을 흔히 수줍음과 혼동하기 쉽지만 둘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수줍음은 사회적 판단에 대한 불안을 뜻하며 행동 차원에서 일어난다. 따라서 원한다면 고치려 노력할 수 있다. 하지만 내향성과 외향성은 존재의 핵심에 뿌리를 내린 인성 특징이다. 따라서 유년기, 교육, 직업 선택, 자기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기회, 인간관계, 친구와 파트너 선택 등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p.251

우리 사회가 외향성의 특징에 맞추어 만들어진 만큼 내성적인 사람들은 자꾸만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p.261

내성적인 사람들의 특성을 경시하고, 그들을 너무 느리다거나 너무 수줍음이 많다거나 너무 자신감이 떨어진다고 인삭할 경우 그것 역시 일종의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한다. 사람의 특성이 성공한삶으로 이끄는 조건이 되면 그것은 개인의 일상적 기회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 특성은 태어날 때 이미 정해진다. 그러나 인종, 출신, 성별처럼 누가 봐도 명백한 특징들과 달리 내향성을 사회적 불평등의 한 범주로 보는 시선은 미미하다. p.262

일상의 순간을 자발적으로 기록하고 공개하는 행위는 포(p.277)스트모던적 감시 구조로 해석될 수 있다. p.278

우리가 알아서 카메라를 살 것이고, 아무도 우리를 봐주지 않을까 봐 벌벌 떨게 되리라는 것을 오웰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 키스 로웰 젠슨 p.278

젊음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의 문제이다. 따라서 젊음의 시기는 무한정 연장이 가능하며 사진 보정 작업 덕분에 시각적으로도 오래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 p.281

다채롭고 열린 민주주의의 기틀은 의견의 자유다. 그 말은 내가 동의할 수 없는 의견도 인권 규약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항상 관용으로 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관용이라고 해서 다른(p.288) 입장에 동조하라는 것이 아니다. 거슬리더라도 의 생존권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당신하고 생각이 같지는 않지만 당신이 그 생각을 발언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내 삶을 바칠 것이오.” 프랑스 국민의회에서 한 의원(볼테르라는 주장이 많다)이 했던 말이다. 반대와 인정의 결합에서 건설적 토론이 탄생한다. 관용적 태도만이 동의하지 않는 의견을 반박할 여지를 만들 수 있다. 무관용은 상대의 의견에서 존재의 권리를 박탈하려 한다. p.289

쉬지 않고 새로운 주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해묵은 주제도 다시 따져보며 자신의 태도를 성찰하기란 말처럼 쉽지는 않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자유주의 질서 유지의 기본 조건이다. 비판적 논의는 우리의 정치, 사회 시스템을 위태롭게 하지 않으며 오히려 활력을 선사한다. 자유주의의 기본 질서는 계몽주의를 통해 종교의 독점이 무너지면서 발전할 수 있었다. p.290

매사에 의미를 따지다 보면 우울해질 수 있다. 반대로 딱 정해진 세계관은 삶에 방향과 의미를 부여한다. 그렇기에 명확한 규칙 시스템은 엄청난 매력을 발휘한다.(p.290) ... 삶은 의례를 통해 조직되고 확정된 가치관과 행동 방식으로 채워진다. 그것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실존의 불안과 무상함을 망각하고 거부하게끔 만들기도 한다. p.291

자신의 세계관을 유지하는 데에는 확증적인, 다시 말해 자신이 옳다고 확인해주는 정보가 최고의 수단이다. 인간은 의도적으로 자기 시각을 반증하는 정보를 찾는다. 반대로 자신의 시각을 반박하는 사실들은 의도적으로 외면한다. p.296

저널리즘은 누군가 인쇄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을 인쇄하는 것이다. 다른 건 전부 광고다,” -조지 오웰 p.298

이제는 민주주의 사회까지도 불쾌한 인식을 거부하고 대안 사실로 진실을 뒤덮는다. ... 이로써 우리는 진실 공격의 새로운 형태와 마주하게 되었다. 진실과 거짓을 정하는 것은 독립된 사실과 의견의 다양성, 이성이 아니다. 정치권력이 진실과 거짓을 가른다. p.299

자유주의 질서가 유지되려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일정 정도의 불확실성을 견디면서 쉬지 않고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자유는 치열하게 싸워 얻은 연약한 체계이다. 그 대가는 자기 책임과 쉼 없는 감시이다. p.300

정치에 관심 없어요! 그렇게 말하는 것은 특권 행위다. 비정치적일 수 있는 것도 특권이기 때문이다. 비정치적이어도 괜찮으려면 ? 자신의 성별, 재산, 인종, 성적 지향 덕분에 특권적 지위를 누릴 수 있어서 ? 품위 있는 삶과 안전이 보장되어야 한다. p.300

다른 세계관을 인정하고 용인하며, 그것을 토론의 장으로 이끄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가 유지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p.303

견해는 지성적 관점이나 사실만을 바탕으로 확립되지 않는다. (p.305) ... 우리를 가르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우리의 도덕적 가치다. p.306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불이익을 당하는 다른 집단을 경멸한다는 주장이 많다. 독선과 경시는 하류층인 사람들의 전형적인 태도라고 말이다. 그러나 엘리트라고 해서 남을 무시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엘리트층에서 그런 현상이 더 두드러진다. 다만 사회에서 그들의 행동을 문제 삼지 않을 뿐이다. 해석의 권리가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자고로 역사를 쓰는 자가 어떤 역사를 어떻게 쓸지도 결정한다. 비관용과 불신과 경시를 남에게밀어버리면 자기 집단은 성가실 일도 없고 우월감까지 느낄 수 있다. 독선적 시선이 다시 한 번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p.309

