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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애의 도시 이야기-김진애] 성선설과 성악설 | Memento 2020-07-19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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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김진애 저
다산초당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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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본질은 무엇인가. 12개의 콘셉트(성질)로 고민해 본다. 도시가 악인지 선인지. 아니면 우리가 악인지 선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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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설과 성악설은 오랜 철학적 논쟁이다. 본성이 우선하는지, 환경이 우선하는지는 관점에 따라 상황에 따라 상이할 테다. 게다가 철학적 논쟁의 테이블을 벗어나 현실에서 적용해보고자 한다면 더욱 답이 없다. 변수는 통제되지 않고, 개별 사례는 특이하기에 어느 것 하나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인데, 도시에 관한 고민에는 조금은 차이가 있다. 사람이 도시를 만들었지만 도시가 사람을 만든다. 그럼에도 사람이 다시 도시를 새로이 만든다. 이런 미묘한 변화 속에 그 동력이 사람이 먼저인지, 도시가 먼저인지 명확하게 가르기 어렵다. 실재 삶에서는 복잡하다면 서로 상호 보완적으로 변화해 나간다고 정리해버리면 끝이겠지만 그러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김진애의 도시이야기>는 여기에 대해서 고민한다. 사람과 도시, 도시와 사람, 그리고 어떻게 도시를 만들어 가야할지 고민한다.

분명 사람이 먼저였을 테다. 인류가 태어나면서부터 동시에 대규모 도시를 형성하지 않았음은 여러 유적을 통해서 명확히 밝혀져 있다. 하지만 지금은 도시가 먼저다. 확실하다. 도시는 사람을 지배하고 있다. 자본과 권력이 도시의 뒤에 서서 사람을 지배하고 있다. 사람이 먼저는 수사에 불과하다. 사람이 먼저기 위해서는 도시가 변해야 하지만 회색 도시의 벽은 높아 보인다. 무표정하다. 점점 더 몸집을 키운 도시는 매트릭스가 되었다. 파란 알약을 먹으면 그 메트릭스에서 벗어나 살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보건, 문화, 경제 등등. 매력적인 도시적인 삶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빨간 알약을 먹고 살아갈 방법은 없을까?

저자는 12개의 도시적인 콘셉트로 방향을 모색한다. “인간 사회의 가장 적나라한 모습이 모여 있는 공간이 도시이고, 이 시대 가장 보편적인 삶의 조건을 규정하는 공간이 도시이므로 이 열두 가지 콘셉트가 도시라는 조건에서 어떻게 나타나도 정의되느냐에 따라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p.20)” 이 도시적 콘셉트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무심결에 지나쳤던 도시의 모습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우리는 어떤 도시에 살고 있는가. 어느 도시에서 살고 싶은가. 도시의 미래에 대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정답은 없지만, 이대로는 파란 알약을 먹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분명히 12가지 콘셉트는 위기다. 또한 도시가 지니는 속성이기도 하다. 성선설과 성악설, 도시의 본성이 무엇인지는 단순하게 정의하기 어렵다. 도시는 그저 존재할 뿐인지도 모른다. 그 속에 살아가는 인간이 제 멋대로 정의하고 있는지 모른다. 사람이 우선이라 하지만 지구 입장에서는 결국 바이러스인지 모른다. 도시는 커다란 흉터이자 암 덩어리일 수 있다. 중요한 건 숙주가 죽지 않아야 한다. 지속가능 한 도시를 만드는데 각자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도시의 본성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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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성, 권력과 권위, 기억과 기록, 알므로 예찬, 대비로 통찰, 스토리텔링, 코딩과 디코딩, 욕망과 탐욕, 부패에의 유혹, 이상해하는 능력, 돈과 표, 진화와 돌연변이가 그것이다. ‘콘셉트란 우리의 생각과 해석과 행위와 의지를 촉발하는 주제를 말한다. 이들이 왜 도시적인 콘셉트일까? 이들은 도시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고 인간 사회라면 어디에나 적용될 콘셉트일 텐데 말이다. 바로 그래서 도시적 콘셉트다. 인간 사회의 가장 적나라한 모습이 모여 있는 공간이 도시이고, 이 시대 가장 보편적인 삶의 조건을 규정하는 공간이 도시이므로 이 열두 가지 콘셉트가 도시라는 조건에서 어떻게 나타나도 정의되느냐에 따라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p.20

도시에 대한 최고의 정의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과 사는 공간이다. 우리의 심리 측면에서 그렇고 사회를 운영하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바로 익명성이라는 토대 위에 도시가 구성된다. p.36

있어 보일 것또는 없어 보일 것등 도시라는 정글 속에서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하는 짓은 동물들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p.38

길은 언제나 중요했지만 도시에서 길의 존재감이 새삼 커진 것은 르네상스 시대 이후다. 다시 말하면 의 존재감이 줄어든 후에야 길의 존재감이 커졌다.(p.42) ... 똑바른 길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점은 도시의 익명성 레벨이 높아진 때다. 성곽이라는 장벽을 걷어내고 길을 열고 수없이 많은 이방인이 드나들게 되니, 도시 컨트롤이 중요한 공공 과제가 된 때다. p.44

격자도시는 계획 도시였다는 뜻이다. 계획의 주체가 확고해야 한다. 강력한 권력 집중화가 필요하며, 단기간에 도시 성장을 이루는 경제력도 필요하고 토지 소유권과 사용권을 규제해야 하며 인구수를 엄격히 관리해야 했다. p.45

길의 기하학은 수없는 변용을 거치면서 각 도시의 고유한 패턴을 만들어간다. p.48

광장을 도시의 살롱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렇듯하다. ... 도시가 하나의 큰 사교장이라면 광장이야 말로 대표 사교장이다. p.51

광장은 전형적으로 이식된 공간으로 인식되고, ‘우리의 것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강력히 통제 된 공간이었다. 공권력이 항상 어슬렁거렸고, 언제 어디에 감시의 눈이 있을지 몰랐고, 모이는 행위 자체에 신경을 쓰는 그런 분위기였다. p.57

광장 정신은 시민 정신이 된다. 진정한 시민의 탄생은 익명성으로부터 시작한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같이 존재하기 위한 약속을 만드는 관계가 시민의 관계다. 일상에서는 그저 지나치며 서로 적절한 거리를 지키지만, ‘이 생겼을 때 서로의 같음을 확인하고 서로의 약함을 도와주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관계다. 평소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할 때 가까이 다가가는 느낌이 훨씬 강해진다. p.59

익명성이라는 조건 위에서는 길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도시의 약속이다. 길을 다니는 즐거움을 만드는 것은 가장 고도화한 도시 예술이다. 광장에서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익명의 시민들을 보호하는 가장 기본적인 도시의 약속이다. 광장에서의 환희를 독려하는 것은 순간이나마 도시(p.61)의 익명성을 넘어서게 하는 가장 고도화한 도시 예술이다. p.62

시민들이 스스럼없이 다니는 길들이 줄어들면 사람들의 마음도 줄어들고 익명성에 대한 두려움도 더 커질 수 있다. 스스럼없이 다니는 길들이 없어지면 광장이 생길 기회조차 생기지 않을 것이다. p.68

도시와 건축은 권력의 존재를 증명하고 과시하는 데 아주 효과적인 수단이다. p.83

도시에서 권력이 펼치는 풍경은 압도적으로 인간의 심리를 좌우할 수 있는 것이다. p.88

거리가 멀면 관계도 멀어진다.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마음도 비어간다. 권력자가 따로 있을수록 가까이 다가서는 접근성이 줄어든다. 그러다 보면 접근 가능한 측근의 문제가 생기고, 측근의 문제가 생기면 권력의 쏠림과 왜곡 현상이 뒤따른다. p.95

백악관도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큰 화재 후 리모델링 비용을 아끼려고 건물 전체를 흰색으로 칠했는데 그 모습이 대중에게 호응을 얻어 화이트 하우스란 이름을 얻은 백악관은 외양만 지켰을 뿐 전체 구성은 끊임없이 진화해왔다. 여러 대통령을 거치면서 지켜야 할 전통과 변화시킬 수 있는 부분을 잘 구분해왔다. 그것이 미국이라는 신생 국가가 200여 년 동안 권력에 대한 개념을 성장시키고 지켜오는 과정이기도 했다. p.96

권력자들이 남긴 대표 공간으로 공공 공간을 꼽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딱히 대통령 프로젝트또한 시장 프로젝트라 하지 않더라도 권력의 자리에 있을 때 후대를 위해 남기는 근사한 공간(p.104)이란 또 하나의 문화유산이 될 수 있음에. p.105

현대의 청사들이 충분히 위엄을 보이지 않는 것 또는 위엄을 보이려 들지 않는 것은 문제다. 알게 모르게 사회 심리에 영향을 준다. 물론 공사비 등의 현실적인 문제도 있으나, 권력의 긍정적 측면을 내보일 자신이 없으니 아예 무표정한 유니폼 아래 권력 자체를 숨기려는 동기도 작용할 것이다. 권력 스스로 자신의 정통성과 역할에 자신이 없을 때 드러나는 불안감의 발로일 것이다. p.106

권력 공간이란 다른 어떤 공간보다도 유독 끈질긴 관성을 가진다는 사실이다. 변화하기 그만큼 어렵다. ‘(p.109)람이 공간을 만들지만 공간은 다시 사람을 만든다는 관점으로 본다면, 권력 공간은 이미지의 잔상이 크게 작용한다. 권력 자체가 근본적으로 보수적이듯 권력 공간 역시 보수적이다. p.110

