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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다이어트-롤프 도벨리] 그래도 뉴스는 어떤 방식으로든 필요하다 | Memento 2020-05-29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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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뉴스 다이어트

롤프 도벨리 저/장윤경 역
갤리온 | 202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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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과잉의 시대에서 정보를 가려 받는 방법. 언론에 대한 역기능은 공감하나 그래도 뉴스는 필요하다. 어떤 방식으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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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과잉의 시대다. 신문, 라디오, TV, 인터넷이 나올 때마다 그랬지만, 스마트 폰은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비약적으로 상승시켰다. 스마트 폰으로 인해 우리는 24시간 전 세계와 연결된 상태로 살 수 있게 되었다. 필요한 정보는 즉시 검색할 수 있고, 동영상으로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없는 게 없다. 반대로 말하면 정보의 바다 속에서 24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말도 된다. <뉴스 다이어트>의 저자는 이 낭비에 대해 일갈한다. “언론 매체들은” “거창한 이름을 달아 보도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소식들은 당신의 사적 세계와 무관하다.(p.15)”

우리 한번 솔직하게 말해보자.” “그 뉴스가 아니었더라면 결코 내릴 수 없었을, 일생일대의 중대한 결정이 하나라도 있는가? (p.32)”라는 질문에 결코 아니다! 나는 있다!고 답변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만큼 무의식적으로 뉴스를 소비한다. 거기에 원치 않는 광고와 개인적인 취향까지 끼워서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저자는 단호히 말한다. 우리는 뉴스에 중독되어 있다! 세상은 뉴스를 소비하지 않아도 잘 돌아간다! 그러니 단호히 끊자! 방대한 이야기들 보다는 내가 잘할 수 있는, 내가 해야 하는 영역에 집중하자. 차라리 책을 읽고, 다큐멘터리를 보자!

분명 저자의 얘기들에 반박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론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 “헛소리를 걸러내는 피터 기능을 담당해주기를 기대하고 바란다. 하지만 현실을 정반대다. 오히려 뉴스 매체가 헛소리를 지속적으로 만드는 주체다. 필터가 아니라 헛소리를 끌어 모으는 자석 역할을 한다.(p.100)” 이러한 헛소리는 자극적이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결국 양질의 기사, 우리 삶과 직결되는 기사보다 헛소리만 모여든다. 뉴스는 오염되었다. 양화가 악화를 구축했다. 과감히 뉴스 산업에서 멀어지자. 남의 불행과 고통을 소비하지 말고, 차라리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저자의 말에 일견 고개가 끄덕여 진다. 뉴스의 역기능에 대해서 누구나 공감하는 만큼 저자의 비판은 유의미하다.

그러나 정말 뉴스를 끊어낼 수 있을까. 아니 끊어야만 할까. 뉴스 산업은 더 이상 자가 치유가 불가능할까. 저자처럼 해낼 수 있을까. 나는 불가능하다. 우선 우리 모두 저자처럼 고상하게 살 수 없다. 사회생활을 위해 때론 가십거리도 필요하다. 고상한 논의만으로 살 수 없다. 점심시간에 주제를 정해 놓고 심도 깊은 토의를 하자. 취지는 좋다. 과연 누구나 가능할까. 그렇지도 않다. 불가피하게 새로운 사람을 매일 만나야 하는 사람이나, 직장 동료 선배들과 밥 먹으면서 가볍게 던질 소재마저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 난관을 헤쳐가야 한단 말인가. 여기에 뉴스는 더 없이 좋은 소재다. 그게 자극적일수록 더. 어쨌든 뉴스는 어떤 방식으로든 필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취지가 뉴스 칼럼 덕이다. 생각해보자. 어쩌면 본인이 유명해진 이유도 뉴스 덕이다. 인기 있는 강연자가 되기 위해서는 강연을 잘하는 본인의 능력이 제일 중요하다. 하지만 그 명성이 다수에게 전해져야만 한다. 어쩌면 자신이 싫어하는 뉴스가 아니었다면 그저 강의 잘하는 강연자에 그쳤을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뉴스가 자신의 삶에 연관이 없다 했지만, 뉴스가 없었다면 그런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얻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날 서 있는 것 보니... 저자가 보기에 뉴스 중독에서 탈출할 준비가 되지 못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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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매체들은 이러한 짧은 소식들에 뉴스 속보세계 주요 머리기사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아 보도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소식들은 당신의 사적 세계와 무관하다. 개인의 영역을 건드리지 않으며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않는다. 물론 전 세계에서 벌어진 소식을 통해 일말의 위로를 받을 수는 있다. 속보가 많을수록 나와 상관없고 무의미한 일들이 늘어나는 것이므로. p.15

우리 한번 솔직하게 말해보자. 그 뉴스들 가운데 당신의 인생, 가족, 사업, 경력, 그리고 몸과 마음의 건강에 보다 유익한 결정을 내리게 도와준 뉴스가 있다면 하나만 꼽아보자. 그 뉴스가 아니었더라면 결코 내릴 수 없었을, 일생일대의 중대한 결정이 하나라도 있는가? p.32

중요도관련성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다. 어떤 뉴스가 나에게 중요하며 내 삶과 밀접한지는 다른 사람이 정의할 수 없다. 국가나 교황, 상사나 심리치료사가 대신 정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매체의 입장에선 대중의 관심을 확실히 끌 수 있는 것은 모두 중요하다. 뉴스 산업의 비즈니스 모델 중심에 바로 이 같은 속임수가 자리하고 있다. 매체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우리와 관련이 없는 뉴스들은 마치 굉장히 중대한 것인 양 포장하여 판매한다. 그로 인해 현대인들은 중대성 대 새로움사이에서 근본적인 갈등을 겪는다. p.36

뉴스 전문가인 기자나 뉴스 소비자인 우리나 뉴스의 중요성을 객관적으로 판가름할 감각 기관이 없는 것이다. p.35

매체의 주목도와 뉴스의 중대성은 상관관계가 없다. 즉 보도가 요란한 것과 중요도는 비례하지 않으며 우리의 삶과는 더 무관하다. p.35

뉴스의 중요성은 각 개인이 결정할 문제(p.44)p.. 어떤 뉴스가 중요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가르는 보편타당한 경계는 어디에도 없다. p.45

뉴스 중독자인 우리는 머릿속의 잘못된 위험 지도를 붙들고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 셈이다. 우리 주변의 다리에 결함이 있는지, 앞으로 다리를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이를 책임지고 관리하는 자는 누구인지 등을 묻고 따지며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다른 곳에만 눈을 돌린다. 다리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 다른 주제와 관련해서도 우리는 지극히 부차적인 문제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p.53) ... 일상적인 뉴스 소비는 사건, 사고의 중요성을 판단하는 감각을 무디게 한다. 그로 인해 현실과 크게 동떨어진 판단을 내리게 만든다. 쉽게 말해 날마다 습관적으로 뉴스를 소비하면, 현실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 이는 잘못되고 부적절한 행동으로 이어진다. 당신이 언론을 통해 접한 위험은 진짜 위험이 아니다. p.54

팩트라 불리는 사실들은 우리의 생각을 가로막는다. 사실이 넘쳐나면 생각은 그 안에 갇힌다. 뉴스를 소비하면서 당신은 세상을 이해하고 있다는 환상에 빠지게 돈다. 이 같은 환상은 자기 과신으로 이어진다. p.60

뉴스 소비는 이 같은 논리적 오류(사후확신)을 강화한다. 뉴스는 하나의 이야기를 짧은 길이로 축약해 전달해야 한다. 이 조건을 채우려면 조악한 단순화 과정이 유일한 답이다. ... 그러면 다른 수많은 원인과 사건과 원인들 사이에 발생한 상호작용 및 반작용은 모두 침묵 속에 묻힌다. (강화 효과와 완화 효과가 동시에 일어난다.) 그렇게 뉴스 소비자들은 세상을 실제보다 더욱 단순하게 보게 된다. p.67