이런 형태의 정체성 정치는 나르시시즘 성향을 띨 수 있다. 타인과의 연대보다는 자기 성찰을 더 채근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체성의 다변화에 역점을 두다 보니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는 낮은 계층과의 연대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자신이ㅡ 용어와 세계관을 남들도 인정하기를 바라는 엘리트들의 욕망으로 볼 수 있다. 인정하지 않으면, 그건 인신공격과 다름없다. 이런 식의 생각은 스스로 짊어진 피해자 역할을 정치의 영역으로 떠안고 가려는 경향과 함께 이들을 비생산적인 궁지로 몰고 간다. p.317

이주민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멍청하고 비인간적이라고 욕하며 사회적으로 배제해버리면 그들에게 남(p.317)은 공간은 한 곳뿐이다. 그들이 자기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곳은 익명의 투표소밖에 없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욕하는 태도는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어떤 집단도 비방과 사회적 고립을 당하지 않는 토론 문화가 훨씬 바람직할 것이다.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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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하는 사람, MD-허윤] 결국 MD도 기획이다. | Memento 2021-08-1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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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기획하는 사람, MD

허윤 저
북스톤 |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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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MD도 기획이다. 기획이라는 의미를 잘 되새긴다면 MD를 이해하는 일이 쉽다. 그러나 일반적인 기획보다는 조금 더 힘들듯 하다. 머든지 다해야하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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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치 않게 상가MD업무를 떠맡게 되었다. 모두가 꺼리는 부서, 난색을 표하는 업무였지만 인사발령은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었다. 까라면 까야지... 문제는 “MD”였다. 회사 특성상 MD라는 단어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 상가 관련 업무도 생소하지만, MD가 무엇인지 개념조차 없었다. 검색의 힘을 빌어도 MD에 대한 이야기는 중구난방이었다. 무엇을 신뢰해야 할지 판단할 수 없었다. 상가MD는 더더욱 정보가 없었다. 결국 고전적인 방법, 책을 집어 들어야만 했다. <기획하는 사람, MD>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손에 들렸다. 저자 허윤은 브랜드 경험 기획자로 브랜드 매니지먼트와 패션 마케팅을 공부 하고 다양한 브랜드를 론칭 했다고 한다. 오늘 당장 일을 시작해야 하는 입장에서 가장 필요했던 실전경험과 노하우가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다.

저자는 MD를 자신의 경험에 비춰 다양 문구로 정의한다. MD는 다양한 탈을 쓰고 다양한 방식으로 움직인다. 리테일MD, 브랜드MD, 이커머스MD는 각기 일의 범위도 다르고 방식도 다를 수 있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고객에게 브랜드가 전달되는 과정을 기획하는 것이다. (p.20)”, 상품을 중심으로 고객경험을 기획하는” “‘총체적과정이다.(p.21)” MD는 기획의 다른 말인 셈이다. 기획이란 어떤 대상에 대해 그 대상의 변화를 가져올 목적을 확인하고, 그 목적을 성취하는 데에 가장 적합한 행동을 설계하는 것(행정학사전)”이라고 정의한다. 국어사전에서는 일을 꾀하여 계획함으로 정의한다. , 기획은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행동)’을 결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다만, MD는 일반적인 기획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이미 목표가 정해져 있다. 상품을 파는 것이다. 공통점 역시 존재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p.7)”을 해결해야 한다. MD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p.7)”를 발굴하고 팔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모든 기획의 본질에는 사람이 있다. 기획의 대상도 사람이고 기획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다. 그러니 기획을 잘하려면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p.151)” 용어가 생소할지 모르지만 결국 MD는 기획의 다른 말일 뿐이었다.

MD를 일컬어 뭐든지 다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얘기가 있다. 기획도 그렇다. 기획을 잘 하려면 뭐든지 다 해봐야 한다. 알지 못하면 기획을 할 수 없다. 경험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공허한 말장난에 그친다. 보고서상 아무리 아름다운 말잔치가 벌어져도 현실에서 실행할 수 없다면 빵점짜리 기획이다. 현장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기획은 존재의 의미가 없다. 그런 면에서 MD는 일반적인 기획보다는 총체적이어야 한다는 저자의 정의에 동의한다. 일하다 보면 자주 접한다. 이런 계획을 도대체 누가 만들었냐고. MD는 이런 일이 없도록 가상과 현실을 오가야만 한다. 그만큼 두 배로 힘든 일이다.