권력이 마치 그들만의 게임으로 여겨지던 시대를 넘어서기 위해 꼭 필요한 3대 조건이 바로 논쟁, 숙의 그리고 시민참여다. p.111

도시 공간 중에서도 권력 공간은 특히 우리가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지향하는지, 우리가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지 또는 중심을 잡아가고 있는지 우리 사회의 수준과 모순과 지향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권력 공간의 모습은 우리 자신(p.115)의 모습을 빼어 닮는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p.116

기록이란 권력의 문제이자 정체성의 문제이고 또한 자존감의 문제이자 명예의 문제다. 아무리 세속적인 허영심이라 할지라도 명예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극복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p.119

계속 쓰는 것이 공간 최고의 기록이 된다. p.139

인간이 사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이 기억과 기록은 씨앗이 된다. 기록은 기억의 단초가 되고, 기억은 이야기의 원천이 된다. 기록이 풍부할수록 혼자만의 기억이 아니라 여럿이 또는 동시대인이 같이 공유하는 집합 기어이 되고, 그 기억은 시간을 뛰어넘는 집합 기억으로 이어진다. 도시는 온전히 그러한 집합 기억의 풍요로운 저장소다. p.142

우리 도시들은 잡종성이 강하다. 혼성이라고 해도 좋다. ... 우리는 순종을 품고 신종을 지향하되 그 무엇이든 품에 안는 잡종의 문하다. 왜 잡종성이 강해졌을까? 급격한 사회적 충격과 낯선 문물의 습격을 받아들이고 적응시키고 숙성시키는 과정을 스스로 힘으로 감당하기 힘들었던 근대기의 험난한 역사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역사의 단절, 전통의 부정, 폐허로 변한 환경, 부족한 인프(p.148), 급격히 등장한 각종 도시 문제, 상업화 물결의 습격 등 다사다난한 과제들을 짊어지고 나름의 방식으로 생존하기 위한 현대의 시간 속에서 저도 모르게 학습한 힘의 결과다. p.149

도시란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콘셉트 크기의 문제인 것이다. p.157

항상 당대다. 항상 변화다. 당대에 주어진 제야 속에서 변화하는 사회 수요에 대응해 어떤 기술을 써서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느냐가 도시 혁신의 핵심이다. p.163

예찬하는 태도에는 어떤 바름이 필요하다. p.164

도시 역(p.168)시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 사람이 얼마나 멋진가보다는 나와 맺는 관계가 훨씬 더 중요하고, 특별한 만남 이상으로 일상의 접촉이 더욱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p.169

맥락 속에 존재하면서 맥락의 잇는 힘, 이것이 공간의 힘이다. 특히 시간이 맥락을 이어가는 힘이란 아주 근사하다. 도시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긴 시간 동안 맥락을 이어가면(p.173)서 새로운 도시적 맥락을 만들 수 있다는 게 감사한 일이다. p.174

완전한 익명을 찾아서! 사실 나는 이것을 해외여행의 핵심 동기라고 본다. p.184

거리감은 통찰의 기본이다. 그 변화한 자신으로 가까이 있는 환경을 새로운 눈으로, 새로운 마음으로 볼 수 있게 된다. p.185

여행이라는 단속적 체험을 이어주는 것이 스토리의 힘이다. 점을 이으면 스토리가 되고 스토리 속에서 점 하나하나는 더욱 빛나게 된다. 스토리는 확장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확장은 하나의 스토리텔링으로부터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이 스토리를 공유하게 만드는 것이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p.190

여행의 체엄이란 을 찍는 일이고, 하나의 점은 또 다른 점을 찍게 만든다. 구슬을 꿰면 목걸이가 되듯이 점을 이으면 스토리가 된다. ... 나의 이야기가 당신의 이야기와 겹치는 부분이 생기고,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겹치게 되면 그것은 우리의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p.206

도시란 일상의 현장이고 배경이다. 도시는 컨트롤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로 작동되며 서로 영향을 준다. 관광은 일상이 될 수 없으며 여행 역시 일상이 되지는 못한다. 일상의 도시란 여행이나 관광에서는 결코 다루지 못하거나 다루지 않는 수많은 업무들, 자질구레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들, 지루하고 반복적인 행위들, 게다가 그 도시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까지 껴안고 있는 존재다. 한마디로 도시의 디즈니랜드화는 가능하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p.209

비무장지대만큼은 한반도에서 찾아보기 힘든 숨 쉬는 공간, 인간보다는 다른 생명들이 우선하는 공간, 느린 공간, 기억하는 공간, 생각하는 공간, 성찰하는 공간, 상상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얼마나 더 크고 새로운 성장을 약속하는 공간이 될 것인가? p.218

바라보는 조형물이 아니라 같은 공간 안에서 옆에 설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성공적인 인물 동상 만들기의 첫 단추를 꿸 수 있을 것이다. 일단은 지나치게 높이 올리지 말고 눈높이 조각이 되면 좋겠다. 오브제로만 보지 말(p.233)고 공간을 만들라. 사람들이 공간 안으로 들어서고 오가며 자신이 조각의 일부가 된 듯 느껴지게 하는 게 좋다. 사람들이 쉽게 다가서는 조형물이 될 때, 우리 도시의 동상들이 비로소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터이다. p.234

고민은 하고 다른 입장은 들어볼 일이다. 적어도 여러(p.242) 고민이 만나는 지점이 생긴다면 그것은 또 다른 변화를 위한 한 걸음일 수도 있다. ‘차이는 존재한다. 세상이란 수많은 차이로 풍성해진다. 차별은 바보짓이다. 세상은 수많은 차별로 불행해진다.’ 이런 명제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면서 서로의 입장에 귀 기울여주기를 바란다. p.243

주택의 형태는 도시의 성격을 좌우한다. 워낙 그 비율 자체가 높기 때문이다. 우리 도시의 약 60%를 구성하는 아파트에 대해서 흔쾌한 마음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안타까움을 넘어 너무 불행하지 않은가? p.277

우리의 아파트와 우리의 도시는 어떻게든 화해해야 한다. p.280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지옥은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서 살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p.311

다른 문화를 접하는 일은 자기 문화의 특이한 점, 이상한 점, 신기한 점을 새삼 발견하는 눈을 기르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p.312

이상하게 여기는 시각은 아주 특별한 능력이다. 인지하고 식별하는 능력이고, 더 나아가 바꾸고 개선하는 역량이다. 일상을 너무도 당연해하는 것, 문제를 지적하지 않는 것, 그저 그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애쓰거나 갖은 꾀를 부리는 것으로는 절대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질문하면서 변화의 단서를 찾는다. 이상하게 볼 줄 아는 이방인의 시각을 잃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시민의 태도를 잃지 말자. 좋은 도시적 삶으로 가는 길일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에 지레 패배감을 갖지 않게 만드는 길이다. p.329

작금의 시대는 주인이 모호한 시대라 규정할 수 있다. 이 시대를 작동하는 근본적 동력이 에서 나온다면, 돈과 표란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돈에는 꼬리표가 없고 다수의 작은 욕망과 소수의 큰 탐욕이 얽혀 있다. 표에는 꼬리표가 달려 있는 듯 보이지만 끊임없이 흔들리는 게 표심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과 표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모두가 일정 정도는 돈을 좇고 표를 좇는다. 또 돈과 표는 얽혀 있다. 때로는 결탁하기도 하고 서로 영향을 주려 하면서 서로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p.342) ... 그러나 분명 인식해야 하는 것은 돈과 표로 움직이는 힘이란 결코 강력하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사회, 자본주의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제약이다. 그래서 문제를 알더라도 이익집단들이 갈등을 벌이는 가운데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중대한 선택은 미루는 경향이 있다. 말하자면 정치권력은 보이는 것과는 달리 무척 취약하고, 다른 의견들을 아우르는 정치력이란 생각만큼 잘 작동하지 않으며, 단기적으로 눈앞의 이익을 좇는 돈과 표가 떨치는 힘은 그에 비해 너무도 막강하다.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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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로 산다는 것-판수즈] 겨울에 살얼음 냇가를 건너듯 | Memento 2020-07-1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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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관료로 산다는 것

판수즈 저/이화승 역
더봄 |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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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로 산다는 것은 겨울에 살얼음 냇가를 건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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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에 붙거나 육사 등에 합격하는 일은 출세의 지름길이다. 동네방네 현수막이 걸리고,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술 한 잔 걸치는 경사다. 과거만큼의 위상은 없다 손 치더라도, 불안한 경제 상황 속에서 고위공직자로서의 길은 부러움의 대상임은 확실하다. 다양한 사정으로 청운의 꿈은 접더라도 직업공무원으로서 안정감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범죄나 이적단체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면 국민 누구나 볼 수 있고, 정무·별정직 공무원이 아닌 이상에는 신분 보장이 확실하다. 수많은 관료제의 병폐에도 불구하고 국가를 유지하고 운영하는 주체는 여전히 공무원임은 분명하다.

전제군주가 지배하던 시절의 관직과는 확연히 다르다. 지금의 고시와 달리 과거시험은 아무나 볼 수 없었다. 비공식적인 제약인 경제적 제약은 별개로, 신분상의 제약이 있었다. 관직 수 자체도 적었다. 종합적으로 볼 때 그 관문은 지금에 비교할 때 지금보다 더 큰 위상을 지녔을 테다. 그 관문을 어렵사리 통과해도 쉬운 길은 아니었다. 신고식을 빙자한 다양한(?) 병폐나 박봉(?)은 논외로 해도 실재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지금도 고위공직자야 정무적(?) 판단에 의해 파리 목숨이고, 소유한 집마저 강제로 팔아야 할 상황이지만, 그래도 자기 목을 걸 일은 드물다. 수사적인 표현의 목이 아니라 진짜 목이 광화문 광장에 내걸리는 일은 없다.

