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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3 의 전체보기
[이신연재] 7화 | 읽을거리 2014-07-0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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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전은 휑뎅그렁했다. 자객들이 숨을 만한 장소를 주지 않으려고 아무런 가구도 병풍도 없이 달랑 침구만 방 한 가운데 펴져 있었다.

임금은 그곳에 앉아 세자 소현이 보낸 시를 바라보았다. 심양에서 보낸 편지 속에 있던 것을 임금이 직접 필사해 벽에 붙여두었다. 어제 인사를 하고 떠난 청나라 사신 때문일까. 심양에 있는 세자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사신은 두 왕자가 황제의 특별한 은덕으로 탈 없이 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금의 진정한 걱정은 입조였다. 사신이 입조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자 기어코 임금이 먼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문제라면 청나라 조정보다는 황실에서 결정할 사항입니다. 하니 조정의 입장을 전하러 온 저보다는 황제와 직접 서신을 주고받는 칙사와 의논해보십시오.”

생각해보면 사신이 왕을 알현하는 자리에서 입조 문제를 꺼내지 않은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되먹지 않게 <논어>의 구절을 들먹이면서 마치 황제인 양 굴던 사신도 있었다.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니 제후는 황제의 신하답게 주군을 뵙고 아랫사람의 도리를 다하라고 타박을 주고 떠난 것이다.

임금은 황제가 군대를 보내 자신을 데려갈 것이라는 소문이 사실만 같았다. 그들이 군대를 끌고 쥐도 새도 몰래 궁으로 들어와 전광석화처럼 그를 납치할 것이라는 깊은 의심은 사신이 입조를 거론하지 않으면서 더더욱 커져갔다.

입조란, 제후국의 임금이 황제에게 찾아가 인사를 올리는 것이다. 황제가 임금을 심양으로 부른다면 그것은 그를 죽이거나 혹은 왕위에서 밀어내려는 것이었다. 임금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용상에서 물러난 광해가 어떤 굴욕을 당했는지 그는 똑똑히 보았다.

더구나 임금에게는 지울 수 없는 기억이 있다. 홍타이지. 임금은 그와 삼전도에서 대면한 일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 뚜렷하게 되살아나는 기억. 임금은 벼락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전율했다.

홍타이지는 제왕의 상像, 중원의 주인이 될 상이었다. 임금 자신처럼 어영부영하다가 운 좋게 권좌에 오른 얼치기 왕이 아니라 진정한 제왕이었다. 자신의 야욕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의 얼굴, 의지와 능력을 동시에 가진, 문자 그대로 용안이었다. 지금껏 그는 그런 얼굴을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끝없이 너그럽고 인자해 보이는 용안 속에 얼음보다 차가운 냉혹함, 한번 베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기어이 베고야 마는 푸른 칼날이 감추어져 있었다.

임금은 다시금 몸을 떨었다. 심양의 동궁에 있는 두 아들은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곳은 춥다고 들었다. 무능한 아비를 만나 아들이 고생이고 백성이 고생이다.

좌의정 최명길은 심양으로 잡혀간 포로가 50만이라고 했으나, 큰 숫자라는 느낌뿐, 얼마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병자년, 황제가 조선에 끌고온 군대가 10만이 좀 넘었다고 했으니, 산과 계곡을 가득 채웠던 청나라 군사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조금은 감이 잡힐 듯했다.

그래도 설마 그렇게 많은 수가 잡혀갔을까, 임금은 의심했다. 아무래도 좌의정이 뭔가 잘못 알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술자리에서 이신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더니 포로의 숫자가 그보다 훨씬 많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의 말을 듣고 잠이 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이부자리가 온통 젖어 있었다.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를 버리고 가십니까!”

오랫동안 들리지 않던 환청. 임금은 놀라 침을 삼켰다. 목울대가 울렁거렸다.

그것은 임금이 삼전도에서 삼궤구고두례三か九叩頭禮의 치욕을 당한 후, 창경궁으로 가는 길에서 들은 울부짖음이었다. 청으로 끌려갈 만여 명의 포로들이 땅바닥에 퍼질러 앉아 절규하고 있었다. 그 호곡이 다시 들려왔다.

그러나 임금의 귀를 울린 그 목소리는 실상 백성의 것이 아니었다. 백성의 것이었다면 그가 그토록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폐주 광해의 음성이었다. 임금은 삼전도만큼이나 광해의 그림자가 싫었다. 할 수만 있다면 광해와 관련된 모든 것을 땅에 파묻거나 태워버리고 싶었다. 광해의 목소리가 들리자 온몸이 다시금 파르르 떨렸고, 한순간 높은 대궐 담장을 훌쩍 뛰어 넘어온 삭풍보다 매서운 바람이 등줄기를 타고 내렸다. 임금은 심한 갈증을 느꼈고, 그 때문에 미행 때 마신 탁주 한 사발이 떠올랐으나 마른 침만 삼킬 뿐이었다.