뉴스 보도는 주로 분석된 자료라는 이름으로 팔리지만 사실 그저 일화에 지나지 않는다. p.71

오늘날 매체들은 토크쇼 사회자, 스포츠 방송 진행자, 슈퍼모델 혹은 유투버에게도 이유를 붙여 셀럽이라는 칭호를 부여한다. 그런 식으로 명성과 업적 사이의 관계에 구멍이 나고 가짜 명성이 생겨난다. 이 유명인은 소위 자기 언급 시스템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셀럽이 셀럽인 이유는 그가 셀럽이기 때문이다. 그녀 또는 그가 어떻게 셀럽이 되었는지는 무척 빠르게 잊혀 진다. 게다가 뉴스라는 혼잡한 서커스 속에서는 그들이 셀럽이 된 이유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 p.73

뉴스 매체들은 명성과 업적 사이를 이었던 끈을 끊어버렸다. 뉴스를 소비하면 당신은 가짜 뉴스와의 싸움에서 패배할 뿐 아니라, 가짜 명성과의 싸움에서도 지게 된다. p.76

매일 신문을 일는 당신은 진실을 읽는 것인가 아니면 프로파간다를 읽는 것인가? -소설가 업튼 싱클레어 p.93

우리는 언론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 즉 독자나 시청자를 위해 헛소리를 걸러내는 피터 기능을 담당해주기를 기대하고 바란다. 하지만 현실을 정반대다. 오히려 뉴스 매체가 헛소리를 지속적으로 만드는 주체다. 필터가 아니라 헛소리를 끌어 모으는 자석 역할을 한다. p.100

누군가의 불행을 뉴스로 소비하는 일에 당신의 인간애를 할애하지 말자. 이 세상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며 진짜 도움이 되고 싶다면 뉴스가 아닌 다른 길을 찾아보자. 고난에 충분히 동참할 수 있는 방법은 따로 있다. p.111

테러리즘은 뉴스 매체 덕분에 작동한다. 테러리스트들의 실제 무기는 폭탄이 아니라, 폭탄이 유발하는 두려움이다. 두려움이라는 위협은 폭탄보다 막대한 효과를 발휘한다. 이를 실현하는 것이 바로 뉴스매체다. 뉴스 매체는 테러리스트가 유발하는 두려움을 대중이 직접 느끼도록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p.115

오늘날 정보는 결코 부족한 자원이 아니다. 반면 집중력은 점점 더 부족해지고 고갈되고 있다. p.125

전설적인 투자가 워런 버핏은 능력 범위라는 놀라운 개념을 이야기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하곤 한다. 버핏이 말하는 능력 범위란, 우리 각자가 정통하고 압도적으로 해낼 수 있는 한계 범위를 의미한다. 우리는 이 범위 밖에 놓인 것은 부분적으로만 알거나 아예 이해하지 못한다. 버핏이 인생 모토는 다음과 같다. “자신의 능력 범위를 알고 그 안에 머물러라. 이 범위의 크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건, 범위의 경계선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IBM의 창업자 토머스 왓슨은 이 명제를 몸소 입증한 살아 있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왓슨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는 천재가 아니다. 그러나 나는 특정 분야에서는 뛰어나다. 그리고 나는 이 분야에만 시종일관 머물 것이다.” p.135

당신의 의견이 틀렸더라도 당신의 의견을 뒷받침하는 정보는 뉴스를 통해 쉽게 얻을 수 있다. 오늘날 뉴스는 단순한 시추기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시추기는 더 이상 잘못된 견해에 구멍을 내지 않는다. (예전에는 옳지 않은 의견을 무력화하는 뉴스가 생산되기기도 했다.) 대신 그 견해를 공고히 할 뿐이다. p.146

기자들은 초점을 예방보다는 사후 행동에 맞춘다. p.154

기자들은 쉽게 접할 수 없는 것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그리고 부재하는 것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치환한다. p.156

정보가 무엇을 소비하는지는 꽤 명백하다. 정보는 바로 수신자의 주의를 소비한다. 정보의 풍요는 주의의 빈곤을 낳는다.” -허버트 사이먼 p.166

뉴스를 소비하면, 언젠가 해결될 거라는 희망조차 희박하며 결코 풀리지 않을 문제에 지속적으로 직면하게 된다.” -조디 잭슨 p.180

뉴스 산업은 사회의 맹장이다. 지속적으로 염증을 일으키지만 없어졌을 때 꽤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p.204

음식이 달라지면 몸이 달라지듯이, 소비자가 달라지면 시장도 변화한다. 소비자가 몸을 틀면 시장은 금세 방향을 선회할 것이다. p.215

지금 우리는 지식의 폭이 아닌 깊이에 집중해야 하는 시대에 산다. 방대한 양의 정보를 얻으려 애쓰지 말고 당신에게 반드시 필요하고 당신의 능력 범위와 연관된 내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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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한강-김세영,허영만] 역사는 꼭 교과서로 만 배우는 게 아니다 | Memento 2020-05-2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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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세트] 오! 한강 (총5권/완결)

김세영,허영만 저
가디언 | 2019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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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꼭 교과서로 만 배우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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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 역사를 배울 것인가. 우선 교과서가 가장 안전하고 무난한 방법이다. 상황마다 다르지만 교과서만큼 가장 논쟁적이지 않고 합의된 역사서는 드물다. 하지만 재미가 없다. 왜 그럴까. 역사 수업시간을 떠올려보자. 시험에 나온다고, 꼭 외워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들 중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이야기는 무엇이 있을까. 하나도 없다. ? 살아 있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논쟁을 피하기 위해 맥락을 지웠고, 애매하거나 중의적인 사항들은 삭제된다. 진실보다는 사실을 전달해야 하며, 그래야만 세상에 나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잠을 부른다.

반면, 야사나 비화들은 시간이 지나도 잊혀 지지 않는다. 시험에 절대로 나오지 않는다고 강조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뇌리에 박혀서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잠자던 학생도 웃음소리를 듣고 일어나기 마련이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그렇게 현실이 된다.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임을 깨닫고, 과거의 망령이 아닌 현실의 고뇌를 담고 있음을 아는 순간. 역사는 단순히 기록을 넘어서 현재에 되살아난다.

모두가 역사를 전문적으로 배울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역사에 재미를 느끼고 편하게 생각해야 한다. 최소한 시험과목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역사도 인문학의 한 분야다. 사람을 위한 학문이지, 사람의 뇌를 고통 받게 하는 학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정통 역사서가 아닌, 하지만 정통 역사서만큼 시대를 관통하는 만화들이 많았으면 한다. 역사에 흥미를 얻고, 시대에 관심을 가지기 위해서 이만큼 대중적인 재료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걱정한다. 이렇게 역사를 배우게 되면 잘못된 정보를 가지게 되어 왜곡이 심해지지 않을까. 하지만 기우다. 관심이 커지면 배움은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 그 배움의 과정에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사실을 통해 진실에 다다르려는 노력은 지속될 것이다. 오히려 영화, 드라마, 만화 등의 팩션을 지나치게 경계하는 것은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는데 대한 불쾌감이 아닐까 싶다. 도서관 안에 먼지만 쌓이는 연구서 100권 보다 때로는 핫한 드라마 한 편이, 이러한 만화책 시리즈가 더 없이 중요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연구서가 없다면, 2차 가공물이 나올 수 없음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한강>은 분명 역사서는 아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대변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 일부를 가장 쉽고, 가장 사실적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인지 모른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을 일부나마 볼 수 있는 기회지 않을까. 아직은 완결이 나지 않았지만, 어쩌면 나 역시 그 후반부에 일부일지 모르는 이야기가 어떻게 채워질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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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 없는 놈은 맞아서도 작살나지마는, 때리서도 작살나는 법이요. 그것을 참고 살아야지 잉. p.190

짐성들은 속고 속이도, 땅하고 식물들은 속이지 않어. 뿌린 대로 거두는 벱잉께. 니는 니 헐 일이나 디지도록 해라. 묵을 거시 없으믄 땅이라도 받아 묵을 참으로. p.202

 

[2]

먹어야 한다는 게 또한 근본적인 죄악이었다. p.121

콩 볶는 소리에 눈을 뜨니/숲속은 아직도 악몽에 푸르도다./하늘은 본디 검고/땅은 본디 누른 것을/누구는 붉다 하고/누구는 푸르다 하도다./입 다물고/한결같이 새끼 치고/살아가면 될 것을/서로서로 이쁜 꽃을 피운다고/무참히 꺾어버리도다./눈망울이 고운 여인/고백 한 번 못 해본 채/내 청춘/짙푸른 녹음 속을/헤매도다. p.140

원래 똥 속의 구더기 같은 거지.

