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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밍크코트] - 십자가에 걸린 피맺힌 세인들의 분투 | 영화일기 2012-01-13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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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밍크코트

신아가
한국 | 201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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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십자가가 자주 눈에 띈다. 현실에서도 영화에서도 하늘에 걸린 십자 모양의 표상이 사람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교회가 날로 건물을 올리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누군가의 십계명을 따르지 않으면 생의 고통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지독한 세상에 내던져진 인간들은 저마다 자신의 마음을 의지할 무언가를 찾아 헤매고 있다. 그건 종교의 문제와는 또 다른 성질의 신앙일 것이다. 부동산, 영어, 기독교라는 새로운 성삼위를 등에 업고 신자유주의 귀족이 성행하고 있는 이때, 끊임없이 악인이 되기를 요구하는 시커먼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수많은 윤리적 딜레마 앞에서 우리는 좌절하고 무너질 따름이다. 영화는 이러한 어두운 현실을 한 가족의 존엄사 문제에 얽어 놓았는데, 그 모양새가 거미망태나 다름없다. 크고 작은 현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지만 특정 신념을 꼬집어 비판하거나 사회문제를 구체적으로 거론하지는 않는다. 대신 어지러운 상황에 놓여 있는 인물들의 고통을 낱낱이 관찰하면서 조금 더 보편적인 이야기를 끌어낸다.

 

영화는 의식을 되찾을 확률이 현저히 떨어지는 아픈 노모를 병실에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족의 모습을 그린다. 그런데 그 대립은 의견의 차이라기보다 신념의 문제에 닿아 있다. 치료 중단에 반발하며 가족들에게 저주의 말을 퍼붓는 현순과 치료비를 내는 데 어려움을 토로하는 다른 가족들이 서로의 믿음을 배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끝끝내 의견을 조율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행동을 하기에 이른다. 여차여차하여 그들의 과거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쪽으로 나아가기는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화해가 아니고 갈데없는 선택이다. 윤리적 갈림길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현순이 급기야 억색한 비탄을 내지를 때 우리도 갑갑한 것은 마찬가지다. 아마도 관객은 현순의 딸의 입장에 서서 일련의 사건을 되짚어볼 것이다. 그녀가 밍크코트를 대하는 태도를 생각하면서 사물의 속성과 이야기의 핵심이 맞물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내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다른 존재의 고통에 눈감아야 하는 현실의 비애를 통해 고통 없는 행복이란 없고 수난 없는 회개란 없음을 느낀다.

 

 

영화는 클로즈업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다른 건 하나도 보이지 않을 만큼 한 인물의 얼굴을 화면에 가득 메우기 일쑤다. 인물의 감정을 줄기차게 나열하고 있지만 거기에 이입하는 데는 오히려 방해가 될 정도로 부담스러운 데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 시선의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화면의 구성은 소통이 불가능한 인물들의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과하다는 생각을 떨치게 만든다. 특히 배우들의 섬뜩한 표정은 그 자체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한몫한다. 다만 사건이 수습되는 과정이 조금 급작스럽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다소 작위적이다. 그러나 소재와 이야기의 강렬함은 그것을 덮고도 남을 것이다. 그 강렬함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서는 피 끓는 영웅들의 활극이 아니라 피맺힌 세인들의 분투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영화는 우리 곁에 가까이 있으나 쳐다보기를 주저하고 마주하기를 꺼렸던 이야기를 힘차게 밀어붙인다. 그 이야기가 내뱉는 마지막 절규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윤리적 난제가 그저 상상의 공간에만 머무르지 않기를 내심 바라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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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 어제의 시간은 인생이라는 혓바닥에 소금기를 남기는 법 | 영화일기 2012-01-03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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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고레에다 히로카즈
일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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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기적을 꿈꾸며 산다. 새해를 맞아 소원을 비는 것이 비단 어린아이들만은 아니지 않은가. 저마다 가슴 속에 작은 소망 하나쯤 만들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빛날 거라고 믿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실은 그게 삶의 중요한 동력이라는 것 또한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인생이라는 게 좀처럼 본인이 뜻하는 대로 되지 않는 터라 내 소원을 꿀꺽 삼키고 마는 달님이 얄미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기적의 가능성을 말하면 한낱 지각없는 시절의 몽환을 늘어놓는 것쯤으로 여기기 일쑤다. 심지어 아이들이 품는 간절한 희망도 인생의 경험이 부족한 데서 오는 철모르는 짓으로 보거나 성장의 과정에서 으레 겪는 하나의 진통으로 치부하곤 한다. 그런데 크고 작은 기적을 꿈꾸며 인생의 의미를 스스로 깨닫는다는 점에서 아이들은 결코 어리석은 존재가 아니다.

