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가끔은 쉬어 가도 돼。
http://blog.yes24.com/bohemian75
리스트 | RSS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Aslan
하루하루 이겨나가기 버거운 세상 니가 슬퍼질 때 무너질 때. 내가 너의 쉴 곳이 될게.ㄴ내가 곁에 있을게.
파워 문화 블로그

PowerCultureBlog with YES24 Since 2010

7·10·11·12·13·14·15·16·17기

1·2·3·4·5기 영화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9월 스타지수 : 별14,788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함
전체보기
샤론의 꽃 영화 이야기
본질 카테고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my saviour God to THEE
에브리 프레이즈
예블 Don't try so hard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
We welcome you here Lord
내가 나 된 것은
walk On water
나의 리뷰
Basic
영화가 왔네
나의 메모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태그
99.9 형사전문변호사 1세기 42 로빈슨 채드윅 봉테일 햇볕아 반가워 단순한
2019 / 08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월별보기
나의 친구
영화 파워문화블로거
최근 댓글
시즌 1,2를 정말 재미.. 
멋진 배우들이 나오는.. 
아무런 사전 정보나 .. 
저도 이 소식을 접하.. 
우와. 진짜 제대로 벽.. 
새로운 글
오늘 200 | 전체 908139
2010-06-10 개설

2019-08 의 전체보기
놀면 뭐 하니 1회 | walk On water 2019-08-03 06:25
http://blog.yes24.com/document/11517573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예능 방송 프로는 대부분 소비되고 사라진다.

무한도전이 없으니 이 프로가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새삼 느꼈었다.

각박한 일상에서 웃음이란 없어도 그만인 게 아니라

필수적인 미덕이었음을.

 

지금 기억나는 것만 해도 평창동계올림픽-봅 슬레이, 추격전, 영화·스포츠 스타들과의 특집 같은 것들.

꼭 매주 챙겨보지는 않아도 무한도전은 토요일 그 시각을 지켜주는 활력소였다.

 

10년이면, 어쩌면 예능으로써는 장수한 편이다.

멤버들은 각자의 길을 가고 있으니 박수칠 때 떠난 것도 유종의 미를 거뒀다.

그래도 아직은 토요일 그 시각의 허전함이 남아 있다.

 

 

김태호 PD가 새로운 예능으로 돌아왔다.

놀면 뭐하니?’라는 평범한 듯한 제목.

 

무한도전도 처음에는 밋밋해 보였다.   단순한 게 실력을 갖추면 질리지 않는 법.

새 예능 놀면 뭐하니는 아직은 정해진 포맷은 없다. 단지 유재석 고정 이라는 것만 있다.

그럼에도 1회를 예전 무도의 향수를 떠올리면서 즐길 수 있었다.

 

게스트들로 채워서 1회의 부담감을 상쇄시켰다. 조세호, 딘딘, 유노윤호, 데프콘이 가세했다.

동방신기 유노윤호는 의외였는데 딘딘하고 친하다고 한다. 딘딘 인맥도 엄청 마당발인 거 같다.

유재석이 딘딘에게 유노윤호랑 관계가 군주-신하 관계 같다고 하자 발끈한 딘딘.

그러면서 그게 아니라 정우성-이정재 구도라고.ㅋㅋㅋ

정우성 이정재 라인은 왠만해선 넘볼 수 없는 넘사벽인데 ㅎㅎ 빵 터졌다.

 

 

 

 

그렇게 타이트한 컨셉은 없이, 유재석의 인맥만으로 1회는 채워졌다.

그래도 무척 재미있었다.

짐작은 했지만 유재석 인맥은 엄청났다. 유희열 안테나를 찾아가서 하하랑 아재개그 향연을 펼치고.

 

데프콘은 유재석한테 대북곤이라고 불린다.

데프콘이 은근히 질투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조세호 양세형이 유재석하고 방송하면서 뜬게 배아팠다고

유재석한테 극존칭 하는 게 너무 웃겼다.

아들 지호한테 도련님이라고 ㅎㅎ

 

무한도전에서 황광희를 발견했듯이, 딘딘도 이 프로를 통해서 잘 하면 예능 기대주가 되지 않을까.

한국어가 자연스럽긴 하지만 교포 출신이라서 아직은 한자어 같은 거에 취약한 모습이 웃겼다.

 

 아직은 임시 포맷 같은데

설령 하다가 종영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무조건 응원, 지지 한다!

 

데프콘 말처럼

 김태호 유재석 조합이라니

"뭘하든 되겠죠"!

 

  이번 토요일 출연 예정자

 꺄악 박정민 ㅎㅎ 이하늬 이동휘 박병은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4)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4        
documentary 《1991 봄》 | 영화가 왔네 2019-08-01 07:22
http://blog.yes24.com/document/11512878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영화]1991,봄

권경원
한국 | 2018년 10월

영화     구매하기

지난달에 추상미 감독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일주일 후에 글을 쓴 적이 있다.
영화의 여운은 컸는데, 내가 무어라 말해야 할지, 말할 수 있을지 몰랐다.
일주일 넘게 영화를 안고 끙끙 댔던 기억.