그보다 낫다고 믿는 건 안 되는 건가요?

믿는 건 구역질 나는 자존심에 불과해...

이런 인간들이 어찌케 문화랑 역사를 창조할 수 있었는지...

역사 자체가 인간의 피와 살과 똥으로 이루어진 거니까...

근디 끝긑내 포기해서는 안 되는 거 아니오? 절망이 곧 타락이고 죄악 아니오?

아직도 혁명에다 희망을 걸고 있나?

그 수밖에 더 있겠소?

부럽군. p.188

 

[3]

사람은 누구나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으려 애를 쓴다카이~ 허무한 일이지. 그래 봐야 전부 똥으로 나올 뿐 아닌가베~ 철학이니 사상이니 하는 것들도 똑같은 걸세. p.99

나는 대통령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대통령과 싸울 사람조차 없다는 국민이 너무 불쌍하다. 독립투사로서의 이승만은 존경하나 행정 수반으로서는 적격이 아님이 드러났다. (조봉암) 143p.

단일화가 되건 안 되건 이번 선거는 이승만이 이기게끔 돼 있는 거요.

어차피 질거믄 구 형은 뭣땀시 그리 열성이었지?

그게 바로 민주주의니까... p.178

 

[4]

우리 집 가난은 너무 전형적이고, 드라마틱해요. 안 그래요?

냉소적이군.

그런 건 아닐 거에요. 가난해서 고통스러운 일이 많지만 가난한 사람만 알 수 있는 인생의 기쁨 같은 것도 있거든요. p.8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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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여행자를 위한 파리x역사-주경철] 나와 파리는 안 맞는 듯 | Memento 2020-05-10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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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도시여행자를 위한 파리x역사

주경철 저
휴머니스트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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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둘 다 맞을 것이다.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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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치 않은 기회로 독일과 프랑스를 여행할 기회가 생겼다. 주로 독일의 주요 도시 몇 군데와 파리를 묶어서 다녀오는 코스였다. 첫 해외여행이다 보니, 모든 게 새로웠다. 애석하게도 새로움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길도 모르고, 문화도 모른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은 가장 큰 난관이었다. 부딪혀 보는 수밖에 다른 길은 없었다. 게다가 당시 유럽은 테러 문제로 민감한 시기였다. 심지어 한 달 뒤에 내가 갔던 장소에서 무장테러가 일어났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회사의 직원은 여행은커녕, 공포의 순간을 벗어난 다음날 바로 귀국했다고 했다. 유럽은 지상 낙원은 아니었다. 기차역에는 영어로 테러를 조심하라는 배너를 보았다. 경찰이나 군인에게 달려오지 말라는 문구를 보는 순간 내가 겁에 질려 달리다가 총에 맞는 상상이 떠올랐다. 심심치 않게 무장경찰(혹은 군인)이 총을 들고 관광지에 상주하기도 했다. 우리가 북한의 도발을 무심히 넘기듯, 그들도 그랬을까. 당시 (아마도) 유로파가 한창이어서 여기저기 흥분한 사람들이 넘쳐서 더욱 그랬는지 모르겠다.

이런저런 악재들이 겹쳐서 일까. 2일 정도 짧게 파리를 경험했지만, 긍정적인 기억이 없다. 지하철은 더럽고 정말로 찌릉내 가득했다. 한국의 지하철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내 눈 앞에서 중국인의 가방을 소매치기하는 장면을 보았고,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 몽마르트 언덕에서는 야바위꾼이 넘쳤고, 가게는 일찍 닫았으며 불친절했다. 여기저기서 알 수 없는 모욕감을 느꼈지만 (아마도 인종차별적인 발언이나 행동으로 추정했지만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두려움에 질려 자리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공원에서 연인과 여유를 즐기는 시민들, 서로 속삭이며 사랑을 나누는 게이 커플들, 아름다운 건축물과 이야기를 담고 있는 문화재들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하긴 했다. 일주일만 더 주어진다면 좋겠다는 생각과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연일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혼란스럽기에 아름다운 것일까. 혁명, 혼돈, 이것들이 파리가 아름다워진 원동력일까.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부지런히 걸으며 눈보다는 머리만 바쁘게 움직였다.

사람들은 파리는 정말로 멋진 텍스트’(p.519)”이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번성하는 도시라 칭송한다. 파리를 동경하고, 찬양한다. 하지만 루소처럼 나에게 파리는 더럽고 악취가 나며 시커먼 집들이 흉한, 냄새나는 걸인들과 가짜 차를 파는 여인들로 가득한 곳처럼 느껴졌다. “아마 둘 다 맞을 것이다.(p.259)” 무엇보다 내가 파리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더 그러할 테다. 모른다는 것은 두려움을 낳기 마련이다. 그나마 한국의 위대한(?) 파워블로거들이 없었다면, 같이 간 동료들이 나를 떠안고 가지 않았다면 절대로 가지 못했을 여행지이기도 하다. 아는 만큼 보는 법. 딱 나는 블로거들이 올려준 정보만큼 파리를 보고 왔다.

주경철 교수의 <도시 여행자를 위한 파리x역사>는 이런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 준다. 파리 시내 곳곳에 있는 유적들의 역사와 이야기를 찬찬히 설명해 준다. 내가 걸었던 그거리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무심히 지나쳤던 그 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걷기에 지쳤던 그 장소에서 위대한 혁명이 일어났었다. 시간상 들르지 못했던 그곳은 한 번쯤 들어가서 구경을 했어야 했었다. 주경철 교수의 안내대로 내가 갔던 길을 되짚어 본다. 공포와 피로는 늘 그렇듯 시야를 가리고, 이성을 마비시킨다. 게다가 아는게 하나도 없었던 그때를 돌아본다. 파리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된 지금, 다시 한 번 파리를 가게 된다면 무엇을 할까. 그래도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되었으니, 알차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갈 시간과 돈이나 있을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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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강은 그 차이가 훨씬 적고 일 년 내내 강물이 풍부한 덕분에 강을 통한 운송이 일찍부터 발달했다. ... 프랑스 동부 및 남부 지역과 북해 연안 지역을 연결하는 교역이 발달하기 좋은 조건이 갖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이는 파리가 성장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소다. 파리시 문장에 배가 그려져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문장에 함께 쓰인 슬로건은 흔들리더라도 가라앉지 않는다 Fluctuat nec mergitur’이다. p.24

원래 파리 주민의 세련된 문화유산과 야만족이 가지고 온 강건한 문화 요소가 합쳐지며 프랑스 문화가 형성되어 갔다. p.55

성당은 그 자체가 중요한 텍스트다. 글을 못 읽는 서민에게 건물과 그 조각은 교리를 가르쳐주는 교과서와 다름없었다. ... 초기 신학자들은 읽기보다는 보기로 신의 충직한 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감각의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영적인 원리는 지성보다는 감각을 통해 받아들일 때 우리 영혼은 더 튼튼하게 할 수 있다. <성서>보다도 <성서> 내용을 표현한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p.85

