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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몽환화' 미리보기 4회 | 읽을거리 2014-05-19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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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4


그 소식을 휴대전화로 들었을 때 아키야마 리노는 신주쿠 거리를 걷고 있었다. 신주쿠 거리는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여 앞에서 오는 사람과 부딪치지 않으려 신경쓰다 보면 전화 상대의 얘기를 놓칠 우려가 있다. 그래서 전화를 받으면서 곧바로 옆 골목으로 들어왔는데 수화기 저편의 어머니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자리에 멈춰서서 다시 물었다.
“어, 뭐라고?”
어머니 모토코는 살짝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나오토가 죽었다고, 창문으로 뛰어내렸대.”
리노는 전화기를 움켜쥔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날 밤, 요코하마에 있는 본가로 돌아왔다. 현재 리노는 고엔지에서 혼자 살고 있는데 장례식이나 쓰야 때 입을 옷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삼년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산 검은 원피스를 입었다. 맞을지 불안했는데 그 무렵보다 살이 빠졌는지 조금 여유가 있었다. 도리이 나오토는 리노의 친가 쪽 사촌이다. 아버지 마사타카에게는 여동생이 있는데, 그녀의 장남이었다. 아버지 말로는 나오토가 가와사키에 있는 자택에서 동트기 직전에 뛰어내렸다고 한다. 그때 부모와 차남인 도모키도 각자의 방에서 자고 있었던 터라 뛰어내리는 순간에는 당연히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뜬 아랫집 사람이 맨션 부지 안에서 피투성이의 사체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도리이 집안사람들이 장남의 죽음을 알게 된 것은 경찰관이 찾아오고, 누군가 없어진 사람이 없느냐는 기묘한 질문을 받은 후였다. 어머니가 나오토의 방을 보러 갔는데 아무도 없는 데다 창문이 열려 있었다.
“떨어진 게 나오토라는 걸 알았을 때 요시에 씨의 마음은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심장이 떨리는구나.”
모토코는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실제로도 몸을 살짝 흔들었다. 요시에는 나오토의 어머니 이름이다. 경찰이 나오토의 방을 샅샅이 뒤졌지만 유서 같은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사건의 가능성은 인정되지 않아서 자살로 판단된 듯하다. 사고 가능성도 낮았다.
“짚이는 데가 하나도 없나봐. 전날 밤에는 가족들이 다 같이 식사를 했는데 특별히 이상한 모습도 없었고. 어떻게 된 걸까.” 마사타카는 미간을 찌푸렸다.
다음 날, 리노는 부모님과 함께 택시를 타고 상갓집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세 사람 다 말이 없었다. 리노는 나오토와의 추억을 곱씹었다. 얼마 안 되는 또래 친척이라 어릴 때부터 자주 어울렸는데……. 두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간 적도 있다. 그녀가 수영을 시작한 것도 한 살 위인 나오토가 먼저 수영교실을 다닌영향도 있었다. 잠시 후 상갓집에 도착한 리노는 고모와 고모부에게 위로의말을 건넸는데 너무 마음이 아파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요시에는 쥐어짜내는 것 같은 목소리로 시종일관 울먹이고 있었다. 고인의 동생인 도모키는 사람들과 떨어진 자리에 홀로 앉아 있었다. 리노가 다가가 말을 걸자“어?”하며 표정을 조금 누그러뜨렸다. 그는 그녀보다 두 살 아래로 지난달에 막 대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몸의 선이 가늘어서인지 중학생처럼 보였다. 리노는 그의 옆에 앉아 제단에 놓인 나오토의 사진을 올려다봤다. 액자 속의 나오토는 웃고 있었다. 금발 머리에 귀에는 피어싱을 하고 있다. 라이브 콘서트에서 많은 여자애들이 그에게 열띤 성원을 보내던 모습이 떠올랐다.
“너무 슬픈 일이야.” 영정을 보면서 리노가 중얼거렸다. 도모키는 한숨을 쉬었다.
“아직도 믿을 수 없어. 거짓말 같아.”
“저…… 같은 말을 여러 번 들었겠지만.”
“자살한 이유?”
“응.”
도모키는 고개를 딱 한 번 가로저으며 모른다고 대답했다.
