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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소년이로] | 원숭이의 서재 2019-08-03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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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년이로

편혜영 저
문학과지성사 | 201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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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4. 편혜영 『소년이로』 [7.5/10]

 

편혜영 작가의 신작 소설집 『소년이로』를 시작하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다. 생전에 아버지는 식사를 앞두고 직접 한시를 주셨다. 외워두라고 했고 반드시 스스로 이해해야 한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그렇게 직접 써주신 한시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유난히 마음속에 깊이 자리한 시가 바로소년이로학난성, 일촌광음불가경으로 시작되는 주자의 시로 소설집의 표제작과 같다.

젊은 날은 빨리 가고, 학문은 이루기가 어려우니, 짧은 시간이라도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의미의 시가 유독 마음에 남아있는 이유는 아버지께서 일생에 남긴 유일한 시이며,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시이기 때문이다.


소설집의 표제작인 <소년이로> 앞서 설명한 주자의 한시 , 가장 앞부분을 차용했다. 젊은 날은 빨리 간다는 의미를 단편 소설로 풀었는데, 여기서 주목해야 점은 작가가 표제작을 <소년이로> 결정한 이유가 단지 젊은 날이 빨리 간다는 의미로서 소년이 어른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닌, 인생의 어느 시점에선가 감당하게 책임의 무게에 대해 묻고 있다고 느꼈다.


편혜영 작가의 소설에는 죽음이 있다. 범죄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범죄도 등장하는데 단지 범죄의 연속이 불러오는 비극적 사건은 그러나 단출한, 혹은 평범한 죽음으로 이어진다. 때론 사고가 나기도 하지만 사고로 인해 삶이 망가진 당사자들은 결국 그것이 누구의 탓이었는지도 잊은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우리는 이러한 사건을 통해 초초함이나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편혜영 작가의 신작 소설집 『소년이로』를 읽으며 가장 먼저 접한 감정은 고독감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고립에서 오는 고독감이기도 했는데, 가족으로부터, 친구로부터, 직장 동료로부터 고립되는 상황을 담담한 문체로 풀었다.


편혜영 작가는 일상의 균열을 디테일에서 끌어낸다. 전혀 대단할 것이 없는, 보편적이고 평범한, 어쩌면 눈에 띄지 않을 디테일에서 균열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혹은 매시간 마주하는 작은 물체나 지나치기 쉬운 식물들, 마당의 잔디, 가끔은 일종의 상황이 만들어낸 분위기로 균열을 끌어낸다. 작은 사이로 베어든 습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인물들을 눅눅히 만들고 만다. 그러나 소설 속의 인물들은 문학적 개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다분히 현실적인 그들의 모습은 어찌나 우리의 모습을, 우리 주변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 너무도 쨍하게 투영된 현실적인 모습에 섬뜩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소설의 부분에는 사건(사고) 보상의 문제가 사과와 책임의 문제로 이어진다. 그룹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로 넘어가는 순간 우리는 소년에서 어른이 되고 만다. 사건(사고) 있어 책임의 주체가 달라질 수는 없다. 다만 책임의 주체가 짊어지는 무게와 그에 따른 변명은 달라질 있다.


소설이 끝나고 작가의 말에 ? 책에우리들의 실패라는 제목을 붙여두었다. 우연에 미숙하고, 두려워서 모른척하거나 오직 잃은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여서 그랬다. 하지만 아픈 사람들이 많은 소설이어서 실패라는 말을 나란히 두기 힘들었다. -라는 작가의 코멘트가 있다. 나는 여덟 편의 소설을 포함한 책에 나오는 모든 문장 중에 위의 문장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것은 소설 속의 문장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이나 작가의 짧은 코멘트가 여덟 편의 소설을 번에 표현할 만큼 좋았다는 말로 이해해주길 바란다.


그렇다 여덟 편의 소설 속에 나오는 현실을 닮은 인물들은 저마다의 실패에 몸살을 앓는다. 누군가는 죽음으로 이어질 테고, 누군가는 질병으로, 누군가는 절망으로 그렇게 저마다의 실패는 결국 우리의 모습을 비추기 마련이다. 지금의 또는 과거의,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지만 어쩌면 미래의 모습이다. 작가는 그러나 결국 이야기의 말미에서도 극복의 과정이나 안착의 결과를 표현하지 않는다. 다만 죽거나, 다만 앓거나, 다만 절망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의 현재가 그려질 뿐이다. 그러한 서사는 이야기 내내 독자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앞서 말한 균열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 나는 균열의 형세와 분위기가 참으로 마음에 와닿았다. 또한 주자의 한시에서 차용한 책의 제목 덕에 잊고 있던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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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흰] | 원숭이의 서재 2019-08-03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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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한강 저
문학동네 | 2018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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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은 그 이름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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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2. 한강 『흰』 [9/10]


