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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강원택] 결국은 시민의 생각만큼 간다 | Memento 2020-04-30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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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강원택 저
21세기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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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대화에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정치는 우리의 생각만큼 간다. “결국은 시민의 생각만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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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는 여러모로 큰 변화를 예고했다. 개인적인 관심사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실시였다.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서 얼마나 민의를 잘 반영하는지가 관건이다. 그러나 지난 투표들은 거대 두 정당들 싸움 속에 제3정당은커녕 건전한 논의조차 쉽지 않았다. 유권자에게는 선택의 폭이 없었고, 논쟁은 좌우, 선악의 이분법으로 나눴다. 도무지 싸울만한 거리가 아닌 일에 두 정당은 목숨을 걸고 싸웠고, 생산적인 논의보다는 비방과 비난 일색이었다. 정당은 국민과 정부를 잇는데 열심이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 선거법 개정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제3지대의 등장을 기대하게 했다. 삼국지에서도 나오지 않는가.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 같이, 지금의 양당체제보다는 다당체제로 전환되어 솥발처럼 서서 서로 견제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위성정당이라는 희대의 꼼수는 선거법 개정을 무력화 시켰다. 관심에 비해 아는바가 너무 적지만, 21대 총선은 종국적으로 제3당은커녕, 한쪽의 대승리로 끝났다. 그놈이 그놈이듯, 결국 그놈들이 다 해먹었다.

이를 두고 엄청나게 많은 설전을 벌였다. 3당의 등장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국난 극복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주장은 평행선을 달렸다. 3당의 등장을 위해 거대 양당은, 최소한 지각이 있는 한 쪽만이라도 위성정당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반대쪽은 권력에 눈이 어두운(p.233)” 곳이자 그래야 할 정당이니 만큼 적극적으로 제도를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한 쪽을 너무 이상적이라 비판했고, 반대쪽을 지나치게 현실적이라 비판했다. 논쟁은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어쨌든 결판이 나는 게 선거다. 1표차라도 이기면 이기는 법이다. 누군가는 원하는 결과를, 누군가는 원치 않는 결과를 얻었지만 언제나 민심은 정치적 격변을 선거를 통해 예고(p.192)”한다. 누군가에게는 경고가, 누군가에게는 격려가, 누군가에게는 부채를 말했을 테다.

사람들은 정치를 우리와 같이 왕왕 토론을 벌인다. 개똥철학을 동원해서 자신만의 논리를 설파하는데 대부분 큰 싸움으로 번진다. 특히 명절에는 정치 얘기는 절대 하지 말라고 하지 않는가. 종교와 신념에는 타협이 없기 때문일까. 생각해보면 종교는 그렇다 해도 정치는 타협을 전제로 하지 않았던가. “서로 다른 입장을 갖는 집단끼리 타협과 양보에 의해 합의를 도출해내는 과정(p.122)”인데, 우리 주변의 삶에서나 TV에서나 정치판에서 타협의 과정을 보기가 힘들다. 타협 불가능한 이런 논의, 고민들이 무의미할까. 고민스럽다. 쉽사리 꺼내지도 못하고, 설혹 꺼낸다고 해도 큰 싸움을 각오해야하는 주제라면 굳이 얘기해야만 할까. 하지만 분명히 필요한 주제다. 늘 잊고 살지만 정치는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비록 지금은 개똥철학에 그치고, 싸움만 반복하지만 이런 싸움은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우리 의식은 모두 정치적인 책임을 국가 권력에 미루고만 있는 상황이다. 결국 민주주의가 확립되고 공동체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시민 개개인이 주어진 일정한 역할을 주도적으로 수용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p.388)”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은 한국정치를 개략적으로 가장 균형 있게 배울 수 있는 책이다. 늘 정치는 이래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정치에 대해서 공부하지 않는다.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의하기를 두려워한다. 지금 중요한 것은 변화의 방향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를 마련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의 고민이 필요하다. “변화의 방향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정치가 걸어온 길 위에서 모색해볼 수 있는 것(p.396)”이기에. 정치 대화에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정치는 우리의 생각만큼 간다. 결국은 시민의 생각만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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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한 발짝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정치개혁이 요구되고 있으며, 그러한 새로운 변화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우리 정치가 걸어온 길, 우리 정치제도가 갖는 특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 책에서 말하고 싶다. p.14

미국 대통령제가 이러한 특성(견제와 균형)을 기반으로 발명된 것이라면 내각제는 진화에 의해 오늘날의 특성을 갖추게 되었다. 즉 내각제는 역사적인 진화의 소산이다. p.54

다시 도입된 강력한 대통령제는 유신 체제, 그리고 전두환 정권의 제5공화국을 거치면서 더욱더 강화되어 갔다. 다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대단히 강력한 대통령제이긴 하지만 제헌헌법과 완전히 단절된 형태의 헌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큰 틀에서 혼합적인 특성은 유지하면서 대통령 개인의(p.80) 권한을 제도적으로 크게 강화했던 것이다. p.81

민주화 헌법이라 해도 대통령의 권한은 유신 이전보다 오히려 강화되었다. p.85

문제는 대통령 비서실의 비대화가 대통령의 업무 수행 능력 향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비서실이 커진다는 것은 그만큼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이 되고, 실제로 정책을 실행하고 추진해야 할 내각에 권한이 공유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각 부서가 실무를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정치적 권력을 청와대가 틀어쥐고 갈 가능성이 많(p.91)은 것이다. p.92

사실 우리나라의 대통령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비서실, 내각, 집권당이 서로 긴밀하게 연계되어 움직여야 한다. 혼합형 대통령제로 만들어졌고 그 특성이 계속 유지되어 왔기 때문에 한국 대통령제에서 대통령과 집권당의 관계, 대통령과 내각, 곧 국무회의 간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 따라서 대통령을 중심으로 정부와 집권당이 상호 연계되고 비서실이 이러한 관계를 보조해주는 것이 한국형 대통령제의 작동 방식이었다. p.91

우리 정치가 근본적으로 강한 대통령제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집권당, 국무회의와(p.95) 같은 제도적으로 주어진 기구에 의존하지 않고 청와대 비서실과 같은 보다 사적인 조직에 통치를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p.96

권력을 가진 조직이 스스로 권력의 한계를 규정하고 이를 지키기란 쉬운 일이 아(p.102)니다. 조직은 어디에서나 한번 생겨나면 관할 영역이나 권한을 확대시키고자 하는 경향을 갖는다. p.103

청와대로 기능과 권한을 집중시키려고 할 것이 아니라 기존의 제도, 기구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p.104) 행정적이고 기능적으로 움직여야 할 자리에 정무적으로 임명된 이들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움직인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p.105

우리나라 대통령은 임기 초반 제왕적 대통령으로 등장하지만 어느 순간 레임덕 대통령으로 바뀌고 만다. 더욱이 제왕적이라고 해도 권력기관이나 여론의 높은 지지에 힘입은 것일 뿐 실제 정책을 입법화하고 추진하는 데는 그렇게 강력한 권력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실제 일하는 것으로는 약하고 정치적으로는 강한 대통령제인 것이다. p.109

4년 중임이든 7년 단임이든 무슨 형태라고 해도 대통령제가 유지되는 한 이러한 문제로부터 근본적으로 벗어날 수 없다. 즉 권력이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된 형태에서 벗어나야만 고질적인 한국 정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국가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발전, 갈등과 대립의 정치로부터의 탈피, 일반 시민들 간의 이념적, 정파적 분열의 극복. 이 모든 것을(p.119) 위해서는 대통령제로부터의 통치 형태를 바꿔야 한다. p.120

외국의 제도에 대한 그대로의 모방보다 임시정부 이래 오늘날까지 이어져온 우리 정부 형태의 특성에 대한 이해 속에서 바람직한 대안에 관한 모색이 필요하다. p.120

정치는 서로 다른 입장을 갖는 집단끼리 타협과 양보에 의해 합의를 도출해내는 과정이다. 그래서 정치는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통합을 촉진하는 기능을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p.122

권한의 위임이 명확하지 않은 채 권력이 나눠지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아무리 법으로 권한을 꼼꼼하게 정해둔다고 해도 권력의 세계에서는 그러한 경계를 얼마든지 뛰어넘을 수 있다. p.124

한국에서 선거는 어떤 상황에서도 중단된 일 없이 주기적으로 실시되어 왔으며 선거 과정이 공정하게 진행되지 못했던 권위주의 체제하에서도 국민의 뜻이 표출되는 공간으로 작동해왔다. 어쩌면 한국 정치사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에 대한 권력의 왜곡, 그리고 이에 대한 시민사회의 저항의 역사였다고 할 만큼 민주화 이전 한국 정치의 주요한 변화를 이끌어왔다. p.130

