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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록 - 혜경궁 홍씨 | 마뇨의 마법서 2020-04-18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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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한중록

혜경궁 홍씨 저/신동운 역
스타북스 | 2020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혜경궁 홍씨의 기록은 긴 목숨을 이어온 사람의 변명 같은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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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간택 이후로 매우 슬퍼하였으니, 그것은 장차 궁궐에 들어와 억만 가지 변화를 겪으려고 마음이 스스로 그러하였던가. 한편 이상한 생각도 들고 한편으론 나의 예견이 흐리지 않았던 것 같다.

 

 

한중록은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정조대왕의 생모인 혜경궁 홍씨가 직접 쓴 궁중 비사다.

1735년 홍봉한의 차녀로 태어나 10살에 세자빈이 되어 아들 둘, 딸 둘을 두었으나 큰 아들은 세 살 때 여의었다.

 

조선 왕조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인 사도세자의 죽음은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이 한중록에 적힌 글들이야말로 곁에서 직접 보고 쓴 글이니 좀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 글이 혜경궁 홍씨가 자신의 친정식구에게 가해졌던 정치적 박해를 가리기 위한 변명의 여지도 있는 것이기에 정확한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가 어째서 극도로 나빠졌는지에 대한 혜경궁 홍씨의 견해는 사도세자를 너무 어릴 때부터 떨어뜨려 놓고 천박한 궁인들 손에서만 자라게 했고, 너무 외진 곳에 머물러 웃전들과 멀리 떨어져서 한창 놀기 좋아하는 나이에 궁인들이 칼과 화살 등을 가지고 놀게 하여 성심을 흐렸으니 거기서부터 어긋났다고 생각했다.

 

한 가지 일만 생각해도 지극히 서러운데, 영조께서는 어찌된 생각이신지 그 아드님을 조용한 때에 친근히 앉히시고 진정으로 교훈하시는 일은 없고, 멋대로 내버려두어 아는 체도 않으시다가, 늘 남들이 모인 때에 흉을 보시는 듯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대신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는 일이 계속되자 세자는 마음에 화가 많아지게 되고 그것을 풀길이 없으니 점점 포악해져 결국 내관들이고 궁녀고 할 것 없이 죽이는 사태까지 되었다.

영조는 자신이 애정 하는 이들은 무척이나 아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애정 하는 이들 근처에도 못 오게 하고 그들이 지나는 길에도 다니지 못하게 했으니 한 나라의 세자로서 아비에게 그렇게 모질게 푸대접을 받은 사도세자의 마음이 어땠을지는 짐작하기도 힘들다.

 

어째서 영조는 세자에게 그렇게 모질게 굴었을까?

그 이유를 지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죽음을 넘나들던 자신의 삶이 매우 치열했기에 자신의 아들에게 약간의 질투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자신이 왕이 되기까지 치열한 시련을 겪어내고 왕이 되었으니 아들은 자신의 그런 심정을 헤아려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을 보여주기 원했을지도 모른다.

요즘으로 치면 무릇 자수성가 한 사람들이 자기 자식이 자신과 같은 기개가 없다고 나약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름없지 않을까?

내가 저 나이엔 이랬는데. 라는 생각이 사사건건 세자의 행동을 마땅치 않아 하고, 세자의 모든 것이 못마땅한 게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당신이 부모님께 속으로는 본래 정성이 지극하시지만, 민첩하지 못하여 품고 계신 정성을 100분의 1도 못 드러내셨다. 부왕은 그 사정을 모르시고 미안하신 빛은 있어도 한 번도 관용을 베풀지 않으시니, 경모궁께서는 점점 두렵고 무서운 것이 병환이 되어 화가 나시면 푸실 데가 없었다. 그래서 그 화를 내시와 궁녀에게 푸시고 심지에 내게까지 푸시는 일이 몇 번이나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도세자는 자신의 죽음을 미리 예견하고 있었던 거 같다.

언젠가는 아버지의 손에 죽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 생각이 두려운 마음을 더 두렵게 했을 것이다.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어릴 때의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거 같다.

영조는 어째서 귀하게 얻은 아들을 갓난 아기 때부터 궁인들에게만 맡겨 두었을까?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골이 깊어지고 임오년의 그 일이 생기기까지 혜경궁 홍씨는 아마도 무수한 생각을 했어야 했을 것이다.

이미 정신이 나가버린 남편은 더 이상 왕이 될 수 없음을 깨닫고 아들을 지키기 위해 전력을 다했을 것이다.

 

한중록엔 그런 이야기는 안 나온다.

자신의 한스러운 처지와 정조의 효심과 친정 식구들의 충성심만을 나열했을 뿐이다.

사도세자가 어떻게 뒤주에서 죽게 되었는지도 그때의 정치 상황이 어떠했는지도 나와있지 않다.

화완옹주가 영조의 사랑을 독차지함으로써 욕심이 생겨 자신의 친정을 음해하고, 세손이 외가를 등지게 했으며 세손이 아들을 낳지 못하게 세자빈과의 사이도 안 좋게 만들었다고 한다.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이자 살아남은 자의 기록이다.

혜경궁 홍씨가 그 살벌한 상황에서 아들을 지켜내고 자신의 목숨도 지켜낸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나는 그녀가 아주 정치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랬기에 뒤주에 갇혀 남편이 죽었음에도 자신의 아들을 보위에 올렸으니 그것이 보통 아녀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영조의 사랑으로 버무려놨으니 그것 또한 굉장한 정치력이다.

 

자신은 몇 번이고 죽으려 했지만 세자 때문에 모진 목숨을 이어왔다고 썼다.

자신의 친정은 모두 나라에 충성했고 한 치의 욕심도 없었다고 썼다.

영조의 사랑이 넘쳐서 과분하다고도 썼다.

 

하지만 사도세자를 구하기 위해 무엇을 했다는 내용은 없다.

남편이 병들어 감을 지켜보면서 무슨 일이 있을지 예감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그를 먼저 포기한 건 그녀였다.

 

한중록을 예전부터 읽고 싶었다.

진실을 알고 싶었기에.

혜경궁 홍씨의 기록은 긴 목숨을 이어온 사람의 변명 같은 거였다.

 

그날의 진실은

그날 사라졌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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