김흥진의 죽음 때문인가. 아니면 어제 저녁 내금위장이 올린 보고 때문인가. 김창렬이 사대문 바깥에서 누군가가 염초를 대량으로 사들인다는 소문이 있어 뒤를 밟았더니 그들이 은밀히 무기를 만들고 있더라는 것이다. 엄청난 화력을 지닌 폭탄이라고 했다.

역모였다. 비록 치욕적인 항복으로 마무리되긴 했으나 청나라와 전쟁을 치른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다시 나라를 환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넣으려 하다니……. 임금은 분노했다. 역모로 용상의 임자가 바뀐다는 것은 신하들도 백성들도 감당하기 힘든 고통일 것이다. 그들을 다시 그런 혼돈 속으로 내몰 수는 없었다. 어찌하여 역모는 이리도 끊이질 않는단 말인가. 임금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견디기 힘든 피로가 온몸을 휘감았다. 내의원에서 주청한 대로 시약청을 설치해야 한다. 그리고 기운을 추슬러 역모와 싸워야 한다. 상념에 잠긴 임금을 내관이 불렀다.

“전하, 내금위장 이신 대령하였사옵니다.”

임금은 정신을 차리고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들라 하라!”

임금이 대답하자 문이 열리고 칙사가 들어와 절을 올렸다.

“전하, 찾아 계시옵니까.”

칙사는 한 치도 예의에 어긋남이 없이 고개를 숙이고 눈을 내리깔았다. 하지만 그는 황제의 명을 전하는 관리이므로 임금이 함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내금위장에게 부탁이 있어 불렀소.”

“소인은 전하의 신하이옵니다. 부탁이 아닌 하명을 하시옵소서.”

이신은 다시 머리를 조아렸다. 임금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느 날, 그의 앞에 나타난 칙사는 엉뚱하게도 조선 사람이었다. 이씨의 신하라는 이름을 가진 이신은 역설적으로 청나라 신하가 되어 조선 조정에 나타났다. 그는 황제의 특별한 칙을 전하기 위해 온 것도 아니었으며, 금방 청으로 돌아가지도 않았다. 칙사는 조선에 상주했다. 당시 신료들은 그를 정명수 같은 역관 정도로만 여겼으나 실상 그는 그간 조선에 온 사신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벼슬을 지낸 청나라 관리였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인지 풍문인지 알 수 없어 임금도 반신반의했다.

그가 예사롭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은 곧 확인됐다. 청나라 사신 하나가 운종가에서 술을 마시고 양민의 처를 겁탈한 사건이 있었는데, 칙사가 달려가 그를 죽도록 두들겨 패서 돌려보낸 것이다. 옆에 있던 다른 사신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그자는 칙사의 칼에 죽었을 것이라고 했다. 사신을 두들겨 패다니 황제의 측근이 아니라면 감히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게다가 사신이 능욕한 여자가 사대부의 정부인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칙사 이신은 모화관에 처박혀 날마다 술과 기생을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리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이 거처할 수 있는 조용한 집을 하나 마련해달라고 했다. 노복도 필요한 만큼만 들였고, 적적함을 달래라며 몸시중 들 계집을 보내도 곧장 돌려보냈다. 늦은 밤에 기별도 없이 장안에서 내로라하는 기생을 들이밀어도 매한가지였다. 천한 신분으로 태어난 열등감 때문에 기생은 싫다며 사대부의 딸만 골라 몸시중을 시키는 동지사 정명수와는 다른 류의 인간이었다. 정명수처럼 벼슬을 달라고 떼를 쓰지도 않았다.

임금이 조용한 밤에 술자리로 칙사를 부른 것은 그가 황제의 마음을 움직이는 책사策士라는 말을 듣고 나서였다. 소현세자와 함께 심양의 조선관에 가 있는 신료가 조정에 들러 은밀히 고한 말이었다. 임금은 이신에게 ‘그대를 가까이 두고 싶으니 조선에 있는 동안 자신의 경호를 담당하는 내금위장을 맡아달라’고 했다. 농처럼 꺼낸 말이었으나 칙사는 곧장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신에 대한 조정의 반응은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호의는 곧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이신이 박세무의 <동몽선습童蒙先習>을 불태워버리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도 한두 권이 아니라 한양의 책방과 학동들이 글을 배우는 서당을 모조리 뒤져 보란 듯이 광화문 앞 육조거리에 쌓아두고 불을 질러버렸다. 불길은 하루 종일 꺼지지 않았다. 그가 태운 것은 책이 아닌 조선 사대부들의 자존심이었다. 동몽들이 천자문을 떼고 배우는 <동몽선습>에는 한족漢族의 주원장에 의해 오랑캐 원나라가 망하고 명조가 출현했으며, 조선은 명나라를 이어받은 소중화小中華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동몽선습>에 의하면 조선의 진정한 지존은 임금이 아니라 명나라 황제가 아니냐? 너희가 너희 임금보다 명의 황제를 높이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너희가 너희의 상전이 누구라고 믿든, 앞으로 조선에서는 명나라 황제 숭정제의 연호를 사용해서는 아니 되며, 청나라 황제의 연호를 써야만 할 것이다. 또, 굳이 여진족이 아니라 해도 오랑캐를 헐뜯는 모든 책을 금한다!”

