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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농법 | 기본 카테고리 2020-06-13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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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자연농법

후쿠오카 마사노부 저/최성현 역
정신세계사 | 2018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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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농법은 인지와 인위를 버리고 무위의 자연에 맡기는 농법이자, 신이 농사를 짓고 사람은 그 시중을 들 뿐인 신의 농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간의 작은 지식 위에서 이루어지는 과학농법에서 완전히 방향을 바꾸어, 신의 지구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 자연농법이다. 자연농법은 지구가 황폐해져 가는 것을 막고, 지상을 다시 녹색으로 풍부한 낙토, 곧 도원경으로 바꾸고 싶다는 커다란 꿈을 갖고 있다. 이 자연농법이 한국인에게 가장 알맞은 선인농법이다.

 

자연농법은 아주 간단명료하다. 가을에 벼를 베기 전에, 벼이삭 위로 클로버 씨앗과 보리 씨앗을 흩뿌려둔다. 싹이 터서 수 센티로 자란 보리를 밟으며 벼 베기를 하고, 사흘가량 말린 뒤 탈콕을 한다. 이때 나오는 볏짚은 모두 그대로 논에 뿌려놓고, 닭똥이 있으면 그 위에 뿌려놓는다. 그 뒤 1월이 되기 전에, 흩뿌려놓은 짚 위에 볍씨를 넣은 진흙경단을 뿌려놓기만 하면 된다. 이것으로 보리와 볍씨 뿌리기가 모두 끝나며, 보리를 벨 때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된다. 수확할 때를 빼면 300평당 1인 또는 2인의 일손이면 충분하다. 520일쯤 보리를 벨 때는 발 아래에 클로버가 무성하고, 그 속에 있는 진흙경단 속에서 볍씨가 수 센티 싹을 틔우고 있다. 보리를 베고 말린 뒤 탈곡을 하고, 그때 생긴 보릿짚은 전량을 그대로 논에 뿌려놓는다. 물이 새지 않도록 논두렁을 손보고, 나흘이나 닷새 동안 물을 대주면, 클로버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볍씨가 싹트게 된다. 볍씨가 발아되면 6월과 7월 동안에는 물을 대지 않은 채 그냥 두었다가, 8월이 된 뒤 1주일이나 열흘에 한 번씩 대었다 때면 된다. 이상이 클로버와 함께하는, -보리 혼파에 연속 무경운 직파 재배라 하는 자연농법의 벼-보리 농사의 개요다.

 

도시 사람은 죽어가고 있다. 밝은 햇빛, 푸르른 전원, 동식물, 시원한 산들바람 등 자연생활이 주는 쾌감을 잊어버렸다. 인간이 정말 잘 살 수 있는 것은 자연과 함께할 때이다. 무의 철학으로부터 나와 무위의 자연으로 돌아가는 근본회귀 농법이 바로 자연농법이다. 과학이나 유물변증법적인 사고에 의해서는 해결하지 못하는 현대의 문제를, 자연농법 체험으로 해결하려는 큰 꿈을 꾸고 있는 이들이 바로 산 오두막에서 전기가 없는 원시생활을 하고 있는 젊은이들이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반면에 모든 것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자연농법'이란 사람의 힘이나 지혜를 더하지 않은, 주어진 그래도의 자연에 몰입하여 자연과 함께 건강하게 살아가려는 농법이다. 어디까지나 자연이 주제로서, 자연이 농작물을 기르고, 인간은 그것에 봉사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자연농법'은 무위자연의 근원(절대자)으로 돌아간다는 궁극의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는, 구심적 농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최종적으로는, 인간이 자연의 이치와 조화, 질서의 세계 속에서 사는, 즉 참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자연농법'은 자연의 도, 무지, 무위의 길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가 출발점이고 결론이고 수단도 된다. 즉 편하고 즐거운 농부의 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뿐더러 전혀 인위적인 것이 없는 달마 농법이기 때문에, 땅을 갈지 않고(무경운), 비료를 안 주며(무비료), 농약을 안치고(무농약), 잡초를 뽑지 않는 것(무제초)4대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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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자연농법 | 한줄평 2020-06-13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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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농사는 자연이 짓고, 농부는 그 시중을 들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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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면서 만들어진다 | 기본 카테고리 2020-06-13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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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걷기의 인문학

리베카 솔닛 저/김정아 역
반비 | 2017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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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힘들었던 10년 전 이 길을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 불안이 떨쳐질까 해서였다. 그 후로도 나는 자꾸 이 길로 돌아왔다. 인간의 의도적 행위 중에 육체의 무의지적 리듬(숨을 쉬는 것, 심장이 뛰는 것)에 가장 가까운 것이 보행이다. 보행은 일하는 것과 일하지 않는 것, 그저 존재하는 것과 뭔가를 해내는 것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다. 생각과 경험과 도착 이외에도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육체노동이라고 할까. 수년간 걷기를 다른 일의 수단으로 삼아왔던 내가 걷기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을 하게 되었다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에베레스트 산 초기 등반자 둥 하나였던 존 노엘(John Noel) 대장이 기록해놓은 티베트의 한 순례 방식은 그것보다도 훨씬 힘들다. "이 경건하고 순박한 사람들은 때로 중국과 몽골에서부터 찾아온다. 300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몸으로 재는 방식, 바닥에 완전히 엎드린 상태로 손라락으로 머리 위쪽에 표시를 하고, 몸을 일으켜 표시된 자리에 발가락을 갖다놓고, 다시 바닥에 얼굴을 대고 양팔을 뻗으면서 이미 100만 번은 읊조렸을 기도문을 다시 한 번 읊조린다.