판수즈의 <관료로 산다는 것>은 명대 문인들의 삶과 운명, 청운의 꿈에 도전했던 관료들의 운명을 설명한다. 판수즈는 상하이 푸단대학 역사학교수로 은퇴한 노학자로서 명청사 등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명나라의 대표적인 관료들의 일대기를 개략적으로 설명하면서 과거 관료들의 삶과 고난을 풀어준다. 앞서 과거제 하에서의 관료들의 고난을 개략해서 말했지만, 지금의 공직자와의 큰 차이점은 유학자라는 점이다. 지금도 실재 업무와 무관한 학문을 공부해서 공직에 들어가지만, 국가 통치 이념인 유교를 기반으로 관직자를 뽑았다는 점은 큰 차이를 보인다. , 학자이자 관료라는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지녔는데, 이상적인 목표와 현실적인 목적이 늘 충돌하는 상황이 아니었을까 싶다. 특히, 전제군주제도라는 현실과 이를 견제해야 하는 유학(유교)의 특성이 상충하는 가운데 권력투쟁의 치열함은 상상 이상이다.

군주를 올바로 이끌기 위해(사실상의 왕권의 제한을 위해) 직언을 해야 했지만 자기 목을 걸어야 했고, 반대로 아첨하여 권력을 얻기 위해서도 자기 목을 걸어야 했다. 수신과 치국과 평천하라는 꿈을 펼치기 위해서, 반대로 자신과 가문의 다양한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도 모두 목숨을 걸고 관직에 임해야 했음은 의미심장하다. 때에 따라 세상의 시비를 잊고, 자신의 꿈을 접은 채 자연에 은거하는 일이 목숨을 부지할 유일한 길인가 싶기도 하다. 물론 내가 아무리 숨어 지내도 결국 정치에 발을 들인 이상 그마저도 안전하지 못한 경우가 많지만...

 

권력은 강직하고 아첨을 모르는 사람들을 포용하지 못했고, 반면 권세 있는 자에게 아부하며 빌붙으면 후세 사가들의 조롱을 피하지 못했다. p.507“

 

삶이란 늘 고통스럽고 치열하며 조심할 일이 많지만, 관료이자 공직자라면 한 번 더 생각해 볼 일이다. 어떤 관료가 되듯, 겨울에 살얼음 냇가를 건너듯 늘 조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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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다른 이들이 이견을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손을 모으고 공손한 채 입으로 분명한 말을(p.155) 내뱉지 않는데 이를 노련하다고 한다. 또 정직한 것도 싫어해 어떤 일이든 두루뭉술하게 적당히 처리하면서 최선이라 한다. 형태만 바꾸면서 효율이라 하고 무리를 이루는 습성이 있다. -이몽양 <응조상서> p.156

당시, 관료들은 누구도 수시로 닥쳐오는 액운을 피하지 못했는데 강해처럼 예기와 재주가 뛰어난 명사들은 더욱 그러했다. 분명한 정치적 입장을 취하면 위험은 수시로 다가왔다. p.186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상대를 공격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논어> p.316

학문은 천하의 공적 자산이다. 통치자들은 자신의 입맛에 따라 강압적으로 이를 억압하려 하나 천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설사 두려워해도 왕조가 바뀌면 이지의 책은 재평가 받았고, 그를 탄압한 사람들은 이미 죽어 이를 알 길이 없었다. -근대학자 황절 p.318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많이 만나는 기회. 오로지 마음과 만나 홀로 웃고 노래하네. 노래하다 그치지 않아 연이어 부르짖기도 하며, 통곡하고 울부짖으며 눈물범벅이 된다네. 노래함에 이유가 없지 않은 것은 책속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지. 나는 그 사람을 보지만 사실은 내 마음을 얻는 것이라. -이지 <책을 읽는 즐거움> p.322

그는 사람에게 죽은 것이 아니라 말에 죽었고, 법에 죽은 것이 아니라 붓에 죽었다. -장대 <석궤서> 이지의 죽음에 대해서 p.349

예로부터 문을 걸어 잠근 채 혼자 성현이 된 사람 없고 사람들과 벽을 쌓고 고립무원이었던 성현도 없었다. -고현성 p.370

다른 사람을 이해시키고 시간을 두고 조금씩 설득하면 오만하던 대중들은 스스로 잘못을 깨닫게 된다. -고헌성 p.383

(선생(고헌성)) 이치를 잘 깨우치면 일을 잘하고, 순수하면 대응도 잘 할 수 있으며 세상을 보는 능력이 더욱 탁월할 것이다. -고반룡 p.383

역사학자는 오점이 있어 논쟁이 되는 인물을 연구할 때 그가 처했던 시대와 마주치던 어려움, 경력을 이해하고 합리적 분석을 도출해내야 한다. 랑케가 말한 객관적이고, 냉정하고, 무채색의 원칙에 기초해야 하고 인물에 대한 이해와 동정도 필요하다. p.446

정계에서 옛일이 다시 언급되는 것에는 모두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이다. p.462

유가는 정치에서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를 가장 높은 단계라고 추앙했지만 정작 문인들의 정치참여는 항상 진퇴양난의 문제였다. 권력은 강직하고 아첨을 모르는 사람들을 포용하지 못했고, 반면 권세 있는 자에게 아부하며 빌붙으면 후세 사가들의 조롱을 피하지 못했다. p.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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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력의 배신-조한혜정 외] 선망국의 시간, 선망국의 기회 | Memento 2020-07-1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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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노오력의 배신

조한혜정,엄기호,강정석,나일등,이충한,이영롱,최은주,천주희,이규호,양기민 공저
창비 | 2016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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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기회겠지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갸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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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청년은 “19세 이상 34세 이하인 사람을 말한다.(청년기본법3조제1) 다른 법령이나 조례에서 청년에 대한 연령을 다르게 적용하는 경우 그에 따를 수 있다지만, 원래 알고 있던 나이(39세 이하)와 다르게 갑자기 늙어버린 기분이다. 분명 장년에서 은 그런 의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묘한 감정이다. 법적으로 청년 기본법(20.8.5. 시행)에서 의미하는 청년이 되는 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라면 청년 다음 장년의 삶에서 또 얼마나 치이고 중간에 끼여서 고통 받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그렇기에 쳥년기의 삶을, 나의 노오력둘러보고 다른 청년들과의 공존을 고민해보는 일이 단순히 거시적인 차원의 청년문제가 아니다. 직접적인 내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다. 더불어 장년, 중년으로 나아가는 삶의 과정에서 미래의 청년들과 나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어떤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실존적인 질문이다. ‘커피는 자고로 라떼가 최고야.’를 외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개인적인 삶의 청년기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근대화의 시기라 정의할 수 있다. 고대(유소년기) 동수저 시기를 지나, 청소년기의 흙수저 추락을 거쳐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주력했다. 많은 80년대 후반생과는 조금 다를 수 있는 경험들이 있다. 유소년기와 청소년기 초반을 동족(동성)마을에서 보냈고, 꽤 신실한 마음으로 종교생활을 했다. 풍족했던 부모님의 재산은 질병으로 모두 날아갔고, 사회와 국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덕분에 사회적인 감정, 혹은 믿음에 대한 어느 정도의 기대와 부응하고자 하는 마음만은 가지고 살고 있다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일까. 비교적 도시의 문물을 늦게 접했다는 걸로 요약할 수 있겠다.

대학생, 청년기는 그런 청소년기와의 단절이었다. 기존의 사회적 안정감에서, 신심에서도 벗어나 스스로 서야했다. 절박한 심정으로 살려고 했으나 단호한 노력보다는 지난한 고민의 순간들이었다. 실천보다는 생각과 고민만 앞섰던 시간들. 돌이켜 보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해서,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던 현실. 막상 실천하고자 해도 보이지 않는 막연히 높은 벽 앞에서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이런 막막함을 표현할 언어가 없었다. 운 좋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니 그때의 막막함을 표현할 언어들이 나타났다. 헬조선, 흙수저, 노답, 꼰대... <노오력의 배신>은 이런 막막했던 언어들에 의미를 해석해 준다.

돌이켜 보면 살아남기 위해 그들이 선택해야 하는 것은 포기였다. (p.14)” 하고 싶은 일, , 사소한 일상까지도, 삶은 선택을 강요한다. 선택의 기회는 다른 말로 포기와 이어져 있고, 이는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신경림 선생은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이라고 한탄했다. 그럼에도 과거 세대와 현 세대의 차이는 미래, 즉 전망의 부재라는 가난, “삶의 예측 가능성은 불투명해졌(p.11)”음을 말한다. 어른 세대가 말하는 헝그리정신은 더 이상 미래를 담보해주지 않는다. 그런 정신으로 살다가는 평생 열정 페이로 헝그리하거나 중간에 아파서 더 헝그리 해 질뿐이다. 그러니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노답 사회에서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나아질 것인가? “3포니 5포니 N포니 하는 말은 결국 “‘사회이고 공공영역’(p.19)”에 대한 믿음 상실이다.