상가MD 역시 마찬가지 일 듯하다. 상가를 분양해야 한다. 동시에 그 상가가 활성화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상인과 고객을 오고가며 조율하면서, 상가만의 고유한 가치를 창출하도록 계획해야 한다. 고객들의 행복한 경험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일정부분의 이익도 창출해야 한다. 결국 뭐든지 다 해야 하는 셈이다. 문제는 경험과 지식이다. 생소할 수 있는 MD의 개념을 위해서는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기획하는 사람, MD>는 이런 각오를 다지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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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는 단순히 어떤 상품을 팔지 정하고 고객의 구매를 돕는 사람이 아니라, 0에서 1을 만들어내는 기획자이자 크리에이터의 감각을 갖춰야 하는 사람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팔아야 하지만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고객에게 팔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가치라는 말로 부른다. p.7

리테일MD, 브랜드MD, 이커머스MD는 각기 일의 범위도 다르고 방식도 다를 수 있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고객에게 브랜드가 전달되는 과정을 기획하는 것이다. (p.20) ... 단순히 상품을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을 중심으로 고객경험을 기획하는 것이다. ... 기획은 계획과 달리 지속적으로 이어지며 전체를 아우르는 총체적과정이다. (p.21) ... 결국 MD는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모든 일을 다 하는 사람이다. p.22

MD에게 기획이란 브랜드를 그리는 일이다. p.29

기획은 취향을 결과로 만드는 힘에서 시작된다. 기획을 잘하려면 자신의 취향이 뚜렷하되 대중을 이해해야 한다. 자신의 취향이 대중적인 결과가 될 때 좋은 기호기이 된다. 취향은 좋거나 싫은 기호들의 합이다. (p.101) ... 무엇을 추구하는지를 기반으로 그 사람의 취향이 켜켜이 쌓여간다. p.102

취향이 만능 치트키는 아니지만, 기획은 좋은(p.105) 취향에서 시작된다. 취향이 원재료라면 논리적 사고로 이를 다듬어 고객으 위한 제안을 만들어내는 일이 기획이다. p.106

MD는 브랜드 경험을 설계하는 사람, 상품을 매개로 고객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이다. 브랜드 경험은 고객이 상품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으로, 오프라인이라면 고객이 문을 열고 들어와 느끼는 매장과 세부 공간 이미지, 매력적인 상품, VMD, 판매사원의 태도, 매장의 음악, 쇼핑백의 퀄리티까지 다양한 경험이 포함된다. p.117

MD는 유관부서, 협력업체, 매장, 때로는 고객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의사소통할 일들이 많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되 문(p.138)제해결 과정에서는 논리적으로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p.139

기획의 본질에는 사람이 있다. 기획의 대상도 사람이고 기획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다. 그러니 기획을 잘하려면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MD는 사람을 좋아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무언가를 좋아하면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게 되고, 관심이 쌓이면 또 다른 호감과 관심으로 이어진다. 시간이 지나면 비로소 이해가 된다. 왜 그때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했는지. 관심 없는 사람은 무얼 해도 궁금하지 않은 반면, 관심을 가지면 앞으로 그 사람의 행동도 미리 가늠할 수 있다. p.151

옳고 그른 문제라기보다는 일을 대하는 태도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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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란 무엇인가-김영민] 결과만을 위한 공부가 판치는 세상 | Memento 2021-08-1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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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저
어크로스 |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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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삶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노력과 시간 자체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결과 뿐만 아니라 그 과정 역시 공부고,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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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불편하다. 질문은 의문을 제기는 일이며, 의문은 다툼을 일으킨다.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정답은 없다. 사람마다 가진 생각이 다르기에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다. 같은 사람도 일관성 있는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 시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한다. 질문은 불편함을 일으킨다. 폐쇄적이거나 권위적인 사회일수록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그렇다. 질문은 질문을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편함을 강제한다. 듣는 이로 하여금 어떤 생각을 하도록 강제하기 때문이다. 그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면, 꼰대가 넘쳐나게 된다. 다름을 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질문을 인정해야 한다. 의문을 뚫고, 다름을 포용해야 한다.

다른 질문을 살펴보자. ‘사람은 반드시 죽는가?’라고 물어본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다고 대답한다. 개중에는 정말 다른 대답을 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이 언제 죽는지 아나? 잊혀 졌을 때다.’라고 말하며 잊혀 지지 않는 한 사람은 죽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 차이가 잘못된 것일까. 아니다. 그냥 다를 뿐이다. 질문은 의문을 제기하고, 의문은 다름을 일으키고, 다름은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어떤 방향으로 바라보고 있는 걸까. 무엇이 저 사람이 생각하는 죽음은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죽음과 어떻게 다른 걸까.

질문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괜히 기대되는 사람이 있다. 또 다른 질문을 계속해 주기를 바라게 되는 사람이 있다. 칼럼계의 아이돌, 김영민 교수다.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그를 아이돌로 만들었고, 사람들은 그가 던지는 질문을 기다리게 되었다. 새 질문은 <공부란 무엇인가>. 추석이란 무엇인가처럼 독특하거나 새삼스럽지 않은 질문이다. 학교생활을 겪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법하다. 시험기간 마다 반복되는 바로 그 질문. 공부란 무엇인가. 무엇이기에 나를 이토록 괴롭게 하는가. 전생에 나는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 고통 받아야 하는가. 내 머리는 왜 이리 모자 란가. 다행히(?) 공부를 업으로 삼지는 않기에 더 이상 같은 질문은 자주하지 않는다. 다만, 학자이자 교수라면, 공부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같은 질문에 어떤 대답이 나오게 될까.

