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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 신학총서 세트를 다 읽으며 | 신학적인 2019-08-24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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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SU 신학총서 세트

톰 라이트 등저/윤상필 등역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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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고 깊은 지식을 세트로 10권을 만날 수 있어서 좋고, 기프트북 또한 매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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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신학총서

잠언 바로 읽기 크레이그 바르톨로뮤 지음 (서울: 성서유니온, 2015)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그 말씀을 우리의 삶에 체화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행동이 아닐까. 하나씩을 나의 삶으로 나타내려 노력하는 모습으로 말이다. 그 중에서 잠언은 절마다 묵상하기에 참 좋은 말씀이다.

 

   하지만, 시나브로 한 구절만 바라보고 한 단어만 묵상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언제나 숲을 보며 나무를 바라보아야 하는데, 한 나무에만 집중하는 느낌이랄까. 이러한 안타까움을 나타낸 것이 저자의 말이다. 한 구절씩 보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만이 전부인 것처럼 느끼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지혜는 단순히 일련의 잠언들을 익힌 다음

그것을 줄줄 암송하는 것이 아니다. 42~43p.

    

   지혜서로 분류되는 잠언을 그저 읽고, 달달 외우기만 하면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 아님을, 지혜자가 되는 것이 아님을 상기시켜준다. 삶으로 배워야함을 말하는 것이다.

 

단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우리가 이미 모든 진리를 다 알고 있다고

자만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지혜는 평생에 걸쳐 자라나고 무르익는 덕목이다. 58p.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하며 겸손히 나아갈 때에 지혜가 더하여지는 것이 아닐까. 잠언에 대해서, 말씀을 대하는 자세에 있어서 도움이 되는 본서는 얇고 깊다.

 


  

발람, 참예언자인가? 월터 모벌리 지음 (서울: 성서유니온, 2015)

 

   성경을 읽고 배워가다 보면, 모순된 부분들을 만날 수 있다. 그 부분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발람이라는 선지자의 문제에 대해서 집중한 것이 본서이다. 집중하고 있는 문제와 더불어 구약성경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을 콕 집어주는 책이라고 해야 할까.

 

   내러티브라는 한 형식의 문학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현대의 독자들에게 성경은 머나먼 고대의 문서일 수 있음을 알려주기에 더욱 슬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나에게 말하고 있는 성경임을 잊어서는 안 됨을 말하기에 고마운 생각이 든다.

 

   가장 중요한 결론을 책의 마지막 즈음에 넣어 놓았기에 더욱 고맙고 애잔하다고 해야 할까.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인간이 처한 상황을

깨닫기 위해 성경을 읽는다. 66p.

 

   우리가 성경을 읽는 이유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더하기 위해서, 또한 우리가 어떠한 문제를 갖고 있는지를 깨닫기 위함이 아닐까. 지식과 상황, 다른 말로하면 텍스트와 컨텍스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을 정경으로 즉, 파이널 텍스트로 보고 있는 우리는 이 말씀 가운데에서 나타난 의미를 찾는다. 행간 사이에 나타났을 여러 사건들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본문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학자들처럼, 그 배경과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본문에 집중해야 함을 다시금 깨닫고 싶다면 짧은 본서는 깊은 사유를 더해주지 않을까.

 


 

목격자의 증언, 복음서 리처드 보컴 지음 (서울: 성서유니온, 2015)

 

   신약 중에서 특별히 복음서를 읽는다는 것은 예수에 대한 아니, 예수에 관한 것을 읽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만큼, 복음서 중에 으뜸이 되는 내용이 예수 이야기 때문이다. 성서신학 중에서 신약학을 공부한다면 역사 속 예수와 신앙의 대상 그리스도라는 용어를 알 것이다. 하지만, 이 용어들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과연 합리적이고 정당한 표현인가 의구심을 품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신앙함에 있어서, 특별히 그 중에서도 신학을 한다고 하면, 체계적이고도 논리적인 표현과 연구를 하려고 할 것이다. 그렇기에 성서신학을 연구한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문학비평, 역사비평, 양식비평 등의 용어와 그 사용법 등을 배우게 되며, 알게 된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Canon)Final Text가 아닌가. 아무리 뜯어본다고 하여도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쪼개질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그렇기에 본서의 저자가 주장하는 통전적인 방법으로써의 성경 연구 방법이 대안이지 않을까.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예수와 그리스도에 대한 표현이 아니라 증언을 통한 예수라는 표현이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복음서를 전기와 같은 문학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증언을 모아놓은 하나의 장르로 보며 그 이유를 제시함이 좋았다.