정치의 기능은 무엇일까? ... 가장 중요한 것은 질서유지다. 갈등과 다툼을 제도화해 사회를 안정적인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본다면 정치의 공간인 국회는 본질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는 장소다. (p.130) ... 우리의 삶이 법과 질서에 의해 평화롭게 영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p.131

한 사회의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었다고 할 때 이를 판단하는 중요한 조건이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권력을 다투는 유일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느냐의 여부다. 즉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만이 권력을 차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자리잡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선거는 복수의 대안을 통해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가능하게 하며, 이는 민주주의를 공고화시킨다. p.135

김구가 제헌국회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잘한 결정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만약 김구를 비롯한 민족주의 세력이 참여했다면 제헌국회 내에서의 헌법 제정이나 반민족특별위원회 등 제헌국회 활동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로 크게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대중 대통령도 자신의 회고록에서 정치인은 최선이 어렵다면 차선이라도 추구해야 한다고 하면서 김구 선생이 제헌국회 선거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아쉽다는 표현을 하(p.148)기도 했다. p.149

권위주의 체제에서의 선거가 결코 공정하고 자유롭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민심은 정치적 격변을 선거를 통해 예고했다. p.192

정치적 대표성을 특정 정당이 독점하는 지역주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점에서 선거제도의 개정은 우리의 정치를 한 단계 더 혁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p.220

국가 예산이 500조 원에 달한다. 국회의원을 늘려서 잘못 사용되거나 방만하게 지출된 예산을 1퍼센트만 찾아낼 수 있어도 그 금액이 5조 원이다. 국회의원 몇 명 늘리는 비요이 문제가 되지 않는 금액이다. p.224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하는 무당파의 비율이 높고 정당에 대한 불신도 크지만 건강한 정당정치는 민주주의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필수불가결하다. p.231

종종 정당을 두고 권력에만 눈이 어두워서라고 지적하지만, 권력에 눈이 어두운 곳이 바로 정당이다. 권력을 추구하는, 즉 선거에서 공직을 얻음으로써 통치기구를 통제하려는 사람들이 모임이 곧 정당인 것이다. p.233

에드먼드 버크는 정당을 동일한 세계관 및 정치관을 공유한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정의했다. 정당이란 모두가 동의하는 특정한 원칙에 입각해 공동의 노력으로 국가적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결합된 사람들의 단체이며, 집권 후 어떠한 형태의 정치를 펼치겠다는 이데올로기가 전제되어 있다고 보았다. p.234

정당은 시민사회와 국가를 연계해주는 제도적으로 확립된 기구로, 정당이 원활하게 작동되어야 그 사회의 정치적 안정을 구현할 수 있게 된다. p.236

사회란 원래 불일치나 다양성으로 구성되며 합의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p.239

정당의 핵심 기능은 시민사회와 국가를 서로 연계해주는 데 있다. 우리 사회에서 거리 시위나 집(p.246), 청와대 국민 청원 등 직접적인 시민 정치 참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데, 자유로운 의사표현, 매개체를 거치지 않는 직접적인 국가와 시민의 소통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정당정치가 제대로 연계 기능을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p.246

권위주의 시대의 정당정치에서 집권당은 국가가 권력을 장악한 후 국가 주도로 위로부터 창당되며, 정치권력의 정통성을 사후에 인정받기 위한 도구적 성격을 띤다. 이때 정당은 정치적 지지 동원의 도구로, 창당 목적 자체가 독재자 개인의 권력을 유지 및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 만큼 자생력이 부재하고 제도화 또한 결여되어 있기에, 권력자의 운명에 따라 권력 몰락 후에 함께 소멸하는 모습을 보였다. / 이때의 야당은 정권의 반대 세력을 동원해 권위주의 통치자에 대항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으로는 의미가 없었으며 정치적 투쟁을 위해서는 비의회적인방법을 통해 저항해야만 했다. (p.277) ... 당시의 정당정치는 사르토리가 말하는 패권 정당 체제였다. ... 그러나 이러한 비의회적관행은 민주화 이후 정치적 경쟁의 공정성이 확립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p.278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 정당정치의 변화를 보면 처음에는 지역주의 균열에 기초해 있다가, 2002년 이후 여기에 이념 대립을 얹고, 여기에 다시 세대 갈등을 얹은 뒤 지금은 계층 갈등까지 얹으려고 하고 있다. 이처럼 두 거대 정당은 갈등을 축적해가면서 이를 양극화하는 데 주도적인 위치에 있다. p.295

이처럼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상황에서는 양극적 대립이 격화될 수밖에 없고, 하나의 갈등은 또 다른 갈등으로 비화되고 심지어 정치와 전혀 관련이 없는 일도 이념적, 정파적 대립으로 이어진다. 대표적인 것이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사건이다. p.296

전문적인 역량을 가져야 하는 정치에서 경(p.300)험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참신함으로 평가받는 것은 옳지 않다. 정치적 혐오나 불신에 기반하여 기존의 정당이나 정치인들은 모두 나쁘고 거기에 참여하지 않았던 이들은 선하다는 단순한 이분접적 사고는 오히려 무책임하고 나쁜 정치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p.301

정당정치의 약화는 이제 우리 정치를 포퓰리즘에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정당 정치가 정치인들을 검증하고 차기 지도자로 성장시키는 공간으로 기능해야 한다. p.301

정당정치의 경쟁성, 책임성, 반응성을 강화시켜 새로운 변화의 동력이 정치권 내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최근 논의되고 있는 선거법 개정 논의도 같은 차원에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양당적 구도에서 다당적 구도로의 전환을 통해 폐쇄적이고 독점적인 정당 체제에서 벗어나 정치적 경쟁성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조금 더 나은 정치를 기대할 수 있(p.305)는 방법이다. p.306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대한민국은 두 가지 중요한 가치를 정체성으로 갖게 되었다. 하나는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반공 국가, 또 하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가치는 그 자체로 절대 모순될 수 없다. 반공의 목적이 바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왜 공산주의에 반대하느냐 하면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목적은 자(p.330)유 민주주의가 되고, 수단은 반공이 되는 것이다. / 그런데 실제로 이후에 전개됐던 한국 정치는 반공을 목적으로 삼아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것이다. ... 우리나라 민주화의 역사는 이처럼 왜곡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회복하고자 하는 저항의 역사였다. p.331

시민들이 4.19 혁명을 통해 정의롭지 못한 권력에 대해 정항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교육의 힘 덕분이었다. ... 4.19 혁명의 성공은 이(p.335)후 중요한 정치적 유산으로 뿌리내리게 되었다. ... 전국의 모든 사람들이 나라님이라도 법을 지키지 않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면 저항해야 하는 것이고 물러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p.336

한국의 민(p.354)주주의는 본질적으로 체제의 전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민주화 세력은 권위주의 세력에게 전면 항복을 요구할 정도로 강하지 않았고, 권위주의 세력 또한 민주화 세력의 요구를 전면 거부할 정도의 힘이 없었다. 양측의 힘이 일정한 균형점에 도달했을 때 두 세력은 정치적 경쟁 방식의 민주화, 즉 직선제 개헌으로 상징되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라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확립에 동의하게 된 것이다. p.355

6.29 선언과 함께 한국은 민주화의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권위주의 체제와 민주화 운동세력 간의 오랜 투쟁은 뚜렷한 승자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합의의 내용도 정치적 게임의 규칙에 대한 것이 전부였다. 그런 점에서 민주화 직후에는 향후 어떻게 정치가 전개되어 나갈 것인지, 민주적 공고화는 제대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불확실성이 컸다. p.356

민주주의 국가 중에서 드물게 성공적으로 민주적 공고화를 이뤘다. 그 요인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무엇보다 당시 정국을 이끌었던 정치 지도자들에게 주목해야 할 것이다. ... 그들 스스로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였지만 이들의 정치적 선택과 경쟁은 민주적 공고화에 기여했다. 민주적 공고화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첫 번째 조건은, 정치적 경쟁 규칙에 대한 합의다. (p.357) ... 두 번째 조건은 정치적 분극화나 분절화의 억제다. 정치가 불안정해지는 여러 가지 요인 중 하나로 극단주의 정당들의 영향력 증대를 꼽을 수 있는데, 민주화 초기에서 좌파든 우파든 강경파가 득세하면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p.359) ... 김영삼, 김대중 모두 체제를 향한 구심적 경쟁을 이끌었으며, 극단주의 세력이 정치 질서를 불안하게 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었다. 오히려 김영(p.361), 김대중은 이러한 급진파들을 모두 체제 내부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p.362) ...정당정치의 분절화를 억제하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였다. 정당정치의 분절화, 즉 지나친 정당의 난립은 곧 정치적 불안정의 또 다른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민주화 직후 터져 나온 지역주의와 단순 다수제의 결합은 새로운 정당의 출현을 억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p.364) ... 권력의 공유는 민주적 공고화를 위한 세 번째 조건으로도 볼 수 있다. (p.365) ... 마지막 네 번째 요건은 과거사의 처리로, 모든 신생 민주주의 국가가 당면하는 가장 어려운 과제이기도 하다. 즉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과오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다. p.366