문학이나, 사진, 그림, 영화, 음악 모든 예술을 마주할 때면 주요하게 보는 부분이 있다. 어떠한 작업에 앞서 당연하게도 솜씨와 기교, 기능을 의미하는 장인 () 필요하고, 채우는 작업만큼이나 중요한 비우는 작업을 의미하는 () 필요하다. 또한 공변됨은 빠질 없는 요소이니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이 중요하여 공평할 () 필요하다. 앞의 가지 이루면 공로, 공적을 의미하는 () 자연히 따라붙게 마련이다. 그러나 모든 앞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공손과 정중 그리고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하는 한가지 () 것이다. 공동체에 쓰이는 바로 () 말이다.


한강 작가의 『흰』에 대한 감상문을 적기에 앞서 대해 말하는 이유는 바로 한강 작가가  『흰』을 통해 앞선 다섯 가지 공을 모두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작품을 접한 것은 『채식주의자』를 시작으로 『소년이 온다』 『바람이 분다, 가라』 『여수의 사랑』 등이 있고 이번이 다섯 번째 작품으로 앞서 만난 작품들 역시공의 단계 느껴졌지만 『흰』은 중에서도 가장 예술작품에 가까우며 드러난 문학이다.


오늘은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많이 했으니, 감상문에 앞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은 재미가 없다.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어느 한구석에도 재미가 묻어나지 않는다. 신기한 것은 재미없는 책을 나는 흠뻑 빠져들어 읽었다는 것이다. 이유가 무얼까 하고 생각을 해보면 한강 작가의 『흰』이야말로 대중문학에 대해 독자에게 영합하지 않고 순수한 예술적 감흥에 의거하여 창작된 문학작품을 지칭하는순문학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문장들은 자체로 예술의 범주에 속한다. 작가의 문장을 보면 완벽하다는 ?상업적인 면에서- 느낌보다는 오히려 강렬한 예술 사진을 마주한 같은 몽환적인 느낌에 빠져든다. 챕터의 구성도 살짝 부족한 느낌으로 다가오는데, 실은 그것이 부족하다기 보다 작가 스스로가 힘을 빼고 비워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장으로 구성된 『흰』은 1 <>, 2 <그녀>, 3 <모든 > 앞서 책의 머리에 것에 대해 쓰겠다고 결심한 봄에 내가 처음 일은 목록을 만든 것이었다.”라는 작가의 말과 함께 강보, 배내옷, 소금, , 얼음, , , 파도, 백목련, , 하얗게 웃다 등의 목록이 보인다. 그렇게 작가가 바라본하얀 아닌것들에 대한 육십 여개의 목록은 짤막한 글로 탄생한다.

작가는 『흰』을사라질(또는 사라지고 있는) 아름다움과 더럽혀지지 않는 어떤 것에 관한 이야기라고 한다. 나는 작가의 말에서 단지 스르르 녹아내리는 떠올렸다. 그러나 작가는 멀리로 나아간다. 이를테면 수의, 이를테면 강보 혹은 배내옷 같은 것들 말이다. 그것들이 사라질(또는 사라지고 있는) 것들인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피상적일 없는 아름다움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임은 나로서도 있었다


책에는이라는 소재만큼이나 반복적으로 죽은 언니가 등장한다. 작가에게이란 탄생과 죽음, 젊음과 늙음, 아스라이 사라져가는 아쉬운 모든 것들의 색이다. 안에 죽은 언니가 있고 문장으로 보아 작가는 죽은 언니를 결국 통과하지 못하는 같다. 죽은 언니는 트라우마 자체로 느껴진다.


읽는 사람에 따라 『흰』의 정체는 달라질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새의 깃털 같을 수도 있겠지만, 내게 『흰』은 짙은 안개의이었다. 희뿌연 안개는 비탄의 색이다. 통과하려면 누구나 통과할 있지만, 쉽사리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것은 안개의이야말로 비탄의 색이기 때문이다.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다. 그러나 딱히 작가의 이해하고 싶지는 않다. 한강 작가의 『흰』은 그의으로 남겨두고 싶다. 대신 나는 나의 상상하며 책을 읽었다. 죽음보단 탄생에 가깝지만 안개와 같은 비탄의 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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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 [안녕 주정뱅이] | 원숭이의 서재 2019-08-03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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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저
창비 | 2016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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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7. 권여선 『안녕 주정뱅이』 [8.5/10]


