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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진 장편소설 '2월 30일생' 미리보기 5회 | 알려드립니다. 2014-11-03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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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범인일까?2


할아버지의 부탁 때문이겠지만, 형사는 나에게 친절했다. 최소한 나를 취조했던 두 형사 중에서 자신을 ‘김’이라고 밝힌 젊은 형사는 그랬다. 그보다 나이가 훨씬 들어 보이는 형사—그는 ‘최’라고 자신을 소개했다—는 말이 별로 없었고 표정도 없이 나를 묵묵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취조는 주로 김 형사가 이끌고 나갔다.

 

혜린은 둔기로 머리를 맞았다. 하지만 그 상처는 치명적이지 않았다. 부검 결과 사인은 교살이었다. 쓰러진 혜린의 목을 조른 것이다. 혜린의 지갑이 현금과 카드가 사라진 채 부근에서 발견되었고, 그 때문에 경찰은 혜린의 신원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경찰은 주변을 탐문한 결과, 어떤 남자가 혜린을 호텔 커피숍에서 끌고 나가는 것을 봤다는 호텔 직원의 증언과 밤늦은 시각에 강변 자전거 도로에서 남녀가 다투는 것을 봤다는 증언, 그리고 혜린이 어떤 남자와 술을 마시면서 다투었다는 포장마차 주인의 증언까지 모두 확보해두었다. 안타깝게도 증언 속의 어떤 남자가 바로 나였다. 경찰은 심지어 내가 호텔의 공중전화에서 혜린에게 전화를 건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

나는 혜린과 나의 관계부터 설명해야 했다. 김 형사는 친절한 말투로 관계가 언제부터 시작되었고 끝났는지, 마지막으로 잠자리를 한 것은 언제였는지 따위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수사상 필요하니까요. 양해 좀 하십시오.”

내가 불쾌해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김 형사가 싹싹하게 덧붙였다.

“사귄 지 1년 정도 되었습니다. 방송국에서 같이 일하던 작가였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지만, 지금은 다 정리했습니다.”

경찰 앞에서 털어놓고 보니 혜린과 나의 관계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불륜이란,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기 전까지만 아름다운 사랑이다. 남들이 알게 되는 순간부터 그것은 하나의 스캔들, 들춰내면 들춰낼수록 추잡해 보이는 욕망에 불과하다.

“헤어졌다……. 하지만 계속 연락을 주고받은 걸로 나오는데요. 피살자의 휴대폰 기록을 보니 지난 한 달 동안에도 수차례 문자를 주고받았고, 피살자와 통화한 기록도 있어요.”

“그건 다투는 과정에서 주고받은 겁니다. 나는 헤어지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는데, 혜린이가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그래서…….”

“그래서 많이 다투셨나요?”

“아뇨. 그냥 조금.”

“혹 피살자가 협박을 했나요?”

“협박이라뇨?”

“가만히 있지 않겠다, 다 까발리겠다, 뭐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알려져서 좋을 거 없는 관계니까.”

“그런 말은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 피살자와 만날 약속을 할 때 휴대폰을 쓰지 않고 굳이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한 건 뭡니까? 꼭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배터리가 없었어요.”

나는 솔직히 말했다.

“그럴 수 있죠. 아니면 전화 기록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공중전화를 썼을 수도 있고요.”

나는 김 형사의 눈을 보며 힘주어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혜린이가 감정을 다 정리하지 못한 건 있지만, 나를 협박하거나 그런 적은 없습니다. 그럴 애도 아니고요.”

“하지만 협박은 통하지 않는다고 피살자에게 소리치셨다면서요? 포장마차 주인이 증언했습니다.”

“그건, 그냥……. 그건 공연히 제가 혼자 흥분해서……. 게다가 술에 취해 있어서, 격앙해서 그렇게 된 거죠.”

“뭐 그럴 수 있다 치고, 우리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왜 피살자가 J시까지 왔느냐는 겁니다. 당신이 아니면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인데 말이죠.”

나도 그것이 궁금했다. 문득 혜린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누군가와 약속이 있다고 했어요.”

“그게 누구죠?”

“그건 저도 몰라요. 분명히 약속이 있다고 했어요.”

“피살자의 통화 기록이 깨끗해요. 누군가와 약속을 했다면 통화 기록이 남지 않았겠어요? 근데 언니와 전화한 것 빼고는, 근처에 있는 ‘휴’라는 술집으로 전화한 것이 전부예요.”

“혹 술집 주인과 아는 사이 아닌가요?”

“열흘 전에 혼자 가서 술을 마셨는데 카드를 두고 갔다더군요. 나중에 찾으러 갔고, 그게 다예요.”

“열흘 전이요?”

“그렇습니다. 피살자는 열흘 전에 여기로 왔어요. 오자마자 방아도에 가서 사흘을 머물렀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방아도는 최근 관광지로 각광받는 곳이었다. 한때는 거의 버려지다시피 한 섬이었지만 경관이 아름답다고 소문이 나자 펜션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때마침 이 부근에 일고 있는 개발 붐과 맞물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었다.

 

“언니와 통화를 했는데 언니에게는 강원도로 여행 왔다고 거짓말을 했다더군요.”