민주와 초기에 군을 탈정치화시킬 수 있었던 요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김영삼 대통령 개인의 결단력이었다. (p.370) 두 번째는 군 내부의 갈등이라는 조직적 요인의 영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p.317) ... 세 번째 요인은 당시의 정치적 맥락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로 3당 합당 이후 정치적 변화다. 3당 합당에 따라 김영삼은 과거 군부 권위주의 체제의 정당이었던 민정당과 합당했다. 그리고 민자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하나회 등 정치화된 군의 입장에서도 김영삼은 더 이상 적이 아니었고, 김영삼의 당선을 돕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이 된다. 김영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경쟁자인 김대중을 지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p.372

제도의 정치가 제 역할을 해서 거리의 정치를 대신할 수 있어야 한다. p.375

거리의 정치는 문제 해결의 공간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기 위한 공간이다. p.376

이제 국가의 역할은 점차 축소되고 있다. 민주화로 시민사회가 활성화되었고 세계화로 한 국가가 감당하거나 통제하기 어려운 일도 많이 생겨났다. 이러한(p.380) 상황에서 국가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필요가 있다 이제 국가는 예전처럼 효율적으로 움직이지도 않고 더 이상 전지전능하지도 않다. (p.381) ... 국가가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면 시민 각자가 제자리에서 할 수 있는 기여와 봉사를 해야 하는 것이다. p.385

공공의 영역에 속한 사람들, 국가 지도자들, 우리 사회에서 보다 많은 혜택을 입은 사람들부터 먼저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이들 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공동체와 관련해 희생하고 책임을 지는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p.386

이제 민주화 30년이 지나면서, 정치에도 다양한 형태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시민사회도 상당히 강건해졌고, 제도적인 민주화도 과거와 비교할 때 튼튼히 확립되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 의식은 모두 정치적인 책임을 국가 권력에 미루고만 있는 상황이다. / 결국 민주주의가 확립되고 공동체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시민 개개인이 주어진 일정한 역할을 주도적으로 수용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선거 정치에 참여하고 정치인들이 공약을 잘 이행하는지를 감시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공간 속에서 각자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를 이제부터라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p.388

그래도 우리 정치사는 자유민주주의의 제 모습을 향해 꾸준히 걸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는 분명히 우리가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만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p.393

이른바 ‘87년 체제를 넘어서야 한다. p.394

중요한 것은 변화의 필요성뿐만 아니라 변화의 방향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를 마련하는 일이다. 변화의 방향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정치가 걸어온 길 위에서 모색해볼 수 있는 것이다. p.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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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장 프랑수아 마르미옹] 또x이 보존의 법칙 | Memento 2020-04-28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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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

장 프랑수아 마르미옹 저/이주영 역
시공사 | 2020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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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x이 (질량)보존의 법칙, 주변을 둘러봐라. 주변에 멍청이 밖에 없는가? 그렇다면 내가 멍청이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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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흔히 떠도는 용어로 X(질량)보존의 법칙이 있다. 어떤 조직이든 일정량의 또X이는 존재하며, 만약 주변에 또X이가 없다면 내가 또X이 라는 무시무시한 법칙이다. 중요한 점은 또X이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또X이는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하며 심지어 내가 그럴 수 있다는 점에서 책의 주제인 멍청이와 일맥상통한다. 책은 프랑스의 저명한 학자들이 멍청함에 대해 짧은 에세이, 기고문, 또는 인터뷰를 실은 내용이다. 전문가 마다 멍청함에 대한 정의나 해석, 분류는 다소 상이한 점은 있으나 대체적으로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음악에 배경음이 있어야 멜로디가 나오듯, 멍청함도 어느 정도 지혜를 얻을 수 있게 해주는 배경음(p.329)”이 책에서 나온 멍청함에 대한 최고의 긍정적 표현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멍청함이란 무엇인가? 저자마다 정의가 약간씩 상이하다. 멍청함의 정의보다 저자들이 말한 공통적인 특징을 살펴보는 게 이해에 좀 더 적합할지 모르겠다. 우선 멍청함은 전염이 빠르다. 더불어 지능과도 크게 관계가 없다. 똑똑한 사람도 멍청한 짓을 할 수 있으며, 이것은 순식간에 전염되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멍청함은 자아도취적 성향과 관계가 있는데, 맹목적인 확신과 막무가내의 주장을 통해 우리의 건전한 사회를 파괴한다. 우리의 일상에서 멍청한 사람을 만난다면 절대 엮이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게 공통적인 입장이다.

지금까지의 표현을 보자면 멍청이=X이와 다를 바 없다. “멍청한 인간은 제대로 된 사람들이 가는 길을 방해하기 때문에 아무리 힘든 일이어도 사회가 나서서 멍청한 인간들의 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p.66)” 하지만, 문제는 앞서 말한 대로 보존의 법칙이 존재한다. <X이 제로 조직>이란 책까지 나왔지만 또X이 제로 조직은 현실에서 이루기 힘든 이상적인 이야기다. 그리고 제거 대상이 나일지도 모른다.

제거도 불가능하다면 역시 공존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들의 영향력을 제한하고, 멍청함이 제한적으로 확산하도록 통제해야 한다. 하지만 세상은 점점 더 초연결의 시대로 가고 있고, 그들의 영향력은 막강해져만 간다. 저자들의 걱정대로 탈진실의 시대에서 멍청함이 진실을 이겨내고, 민주주의라는 우리의 삶의 토대를 파괴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이런 걱정조차 멍청한 짓인지 모르겠다. 인류는 늘 멍청이와 함께 살아왔다. 멍청한 상상, 멍청한 선택을 뚫고 여기까지 왔다. 단 한 번의 멍청한 짓이 전 인류를 멸망에 빠지게 할 힘 까지 가졌지만, 누가 알랴. 멍청함이 지배하는 시대가 올지도.

영화 <이디오크러시>는 멍청함이 통치하는 미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분명 멍청함은 보기 좋지 못하다. 불편하고, 바로잡아 주고 싶다. 그럼에도 그게 삶이라면, 모두가 그렇게 산다면 그 또한 살아지지 않을까. 문제는 모두가 멍청하고, 나만 똑똑한 순간이다. 내 옆 사람이 하는 짓이 멍청해 보이고, 저렇게 밖에 처리를 못하는지 답답한 순간. 도무지 세상 돌아가는 꼴이 말 같지도 않은 현실. 이 모든 걸 견딜 수 없는 순간. 앞서 말한 멍청함의 특성들을 잘 생기해보라. 멍청함은 상대적이다. 당신만이 똑똑하다고 생각한 순간. 이미 당신은 멍청한 짓을 했을지 모른다. 나 역시 매일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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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함이란 비꼬는 불신이다. 실제로 멍청한 이난은 비꼬는 성향에 남을 잘 믿지 못한다. 비꼬는 성향이란 인간의 본성과 동기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p.35

연구자들은 우리가 멍청이에 이토록 민감(p.36)한 이유는 두 가지로 파악했다. 먼저 우리에게는 멍청함을 포착하는 레이더가 있다. 바로 부정 편향이다. 우리 인간은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더 무게를 두고 주목하는 성향이 있다. 이러한 부정 편향은 인간의 의견, 편견, 낙인, 차별, 미신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 아무리 복잡한 사회에서도 우리는 천재보다 멍청이를 더 빨리 알아본다. 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사건보다 부정적인 사건을 더 먼저 알아본다. ... 두 번째로 연구진은 귀인의 근본적인 오(p.37)류를 밝혀냈다. 우리는 누군가를 관찰할 때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는 원인은 외부 환경이 아니라 타고난 성향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사례에서 결론이 무척 명확해 보인다. 멍청이 때문이다. ...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주변(p.38) 사람들 대부분이 멍청한 인간으로 보이는 것이다. p.39

멍청하다는 말에 담긴 뜻은 언제나 똑같다. 아무리 표현이 다양해도 멍청이란 지적 능력이 떨어지고 정신 연령이 낮은 사람을 나타낸다. 그러니까 멍청함은 상대적인 평가다. 그 자체로 멍청이인 사람은 없다.(모두가 멍청이라면 누가 멍청한지 구분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어느 정해진 기준점보다 떨어질 때 멍청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기준점보다 높은 사람은 우월감을 느낀다. p.43

