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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나온 넷우익-야스다 고이치]나 역시 언제고 같은 위험에 처해있다. | Memento 2017-07-05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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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거리로 나온 넷우익

야스다 고이치 저/김현욱 역
후마니타스 | 2013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나 역시 언제고 같은 위험에 처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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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방어를 위한 폭력, 약자의 폭력은 정당한가? 이것이 정당하다면 자기 방어를 위한 선제적 폭력은 정당한가의 문제가 생긴다. 법에서는 정당방위를 엄격하게 제한하지만, 죽음의 위협 속에서 실질적인 방어를 위한 폭력의 필요성은 무시할 수 없다. 또한 약자의 폭력이 정당하다면 약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 약자가 자기보다 더 약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면서 본인이 더 약자라고 주장한다면? 사태는 점점 더 복잡해질 것이다. 기준이 없다면 만인에 대한 민인의 폭력상태에서 길을 잃게 될 것이다.

민주적인 정치제도, 경제적 풍요 속에서도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하는, 그렇기에 연대가 아닌 차별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차이나 다름이 있음은 당연하다. ‘자아가 있고, 그와 다른 타자가 있기에 우리는 세상을 인식한다. 이 차이를 기준으로 를 가르고, 필연적으로 를 다르게 대우할 수밖에 없다. 인식을 위해 양자가 모두 필연적으로 필요하고, 자아를 우선시하는 것은 생명체의 기본적 욕구다.

문제는 차이의 인정, 다름의 이해를 오인하여 공공연하게 차별하는 것이다. 사실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자연은, 세상은,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 그렇기에 차이에 따른 다른 대우는 일정부분 불가피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 차이가, 부당한 차별의 근거가 되는 순간 모두가 모두에게 투쟁하는 장이 열린다. 장애인, 여성, 인종, 외국인, 가난한 사람, 성소수자. 가능한 구분하여 차별할 수 있는 모든 존재가 고통 받는다(고통 받고 있다).

더 약한 자에 대한 약자의 폭력은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타자의 존재를 가벼이 여기는 시대에서 서로 자아를 유지하기 위한 먹이사슬을 형성한다. 더 강한 자아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자기보다 더 약한 타자를 물색하고, 결국은 이 차이를 기본으로 세상을 인식한다. 그리고 계급을, 사다리를 형성한다. 사다리의 맨 아래에는 차이를 가장한 차별을 통해 혐오의 대상이 된 소수자들이 존재한다. 무한 경쟁의 시대. 의자 뺏기게임의 잔혹함속에서 낙오자들끼리의 투쟁이 벌어진다. 이런 세상에서 묵자의 겸애가 가능할까?

 

<거리로 나온 넷 우익>은 이러한 사례에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는 재특회의 탄생과 현재에 대하여 취재한 탐사르포다. 일본 원제는 <인터넷과 애국 재특회의 어둠을 쫓아서>.

 

인터넷은 정보혁명을 이루었고, 우리에게 더 많은 이익을 주고 있다. 더불어 저마다의 의견을 나누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직접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장점이 그대로 약점이 된다. 많은 정보가 넘치지만, 그 진위를 알 수 없는 쓰레기 역시 넘쳐난다. 익명성 역시 비판의 기능을 강화하기도 하지만, 역으로 비난이라는 역기능을 극대화 한다.

이러한 공간에서 증오와 차별이 처음에는 재미삼아 잉태하고, 관심을 받고 자라나 일정한 규모의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익명이니 만큼 그들은 과격했고, 그럴수록 더 주목받았다. 약할 때 강함이 되는 기적을 우리가 목도하고 있다.

그들은 온라인의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더불어 익명성에 기대어 집회 중의 자기와 개인 삶에서의 자기에 큰 간극을 보인다. 일부 인사를 제외하고 그들 대부분은 저학력 등 일본 내에서 약자에 속한다. 그렇기에 더 약한 타자를 찾게 되었고, 여기에 재일 코리안이 걸린다. 외연을 확장하고 세력을 불린 다음, 그들의 목표는 점점 늘어난다. 부락민과 같은 더 약한 존재를 찾아서.

사실 재특회의 이야기를 보는 순간 일베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들이 벌였던 폭식 시위에서 재특회의 태동과 유사했다. 재특회의 회원들도 시위 때가 아니면 평범한 사람인 것처럼, 언론에 노출된 일베회원들도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에필로그를 읽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재특회는 나에게도 있고, 어찌 보면 우리 모두 각자의 재특회를 가지고 있다. 앞서 말한바 차이와 다름은 불가피하다. 차이에 대한 공감의 간격이 늘어나고, 그곳에 증오와 혐오가 차오르는 순간, 차이와 차별에 대한 오독은 언제고 일어난다.

