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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다가 내내 늙어가도 좋다! | 기본 카테고리 2020-02-0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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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

박홍규,박지원 저
사이드웨이 | 2019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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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는 노학자 박홍규 선생과 젊은 출판인 박지원씨와의 대담집이다. 2018년 겨울부터 2019년 여름까지 경북 경산의 영남대 도서관과 박홍규 선생의 자택에서 열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대담진행자 박지원씨는 자신의 부친과 나이가 같은 박홍규 선생과의 대화에서, 자기 한계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자기 허물을 내보이는 데 거리낌이 없는 사람을 보았다. 그래서 마음깊이 존경스러웠다고 말한다. 미화하고 예찬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리뷰에서 나는, 이 책을 읽고 싶었던 부끄러운 이유와 읽는 동안 심장 두근거리게 기쁜 마음이었음을 고백하려고 한다. 몇 년 전, 신문의 책 소개코너에서 <니체는 틀렸다>라는 책을 펴낸 박홍규 선생에 대한 글을 읽고 급 관심을 가졌다. 당시 독서모임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는 중이었는데 당최 뭔 소리인지 모르겠어서 이리저리 니체 관련한 정보를 검색하던 중 발견하고 깜짝 놀랐던 것이다. 니체에 관한 대부분의 글에서 니체는, 거의 신과 같은 절대적인 존재였는데 이 분은 니체를 틀렸다고 하다니? 그래서 그 책을 사보았을까? 아니다. 책 소개만 읽고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 신기한 것이 그렇게 알게 된 박홍규라는 이름은 어디서든지 내 눈에 들어왔다. 그분이 저술한 책이 150여권이 넘는다하니 책 관련 정보의 바다에서 놀면서 자주 마주치는 건 당연한 일일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관심가지고 자주 마주쳤음에도 박홍규 선생의 책을 한 권도 제대로 읽어본 적 없으니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예스24 리뷰어클럽의 이벤트에 당첨되어 무료로 이 책을 받아 미안한 마음으로 읽었다. 읽으면서 나는, 반가워 손뼉 치다가 고개 끄덕이다가 가슴이 두근두근거리다가 저혼자 난리였다. 그 분이 직접 쓴 책들을 읽기 전에 이렇게 대담집으로 그의 삶과 사상을 미리 만나게 된 것을 예습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그 분의 책을 하나하나 읽어볼 것이며 책에서 배운대로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안에서만도 추천받은 책이 한 두권이 아니다.

 

이 대담집의 키워드는 독서, 고독, 사회, 인간으로 나누어 박홍규 선생의 저술을 토대로 그의 사상을 풀어나가고 있다. 대담자 박지원씨의 질문이 심도 깊고 날카로워 주고받는 대화가 단순 인터뷰라고만은 할 수 없다. 그만큼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고 대화에 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박지원씨도 <아이돌을 인문하다><산책하는 마음>이라는 책을 낸 작가이자 이 책을 출간한 사이드웨이라는 출판사 대표이다.

 

책의 부제 무리 짓지 않는 삶의 아름다움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라는 제목은 법학자 박홍규의 삶을 정의내리는 말로 적합하며 책의 곳곳에서 그것의 증거를 발견할 수 있었고 그것이 더없이 반가웠다. 저자에 대한 아무 정보없이 책 표지의 텍스트만 본다면, 책만 읽는 외곬수 노인의 꼰대같은 소리만 있는게 아닐까 싶어 아예 읽어볼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이 치명적 부담이라면 부담이겠으나 두 대담자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고 책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읽어볼 것이다.

 

박홍규 선생은 경북 구미에서 태어나 평생을 TK지역에서 교수라는 직함으로 살면서도 탈권위적이고 진보적인 사고방식을 직접 실천하면서 살고 있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인간이 얼마나 태어난 지역과 양육자의 태도에 영향을 많이 받는 존재인가. 부친이 몹시도 권위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였음에도 그는 물들기보다 완강하게 거부했다. 단적인 예로 제사지내는 것에 대한 생각이다. 그는 40대 때부터 제사에 대해 비판적 문제제기를 많이 해왔으나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집안의 제사를 없애지 못했다고 한다. 본인 한 명만이 그것을 주장했으며 부친이 돌아가신 후 모친이 제사를 없애기는커녕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제사를 지내는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경북지역에서 제사를 안 지낸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인 것이다.