말도 안 되는 것을 믿는 행위는 순진함이나 분별력 부족이라기보다는 기준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p.50

멍청한 짓은 머리와 가슴에 문제가 아니라 사회에서 보여주는 행동과 관계있는 겁니까? / 그렇습니다. 사회적인 행동과 관계된 문제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따져보면 남을 제대로 배려(p.61)하지 못하는 사람이 멍청한 짓을 하게 됩니다. 멍청한 인간은 현실과 관계없이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멍청이의 비위를 맞춰주는 주변 친구들도 있고요. 따라서 멍청한 짓은 사회적인 행동이기도 하지만 고치기 힘든 개인적 성향이기도 합니다. p.62

멍청한 인간도 달라질 수 있긴 하지만, 가능한 한 멍청한 인간과는 엮이지 않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p.63) ... 멍청한 인간들과 맞서려면 멍청한 인간들을 배제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힘을 합해 대항해야 멍청한 인간들이 몰락합니다. ... 멍청한 인간은 제대로 된 사람들이 가는 길을 방해하기 때문에 아무리 힘든 일이어도 사회가 나서서 멍청한 인간들의 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p.66

오류는 단순히 의견뿐만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인식까지도 바꾼다. 인간은 오류에 빠지는 순간 맹목적이 된다. p.79

엄격한 논리적 사고는 인간의 본성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사고방식은 완전하지 않다. 대신 인간은 상황에 따라 생각하면서 복잡하고 불완전하며 불확실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한다는 것이다. p.82

무지하다고 멍청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지는 지(p.110)식을 흡수하는 강력한 원동력이다. , 우리가 스스로 무지하다는 사실을 알고 인정해야 한다. p.111

시스템1에서 세상, 욕망, 인상에 대한 해(p.115)석이 이루어지고 이 해석이 시스템2를 거쳐 신념과 결정으로 바뀝니다. p.116

우리의 정치적 신념을 정하는 것은 시스템1입니까, 아니면 시스템2입니까? / 시스템1입니다. 우리의 정치적 신념은 논리로 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존경하는 사람, 신뢰하는 사람을 따르다 보니 정치적 신념이 기우는 것입니다. 정치 활동을 전반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감정입니(p.123)니다. 민주주의에서 합리적인 인간이라는 신화가 여전히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완벽한 합리주의가 없어도 민주주의는 작동합니다. 민주주의는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을 위해 찬성표를 던지는 사람들만 있으면 충분하니까요. 그러나 추상적이고 위험 확률이 애매한 분야에서는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기후 변화 문제가 대표적이지요. 시스템1은 추상적인 위협 앞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합니다. 위협이 구체적이지 않으면 감정을 일으킬 수 없고, 감정이 없으면 행동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현재는 잘 와 닿지 않는 위협도 심각하게 인식하려면 시스템 2가 작동해야 합니다. 따라서 시스템2를 자극하는 적절한 방법을 찾아야겠지요. p.124

어리석음과 재치는 공통적으로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면 어리석음은 진실을 존중하지만 재치는 진실을 무시한다. - 니콜라 말브랑슈 p.142

유언비어는 탈진실시대의 산물이다. 이제는 우리가 가짜뉴스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야 할 판이다. 문제는 우리가 유언비어를 듣고도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에 별로 관심이 없고 유언비어가 만들어내는 결과만 즐긴다는 사실이다. p.146

우리의 뇌는 곧 대처와 체 게바라 간의 싸움이다. p.155

멍청함은 두뇌의 어느 부분에 위치합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대답을 해줄 것이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보고 멍청이라고 조롱하는 사람의 두뇌 속에 있다.” p.160

당신이 멍청하든 멍청하지 않든, 언제나 누군가에게는 멍청이일 것이다. -피에르 페레 p.163

지능은 사람 전체에 해당하지만, 멍청함은 특정한 행동에 관한 이야기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p.189

멍청함과 창의성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다. 멍청함과 창의성은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고 기존의 기준과 대립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멍청함은 생각보다 미묘하다. 똑똑하다고(IQ가 높다고) 멍청한 행동을 하고 싶은 유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p.179

민주주의 사회마다 교육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정작 지식에서 중요한 비판 정신 교육은 빠져 있는 것 같다. 아무리 교육적인 노력을 기울여도 비판 정신이 길러지지 않으면 쉽게 맹신에 빠질 수 있다. 의심을 하면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의심이 지나치면 주체적인 정신이 키워지기보다는 허무주의로 이어질 수도 있다. - 제럴드 브로네르, <맹신자들의 민주주의> p.184

메타 분석은 지능을 가리켜 추론하고, 계획하고, 복잡한 생각을 이해하고, 신속히 배우고, 경험에서 배우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메타 분석에 따르면 똑똑한 사람일수록 쉽게 무엇인가를 믿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p.185

비판 정신이란 인지 능력을 마비시키는 모든 편향(사후 과잉 확신 편향, 확증 편향 등)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다. -헤더 버틀러(캘리포니아 주립대 조교수) p.187

인간이 우연을 두려워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인간은 일반적으로 무엇이든지 설명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과학을 발명한 것이지요. p.217

이 지점에서는 관념적인 언어와 멍청한 말이 비슷하다. 즉 말고삐가 풀리듯 현시로부터 동떨어져 아무렇게나 나와 있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언어가 부적절하게 사용되었어도 거짓말과는 다르다. ... 이렇게 보면 멍청한 말과 관념적인 언어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언어에서는 실제 의미보다 상징성이 더 중요하다. p.273

단어는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가리키기보다는 우리 주변의 세상을 분석하고, 우리가 정의하는 개념을 통해서 세상에 의미를 준다. p.274

멍청함이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이유는 전염성이 강해서다. 멍청함이라는 바이러스에 전염되면 누구나 상식을 잃어버린다. ... 이 두 사람의 말을 살펴보면 언어 표현도 과장되었지만, 생각이 편협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런 말에 지지를 보낼 사람들은 두 사람과 같은 부류인 멍청한 인간들뿐일지도 모른다. p.281

인간의 지성이란 감정적인 반응과 지식 및 이성 사이에 타협을 보는 능력입니다. p.285

아무리 지적인 두 사람도 앉아 있으면 걸어가는 무지렁이에 뒤쳐진다.” - 미셸 오디아르 p.294

자조의 조사에 따르면 감정 능력이 부족하고 자기중심적이어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사람, 즉 자아도취에 빠진 사람이 멍청이인 것이다. p.296

감정이란 잘 다져진 지성입니다. 지적인 사람일수록 복잡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감정과 지성을 서로 반대 개념으로 봐서는 안 됩니다. 지성을 갈고 닦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복잡한 감정을 표현합니다. 지성도 훈련해야 합니다. p.324

지금은 우리가 스마트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든 기기들이 스마트합니다. 스마트 기기로 우리는(p.325) 다른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인간은 언어를 만들었고 우리는 언어로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언어가 인간보다 지적입니다. ... 언어학자들도 자신들이 만든 도구에 의존합니다. 측정을 위해서요. p.236

음악에 배경음이 있어야 멜로디가 나오듯, 멍청함도 어느 정도 지혜를 얻을 수 있게 해주는 배경음입니다. p.329

라이언 홀리데이가 가짜 사건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여러 기술 중 두 가지를 소개한다. 첫 번째, 전문가 행세를 한다.(p.346) ... 두 번째, 거짓 이슈를 만든다. (p.347) ... “그럴듯하게 정확하면 정보로 둔갑합니다. 사실이 아니라면 기자들이 반박하는 기사를 쓸 수 있습니다. 같은 사건이어도 두 가지 기사가 나옵니다. 이처럼 기자들이 가짜 뉴스를 설명하는 기사를 써주면서 가짜 뉴스는 더욱 대중에게 알려집니다.” p.348

사람은 잘 모르는 주제를 다룰 때 반드시 멍청한 말을 지껄이게 된다. -해리 프랑크푸르트 p.377

멍청함은 단순히 지성의 반대가 아니다. 아주 똑똑한 사람도 놀랄 정도로 멍청할 수 있다. p.394

안타깝게도 멍청함이라는 표현은 너무 애매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멍청함이 지닌 뉘앙스를 정확히 표현하지 못한다. 이 단어에는 철학적인 의미가 깃들어 있다. ‘멍청이라는 표현은 현재 우리와 진실 사이에서 어리석음이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관심을 갖는 데 도움을 준다. 탈진실을 보여주는 멍청한 말을 하려면 어느 정(p.398)도 지식은 있어야 한다. 어느 정도 머리가 있어야 멍청한 말을 지어내고, 맞는다고 우기고, 그 말을 퍼뜨릴 수 있다. 심지어 머리를 굴리는 전략도 있어야 한다. p.399