우리는 문학을 접하며 심연에 도달한다. 그것은 작가의 심연이며, 동시에 우리 자신의 심연이기도 하다.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첨예한 대립 상태에 놓인 인물들을 마주하게 되고, 낯선 상황이나 공간 속에 호기심을 느끼기도 하지만, 작가가 설치한 섬세한 도구를 통해 낯선 감정이 어느 순간 낯익은 감정으로 완전히 변하기도 한다. 권여선 작가는 일곱 편의 단편 소설을 『안녕 주정뱅이』라는 이름의 소설집으로 묶으며, ‘이라는 천진한 도구를 사용했다. 결국 이번 소설집에서 낯선 상황과 낯선 공간과 낯선 인물과 낯선 시간 모두를 낯익게 연결했다.


인생의 장막을 걷어내고 진실을 마주할 우리가 택할 있는 선택지는 의외로 많지 않다. 그리고 얼마 되는 선택지 중에서도 우리가 아주 쉽게 선택할 있는 선택지 하나가 바로 술이다. 자신을 유폐시키는 과정에는 대부분 술이 있다. 어떤 이는 사회로부터, 어떤 이는 사람들로부터, 어떤 이는 심지어 가족이나 친구로부터 스스로를 유폐시키며 자신이 만든 작은 세상 속으로 향한다. 상황에 따라 술은 자신을 가두기 위한 가장 적절한 도구가 된다.


말기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고 있는 수환과 중증 알코올 중독자이며 그의 아내인 영경은 이상 병원 신세도 지기 힘들 만큼 악화된 건강 문제로 요양 시설에 들어간다. 견디기 힘든 현실 속에서도 둘은 여전히 사랑하지만, 수환은 점점 심해지는 고통으로 약에 절어 살아야 했고, 며칠 참는다 싶었던 영경은 외출증을 끊고 밖에 나가 사나흘 쉬지 않고 술을 마신다. <봄밤> 영경은 끝끝내 수환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하고, 어느 여관방에서 술을 마시다 혼절한 상태로 발견된다. 불행 다행일까, 알코올성 치매는 영경의 지난 아픈 시간들을, 그리고 수환과의 모든 기억들을 송두리째 앗아간다.


이혼을 앞둔 주란과 규는 친구 훈을 앞세워 부부로서의 마지막을 기념하는 이별 여행을 떠난다. 주란과 규의 지난 결혼 생활을 암시하듯 여행은 시작부터 삐걱댄다. 거듭된 실랑이 끝에 도착한 숙소에서 친구 훈은 주란, 부부와 함께 술로 목을 축이기 시작한다. 주란과 규의 균열은 규와 훈의 균열로 이어진다. 삶의 균열은 술을 부른다. 물론 술이 삶의 균열을 부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쩜 여행은 시작부터 못된 것은 아닐까. 마치 <삼인행> 주란과 규의 결혼처럼.


젊은 날을 가족에 대한 헌신으로 바친이모 돌연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런 이모가 시한부가 되어 돌아왔다. 시조카인 그저 도리로 돌아온 남편의 이모를 찾아 병문안을 간다. 이모는 시어머니나 남편에겐 오히려 관심이 없다. 글을 쓰는 이유 때문인지, 유독에게 관심을 갖고 퇴원 ?아무도 발을 들인 없는-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그리고 이모가 떠나기 전까지 매주 월요일 오후가 되면이모 집을 방문한다. 아마 병에 걸리기 최근 2~3년을 제외하곤 삶이 온통 지독했을 이모는 죽음을 앞두고 통해 위로를 받는다. 번째 단편 <이모> 마지막 술상이 기억난다. 표면적이지 않지만, 위로를 받은 죽음을 앞둔 이모가 아니라 수도 있다.


술을 마시지도 않을뿐더러, 술자리조차 연례행사인 내게이란 도구로 공감을 끌어내기란 상당히 힘든 일일 것이다. 어려운 권여선 작가는 기어코 해내고야 만다. 사실 『안녕 주정뱅이』란 제목부터 그리 끌리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소설집을 접한 것은 전에 읽은 『레몬』에서의 문장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이번 소설집에서 주요 도구로 사용되긴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매개일 뿐이다. 인물과 인물 또는 인물과 사건의 관계를 맺어주기 위한 유용한 도구로 사용될 , 『안녕 주정뱅이』에서 술이 빠진다고 문제가 것은 없다. 다만 권여선 작가가 표현한 술은 어딘지 모르게 절망과 닮아있고, 자체와도 닮아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작가의 문장이야말로 자체로 술이다. 일곱 편의 단편 소설은 권여선 작가의 문장이 빚어낸 술이고 나는 문장에 취해 마지막 단편 <> 끝내며 말한다. 안녕 주정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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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 원숭이의 서재 2019-08-03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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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저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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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3. 김연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8.5/10]