당대 주류 신학자나 종교인의 관점에서 신앙은 그냥 절대적인 것이지, 거기에 모호함과 부조리함이라고는 아예 없었다. 믿음으로 산을 움직일 수 있다 하지 않는가. 부조리? 부조리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cerdo quia absurdum,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인간의 머리로 헤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아벨라르의 새로운 철학은 완전히 다른 견해를 내놓는다.(p.103)

마치 어둠이란 빛이 있어야 할 곳에 없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듯이, 죄란 존재가 아니라 부재에 있기 때문이다.(p.104)

파리 시내에는 말 동상이 많은데, 여기에는 숨겨진 의미가 있다. 말이 앞다리를 모두 들고 뒷발로 서 있으면 그 말을 탄 사람은 전사한 인물이다. 앞다리를 하나만 들고 있으면 암살당했거나 전투 중 부상을 입은 후 사망한 인물이다.(에티엔 마르셀이 그런 경우다.) 네 다리 모두 땅에 붙어 있으면 침대에서 눈을 감은 분이다. 그렇지만 이 규칙이 엄격히 적용된 건 아니다. p.157

프롱드의 난은 기이한 방향으로 끝났다. 처음에는 귀족부터 서민까지 모든 사람이 국왕에게 저항했다가 끝판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국왕에게 복종을 약속하는 이른바 복종의 전염병사태가 벌어졌다. 모든 권위가 실추한 가운데 왕권만이 홀로 강력해졌다! 이른바 절대주의는 루이 14세의 작품이기 이전에 국민이 원하는 바였다. p.225

당시 파리는 엑스피이 수도원장이 보기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번성하는 도시였고, 루소에게는 작고 더럽고 악취가 나며 시커먼 집들이 흉한, 냄새나는 걸인들과 가짜 차를 파는 여인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아마 둘 다 맞을 것이다. p.259

사회가 바뀌어야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고,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사회가 바뀐다. 다시 말해 사회와 의식은 함께 변화한다. p.261

(볼테르)는 실로 엄청나게 많은 글을 썼다. 글을 쓰는 이유는 행동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홀로 깊은 사색에 빠지는 부류가 아니라, 문제의식을 가진 현실 참여적 지식인이었다. 그야말로 당대의 모든 문제에 대해 논쟁을 벌였고, 그것을 글로 남겼다. p.264

프랑스 혁명은 프랑스뿐 아니라 세계사에서 실로 의미 있는 사건이다. 유럽 사회, 더 크게 보면 인류 사회가 공통으로 안고 있던 신분의 문제, 불평등의 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과감한 해결책을 찾아보려 했기 때문이다. 18세기 프랑스는 가난한 사회가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였다. 이 문제가 결국 국가와 사회를 뿌리째 흔들었다. p.276

역사는 두 번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한 번은 비극, 한 번은 코미디. -카를 마르크스 p.369

파리는 정말로 멋진 텍스트이다. 서구 문명이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폭력적으로 분출되었다가 누적된 중심점이다. p.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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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김누리] 역으로 지금 이대로면 불행은 당연한 것이다. | Memento 2020-05-03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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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저
해냄 | 202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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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니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는 저자의 책 제목은 오히려 역으로 읽힌다. 지금 이대로 우리가 살아간다면,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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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내 삶은 왜 이럴까? 살면서 한 번쯤은 고민해 본다. 이다지도 열심히 일하고, 번 돈도 아껴서 가치 있게 쓰고 있건만, 행복한 삶은 항상 먼 꿈일 뿐이다. TV에 나오는 막장 뉴스들을 보며 도대체 우리 사회는 왜 이럴까? 고민해 본다.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많이 일하며, 손꼽히는 경제 강국임에도, 가장 많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사회적으로 불행한 사람들이 넘쳐난다. 몇 번의 투표,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바뀌는 것은 없다. 점점 포기할 것만 늘어간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 헬조선이라고 말한다. 불행은 우리의 일상이다.

여기에 저자는 책 제목으로 답한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급변하는 세상에 잘 적응하는 것 역시 생존에 중요하다. 하지만 늘 적응하기만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지금의 세상은 적응만으로 생존할 수 없다. 방법은 새로운 상황을 창출해내고 주도해야 한다. “우리는 새로운 상황을 만들고, 잘못된 상태를 바꿀 만한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 필요한 것은 단지 그것을 실행에 옮길 용기와 비전이 없을 뿐(p.345)”이다. 저자는 그 용기와 비전을 68혁명과 분단체제 극복에서 본다. 여기서부터 우리나라의 잘못된 현실을 인식해나가야만, “현대사회의 초등교육을 거쳐 새로운 상상력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상상력은 무엇으로 이뤄질까. 아마도 민주주의가 아닐까. 촛불혁명도 이뤄낸 대한민국에서 무슨 민주주의를 운운하냐고 할지 모르겠다. 이미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고 할 수 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정치적 민주주의에 국한된다. 저자의 평가대로 대한민국은 정치 민주화가 잘 이뤄진 나라다. 반면 사회, 경제, 문화 민주화 영역은 여전히 후진국이다. 우리 사회의 여러 병폐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저자는 독일과의 비교를 통해 여러 예시까지 제시해 준다. 우리의 일상에서는 아직도 민주주의는 요원하다. 민주주의는 직장 앞에서 멈춰서고, 약탈적 시장논리 앞에 무력하다. 노조는 악의 축으로 취급받고, 이견을 내고 질문하는 것에는 여전히 인색하다. 파시즘적인 병영문화가 우리 머릿속에 자리 잡고 스스로를 검열하고 착취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68혁명의 부재와 분단체계의 한계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68혁명의 영향권에 있지 못하다. 이 시기에 한국은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은커녕 가장 억압이 강력해졌다. 분단체계를 골자로 한 반공주의 강화, 독재를 기반으로 한 파시즘적 병영문화는 해방보다 억압의 내면화를 주었다. 주민등록법, 국민교육헌장, 예비군 훈련, 교련 수업들은 한국인들에게 내 안의 파시즘아주 일상적인 파시즘을 내재시켰다. 그리고 이것들이 한국의 가장 근본적인 생활 문화다. 안 되면 되게 하라. 까라면 까라. 이런 상명하복의 문화가 여전히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도 누구나 한국 사람이라면 그렇게 행동하거나 할 수 있다.

이것이 해결 될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다. 바로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87체제의 성립이다. 하지만 변화의 주역이었던 86세대는 세대적 한계에 따라 이상 사회에 대한 비전과 상상력의 지평이 협소했고(p.133) 정치 민주화, 즉 지배 세력의 교체만 이뤄냈다는 한계를 지닌다. 분명 그들 탓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아쉬울 따름이다. 사회 전반의 권력을 장악한 채, 개혁보다는 정치 게임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386 세대유감>에서 평가한바, 독재를 끝냈지만, 독재의 수혜를 가장 많이 받았고, 독재와 싸우다 가장 독재와 닮아버린 세대. 우리는 3김 시대가 결국 두 사람이 대통령을 하고 나서야 종료된 것처럼, 386 시대가 그들끼리 돌아가며 마지막까지 버티는 것(<386 세대유감> p.424)”을 기다려야만 하는 걸까.