장르는 다르지만 이 다큐멘터리도 그랬다. <1991년, 봄>.
권경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매년 연말이면 ‘이 영화를 놓쳤다니 아쉽다’ 싶은 작품이 한 둘은 꼭 있다.
작년에 이 영화는 개봉했고 나중에 알고 놓쳐서 아쉬워했드랬다.

정치 현실은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했다. 지난달에는 일본의 경제보복이 시작되면서 또 다른 전투가 전개중이다.
잊고 있던 다큐멘터리 <1991년, 봄>은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다.

강기훈 님의 현재가 궁금했는데 다가가기가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그분이 2015년에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확정되었을 때 ‘다행이다’ 하고 넘어갔던 기억만 있다.

그렇게 4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지금 나는 편안하게 모니터를 통해서 강기훈 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짐작은 하였지만 그 분의 소명을 위해서 많은 분들이 애써 주셨음을 재 확인해서 너무도 감사했다.
김대중 노무현 진보정권 때에 왜 강기훈 님의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던 걸까.
영화에서 그것까지 나오진 않았지만, 그만큼 이 용공조작이 치밀했던 거라고만 짐작하였다.


1991년에 강경대 학우가 전경에 폭행당해 사망했다. 이후에 여러 대학생들이 분신으로 사망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노동자 분들, 시민단체 분들 사이에서도 의문사가 속출하였다.
이런 가운데 김기설 님이라는 운동가가 사망하는 일이 일어났다. 역시 의문이 많은 죽음이었다.

그런데 불똥이 튄 건 뜻밖의 사람에게 였다. 김기설씨 친구이자 같은 단체 동료 강기훈 씨.
검찰은 김기설의 유서가 조작되었다고 발표하였고 그 배후로 강기훈을 지목했다.

당시에 공안당국은 조작질을 자행하였고 새로운 프레임을 궁리 중이었다.
1991년에는 매달 여러명의 열사들이 죽음을 맞던 시기였다.
그중 절반은 의문사였다. 음독, 추락, 자살로 위장되었지만 당시 민주운동을 하던 이들 중에 이를 믿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런 시국에 공안 당국은 강기훈을 파렴치한 조작을 한 사람으로 몰기로 했다.
강기훈이 동료를 ‘이용’해서 유서를 써서 단체의 운동을 정당화하려 했다는 프레임을 짠 것.
이는 비단 강기훈 한 명을 잡으려는 게 아니라, 본보기로 앞으로 운동권 진영을 압제하려는 거였다.

영화는 당시의 민주화 운동을 한 분들, 강기훈의 동지들의 인터뷰를 차분히 이어간다.

그중 한분의 말씀은 ‘글씨 필적이 너무도 달랐기에 승소를 자신했다’는 것.
꼭 감정사 전문가가 아니더래도 강기훈의 필적과 고 김기설의 글씨는 완전히 다른 거였다.


영화를 보면서
당시의 공안 당국이 얼마나 오만하고 자신만만 했나를 느낄 수 있었다.

얼마나 조작을 쉽게 생각하면, 글씨체가 같다고 우길 생각을 했을까.
하지만 1991년은 지금과 달리 엄혹하고 살벌한 시절이었다.

강기훈의 혐의는 자살방조죄 그리고 국가보안법 위반이었다.
강기훈은 형법 위반, 국보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치르고 1994년 5월 만기 출소했다.

강기훈의 유죄와 최종 판결까지는 여러명의 검사, 판사들이 관계되었다.
그들이 모두 공범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있었다.
강기훈님과 변호인단은 검사, 판사들에게도 소송을 걸었지만 법원은 유효시효가 지났다면서 기각 하였다.

다큐에서는 판결에 관여한 한 검사의 전화 인터뷰가 짧게 나온다.

그 사람은 대법원 최종 판결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결과와는 무관하게 자신이 당시에 내린 판결은 옮다고 여전히 생각한다고 당당히 인터뷰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자신들의 판결을 통해서 당시에 운동권에서 이어지던 분신이 멈추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의미 부여까지 하고 있었다.


영화에서 강경대학우가 사망하고 매달 전국 대학생들이 분신하는 이름이 하나씩 나왔다.

단지 이름 석자가 화면에 떠오르고 사라지는데 문득 눈물이 왈칵 솟아 흘렀다.

너무도 힘이 없어서 그렇게라도 표현을 해야만 했던 스무살 청춘들.
그분들의 이름 석자가 1991년 내내 이어졌다.

강기훈 님은 진술하셨다. 그해에는 매달 여러명의 장례식을 치뤘다고.
어떤 날은 장례식을 준비하고 있는데 또 누군가가 캠퍼스에서 죽었다고 해서 장례식 마치고바로 장례식 준비 했다고.


