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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말 잘하는 사람은 잡담부터 합니다 | 한줄평 2020-06-24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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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말 잘하는 사람은 잡담부터 합니다 | 한줄평 2020-06-24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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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한 위인전을 읽다_함현식 저 | 기본 카테고리 2020-06-24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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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찌질한 위인전

함현식 저
위즈덤하우스 | 2015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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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전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은 위인은 위인의 모습이 아닐지도 모른다. 진솔한 한 인간의 일생을 따라가는데에도 접근하는 관점에 따라서 너무나도 다른 위인전이 나온다는 것에 그저 놀랄 따름이다.

 

자신의 찌질함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것을 인정함으로써 그다음을 바라보게 된 이도 있다. 현실을 직시하고 돌파해나가는 문제는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끊임없이 자신의 찌질함과 맞서 싸우면서 생을 살아간 이도 있다. 그들이 위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우리에게 남긴 어떤 업적이나 작품과 같은 '결과'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 닿기까지의 과정 때문일지 모른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비칠까, 보잘것없는 사람, 괴벽스러운 사람, 비위에 맞지 않는 사람, 사회적 지위도 없고 앞으로도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갖지 못한, 한마디로 최하 중의 최하급 사람그래, 좋다. 설령 그 말이 옳다 해도 언젠가는 내 작품을 통해 그런 기이한 사람, 그런 보잘것없는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여주겠다.' - 빈센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제주도에 와서 이중섭과 그의 아내 남덕은 주인집에서 보리밥을 한 웅큼 얻어 끼니를 해결했고, 양파 밭에서 날품을 팔고, 밭에 버려진 야채나 보리 이삭을 주워 생계를 이어 나갔다. 그마저도 없으면 중섭은 아들을 업고 바닷가로 나가 게를 잡았다. 아내의 위장 질환이 가볍지 않았으나 변변한 약을 쓸 돈도 없어 조개껍데기를 빻은 가루를 먹는 방편으로 궁색하게 치료의 구실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어린아이처럼 천진무구한 이중섭은 분노와 증오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제주도 피난민 시절, 함께 술을 마시던 이가 취해 "이 피난민 새끼"라고 욕을 퍼부어도 그저 소주잔을 따뜻하게 응시하다가 "헤에" 하고 웃고 마는 사람이 이중섭이었다. 그래서 이중섭의 천진함은 오히려 상대를 부끄럽게 만들기도 했다. 중섭이 서울에 기거할 때 하루는 위상학이 자신의 저택에 이중섭을 데리고 와 밤새 술을 마셨는데, 중섭의 빈천한 삶이 아무래도 그를 자극했던 것 같다. 큰 돈을 모으긴 했으나 예술가로서의 죄의식을 늘상 가지고 있었던 위상학은 이중섭과의 술자리가 있은 지 한참이 지난 후이긴 하나 결국 자살하고 만다. 중섭의 간염은 그 병세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깊어져 그해 여름 서대분 적십자병원에 다시 입원한다. 그리고 96, 이중섭은 병실에서 홀로 숨을 거둔다. 그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가 눈을 감고도 3일이 지난 후, 친구 김이석이 이중섭을 찾아왔다가 알게 되면서였다. 병실에서 쓸쓸하게 세상을 떠난 이중섭이 남긴 것은 밀린 병원비 18만 원, 병원비를 반으로 깍아 장례식장에서 모금한 9만 원으로 해결했다고 한다.

 

파인만이 물리학자로서 나름의 뚜렷한 족적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가 기존 지식이 가진 권위에 매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존 지식이 가진 권이에 매몰된다는 것은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이해하지도 못한 채 학습하는 것을 말한다. 파인만은 그러한 태도를 스스로도 용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신에게 물리학을 배우는 학생들에게도 허락하지 않았다. 때문에 파인만은 어린 시절부터 책에 나온 각종 공식들을 그저 문제를 풀어내려고 무작정 외운 적이 없었다고 한다. 특정 현상에 대한 원리를 설명하고 법칙화한 내용을 보더라도 그 자신이 직접 현상을 보면서 이해하거나 스스로 입증해야지만 그것을 받아들였다. 파인만이 다른 사람들보다 늘 한 발 앞서 기존 사고와 원리의 틀을 깨는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 파닝만은 기존 이론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적복적 사고로 물리학은 물로 다른 과학 분야에도 많은 기여를 한 바 있다.