 

혜린은 언니 이야기를 종종 했었다. 언니는 증권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대학을 나오지 않았지만 꽤나 능력이 있어서 대졸자보다 더 많은 돈을 받는다고 자랑하곤 했다. 혜린과 언니는 나와 미래보다 터울이 더 많이 져서 자매라기보다는 차라리 엄마와 딸 같은 사이인 것 같았다. 아무리 가까운 자매간이라 해도 나와의 관계까지 언니에게 다 털어놓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언니에게 거짓말을 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다시 김 형사가 입을 열었다.

 

“헤어지자고 한 게 언제입니까? 지난 연말이죠?”

“네. 11월쯤이었습니다.”

“지난 12월에도 피살자는 혼자 J시에 왔던 걸로 확인됐습니다.”

“혜린이가요?”

“그때 당신 고향 집으로 전화한 기록이 있어요. 몇 차례 전화를 했는데, 당신 어머니와도 통화를 했다고 하더군요.”

“뭐라고요?”

“당신과 일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이런저런 걸 물었다고 합니다. 별로 중요한 얘기는 나오지 않았지만 통화를 한 건 사실입니다.”

“도대체 왜 그런 짓을…….”

 

김 형사는 내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것이 뻔한 거 아니냐고 반문하는 듯 보였다. 하긴, 혜린이 여기 와서 우리 집에 전화까지 했다면 모든 것은 뻔했다. 손바닥 안처럼 좁고 빤한 이 동네에서 작정만 한다면, 나에 대해, 우리 가족에 대해, 아버지가 국회의원에 출마할 예정이고, 할아버지가 이 지역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내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혜린이 그렇게 주도면밀하게 내 주변을 탐색하고, 더욱이 나를 협박할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했다는 것이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내가 알던 혜린은 절대로 그런 애가 아니었다. 비록 나는 비겁했을지언정 혜린은 나에 대해 순수했다고 나는 믿고 있었다. 내가 호텔에서 만난 혜린에게 나를 협박하러 여기까지 왔느냐고 소리친 건 사실이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믿지는 않았다. 나는 혜린이 어떻게든 나와 계속 연결되기를 바란다고만 생각했다. 그것이 나의 착각이었나? 정말 사람 속은 알 수 없는 것인데, 나 혼자서, 내가 편할 대로 믿고 있었던 것인가?

 

“협박 같은 건 없었어요. 혜린과 내 관계는 이미 우리 식구들이 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임신은 다른 문제죠.”

“네? 뭐라고요?”

“피살자가 임신 상태인 걸 모르셨습니까? 임신 3개월이었습니다.”

 

나는 정말로 충격을 받았다. 혜린은 단 한 번도 그런 내색을 한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나 역시 꿈에도 그 가능성을 생각해보지 못했다. 혜린을 만나는 동안 그 문제만큼은 철저하게 관리를 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예기치 않게 잠자리를 가지게 되었을 때도 나는 혜린에게 안전한지 분명히 물어보았다. 그때 안전하다고 했던 말도 거짓말이었을까.

 

“나, 나는 전혀 몰랐어요. 우, 우리는 헤어지기로 했었기 때문에 그럴 줄은 전혀…….”

나는 충격이 너무 커서 형사의 질문에 제대로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가만히 나를 쳐다보는 최 형사의 무표정한 얼굴이 보였다.

“협박 같은 건 정말 없었어요. 내가 협박을 받았다면 뭐하러 호텔 커피숍에서 약속을 했겠습니까? 아무도 안 보는 데서 만나죠.”

내 목소리가 저절로 높아졌다. 김 형사가 나를 달래듯 말했다.

“너무 기분 나쁘게 듣지는 마세요. 우리는 경찰이니까, 수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런저런 추론을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

“저희도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사건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마 설득하려고 했겠죠. 당신은 피살자에게 다 포기하고 서울로 가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피살자는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포장마차에서 나온 후에 다툼이 일어났고, 우발적으로 사건이 터진 거죠. 그런 일은 흔해요. 이해도 하고요. 막상 정신을 차려보니 여자는 죽어 있고, 놀라서 지갑에서 돈을 빼서 강도로 위장한 것 아닙니까?”

 

나는 그제야 내가 용의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혜린이 어느 부랑자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그 과정에서 재수 없게 내가 연루된 것임을 경찰도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결백의 근거는 빈약했다. 그것은, 나는 살인을 한 적이 없다는, 더욱이 혜린을 죽인다는 것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는 믿음에 전적으로 근거하고 있었다. 그 믿음은 오직 나만의 것이었다. 경찰도 내 주장의 빈약한 근거를 눈치채고 있었다.

 

“우리가 당신 집으로 찾아갔을 때 당신은 분명히 이혜린이 죽었냐고 물었어요? 왜 죽었다고 생각한 거죠?”

“그건 그냥, 일반적인 사건이었다면 경찰이 직접 나를 찾아오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정말 아니에요. 혜린이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고요!”

“필름이 끊겼다면서요? 어떻게 기억합니까?”

나이 든 최 형사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나지막했지만 그는 분명히 나를 의심하고 있었다.

“아무리 필름이 끊겨도 그런 걸 잊어버릴 수는 없어요!”

“그렇죠. 그런 걸 잊어버릴 수는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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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30일생

김서진 저
나무옆의자 | 2014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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