의외로 정석적이었다. 우리가 아는 공부란 무엇인가. 우리가 아는 공부는 하나다. 입시생으로 혹은 취업 준비생으로 먹고 살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공부다. 삶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노력보다는 삶을 그저 살아내기 위한 노력에 익숙해(p.14~15)”지는 일이다. 이때 공부는 지적 변화가 아니라 밥벌이의 수단으로,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칩거해 받아내는 통과의례다. 그 증명을 얻어내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효율적으로 빠르게 획득하느냐다. 측정 불가능한 행복이나 만족이 아니라 측정 가능한 효율과 보상에 달렸다. 결과로 얼마나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이때 질문, 의문, 다름과 불편함은 방해요소다.결과만을 향한 급행열차의 종착지에는 무엇이 기다리고(p.15)” 있는가.

이 수업은 여러분들의 지적 변화를 목표로 합니다.”고 선언하는 김영민 교수는 우리에게 종착지에 대해 묻는다. 이 급행열차가 이상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착함이 곧 무능함의 동의어가 되어가는(p.63)”, “인생을 갈아 넣는 데는 익숙해도 잘 쉬지는 못하는(p.277)” 한국사회와 공부하는 문화에 대한 질문들이 잘못되었을까. 절대 아니다. 우리의 삶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측정 가능한 결과들이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거기에 다다르기 위한 노력과 시간 자체가 우리의 삶이기도하다. 결과만큼 과정 역시 중요하다. 잠깐 멈춰서 <공부란 무엇인가>를 읽어 보며 질문해보자. 결과를 향해 정신없이 달려가는 그사이 잠깐 하늘의 별빛을 바라봐도 좋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몇몇은 별빛을 바라볼 줄 안다.(오스카 와일드,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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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생으로 혹은 취업 준비생으로 이제(p.14) 학생들은, 삶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노력보다는 삶을 그저 살아내기 위한 노력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러면서 그 과정에 들어가는 노력과 시간 자체가 삶이라는 점을 망각하게 된다. 즉 삶을 현재와 동떨어져 전개되는 무엇으로 보도록 길들여진다. 그러나 그들이 탄 급행열차의 종착지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단 말인가. p.15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몇몇은 별빛을 바라볼 줄 안다.” - 오스카 와일드 p.17

이 세상 속에서 산다는 것은 이러한 모순, 긴장, 혹은 혼란 속에서 사는 것이다. 이 세상을 주제로 논술문을 쓴다는 것은 그러한 모순과 긴장과 혼란을 직시하되, 그에 대해 가능한, 모순 없는 문장을 사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는 것이다. p.20

모순 혹은 긴장으로 가득한 자신의 존재를 그럭저럭 거두어 살아나가는 것이야말로 성인의 일이며, 자신의 모순이나 긴장을 빙자하여 남을 괴롭히지 않는 것인 시민의 덕성이다. p.39

오용되는 단어, 남용 되는 단어, 모호한 단어, 다양한 용례가 있는 단어일수록, 신중한 사람들은 해당 단어의 사용을 자제하고, 그 단어를 가능한 한 정확히 정의하고자 든다. p.59

퀜틴 스키너가 말했듯이, 평가어는 해당 사회의 의식을 반영한다. 그렇기에, 어떤 단어에 단순히 변화를 준다고 해서, 해당 사회가 곧 바뀌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에 대(p.60)한 의식을 개선하기 위하여, 장애인이라는 말대신 장애우라는 말을 택한다고 해서 관련된 사회의식이 자동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명실상부한 사회의식의 변화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장애우라는 신조어는 오히려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스트레스만 줄 수도 있다. 친구로 대하지도 않으면서 왜 친구라고 부르는 거야! 문명인처럼 군답시고, 먼 나라 원주민을 야만인 대신 야만우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문명이라는 이름의 야만일 것이다. p.61

퀜틴 스키너는, 우리가 사는 세계는 규범적인 평가어들의 쓰임새에 의해 지탱되므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그 평가어의 적용 방식을 바꾸는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한 바 있다. ... 착함이 곧 무능함의 동의어가 되어가는 현상, 이것은 한국 사회가 흘러가는 어떤 방향을 지시하는 것일까. p.63

변화란 그냥 생기지 않고 좀 힘들다 싶을 정도로 매진할 때 비로소 생깁니다. ...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하는 중에 한없이 편하다는 느낌이 들면, 뭔가 잘못하고 있을 공산이 큽니다. p.79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마르센 푸르스트도, 경험에 합당한 언어를 부여하지 않으면 그 경험은 사라지게 된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의 독특한 경험에 맞는 섬세한 언어로 자신의 경험을 포착하지 않는 한, 그 경험은 사라지고, 그만큼 자신의 삶도 망실된다. p.90

프랑스 소설가 아나톨 프랑스가 말하지 않았던가. 헛소리를 믿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은 여전히 헛소리라고. 그동안의 무식을 일거에 날려버릴 벼락같은 통찰, 일종의 인생 역전 만루 홈런을 치게 해주겠다는 약장수들을 조심해야 한다. 공부는 산삼을 찾는 과정이 아니다. p.101

누가 그랬던가, 사람들이 유서를 남기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기운이 없어서라고. p.106

에너지 절약이 관건이다. 앉을 수 있는데도 서 있어서는 안 된다. 누울 수 있는데도,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처칠 p.110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이렇게 노래했다. “덧없는 삶을 사는 우리는 왜 애써/많은 것을 추구할까? 어찌 낯선 태(p.119)양이/끓는 곳을 찾아갈까? 고향을 등진다고/자신마저 등질 수 있을까?”(p.120)