 그 순간 재특회는 우리 곁에, 우리 속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재특회의 공격 대상은 스스로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이 르포가 의미가 있다. 현상에 그치지 않고 나를, 너를 돌아보고, 공감하고, 조심하고, 더 나은 시대를 만들기 위해 고민할 수 있기 때문에. 나 역시 언제고 같은 위험에 처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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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대의 경제 사기극, 세대 전쟁-박종훈]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 Memento 2017-06-29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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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지상 최대의 경제 사기극, 세대전쟁

박종훈 저
21세기북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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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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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익히 아는 국가 간의 물리적 충돌도 끝없었지만, 나이, 인종, 성별 등에 따른 비 물리적 충돌 역시 멈춘 적이 없다. 고로 세대갈등, 나아가 세대전쟁은 비단 오늘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저자는 지금 이 시기 우리에게 위험하다고 말한다.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고. 책은 2013년에 출간되었다. 그리고 2017년 새 대통령의 시정연설에서 “일자리와 양극화는 재난수준”이라고 말했는데, 4년이 지난 지금, 4년이란 시간 동안 얼마나 바뀌었을까.

 전쟁이 급박하다 하여 사관생도를 총알받이로 전선에 내보내지는 않는다.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전쟁은 이미 패배한 전쟁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설사 그렇게 하여 어렵사리 승리를 따낸다 하더라도 그것을 “승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저자가 말한 현재의 위기는 여기서 기인한다. “미래(세대)”를 담보로 하는 것. 노인빈곤층, 청년실업 그 어느 것도 놓고 갈 수 없는 상황에서 “미래”를 담보로 계속해서 버티다가는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경고다.

『절망의 나라 행복한 젊은이들(후루이치 노리토시)』에서는 일본의 ‘사토리 세대’에 대해 이야기 한다. 포기하면 편해~ 라는 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회현상인데, 이 세대 특징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기에 오늘을 만족하고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다. 일면 달관의 경지에 오른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내수시장붕괴, 경기침체 등 국가적 위기에 이를 수 있는 사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3포 세대를 넘어 N포 세대, 그리고 욜로족으로 대표되는 현상은 일본보다 심하면 심했지 절대 덜할 수 없다. 저자의 표현대로 귀중한 시간을 낭비한 덕에 젊은이들은 결혼과 출산을 포기(파업)한다. 이 고통, 희망 없는 노예의 삶은 내 세대에서 끝낸다는 생각으로 욜로(Your Only Live Once)할 뿐이다. 젊은이들이 게을러서? 배가 불러서? 약해서? 아니다.

한국의 청년들이 3D 업종을 기피한다는 주장은 모함에 불과하다. 자신의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직업이라면, 적어도 안정적인 미래의 삶을 보장해줄 수 있는 직장이라면, 아무리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일이라 해도 청년들은 그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p.344)

 이 시대는 더 이상 미래 세대에게 동기부여를 해주지 못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고, 앞으로도 기대할 수 없다.(물론 소수를 제외한 모든 세대가 비극으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재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미래세대의 역습에 기성세대 역시 안전하지 못하다. 애국심이나 장유유서, 기존의 질서들은 더 이상 그들을 붙들지 못한다. 『절망의 나라 행복한 젊은이들』의 저자의 말 처럼, "붕괴하는 일본?" 그게 어떻다는 건가." 나의 미래가 없다면 다른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일까.

 새 정부, 새 시대, 새 정치에 바라는 것,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나 역시 에코붐 세대의 언저리에 있는 사람으로 "한국이 망한다고? 그래서 뭐."라는 마음이 커지는 요즘 고민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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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에서는 개별기업의 합리적인 단기이윤 추구가 미래경제 전체의 부를 파괴하는, 매우 장기적이고 거대한 외부효과가 일어나고 있다.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서는 이 외부효과를 줄여야 하지만 시장은 이것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만약 어떤 기업이 홀로 단기이윤 추구에서 벗어나 경제 전체의 해를 끼치는 외부효과를 줄이려고 시도한다면, 그 기업만 이윤이 줄어들어 시장에서 퇴출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정부가 직접 시장에 개입해 대대적인 시장 개혁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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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소속과 이름, 보편과 특수 | Memento 2017-06-27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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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저
민음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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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자꾸 안 되게 만드니까 이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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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보통 사람을 소개하거나 자신을 소개할 때 소속과 이름을 밝힌다. 이것이 개인의 정체성, 즉 나의 특수성을 알리는 가장 기본적인 양식이다. 대부분 소속과 이름 이외에 부가적인 것들이 추가된다. 누구의 자식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이것도 소속으로 볼 수 있지만)

 그런 면에서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제목은 두 가지 특수한 의미를 보인다.

