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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연재] 골든아워 #01 환자에게 가까이 접근할수록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커질 거야 | 스크랩 2018-10-16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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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아워』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 남루한 시작

 

 


 

 

중증외상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이 나의 업()인데도 환자들은 자꾸 내 눈앞에서 죽어나갔다. 살려야 했으나 살릴 방법을 찾지 못했다. 필요한 것은 시스템이었다.
 
선진국의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을 봐야만 했다. UC 샌디에이고 외상센터(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 Trauma Center)에서 단기 연수를 받기로 했다. 40여 년의 역사를 거치며 정돈된 미국의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은 한국과 차원이 달랐다. 환자 치료의 규모와 범위에 따라 각 임무에 맞게 레벨이 정해진 외상센터들이 1~4단계까지 분류되어 있었고, 그 센터들은 유기적으로 작동하며 환자를 살렸다.

 
‘OR Resus pt in 15min by Air’
출근 첫날 지급받은 페이저(pager) 날카롭게 울었다. 센터의 오퍼레이터가 의료진에게 보낸 메시지였다. 환자는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상황이며 헬리콥터로 15분 내에 센터에 도착, 응급실을 거치지 않고 곧장 수술방으로 올라가 수술적 치료가 시작될 것을 뜻했다. 나는 중증외상 환자 전용 수술방에 진입했다. 외과 수석 전공의 데니가, 환자는 공사장에서 추락했고 개흉술을 통해 심장마사지를 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곧 헬리콥터가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환자의 심장은 이미 멈춰 있다고 했다. 긴박한 상황에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다다다다다…….

이동용 침대가 복도를 가로지르는 소리가 수술방까지 울렸다. 헬리콥터 착륙장에 올라갔던 외과 전공의 우탐이 환자 위에 올라가 심폐소생술을 하는 상태 그대로 침대가 밀려들어 왔다.

 

 

 

우탐이 환자에게서 내려오자 포텐자 교수는 곧장 칼을 들고 환자의 가슴을 수평으로 열었다. 폐와 심장이 드러났다.

립 스프레더(Rib Spreader)!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들어진 스프레더가 환자의 늑골을 벌렸다. 포텐자 교수는 익숙하게 환자의 심장 부위까지 절개해 들어갔다. 옆에 있던 데니가 심장을 양손으로 직접 잡아 마사지했다. 이 모든 일이 3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이루어졌다. 혈액과 수액을 환자에게 쏟아부었다. 환자의 심장이 곧 떨려왔다
.

디피브릴레이터(Defibrillator)!
포텐자 교수가 외쳤을 때 한국에서 심장 수술할 때나 쓰는 심장제세동기가 이미 환자 곁에 준비되어 있었다. 포텐자 교수가 직접 제세동을 시도했고 환자의 심장이 곧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는 마취과 의료진 쪽으로 눈을 돌렸다. 눈이 마주친 그들은 길게 말을 섞지 않았다
.

시작하죠(Let’s Do it)!
환자의 몸이 곧장 개복(開腹)됐다. 열린 복벽 사이로 파열된 간에서부터 피가 뿜어져 올라와 사방으로 튀었으나 누구도 물러서지 않았다. 수술창과 수술 범위는 몹시 컸다. 수술방에 긴장감이 돌았으나 당황하는 사람은 없었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수술은 충격적이었다. 첫날부터 모든 것이 압도적이었다. 환자가 헬리콥터로 빠르게 이송됐고 수술 준비와 진행은 완벽했으며 지원은 아낌없었다. 모든 것이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던 중증외상 환자 수술적 치료의 정석이 눈앞에서 이루어지던 순간 나는 전율했다
.

환자를 헬리콥터로 이송하는 것이나 의료진이 헬리콥터에 탑승하는 것은 한국에서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방금 전 수술한 환자도 한국이었다면 앰뷸런스로 이송되었을 것이고, 병원 도착 전에 이미 사망했을 것이다. 나는 수술을 마친 포텐자 교수에게 위험을 무릅쓰고 헬리콥터로 현장에 출동하는 의사들에 대해 물었다. 그의 답은 선명했다.

 

 

"네가 환자에게 가까이 접근할수록 환자를 살릴 기회가 많아질 거야

(The closer you get to the patient, the more likely you’ll save the patient)."

 

 

어떤 환자라도 조건은 같고 환자는 언제나 상황에 우선한다. 원칙은 흔들리지 않았다. 의료진은 원칙대로 환자에게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더 빨리, 더 가까이 가려고 애썼다. 헬리콥터로 20분 남짓이면 현장에서 센터까지 환자를 이송해왔다. 때로는 의료진이 장비를 메고 헬리콥터에 올랐고, 그 안에서 긴급한 시술이 이루어졌다.

 

 

이성과 원칙, 교과서적인 알고리즘을 따라 움직이는 시스템, 그 시스템을 받쳐줄 수 있는 규모의 센터, 민간과 군이 하나가 되는 의료 체계……. 그 안에서는 환자들이 살아 나갔다. ‘이 시스템을 한국에 도입해야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온 후 주위 반응은 막막했다. 이곳에는 이곳만의 ‘질서’가 존재했다. 외상외과를 하면 할수록 선진국과 한국의 간극을 절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국 수준의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와 심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현실에서 극심하게 부딪치면서도 나는 좀처럼 그 생각을 바꿀 수 없었다.

 

 


 

 

 

골든아워 1

이국종 저
흐름출판 | 2018년 10월

 

골든아워 2

이국종 저
흐름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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