 

한국계 미국 여성인 카밀라는 입양아다. 그녀를 입양한 양모는 죽음을 앞둔 상황에도 입양아 카밀라에 대한 애착을 넘어선 집착을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카밀라를 세상에 남겨두고 작별하던 순간까지도 양모는 한국에서 날아온 편지에 대해 함구한다. 한국에서 날아온 편지는 카밀라가 당당히 희재가 있는 중요한 장치다. 그러나 끝끝내 함구된 편지는 카밀라가 결코 쉽게 희재가 없음을, 힘겹게 희재가 되어가야 함을 말하는지도 모른다.


애인 유이치의 권유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십 대의 카밀라는 미국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무렵 그녀를 등단시킨 권의 책은 다름 아닌 카밀라 자신의 이야기였고 카밀라에게 관심을 보인 출판사에서는 그녀에게 책의 공백이었던 엄마(친모) 대한 글을 요구했다.

어쩌면 지난 이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카밀라는 희재가 되고 싶었을지도, 아니 이미 카밀라는 희재였는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집착하던 양모는 세상을 떠나고, 양부는 자신의 새로운 삶을 찾겠다는 안부를 전했다. 이상 카밀라는 카밀라가 아닌 것이다. 양부모로부터 받은 카밀라란 이름은 양모가 세상을 떠나고, 양부가 출발을 하며 이미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카밀라는 애인 유이치와 함께 친모를 찾아 한국으로 떠난다. 그것은 물론 출판사와의 계약을 이행하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다분히 카밀라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바로 카밀라가 희재가 되어가는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바다가 보이는 작은 마을 진남, 그곳에서 카밀라는 엄마에 대한 단서를 찾아 나서고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엄마의 이름이 정지은이었다는 것과 열일곱에 그녀를 가졌다는 사실을 마주한다. 그러나 친모에 대한 진남에서의 취재는 그리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어쩐지 알면서도 쉬쉬하는 분위기고, 엄마가 다녔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등학교의 교장은 그녀가 희재가 되기를 원치 않는 , 이제 그만 미국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그녀는 모두 지난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카밀라, 아니 이제 희재가 되어가는 그녀는 수십 친모가 겪었던 사건의 실체에 다가간다. 모든 것이 거짓이었던 진남에서.


김연수 작가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1 카밀라에서 카밀라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2 지은에서는 화자가 바뀌어 친모의 입장에서 바라본 이야기를, ‘3 우리에서는 친모 지은을 둘러싼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끝으로특별전에서는 숨겨진 뒷이야기가 나온다. 김연수 작가의 책은 처음 접하는데, 결론을 말하자면 수작이다. 책을 시작할 때에는 사랑에 대한(멜로)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이야기가 조금 진행되었을 때에는 카밀라가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드라마로 읽혔다. 그러나 이야기의 중간중간에 느껴지는 긴장감은 서스펜스로 이어지고, 차분하고 잔잔한 바다를 보듯 특별한 사건 없이 진행이 됨에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여 책을 덮을 없었다. 느낌은 이야기가 아닌 문장 중심이었기에 느낌 충만하게 내려간 같으면서도 완독을 시점에서는 굉장히 기획된 촘촘한 에피소드의 연속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야기의 흐름면에서나, 그것을 지탱하는 문장에서나 어느 부분 부족하지 않다. 그리고 작가 김연수는 균형을 매우 적절하게 조절하면서도 독자로 하여금 지치지 않을 정도의 시기에 정확히 호기심을 유발하는가 하면, 좋은 장치들을 적절히 사용하여 긴장의 끈을 놓지 않도록 유도하는 일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책의 마지막특별전 ‘2012년의 카밀라, 혹은 1984년의 정지은이라는 장이 있다. 장을 통하여 작가는 모든 것이 결국 진행되고, 점의 인생이 선의 인생으로 회상되는 마무리를 보여주는데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모든 부분이 좋았던 책은 열일곱의 엄마가 스물넷의 딸에게, 그리고 스물넷의 딸이 열일곱의 엄마에게 보내는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라고 있겠다. 엄마는 카밀라에게 말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작가는 전통적인 문법에 새로운 시도를 더했다. 전통적인 것과 새로운 것의 간극은 언제나 기묘함을 선사한다. 무언가로부터의 낯익음과 무언가로부터의 낯섬이 공존한다는 , 그리고 균형이 유지된다는 것만으로도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읽어야 이유는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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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해질 무렵] | 원숭이의 서재 2019-08-03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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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해질 무렵

황석영 저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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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1. 황석영 『해질 무렵』 [9/10]


지금 내가 밟고 서있는 시간을 계절로 보면 여름의 끝자락인 것만 같다. 아직은 불태울 열정이 있으니, 어쩌면 앞으로 정도는 여름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있거나, 아직은 여름이라며 변명 같은 푸념을 내뱉을 수도 있겠다.