 “82년생이라는 것은 특정 세대에 속한다는 것으로 소속이라는 보편성을 의미한다. 개인의 소속은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생년(나이)을 통해 한 개인의 위치를 특정 한다. 젊은이 인지, 어르신인지. 학생인지, 경제적으로 독립할 시기의 사람인지, 기혼인지 미혼인지. 그리고 나보다 위(강자)인지 아니면 상대적으로 아래(약자)인지를 순식간에 파악한다. (물론 대부분이 예상이나 짐작이다.) 이를 통해 사회, 문화적으로 응당 가져야 할 책임과 의무를 상정하고 사람을 대한다.

 반대로 김지영이라는 이름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라는 특수성을 표현한다. 우선 이름을 통해 성별을 유추할 수 있으며 (물론 이 역시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 직감적으로 이름을 듣고 남녀를 구분하려 시도한다.) 그 사람이 어느 정도의 특성을 가졌는지(지금은 본관이나 출신, 항렬 등의 개념이 많이 퇴색했기 때문에 거의 의미가 없기는 하지만)를 대강이나마 알 수 있다. 더불어 이름은 개인을 구별하고 식별하는데 중요한 요소다. 다만 이 소설에서는 지영이라는 이름이 당시 출생자에게는 흔한, 그리고 지금도 자주 볼 수 있는 이름이고, “이라는 성 역시 가장 많은 성이라는 측면에서 한 개인을 나타내는 특수성과 함께 보편성을 보인다.

 결국 작가는 제목을 통해서 우리는 소설의 내용을 말하고 있다.

 “82년생소설 속 김지영이라는 특수 사례를 통해서 현 세대의 주축인 30대 중반의 여성이라는 보편적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데이터, 수치라는 속에서 사라진 개인을 소설이라는 있을 법한 이야기를 통해 복원한 점이 흥미로웠다.

 다만 내가 남자이기에, 또는 내가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니면 내가 부족하기 때문에 동의하지 못하는 몇몇 지점들이 있다. 특히 약자이거나 사회적인 문제에 따른 보편적인 문제를 여성들만 당하는 문제로 표현된 부분(혹은 그렇게 오해할 수 있는 부분)에 아쉽다.

 이를테면 숟가락 놓기와 같은 자잘한 일부터 요즘 무엇을 하는게 그렇게 힘드냐 예전에 비하면 별거 아니다라는 것은 단순히 여성이기에 겪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약자라면 혹은 세대 갈등이 겪는 지점에서라면 언제든지 등장하는 문제이고, “여성만이 겪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서다. 단정짓기 어려운 점은 여성이기에 상대적으로 더 겪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물론 여성분들의 고유한 경험을 나는 겪을 수 없기에 공감하거나 적극적으로 연대하지 못함에 나 스스로도 입장을 정리하기가 어렵다. 소설 속 표현대로 일상에서 대체로 합리적이고 멀쩡한 태도를 유지하는 남자도, 심지어 자신이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여성에 대해서도, 저렇게 막말을(p.107~108)”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 간극을 메꾸려고 하지만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것만 같아 스스로도 두렵다. 그렇기에 소설 속 한 인물의 외침처럼 여자를 자꾸 안 되게 만 (p.113)”들지 않도록 나를 다잡는 것으로, “‘괴물까지는 아닌자신이 좋은 남자라고 착각(그 남자들은 왜 이상해졌을까 p.188)하고 있지 않기로 스스로를 다잡는다.

 더불어 소설에서 지적한 문제점에 대한 제기는 훌륭하지만, 씁쓸한 마무리만큼이나 대안이 없다는 점 역시 아쉽다. 짧은 소설이 사회전반의 문제를, 어쩌면 오랜 역사적 갈등을 해결할 수 없겠지만. 내가 괜히 사족을 바란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공감의 지점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당연시 했던 남자들의 세계에 진지하게 문제제기를 한 것은 확실하다. 특히 남편이 도와겠다는 부분. 나 역시 남발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해 본다. 어떻게 보면 도움은 주고받는 것이다. 대등한 관계에서의 도움도 있지만, 사실 많은 부분에서 강자와 약자를 전제로 시혜와 수혜의 관계가 형성되기 싶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도움이 아니라 공존을 전재로 한 함께 하자는 형식으로 가야하겠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건설적일까. 고민스럽다. 너무 두서 없이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시고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오찬호 저>를 읽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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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는 여자를 자꾸 안 되게 만드니까 이러는 거라고 대답했다. (p.113)