모두가 경악했다. 먼저 성균관 유생들이 들고 일어났고 사대부들도 분서갱유라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트렸다. 조정은 들끓었고, 내금위장 이신은 올빼미나 부엉이처럼 사악한 관리이니 탄핵해야 한다는 상소문이 수없이 올라왔다. 신료들은 백주 대낮 종로 거리에서 조선의 관료 11명을 찢어 죽인 개망나니 역관 출신의 동지사 정명수보다 이신을 더욱 증오하게 되었다. 그는 사대부의 머릿속까지 단속하는 황제의 진짜 충복이었다! 하지만 이신은 조금도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그런 태도가 신료들의 비위를 더욱 긁는 모양이었다.

“전하, 내금위장이 이번에 동몽들이 읽는 책을 불태웠으나 앞으로 무슨 책을 더 태울지 알 수 없는 일이옵니다. 책은 선비의 전부인 바, 책을 태우는 것은 선비를 욕보이는 것이옵니다. 선비는 죽일 수는 있어도 욕보일 수 없다고 했사옵니다. 전하, 일찍이 조선의 역사 이래 선비에 대한 이런 폭거는 없었사옵니다.”

임금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다른 한편으로 임금은 이신이 손에 쥔 <동몽선습>을 불구덩이 속으로 던져 넣는 모습을 상상하며 내심 통쾌함을 느꼈다. 삼전도의 굴욕은 사대부들이 조선의 임금을 제후로 여기고 명나라 황제를 진짜 임금이라고 섬기는 바람에 생긴 참극이었다. 그 똥물은 오롯이 왕의 몫이었다.

선비는 욕보일 수 없다고? 그럼, 삼전도에서 임금이 겪은 일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임금은 입안이 바싹바싹 말랐다. 신료들은 칙사가 받은 내금위장이라는 직위를 들먹이며 그를 벌하라고 종용했다. 그러나 허울 좋은 명예직일 뿐 그는 조선의 신료가 아니었으며 임금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존재도 아니었다.

임금은 절대로 나서지 않고 칙사의 만행을 신하들이 직접 해결해보라고 수수방관할 속셈이었다. 이신은 <동몽선습>을 불태운 후 몰래 침전으로 찾아와서 조선 사대부의 태도가 역겨워 저지른 일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사대부의 터무니없는 믿음이 부른 화이니 본인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칙사의 분서갱유 역시 뒷수습은 임금의 몫으로 돌아왔다. 성균관 유생들이 창경궁 앞에서 연좌 농성을 벌인 것이었다.

농성이 길어지자 사태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조선에 왔던 청나라 사신들이 유생들의 반청시위를 황제에게 상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순간 임금의 머릿속엔 ‘입조’라는 단어가 스쳤다. 속국인 조선의 유생들이 명나라를 섬겨야 한다는 책을 읽지 못하게 했다는 이유로 농성한다는 사실이 전해지면 황제의 심기가 뒤틀릴지 모를 일이었다. 임금은 사신을 데리고 창경궁 앞에서 연좌하고 있는 유생 앞에 나갔다. 이어 눈물을 흘리며 농성을 풀고 돌아가 학문에 정진하라고 달래서 돌려보냈다.

“내금위장, 혹시 훈신 김흥진의 죽음에 관한 소식은 들었소?”

“소인 입궐하는 길에 관리들이 하는 말을 들었사옵니다.”

“옆에 놓인 것을 한번 보시게.”

이신은 임금이 가리킨 두루마리를 집어 들고 펼쳤다. 시장屍帳, 즉 검안서였다. 그 내용을 훑어보던 이신은 자신도 모르게 놀라 입이 딱 벌어졌다. 피살당한 김흥진의 죽음이 엉뚱하게 자진으로 둔갑해버린 것이다. 어찌 된 일인가? 무슨 연유로, 누가 김흥진이 자객에 의해 죽은 것을 숨겼을까? 

“왜 그리 놀라는가? 소식은 이미 들어 알고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아차 싶었다.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이신이었지만 너무 놀라 과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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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강희진 저
비채 | 2014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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