저자는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의 능력은 충분하다고,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와 비전이다. 이는 개개인이 민주주의자가 되어야 함을 전제로 한다. 이는 개개인이 강한 자아를 가질 때 가능하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 그래야만 우리 일상에서의 민주주의를 이끌어내고,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치적인 상상력, 비전을 획득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누구보다 정치적이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이란 단어는 매우 위험한 단어다. 심지어 욕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정치는 우리의 일상과 매우 관련이 깊다. 현대 사회에서 삶 자체가 정치적이다. 내가 사는 생산품, 내가 보는 글, 내가 말하는 이야기. SNS에 올리는 그 어떤 사진들조차도 정치적이지 않은 게 없다. 다만 우리가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책을 덮고 나니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는 저자의 책 제목은 오히려 역으로 읽힌다. 우리가 비정치, 탈정치를 주창하며 민주주의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분단체제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없다면. 우리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상황을 외면한 채 버티기에만 급급하다면, 지금 이대로 우리가 살아간다면,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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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프랑코 베라르디는 <죽음의 스펙터클>에서 한국 사회의 특징을 네 가지로 짚었습니다. ‘끝없는 경쟁, 극단적 개인주의,(p.6) 일상의 사막화, 생활 리듬의 초가속화가 그것입니다. p.7

우리가 이룬 이 엄청난 정치적, 경제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나요? ... 무엇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p.7

인간 존엄은 불가침하다라는 근대 사회의 상식을 헌법 제1조로 가진 나라가 바로 독일입니다. 저는 우리가 헬조선을 벗어나 유토피아로 진입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존중(p.8)하는 상식적인 나라가 되기를 소망할 따름입니다. p.9

촛불집회가 보여주는 것은 이것이다. 한국 민주주의가 얼마나 위대한지, 그리고 동시에 얼마나 취약한지,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p.35

이 나라에서는 광장 민주주의일상 민주주의가 괴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충분히 민주주의자가 되지 못한 거지요. p.37

사회 민주화 ...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사회 각 영역에서 개별 조직 내의 구성원들이 어느 정도까지 자치적인 운영을 하고, 자율적인 결정을 하느냐 하는 정도를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p.43) ... 구성원들의 의사가 어떻게 민주적으로 모아지는가 하는 것, 즉 조직(p.44)의 지배구조가 어떻게 조직 내부에서 형성되는가 하는 것이 사회 민주화의 요체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사회 민주화의 기본 원리는 구성원들의 자치입니다. p.45

경제 민주화 ... 기본적으로 경제 기구, 특히 기업 안에서 과연 어느 정도 민주적인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는가를 경제 민주화의 기준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 가장 민주화가 안 된 곳이 어디일까요? 바로 기업입니다. ... 한국 기업에서는 그 소유자가 그야말로 전제 군주처럼 행동합니다. p.50

우리 시민들은 국가시민으로서는 의회와 정부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주권을 가진 존재이다. 그러나 경제시민으로서는 노예로 산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볼프강 미슈니크(1976년 노사공동결정제 법안을 대표 발의, 자유민주당(FDP) 원내대표)가 법안을 발의하면서 한 연설 p.57

문화라는 건 인간과 인간이 맺는 관계들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 민주화란 바로 이 관계들의 민주적 변화를 뜻하지요. 남성과 여성, 교사와 학생,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이런 관계들이 수평적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p.61

베트남전쟁을 보면서 도덕적 충격을 느끼고, 미소 간의 핵무기 경쟁을 보면서 부조리한 세계를 체험한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 전체를 부정하고 기성 가치 전체를 회의하는 상황에 이른 것입니다. 그들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가치 질서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기성세대가 이루어 놓은 것은 기실 거대한 억압의 체계이고, 이것을 혁파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지요. 여기서 모든 형태의 억압(p.72)으로부터 해방이라는 68혁명의 핵심 구호가 탄생하게 됩니다. p.73

권력을 비판하지 못하는 개그가 약자를 공격하는 형태는 그 자체로 한국 사회의 병리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p.89

모든 지배적인 지식은 지배하는 자의 지식이라고 보기 때문에 지식 그 자체보다는 특정 지식이 지배적인 지식이 된 경로를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 p.90

많은 미래학자들이 동북아시아가 21세기에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동북아시아의 현실은 어떤가요. 지금 이 지역은 꽁꽁 얼어붙어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봅니다. 일본의 과거, 한반도의 현재, 중국의 미래가 그것입니다. / 일본은 많은 장점을 가진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묶여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아시아에서 어느 나라도 일본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일본의 과거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의 현재란 금방 이해하시겠지요. 한반도의 분단으로 인해 동북아시아 전체가 물리적으로 소통이(p.107) 안 되는 형국입니다. 중국의 미래가 뜻하는 것은 미래의 중국이 패권주의로 나아갈 것이라는 공포를 주변국들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p.108

파시즘이 남긴 최악의 유산은 파시즘과 싸운 자들의 내면에 파시즘을 남기고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베르볼트 브레히트 p.130

결국 문제는 민주화 이후 86세대가 보인 행보입니다. 그들은 정치 게임에 능한 반면, 사회개혁에 무능했습니다. 이것이 한국의 86세대와 독일의 68세대의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p.135) ... 한국 사회가 질적으로 새로운 사회로 변화하지 못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86세대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도덕적 우월감입니다. ... 그들의 상대는 언제나 외세에 기대어 기회주의적으로 사적인 이익만을 탐하는 수구 보수들이었습니다. ... 항상 도덕적으로 우월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p.137

68혁명의 부재 때문에 지금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시대착오적인 현상들 ... 첫 번째는 인권 감수성의 부재(p.141) ...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예의가 정말 부족 ... 두 번째 현상은 소비주의 문화(p.143) ... 소비를 해야 일자리가 생기고, 경제가 발전하고, 잘사는 나라가 된다는 논리 ... 소비주의와 물질주의 논리만이 전면적으로 지배하는 참으로 놀라운 사회 p.146

민주주의 최대의 적은 약한 자아 ?테오도르 아도르노 p.148

성 정치학이 탄생 ... 깊은 죄의식을 내면화한 인간일수록 약한 자아를 갖게 되고, 약한 자아를 가진 인간일수록 권력에 굴종적인 인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 죄의식이라는 성적, 심리적 문제가 권위주의라는 정치적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지요. / 이를 요약하면 인간의 성을 억압하면 억압할수록, 그 개인은 권력에 굴종적인 인간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권위주의적 성격이론이라고 합니다. p.152

세 번째 특징은 한국 사회가 권위주의 사회라는 것입니다. (p.156) ... 살인적인 경쟁은 승자 독식의 논리와 연결되어 권위주의 문화를 더욱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p.157

교육, 즉 에듀케이트라는 말은 밖으로(e-) 끌어낸다(duc-)’는 뜻입니다. ... 고유한 재능은 사람 안에 이미 다 들어 있고, 그걸 끌어내는 게 교육이지 지식을 쳐넣는것이 교육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가 한국에서 배운 교육은 사실 반교육에 가깝습니다. p.159

우리 한국인은 경쟁을 마치 정의의 유일한 기준인 양 절대시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정의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정의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여기서 독일과 한국의 차이가 분명해집니다. 독일 사회는 그 구성원에게 최대한 많은 기회를 제공하려고 하는 반면, 한국 사회는 그 구성원에게 최소한의 기회마저 박탈하려고 합니다. p.165

한국 사회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자살 사회로 굳어진 것은 바로 한국 사회가 자기착취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사회적, 심리학적 구조를 정확히 투시해야 합니다. 사회적 문제를 개인적 문제로 부단히 전가하는 지배자들의 기만적인 논리를 내면화하고 신념화해서는 이 사회를 변혁할 수 없습니다. p.169

소외의 문제(p.176) ... ‘배제라기보다는 전복에 그 핵심이 있습니다.(p.177) ... 대상이나 현상이 본래는 의 필요에 의해서 생겨난 의 것이었는데, 이것이 점점 로부터 멀어져 낯설어지더니 어느 순간부터 독립적으로 움직이면서, 이제는 역으로 를 지배하고, ‘는 그것에 종속되는 전도 현상 p.178

여성해방 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은 68혁명의 중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였는데, 이제야 한국에서 그런 현상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지요. p.181

유럽과 서구의 흐름을 보면 어느 사회에서나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더 진보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여성들이 어느 사회에서나 성적 억압과 사회적 억압, 즉 이중의 억압을 당해왔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여성은 남성에 비해 고통과 억압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저는 진보란 정치적 좌우 개념을 넘어서 보다 넓은 의미에서 고통과 억압에 대한 민감성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겪은 고통과 억압을 보다 민감하게 느끼는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 좌파라는 겁니다. 이에 반해 보수는 대개 고통과 억압보다 권력과 질서에 민감하지요. p.182