이 세 가지 요소(맹목적인 확신, 자아도취, 막무가내의 주장)를 이해하면 멍청한 말이 대규모로 나타나는 이유를 알 수 있고, 일반화된 백치 상태를 가리켜 탈진실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400

로제는 멍청함을 날카롭게 분석하면서 멍청함은 합리성이 부족한 상태가 아니라, 반대로 논리를 과도하게 내세우는 상태라고 결론지었다. ... 멍청함을 샅샅이 해부해보면 특이한 원치이 성립한다. ‘A=A’. 이미 이야기한 것과 생각한 것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밀고 나가는 것이다. p.401

멍청한 인간은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생각한다. p.401

자기중심적인 시각은 지혜가 아니라 직감을 중시한다. 내가 믿는 것은 무조건 진시이라고 본능적으로 확신하며 믿는다는 의미다. p.404

멍청한 인간은 자아도취와 자기맹신에 빠져 있다. 이 때문에 멍청한 인간들이 쉽게 늘어난다. p.408

멍청한 인간은 결론을 내고 싶어 한다.” -플로베르 p.409

탈진실 시대를 지탱하는 사람들은 본능과 감정을 지식으로 착각한다. 이러한 개인들의 믿음과 행동도 대부분 본능과 감정에 충실하다. 본능과 감정이 지배할(p.411)때 멍청함이 생긴다. p.412

국수주의는 개개인의 존엄성을 유지하려는 마음이 이성적으로 표출된 것이다. 그러나 도잇에 국수주의에는 개개인이 마음속에 간직한 욕망(사회적으로 출세하고 싶은 욕구, 오만함, 공격성, 지배욕)이 담겨 있기도 하다. 영광, 명예, 물리적인 힘, 씩씩함을 표현하도록 자극하는 국수주의는 앙시엥레짐(구체제)의 귀족들이 (p.425) 지닌 열망을 담고 있다. 특히 국수주의는 힘이 약한 개인들의 열등감과 무력감을 해소하는 도구도 된다. p.426

모든 사회는 집단 이상을 만들어 낸다.” 정신의학자 조르주 드브루가 했던 말이다. 집단 이상이 생겨나면 이 이상을 해치는 부정적인 존재도 만들어진다. p.427

신자유주의 사회가 발달하고 시장 지배와 자아도취 문화 속에서 개인들이 박탈감을 느끼면서 포퓰리즘이 퍼져나간다고 볼 수 있다. 누구나 소비주의에서 이익을 보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소비주의가 불러일으키는 환상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p.434

멍청한 인간들의 행동 때문에 계속 고통 받는 것이 아니라 당당히 맞서고 반박하며 자기방어를 했다. 바로 이것이 멍청한 인간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막는 방법이다. p.466

꿈은 가상현실이자 행동을 준비할 수 있게 돕는 방어막이다. 뿐만 아니라 꿈을 통해 감정을 잘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꿈속에서는 감정적인 찌꺼기가 걷히고 중요한 정보만 남은 기억이 재현되기 때문이다. p.493

행동은 우리의 경험일 뿐 우리의 정체성이 아니다. p.522

어리석음은 신이 주신 능력이다. 그러나 남용해서는 안 된다. -교황 요한 바오로2p.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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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홍승은] 홍승은의 글쓰기, 나의 글쓰기 | Memento 2020-04-28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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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글쓰기란 무슨 의미인가? 의미보다는 의무감이다. 어쩌면 의미를 남기고자 하는 최후의 발버둥일지 모른다. 이 블로그가 그렇다. 어떤 거창한 의미를 가지고 시작하지 않았다. 죽을 것 같이 힘들었던 순간. 심리 치료 중, 좋아하는 일을 해보라는 말에 무작정 서점을 찾았다. 그저 책 냄새, 잉크 냄새가 좋았다. 문득 잊고 살았던 독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샀고, 뭔가를 끄적였다. 아마 그게 시작이었다. 내 안에 있는 생각들을 걱정 없이 토해내기 위해서. YES 포인트는 덤이었다. 글쓰기는 그렇게 아무런 의미 없이, 그저 시원하게 토해내기 위해 시작했다.

문제는 어느 순간 목적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그저 가끔씩 울컥거리는 내 안의 감정들을 토해내고, 기록하는 정도로 그쳤어야 했다. 그걸로 끝이어야 했음에도 손가락을 목구멍으로 집어넣고 억지로 토해내고 있었다. 최소한 A4 1장 분량은 토해내자. 그래야만 꿈(으로 포장된 허황된 목표)을 이루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듯했다. 그리고 덤이었던 YES포인트는 그 실적을 계량화 해 주었다.

깊은 숙취나, 장염에 걸려본 사람들은 잘 안다. 토 하는데 한계가 있다. 위액마저 토하고 나면 고통만 있을 뿐 더 이상 아무것도 튀어나오지 않는다. 그저 헛구역질 해대며 고통 속에 몸부림 칠 따름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놀이가 의무가 되는 순간, 즐거웠던 독서도 고통으로 다가온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누군가는 말할지 모른다. 그 고통의 시간이 당신을 성장케 할 것이라고. 하지만 반복된 고통은 병의 신호일 따름이다. 억지로 토해내면 ?현대인의 불치병인- 역류성 식도염에 걸릴 뿐이다. 코난 오브라이언이 말했다. ”니체는 너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너를 강하게 만들 뿐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가 더 강조했어야 할 말은 그 정도 고통이면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작년, 그리고 지금. 그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 비염으로 너무도 힘들다. 실재 삶도, 글도 더 이상 토해낼게 없는 순간 몸은 무너져 내렸다. 재가 되었고, 병원비만 우수수 깨져나갔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어야 했기에, 돈벌이를 멈출 순 없으니. 그리고 다시 토해내고자 움직여 본다. 별다른 생각은 없다. 그저 토해낼 뿐. 누군가를 위해서도 아니다. 나를 위해서. 나에게 글쓰기란 아직까지는 그 정도다. 그래도 계속 써야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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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연결될 때, 삶과 문장은 단단해 진다. p.2

서사가 부재한 곳에 정보만 남아요. 나에 대해서는 내가 가장 잘 말할 수 있기 때문에 글을 써요. 하나의 정보로 존재가 납작해지지 않도록, 제가 자유롭기 위해서요. p.6

어떤 글은 존재를 입체적으로 증명하지만, 어떤 글은 존재를 납작하게 만든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읽는 사람에게도 그렇다. 글쓰기에서 가치판단이 적용되는 기준이(p.10)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글, 고유한 개개인을 하나의 덩어리로 뭉개는 글을 위험하다. p.11

내 경험을 말했을 뿐인데, 세상이 딸꾹질했다. p.14

적어도 성폭력에서 때린 놈은 발 뻗고 못 잔다.’는 말은 거짓이다. 때린 놈은 편하게 자지만, 맞은 사람은 모든 화살을 자신에게 돌리며 밤을 지새운다. p.16

내 세계를 타인에게 보이는 일, 타인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일. 타인과 나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p.20)에 고개 돌리지 않는 일. 나에게 읽고 쓰는 과정은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이었다. p.21

성장 과정에서 우리는 언제나 두려움이라는 난관을 마주하게 됩니다. 가시화에 대한 두려움, 가혹한 시선과 비판에 대한 두려움, 고통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 말입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죽음을 제외한 이 모든 두려움을 이미 침묵하며 지나왔습니다. -오드리 로드, <스스터 아웃사이더> p.37

글이 짓는게 아니라 살아내며 쓰는행위라면 시야가 좁거나 무례한 사람에게 권위를 줄 경우, 글뿐 아니라 삶이 막히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 p.58

질문에 대답하는 더 나은 방식 찾기. 질문을 다시 질문하는 방식. 그리하여 어떤 존재를 늘 질문으로 만드는 세상을 향해 우리가 질문하게 된다. -사라 아메드 p.71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못된 여자는 어디든 간다. p.74

우리는 모두 이미지와 이야기의 세계에 살고 있고, 대부분은 이런저런 이야기에 상처받으며 살아간다. 운이 좋으면, 우리를 받아주고 축복해주는 다른 이야기를 찾거나 더 나은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리베카 솔닛 p.74

글쓰기는 단지 지난 시간을 기록하는 활동이 아니라 경험을 기반으로 끈질긴 사유와 해석을 이어가는 과정이다. 기존의 관념을 비틀어 존재를 자유하는 언어를 구사하고, 경험을 다각도로 해석할 때, 내가 쓴 글은 단지 개인적인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답이라고 여겨졌던 상식에 글쓰기를 통해 질문을 더니면, 그 질문은 파장을 일으켜 누군가의 실제 삶에 자유를 선물할 수 있다. p.78