서운함은 냉장고 위나 욕실 선반 위, 두 눈으로 뻔히 보면서도 계속 무심히 내버려두게 되는 먼지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두 사람 사이에 쌓여 갔다. (p.142)

미안하기만 할 아이를, 키우지도 못할 아이를, 왜 낳으려고 하고 있을까. (p.161)

어쩌면 자신이 여자 후배들의 권리를 빼앗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어진 권리와 혜택을 잘 챙기면 날로 먹는 사람이 되고, 날로 먹지 않으려 악착같이 일하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동료들을 힘들게 만드는 딜레마. (p.166)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일하는 게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듯,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는 것도 일에 열정이 없어서가 아니다. (p.174)

가정이 있고 부모가 있다는 건, 그런 짓을 용서해 줄 이유가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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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강수돌 등저]“아, 밥벌이의 지겨움!” | Memento 2017-06-23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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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

강수돌 등저/노동시간센터 기획
코난북스 | 2016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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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밥벌이의 지겨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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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 한 단어로 말하자면 때문이다. 먹고살기 위한 자원을 획득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은 숭고하다. 자본을 가지지 못한 노동자가 자원을 획득할 유일한 수단은 본인의 몸과 시간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집보다 일터에서, 갖은 모욕과 좌절을 감내하며, 삶을 이어간다.

그러나 현실에서 밥벌이는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위치일까. 김훈은 <1>이라는 수필에서 이렇게 외쳤다.

, 밥벌이의 지겨움!”

자본과 노동, 착취적 구조 같은 어려운 말은 잘 알지도 못하고 글로 풀지도 못하겠다. 다만, 그것은 생을 이어가기 위한 지루한 반복이라는 것은 알겠다. 우리 생에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우리에게는 지겨울 뿐이다.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 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저리나는 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밥벌이는 지겨움을 넘어선다. 특히 최장시간의 노동시간, 착취적이고 불공정한 노사관계 속에서 지겨움을 사치를 넘어 배부른 소리다. 이것을 벌기 위하여 이것을 넘길 수가 없도록 몸을 부려야만 하는 것이 우리내의 현실이다. 우리의 노동은 숭고함, 지겨움을 넘어서 치열한 전쟁과 같다. 현실은 그런 지겹다는 숭고하다는 느낌을 갖기조차 쉽지 않다. 그렇기에 밥벌이에는 대책없다.” 생을 위해서는 또 다시 무서운 현실의 일터로 가야만 한다. 지속해야 한다. 버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밥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바로 장미. <런던 프라이드> 영화 속에서 울려 퍼진 브레드 앤 로즈(Bread and Roses)’ 노랫말처럼 우리는 빵을 위해서도 싸우지만, 장미를 위해서도 싸워야 한다. 이 책은 그 장미를, 혹은 장미를 키울 시간을 모색하기 위한 고민을 담았다. 우리는 밥만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알지만 아직도 밥만을 바라보고 있다. 근면, 성실, 근성, 헝그리정신, 배부른 소리한다. . 얼마나 밥과 관련한 말들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우리는 왜 노동을 하는지, 이 시간을 왜 버티고 있는지, 장미에 대하여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추천한다. 대책 없는 밥벌이를 해야 하는 우리들의 삶에서 우리가 싸워야할 방향을 보여주기 때문에.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기울임된 부분은 김훈라면을 끓이며수필집에 수록된 <1>의 수필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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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의 정치학-조기숙]방관자의 각성이 필요한 시기. | Memento 2017-06-22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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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왕따의 정치학

조기숙 저
위즈덤하우스 | 2017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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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관자의 각성이 필요한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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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왕따의 기억.

(피해자) 중학교, 집안 사정상 시골에서 도시로 이사를 갔다. 1년이 지난 후 깨달았지만, 난 내부적으로 문제아 대상으로 찍혀 있었다. 학기 중에 그것도 아무 연고 없는 곳으로 이사를 왔으니. 문제아 전담 선생님(?) 반에 배치를 받았고, 반에서도 자리는 창가 쪽에 특별(?)좌석으로 앉았다. 시골에서 왔다고 선생님들이 무시했다. 시골에서는 석차가 좋더니 이런 것도 모르냐고 무안을 주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당연히 친구들도 무시를 했다. 학생 때면(?) 매우 중요한 서열화를 위한 싸움도 많았다. (일방적으로 맞았지만) 다만, 2학기 중간고사 이후 이런 것은 없어졌다.