한국 사회에서 12년 동안 교육을 받고, 3년 동안 군대를 갔다 온 저 같은 남성이 정상적인 인간이 되는 게 가능한가? 제 경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p.186

지금까지 인권 감수성에서부터, 소비주의, 권위주의, 자기착취와 소외, 성도덕 문제에 이르기까지 68혁명의 부재가 한국 사회에 드리운 그늘들을 짚어보았습니다. 이런 문제들이 서구에서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깊이 있게 논의되고 실천적으로 극복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개념조차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습니다. 비유컨대 한국 사회는 서구 사회가 50년 전에 졸업한 현대 초등학교를 아직도 마치지 못한 셈입니다. 그들과 반세기의 격차가 생겨난 것이지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젊은 세대가 제기하는 헬조선담론이나 꼰대담론은 바로 우리가 제대로 현대사회의 초등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으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 그럼 한국 사회는 왜 이런 지체된, ... ‘예외 국가가 되었을까요? 그것은 우리 사회가 거쳐온 독특한 역사적 경로 때문입니다. 식민 지배와 군정, 분단과 냉(p.188), 내전과 반공주의, 군사독재와 민주화라는 격변의 역사 속에서 생겨난, 대한민국만이 거쳐 온, 아주 독특한

역사적 경로가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분단체제는 지난 70년간 우리 사회를 아주 기형적인 사회로 만든 핵심적인 요인입니다. p.189

인류의 역사는 해방의 역사였고, 모든 해방은 자기해방이었습니다. p.215

독일의 가장 우파 정당이 한국의 가장 좌파 정당보다 더 좌파적인 것이 현실입니다. 그 정도로 한국의 정치 지형은 극단적으로 우경화되어 있습니다. p.229

한국은 보수와 진보가 경쟁하는사회가 아니라, ‘수구와 보수가 과두 지배하는사회입니다. p.234

보수가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공동체입니다. 개인보다 공동체를 중시하는 것이 보수의 첫 번째 특징입니다. 개인을 공동체보다 더 중시하는 쪽은 자유주의이지요. 그래서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를 구분할 때 결정적 기준이 개인을 우선하느냐, 공동체를 우선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 보수가 공동체를 중시하기 때문에 바로 가장 근원적(p.235)인 공동체로서 민족을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는 대부분 민족주의자인 거지요. ... 다음으로 보수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역사입니다. 전통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과거에서 배우려는 자세가 보수의 자세이지요. ... 또한 보수주의자들은 문화도 중시합니다. 세련된 언어를 쓰려고 노력하고, 품위와 품격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p.236

수구란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하여 외세와 손잡고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하는 무리들입니다. p.237

고려대 김우창 명예교수는 한국 사회가 오만과 모멸의 구조로 되어 있다고 규정했습니다. 이 살벌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은 승자는 턱없이 오만하고, 패자는 너무나 깊은 모멸감을 내면화하고 살아간다는 것이지요. p.240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극단적으로 우경화된 정치지형을 가진 나라입니다. 지난 70년 동안 한국 정치는 보수와 진보가 경쟁을 한 것이 아니라, 수구와 보수가 권력을 분점해 왔습니다. 이것이 한국 사회가 오늘날 정치 민주화와 경제성장,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헬조선이 된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p.245

이 기형적인 국가, 이 부조리한 사회를 만든 것은 바로 남한과 북한의 냉전체제입니다. (p.262) ...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통일이 아니라 냉전체제 극복이라는 얘기입니다. p.263

독일 통일은 흡수 통일이라는 한국인의 잘못된 인식은 언제나 역사를 승자의 관점에서 보는 관성에서 나온 오류입니다. 현재 독일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정치 사회적 변화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이러한 오류의 수정이 필요합니다. ,,, 우리가 독일 통일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두 번째 사항은 독일 통일에 천문학적 비용이 들었다는 주장입니다. p.293

동도의 몰락은 사회주의의 몰락이자, 낙관적 이난관의 몰락을 의미합니다. p.303

세 번째 오해는 독일이 우리와는 달리 통일 환경이 훨씬 우호적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 사실 동독과 서독은 서로 통일을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습니다. p.305

한반도의 통일이란 지난 100년 동안 있었던 다양한 사회주의의 실험 중에서 가장 권위적인 사회주의 국가와, 지난 세기의 수많은 자본주의 사례 중에서 가장 약탈적인 자본주의 국가가 합쳐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통일은 고질적인 병을 앓고 있는 두 국가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 그래서 저는 한반도의 통일은(p.319) 남북이 자신의 고질병을 치유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권위주의적 사회주의를 민주화하고, 동시에 남한의 약탈적 자본주의를 인간화하는 것이 통일의 사회적 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p.320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통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분단체제를 해소하는 것입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전제는 한반도에서 전쟁은 절대(p.328) 안 된다는 공동의 인식입니다. p.329

우리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상상력이 너무도 빈약하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를 종속변수로 보는 태도도 바뀌어야 합니다. (p.344)리가 움직임으로써 새로운 상황을 창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바뀌는 상황에 무조건 적응하려고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새로운 상황을 만들고, 잘못된 상태를 바꿀 만한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지 그것을 실행에 옮길 용기와 비전이 없을 뿐입니다.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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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정재찬] 그래, 이것도 인생 | Memento 2020-05-01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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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정재찬 저
인플루엔셜 | 2020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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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음과 책, 시, 그리고 쓸데없는 단상들. 오랜만의 기분 좋은 연휴가 그렇게 저문다.(절대 책 잘못이 아니라, 내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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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휴는 왜 이렇게 졸린 지 모르겠다. 새해가 시작하고 정신없이 달려온 지난날, 리뷰는커녕 책장 펼치기 어려웠던 시간들이었다. 틈틈이 노력했음에도, 삶은 녹록하지 않았다. 때론 스스로 채찍질에 그만하면 되었음에도 무리하기도 했고, 은근한 압박 속에 속앓이도 했다. 그렇게 수개월, 간만의 여유시간에 드디어 읽고 싶었던 책을 펼쳐 들었다. 전작 <시를 잃은 그대에게>를 보며 펑펑 울고 다시 일어났던 기억을 떠올렸다. 힘겨운 삶의 터널 속, 이번에도 같은 기대 속에 페이지를 넘기건만 책을 읽는지 꿈을 꾸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순간이 계속되어 짜증이 벌컥 났다. 이건 전적으로 저자의 잘못이 아니라 내 잘못이다. 책의 탓도 아니다, 지쳐버린 내 몸의 탓이다. 그렇게 크레마를 내 얼굴에 던지며 몇 번을 뒤척거리며 읽었다.

사실 시와 나는 그렇게 친하지 않다. 시는 나에게 늘 no.2. 시집을 간혹 사서 읽곤 하지만 딱히 선구안이 좋지 않다. 시를 대하는 내 태도는 마치 히트곡만 골라 듣는 사람과 같아서, 시집을 사는 일이 꺼려지기도 했다. 만약 산다 해도 시집 전권 1권을 통틀어 맘에 드는 시를 1개라도 찾으면 다행이었다. 더군다나 유명한 시인이 아니라면 좀처럼 시집을 집어 들기 어려웠다. 시와 친하지 않다보니 이름값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시인들의 언어는 수수께끼 같고, 글 속에 힌트는 없었다. 끈기 있게 시를 들여다보고, 내 삶을 비춰봐야 한다. 언제나 바쁘다는 핑계, 효율성이라는 변명, 피곤하다는 현실에 몇 권 되지도 않는 시집조차 구석 한 켠에서 먼지만 쌓이곤 했다.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은 그런 나에게 위로를 준다. 시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늘 어려운 언어들로만 시가 쓰이는 것이 아니며, 어떻게 시를 바라볼 수 있는지 실마리를 얻게 해 준다. 밥벌이, 돌봄, 건강, 배움, 사랑, 관계, 소유. 시는 이 모든, 우리가 인생 혹은 삶이라 부르는 모든 것을 관통하고 있다. 항상 시는 준비되어 있다. 다만 내가 관찰하고, 인내하고, 생각하는 것이 부족할 뿐이다. 시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시를 생각해야하고, 시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인생을 생각해야 한다. 생각하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p.301)