몸문화연구소의 임지연 교수는 죄책감이 부분적인 행위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는 감정이라면, 수치심은 전면적으로 자아를(p.88) 문제시하는 감정이라고 한다. p.89

들리지 않는 것, 말하지 않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은 말을 한다.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결정적인 한마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단어를 입에 담지 않는 침묵에서 나온다. -찰스 백스터, <서브텍스트 읽기> p.92

고통을 스스로 언어화하지 못할 때 속이 썩는다는 말은 정확하다. 고통의 원인인 모든 부정의가 오로지 나라는 존재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p.97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꼭 가족이거나 연인일 필요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사랑하는 만큼 이해 받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몰래 글을 쓰는 모습은 쓸쓸하다. 그 관계가 다른생각 자체를 막아버리진 않을(p.113)지 걱정되기도 한다. 각자의 고유한 자국을 존중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이 될 수 있을 텐데. p.114

아마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시도해도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나. -문학평론가 신형철 p.115

내가 쓰는 글을 통해 누구에게 힘이 되고 싶은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싶은지 스스로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면 따라오는 비난에 대해서도 조금은 의연해질 수 있었다. p.121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당신에게 큰 영향을 주지 못해요. 나를 망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나 자신이에요. 다른 말로, 나를 망칠 권리는 오직 나에게만 있어요. p.127

글이 삶을 관통해서 나올 수밖에 없는 거라면, 소수자의 위치에서 나오는 글은 언제나 보편성을 획득하는 데 실패할 테고 영원히 사적이라는 딱지를 뗄 수 없을지 모른다. p.133

내면적인 것은 여전히, 그리고 항상 사회적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순수한 자아에 타인(p.135), ,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자 자신의 인류학자이다. -아니 에르노 p.136

대화와 글쓰기는 나와 타자의 소통이라는 점에서 닮았다. 다른 점이라면 대화에서는 즉각적으로 아록 물어줄 사람이 있지만, 글쓰기는 물어줄 사람이 없으니 내가 나에게 질문하며 써야 한다는 점이다. 읽는 사람이 라고 물을 만한 부분을 내가 먼저 보여주려는 노(p.148)력이 필요하다. p.149

나는 글의 고유성과 힘은 문장력 이전에 서사와 질문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내가 통과해 온 시간을 말할 수 있는 건 나 밖에 없기에 내 이야기를 쓸 때 글을 가장 고유해진다. p.149

자신으로 인해 슬픔을 가져야 했던 사람이 있었음을 잊지 않는 이들에게 우리는 기대를 건다. 자신의 경험을 배반하지 않는 그들 우리로부터 은 시작된다. -조한혜정, <글 읽기 삶 읽기> p.164

사라 아메드는 정의를 위해 싸운다고 해서 우리 자신이 정의로우리라는 보장은 없다며 망설여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촘촘하게 차별로 연결된 고통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조금 더 촘촘하게 사유하고 망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p.181

누군가를 풍경의 배경으로 여기는 것만큼 고유성을 지워버리는 간편한 방식은 없다. 글에 생기가 줄고 관점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면 나는 먼저 내 애정을 의심한다. 눈앞의 존재를 고정된 물체로 인식하고 있지 않은지 묻는다. p.188

글쓰기는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맑은 길로 가로지르는 과정이 아니라 뿌옇게 흐린 길을 더듬으며 내 위치와 감정의 실체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관성적으로 쉬운(p.272) 길로 가려고 할 때마다 잠시 제동을 걸어 일부러 길 잃기를 선택하는 게 쓰기의 과정이 아닐까. 내 경험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거나 느낄 수 없는지 이리저리 각도를 바꾸어 살피고, 첫 판단을 버리고 낯선 시선을 탐색해가면서. p.273

자기 서사를 쓰는 일은 자서전처럼 모든 일대기를 쓰는 일이라기보다, 내 기억과 일상을 낯설게 보고 기록하는 일이다. 권태에 눌리지 않고 감각을 열어 지금을 살아갈 때, 과거와 지금의 경험에서 글감은 자연스레 떠오르는 게 아닐까. p.301

여유 없는 사람들은 천박할 수밖에 없고, 나는 그 점을 말과 글로 옹호한다. 상대가 천박해(p.319)서 불편하다면 내 소갈머리를 살펴야 한다. 천박을 옹호하려는 내 말과 글이 고상한 단어들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내 삶과 언어의 치명적인 한계다. 내가 그 사람들보다 덜 천박하다면 내 삶의 여유에서 비롯된 배운 년의 체면과 껍데기 때문이다.“ p.320-최현숙

세상의 모든 글은 콜라보이자 타인의 흔적이다.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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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양형 이유-박주영] 죽이느냐 살리느냐 역시 쉽지 않다. | Memento 2020-04-26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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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어떤 양형 이유

박주영 저
김영사 | 2019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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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쉬운 판결이 어디 있으랴. 쉬운 선택이 있기는 한 걸까. 죽이느냐 살리느냐 역시 쉽지 않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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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를 하다보면 난감한 상황이 많다. 사정은 딱하나 법과 규정은 고정적이고, 해석이나 재량의 여지가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담당에게 아무리 빌고 애원해도 다른 방법이 없다. 법이나 규정이 잘못된 경우는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결국 담당자인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인데, 그것도 쉽지 않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처리해야 정의다. 형평성의 문제다. 나는 걸리고 너는 안 걸린다면, 그건 법치주의가 아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쉽지 않다. 단순한 규정에도 예외는 항상 발생하기 마련이다. 사람의 삶이 똑같지 않듯이 각자의 사정 역시 다르다.

종종 강력범죄로 보이는데 판결은 터무니없이 약하게 나온 기사를 접할 때, 사람들은 분노한다. 법이 잘못되었다고도 하고, 판사가 문제라고도 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전관예우는 이러한 사법불신의 대표적 사례다. 실재로 그렇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아니라고 믿는다. “‘죽이느냐 살리느냐 To kill, or Not to kill’의 처지에 선 사람에게도 선택은 괴로운 문제(p.279)”라고 고백하는 판사들이 많음을 믿기 때문이다. 현직 비주류(?) 판사가 쓴 <어떤 양형이유>는 그래서 읽어봄직하다. 왜 그런 터무니없는 판결이 나올 수밖에 없는지를 고민케 한다.

사실 기사는 개개의 사정을 전달하지 않는다. 자극적인 내용과 정보만 전달할 뿐이다. 이를 보완할 방법이 없을까.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판결문이 있다면 2016헌나1”가 아닐까 싶다. 이 판결문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한 판결문인데, 생중계를 통해 전 국민에 공개되었다. 정치적 문제를 떠나서 판사들의 중노동을 통해 만들어진 판결문들이 이와 같이 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최대한 쉽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다면, 법에 대한 불신도 어느 정도 해소되리라 본다. 현대사회에서 법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렇다면 결국 법과 친해져야만 하는데 판결문에 대한 접근이 쉬워진다면 그만큼 어떤 양형이유에 대한 고민이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 우리의 인식변화도 필요하다. 정의와 선함이 승리한다고 믿는다. 문제는 각자의 정의와 선함이 다르다. 저마다의 정의와 선함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나에게 맞지 않는 판결은 부정의고, 악함이다. 그래서 우리는 법에 호소하고, 법정을 찾고, 공명정대한 판결을 요구한다. 하지만, “법정은 선악의 공론장이 아니다.(p.50)”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취급한다는 정의론은 사실상 알맹이 없는 이론이다. 세상에 같은 사례는 없다. 서로 유사한 것을 같은 범주로 묶어 같다고 선(p.370)언할 수밖에 없는데, 일반화하고 범주화하는 과정에서 벌써 정의는 훼손되고 만다. 다른 것을 같은 것으로 취급해야 하기 때문이다.(p.370)” “불법과 적법의 영역에는 선악이 개입될 수 없다. 선의에서 비롯된 불법도 있고 악의에 차 있지만 적법한 행위도 있다.” “선악은 양형에 다소 참고 될 뿐이다.(p.50)” 우리가 믿는 정의와 선함은 어느 곳에도 없다.