“형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 아주 열심히 잘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어땠을지 아무도 모르지. 혹시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고민이 있었을지도 모르고.”
“그렇지.”리노가 대답했다.
사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젊은이들의 자살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 동기를 주변 사람이 알아차리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나오토는 전부터 무슨 일을 해도 다른 사람보다 훨씬 잘했다. 학교 성적이 좋고 그림에도 재능이 있는 데다 스포츠도 만능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고민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는 작년에 대학을 중퇴했다. 다양한 재능을 타고났지만 직업으로는 결국 음악의 길을 선택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아마추어 밴드를 결성해 계속 활동해왔는데 결국 프로가 되기로 결단한 모양이었다. 리노는 그들의 연주를 몇 번인가 들으러 갔다. 그녀는 음악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반짝이는 뭔가가 있는 듯 느꼈다. 그래서 진심으로 아티스트로 성공하길 바랐는데…….
제단 옆에 그림을 넣은 액자가 놓여 있다. 거대한 독수리가 새끼 토끼를 잡으려는 찰나를 그린 것이었다.
“저건 나오토의 그림이야?”리노가 물었다.
“응, 초등학교 때 그린 거야.”도모키가 대답했다.
“초등학생이? 대단하다!”
그림을 다시 바라봤다. 동물들이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은 도저히 그릴 수 없을 정도로.
“최근에 그린 건 없어?”
“응, 내 기억으로는 중학교 때 그만뒀어.”
“왜 그만뒀을까.”
“몰라. 한 번 물어보긴 했는데 시끄럽다면서 대꾸도 안 하더라고.”
“흠…….”
옆에 누군가 다가와 서는 기척을 느꼈다. 리노가 올려다보니 예복 차림의 아키야마 슈지가 입가에 쓸쓸한 미소를 떠올리며 서 있었다.
“할아버지.”리노가 말했다. 슈지는 마사타카와 요시에의 아버지다.
“힘들겠구나.”그는 도모키의 어깨를 토닥이며 의자에 앉았다.“ 제대로 먹고 있니. 이런 때일수록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지. 밀려오는 슬픔이야 어찌할 수 없지만 몸이 상해선 안 된다.”
“알아요. 다른 어른들도 같은 말씀을 하셨어요. 앞으로는 내가 장남이라고. 하지만 갑자기 그렇게 말씀하셔도…….”도모키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무리할 건 없다. 지금은 네 생각만 하거라.”슈지는 제단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오토는 몇 살이었지? 리노보다 한 살 위였나.”
“맞아요. 올해 스물둘이 됐죠.”
“스물둘이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한창 꽃이 필 나인데.” 슈지는 윗옷 안쪽에 손을 넣어 봉투를 꺼냈다.
“이제 이걸 건넬 수도 없구나.”
“그게 뭐예요?”
슈지는 봉투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냈다.
“옛날에 다 같이 먹으러 갔던 거 기억하니? 리노도 같이 갔었는데.” 그것은 니혼바시의‘후쿠만켄’이라는 유명한 서양식 레스토랑의 식사권이었다.
“그럼요.”리노가 말했다. “다 같이 먹으러 갔죠. 비프커틀릿이 무척 맛있었던 기억이 나요.”
“그래, 그랬지.” 슈지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나오토도 같은 말을 했단다. 전에 만났을 때도 그런 말이 나왔어. 그때 먹었던 커틀릿 맛을 잊을 수 없다고. 언제 밴드 멤버들을 데리고 가서 먹이고 싶다고 했어. 하지만 고급 레스토랑이라 제대로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될 거라고도 하더구나.”
“어머, 그랬구나. 그래서 할아버지가 식사권을?”
“그래, 하지만 이미 늦었구나. 이 식사권을 관에 넣을까 생각하고 가지고 왔다.”
슈지는 봉투에 식사권을 넣어 안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그리고 리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는 어떠냐? 잘 지내니?”
“네…… 그럭저럭요.”
“수영은? 이제 완전히 그만둔 거니?”


몽환화

히가시노 게이고 저/민경욱 역
비채 | 2014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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