(가해자) 고등학교. 한 친구가 매우 특이했다. 선입견 없이 보려했으나, 친해지고 싶은 친구는 아니었다. 짐작컨대, 중학교 시절부터 그랬던 것 같다. 같은 중학교였던 친구들이 더 심했다. 나는 바라보고 웃기만 했다. 나름 물어보는 문제도 도와주고 하려고 했지만, 대체로 무심하려 했다. 그러나 같은 교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에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다만 지켜보려만 했다. 너무 심하지 않다면. 그러나 분명 심한 일도 많았고, 나도 많이 웃었고, 미안하다.

 

2. 정치에서의 왕따.

노무현 왕따는 그의 대통령 임기가 시작되면서 본격화되었다. 국민들은 비만 와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만 해도 노무현 때문이라고 했다. 노무현 때리기는 이른바 국민 스포츠가 되었다. p.45”

한 때 포털사이트의 베댓은 모두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였다. 저자의 표현대로 조롱이 오락으로까지 승화(?)되었다. ‘민주정치는 여론정치’ (p.93)라고 한다면, 분명히 참여정부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말일까. 어째서 여론을 이끌지 못했을까. 저자는 이것이 왕따현상에 기인한 것으로 본다. 왕따의 경험상, 실제 학술적으로도, 피해자, 가해자, 방관자(동조자)가 없다면 발생할 수 없다. 피해자 혼자서만 절대로 왕따 현상은 존재 할 수 없다.

저자는 우리나라 정치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있다고 진단한다. 노무현-문재인(피해자)/기존 정치세력, 언론 등(가해자)/시민들(방관, 동조자)의 구조 속에서 철저하게 배재 당했다고 아니 공격당했다고 사례, 데이터, 연구 등을 들어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3. 왜곡된 구조

그렇다면 무엇이 이런 현상을 만들었을까.

신영복 선생님의 <변방을 찾아서>라는 책을 통해 새로운 역사는 언제나 변방에서 시작한다. 변화, 소통, 소수의 변방중심을 대체하는 흐름에서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진다. 그렇기에 변방 의식, 변방성을 통해서 더 나은 사회, 좀 더 발전한 역사를 만들어낼 구심점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변방에 대한 차별이 심하다. 지역과 학벌, 세대와 인종, 성별과 성적취향이라는 차이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나누고 다투고 분할하고 차별한다. 변방의 소리가 중앙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정치는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고, 여론은 언론에 의해 주도되고, 많은 사람들은 먹고사니즘에 따라 차별을 내면화 한다. 우리 사회에서 변방은 언제나 숨죽여 있다. 그렇기에 사회의 역동성을 부여할 변방이 주변으로만 머무를 뿐, 건전한 발전의 장이 되지 못하고 있다.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차별의 근거로만 판단하게 만드는 다양한 구조가 잘못된 것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는 큰 흐름에서 이뤄낸 부분은 많지만, 아직은 변방과 중심의 교체가 원활하지 않다. 오히려 변방을 죄악시 하는지도 모르겠다.

 

4. 방관자의 각성.

다만, 저자의 말에 심히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허지웅 씨에 대하여 시민징계리스트에 올려 사과를 요구하는 대목이다. 예전에 말했던 일종의 낙선운동과 같다고 이해하면 될까. 그러나 이것 역시 엄연한 차별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의미의 왕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물론 저자가 의도한 바는 알겠지만, 잘못하면 새로운 왕따를 만드는 길이 아닐까.

왕따 가해자에게 왜 그랬어 라고 물어본다면, 친구끼리 장난으로 그랬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그렇기에 가해자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면이 크다. 그렇다고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요구를 수용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은 방관자(동조자)들이 각성하는 길이 현실적인 해법이 아닐까 싶다.

왕따의 현실을 기억하고, 새로운 왕따를 만들지 않고, 변방을 기억하고, 역사의 흐름을 되돌릴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 방관자들의 각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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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은 특정 집단을 국민으로부터 배제하는 비이성적인 선동이다. p.50

왕따 현상 자체가 포퓰리즘이다. p.108

친노는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도 묻지 않는다. 지금 국민을 위해 무슨 일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만큼 친노는 포용적이고 확장력이 있다. p.115

친노는 원래 가신 집단이 아니라 가치를 같이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렇다면 나는 친노가 맞다.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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