 

   무엇보다, 신약성서를 하나의 완성작으로 보게 해주는 이 성찰을 느껴보려면, 한번쯤 이 책을 접하여 보시길 바란다. 또한, 저자의 예수(비아)라는 책에서 보다 자세한 함의를 얻을 수 있다.

 


새 하늘과 새 땅 톰 라이트 지음 (서울: 성서유니온, 2015)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크리스천이라고 한다면, 이 천국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말하는 것일까. 천국이라는 단어는 하나님 나라의 완곡한 표현임을 아는 분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이 하나님 나라를 우리는 가는 것이 아닌 이곳에 임하는 것임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것이 본서의 역할과 의미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곳을 떠나서 사는 것이 아닌, 그래서 영지주의와 같은 이해를 갖게 되는 신앙이 아닌, 이곳이 새롭게 변화되고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향해서 살아가는 곳이 될 것임을 말한다. 왜냐하면 이곳에 살고 있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인 까닭은

우리가 그분의 구원과 치유의 사랑을

창조 세계에 반영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71p.

 

   이 땅은 저주받고 힘든 세상만이 아니다. 본래의 계획과 의도대로라면 하나님이 만드신 참 보기에 좋았던 곳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모습으로의 회복을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며, 마침내 카이로스의 시간이 되면 새롭게 재창조된 세상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는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톰 라이트가 말하는 부활과 천국에 대한 함의를 통해서 보다 더 올바르고 신약에서 말하는 성경적인 이해가 더하여지길 원한다면, 본서를 한번쯤 읽어보는 것은 어떠할지 권하여 본다. 자칫 한쪽으로 기울기 쉬운, 사후 세계에 대한 이해를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역사적 예수 하워드 마샬 지음 (서울: 성서유니온, 2015)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연구한다는 것, 혹은 이분이 어떠한 분인지를 알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AD 33(경으로 추정)의 시작에서부터 계속 이어져 오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기독론이라는 조직신학의 한 부분과도 연계되어지질 수 있는 이 부분에 대한 연구는 신약학자들만이 아닌 역사가에게도 관심을 끄는 부분일 것이다.

 

   예수가 누구이신지에 대한 소설가부터 신학자까지의 일련의 연구들은 그 스펙트럼의 사실여부를 가리지 않더라도 너무 넓을 것이다. 이를 좀 정리하여서 학문적으로 유의미한 사항들을 정리한다는 것조차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좌와 극우의 대립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온건한 성과들을 소개한다는 것은 참 고마우리라 생각한다. 바로 그 작업을 본서가 해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물론 1999년에 발표된 Jesus At AD 2000(본서의 원제목)이기에 가장 최근의 저작까지 포함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련의 발표된 저작들에 대한 적절한 평가가 돋보이는 것은 충분한 읽을 내용이 됨을 보여준다.

 

   신앙에의 그리스도와 역사적 예수를 대립적으로 바라보는 측에서도 혹은 동일 선상에 놓고 보는 신앙인이라 할지라도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본서를 통해서, 예수님에 대한 연구를 더하여 봄은 어떠할지 싶다.

 

   예수는 언제나 이 낮은 곳에 있는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기 때문일 것이다.

 


성경은 남성적인가? 리처드 보컴 지음 (서울: 성서유니온, 2015)

 

   성경을 요즘 시대의 관점으로 읽다보면 남성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역사와 흐름의 일련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성경을 원어로 본다면 남성형만 사용된 것이 아닌 여성형의 단어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고대 세계에서 여성보다는 남성을 좀 더 우월하게 생각하고 글을 쓰던 사람들이 당연한 시대였기에 다소 젠더적으로 보면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님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 본서가 아닐까. 룻기라는 내용에서 뽑아낸, 다분히 여성 시각적인 모습으로의 플롯을 읽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도 발견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좋은 성찰의 기회가 된다. 여성 신학이라는 학문적 경향이 아니더라도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 앞에서 동등 됨을 알도록 도와준다고 본다.

 

   인위적인 방법으로 성경을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느낄 수 있다. 흔히,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표현하지만 이조차도 하나님을 제한하는 표현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좀 더 포용적인 자세로 어버이라고 보는 것은 어떨까. 이러한 방법의 독법을 주장하고 논의하는 것이 여성신학적인 모습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금 본서로 돌아와서 설명을 이어가 본다. 저자의 말대로 룻기라는 내러티브에서는 여성이 주도적인 모습으로 활동하고 삶을 영위해 나가는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닌 남자들의 주도적인 모습도 발견할 수 있음을 설명한다. 언제나 다양함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성경임을 설명하는 장면이랄까.