나쓰메 소세키의 <쿠사마쿠라(풀베게)>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산길을 오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치를 따지면 모가 나고, 정에 치우치면 휩쓸리고, 고집을 피우면 옹(p.126)색해진다. 이래저래, 사람의 세상은 살기 어렵다.” ... 단테의 <신곡> 첫 부분을 연상시킨다. “인생을 절반쯤 살았을 무렵, 길을 잃고 어두운 숲에 서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그 거칠고, 가혹하고, 준엄한 숲이 어떠했는지는 입에 담는 것조차 괴롭고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죽음도 그보다는 덜 쓸 것이다.” p.127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에 나오는 사생아 에드먼드는 사생아를 멸시하는 정실부인 자식들의 상식을 이렇게 뒤집어 놓는다. “사생아가 비천하다(p.182)? 사생아는 자연스럽게 불타는 성욕을 만족 시키다가 생겨난 존재이니, 지겹고 따분한 침대에서 의무 삼아 잉태된 정실 자식들보다는 낫지!” p.183

토론의 장은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온갖 다른 의견을 긁어모아 취향의 박물관을 만드는 곳이 아니다. 토론의 목적은 다양성을 무한정 확보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의견을 취합하여 좀 더 나은 지점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것과 타당한 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개소리도 의견이니 애지중지해 달라고? 모든 견해가 똑같은 정도로 타당하다고? 그건 암세포도 생명이라고 애지중지해달라는 것과 같다. p.225

공부의 길에서 살아 돌아오는 일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갈아 넣는 데는 익숙해도 잘 쉬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게 이 땅의(p.277) 현실이지만, 언젠가 도래할 휴식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 공부에 매진해본 사람만이 제대로 쉴 수 있습니다.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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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하듯이 쓴다-강원국] 글쓰기로 강원국을 보다 | Memento 2021-04-26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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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나는 말하듯이 쓴다

강원국 저
위즈덤하우스 |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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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인생이고, 글쓴이다. 그렇기에 이 글은 강원국이다. 전작들이 거인의 후광을 업었다면, 이제는 온전히 그의 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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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은 사기다!”라고(?) 말했다. 요는 범인들이 따라 할 수 없는 방법이라는 거다. 사실 무언가를 잘하는 방법에는 왕도가 없다. 시도해야 한다. 물론 시작하면서 다양한 조언을 받으면 좋다.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경험이 바탕이 되지 않는 경우 다른 충고는 장기판의 훈수에 불과하다. 이래서는 훈수를 따르는데 한계가 있다. 수 많은 시행착오와 경험들이 축적되었을 때, 비로소 다른 사람들의 경험이 나에게 의미를 가진다. 그런 의미에서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은 범인들에게 사기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범인이자 관종이라 자칭하는 강원국의 글쓰기는 어떠한가. <나는 말하듯이 쓴다>는 범인들의 글쓰기가 어떠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유시민의 글쓰기가 학문적인 느낌의 글쓰기라면, 강원국의 글쓰기는 실용적인 글쓰기다. 유시민은 원론적인 이야기를 쉽게 풀어서 이해시켜 준다면, 원론적인 방법을 어떻게 삶의 현장에 적용시키는지 보여준다. 무엇보다 강원국의 글쓰기는 일반적인 회사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공감 받을 듯하다. 회사원이라면 보고서나 인사말씀, 회의자료 작성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유시민의 글쓰기가 대중들에게 글을 잘쓰는 방법에 대해 강의하는 글이라면, 강원국의 글은 우리네 삶,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글을 써야 하는 사람들이 받아야만 하는 선배의 조언과 같다.

글쓰기는 끝 없는 선택이다. 무슨 내용을 담을지, 어떤 감정을 실을지 끊임없이 결정해야 한다. 단어 하나, 구두점 하나까지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 고민 없이는 글을 쓸 수 없다. 물론 비교적 고민의 고통 없이 글을 잘 쓰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 역시 무의식 중에 이뤄진 선택의 결과다. 인생은 BD사이의 C라고 말한다. 탄생과 죽음 사이의 끝없는 선택, 그것이 내가 누군인지, 내 인생이 어떠한지 말해준다. 그래서 글(쓰기)은 인생과 닮았다. 글은 글쓴이의 선택을,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쓴다는 행위는 궁극적으로 나의 선택을 보여주고, 내 삶을 나누는 행위다.

전작 <대통령의 글쓰기>가 자신의 선택, , 삶보다 위대한 거인들의 후광을 등에 업은 책이었다. <나는 말하듯이 쓴다>는 온전히 자신만의 선택을 보여준다. 글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들은 그 사람을 보여준다. 글쓰기라는 소재를 통해 강원국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확인할 수 있다. 글쓰기, 그리고 글쓰기를 통해 치열히 살았던 삶의 궤적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분명 주제는 글쓰기지만 때에 따라 인생 선배로서 삶의 지혜를, 선임과 같은 엄격한 조언을, 기혼자로서의 가정의 안녕을 위한 노하우를 엿본다. 어디에다 관점을 두느냐에 따라 글쓰기보다 다른 걸 더 관심있게 보게될지도 모르겠다.