세 번째로 크레마를 내 얼굴에 떨뜨린 순간. 벌떡 일어나 얼굴을 두드린다. 오늘 따라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은 살랑거린다. 사방은 조용하고, 공기는 깨끗하다. 오랜만의 여유. 비록 기대한 만큼의 독서는 못했지만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제대로 읽지 못했지만 책을 끼고 불편한 맘 없이 조는 것도 오랜만이구나 싶다. 그래 이렇게 읽고, 다시 또 읽고. 다시 못 읽으면 또 어떠랴. 길게 쓰지 못하면 어떠랴. 인생이란 게 원래 그런 게 아닐까. 졸음과 책, , 그리고 쓸데없는 단상들. 오랜만의 기분 좋은 연휴가 그렇게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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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고독하고 혼자 삽니다. 그래서 실은 직업이라는 형태로 나의 부족한 점들을 서로 메꿔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결핍된 그 무엇이 있을 거예요. 그걸 채워주기 위해서 누구는 재화를, 누구는 용역을 제공하고 교환하는 것 아닐까요. 우리 직업의 본질이란, 이처럼 사람들이 모두 같이 살려고, 너도 살리려는 데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p.39) ... 서로의 이마에 손을 내밀고 그 손에 이마를 맡길 수 있는 존재들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게 우리 모든 업의 본질이 아닐까요. p.40

죽어라 일하는데 왜 나는 죽지도 않고 왜 일은 줄지도 않는가?” ... “일은 하면 할수록 늘기 때문이라고, 갓 취업해서 제대로 일할 줄 모르면 선임들이 격려해줄 때 하는 말이 그것 아닙니까. “괜찮아, 일은 하다 보면 늘어라고. , 정말 일은 늡니다.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느는게 아니라 정말 일은 늘면 늘지 줄어드는 법이 없습니다.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줄지 않는 것이 일입니다. 과로로 죽을 판인데, 과로하지 않으면 더 죽을 판으로 일이 넘쳐 어쩔 수 없이 과로라도 해서 일을 줄이려는데, 그러면 그새 일은 또 늘어나는 악순환인 겁니다. p.55

우리의 꿈은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이어야 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누구나 무엇인가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 무엇은 명사겠지요. 의사, 교사, 공무원, 회사원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 가령 명사 (p.64)는 정말 이삼십 대 안에 되든지 안 되든지가 결정이 납니다. 하지만 가령 형용사 존경스러운교사는 정년까지도, 아니 평생토록 이루기 힘듭니다. 생의 목표는 그런 게 되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어쩌면 존경스러운사람이 되는 게 내 인생의 꿈이고, ‘교사의사따위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들인지도 모릅니다. ... 그런 의미에서라면 시 같은, 아름다운, 낭만적인, 사랑이 넘치는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목표여야 하지 않을까요? p.65

일이냐, 삶이냐, 문제는 그 둘 간의 조화와 균형을 생가하지 않고 우리 인생을 일과 삶의 대립으로 간주하는 데 있습니다. 모든 것은 인생을 잘 살기 위한 것, (p.75)차피 일도 인생이고 삶도 인생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인생을 사랑하는 자는 그 둘 중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으며 편애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p.76

미래의 교사가 되길 꿈꾸는 제자들에게 제가 해주(p.101)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육자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신념이 뭔지 아느냐고. 사람은 변한다는 믿음이다. 그걸 믿지 못하면서 사람을 가르치려드는 것은 위선이거나 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동시에 교육자가 꼭 갖고 있어야 할 지혜가 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교육은 훈육이 되기 일쑤다. 잘 변하지 않는 사람을 변하게 만들어야 하기에 교육은 힘들고 위대한 것이다. p.102

변할 때까지 지치지 않고 잔소리하는 것은 애정이 아니라 집착의 징표입니다. p.102

돌아보니 인생은 나를 돌봐준 이와 내가 돌볼 이로 이루어진 돌봄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p.139

쉰 넘어보니 딴 거 없습니다. 내 몸이 나입니다. 웰비잉하지 않으면 웰다잉도 없습니다. 돈 벌고 일하느라 애쓴 내 몸, 남들 위해 바친 내 몸, 내가 아니면 누가 돌보겠습니다. 잘 먹고 잘 살아야지. 이 말을 참 오랜만에 꺼내보는 나이인 겁니다. p.148

결심이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내 몸에는 너무 많은 관성이 들어 있습니다. 오래된 세월의 흔적이 몸 구석구석에 살뜰히도 배어 있습니다. 그것과 싸워 이겨내기에는 우리는 너무나 호락호락한 사람들입니다. p.150

산다는 것은 먹는다는 것이고 먹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시인은 식사법을 말한다면서 우리에게 사는 법을 강론하고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살기 위해 먹는다는 것은 매우 경건한 일입니다. 먹는 것처럼 산다는 것도 그러해야 합니다. ... 죽을 때까지 밥을 먹듯, 죽기까지 성실하게 사는 것, 그것이 인생입니다. p.161

당신이 먹은 것이 무엇인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브리야샤바랭 p.162

예전보다 먹을거리가 풍요롭고 다양해진 것도 사실인 반면, 대중화되고 획일화된 경향도 그만큼 강해진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p.163) ... 대중문화의 풍요는 평등을 가져다 줬습니다. 누구나 같은 코카콜라를 마시고, 캠벨수프를 먹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평등한 권력의 추가 점점 기울어져가면서 획일화의 위험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대중문화의 양면성입니다. 풍요는 다양화를(p.164) 선물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코카콜라만이 아니라 다양한 청량음료를 만들어주었고, 다양한 스푸를 만들어주었죠. 그러나 그것들은 자기 생태계 내부의 다양화만 허락할 뿐, 골목식당과 집밥의 생태계를 위협합니다. p.165

맛은 추어이다. 맛을 느끼는 것은 혀끝이 아니라 가슴이다. 그러므로 절대적으로 훌륭한 맛이란 없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숫자와 동일하다. ?허영만, <식객> p.167

내가 잘 먹고 잘 살려면 내 몸만이 아니라 내 몸을 먹이는 이의 몸을 잘 지켜줘야 합니다. p.171

저는 긍정의 힘은 믿어도 긍정의 미신은 믿기 싫습니다. p.177

냄새란 지울 수 없는 것, 내 의지와 노력과 무관하게 환경으로 인해 그저 내 몸에 베어버리는 그런 것. 삼겹살집에서 회식하면 누구나 공평하게 냄새가 배는 법인 것을, 내 탓이 아니라 환경와 문화 탓인 것을, 마치 나의 잘못이나 결함이라도 되는 것처럼 취급당하고 차별당하는 것. 피부색이 달라서, 여자라서, 가난해서 선 밖으로 밀려나는 것. p.185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하라는 말도 스스로에게 너무 강요하게 되면 자신에게 가혹하고 타인에게 굴종하는 일이 되고 맙니다. p.186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찰리 채플린 p.203

목표가 이끄는 삶, 그래서 계획과 전략을 세우고, 매일 결심과 각오를 새로이 하며 사는 인생도 훌륭하지만, 그저 과정에 충실하고 결과에 감사한 삶이면 가히 족하고 남습니다. 어차피 희극도 있고 비극도 있는 삶, 긍정도 하고 부정도 하는 삶이지만, 내가 헛것에 빠지지 않고, 뭔가를 욕심낸 바람에 내 삶이나 주위 사람들을 희생하는 일도 없이, 기왕이면 선한 말, 칭찬하는 말 많이 베풀며 이냥저냥 살아가면 내 마음이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p.206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황지우 <늙어가는 아내에게> p.209