 

   좀 더 여성의 입장에서 성경을 읽는 방법과 양성평등적인 생각을 더해보고 싶다면, 온건한 입장에서의 글을 보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멈추지 말고 한 번 읽어보시라.

 


복음서, 복음으로 읽기 스티븐 라이트 지음 (서울: 성서유니온, 2015)

 

   복음이 복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복음서를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저 성경의 한 부분으로 혹은 책으로 생각하고서 읽는다면, 그 안에 그려져 있는 예수란 어떤 분이신지를 놓치게 되진 않을까. 이러한 물음에 대한 대답을 주는 책이 본서라고 생각한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도 중요하고,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무엇보다 복음이라는 좋은 소식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고 깨닫게 해주는 복음서를 제대로 대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가.

 

   마치, 눈을 못 보는 사람들이 천을 뒤집어 쓴 코끼리를 만져가며, “이것은 기둥이야.”, “이것은 돌이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되진 않을까. 부분들의 총합이 전체를 이룬다고 하지만, 상기와 같은 식의 이해는 전체를 향해 나아갈 뿐, 도달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마찬가지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알기 위해서는 복음서를 음미하기도 하고, 분석하기도 하며, 읽어야 한다. 어느 하나만 가지고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될 것이다.

 

예수의 삶은 그 자체로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 32p.

 

   그분의 전인적인 삶이 모두 다 우리를 향하였던 사랑이었기에,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전달하는 전달자의 역할이었기에 더욱 더 복음서를 깊이 있게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수직으로 내려오는 사랑을 수평으로 흘려보내셨던 것을 말이다.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1:24 개정개역판)

 

   그리스도를 아는 것, 닮아가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보게 되는 것이, 복음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이 아닐까. 그렇기에 본서를 읽으면서, 복음서에 대한 이해를 다시금 더해보시길 바란다.

 


누가복음의 예수 존 프록토 지음 (서울: 성서유니온, 2016)

 

   사복음서 중에서, 공관복음, 그리고 그 중에서도 누가복음을 읽는다는 것은 누가복음만의 시각과 그 플롯으로 예수를 그려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보다 더 전 세계적으로 이방인을 향한 복음의 시각으로 보게 될 수 있으며, 성령의 역사를 보다 더 집중해서 볼 수 있고, 내 이웃을 돌아보며, 여성의 시각을 볼 수 있는 복음서라고 해야 할까.

 

   본서는 기본적으로 예수께서 그 지나가셨던 행적을 기초로 하여, 2장과 3장을 구성하고 있다. 4장에서는 누가복음의 신학적 주제와 5장에서는 어떻게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지를(설교 혹은 그룹 스터디와 같은 방향에서) 다룬다.

 

   복음주의 권역에서 쉽게 놓치는 부분이 그리스도에 의한 수평적인 사랑의 실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의도적으로 지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수직적 차원의 복음, 즉 선교에 집중을 하다 보니 발생하게 된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누가복음에서 전하는 내용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복음일 수밖에 없다.

 

가난은 도전하고 개선해야 할 문제다. 47p

 

   쉽지 않지만 해야 하고, 가야하는 길이 복음의 수직적 차원과 수평적 차원의 조화를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히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보여주셨고, 전하셨고, 행하셨다. 선포하시고, 치유하시고, 가르치셨던 그 삶을 우리가 어찌 다 배울 수 있겠냐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누가복음에 그려진 예수를 좇는 삶 또한 우리에게 많은 앎을 더하여 줄 것이다. 그래서 삶으로 나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래서 복음서와 친해지시기를 이 책을 통하여 더욱 더 그러해지시길 권하여 본다.

 


 

레위기 읽기 필립 젠슨 지음 (서울: 성서유니온, 2016)

 

   레위기를 읽는다는 것은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라 생각이 든다. 통독을 위해서 지나가거나 혹은 큐티 때에 나오는 본문에 의해서 자괴감이 든다거나 하는 등 문제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레위기에서 어떠한 성찰을 가질 수 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갖게 되는 것이 정상이 아닐까. 이에 대해서 본서의 저자는 레위기에 많은 관심을 두고 연구한 학자임에 틀림없다.

 

   레위기를 고대의 제의법에 관한 문서로만 규정하기에는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줄 수 있는 통전적인 독법을 제시하는 것이 본서의 특장점이라 생각한다. 단지 무시해도 되는 과거 구약시대의 제사만이 아닌, 이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을 가르쳐주길 원하셨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기에 말이다.

 

우리가 일상과 거리를 두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예배드리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야 한다. 67p.