 

"순례자가 걷기 시작하는 순간 세계를 느끼는 방식 몇 가지가 한꺼번에 변하는데, 그 변화는 여정 내내 이어진다. 시간 감각이 바뀌고, 오감이 예민해지고, 자기 몸과 자기 몸을 둘러싼 자연경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긴다. 그것을 한 독일 청년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기도 했다. '걷는 경험 속에서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사유가 된다. 자신으로부터 도피하기란 불가능하다'" 순례길에 나선다는 것은 가족 관계, 애착 관계, 지위, 의무와 같은 자신의 복잡한 세속적 자리를 뒤로하고 일개 순례자로 걸어간다는 뜻이다. 순례자들 사이에는 서열이 없다. 은총과 헌신의 서열이 있을 뿐이다. 터너 부부는 순례를 경계선 상태(Liminality)라 말한다. 과거 정체성과 미래 정체성 사이의 경계선에 놓인 상태, 따라서 기성 질서 밖에 있는 상태이자 가능성의 상태이다.

 

그 뒤로 28년 동안 온갖 날씨 속을 걸으면서 미국 모든 주와 캐나다 모든 도와 멕시코 일부를 지났다. 순례를 시작할 당시에 이미 중년의 나이였던 그녀는 항상 군청색 바지와 셔츠에 테니스화 차림이었다. 그녀는 순례하는 내내 그 간소한 복장으로 분보라와 비바람, 혹독한 모래 폭풍, 뙤약볕에 맞닥뜨리면서 공동묘지나 도떼기시장이나 건물 바닥에서 잤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소파에서 잠을 청한 날도 수없이 많았다. 길을 떠난다는 것, 1953년 첫날의 평화 순례자처럼 입고 있는 옷 한 벌과 주머니이 ", 접는 칫솔, 볼펜, 자기 글, 쓰던 편지"외에는 아무것도 소지하지 않고 길을 떠난다는 것은 가히 놀라운 일이다. 그녀가 화폐 경제에서 이탈한 것은 경제 호황의 시대, 자본주의가 자유의 성체로 모셔지던 시대였다. 그녀는 일평생 돈을 들고 다닌 적도 없었도, 돈을 사용한 적도 없었다. 그녀에게는 물질적 소유라는 것이 없다. "나는 참 자유롭습니다! 떠나고 싶으면 일어서서 걸어 나가면 됩니다. 나를 한자리에 묶어두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걸어갔다. 가끔 누가 차를 태워주면 탔고, 모르는 사람이 집에서 재워주면 잤다. 여관에서 자기도 했고, 헛간에서 자기도 했고, 전시용 이동식 주택에 몰래 들거가 자기도 했다. 걸은 일, 고생, 소소한 만남, 풍경의 파편 등을 띄엄띄엄 적은 이 글에는 그 자체로 헤어초크 영화의 줄거리 같은 정교한 판타지들이 고생스러운 여정 묘사에 섞여 들어가 있다. 길을 나선 지 나흘째 되는 날, "똥을 누고 있었는데 아무 사전 경고 업시 팔 뻗으면 닿을 만한 곳에 산토끼가 나타났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페일 브랜디가 사타구니에서 왼쪽 허벅지로 흘러내려 쓰라리다. 걷는 것은 왜 이토록 비통한 것인가?"

 

믿을 만한 자료를 토대로 계산해 본 결과 워즈워스는 바로 이 다리로 282000~29만 킬로미터를 답파했다. 포도주나 독주 같은 것으로 혈기를 얻는 다름 사람들과 달리 워즈워스는 이렇게 몸을 움직이면서 혈기를 얻었다. 워즈워스 자신이 구름 한 점 없이 행복한 인생을 영위해온 것도, 우리 독자들이 워즈워스의 글 중에서도 아주 탁월한 글들을 읽을 수 있게 된 것도 그 덕분이다." 사람들은 워즈워스 이전에도, 이후에도 걸었다. 다른 낭만주의 시인들 중에서도 걸어서 여행한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워즈워스만큼 걷은 일을 인생과 예술의 중심에 놓은 이는 그 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결코 짧지 않은 인생에서 그가 걷지 않고 보낸 날은 거의 단 하루도 없었던 것 같다. 그에게 보행은 세상과 만나는 방식인 동시에 시를 쓰는 방식이었다. 세상을 떠나기까지 50년 동안은 시를 쓰기 위해 작은 정원 테라스를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 언제자 걸었다. 밤에도 걸었고, 아침에 학교를 가기 전에 한 친구와 함께 근처에 있는 호수를 한 바퀴 돌면서 5~10킬로미터를 걷는 날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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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걷기의 인문학 | 한줄평 2020-06-13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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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사유와 매혹적인 글쓰기는 걸으면서 사유하고, 걸으면서 창조하고, 걸으면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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