 

허균은 중국을 오갈 때 도자기나 장신구 같은 사치품을 사지 않고 가진 돈 전부를 책을 사는 데에 썼다. 보다 넓은 세상과 학문에 대한 지적 호기심으로 가득 찬 허균은 명에서 돌아올 때 수레에 4천여 권의 장서를 싣고 와서 독서에 탐닉했다. 뛰어난 문장력과 말재주, 방대한 독서량과 암기력을 갖춘 허균은 분명 당대 조선의 천재였다.

 

간디는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위하여 행동할 때에는 그 누구보다 앞장섰으면서도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남기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다. 간디는 부의 축적이라는 개념 자체를 스스로에게 허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생전에 그의 가족들에게도 그서을 허용하지 않았다. 간디가 추구한 대표적인 가치관으로 알려져 있으며 비폭력 저항이라는 의미로 통용되는 '사티아그라하'는 산스크리트어에서 나온 말이다. 산스크리트어로 '사티아'는 진리를 뜻하며 '아그라하'는 노력, 열정을 뜻한다. 따라서 사티아그라하를 뜻 그대로 해석하면 '진리를 찾기 위한 노력'이 된다.

 

위인으로 살고자 해서 위인으로 남은 것은 아니다. 자신이 살고자하는 가치 체계를 갖추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과 열정이 위인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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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찌질한 위인전 | 한줄평 2020-06-24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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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전에 나오는 위인이 아닌 일상에 나오는 위인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접근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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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 자서전 | 기본 카테고리 2020-06-24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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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간디 자서전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 저
파주북 | 2017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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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오늘날도 그때나 마찬가지로 3등 객실은 불결하고 변소 시설도 나쁘다. 3등 객실의 승객들은 양떼처럼 대접을 받고, 그들의 편리는 양의 편리 같은 것이다. 유럽에서도 나는 3등칸으로 여행을 했고 다반 한 번, 어떤 것인가 보려고 1등칸을 탔었는데, 1등칸과 3등칸 사이에 그리 큰 차이가 없었다. 남아프리카에서는 3등칸 승객은 주로 흑인들인데, 그래도 3등칸의 시설이 여기보다는

 

나는 이미 기타를 믿고 있었고, 거기 매혹되어 있었다. 매일 한두 구절을 따로 외우기로 결심을 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아침 목욕시간을 이용하기로 했다. 거기 35분이 드는데 칫솔질에 15분을 쓰고 목욕에 20분을 쓴다. 첫번째 것은 서양식으로 곧추서서 한다. 그래서 맞은편 벽에다 기타의 구절을 쓴 종이를 붙여놓고 그것을 이따금 보면서 외웠다. 이 시간이면 그날 것을 외우고 이미 외운 것을 반복하는 데 충분했다. 그렇게 해서 열세 장을 외웠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기타외우기는 그 외의 다른 일과 사티아그라하는 지금도 그렇지만 내 모든 사색 시간을 다 차지해버렸다. 나에게 기타는 완전한 행동의 지침이 되었다. 이것은 내가 날마다 찾아보는 사전이 되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영어가 있을 때면 영어사전을 찾듯이, 내 모든 난 문제와 시련에 대해 미리 준비되어 있는 해답을 얻기 위해 나는 이 행동의 사전을 찾았다. 아파리그라하(무소유)나 사마바바(한결같음,평등관) 같은 낱말들이 나을 괴롭혔다. 평등한 마음을 어떻게 길러가며 지켜가느냐가 문제였다. 어떻게 하면 모든 소유를 내버릴 수 있을까? 내 몸부터가 훌륭한 소유가 아닌가? 내가 가지고 있는 책장도 다 부숴버려야 하는 것일까? 나는 내가 지닌 모든 것을 내버리고 '그이'를 따라야 하나?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리지 않는 한 나는 '그이'를 따를 수 없다. 무소유나 평등관은 심정의 변화, 태도의 변화가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청천백일같이 내 마음에 명확해졌다.