이는 각자도생의 경쟁사회를 가속화 한다. 끝없이 서로 불안해 하며 서로를 짓밟고 위로 올라서려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렇게 인국공과 같은 사태는 벌어진다. “누구는 자기 실력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것을 다른 누군가는 약자라는 이름으로 쉽게 얻는 상황을 불편해하는 것이다. ‘약자인 그들은 살벌한 경쟁에서 면제된 것으로 보이고 그것이야말로 불공정하게 여겨져 참을 수 없(p.19)”. 적대와 혐오, 상대를 벌레로 비하하고, 나도 벌레화 한다. “같이 망하는 게 목표이다. 어차피 애초에 나는 금수저가 아니었으니, 모두가 불행해져 차라리 평등한 세상을 꿈(p.181)”꿀 수밖에. 아니면 탈조선을 해야 한다는 건데, 그것 역시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도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청년기 내 고민들이 의미를 찾아갔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다만, 결과가 배신할 뿐. 노력이나 노오력이나 무엇이든 남긴다. 다만 내가 원하는, 우리가 원하는 결과가 아닐 뿐이다. 책의 마무리를 쓰신 조한혜정 선생님께서 책으로도 내신 이야기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다). 선망국(先亡國)은 선망국(羨望國)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청년 문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겪는 문제는 전 세계적인 문제다. 오히려 압축적이고 빠른 성장을 겪은 만큼 문제 있어서 가장 먼저 빠르게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이 다른 사회가 겪을지도 모르는 일을 앞질러 경험하고 있으며, 그 현실은 연구자들의 언어와 담론을 앞지르고 있다. 그렇기에 한국의 사례를 특수화하는 것이 아니라 선도적인 현상으로 바라보며 언어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문제의식 (p.35)”이 우리 사회에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나와 우리의 삶에도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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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청년들이 경험하고 있는 가난은 총체적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미래, 즉 전망의 부재라는 가난을 겪고 있다. 신자유주의 이후에 이들이 경험하고 있는 것은 양극화만이 아니다. 양극화보다 더 중요한 경험은 바로 삶이 불안정성이다. 일자리가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다음 단계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 삶의 예측 가능성은 불투명해졌다. p.11

생존에 대한 공포는 삶을 압도했다. 냉소도 사라졌다. 냉소도 세상과 거리를 두고 인식할 때 가능한 삶의 태도다. 그런 세상에 대한 인식이 가능할 만큼의 여유도 사라진 것이다. p.14

대신 살아남기 위해 그들이 선택해야 하는 것은 포기였다. p.14

사회에 대한 감각, 사회를 통해 자신의 삶이 보호될 수 있다는 감각이 실종되고 있다. 3포니 5포니 N포니 하는 말에서 결과적으로 포기되는 것은 사회이고 공공영역이다. 내 삶이 사회를 통해 보호되지 않는다면, 삶은 정글이 되고 탈락은 어쩔 수 없는 것이 된다. 각자 사적으로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을 최대한 동원하여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지 공공적 해결이란 불가능하거나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저 수많은 포기의 핵심에는 사회사회적인 해법에 대한 포기가 있는 것이다. / 사회적 노력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사라지면 각자도생하게 되고, 각자도생하는 이들은 사회를 통한 해결을 오히려 불공정한 것으로 취급한다. 사회적 해결을 스스로 살아남지 못하는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이라(p.18)여기며, 기본적으로 이에 대해 불편함을 느낀다. ... 누구는 자기 실력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것을 다른 누군가는 약자라는 이름으로 쉽게 얻는 상황을 불편해하는 것이다. ‘약자인 그들은 살벌한 경쟁에서 면제된 것으로 보이고 그것이야말로 불공정하게 여겨져 참을 수 없게 된다. p.19

망한민국’, ‘헬조선의 가장 결정적인 키워드이다.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답이 없는 상태인데 그것을 계속 개인의 자질과 태도, 나아가서 윤리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채찍질이 노오력인 것이다. p.20

청년들이 분노하지 않는다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분출되고 있는 그들의 분노가 어떤 방식으로 터져나가고 있으며,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해석학적 순환 방법, 곧 판단을 일시 중지하고 타인의 세상에 들어가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p.25

박권일은 분노가 혐오가 된 이유에 대해 불평등과 부정의 시정을 체념했기 때문이라면서 혐오해서 체념하게 된 것이 아니라 체념을 합리화하기 위해 혐오가 동원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앞에서 말했지만 한국에서 불평등의 문제는 불공정의 문제로 둔갑했다. 계층과 젠더 그리고 지역 등의 구조적인 권력 차이는 개인들의 자질과 능력, 그리고 노오력의 문제로 전환되었다. 그렇게 때문에 구조에 대한 분노는 손쉽게 노력하지 않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혜택을 보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적대혐오로 나타난다. p.26

불평등이 불공정으로 둔갑한 사회에서 가장 공정한 것은 살벌함의 공정함이다. 누구도 살벌한 경쟁에서 면제되어서는 안 된다. 살벌하게 경쟁해서 살아남는 것만이 공정한 것이며 그런 사람들이 누리는 부와 명예는 정당화될 수 있다. 누군가가 이런 살벌함에서 면제된다면 그것은 부당한 것이며 부패한 것으로 여겨진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은 공정함을 지키기 위한 정의로운 것으로 정당화된다. p.27

금수저, 흑수저론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를 넘어서서 이 사회 자체에 대한 혐오를 드러낸다. 이는 기본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는 한국이 제대로 합리화, 근대화되지 않고, 여전히 미개하다는 데에 대한 혐오다. p.27

구제 가능성이 없으니 차라리 망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해버린다. ‘분노혐오가 되고 서로를 벌레라고 부르면서 비하하게 된 배경이다. p.29

피해자로서의 정체성은 구조와 제도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시민적노력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정치적 권리를 침해받았을 때, 이제 사람들은 공동의 노력으로 사회를 만들어가는 시민으로서 피해자가(p.29) 되는 것이 아니라 권리이익을 침해받은 소비자로서 피해를 입었다고 여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통의 것을 향한 공동의 노력이 들어설 여지는 없다. p.30

우리 연구진은 2015년 한 해 동안 청년들의 현실을 연구하며 이 새로운 공공성과 시민성이 만들어질 수 있는 여지가 어디에 있는지를 탐색했다. 이 연구의 시작은 청년들이 사회에 대해 점점 더 과격한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에 주목했지만 현실은 연구를 앞질러갔다. p.30

우리 연구진은 한국의 청년문제는 선진국의 문제를 뒤따라가는 형태가 아니라 선진국을 앞질러가고 있다고 판단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빠른 경제 성장을 달성했지만 시민성과 공공성을 방기한 사회답게 망가지는 속도 역시 초고속으로 압축적이어서 다른 사회에서 참조할 것을 찾기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p.34) ... 이것은 한국의 상황을 특수화하여 한국만의 탈식민화된 국지적 이론이 필요하다는 것과 다른 문제의식이다. 오히려 한국이 다른 사회가 겪을지도 모르는 일을 앞질러 경험하고 있으며, 그 현실은 연구자들의 언어와 담론을 앞지르고 있다. 그렇기에 한국의 사례를 특수화하는 것이 아니라 선도적인 현상으로 바라보며 언어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p.35

청년문제는 단지 일자리의 문제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앞으로의 삶이 어떠해야 하고, 어떻게 보호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라는 점이다. 또한 한 번에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 복잡한 문제이며, 긴 시간에 걸쳐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따라서 청년문제를 청년의 문제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앞으로 한국 사회의 기본 설계에 대한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연구진의 공통된 생각이다. p.36

3포니 5포니 N포니 하느 수많은 포기 속에서 결정적으로 사회를 포기하게 된 청년들이 사회적 해법에 대해 신뢰를 가지게 된다면 그 값어치는 돈으로 매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신뢰를 회복할 때에만 청년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도시를 공통의 것으로 가꾸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기울일 수 있기 때문이다. p.39

헬조선이 처해 있는 현실이자 삶의 조건이라면, 노오력은 지옥의 늪에 빠진 이들에게 할당된 몫이다. p.44

노력은 자기계발식의 자기와의 싸움을 넘어서서 누군가를 이기지 않으면 도태되는 배틀로열의 경쟁에서 생존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에서 개인들은 각자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끌어와 희박한 성공 가능성에 도박에 가까운 투자를 한다. 그러나 투자가 필수인 승자독식의 경쟁체제에서 한번 생겨난 격차는 어떤 노오력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장벽이 되었다. p.61

노오력을 하면 살아남고 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이 아니다. 노오력하지 않으면 생존하지 못하고 배제된다. 반면 노오력하면 삶은 발가벗겨 지고 법 밖으로 추방된다. 생존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 배제와 추방이라는 두 죽음 사이의 선택일 뿐이다. <노오력, 노력의 배신자(칼럼)> 엄기호 p.64

생사여탈권을 자본이 쥐고 있는 한, 치열한 경쟁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력을 다해 하나의 상품으로서 개인이 완성된들 그 상품은 자본에 유리한 방식으로 언제든 순식간에 폐기처분될 수 있다. p.64

성과를 내면서 일 잘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오력할수록 골병이 들거나, 자신을 탓하며 자해하거나, 노오력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주체 없이 화가 날 때도 있다. 노오력에 대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자신들이 지금 할 수 있는 역량의 한계를 넘어 계속해서 무리수를 두게 되고 그 결과 스스로 파괴되는 것을 느끼면서 과격해지는 것이다. p.69

노력은 더 이상 노력하는 자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자신감, 자존감에 대한 자기 신뢰의 영역이 아니다. 노력은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성과를 통해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것이 되었다. 뒤집어 말한다면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노력하지 않은 것이다. 성과가 노력의 처도가 된 것이다. 따라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도덕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생존에 대한 의지가 없는 태도로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 되었다. 그 결과 혹시 자기가 일 못하는 사람인 것은 아닌가 하는 열등감과 열패감에 시달리며 늘 주눅 들어 있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점점 늘어나고 있다. p.70

노동 가치는 사회적 관계 내에서 결정된다. 개인의(p.70) 능력에 따라 시장이 값을 매겨주는 것이 아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능력을 합의하고 사회적으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독점자본에 그 모든 결정권을 빼앗긴 상황이다. 사회는 실종되었고, 개인은 파국을 맞이하고 있다. p.71