결국 방법이 없는지도 모른다. 좋은 법을 만들고, 뛰어난 판사를 고용하고, 좋은 제도를 만들더라도 모든 정의를 구현하고 선함을 지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건가. 그럴 수는 없다. “국민은, 불복할 수 없는 상급심(p.13)”이다. 국민의 명령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더불어 국민인 우리 역시 깨달아야 한다. “법정이라는 무대에 오른 드라마에는 해피엔딩이 없(p.27)”, “법정은 모든 아름다운 구축물을 해체하는 곳(p.28)”이라는 것을. 법원에 없는 것을 요구한다면 그 역시 잘못된 명령이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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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불복할 수 없는 상급심이다. p.13

법정이라는 무대에 오른 드라마에는 해피엔딩이 없다.(p.27) ... 법정은 모든 아름다운 구축물을 해체하는 곳이다. 사랑은 맨 먼저 해체되고, 결국 가정도 해체된다. 형사사건에서는 한 인간의 자유를 지지해준 법적 근거마저 해체시킨다. 재산을 나누고, 아이도 나눈다. 사랑의 잔해를 뒤적이고 수습하다 보면 법정이 도축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법관은 굳어버린 사랑을 발라낸 다음 가정을 이분도체, 사분도체로 잘라내고 무두질한다. 법은 날카롭게 벼린 칼이고, 법관은 발골사다. p.28

폭력이 난무하는 곳보다 더한 공적 영역은 없다. p.36

사실관계가 증거, 특히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주로 따지는 영역이라면, 해석은 문자의 의미와 가치관, 감수성의 영역이다. 해석은 옷감과 비슷하다. 작은 옷에 억지로 몸을 욱여넣으면 단추가 터져버리지만, 옷감에(p.47) 신축성이 있다면 가능하다. 그러나 아무리 신축성이 있어도 담을 수 있는 용적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고무자루를 옷이라 할 수 없다. 이는 법의 외피를 둘렀을 뿐 규범이라고 부를 수 없다. 법과 같은 규범은 정해진 사이즈가 있어야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라지, 엑스라지, 44, 66이 법이라면 옷감의 신축성이 바로 해석의 영역이다. 사이즈를 해석의 최대치로, 신축성을 시대정신으로 비유할 수 있다. 그 시대상황이나 사회적 관습, 동시대인의 보편적 인식, 당대의 사회구조 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정확한 법률해석을 할 수 없다. 시대정신이 법의 엄격한 해석을 요구하느냐, 아니면 유연한 해석을 요구하느냐에 따라 법의 해석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사실관계 인정이나 법률의 규범적 해석은 법원치과 선례 등이 누적된 경우가 많으므로, 법관들마다 중구난방의 결론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p.48

불법과 적법의 영역에는 선악이 개입될 수 없다. 선의에서 비롯된 불법도 있고 악의에 차 있지만 적법한 행위도 있다. 법정은 선악의 공론장이 아니다. 선악은 양형에 다소 참고될 뿐이다. p.50

법정증언은 진실된 피해자가 다시 마주치는 폭력적 상황이다. 그럼에도 진실된 피해자라면 견뎌야 한다. 힘들고 불쾌해서 증언을 못하겠다거나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갈 경우 유죄 입증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변호인의 공격은 성공을 거둔다. ... 진실은 어눌하고 오락가락하며, 기억은 희미하고 게으르지만 대부분 시험대를 통과한다. p.53

혐오는 대부분 관념에 정주한다. 혐오의 대상을 관찰하고 그들의 삶 속으로 조금만 들어가보면 혐오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편견에 근거한 것인지 금방 깨닫게 된다. p.100

강만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다. 산재사건에서는 형벌도 낮은 곳으로만 흐른다. 기업이 크면 클수록 그 기업의 최고책임자에게까지 산재사고의 책임을 묻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p.133

편견은 진영을 만들고, 진영 속에서 강화되어 차별과 혐오를 낳는다. 집단 혐오는 사적 혐오를 정당화하고, 그 집단을 혐오하는 다른 집단을 만들어낸다. A처럼 가장 약한 개인과 집단부터 혐오의 대상이 되고 결국은 차례차례 조리돌림당한다. p.147

그러나 법의 영여에서 동정이나 연민은 위험하다. 인권은 시혜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수자에 대한 법적 보호를 시혜라고 보면, 그 시선은 언제 철회해도 무방한 것이 된다. p.153

법의 주된 기능은 선긋기에 있다. 적법과 불법을 경계로 국가권력으로부터의 보호 여부가 결정된다. p.154

햇볕은 감미롭고, 비는 상쾌하고, 바람은 힘을 돋우며, 눈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세상에 나쁜 날씨란 없다. 서로 다른 종류의 날씨가 있을 뿐이다.”(존 러스킨) 세상에 나쁜 아이도 없다. 서로 다른 처지의 좋은 아이만 있을 뿐이다. p.218

결혼을 하고 시간이 흘러 깨달은 건, 결혼은 사랑해서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사랑에 대한 예지로 감행된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오래 연애를 했더라도 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고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은 천천히 커지고, 작게 시작해(p.229) 크게 여무는 것이다. 사랑이 식는다는 말도 이상한 말이다. 확 타올랐다가 식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욕정이다. 결국 결혼은 저 사람이라면 계속 새롭게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지에서 결정된다. p.230

기억은 법적 사실이라는 존재의 집이다. 기억이 없으면 사실도 없다. 기억하지 못하고, 기록되어 있지 않다면, 적어도 재판에서는 그날 그 일은 벌어지지 않은 것이다. 나의 실감만으로 내 존재를 입증하지는 못한다. 누군가 나를 기억하고 언급하지 않으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적 존재는 물질이 아니라 기억과 이야기로 이뤄진다. 문제는 기억이 믿을 게 못 된다는 점이다. p.240

정을병은 단편소설 <육조지>(1974)에서 형사는 때려 조지고, 검사는 불러 조지고, 판사는 미뤄 조지고, 간수는 세어 조지고, 죄수는 먹어 조지고, 집구석은 팔아 조진다.”고 썼다. p.260

사느냐 죽느냐 To be, or Not to be’의 처지에 선 사람도 괴롭지만, ‘죽이느냐 살리느냐 To kill, or Not to kill’의 처지에 선 사람에게도 선택은 괴로운 문제다. p.279

소송은 타협의 지점 없는 일도양단의 장이다. ... 재판은 양자역학의 세계가 아니라 고전물리학의 세계다. p.279

가치는 상대적이고, 중요하지 않은 하찮은 가치란 없음에도 소송은 추어이나 생명 같은 계량할 수 없는 것을 형량해야 한다. p.286

모든 사안을 법대로 공평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법원칙이 법적 안정성의 문제라면, 유사해 보이지만 다를 수밖에 없는 각 사건에서 개별 사안에 따라 거기에 맞는 최선의 결론을 도출해야 하는 것은 구체적 타당성의 문제다. 어떤 법관은 법적 안정성이 정의의 영역이라면 구체적 타당성은 사랑의 영역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p.287

칼 포퍼의 지적처럼, 반증 가능성 없는 과학은 사이비이고 닫힌 사회가 곧 전체주의이듯, 화석화된 판사는 그 자체로 해악이다. p.289

이해나 공감이 경험에서 비롯된다면, 떨림과 감응은정성에 달린 문제다. 이해하고 공감하되 불 좋은 연탄마냥 뜨겁게 반응하지 않는다면, 쇳조각은 고사하고 달고나한 국자 녹여낼 수 없다. p.291

판사는 법이라는 바람을 맞으며 정의가 있는 곳을 가리키는 풍향계일 뿐이다. 풍향계가 갈팡질팡한다면 바람이 문제인가, 풍향계가 문제인가? 고장 난 풍향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혐의는 오히려 정의에 있어 보인다. 정의는 동서남북처럼 고정된 방위가 없다. p.356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취급한다는 정의론은 사실상 알맹이 없는 이론이다. 세상에 같은 사례는 없다. 서로 유사한 것을 같은 범주로 묶어 같다고 선(p.370)언할 수밖에 없는데, 일반화하고 범주화하는 과정에서 벌써 정의는 훼손되고 만다. 다른 것을 같은 것으로 취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황은 얼마든지 변주도고 무한히 확장된다. 이런 논리적 모순과 간극을 메우기 위해 규범과 해석은 열려 있어야 한다. 반증 가능성 없는 명제가 참이 아니듯 닫힌 규범과 해석은 위험하고, 정의에 반할 가능성이 높다. 법정형을 무겁게 하고 판사의 재량을 줄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p.370

법은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를 바로 찾게 하는 것이 국민의 건전한 법감정 내지 법의식인 것이요, 일단 제정된 법에 가치와 생명을 불어넣는 것도 법감정과 법의식의 힘이다.” 최종고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p.374

힘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 정의와 힘은 동시에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정의가 강해지거나 강한 것이 정의가 되어야 한다. 정의는 시비의 대상이 되기 쉬우나, 힘은 시비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정의는 강해지기 힘들다. 결국 강한 것이 정의가 되었다.” 파스칼 p.374

법감정은 단순히 격앙된 감정상태가 아니라, 힘이 약한 정의일 가능성이 높다. 들끓는 법감정은 곧 강해(p.374)질 정의 아닐까?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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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즈버거의 말-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헬레나 헌트] 한국의 긴즈버그를 기대하며 | Memento 2020-04-19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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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긴즈버그의 말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헬레나 헌트 저/오현아 역
마음산책 | 2020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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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즈버그와 같은 법관이 우리 사회에 없는 게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거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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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이 많다. 걱정도 많다. 부정적이다. 항상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 걱정하고 고민하는 바를 얘기하면 보통은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말한다. 실재로도 그렇고. 그래서 나는 침묵을 택한다. 괜한 이야기는 피차가 서로 피곤한 일이다. 그것도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면 말이다. 누군가가 잘되고 있고 좋은 일이라고 말하는데 딴지를 걸고 우려를 표하는 일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굳이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다들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반대의견을 말하기 어렵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더라도 나처럼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곤 한다. 게다가 소수자이자, 소수자의 권익을 위해 반대하고 싸우는 일은 절대로 쉽지 않다.