황석영 작가의 『해질 무렵』은 60대의 성공한 건축가 박민우가 하루가 저물 무렵, 서쪽으로 기우는 해를 등지고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바라보며 자신의 지난 삶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의 회상에는 여로의 세월 속에 이제는 희미한 흔적으로 남은 지난날의 옛사랑이 도로 아스팔트로 길게 늘어진 그림자 같다.


어린 시절 미로처럼 복잡한 좁은 골목이 세상의 전부인 골목골목을 뛰놀던 그의 동네는 이미 도심지 개발로 인해 초고층 주상복합이 줄을 서고, 자로 반듯한 사거리엔 도시풍의 상가들이 말끔하게 정렬되어 있었다. 함께 건축가로 살아온 동료 교수는 그러한 추억의 소멸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일종의 상실일 있다. 추억이 담긴 그곳 ? 각자의 고향 ? 건축가인 그들이야말로 편리함과 깨끗함, 그리고 이면엔 집값 상승이라는 요인을 들먹이며 하나, 그렇게 나라 전체를 들어낸 것이다.


도심지 개발에 대한 강연을 마친 박민우는 옛사랑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받는다. 차순아, 어린 시절 달동네에서 자란 박민우에겐 그가 지낸 달골이란 동네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던 순백의 차순아가 있었다. 달골에 살던 아이들 고등학교 교복을 입을 있었던 사람. 그리고 그들이 버스며, 골목길을 오가며 나눈 대화에 문득 박민우는 시절의 달골을 회상한다.


서른을 앞둔 정우희는 그리도 바라던 연극연출가의 길을 걷기 위해 반지하 방을 벗어나지 못하고 낮에는 연출 일을, 밤에는 치킨집이나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유지하며 언제나처럼 연극 무대에 매달린다. 피폐한 삶으로부터 정우희가 얻을 있었던 것은 얼마 되는 급료와 무뚝뚝하게 자신을 챙기는 김민우였다.


황석영 작가의 『해질 무렵』은 박민우에서 정우희로 화자가 옮겨가고 다시 박민우로 화자가 옮겨오기를 반복하며 주변 인물들이 서서히 연결되어 줄기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해질 무렵』에서의 정우희에겐 현재의 김민우가 있고, 박민우에겐 과거의 차순아가 있다. 정우희에겐 나아가야 참담한 현실이 있고 박민우에겐 돌아갈 없는 추억이 있다. 정우희는 가난하지만 박민우는 부유하고, 정우희는 여전히 젊지만 박민우는 점점 늙어가고 있다. 박민우의 옛사랑 이야기는 인물들의 접점에서 발생하지만, 결국 박민우가 있었던 일은 무렵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바라보며 지난날을 회상하는 뿐이다.


안정된 생활에 명예까지 있으니 꽤나 살아온 인생이다. 그러나 박민우는 지난날의 회상 속에서 소실되고 소멸되어 버린 청춘에 대해, 달골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자신에 대해, 세월의 허망과 존재의 가치에 대해, 기성세대로서의 책임감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현재 모습인 무렵에 대해 생각하며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되묻는다.


황석영 작가는 『해질 무렵』을 통해 황혼과 청춘을 동시에 말하고 있다. 그것은 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동시에 억겁과도 같이 떨어져 있는 것이다. 자석처럼 붙어있지만 결국은 서로를 없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가 『개밥바라기별』에서 유준과 주변 인물들의 성장을 보여주었다면, 이번 『해질 무렵』에서는 박민우를 통해 지난날을 돌아보게 해주었다


이번 작품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황석영 작가의 문장은 서사적이며 동시에 서정적이다. 그의 글은 감정이나 정서를 그려내며, 동시에 사실 그대로를 글로 옮겨 놓은 것과 같은 서사적 측면은 마흔을 앞둔 내가 이십 이상을 박민우가 되기도 하고, 년을 정우희가 되기도 한다. 또한 경장편 소설임에도 주제의식이 뚜렷하게 나타나며, 재미와 감동을 동반한다는 점에과연이란 말이 절로 나오지 않을 없다.


잠시간 황혼의 시간을 만나게 해준 황석영 작가님과 문학동네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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