꿈을 위해 투자했지만, 상환이 불가능한 구조적 조건에서 청년빈곤화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으며, 그 문제의 한 축에 부채가 뿌리를 내리는 중이다. p.86

삶을 재생산하는 일이 누구에게는 이라고 불릴 만큼 아주 거창한 것이 되어버렸고, 거기에 필요한 비용을 오롯이 개인이 부채로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p.87

오늘날 생존본능은 열정이라는 형태로 출현한다. 세상에 홀로 버려진 아이들이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노오력을 통해 자신이 살아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p.92

지금 사회는 차라리 아노미라고 부르는 게 정확한, 비합리와 비논리가 유일한 운영원리인 부조리극과 같은 상태에 있다. 사실 보수 인사들의 막말이 노리는 것은 노년층의 정서적 결집뿐만 아니(p.107)라 청년들에게 이 사회는 부조리 그 자체니 관심 끄는 것이 정신건강에 유리하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일 수도 있다. p.108

수십 년간의 산업화 과정에서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서로 공모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가부장이 열심히 일한다면 모든 개별 가족들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 덕분이었다. 이 믿음은 민주화 과정에서 사회를 정의롭게 만든다면 모든 민중이 차별받지 않을 수 있다로 바뀌었다. 그런데 두 가지 기획이 모두 지속가능하(p.113)지 않은 것으로 판명된 지금, 청년들이 맞닥뜨린 것은 경제적 위기인 동시에 사회적 위기이다. 다시 말해 당신이 흙수저라면 경제적 하층민이 될 뿐 아니라 사회적 천민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감 앞에 놓인 것이다. ‘노력하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다는 산업화 시대의 명제는 엉뚱하게 뒤집어져 가난한 사람은 충분히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다라는 비난의 날로 돌아와 경제적 패배자를 사회에서 아웃시켜버린다. 이는 경제적 양극화를 넘어 내부자-외부자 간의 분할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경제적 이중화의 문제이며 사회에서 배제당하는 것에 대한 극심한 공포는 기근보다 더 무섭게 청년들의 마음을 조여 온다. p.114

사실 한국에서는 니트라는 용어가 너무나도 오염되어 있기 때문에 니트 개념 자체를 가지고 청년문제를 분석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인구통계학적으로 특수한 어떤 집단이라기보다는, 청년 세대에게 드리워진 불안정 노도으이 결과로 빚어진 상태로 보는 것이 맞다. 기본적으로 이 시대 청년들은 누구나 조금씩 니트성혹은 잉여성과 같은, 기성세대가 이해할 수 없는 내적, 외적 불안정성을 짊어지고 있다. 이 불안정성을 100퍼센트 지닌 니트0퍼센트인 행복한 취업자는 스펙트럼의 양극단일 뿐이며, 실제로는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사람들이 대다수다. p.121

노답이라는 것은 내가 답을 찾지 못해서가 아니라 세상에 답이 없다는 것, 나아가서 세상이 내 비명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다음 단계가 안 보이거나, 다음 단계로 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성장이 봉쇄된 사회라는 것이다. p.126

청년들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청년노동의 위기는 일 경험의 부족이 아니라, 나쁜 일 경험 혹은 나쁜 사회관계 경험의 과잉으로 인한 피로감과 소진현상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청소년과 미취업 청년들 역시 이런 피로와 소진을 선험적으로(직접 경험하기도 전에)’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지원정책들은 청년들에게 또 다른 피로감이나 소외감을 제공하기도 한다. 실제로 지원 프로그램들에 일정 정도 문턱이 있다고 느끼는 청년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p.131

우리가 거대한 노답 상황에 맞닥뜨리고 있는 이유는, 이 사회가 압축된 성장 과정 속에서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지나쳐버렸던 과제들에 발목을 잡혔기 때문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이행 과정을 제대로 되짚어 보면서 전환을 도모해볼 수 있는 포인트를 찾아내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 청년들이 각각 느끼는 니즈를 꼼꼼히 파악하고 맵핑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p.132

더 이상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없는 사회에서, 단순히 시대를 잘못 타고 나서 천민이 될 위기에 놓인 청년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는 노동과 비노동(p.133) 사이에 존재하는 많은 들을 사회적, 경제적으로 인정해 주는 방식으로 노동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모멸감을 당할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도록 조직문화와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작업도 필요하다. 끝도 없는 불안감을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너는 인간이다. 살 가치가 있다고 말해주는 것, 그리고 그 근거가 될 가치와 방법의 체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p.134

우리의 문화에서, 다른 모든 갈등들을 관장하는 결정적인 정치 갈등은 인간의 동물성과 인간성 사이의 갈등이다. -조르조 아감벤 p.167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동물화를 넘어 더 하찮은 벌레화가 진행되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동물조차 되지 못하는 것이다. 동물 혹은 짐승은 최소한 고유의 신체와 생명으로서 인정을 받는다. 하지만 벌레란 신체 없는 존재이자 비가시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지며, 벌레화할수록 생명의 가치는 점점 낮아진다. p.172

혐오가 단지 감정의 억압적 표출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헬조선을 청년 세대가 대한민국을 혐오하는 것이라고(p.174) 단편적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이는 우리 사회의 실패가 누적된 결과이자 청년 세대들의 냉정한 진단으로 이해해야 한다. 청년 세대들이 자신과 상대를 벌레로 지칭하는 현상은 증오와 경멸, 좌절과 불안이 응축된 존재에 대한 인식으로 살펴봐야 한다. p.175

나도 벌레, 너도 벌레, 모두가 벌레인 세상이다. 서로가 서로를 냉소하는 세상을 만들어 벌레의 민주화, 벌레화하여 모두가 찌질하다는 점을 드러내 같이 망하는 게 목표이다. 어차피 애초에 나는 금수저가 아니었으니, 모두가 불행해져 차라리 평등한 세상을 꿈꾼다. p.181

익명성의 공간에서 혐오를 표현하는 것은 단지 비하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상대를 군집화시켜서 자신과 공통성을 제거한 채 서로 다른 종으로 분리하고자 하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이때 은 개인의 감정을 표현하는 욕설이 아니라, 상상으로 만들어진 다른 집단과 나를 분리된 존재로 인식하기 위한 적대를 구성하는 용어이다. 마치 빨갱이와 같이 사회화된 모욕으로 배제와 분리를 통해 적대를 구축하려는 사회적 언어 행위와 같다. p.183

남성 청년들이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장점은 자신이 남성이라는 것이기에, 점점 더 보수적인 사고를 하며 약자에 대한 혐오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p.185

서로에게 모욕과 혐오를 주고받는 방식은 더 이상 화해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화해하고 싶지 않은 세상에서 모욕과 혐오를 교환하는 행위만으로 사회를 재구성하기는 어렵다. 서로 간의 도전과 응전이 반복되고 복수만이 목표인 전쟁 상태를 유지하고 지향한다. 최근 작고한 르네 지라르가 이야기한 것처럼 서로 닮은 유사성을 기반으로 한 모방적 경쟁은 상호 간 적대와 혐오를 통해 갈등과 폭력을 격화시키면서 비난과 책임을 하나의 대상에게 떠넘(p.186)기게 된다. 아마도 그 대상은 대답 없는 국가로 수렴될 것이다. 정치에 대한 혐오와 불신들, 그리고 불신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복원해내기 더욱 어려운 상태로 지탱시킨다. p.187

혐오는 교육의 실패로 인한 부수적 피해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현재 교육체계의 성공의 성과이자 결과물인 것이다. p.188

민주주의체제에서 태어나고 살아온 청년들에게 민주주의는 당연하기에, 더 이상 민주주의체계의 필요성을 반복할 필요는 없다. 지금 청년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들이 할 일 혹은 하고 싶은 일을 만들어주고, 더 많은 자유를 보장하며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켜주는 것이다. p.193

청년들이 탈조선을 유일한 희망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국가나 시장의 기획, 그리고 저항 담론의 기획이 모두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즉 탈조선은 국익을 위해 희생하는 국민을 길러내는 데도 실패했고, 시장을 더욱 활성화시키기 위한 노동자또는 소비 주체를 길러내는 데도 실패했으며, 심지어 억압적 구조에 저항할 수 있는 주체를 길러내는 것마저도 실패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 탈조선은 비난과 희망의 언어라기보다는 차라리 성찰이 언어에 가깝다. 한국 사회가 지금 모든 영역에서 얼마만큼 실패하고 있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p.220

우리는 당신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잘 알 정도로 똑똑합니다라는 선언을 헬조선이라는 아주 알기 쉬운 말로 표현해놓았으니 p.229

충격요법은 치유와 관련이 없다. 충격요법은 현재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데에만 효과적이다. 고발이 과격해질수록 살마들의 관심은 문제 자체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고발은 과격해야 하는 것이(p.236) 아니라 근본적어야 한다. 지엽적인 현상을 실마리로 삼아 근본에 자리하고 있는 것의 실체를 발견해내는 작업이야말로 새로운 질서의 도래를 앞당기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p.237

실천적 의미가 없는 탈조선은 정치적 침묵을 강요하는 극우 논리와 완전히 동일하다. ‘한국이 싫으니 나가자한국이 싫으면 나가라는 동전의 앞뒷면일 뿐이다. 한쪽은 불만이 있는 사람들에게 싫으면 나가라고 외치면서 침묵을 강요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불만이 해소되지 않을 것 같으니 나가자고 외치면서 스스로 침묵해버리고 만다. p.238