글의 본질은 그 사람에 있다. 결국 유시민의 글쓰기나 강원국의 글쓰기나 그 사람이 누구냐에 영향을 받는다. 더불어 내가 누군가에 따라 선호도가 달라진다. 수 많은 시행착오와 고통 속에서 어떤 사람의 글쓰기 방법을 따르 건 결국은 나만의 글쓰기 찾아야 한다. 그런면에서 유시민의 글쓰기 보다는 강원국의 글쓰기에서 희망을 본다. 20대 시절 항소이유서라는 명문을 일필휘지로 써낸 유시민 보다는, 나와 그래도 (그나마) 비슷한(?) 삶의 현장에서, 나와 유사한 고민 속에서 본인의 글을 써내려가는 강원국의 이야기가 좀 더 와닿는다. 위인의 어깨에서 내려와 당당히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강원국의 모습이 내게는 좀 더 현실적이다. 부족할 지언정 모자라지는 않다. 나 역시 작은 희망을 가져 본다. 말하듯 쓸 수 있는 때가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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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쓰려면 잘 말해야 한다. 말을 잘하려면 잘 써야 한다. 말과 글은 서로를 견인하고 보완한다. 어느 쪽만 잘하려 하면 어느 쪽도 잘할 수 없다. 쓴 것을 말하고 말한 것을 써야 한다. 말하듯 쓰고 쓰듯 말해보라. 말 같은 글, 글 같은 말이 좋은 말과 글이다. 나는 말하면서 생각하고 말로 쓴다. p.7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질문이다. 사람은 묻는 만큼 생각한다. p.18

직장생활은 세 가지를 요구한다.(p.19) 문제의 제기와 분석과 해결이다. 제기를 잘하면 까칠한 사람이 되고, 분석을 발하면 똑똑한 사람이 되고, 해결을 잘하면 유능한 사람이 된다. p.20

글은 하나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답을 몰라 못 쓰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못 해서 못 쓴다. p.21

우선 눈앞에 보이는 것을 묘사해보자. 현상, 현황, 상황을 상세하게 서술해보자. 사실대로 현장감 있게 쓰고 의미를 강조해보자. 사건, 사물을 보이는 대로 쓰고, 사람의 심정, 처지, 사정을 헤아려 쓰고, 현상의 이유, 원인, 전망을 분석해 쓰자. 글은 자신의 시선이고, 관점과 해석이며, 감상이다. 길들지 않은 자신의 날것을 글로 쓰자. p.30

학교에서의 공부는 주로 읽기와 듣기였다. 읽기와 듣기는 남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소유 행위. 쓰기와 말하기는 내 것을 남에게 나눠주는 공유 행위. 학교에서는 읽기와 듣기를 많이 해서 자기 소유를 늘리는 친구가 우등생이 되었다. 일종의 소유 경쟁이었(p.35). 우리의 공부는 협력을 잘하기 위함이 아니라 경쟁을 잘하기 위함이요, 우리의 교육은 경쟁을 잘하는 사람을 키우기 위함이었다. p.36

쓰기는 대상에 공감하는 과정이다. 쓰려면 우선 이해해야 한다. 이해의 대상에는 처지, 사정 같은 이상 영역과 심정, 마음 같은 감성 영역이 있다. 이 둘을 이해한 상태를 공감’[이라고 한다. 사람, 사물, 사건, 삶에 공감하는 정도, 정서(p.42)적 감응력이 글의 수준을 결정한다. ... 독자가 공감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대상에 빙의해야 한다. 독자를 대신해 어떤 대상이 되어 쓰는 게 글이기 때문이다. p.43

관심 분야가 있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충분조건을 갖춰야 한다. 자신의 관심 분야에서 성취하고자 하는 꿈과 목표가 그것이다. ... 그랬을 때 관심사는 자신의 화두이자 필생의 과업이 된다. 충분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관심사는 단지 취미에 불과하다. 자칫 몰입이 아닌 중독에 빠지게 된다. p.51

생각을 놓고 있으면 안 된다. 생각을 챙겨야 한다. p.52

글을 쓴다는 건 문자로 펼쳐진 자신의 감정, 그러니까 문자화된 자기와 마주하는 것이다. 마주함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이로써 뭉텅한 감정을 세밀하게 분화하(p.73)는 것이다. 기쁨의 감정이 매우 좋음과 매우 나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좋음, 좋음, 보통, 나쁨, 매우 나쁨으로 세분화되는 것이다. p.74

직장에서는 기억이 권력이다. 윗사람은 기억의 힘이 세다. 아는 것도 많고 경험도 많다. 규정과 관행도 윗사람에게 힘을 실어주는 기억의 영역이다. 아랫사람은 상상력이 있는 대신 기억은 약하다. 아는 것도 적고 경험도 부족하다. (p.80)러한 힘의 불균형 상태에서 아랫사람은 새로운 기획을 하거나 도전하지 않는다. ... 실패했을 때 재기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패자부활전이 가능해야 상상한다. p.81

불확실한 데 도전하는 것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입니다. 저는 그 사람의 삶에 격려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 사람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 노무현 p.82

글이 말처럼 자연스럽고, 말이 글처럼 치밀하면 좋은 말과 글이 된다. p.107

글쓰기가 두렵다면 아직 살 만한 것이다. p.119

창조란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포기하는 것에 불과하다.” -미국 작가 E.B.화이트 p.122