 

p.154~155

제가 이제 내일모레 70인 나이인데요, 도대체 제사란 게 무엇이냐 하는 의문은 끊이질 않네요. 명절 자체에 대해선, 뭐 그런 전통이 있을 수도 있다고 봐요. 왜 이 나라 국민이 정해진 날짜에 그 고통스러운 교통 체증을 뚫고 움직여야 하는지는 의문이지만요.

각자의 집안에서, 각각의 가정에서, 날씨 좋은 봄날이나 가을날, 혹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나 두 분의 생신, 그런 날을 골라서 1년에 두세 번씩 가족들이 모이는 방식이 좋지 않나 싶어요. 또 그러한 가족들의 만남에 대해서 제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다만 살아있는 구성원들이 자유롭고 편하게 어울릴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죠.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정말 깜짝 놀랐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과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말이다. 나는 맏며느리도 아니고 제사나 명절 스트레스가 심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낯모르는 남편의 조부나 증조부를 기리기 위해 전을 굽고 있어야만 하는 상황이 도대체 납득이 되질 않았다. 남편은 나의 할아버지 기일도 모르며 그날 전을 굽기는커녕 한 번도 제사에 참석해 본 적도 없다. 이런 불합리한 일을 지속해야 한다는 생각에 답답한 마음이었지만 나름의 해결방안을 찾은 것이 바로 선생과 비슷한 생각이었다. 나는 아들만 둘이라서 그 아이들에게 중학교 때부터 미리미리 얘기해 두었다.

명절에 꼭 우리 집으로 올 필요는 없다. 길 막히지 않고 조용할 때 만나도 되며 우리 제사도 지낼 필요 없다. 기일이나 생일에 만나 우리를 기억해주면 된다. 분명 자주 만나지 못할 형제간에 그렇게라도 만나 부모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좋은 시간을 보내기 바란다

고 일러두었다. 형식을 지키려고 스트레스 받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일인가. 부모를 기억하는 날에 서로 기분 언짢아지는 것보다 반갑고 즐거운 마음으로 만나 시간 보내는 것이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제사나 명절문제가 그렇듯, 유교적 가족주의의 영향과 잣대가 강력하게 남아있는 한국사회에서는 고독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이고 소극적으로 개념화되어있다고 박홍규 선생은 지적한다. 우리는 좀 더 능동적으로 고독해질 수 있어야 한다고. 개인의 결혼여부를 집안에서 압박하는 그런 분위기를 벗어나 홀로든 아니든 다양한 삶의 방식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일이 지금보다 훨씬 존중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와 연결해 고독에 있어 친구관계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도 또 놀랐다. 거의 놀람의 연속이었지만...

 

p.198~200

우리 사회가 관계를 중시한다고 하는데 이것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여러 관계 중에서도 친구라고 하는 개념은 가족과 거의 비슷한 수준에서 찬양되고 있지 않아요? 그런데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쳐서 만들어진 급우나 모임 관련 친구들은 자기가 살아온 사회 속에서 나의 주체적인 결정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내가 주체적으로 결정하기 이전에, 어떤 객체화된 사회 단위 구조 속에서의 인간관계일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환경에서 만들어진 인간관계라는 것이죠.

그런 친구라는 개념은 동시에 어떤 상상 속의 인간관계이기가 쉬워요. 이미 주어진 환경 속에서, 즉 자기가 살아온 가치관이 스며들어 있는 학교나 동네 같은 단위 사회속에서 암묵적으로 결정된 가치관을 함께하기 때문에 친구이고, 거기서 벗어나게 되면 따돌림을 당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난단 말이에요. 그런 관계의 구조에선 우리와 조금만 다르거나 우리의 심기를 거스르면 바로 투명인간처럼 만들어버리기도 쉬운 것 아니겠습니까?

친구나 조직 내의 인간관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인간관계가 우리 삶을 규정하는 여러 요인 중 하나이긴 하지만, 그것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사실은 자기만의 주체적인 가치관에 대한 고민, 새로운 삶의 양식 같은 것을 추구하는 일에 경우에 따라선 방해가 되기도 쉽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창회 같은 모임에도 일절 나가지 않는다는 그는 혈연, 지연, 학연으로 연결된 관계를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고독은 자발적으로 고독을 선택했다' 고 말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인간관계에서 고독은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을지 모르나 현대사회에서 또 다른 수렁은 SNS. 선생은 기계로서 스마트폰의 긍정성은 인정하지만 그것에 쏠리고 획일화되는 현상은 우리사회의 집중화 현상과 궤를 같이한다고 말한다. 수도권 집중, 중앙정치 집중, 엘리트 집중처럼 모두가 SNS에 집중하고 있는 현상 역시 획일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패거리 문화를 끔찍이 싫어하는 선생으로서는 이 기술문명이 또 다른 패거리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우려한다. 획일적인 집중화에서 멀어진 변방의 삶, 주변의 삶이 충분히 주목받고 존중받아야, 각자의 공간을 존중해 주어야, 진정한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유지되는 것이라고 설파한다. 우리나라가 전체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발걸음이 너무나 더디며, 저마다의 색깔이 다 다른 개인의 모습 하나하나가 존중받는 사회가 되어야 함을 또 깨달은 시간이었다.