헬조선 너머에도 지속될 삶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은 인생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간단하게 풀리는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풀어야 해답에 가까워질 수 있는지는 안다. 이 답을 구하는 좋은 방법은 상상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고, 좋지 않은 방법은 죽창을 집어 드는 것이다. 죽창을 집어 드는 것은 그냥 파괴 행동이다. 파괴 행동은 즐겁기는 하지만 파괴 후에는 어떤 질서가 바람직한 질서인가라는 질문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파괴 행동에 집착하여 어떤 질서가 바람직한 질서인가를 상상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되면 죽창으로 찌르는 것밖에 모르는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찔러 결국 자멸하고 말 것이다. p.242

탈조선혹은 해외 이주에 대해 접근할 때, 상당히 많은 경우 개인의 자발적인 동기에만 초점을 맞추곤 한다. 다시 말해 한 개인이 무엇인가를 원했고, 그 결과 어디론가 떠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탈조선에는 다양한 층위가 있는 것처럼, 단순히 개인의 동기와 선택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해외 이주는 한국의 국가권력이 일종의 사회적 문제를 처리하는 인구 통치의 한 양식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p.249

개인의 자발성 문제와는 별개로, 한국의 근현대 역사에서 한국 사회는 국가 내부의 특정 문제적인구를 자생적으로 사회적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외부에 전가하는 방식으로 주권 밖으로 처리해 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3월 중동 순방 이후 대한민국에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보라. 다 어디 갔냐고, 다 중동 갔다고...”라는 발언을 한 바 있는데, 이는 실업이라는 내부적 문제, ‘청년이라는 특정 인구 그룹을 문제적 집단으로 삼아 외부로 처리해버리는 연장선상에 있다. 따라서 탈 조선은 개인이 더 나은 삶 혹은 탈출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p.250) 선택이면서 동시에 문제적 인구 집단을 외부로 처리해버리는 한국 국가권력의 관습적인 인구 통치 방식의 결합으로 구성된다. p.251

청년들은 더 이상 꿈을 꾸지 않으며, 불공평한 생존보다는 공평한 파멸을 바라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국호를 망각한 백성들처럼 이 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부릅니다. -<망국선언문> 손아람 p.281

모든 새로운 사회는 꿈같은 제안에서 시작했다. p.299

모두에게 일정한 소득을 지급하자는 것은 노(p.307)력하지 말고 게으르게 살아도 된다는 주장이 아니다. ‘가치에 기반 한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려는 새로운 집합적 노력이다. 삶을 파괴하는 노오력을 멈추고,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p.308

재난과 재앙이 체계적으로 일어나는 위험사회에서는 시민들의 협치가 핵심적 생존 자원이다. p.318

국가 인정과 국가 인증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와 복지의 대상으로 대접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의논을 해서 자체 기준을 만들어내는 것, 호혜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산뢰 관계를 넓히는 것, 함께 의논하고 협력해서 예기치 않은 위기 상황을 돌파해내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복합적인 위험사회를 살아갈 세대가 키워야 할 자질이다. p.329

흔히들 인류의 진화는 불의 사용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하지만, 나는 단순한 불의 사용이 아니라 불(p.331)을 둘러싸고 옹기종기 앉은 것 자체에서 인류의 역사는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듯한 지금, 지금은 그냥 그렇게 둘러앉아 같이 숨 쉬고 쳐다보며 살아주기만 하면 된다.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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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본은 한국을 정복하고 싶어 하는가-하종문] 끝나지 않은 과거, 불안한 미래 | Memento 2020-07-1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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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왜 일본은 한국을 정복하고 싶어 하는가

하종문 저
메디치미디어 | 202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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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과거(일본), 불안한 미래(중국), 그리고 위험속의 현실(한국)에서 "과거"를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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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진은 일본 국방장관 고노 타로의 집무실 사진이다. 그의 왼쪽에 보이는 한반도 지도가 눈에 띈다. 굳이 이 각도로 사진을 찍어야 했을까. 일본 열도가 아닌 한반도 지도를 노출했다는 점을 우연으로 넘겨야 할까. 김누리 교수는 그의 책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에서 동북아의 현실을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이 지역은 꽁꽁 얼어붙어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봅니다. 일본의 과거, 한반도의 현재, 중국의 미래가 그것입니다.”

 

한반도는 분단의 현실, 중국은 중국몽으로 대변되는 패권주의로 다가서는 미래를 불안해 한다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과거는 무엇일까. 김누리 교수는 일본이 가진 장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존경받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일본은 “‘과거에 묶여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인데, 일본의 현재 행보를 본다면 고개가 끄덕여 진다.

세계2차 대전 패전 후 일본은 전쟁이 불가능한 나라가 되었다. 군대를 가질 수 없고, 선전포고도 할 수 없는, 주권이 제한 된 나라다. 하지만 한 때, 동아시아의 대부분을 지배했고, 미국과 전면전을 시도할 만큼 대단했던(?) 나라였다. 현재의 제약은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게 하나보다. 전쟁이 가능한 나라, 일반국가를 지향하는 아베정권의 행보는 주변 국가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 추구는 일본 평화헌법을 교모하게 피해나가기 위한 일본의 전략이다. (미국의 승인이 있었겠지만...) 동맹국 등이 침략을 받는다면 선제적 안보를 위해 자위대를 해외로 파병 할 수 있다는 말인데, 과거가 청산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변국들이 우려를 나타낼 수밖에 없다. 여기서 나아가 평화헌법 자체를 개정하고자 하고 있다. 여전히 한국을 이익선, 생명선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의문스럽다.

<왜 일본은 한국을 정복하고 싶어하는가>에서 일본은 러시아의 남하를 걱정하며 한반도를 이익선, 생명선으로 보았다. 자국의 안위를 넘어 야욕을 위해서 대한제국이나 류쿠 왕국은 시험대이자 지렛대에 불과했다. 나치 독일이 그랬듯, 강대국과 주변국들의 역학관계 속에서 야금야금 위치를 확장해 가는 일본 제국주의의 모습이 무섭게 느껴진다. 초기의 우리 입장에서는 특히 어의 없는 논리(한반도가 일본의 속국이었다는 과거의 일본 기록들에 기반 한)를 가진 정한론이 확장되어 가는 과정도 흥미롭다. 정한론의 정교화가 일본의 근대화와 군국주의화의 시작과 발전, 쇠락을 대변하는 게 아닌가 싶다. 대한제국은 전통적인 세계관 안에서만 현실을 진단했지만, 일본은 이미 한중일을 넘어서 세계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는 일본을 이기기 힘들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 정신을 이어받은 자들이 일본을 이끌고 있다. 그리고 그 정권의 국방장관 집무실에는 버젓이 자국의 지도가 아닌 한반도의 지도가 있다. 게다가 욱일기와 나란히 한반도가 보이니 한반도(한국과 북한)의 입장에서는 과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발톱을 숨기지도 않고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어째서 일본은 한반도를 집요하게 노리는 걸까. 궁금하다면 <왜 일본은 한국을 정복하고 싶어하는가>는 필수다. 일본의 논리가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살펴보기에 적합하다.

역사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일본의 시도는 분명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우리 역시 같은 길을 걷지 않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일본이 지금도 (과거 러시아와 같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한반도의 의미를 유사하게 상정하고 있다면 웃어넘길 수 없는 일이다. 앞의 사진은 그것을 대변한다고 본다. 앞으로 중국과 일본의 영토분쟁 역시 우리와 지대한 관련이 있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직도 동아시아는 위험 속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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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의 이데올로그이자 제국주의 일본의 지주, 그것이 쇼인의 역사적 무게감이다. p.25

산업혁명 또는 자본주의 발전의 보완재로서 식민지 획득을 추구했던 서양 제국주의와 달리, 일본은 역사 속에서 끄집어낸 우월 의식이라는 계기와 동인을 출발부터 내재했다. 이는 아베 정권의 집요한 역사수정주의와 궤를 같이한다. p.40

존왕양이를 신봉했던 쇼인은 강제로 개국을 받아들여야 했던 현실의 부조리를 이웃 나라의 정복이라는 침략론으로 해소하고자 했다. p.42

쇼인의 관점을 정리하면 이렇다. 조선은 원래 일본에 복속한 나라이므로 천황의 신하인 쇼군과 대등한 외(p.43)교를 할 수 있으며, 막부·쇼군과 대등한 외교 관계를 맺은 조선은 천황이 다스리는 일본보다 국격이 아래라는 논리다. 뒤이어 쇼인은 도일한 통신사가 쇼군 취임만 축하하고 천황 등극은 축하한 적 없다는 것을 언급하며 막부가 사죄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덧붙였다. ... 통신사를 매개로 전쟁 대신 평화 공존을 추구했던 에도 시대의 조일 관계가 조선 정벌의 도화선으로 비틀리는 상황, 이를 이끈 것이 바로 쇼인의 제자들이었다. p.44

쇼인의 제자가 추진했던 울릉도 개처 소동은 두 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 먼저 막번 체제 아래서 정한론 실행은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기도가 언급한 막대한 비용도 고려 사안이었겠으나, 막부는 울릉도가 조선의 땅이라는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조일 관계를 규율하는 교린의 틀을 재확인했다. 막부는 개국에 맞춰 근대화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조선 침략은 고려하지 않았다. 앞서 지적한 대로 정한론이 존왕양이와 사상적인 뿌리를 공유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정한론 실행은 결국 왕정복고의 현실화 곧 천황의 귀환이 이뤄진 뒤에야 가능했다. 동시에 위의 경과는 쇼인의 제자들이 계승하고 발(p.57)전시킨 새로운 정한론의 출현을 짐작케 한다. 조선 땅인 울릉도를 서양(영국)이 차지하면 일본의 안위가 위협 받는다는 지정학적 안보관, 이것이야말로 메이지유신 후에 조일수호조규 체결로 실체화되는 정한론의 요체였다. p.58