작가는 습관적으로 쓰는 사람인 동시에, 스트레스를 이기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p.126

직장에서 글쓰기는 관계가 핵심이다. 관계가 좋아야 상사의 생각이 내게 흘러온다. 그 생각이 생명수다. 관계가 나쁘면 내 생각을 전할 기회도 없다. 그런 기회가 없으면 상사는 내 생각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낯설면 받아들일 확률이 낮아진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하는 일은 보람도 없다. 일하는 이유가 사람을 향해야 하는데, 그럴 만한 사람이 없으니 당연히 즐겁지도 않고 잘할 수도 없다. p.140

문서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듣는 사람이 어떻게 이해하는지가 중요하다. 보고하는 사람은 문제점, 필요성, 성공을 말하지만, 보고받는 사람은 해법, 기대효과, 실패를 생각한다. p.143

직장에서 글 쓰는 일의 책임은 부하에게만 있지 않다. 상사의 몫이 더 크다. 좋은 생산라인에서 좋은 제품이 나오듯, 좋은 상사에게서 좋은 보고서가 나온다. 상사는 세 가지를 해줘야 한다. 첫째, 들어주고, 둘째, 알려주며, 셋째, 고쳐줘야 한다. p.144

글을 고쳐준다는 핑계로 해악을 끼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대표적으로 두루뭉술하게 요구하는 때다.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고 좋다”, “나쁘다라고만 얘기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주문을 한다. “감동적으로 써 달라”, “격조 있게 써 달라”, 하면서 무엇이 감동적이고, 어떻게 써야 격조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런 요구를 하는 사람은 나는 그렇게 쓸 수 있나?’ 자문해봐야 한다. 비판 일색의 조언도 문제다. ... 명백한 오류가 아니면 단지 다른 것일 뿐이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다. p.146

직장에서의 글쓰기가 발전하려면 상사와 부하 관계, 즉 개인적인 차원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조직이 나서면 훨씬 효율적이다. p.147

직장생활은 내가 주인으로 사는 게 아니다. 내 시간을 저당 잡히는 대신 급여를 받는 것뿐이다. 언젠가 떠난다. 직장에 있는 동안은 그 이후를 준비하는 기간이어야 한다. p.149

회사 다닐 적 상사에게 이런 얘기를 들었다. “부하들은 늘 이렇게 말합니다. ‘칭찬 해달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고 말이죠. 그러면서도 정작 본인들은 윗사람을 칭찬하는 데 인색합니다. 그런 사람을(p.168) 보면 아부한다고 비아냥거립니다. 윗사람에 대한 칭찬이 아부인데 말이죠.” p.169

글을 쓰려면 세 가지와 만나야 한다. 사람, , 자기 자신이다. p.230

일기가 공부라면, 쓰기는 시험이다. p.230

풍파는 전진하는 자의 벗이다.” - 니체 p.240

한 대도 안 맞는 싸움은 없다. 네 대 맞고 여섯 대 때릴 수 있으면 싸운다. 시도하고 도전하면 실패와 성공 확률이 5050이다.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않으면 100퍼센트 실패다. 100퍼센트 실패의 길을 가려고 하는가.” - 노무현 p.240

개인의 경험을 글로 쓰는 것은 사회적 자산을 생산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누구나 책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 특히 가시밭길을 걸으며 더 많이 고생한 분들이 책을 써야 한다고 믿는다. p.249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가슴에서 다시 발까지의 여행이 우리의 삶입니다. 머리 좋은 사람이 마음 좋은 사람만 못하고, 마음 좋은 사람이 발 좋은 사람만 못합니다.” - 신영복 p.249

거절 잘하는 것도 경쟁력이다. 특히 회사에서는 거절 잘하는 사람이 보통 일도 잘하고 평가도 잘 받는다. 물렁하고 호인이란 소리 듣는 사람이 오히려 평가를 잘 받지 못한다. 인간적인 평가는 좋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p.263

실상과 진실은 구체성으로만 모습을 드러낸다. p.268

인간은 빵을 굽고 술을 빚고 글을 쓰는데, 이 세 가지는 모두 숙성과 발효가 필요하다.” - 다윈 p.309

없애는 것은 남아 있는 것을 응축한다.” - 미국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 p.330

겉으로 드러난 주제보다 그렇게 말하는 의도나 배경을 알아채는 일이 중요하다. ... 이는 월급 받는 사람이라면 모두 필요한 역량이다. p.332

사람은 단결함으로써 힘을 얻을 수 있고, 평화로써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고집만 센 사람이 되기보다는 신념이 굳은 사람이 되십시오. 감정이 앞서는 사람보다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 되십시오. 특권계층은 사라져야 하며, 더는 특권이 존재해서도 안 됩니다. 인민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 빅토르 미라보 p.366

“20분을 넘어가는 설교는 죄인도 구원받는 걸 포기하게 한다.” - 마크 트웨인 p.373

첫 문장은 글의 출발점이다. 전체 글의 함축이고 복선이며 독자를 유인하는 첫인상이다. 글쓰기는 첫 문장과 끝 문장을 단단하게 잇는 작업이다. p.383

