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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 - 여러 겹의 이야기를 이미지로 잡아매는 시각적 리듬 | 영화일기 2013-01-13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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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클라우드 아틀라스

릴리 워쇼스키
미국, 독일 | 2013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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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아틀라스

여러 겹의 이야기를 이미지로 잡아매는 시각적 리듬

 

 

 

영화에서 흔히 과거나 미래를 떠올릴 때는 어떤 식으로든 일종의 액자를 쓰기 마련이다. 화면의 색감을 달리하는 시각적 변화나 장면과 장면 사이에 획을 긋는 기술적 장치를 떠나서 최소한 이야기가 들고 나는 지점을 부드럽게 연결하는 구체적인 맥락이 있다. 이는 영화라는 물질이 앞에서 뒤로 흐르는 것과 관련이 깊다. 이를테면 극장에 어둠이 내리는 순간 관객은 일제히 끝을 향해 달려간다. 그런데 우리는 간혹 이러한 조건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영화를 만난다. 이 작품 역시 하나의 이야기가 전개되고는 있지만 그와 유사한 바구니에 담을 수 있을 것 같다. 시공간이 각기 다른 여러 겹의 이야기를 용모와 분장에 의한 이미지만 가지고 한데 잡아매는 연출이 핵심을 이루는 까닭이다. 시대를 건너는, 바꿔 말하면 화면을 넘기는 기준이 그러하다 보니 퍼즐을 흩뿌리고 그러모으는 방식이 상당히 자유로워서 이야기의 순서를 적당히 뒤집는다 해도 무방할 정도다.

 

세 시간 가까이 이미지를 매끄럽게 연결하는 데 힘을 쏟은 결과는 제법 성공적이다. 낙차가 크고 깊은 여러 시대를 오가는 영화에 몹시 취약한 내가 이야기를 선형적으로 따라가는 게 중요한 작품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그냥 시각적 리듬에 몸을 맡길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로웠다. 게다가 크레딧과 함께 분장쇼까지 부러 공개하는 데서 이 영화가 가장 공들여 주판알을 튀기는 대목을 눈치채고 거기에 화답했다. 그러나 이미지 자체는 그리 새로울 게 없어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영화가 문을 열 때 드러내는 야심에 비하면 기억에 남는 장면이 많지 않다. 또한 낱낱의 조각이 의미를 긷는 이른바 윤회라는 구심점은 지나친 설명까지 더해져 따분한 편이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게 그 이유라면 이유다. 그래도 관습을 부정하고 진실을 구현하는 존재를 사회적 약자로 설정해서 인종과 성별 따위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태도는 훌륭하다.

 

 

 

 

영화를 관람하기에 앞서 몇 개의 스틸컷을 접했을 때만 해도 이 작품이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미래의 서울이 다소 일본처럼 그려진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면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했다. 손미가 기거하는 공간들이 일면 일본영화에서 마주하는 풍경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연출자의 의중이 어떠하건 서울을 서울답게 표현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한 미션이라고. 외관부터 죄다 새로운 형태로 바꾸지 못해 안달이 난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한국적 이미지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더구나 시간이 한참 떨어져 있다면. 여기저기 한글을 과도하게 삽입하게 된 경위도 어쩌면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 영화에서 서울의 공기를 체감할 수 있는 요소는 한글이 거의 유일하다. 요즘의 정황으로 보면 그나마 다행이라 여길 일이 아닌가 싶어 섬뜩하다. 엉뚱한 얘기지만, 사실 우리도 지금 열심히 비누 음료를 마시며 개성을 잃어가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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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무르] - 시간의 경계를 들이치는 깜깜한 소리들 | 영화일기 2013-01-10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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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아무르

미카엘 하네케
프랑스, 오스트리아, 독일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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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르

시간의 경계를 들이치는 깜깜한 소리들

 

 

 

사랑해. 우리는 사랑에 빠졌을 때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정말 사랑하면 사랑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두 사람 사이에는 늘 사랑의 소리가 울려퍼진다. 오래된 연인이 더 이상 사랑한다고 고백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 식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이 익었기 때문이다. 서로의 존재만으로 사랑을 확인하는 데는 무엇보다 소리가 결정적이다. 두 사람만 느낄 수 있는 소리 덕분에 사랑하는 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리에서도 상대를 신뢰한다. 또한 공기처럼 떠돌던 사랑의 선율이 돌연 깜깜해질 때 서늘함을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시각도 아니고, 후각도 아니고, 촉각도 아니다. 청각이다.