 

코이치와 류스노케 형제는 부모의 이혼으로 각각 떨어져 산다. 가고시마에서 엄마와 함께 사는 형 코이치는 후쿠오카에서 아빠와 살고 있는 동생 류스노케와는 달리 재결합의 가능성이 희박해지는 상황에 속이 탄다. 자신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활화산이 폭발한다면 예전처럼 가족이 한데 모여 웃음꽃을 피울 수 있을 거란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한 줌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는 친구들과 함께 열차가 교차하는 곳으로 떠나기 위해 초등학생으로서는 쉽지 않은 여행을 준비하기에 이른다. 한 친구의 말에 의하면, 새로 개통한 신칸센 열차가 서로 스치는 순간에 파생되는 에너지가 기적을 현실로 만들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기적을 꿈꾸는 것은 형제만이 아니다. 그들의 친구들도 제각각 염원하는 것이 없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그들은 다 같이 뜻을 모아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여행길에 오른다.

 

 

운명의 순간을 고대하며 집을 나서던 날 코이치는 책상에 놓인 가족 사진 하나를 응시한다. 가족이 화목했던 그날의 기운을 얻고자 그는 동생과 함께 입었던 노란색 옷으로 재빨리 갈아입는다. 그때 갑자기 코끝이 찡해진 나는 그 애틋한 마음에 가만히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필경 아이들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인데 저 간절한 마음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다행히 그들이 여행을 떠나 쓰라린 실패의 경험을 맛보는 것은 아니다. 진심으로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이 다른 의미의 기적을 일으키고 있는 덕분이다. 제자리로 돌아가는 그들의 발걸음이 경쾌해 내 마음까지 가뿐했다. 아마도 아이들은 일상의 순간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기적의 경험을 선물하고 있는지 체감하는 듯하다. 이는 영화에 등장하는 소소한 사물들ㅡ아이스크림, 코스모스, 100엔짜리 동전 등이 잇따라 나열될 때 그 의미가 도드라진다.

 

아이들끼리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어렵사리 여행하는 과정에서 어른들의 도움이 종종 눈에 띈다. 온전히 그들만의 힘으로 별 탈 없이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던 건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믿음이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산산조각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은 자의 어떤 낭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낭만주의와 현실주의는 본래 꼬리를 물 때가 있다. 소망스러운 낭만주의와 범상스러운 현실주의는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는 데가 있다. 이는 아이들이 경찰의 손에 이끌려 각자 집으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르는 위기 속에서 늘상 자신감이 다소 부족했던 한 소녀의 용기와 손녀를 그리워하고 있었던 어느 노부부의 아량이 별안간 손을 맞잡는 데서도 느낄 수 있다. 기차가 교차할 때 나오는 에너지가 어마어마하다는 이야기에 눈이 휘둥그레졌던 그 아이들의 순수한 믿음이 허황된 것만은 아니었나 보다.

 

 

코이치는 밍밍하기 그지없던 가루칸 떡에서 점점 은근한 단맛을 느끼기 시작한다. 할아버지가 가족의 권유로 설탕을 더 넣은 것도 아니건만 어떠한 연유로 그 녀석의 입맛이 변하고 있는 걸까? 어제의 시간은 인생이라는 혓바닥에 소금기를 남기는 법. 그것은 맨 마지막에 먹는 과자 부스러기가 맛있는 원리와도 같다. 어쩌면 시간의 기적이란 그런 것이다. 할아버지께 동생은 아직 어려서 그 맛을 잘 모른다며 우쭐대는 코이치를 보노라면 아이의 순수한 마음이 빚어낸 작은 깨달음이 놀랍게도 인간이 꿈꾸는 기적의 본질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른들도 잊어버리기 십상인 일상의 기적에 대한 참된 의미를 영화는 우리가 흔히 철없다고 여기는 코흘리개의 세상에서 발견하고 있다. 아이들의 생각은 어른들의 그것에 비해 순수할 뿐 결코 부족한 게 아님을 새삼 깨닫는다. 그러니까 아이들의 세계는 곧 세계다.

 

영화가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드러낼 때, 그것은 지금 이 세계가 충분히 아름답다는 뜻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이 마땅히 이 세계의 주인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세계를 아름답게 비출 수 있는 남다른 순수를 뽐낸다. 그래서 코이치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시간의 기적을 말할 줄 아는 감독의 마음이 투과되어 더할 나위 없이 반짝거린다. 아이들의 행성에 호롱불이 켜지는 점등의 순간은 코이치의 아빠가 무심코 던졌던 '세계'라는 단어의 의미가 혼자만의 헐한 시간에 이해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눈치채지 못하는 새 슬며시 찾아온다. 그 소중한 깨달음에 힘입어 아이들은 생의 비등점에서 더 힘차게 끓어오를 것이다. 시간의 기적을 믿는 이들에게 인생의 먼지란 빨랫줄에 널린 옷가지에 묻은 화산재일 뿐이다, 툭툭 털어내기만 하면 그리 지저분하지도 괴롭지도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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