쓰는 단어를 보면 그 사람이 살아온 배경과 성격, 심리 상태까지 알 수 있다.” - 심리학자 페니베이커 p.392

글 쓰는 사람은 어휘와 문장의 디테일에 강해야 한다. 대담함보다는 사소함이 미덕이다. p.395

일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으며, 뜻하지 않은 고난과 역경에 부딪힐 수도 있다. 이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도전과 시련의 원인, 응전하고 반응한 결과를 해석하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다. p.410

정서와 감성은 글쓰기의 재료다. 글이 사실과 느낌의 조합이라고 할 때, 그 한 축인 느낌에 해당한다. 글쓰기는 이성과 감정이 힘을 합쳐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온전히 전할 수 있다. 이성으로 동의를 구하고 감정으로 공감을 얻는 게 글쓰기다. p.415

핵심 감정을 찾아라. 이것이 단편소설을 쓰기 위해 알아야 할 전부다.” - 피츠제럴드 p.417

갈등 상황은 소통의 전시 상태다. p.439

독자가 누구인지 알면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 수 있다.” - 버지니아 울프 p.449

양시은 스스로 평가하는 사람에게나 있는 것이다. 내 평가를 남에게 위탁하고 살면 양심은 필요 없다. p.458

선을 행하는 사람은 봄이 왔을 때 동산의 풀 같아서 자라는 것이 보이지 않지만, 매일매일 덕이 자라고, 악을 행하는 사람은 칼을 가는 숫돌 같아서 닳아 없어지는 것이 보이지 않으나, 나날이 덕이 깎이고 있다.” -<명심보감> p.462

의중은 실제로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그래야만 보이고, 보여야 맞출 수 있다.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게 의중이다. p.476

실패한 것은 죄가 아니다. 물어보지 않은 것이 큰 잘못이다. p.477

아랫사람들이 입을 닫은 조직은 희망이 없다. 그것은 가정도 마찬가지다. 말이 줄어들어서는 안 된다. ‘이런 얘기까지 해도 되나?’ 하는 것까지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말이 없으면 어딘가 막혀 있거나 문제가 있는 것이다. p.487

듣기가 분해라면 말하기는 조립이다. 듣기는 말을 부분들로 나누는 일이고, 말하기는 부분들을 짜 맞추는 일이어서 그렇다. 분해를 많이 해본 사람이 조립도 잘할 수 있다. p.493

모든 배움은 듣는 것에서 출발한다. p.495

삶이 곧 나의 메시지다. My life is my message.” - 간디 묘비 p.497

진정성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진실하고 참된 성질이라고 나온다. 이 단어는 본래 그리스 철학에서 유래했는데, ‘너 자신을 있는 그대로라는 의미라고 한다. 성찰로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그것에 기초해서 다른 사람들과 가식 없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p.498

도저히 침묵하기 어려운 말이 있으면 글로 쓰자. 글은 소리가 없다. p.502

 

 

내가 직장생활을 할 때 책상에 붙여놓고 보던 퇴고 목록이다.(p.422)

1. 제목은 적절한가.

2. 사실에 오류는 없는가.

3. 빠뜨린 내용은 없는가.

4. 핵심 메시지나 결론은 명확한가.

5. 목적에 부합하는가.

6. 조직의 운영방침에 맞는가.

7. 시의적절한가.

8. 현재 상태의 진단은 정확한가.

9. 원인과 이유는 제대로 파악했는가.

10. 근거는 충실한가.

11. 사실, 정보의 출처는 어디인가.

12. 환경 분석을 잘했는가.

13. 문제를 정확히 정의했는가.

14. 문제 해법에 실효성이 있는가.

15. 실행계획은 현실적이고 실천 가능한가.

16. 얻을 수 있는 이익이나 혜택, 위험요인은 무엇인가.

17. 향후 과제나 미래 방향을 포함했는가.

18. 자료 수집과 조사는 충분한가.

19. 빼도 좋은 내용은 없는가.

20.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더 좋은 대목은 없는가.(p.423)

21. 전개 순서는 손댈 필요는 없는가.

22. 상호 모순되는 부분은 없는가.

23. 한 번만 읽고도 이해되는가.

24. 오자와 탈자, 맞춤법에 어긋난 부분은 없는가.

25. 잘라주면 더 좋은 문장은 없는가.

26. 다른 단어로 바꿔주면 더 좋은 대목은 없는가.

27. 다르게 편집할 수는 없는가.

28. 도표나 그래프, 그림으로 보여주면 더 좋은 부분은 없는가.

29. 수치화할 수 있는 부분은 없는가.

30. 다른 결론, 다른 대안은 없는가.

31. 의사 결정을 위한 선택지는 적절한가.

32. 쟁점은 챙겨봤는가.

33. 표절 등 지식재산권 문제는 없는가.

34. 균형감을 잃거나 편파적이지는 않은가.

35. 지나친 자신감과 확증편향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36. 고정관념, 통념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은가. (p.424)

37. 불리한 사실이나 부정적 정보를 감추고 있지는 않은가.

38. 좀더 다각적으로 볼 수는 없는가.

39. 더욱 큰 틀에서 종합적, 구조적으로 볼 수는 없는가.

40.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41. 다른 부서 등에 공유해줄 내용은 없는가.

42. 보고받은 상사는 무엇을 물어볼까.

43. 지금까지 확인한 것 말고 놓친 것은 없는가. p.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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