그렇기에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의 언행은 소중하다 올바름을 위해 어떻게 생각하고 말해야하는지를 그의 삶을 통해 배울 수 있다. <긴즈버그의 말>은 그의 삶에 대한 엑기스다. 법과 시민의 자유, 그리고 나의 인생으로 나눠진 챕터 속에서 그의 삶을 짐작해 본다. “유대인이고 여자인 데다 엄마였(p.65~66)”고 사회적 지위까지 이뤄야 했을 그의 삶은 절대로 평탄치 않았을 테다. 그녀가 앞장서 차별을 철폐해 온 지금도 워킹맘을 슈퍼걸이라고 부르는데 하물며 그 차별과 온전히 싸워온 그의 삶은 평탄치 않았을 테다. 그리고 온전히 그를 지지해준 배우자를 보면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 결혼을 하며 가정을 꾸리는 일에 책임감을 가져본다. 위대한 인물에겐 위대한 지지가 있는 법이다.

특별히 인상 깊은 점은 상대방을 인정하는 태도다. 그와 의견이 대립하는 스캘리아 대법관과의 오랜 우정은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데 어떻게 친구로 지낼 수 있냐는 물음에 스캘리아 대법관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생각을 공격하지 사람을 공격하지 않아요. 선한 사람들이 나쁜 생각을 갖고 있기도 하지요. 그 둘을 구분(p.181)” 해야 한다고 말이다. 두 사람이 친구일 수 있는 이유는 스캘리아 대법관의 올바른 생각 덕분이겠지만,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듯, 긴즈버그의 생각도 짐작케 한다.

최근에 이런저런 법률 서적을 뒤적여 본다. 촛불혁명, 사법농단 이후 부쩍 관심이 높아졌다. 많은 법조계 인사들의 고민들을 책을 통해 접하기는 했지만, 정작 우리는 그들의 판결문을 볼 기회가 드물다. 판사가 중노동을 들여 쓴 판결문임을 감안할 때, 우리의 삶과 이다지도 괴리되어 있다면 뭔가 문제가 있지 않을까. “판사는 그날의 날씨가 아닌 시대의 기후를 고려해야 한다.(p.41)”는 말은 그래서 의미 있어 보인다. 책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것도 분명 좋은 방법이지만, 본연의 임무인 판결문으로써 세상에 피력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하다.

전부는 불가능하겠지만 우선 가능한 한 쉬운 언어, 일상의 언어로 써야 할 테다. 그리고 판결문에 접근하는 경로를 다양하게 해야 한다. 법원 홈페이지에 주요 판결문을 게시하지만 사실 일반 대중이 얼마나 그 공지를 확인하겠는가. 그게 어렵다면 정기적으로 판결문을 소개하는 기사나 컨텐츠를 만드는 것도 좋겠다. 이미 하고 있다면 홍보라도 잘해야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올바로 판결하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사법 불신이 높다.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의 방향을 가속(p.125)”할 수 있어야 하지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긴즈버그와 같은 법관이 우리 사회에 없는 게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거라 믿고 싶다. 좀 더 판결문제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 사회에도 긴즈버그와 같은 법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것에 대해 서로 토론하고 논쟁할 수 있는 그런 사회로 발전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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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모든 사람에게 그와 같은 조건(성별)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 법은 긴즈버그가 종종 말하듯이 자유롭게 너와 내가 되도록허용해야 한다. p.15

페미니즘에 대한 가장 간단하면서도 본질을 포착하는 설명은, 말로 토머스가 노래한 <자유롭게 너와 내가 되자>가 아닐까 싶다. ... 페미니즘 개념은 우리 모두 어떤 재능이 있건 각자의 재능을 자유롭게 개발할 수 있어야 하고 인위적인 장애물-단연코 하늘이 내린 것이 아닌 인간이 만든 장애물-에 가로막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p.20

법은 사회를 통치하기 위해 존재한다. 법은 사회를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사회의 경험이 법에 반영되는 것(p.27)은 당연하다. 법이 사람들의 생활 방식에 관계없이 무미건조하게 논리적이라면, 그것은 성공적인 제도로 자리 잡지 못할 것이다. p.28

판사는 그날의 날씨가 아닌 시대의 기후를 고려해야 한다. p.41

우리의 법체계가 판사들의 다양한 배경과 경험으로 한층 풍요로워진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p.58

1959년에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졸업했을 때 뉴욕의 로펌 중에서 나를 고용하려고 한 곳은 단 한군데도 없었다. ... 나는 세 가지 이유로 탈락이었다. 유대인이(p.65)고 여자인 데다 엄마였다. 첫 번째 이유는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게 했고, 두 번째 이유는 양쪽 눈썹을 다 치켜세우게 했으며, 세 번째 이유는 볼 것도 없이 나를 탈락시켰다. p.66

아메리칸드림을 ...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 지하철에서 보니 놀랍도록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의 신조는 에 플루리부스 우눔 E Pluribus Unum” 여럿으로 이루어진 하나이고, 그 핵심은 서로의 다름을 용인하고 더 나아가 인정하면서 끝까지 힘을 합치는 것이다. p.78

보다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기나긴 투쟁 속에서 우리의 기억은 가장 강력한 무기 가운데 하나다. p.82

거짓과 싸우는 길은 진실을 내세우는 것이라고 어느 위대한 법률가가 말했다. 그래서 누군가 거짓을 말할 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이 아니에요. 사실은-그것이 무엇이든 간에-바로 이렇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최선의 견제는 거짓을 퍼뜨리는 사람들에 맞서고 그들을 비난하는 것이다. p.83

차별을 겪어본 사람은 타인이 겪는 차별에 공감하기 쉽다. 개인적 능력이나 사회에 대한 기여도와는 전혀 관계없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p.88

1960년대 후반에 되살아나 거세게 타오른 여성주의 운동은 여성의 바뀐 삶의 양식에 주목했다. 이렇게 사회 분위기가 바뀐 데에는 특히 두 가지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 가내에서 재배하거나 생산하는 음식과 상품이 사실상 없어졌고 효과적인 피임법이 등장한 것이다. p.107남성과 여성은 대체 가능하지 않다. ... 어느 한쪽 성별의 부재는 경제적 혹은 인종적 집단이 배제될 때보다 배심원단의 공동체 대표성을 훨씬 더 떨어뜨릴 수 있다. p.117

1970년대 10년 동안 젠더 구분을 허무는 소송이 잇달아 제기되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나 때문이 아니다. 사회가 변했기 때문이다. 사회는 움직였고, 법원은 반응하는 기관이었다. 법원은 길을 이끌지는 못하지만 변화의 방향을 가속할 수는 있다. p.125

여성의 권리라는 표현은 다소 문제가 있다. 인간의 권리다. 법의 평등한 보호를 받을 모든 인간의 권리다. p.126

삶의 다른 시기에 서로를 보완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p.179

나와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게 그렇게 많은데 어떻게 친구로 지낼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스캘리아 대법관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생각을 공격하지 사람을 공격하지 않아요. 선한 사람들이 나쁜 생각을 갖고 있기도 하지요. 그 둘을 구분할 수 없다면 다른 직업을 찾아(p.181)봐야 합니다. 판사가 되려고 하면 안 돼요. 적어도 합의체 판사는 안 됩니다.” p.181

살아 있는 한 배운다. p.185

(어론과 대중의) 왜곡에 대처하는 방법은 청중이 누구든(p.185) 분노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교사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진실을 보여줄 기회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왜곡임이 드러났을 때 그것에 항구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 사람들이 청중 속에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p.186

삶의 길을 갈 때 발자국을 남겨라. 나를 위해 길을 닦은 사람들이 있었듯이 내 뒤를 따라올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 후세의 건강과 안녕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갈 수 있도록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다하라.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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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30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