 

우리 사회문제 중에서 교과서 문제와 대학교수들을 비판한 부분을 읽으면서는 교육 공무원이나 지식인들이 이 책을 꼭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선생은 교과서의 획일성과 대학교수들의 폐쇄성을 지적했는데 아마 그들이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도 비판적이고 유연한 때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들의 지식이 가장 옳고 그들의 철옹성을 수성하는 것만이 목적이 된 게 아닐까 싶다. 그러한 사고에서 탈피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렇게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이 극소수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외 페미니즘이나 성에 관한 문제를 논하는 부분에서는 우리사회에 엄연히 살아있는 근엄주의, 성에 대한 이중적 잣대를 지적하는 부분을 읽으며 역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교내에서 과도한 애정표현을 하는 학생들을 이전보다 훨씬 자주 목도하게 되는데 그러한 문화가 우리 사회 성 인식의 긍정적 변화로 볼 수만은 없다는 지적이었다. 남녀평등이 실현된 것처럼 외치지만, 교육기회에 비해 현실에서는 차별이 엄연히 존재한다. 내가 느끼는 우리 사회의 가장 이중적 태도는, 자본주의와 결탁한 노골적 성상품화를 아닌 척 하는 것이다. 성매매에 대한 선생의 의견은 자못 논쟁적인데 한쪽으로만 경도된 사고로 접한다면 몹시 비판받을 법한 내용이기도 하다.

 

책의 앞부분에서 다룬 독서에 대한 부분을 마지막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나는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편인데 그래서 늘 혼자 책과 지낸다. 책에 대한 것을, 내가 읽은 것을 가지고 이야기 나눌만한 대상이 없기에 독후에 충만함을 완성해 보고자 리뷰를 쓰기도 하고, 독서모임에도 참여해 보지만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다. 그런데 선생은 독서에 대해 아주 본질적인 부분을 지적한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즐거움, 마치 두 대담자 사이에 나도 끼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한 느낌, 이런 것이 독서의 즐거움일텐데. 나는 내 옆에 있는 파랑새를 찾으러 멀리 떠난 아이들처럼 책 자체의 즐거움을 몰라보고 자꾸 바깥으로 시선을 돌린 꼴이었다. 책 자체의 즐거움 외에 뭔가 더 있을 것이라며 두리번거렸다.

 

인생 책이 무엇인지에 대해 사람들이 자꾸 묻는 것에 대한 선생의 답변이 아래와 같았는데 내 입장에서는 독서의 본질에 대한 답변으로 들렸다.

 

p.79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즐거워야 해요. 저 자신에게도 그랬습니다. 저는 어떤 경우든지 간에, 어떤 책이든 간에 읽는다는 것이 그 자체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런 습관과 감수성이 쌓인다면, 사람들은 저마다 이 세상에 얼마나 좋은 책들이 많은지 발견해나갈 수 있겠죠. 그 모든 책이 그것을 읽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줄 수 있는 책들일 겁니다. 제게도 그랬고 말이죠.

 

선생의 생각을 내 맘대로 오독하는 것일수도 있겠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크게 받아들이고 싶은 부분도 있는 거니까. 앞으로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재미있게 읽는 그 하나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내내 읽다가 늙어가도 그저 감사할 수 있겠다.

 

이 책에서 다루는 분야는 크게 네 가지였지만 내게는 박홍규 선생의 주장 하나가 크게 읽혔다.

 

세계에 존재하는 인간적인 모든 사건에 대해서 항상 관심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나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열린 시야를 가지라

 

 

이는 젊은이들에게 당부하는 말이라고 했지만, 늘 세상에 대해 새로운 것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는 태도야말로 늙지 않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관심을 놓지 않고 독서의 즐거움을 누리며 사는 것,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 내 삶에 만족한다. 이 책은 그렇게 살고 있으면서도 거창한 무언가를 계속 찾아다니던 나를 제자리에 앉게 해주었다. 이제 편안하게 앉아 골라둔 박홍규 선생의 저작들을 읽을 차례다.

 

 

** 위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에서 책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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