 

 

 

 

시간적 순서를 고려한다면, 영화는 조르주와 안느가 제자의 연주회에 참석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나중에야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지만 두 사람은 평생 피아노를 가까이 했던 사람들이다. 아마 부부는 그날도 여느 때처럼 다정하게 손을 잡고 집을 나섰을 것이다. 그런데 어인 영문인지 공연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도둑이 들었다. 실은 현관문이 망가진 것 외에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았지만 그들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아니나 다를까 이튿날 안느는 밥을 먹다 말고 갑자기 정신을 잃는다. 혹시나 자고 있을 때 또 도둑이 들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잠을 편히 이루지 못했던 그다. 이때 그 상황에서 혼비백산한 조르주의 귓가에는 물수건을 만들다가 수도꼭지를 잠그지 못해 싱크대 아래로 콸콸 쏟아지는 물소리가 거칠게 들린다. 이내 정신이 돌아온 안느가 그것을 처리하기는 했지만 조르주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공포를 느낀다. 아내를 다그치는 그의 눈빛이 급격히 흔들린다. 이로써 안느에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는 그들의 공간 속에서 본격적으로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이 소식을 듣고 딸이 집으로 찾아온다. 그녀는 어렸을 때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소리를 엿듣던 기억을 새삼 떠올리면서 이따금 그게 들리지 않을 때는 이혼하는 줄 알았다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렇듯 사랑은 소리로 감지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조르주와 안느의 것이었다. 딸은 그들의 밀어를 듣는 것이 불가능하다. 안느의 병세가 심각해지면서 아버지와 딸이 자주 충돌하는 데는 그녀의 마음을 읽는 이가 오로지 남편뿐이기 때문이다. 안느는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려워진 이후로 딸과 사위를 보는 것마저 달가워하지 않았다. 자식 된 도리로 애끓는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딸은 죽음 앞에 서 있는 엄마의 목소리를 한 번도 온전히 듣지 못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무시무시한 죽음의 소리를 다름 아닌 조르주가 느낀다는 데 있다. 그는 수도꼭지에서 새던 물이 발목까지 차오르는 끔찍한 악몽 속에서 입까지 틀어막힌다. 정체 모를 무언가가 조금씩 그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이럴지니 간간이 그에게 위로를 전하는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는 먼지처럼 부서질 따름이다.

 

영화는 독특한 방식으로 소리를 작동시키는데 그것을 통해서 두 사람의 심정을 예민하게 표현한다. 이를테면 조르주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안느의 과거를 잠시간 회상하는 장면에서 난데없이 청소하는 장면을 이어붙이는 식이다. 그들에게 비극이 시작된 이후로 아름다운 소리는 지속되지 못하고 금방 끊어진다. 이는 그 집을 방문하는 제자나 간병인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인사차 스승을 찾은 제자에게 아픈 내색을 하지 않지 않으려고 애쓰는 안느는 느닷없이 과거에 가르쳤던 베토벤의 '바가텔'을 부탁한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며칠 뒤 제자가 보낸 엽서를 통해 자신이 더 이상 예전처럼 기억될 수 없음에 실망하고는 CD를 꺼버린다. 또한 간병인이 안느의 기저귀를 갈 때 음악을 틀어놓고 그 상황을 내처 지켜보던 조르주는 크게 잘못한 일이 없는 것도 같은 그녀를 내쫓는다. 아내를 극진히 아꼈던 남편의 입장에서 아름다운 자태로 피아노를 독주하던 안느와 다른 사람의 손에 육신을 내맡긴 채 아프다고 소리치는 안느는 도저히 병립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 두 사람이 축적한 사랑의 가장자리가 계속해서 시들어가는 데 심원한 고독을 느낀 조르주는 결국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아내의 말을 수행하기에 이른다. 서로에게 사랑의 소리가 완전히 증발되기 전에 어떤 결심을 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는 그녀의 마지막 말이 날카로운 면도 소리를 타고 흐른다. 다시 집으로 날아든 비둘기를 이제는 품을 수 있다. 조르주의 손 안에서 서서히 야위어가던 안느의 숨결, 그 자그만한 새가 그렇게 떠난다. 그는 마지막으로 딸에게 편지 한 통을 남긴다. 어쩌면 맨 밑에 이런 말을 남겼을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아름답다. 인생은 참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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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얄 어페어] - 파도가 역류해도 바다는 결국 깊고 넓은 데로 흐른다 | 영화일기 2013-01-09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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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얄 어페어

