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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17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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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대신 읽고 써줄 대리인이 필요해 _ 황경신 [국경의 도서관] | 리뷰 2016-01-14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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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국경의 도서관

황경신 저
소담출판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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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좀 누가 나 대신해주었으면 싶을 때가 있다. 이른 아침 찬바람 맞으며 출근하기 싫을 때, 저녁에 야근하기 싫을 때, 퇴근하고 집에 와서 밥 차려 먹기 귀찮을 때, 주말에 약속 있는데 꼭 가야 하는 경조사가 겹칠 때 등등. 누가 나 대신 생각 좀 하고 생각한 걸 정리해서 글로 써주었으면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주로 책을 읽는다. 책을 읽으면 머릿속을 꽉 채운 생각들이 언어화되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고, 정리된 생각들 속에서 좋은 아이디어나 그때까지 생각지 못한 깨달음이 떠오른다. 나처럼 대신 생각해주고 대신 글로 써주는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독자들이 있기에, 출판계가 아무리 불황이어도 작가는 탄생하고 책은 팔리는 게 아닐까. (출판계여, 귀차니스트를 귀하게 받들지어다!)


  나는 여행을 대신해주는 사람이다. 의뢰인이 정해준 여행지와 날짜, 기간과 목적에 맞추어 경비를 산출하고 스케줄을 짜고 난이도를 감안하여 일당을 계산한다. 몇 차례의 조율이 끝나고 출발일이 정해지면, 공식적으로 또 대외적으로, 나의 의뢰인을 한동안 '여행 중'인 상태로 만드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바나나 리브즈>, p.10)


  황경신의 소설집 <국경의 도서관>에는 남을 대신해 무언가를 하는 대리인이 유난히 자주 나온다. 맨 처음 나오는 소설 <바나나 리브즈>에는 의뢰인 대신 여행을 하는 여행 대리인이 나온다. 그렇게 편한 직업이 정말 있을까마는,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가는 것이 두려운 사람, 그런데도 남들한테 여행 이야기를 떠들어보고 싶은 사람, '여행 중'이라는 팻말을 걸고 한동안 잠적하고 싶은 사람 등등을 위해 여행 대리인이 필요하다는 (소설 속 여행 대리인의) 설명을 들으니 있을 만도 하다. 이어지는 <나비와 바다의 놀라운 인생>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경쟁하길 좋아하는 어머니들을 대신해 경쟁하는 '나비'와 '바다'가 나온다. 이 또한 이런 부모 자식 간이 있을까마는, 없으라는 법도 없다. 사람마다 누가 나 대신해주었으면 싶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테고, 그중에는 이따금 비상식적이고 불가해한 것도 있을 테니.


  이미 고인이 된 작가의 대리인이 나오는 소설도 있다. <무거운 꽃>이라는 소설의 화자는 자신을 '에밀 싱클레어'라고 밝히는 사람으로부터 언제라도 좋으니 베를린에 오라는 초대를 받는다. 조건은 단 하나, 머무는 동안 단 한 줄이라도 좋으니 글을 쓸 것.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베를린에 간 화자는 에밀 싱클레어, 그러니까 <데미안>의 저자인 헤르만 헤세(에밀 싱클레어는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을 출간할 때 사용한 필명이다) 대신 그의 대리인만을 만난다. 작가가 존재하든 하지 않든 '글을 쓰라'는 조건은 변하지 않는다. 표제작 <국경의 도서관>에는 작가와 대리인이 동시에 나오는데, 그 작가는 무려 셰익스피어다. 해마다 열리는 셰익스피어의 낭독회에 우연히 가게 된 화자는 셰익스피어가 원문을 읽으면 같이 간 남자 엠이 번역하는 걸 듣는다. 그러면서 이야기 속을 걷는 동시에 이야기를 듣고 또 만드는 특별한 체험을 한다. 


  그가 이끄는 대로, 나는 겨울날의 스산함과 봄의 들판을 방문한다. 사랑의 시작과 끝을 통과하고, 욕망의 무게에 휘청이고, 생의 빈 잔을 들었다 놓는다. 노래를 듣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영상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동시에 그것을 듣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혹은 모든 이야기의 창조자이기도 하다. (<국경의 도서관>, pp.323-4) 


   대리인은 본인 대신 대리인이 하는 것과 본인이 직접 하는 것이 같다는 믿음이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은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서 자주 발견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과는 다른 삶을 '대신 살아주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나도 그 삶을 경험한 것과 같아진다는 믿음. 이런 믿음 없이는 이야기 속의 인물에게 몰입하기도 어렵고 공감하기도 어려우며, 그런 짜릿한 체험 없이는 책을 계속 읽어가기도 어렵다. 

  

  나 대신 살아주는 주인공. 나 대신 말해주는 화자. 나 대신 글 써주는 작가. 이들이 모여있는 곳이 책 속이라는 세계는 참으로 편리하고 아늑하다. 반대로 그런 세계를 만드는 일은 어렵다. 그래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고 이야기를 만들지만 가히 전설로 남을 만한 작품은 한 세기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 책에 실린 소설 중에는 내가 깊이 몰입하여 읽은 것도 있고 작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 것도 있다. 작가가 나 대신 내가 못한 체험과 내가 차마 읽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한 책을 읽고 쓴 글이니 어려울밖에. 그럼에도 어떤 작품은 쉽게 읽히고 깊이 빠지기까지 했으니 그 기적이 반갑다. 이런 대리인이라면 몇 번은 더 의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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