그리고 1991년 5월에 대한극장 근처 시위현장에서 토끼몰이로 폭압 사망한 대학생.
김귀정. 나는 오래전부터 왠지 이 분의 이야기에 끌렸었다.

언젠가 인터넷으로 폭풍 검색을 했는데, 당시의 동지들 학우들이 매년 기일에 묘지를 찾아간다는 포스트를 보고 마음이 따뜻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몇 년만에 이 분의 이야기를 갑자기 다큐멘터리에서 접했다.

이전에 시위현장에서 죽은 분의 시신을 훔쳐간 적이 여러번 있었던 경찰.
그래서 학생들은 김귀정의 몸을 결사 보호 했다고 한다.
참으로 상상도 안되는 일이 벌어진 1991년 이었다.

영화는 강기훈 님의 이야기, 동지들의 현재 인터뷰,
예전 자료 화면 등이 주이다.
그런데 엔딩을 여러 열사 분들이 평소에 남긴 말, 글로 마무리 하고 있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행동했던 분들이기에, 그분들의 한 마디 한 마디는 힘이 있었다.
진실의 향기가 났다.
그 말의 마지막을 신기하게도 김귀정 열사로 끝마치고 있었다.

감히 내가 뭐라고 보탤 수 있을까 싶어 미루었던 리뷰.
이 리뷰를 시작하게 한건 김귀정님의 그 마지막 글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당시에 동아리방에 있는 노트를 ‘날적이’라고 하는데
날적이에 김귀정님이 적은 글.

“나는 무엇이 될까.
나는 10년 후에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스물 다섯에 고민해 본 서른 다섯의 모습.
무엇이 되어야 할지, 어떤 사람이 될지를 그리는 그 글이 평범하지만 피부로 와 닿았다.

김귀정 열사도 보통의 대학생처럼 졸업후와 10년 후를 상상했던
지금 우리와 다르지 않은 청춘 이었다.

영화는 촛불집회 전에 이미 제작 중이었고 대선 후에 개봉이 되었다.
그래서인가 더욱 절박함이 묻어났고
감독이자 나레이터인 감독의 목소리가 생생하고 설득력이 넘쳤다.

강기훈 님이 음악과 악기 연주에 상당한 조예가 있음을 알아서 또 반가웠다.
여러 악기를 다루시고 클래식 기타를 수준급으로 연주하셨다.

원래 1991년에도 클래식 매니아 셨다고 한다.
명동성당에서 본의 아니게 가택연금 되었을 때 지리한 시간을 바흐를 생각하면서 보내셨다고 가볍게 말하셨다.

한편 그분이 말씀하시는 ‘시시하고 하찮게 살기’가 팍팍 와 닿았다.^^

용공 조작으로 3년형을 살고 이후에 2015년에 대법원 판결까지.
긴 세월을 늘 비장하게 살아 오셔야만 했다.

어느날 정신과 치료를 받았는데 의사 선생님이 저 표현을 제안하셨다고 한다.
‘한번, 시시하고 하찮게 살아보세요’라고.
강기훈님이 암 투병 중이셨기 때문에 고단하셨는데
저 말을 듣고는 그래 이거야 싶으셨단다.

그래서 앞으로는 시시하게, 하찮은 일 하면서 사는 게 모토라고 감독에게 말하셨다.
후배가 표현하길 강기훈 님은 무뚝뚝하고 고마움 이런 표현 일체 안 하시는 성격이라고.
까칠하고 빈 말도 절대 없으시단다.

처음에는 영화를 보면서 그래서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시시하고 하찮게 사시겠다면서 일체 설명을 않으시고
무슨 일을 하시건 가타부타 토를 전혀 달지 않으셨다.

상대가 오해를 할 소지가 있어도 전혀 변명을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점점 이해를 하게 된다.
그 까칠함에 미소 짓게 된다.

같이 연주회 공연을 준비한 젊은 연주자들은 처음에 강기훈님을 뭐라 부를지 몰랐다고 한다.
그러다가 ‘강기타 쌤’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나도 강기훈 님을 뭐라 부를까 한번 생각해 봤다.
내게 선배도, 선생님도 아니니 엄밀히 그런 호칭도 아니다.
그러다 문득 ‘츤데레’가 떠올랐다.
운동하셨던, 지금은 시시하게 사시고자 하시는,
강 츤데레 님. ㅎㅎ

고단하고 험난한 시절을 헤쳐 오셨지만
이 츤데레가 있어서 참 보기 좋다.
무언가 주눅 든 것도 아니고, 불만과 원망으로 가득한 것도 아니다.

예전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처럼
항상 클래식을 벗하시면서
쓴소리 툭툭 날리시면서
그렇게 앞으로 활약하시면 참 좋겠다.

나도 클래식을 알아가고 싶은데 마땅한 멘토를 정하지 못했는데
강츤데레 쌤과 함께라면 클래식을 공부하기 재밌을 것도 같다.

꼭, 꼭 회복하시라.
기원하겠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4)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1 2 3 4 5
진행중인 이벤트
나의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