 

'누가 감히 저 태어난 바탕의 물결을 향해 이만큼만 하고(그 이상도 말고) 말할 수 있을까? 누가 감히 자기가 태어날 때의 인산을 지워버릴 수 있을까? 제 자식들이나 돌봐조는 것들에 대해 자기가 밟아온 진화의 방향을 반드시 따라올 것을 기대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희생과 간소한 생활의 이상이 점점 더 구체화되어가고, 일상생활 속에서 종교적 의식이 점점 더 생기를 띠어감에 따라 채식주의를 하나의 사명으로 알자는 열망이 더욱더 높아지게 되었다. 아무리 개혁을 열심히 하자고 하더라도, 제 역량에 넘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그리고 또 그렇게 말은 돈을 빌려주는 데서 나는 기타의 교훈, 즉 평등관을 가지는 사람의 의무는 결과를 바라는 마음 없이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어긴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생활이 점점 더 간소해짐에 따라 의약을 싫어하는 생각이 더욱 심해졌다. 그 발기인들의 주장대로라면 영국 사람은 너무 자주 너무 많이 먹는다. 밤중이 될 때까지도 먹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에게 주는 돈이 많다. 이러한 꼴을 면하려면 적어도 아침은 안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나는 내가 이때까지 필요 이상으로 먹고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책 속에서 신선한 과일과 견과를 인간의 자연적인 식물로 권하고 있었다. 나는 일생에 두 번 아주 중병을 앓아본 일이 있기는 하지만, 사람이 약을 먹을 필요가 없다고 믿는다. 1천에 999는 음식 조절, , 물 치료, 또는 그와 비슷한 가정요법으로 나올 수 있다. 조금만 아프면 곧 양의요 한의요 하며 의사에게 달려가고 식물성, 동물성의 가지가지 약을 삼키는 사람은 스스로 제 목숨을 단축시킬 뿐 아니라, 몸의 주인 노릇을 못하고 종 노릇을 하는 동안에 자제하는 힘을 잃어서 사람 노릇을 못하게 되고 만다.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쓴 것이라고 해서 이런 생각들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내가 왜 앓았느니 그 이유는 내가 안다. 그 병들의 책임이 오직 내게만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알기 때문에 능히 참아갈 수가 있다. 10년 동안, 그러니까 1914년까지 내가 감옥에서 억지로 쉬게 된 것을 제외하고는 내 논설을 싣지 않고 발행된 인디언 어피니언은 한 호도 없었다. 글자 한 자라도 생각 없이 썼다거나, 단순히 재미나게 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과장해서 썼다는 기억은 없다. 실로 그 신문은 나에게는 자제의 수련장이 되었고, 친구들에게는 내 사상과 끊임없는 접촉을 해나가는 매개체가 되었다. 비평가는 반박할 만한 것을 거의 찾아내지 못했다.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사람 사냥이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런 종류의 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 점점 더 많아질 것이고, 내가 만일 가정생활의 쾌락과 자녀의 출생과 양육에 빠져 있었더라면 나는 그 일을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한마디로 나는 육과 영을 다 따를 수는 없다. 가령 예를 들어서, 현재 내 아내가 임신중이라면, 나는 이 전란 속에 뛰어들 수 없었을 것이다. 브라마차리아를 지키지 않고는 가정 봉사와 사회 봉사는 양립이 될 수 없다. 브라마차리아를 지키면 둘은 완전히 양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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