기도의 정한론에는 쓰시마번 또는 오시마와의 교류라는 측면 말고도 독자적인 요소가 있었다. 하나는 신정부의 정략이고 다른 하나는 메이지유신의 대의명분에서 찾을 수 있다. 정략이란 무진전쟁이라는 내전의 수행 및 뒤처리와 정한론이 맞물린다는 부분을 가리키며, 왕정복고라는 정변은 원래부터 명분의 차원에서 정한론을 내재하고 있었다고 판단된다는 점이다. 당연히 이 둘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p.75

기도의 논리는 쇼인의 논리와 흡사하다. 스승은 양이의 실현이 어려워지자 조선을 희생양으로 삼는 발전 전략으로 선회했고, 합리주의자로 정평이 난 제자는 내치와 결부해 권력 기반을 다지고자 조선 침략을 선택하고 실행에 힘을 쏟았다. 기도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정한론의) 뜻은 전적으로 내환을 압도하는 데 있었을 뿐이었다. p.82

명분의 차원에서 드러나는 정한론과 왕정복고의 연계성이다. 신정부는 조선과의 관계 정비를 국교 수립이라는 함의뿐만 아니라 왕정복고라는 대의명분과 연결해 거론했다. 메이지유신에 이(p.83)르는 과정에서 도쿠가와 막번 체제의 권위 실추와 천황의 부상은 동전의 양면이었으며, 신화적 역사관을 근거로 조선을 하대하는 주장은 다양한 형태로 분출했다 이에 따라 천황 친정을 회복한 새 일본에게 조선과 관계를 새롭게 바꾸는 작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에도 시대를 승계하는 교린의 조선 통신사를 폐지하고 조선의 복속을 가시화함으로써 황국 일본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정한론은 메이지유신의 정치적 변혁에 힘입어 비로소 사상의 영역에서 벗어나 정책의 차원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p.84

사할린을 매개로 부침하던 일본, 러시아 영(p.100)토 분쟁은 일본의 지정학적 안보 인식과 결부되면서 정한론을 비롯해 조선과의 외교 쟁점을 논하는 소재로 곧잘 변용되곤 했다. 가령 1873년 신정부를 양분시킨 정한론 정변은 조선을 칠 것인가 러시아와 국경 교섭을 마무리해야 하는가를 두고 벌이는 각축전이기도 했다. 18755월 일본과 러시아는 각각 쿠릴열도와 사할린을 차지하기로 합의했다. 8월에 도쿄에서 협정을 비준했는데 공교롭게도 그다음 달에 강화도사건이 터졌다. 안보관과 국경 문제를 소재로 조선, 일본, 러시아 관계는 1876년 조일수호조규에 체결에 이르기까지 국서 사건으로 교착 상태에 빠진 조일 외교의 타개책과 긴밀히 연동돼 있었다. p.101

한 연구자는 19세기 후반 일본의 관점에서 조선, 류쿠, 타이완 문제는 하나의 문제가 다른 문제로 곧바로 파급되는 연관 구조를 지녔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는데, 그 점에서 타이완 출병은 류쿠 병합의 최대 분기점이 됐다. 청이 출병을 의거로 인정한 것은 류큐인이 일본인이(p.143)라고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 1877년 초대 일본 공사로 부임한 하여장은 류큐가 망하면 조선에 화가 미치며 타이완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의견을 이홍장과 총리아문에 전달했다. 현실은 그의 예언대로 이뤄졌다. p.144

쇼인이 통탄해 마지않던 페리의 내항은 23년의 세월이 지난 뒤 구로다 사절단에 의해 일대 역전극으로 탈바꿈했다. p.171

시모노세키조약 제1조는 강화도조약 제1조의 연장선 위에 입안됐으며, 완성이었다. (p.199) ... 독립국, 그것은 조선의 운명과 연관해 사용할 때만 특수한 의미를 띤다. 청의 간섭 없이 일본이 자유롭게 침탈할 수 있는 국가, 그것이 독립국의 진의였다. p.201

동학농민전쟁은 내전인 동시에 일본과 청이 개입한 실질적인 국제전의 측면까지 겸비했다. 30-40만 또는 3-5만의 죽음은 자발적인 변혁을 압살하려는 일본(청과 조선 정부도 예외일 수 없다.)의 학살극이었으며, 시모노세키에서 맺은 강화조약은 그들의 주검 위에서 체결되었다. p.206

일본의 근대국가 만들기 과정에 초점을 맞추면 청일전쟁은 메이지유신, 아니 그 앞의 쇼인과 쇼카손주쿠에서 발원한 정한론을 완성하는 전쟁이었고, 승리함으로써 명실상부하게 대일본제국이라는 간판을 내걸 수 있게 됐다. p.206

조선을 중립국으로 만들자는 체계적인 안은 임오군란을 계기로 일본이 처음 제기했다. 이후 청일 양국의 침탈이 가시화하는 현실 아래, 조선에서 박영효와 김옥균 등이 중립국을 향한 전망을 그려냈다. 20세기에 들어와 대한제국은 러일전쟁 때 공식적으로 국외 중립을 선언했으나 일본이 묵살해 성사되지 못했다. 이렇듯 중립국 논의의 대두와 무산 모두에 일본이 깊숙이 관여했다. p.268

100년 전의 쇄국과 개국의 갈림길에서 조청일 관계의 중요성을 확인했듯이, 1950년대 후반의 한일 관계는 분단과 냉전이 가미된 한중일 관계의 지평 위에서 펼쳐졌다. 그 점을 되짚는 것이 이 책의 과제다. p.426

식민 지배 청산이 대동아공영권의 주창자인 A급 전범 용의자를 매개로(p.429) 모색되는 상황, 이것이야말로 역사 문제로 양국 관계가 꼬이는 원점이 아닐까 싶다. 나아가 미국이야말로 과거 청산의 불철저와 한일협정 체결을 압박한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p.430

식민 지배 청산이 분단 고착화로 연결되는 맥락, 이것이 기시가 초석을 놓은 전후 한일 관계의 또 다른 화근이었다. p.436

불행히도 한강의 기적은 군국주의자와 군사독재 정권의 검은 야합을 도약대로 삼아 이뤄지게 되었다. p.438

한국은(정확히는 한국의 보수는) “일본 우파의 체질을 알면서도 반공의 동지 또는 경제 원조의 산파역으로서 이것을 이용해 왔던 것이다. ‘한일 보수 유착이라 불러 마땅하다. 이런 양국 보수파의 밀월 관계는 한국의 민주화 및 역사 문제의 쟁점화를 계기로 서서히 파열음을 일으키게 된다. 1990년대의 한일 관계는 식민 지배의 역사 청산을 둘러싸고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그런 상황 아래서 일본 보수의 재결집이라는 중책을 떠맡게 된 것이 아베였다. p.445

아베는 보수 정치가 중 누구보다 강경한 역사수정주의자다. p.458

아베의 특징 중 하나는 좌익리버럴에 대한 적대감이 남달리 강하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p.459

신자유주의라는 말로 표현되듯이 냉전 해체에 따라 경제의 세계화가 획기적으로 진전됐다. 급작스럽게 확장된 세계 시장의 유일한 경찰관으로 군림하게 된 미국은 일본에 동북아의 군사적 파트너로서의 역량 강화를 주문, 압박했다. 1990년대 이후 우리에게 익숙해진 우경화와 군사 대국화는 이런 미국의 전략 설정과 연계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위대의 위상 강화와 활동 범위 확대는 1990년대 후반 이후 지속해서 추진됐고, 9.11 사건으로 촉발된 대테러 전쟁은 일본 내에서 평화헌법 제9조의 개정을 향해 강력한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p.460

한국으로서는 일본은 물론 중국까지 포함하는 새로운 관계 설정을 위해 치열한 문제의식과 참신한 발상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p.471

개헌이 성사돼 군사력 증진의 길이 열릴 때까지 한국의 최전방 기지 역할이 유지돼야 한다는 발상이다. p.480

150년 전 근대화 문턱에 섰을 때와 지금의 한반도 상황은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은 듯 보인다. 남북 분단이나 중국의 대두, 미국의 존재감 등이 새로운 변수지만, 한중일 관계의 틀과 동학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근대의 좌절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해묵고도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바로 한반도 중립화다. p.483

중립은 고립이 아니고 소통이다. 평화와 공존을 발(p.483)신하고 실행하는 일이다. 일본의 보수는 왜 한국 중립화 논의를 친중(또는 친북) 정책으로 치부하는가? 중립화에는 현금의 동북아시아 지정학을 염두에 두면서 19세기에서 발원하는 한중일 관계의 프로토콜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지배층은 한반도에 대한 장악력이 줄어드는 어떤 사태도 원하지 않으며 훼방하려 한다. 남북의 화해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근대 이후 최강의 국력을 보유한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주체적으로 중립의 의미를 상상하고 현재화해 실현하려는 구체적 행보를 시작해야 한다. p.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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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고 글쓰기-나민애] 서평 쓰기에 관해 이보다 더 쉽고 친절한 책은 없다 | Memento 2020-07-07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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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책 읽고 글쓰기

나민애 저
서울문화사 | 2020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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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쓰기에 관해 이보다 더 쉽고 친절한 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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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취미 생활은 책 읽고 글쓰기다. 어디 가서 말하기 부끄럽지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실 중 하나다. 이 취미가 특기로 발전하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 부끄럽게도 꾸준히 읽고 쓰지만 투자한 만큼의 성과가 나지 못해 아쉽다. 개인적인 성정과 능력 부족 탓이다. 읽고 기억하는 능력, 해석하고 분석하는 데 있어 꼼꼼함이 부족하다. 특별히 끈기가 매우 부족한데, 살면서 이 허술함으로 인해 늘 고생한다. 게다가 e-book을 주력한 뒤로 점점 더 긴 글을 읽고 쓰기가 어렵게만 느껴진다.