관찰은 창의성과 인성을 낳고, 그럴 때 창의성과 인성은 서로 배반하지 않습니다. 세렌디프의 왕자들 이야기를 기억해보십시오. 무엇보다도 그들은 관찰을 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관찰이란 세계의 숨겨진 질서, 감춰진 비밀을 바로 보는 일일 겁니다. p.228

절망이 기교를 낳고, 기교 때문에 절망한다. -이상 p.230

우리는 공부의 프로를 양성하는 데 실패하고 있는 게 아니라 아마추어를 야성상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p.242

심리학자 비고츠키의 용어를 빌리자면, 컴퓨터 게임의 과정은 아동의 실제 발달 수준에서 잠재적 발달 수준으로 건너가도록, 마치 건물 공사장의 임시 발판처럼 비계를 만들어주는 스캐폴딩과 유사한 겁니다. p.245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한준 p.246

세렌디피티란 뭔가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행운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냥 우연에만 맡겨진 것도 아닙니다. 저들은 한결같이 자기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p.246) 분야에서 꾸준히 관찰하고 공부하고 숙련해온 아마추어 출신의 프로들입니다. 그렇게 축적된 능력이 어느 날 필요한 순간에 튀어나오는 겁니다. 마치 세렌디프의 왕자들처럼 말이지요. 세렌디피란 이름의 창의성, 그것은 사실 준비된 우연, 어쩌면 그런 이들에게 허여된 필연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릅니다. p.247

감히 선학들과 비교하면서 나는 왜 정말 아는 게 하나도 없지, 언제 저렇게 되지 싶었고, 칸트나 헤겔처럼 철학사의 빛나는 성좌들을 보면 나는 왜 저 빛에 도달하지 못할까. 아니 평생 도달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과 좌절이 있었습니다. 실은 내 마음 속에 있던 그 빛들 덕분에 살아올 수 있었으면서 그땐 그걸 몰랐던 것입니다. 그저 그리움과 열병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다가 비로소 앵두가 익을 무렵이면 간신히 그리움도 견딜만해집니다. 여하튼 시간은 흐르고, 그 시간과 함께하다 보면, 누구나 결실을 맺을 수 있으니까요. 익는다는 건 그런 일입니다. 제법 넉넉해지고, 뒤돌아볼 줄 알게 되고, 지난날에 대한 긍정과 감사를 보내게 되는 겁니다. 앵두도 그리 되는 겁니다. 크지 않아도, 위대하지 않아도, 밤하늘의 성좌가 못 되어도, 우리 (p.256)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는 겁니다. 긴 시간 견디어 이루어낸 모든 앵두들에게 우리가 경의를 표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p.257

사람들은 말합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듣기에 참 부러운 말입니다만, 살아보니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참 없습디다. (p.263) ... 그런데 그러던 사이, 생각이 바뀝니다. 뜻을 이루기 위해 길을 찾는 것도 훌륭하지만, 이 길에서 뜻을 찾는 것도 얼마나 아름다운 다운 일인가 하고 말이죠. 그 이후로 비로소 남들의 길이 아니라 내 안의 길에서 뜻을 찾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 그때부터 길은 조금씩 고분고분해집니다. 꽃으로 수를 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늘을 드리워 땀을 식혀주기도 합니다. p.264

세월은 안으로 새기고, 생각은 여전히 푸르른 희망으로 가득 찬 사람, 그리하여 내녀엔 더 울창해지는 사람. 그렇게 나이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어른으로 늙는 것이 아니라 어른으로 계속 커가면 좋겠습니다. 늙음은 젊음의 반대말도 아니고, 젊음이 모자라거나 사라(p.268)진 상태도 아닙니다. 늙음은 젊음을 나이테처럼 감싸 안고 더욱 크고 푸른 나무가 되어 쉴 만한 그늘을 드리우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 공부는 결코 멈춰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p.269

우리 얘기 좀 해라고 말하기 전까지 보내는 침묵의 시간이 자기의 주장을 더 강화할 논리를 준비하는 시간이어서는 안 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사태를 돌아보는 침묵과 인내의 시간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 대화를 시작할 때는 시비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시비를 덮은 자리에서 오로지 화해를 위한 이야기만 준비해가지고 나와야 하는 겁니다. p.296

우리에게 자유가 있다면 그것은 어떤 구속을 택할 것인가 하는 자유뿐일 것입니다. p.298

사랑은 책임인 것입니다. 오랜 시간 생각하고 함께해온 그 사람을 책임지고, 그 사람에게 나를(p.303)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 사랑이란 말입니다. 부당한 억압이나 고통스러운 책무가 아니라 아름다운 의무이자 권리인 것입니다. p.304

나로 하여금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사람들이다. 그리고 훌륭한 시를 읽을 때, 우리는 바로 그런 기분이 된다. -신형철 평론가 p.304

현대사회에서 사랑이란 늘 이상한 신화를 갖게 됩니다. 반드시 사랑에 성공해야 한다는 이상한 신화 말입니다. ... 사랑의 문제를 대상의 문제로 가정하고 있습니다. 즉 사랑은 누구에게나 자유롭고 쉬운 일인 데 비해, 사랑할 만하거나 사랑받을 만한 대상을 발견하기가 어렵(p.317)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의 문화는 거래라는 과년ㅁ에 기초하고 있죠. 하여, 사랑은 자유이지만, 자기가 지닌 교환가치의 한계를 고려하면서 서로 시장에서 교환할 수 있는 최상의 대상을 찾아냈다고 느낄 때에만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비애가 성립하고 만 것입니다. 사랑할 대상을 발견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p.318) ... 외부 조건들이 내가 원하는 삶을 계속 내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게 하니까, 그러니까 당연히 선택지는 많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그래서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겁니다. p.319

어리석은 자는 한 평생 다하도록 현명한 이를 가까이 섬겨도 참다운 법을 깨닫지 못한다. 국자가 국 맛을 모르듯이. <법구경> p.329

이래서 SNS를 못 끊습니다. 기존의 미디어가 접근할 수 없거나 침묵해버린, 그렇다고 일일이 직접 가볼 수 없는 저 특별한 시공간의 정보와 경험들, 그것을 공유할 수 있는 멋진 신세계를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을 직접 안아주기란 불가능하지만 그 대신 이렇게 공감을 하고 체온을 나누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게 하는 것, 우리로 하여금 그 세상의 모든 인싸가 되게 하는 것, 그것이 SNS의 순기능 아니겠습니까. p.344

선행은 의무와 강요에서가 아니라 공감과 소통에서 오고, 공감과 소통은 경험의 공유에서 옵니다. 하지만 경험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인데 그나마 너무 짧아서 남의 인생, 다른 인생은 살아보지도 못하니까요. 간접 경험과 대리 경험이 소중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p.346

외로움이란 혼자 있는 고통을 말하고 고독이란 혼자 있는 즐거움을 말합니다. 외로움은 견딜 수 없는, 극복하고 개선해야 할 상태이지만, 고독은 즐길 만한, 누리고 유지해야 할 기회이기도 한 것이죠. p.401

읽은 책은 읽어서 못 버리겠고, 읽지 않은 책은 읽지 않아서 못 버리겠다고 핑계 대며 살지만, 실은 그냥 지나온 시절 그대로 부여안고 버텨보려는 것뿐임을 제가 압니다. p.430

우리는 특별한 어떤 것이 아니라 삶의 가장 평범한 일들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한 일만 챙기는 데도 바쁘다 보니 일상에 소흘히 대할 수밖에 없었다며 핑계대어 보지만, 결국 소중한 건 저 특별하지도 딱히 귀해 보이지도 않는 일상이었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p.448

인생이란, 요약하면, 살다가 죽는 것 아닐까요. p.462

애도는 상실에 대한 적절한 거리와 태도를 뜻합니다. p.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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