 

   내 손안에 인터넷이 가능한 시대라 할지라도,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다고 말하고 노래할지라도 잊지 말아야 할 내용은 위의 문장과 같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지만, 우리가 집중해서 그분을 만나기 위해서 준비된 장소는 교회가 아닐까. 그분을 기억할 수 있도록 상징되어진 물건들이 있고, 고요함 가운데 혹은 찬양의 자리에 임재하심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 예배의 자리이기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홀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겠으나 많은 이들이 좀 더 정확히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의 모임 가운데서의 찬양은 더욱 더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금 본서의 흐름으로 돌아와 본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지배하에 있는 우리들은 무언가에 의해서 갇혀진 혹은 갖추어진 것을 싫어하고 해체하고 싶은 무의식을 소유하고 있는지 모른다. 또한 무엇이든지 재미를 추구하는 모습을 나타내기도 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쉽고 재미있게만

이해하려는 문화에 젖어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10p.

 

   현 시대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문화에 흠뻑 빠져들어서 하나님을 예배함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기에 본서를 통해서 어렵게만 다가오는 레위기를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는 성찰을 얻어가는 것은 어떠하실지.  

    


 

성령 세례 막스 터너 지음 (서울: 성서유니온, 2016)

 

   성령님은 누구이신가를 논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를 논하기 위해서 무수한 글들과 책이 작성된 것을 알 것이다. 적어도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이에 대한 이해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았을까?

 

   본서는 이에 대한 적절한 성찰을 더해주게끔 작성되었다. 고전적인 오순절주의 이해에 대한 온건한 비판과(혹은 제안) 은사주의에 있어서의 이해, 통합적인 방법으로의 모색 등을 다루고 있기에 말이다.

 

   어떻게 보면, 기독교인들에게 성령 세례라는 말과 성령님의 임하심 혹은 성령님을 설명하라고 하면, 모순적인 대답이거나 어려워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아가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사역자들의 일이 아닐까 싶다.

 

   바른 신앙과 신학적 지식을 더하게 될 때에 보다 더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이 될 테니 말이다. 적절치 못한 대답과 지식은 이들을 이단 혹은 사이비에 빠지게 만들 수 있어서 더욱 열심을 내어야 할 것 같다.

 

   어렵지만 잘 알아야 할 내용을 다루는 본서를 한번 읽어보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번 동참해 보시겠습니까?

 


 

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 김근주 지음 (서울: 성서유니온, 2016)

 

   무언가를 읽는다는 것은 개인의 삶의 총합체가 그 삶을 통해서 읽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개개인의 삶에 더하여진 모든 경험들이 녹아들어가져서 독해하게 되어있다. 그냥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문장이다. 이런 가운데에서 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라는 제목은 나에게 끌림으로 다가온 것 같다. 본서는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소책자이다.

   본서의 들어가며를 읽어보면 알 수 있지만, 201401월부터 201512월까지 매일성경에 실렸던 글을 엮어서 만들어진 서적이다. 그 분량 총 12장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장은 예레미야 9장의 이야기를 빗대어 시작하면서 여호와를 아는 것이 모든 것의 근본임을 밝히고 있다. , 이것이 성경을 아는 전부임을 초입부터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2장에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묵상을 해야 하는 중요성을 다루면서 성경의 양면성 즉, 하나님의 말씀이면서 사람의 글임을 다룬다. 이에 이어서 3장에서는 비판적 읽기 즉, 성경을 조금은 객관적인 자세로 바라보며 개론서의 필요성이 나온다. 4장에서는 그 개론서들 중에서 어떠한 것을 읽는 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하여 신학적으로 어떠한 사항에 대해서 표면적 의미만이 아닌 심층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셨던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가게끔 도와준다. 5장에서는 성경 본문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본문의 배경이 되는 역사와 본문을 적용하려는 오늘 우리의 역사를 알아야 함을 설명한다. 6장에서는 본문 자체의 역사 즉, 본문이 어떠한 형태로 우리에게 전해져 왔는지를 다룬다. 7장에서는 위에서 다루어졌던 성서의 배열과 구약이 옛 언약이 아닌 성경이었음을 상기시키면서 하나님의 말씀임을 논증한다. 8장에서는 구약의 율법과 제도들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진지하게 당시 상황 속에서 검토하고 이해하며, 21세기의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사랑의 빛 위에서 모색하는 임을 논증한다. 9장에서는 신약기자들이 구약을 인용하는 방식에 대해 검토하면서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 구약을 성취하신 것의 의미를 다룬다. 10장에서는 일점일획이라는 소제목의 파트와 부활과 구원을 다루는데, 각각 구약 안에서 신약을 읽는 법이라 할 수 있다. 11장에서는 우리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성서를 읽고 해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룬다. 마지막으로 12장에서는 예언자들이 꿈꾸던 세상, 정의와 공의를 실현하는 것, 구원받은 삶이란 무엇인지를 종합적으로 마무리해간다. 그리하여 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가 무엇인지를 최종적으로 다루며 끝을 마치게 된다.