이 취미를 특기로 만들고 싶은 작은 소망을 가지고 이 책 저 책 들쑤셔 보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소득은 없다. 게으르고 무능한 나를 탓할 따름인데, 서울대 나민애 교수의 <책 일고 글쓰기>를 읽으니 더욱 괴롭다. 이렇게 쉽고 친절하게 서평 쓰는 법을 알려줘도 따르지 않으니, 고집인지 무능력인지 모르지만 잘 읽고 잘 쓰기는 글렀지 싶다.

서울대에서 대학생을 상대로 서평 쓰는 법을 강의하셔서 인지 쉽고 정리가 잘되어 있다. 실전적인 예제들은 글쓰기 초보라도 쉽게 따라할 수 있다. 저자가 전재한 기본적인 독서능력과 작문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저자가 알려주는 방법을 그대로 따라 해 보라. 무난하게 한 편의 서평을 완성할 수 있다. 서평에 대한 방법을 처음 접하는 사람, 이를테면 대학교에 처음 입학하여 서평을 써야하는 학생들, 독서 모임에 가입은 했지만 글쓰기가 처음인 직장인들, 서평을 써보고 싶지만 나에게 맞는 책이 무엇인지 모르겠는 사람이면 이 책만큼 적합한 책은 없다.

한마디로 평하자면, 서평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에 한정해서 쉬움과 친절함에 있어서 이 보다 나은 책은 없다.’고 단언할 만하다. 그나저나 나는 왜 저자가 시키는 대로 안 쓰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실력이 늘지 않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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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란 삼형제 중 막내와 같다. 쓰기는 결코 혼자, 혹은 먼저태어나지 않는다. 모든 쓰기는 콘텐츠라는 이름의 큰형, 콘텐츠 이해라는 둘째 형 다음에 태어난다. 그러므로 쓰기를 위해서는 읽고, 이해하기를 동반해야 한다. 이 삼형제를 한꺼번에 다루기 가장 좋은 영역이 바로 서평이다. ‘읽고 이해하고 쓴다3단계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쓰기의 절대룰이라고 할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서평은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다. 그것은 공부와 글쓰기의 접점이다. p.5

우리의 욕망은 발견되면서 자라난다. 욕망은 분명 내 것이지만 내가 발견하기 전까지는 자신을 숨기고 있다. ‘글쓰기 욕망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끄집어 눈 앞에 분명히 세워놓을 때, 모든 글쓰기가 비로소 시작된다. p.15

글밥의 양은 최우선 점검 요소이다. “잘 쓴다 ? 못 쓴다보다 더 원초적인 글의 기준은 다 썼다 ? 못 썼다이기 때문이다. 글 쓰는 것은 등산과 비슷하다. 반드시 내가 쓰려고 도전하는 산의 높이를 알고 시작해야 한다. p.18

지적하기를 위한 단점 찾기는 비평의 원래 목적을 헷갈리게 만들고 칭찬을 위한 장점 찾기는 비평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만든다. p.45

비평은 분석을 바탕으로 한 판단및 콘텐츠에 대한 평가가 핵심이다. p.48

내가 읽은 마음의 방향을 바탕에 슬쩍 깔고, 다시 말해 내 정신과 감수성이 책과 소통하도록 하고 나서, 그 결과물을 지성적이며 논리적으로 분석해보면서 왜 내가 그렇게 읽었는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p.70

질문이 없으면 서평을 쓸 수가 없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던져야 한다. p.71

어떻게를 활용해서 생각을 보다 논리적인 세계로 확장하는 것이다. (p.74) ... 정신과 감수성을 열어놓고 읽는 한 번의 독서, 그런 후에 보다 차갑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면서 읽는 또 한 번의 독서. 이 두 독서의 결합이 위에서 말한, ‘따뜻한 감수성과 차가운 지성의 결합이다. 그리고 이 두 독서의 결합이 더 위에서 말한, ‘1단계 독서와 2단계 독서까지 가야 한다는 충고와 같은 말이다. p.75

평소 잘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에 대해서 고민이라는 것 자체를 시작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서평을 쓰면서 얻을 수 있는 내 두뇌의 소득이다. p.99

‘1줄 리뷰는 책 안에서 발췌하거나 인용한 문장이 아니다. 그것은 내 안에서 발췌한 나의 말이다. p.104

좋은 100자 리뷰의 조건은 다음 3개로 압축된다. 하나, 구체적인 자기 경험 혹은 상황에 대한 제시(이해도 및 공감도를 높인다), , 그냥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특히 어느 면에서 도움이 된다, 좋다, 아쉽다, 나쁘다라고 적기, , 유용성을 내용으로 삼아 책에 대한 정의 시도하기 p.111

나와는 다른 지식수준, 입장, 배경, 상황, 견해를 지닌 타인은 같은 콘텐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나의 콘텐츠에 달려 있는 서로 다른 정리/정의의 다양성. 이것이 바로 우리 서평러들이 생각하는 의 최대 의의다. ‘사고의 교감이야말로 의 검색과 독해, 나아(p.124)의 생산에까지 깔려 있는 대전제인 것이다. p.125

블로그 서평의 기본 조건 1. 너무 길면 안 읽힌다. 2. 너무 어려워도 안 읽힌다. 3. 핵심적 한 방이 있어야 한다. p.130~131

서평은 어렵지 않다. 독자를 배려한 글쓰기. 내가 정리하고 남과 소통하는 과정. 이게 바로 서평의 기본이다. p.137

책 이해의 기본은 서지에서 출발한다. 책에 대한 분석 역시 책의 서지에서 출발한다. p.143

분석과 판단 없는 서평은 서평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러므로 서평러가 최종적으로, 가장 중대하게 다루어야 하는 영역이 바로 이 부분이다. (p.169) ... 내 서평의 색깔이 드러나고, 책을 바라보는 나만의 목소리, 책을 소개하고 서평을 쓰는 목적이 드러나는 지점이 바로 분석에 해당한다. 이 단계에서부터 진검승부다. 나만의 색깔이 나와야 한다. p.170

형식이 내용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p.181

글쓰기는 정말 실천이다. 그것은 한 글자 직접 쓰기에서 시작한다. ... 구조가 우리의 과묵한 영혼을 자극한다. p.182

판단에 이르는 과정을 신뢰하라. 그러면 결과물의 정확도가 높아진다. 가는 길이 정확하면(p.186) ‘도착지가 과연 맞을까 틀릴까이런 아리송함이 훨씬 줄어든다. ... 서평의 과정은 뭘로 이루어져 있을까. 그것은 질문이다. 황금알을 낳는 닭처럼, 서평의 질문은 좋은 판단을 낳는다. 질문이 많으면 서평은 산으로 간다. 그래서 간단히 정리하자. 서평의 질문은 2가지만 잘하면 된다. 그것은 바로 어떻게이다. ... ‘라는 무기는 텍스트의 핵심을 파도록 도와준다. ‘를 통해 수확한 내용은 서평의 방향과 주제를 결정해준다. 내가 느낀 감정이나 느낌을 논리적으로 풀도록 유도해준다.(p.187) ‘들은 책의 심층으로 들어가게 하는 곡괭이다. ... ‘어떻게를 묻는다는 것은 방법론을 묻는 것이다. p.188

서평이란 그 책에 대한 필자의 판단이 중심이다. 판단을 듣고 싶지 ,그 책에 대한 자신의 운명적인 만남 오해, 그리고 오해를 극복한 이야기 등은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이다. p.210

앞부분은 내가 생각해서 쓰기보다 조사하고 정리해서 쓰는 거다. 비문학 장르의 글은 언제고 조사와 정리로 시작되어야 한다. p.211

서평에서 대화를 나누는 주체는 감상자의 심장, 감상자의 두뇌, 그리고 대상 텍스트이다. 이 삼자의 대화를 받아 적으면 된다. 굳이 삼자가 육하원칙에 따라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밝힐 필요가 없다. p.215

줄거리 요약이 잘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를 판별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요약을 읽으면 대충 줄거리를 짐작할 수 있어야 한다. ... 둘째, 중요하지 않은 부분, 필요 없이 너무 디테일한 부분이 들어 있으면 좋은 요약이 아니다. 셋째, 책의 내용을 오해하고 있거나 정확하게 전달하지 않으면 좋은 요약이 아니다. p.227

우리는 책을 일종의 으로 보아야 한다. 꽃이 피기 위해서는 뿌리, 줄기, 가지가 생성되어야 한다. 책도 마찬가지다. 책은 오랜 시간 뿌리와 꽃대가 밀어낸 꽃이다. 꽃이 피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토양햇빛이 필요하다. 책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책을 피워낸 이 토양과 햇빛을 잊어서는 안 된다. p.244

서평을 정말 잘 쓰려면, 책장 안보다 행간, 책장의 글씨들보다 저자의 마음, 책보다 책이 놓여 있는 계보적 의미를 확인해야 한다. p.250

제목에는 책의 키워드가 아니라, 서평의 키워드가 들어가야 한다. 그 책을 내가 어떻게 읽었는지, 읽으려고 했는지 경향이 보여야 좋다. 해석의 결과, 평가의 결과가 은연중에 드러나야 좋은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p.271

우리 집 아이와 옆집 아이 성적을 비교하는 것은 언제고 좋지 않은 일이지만, 글쓰기에서의 비교란 언제고 좋은 일이다.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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