니콜라이 아르셀
덴마크, 스웨덴, 독일, 체코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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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 어페어

파도가 역류해도 바다는 결국 깊고 넓은 데로 흐른다

 

 

만나고 헤어지는 게 너무나도 자유로운 요즘이야 이런 고통을 생각할 이유가 없지만, 정략결혼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시절에는 주어진 운명에 속박된 사랑으로 인해 몸서리치는 이들이 제법 많았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는 두 글자가 온갖 드라마의 주된 갈등이 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18세기 덴마크 왕좌에 앉았던 크리스티앙 7세와 그의 아내 캐롤라인 역시 불행하게도 처음부터 그러한 비극을 안고 있었다. 그들의 사연은 워낙 파란만장해서 그 나라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인데 지금까지 이렇게 반복하는 것을 보면 뭔가 특별해도 한참 특별한 이야기가 숨어 있는 모양이다. 그런 정도로 생각하고 영화를 보러 갔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이른바 삼각관계를 이루면서 치정극의 형태를 띠고 있는 건 맞지만, 이들의 관계를 파국으로 내몬 것은 단지 또 다른 사랑의 등장이 아니었다. 그보다 새로운 시대를 향한 한 개혁가의 욕망이었다.

 

 

 

 

그의 이름은 요한 스트루엔시. 그가 왕과 왕비의 마음을 모두 사로잡을 수 있었던 건 그들이 펼치는 서로 다른 연극에서 제각각 맞춤한 상대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가면을 쓰고 본심을 드러내는 데서 알 수 있듯 두 사람은 감옥살이나 다를 바 없는 왕실 생활에 불만이 많았다. 왕의 자리에서 벗어나고픈 크리스티앙 7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냥 꼭두각시 노릇만 할 뿐이고, 영국에서 혈혈단신 낯선 땅으로 시집온 캐롤라인은 그나마 정신이 반쯤 나간 남편과 살면서 삶의 의욕을 상실한 터였다. 왕에게는 정치의 용기를, 왕비에게는 사랑의 기운을 불어넣은 요한은 야금야금 제 입지를 굳혀나간다. 그는 국가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고문과 농노제를 철폐하기를 바랐다. 부족한 세금은 가진 자의 주머니에서 채울 것을 요구했던 그가 귀족들에게 눈총을 사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끝내 개혁을 이루는 데 실패하고 만다.

 

거기에는 절대왕정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이들의 견제와 시기가 맞물려 있지만, 그로부터 우리는 계몽주의의 바람을 타고 그곳으로 흘러들어온 다양한 정책이 정작 그것을 누리게 될 시민들에게는 제대로 닿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심지어 그가 염원하고 쟁취했던 인간의 자유가 역으로 자신을 무너뜨리는 결과까지 낳는다. 덴마크는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 영화는 역사적인 내용을 토대로 이러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잠시도 한눈을 팔지 않는다. 마치 모든 요소가 숨을 죽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 덕분에 시대의 물결에 휩쓸린 그들의 운명은 특정한 상황을 넘어 지금 여기와 조응한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비로운 왕을 원하지만, 이 복잡한 세계에 달린 그 자비의 추는 꽤 운명적으로 기우는 데가 있어서 이로운 쪽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파도가 역류해도 바다는 결국 깊고 넓은 데로 흐른다. 세상은 그렇게 내일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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