 

   어쩌면 본서는 우리에게 기본으로 돌아가라고 알려주는 예언자적 문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가 별것 아닌 듯이 놓쳐 버리고, 애써 외면하던 부분들을 다시금 읽게 하여주니 말이다. 희년 정신의 중요성과 구원은 미래에만 약속된 것이 아닌 현재 지금의 삶부터 출발하여야 한다는 것들을 말이다. 성경을 한 단어로 압축하여 본다면, 사랑이라는 단어만 남는다고 하는데, 과연 우리에게는 이러한 배움 가운데 사랑이라는 단어만 남게 될 수 있을까.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지지 말라고 하셨던 그 말씀을 기억하며, 스스로에게 얽매여 있는 말씀이 아닌 우리를 이끌어가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본서는 우리에게 짧은 내용이지만 도움을 준다. 그래서 이 책을 먹어보는 것은 어떠할지 권하여 본다.

 

성경은 머리가 좋고 똑똑한 사람이 얼른 파악할 수 있는 책이 아니라, 믿음으로 꾸준히 그 의미를 찾고 구하는 사람이 그 깊은 뜻을 발견하고 알게 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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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의 희열을 읽고 | 신학적인 2019-08-08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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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강해의 희열

존 파이퍼 저/윤종석 역
두란노 | 2019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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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에 대한 이해와 필요성을 공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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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인은 늘 말씀 앞에 살고 있다. 성경을 읽으면서 큐티를 하면서, 예배 중에 설교를 들으면서 말이다. 구약 시대에는 쉐마, 즉 들음으로 말씀을 알게 되었지만, 지금은 성경책을 읽음으로 혹은 화면을 통하여 봄으로 접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안내가 되어주는 주된 통로는 설교가 가장 으뜸일 것이다. 먼저는 듣는 우리에게 은혜롭게 다가올 것이며, 전하는 자에게도 임할 은혜가 있다. 왜냐하면 설교에서의 주인공은 언제나 주님이시기에 말이다.

 

   721장으로 구성된 본서를 통하여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목표를 전달한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리스도를 높이며 성령께서 붙들어 주시는 예배가 바로 설교 즉 "강해의 희열"의 목표이자 이 책의 목표다. 21p

 

   40년에 달하는 목회의 기간 동안, 자신의 삶으로 나타냈던 설교에 대해서, 강해에 대해서 설명한 본서는 저자 자신의 삶일 수도 있으리라. 그의 특정한 종파와 신학적 노선에 대한 일장일단은 저만치 놔두고 읽어보면 좋은 책이라 생각이 들었다.

 

   먼저 설교를 전하는 자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말씀을 준비하며,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더할 수 있기에 도움이 될 것이며, 다음으로 듣는 자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치열하고도 열심을 다한 모습의 목회자들을 알게 되는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 한 편의 설교를 위해, 일주일 내내 치열하게 준비하는 목회자들을 조금이나마 간접 경험할 수 있으리라.

 

   미약하리만큼 작은 존재인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전할 수 있고 알아들을 수 있을까 싶지만, 우리는 날마다 노력한다. 조금이나마 그분을 알고 닮아가려고 말이다.

 

우리는 평생 피조물이기에 평생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140p


   항상 주의 은혜에 갈급한 우리는 이 심령을 채워줄 말씀이 필요한 것이다. 이 말씀으로 통하여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기에 말이다.

 

이번 주 당신이 전하는 설교는 다음 주에 한 신자가 끔찍한 고난 때문에 배교하지 않도록 그들을 건지실 하나님의 도구일 수 있다. 당신의 설교가 매주 누군가에게 유혹을 피할 능력을 입혀 주는 수단일 수 있다. 340p

 

   설교자 스스로가 보기에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전해진 말씀이라 하여도 그 결과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각 사람마다 심령을 어루만져 주시는 도구로 사용하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을 예배자의 삶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도구가 설교이기에 늘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듣는 사람도 전하는 사람도 말이다. 그렇기에 말씀을 전하는 자라면 본서를 한번쯤은 읽어보는 것이 어떠할지 권해드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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