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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하는 말은 시가 된다! | 기본 카테고리 2020-12-05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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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진이 詩가 되는 시간

김상 저
지식과감성# |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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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라기엔 늦은 감이 있고, 도전해보고 싶다고 하기엔 거창한, 그냥 해보고 싶었던 게 있다고 하자! 7~8년 전에 DSLR 카메라를 사서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그 때 뭔가에 미쳐있었다. 몇 년 그러고 뛰다니다가 시들해졌고, 카메라는 제 집에서 쉬게 되었다. 그 아이를 다시 꺼내 풍경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진에 어울리는 단상, 형식이나 내용에 구애없이 텍스트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카메라는 여전히 쉬는 중이고 나는 뭔가 끄적이고는 있다. 물론 하고 싶었던 걸 아예 포기하진 않았다.

 

 

사진과 텍스트가 있는 책 읽기를 좋아한다. 수전 손택의 <사진에 대하여> 보다는 신현림의 <나의 아름다운 창>이 좋았고, 바커바르트의 <붉은 소파>처럼 프로젝트 사진집이나 라이프지의 사진 모음집처럼 사진으로만 말하는 책도 좋아한다. <월간 사진>도 구독중이다. 지식과 감성 출판사의 신간 소개를 보니 내가 하고 싶었던 그 일을 실현한 이의 책이었다. 김상씨의 <사진이 詩가 되는 시간>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표지를 보는 순간 살짝 실망했다. 올드한 색감에 2초 정도 움찔했다가 책을 펼쳤다. 사진은 표지 느낌과 달랐다. 색감이 확고하게 선명함을 자랑하고 있었고 사진마다 제 목소리를 다르게 내고 있었다. 텍스트는 읽지 않았다. 이런 책은 사진부터 다 본 다음 처음으로 돌아가 텍스트를 읽는다. 그리고 사진과 텍스트를 비교한다. 이번엔 사진을 다 본 후 목차로 돌아갔다. 마음에 드는 제목을 골라 그 페이지를 넘겼다.

 

‘너에게 전화를 한다’를 펼치자마자 보이는 달은 나에게 김용택 시인을 불러내라고 시켰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앗, 그런데 시가 사진과 그리 어울리진 않았다.

 

 

마지막 두 행이,

오후 세 시 오십 분

너에게 다시 전화를 한다...

라서.

 

 

 

그럼 다시!

이번엔 ‘안녕’을 골랐다

 

 

 

 

이번 시는 사진과 맞춤했다.

안녕은 헤어질 때만 쓰는 말이 아니다. 안녕에 조응하는 단어가 (거의 조건반사로) 내겐 헤어짐이다. 그래서 이 시가 마음에 들었다.

 

이런 식으로 마음에 드는 시의 제목을 펼쳐서 읽고 사진과 비교해 봤다. 이런 책은 소설처럼 한 호흡에 읽어야하는 부담이 없어서 좋다. 책상 위에 올려두고 다른 책을 읽다가, 오며 가며 한번씩 스윽, 아무 때고 아무 페이지를 펼쳐서 읽으면 된다. 받자마자 후루룩 읽고 서평을 쓰고 싶지 않아서 열흘 가까이 듬성듬성 살피고 있었다.

 

저자가 사진으로 무슨 수상을 한 적이 있는지, 시로 성과를 냈는지 이력을 알 수가 없었다. 작가 소개에 이렇게 나와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풍경과 사물의 순간에서 그들이 하는 말을 포착했고 그것이 시로 발화한 게 아닐까. 내가 뭐라고 감히 그의 시를 평가할 수는 없다. 사진 보는 걸 좋아하는 일개 독자일 뿐이다. 그의 사진에 시가 없었다 하더라도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오직 내 스키마로 사진을 읽어내는 것은 저자의 메시지를 오해할 수 있다.

저자가 사진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시로 표현하는 것이 만족스러웠을거라 예상해본다. 독자가 그것을 온존히 이해하게 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러지 못한다 한들 어쩌랴. 책이란 이미 저자의 손을 떠나면 독자의 것인 것을...

 

 

그래서 나는 이 책에서 마음에 든 사진을 골라 보았다.

 

계절의 특징과 감성을 한 장의 사진에 딱 맞게 표현했고 시도 그에 잘 어을렸다. 마지막 낙엽들이 거리를 이리저리 휘돌아 다니는 요즘 읽고 감상하기에 좋겠다. 이런 책을 보노라면 내 하고 싶었던 일을 포기할 수 없다는, 꼭 해보겠다는 맘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언젠가는...

 

 

덧, 사진도 시도 다 좋았는데 표지가 영 별로였다. 본문 사진 중에 표지로 쓸만한 거 많았는데...

저자에겐 미안하지만 이건 순전히 개취입니다!

 

**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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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보존과학의 세계~ | 기본 카테고리 2020-12-04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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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김은진 저
생각의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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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하는 사람은 아마 예수님 작품 패러디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그랬다. 그런데 복원한 거라고 한다.

으읭? 누가? 감히 예수님을 원숭이로 바꾼??


2012년 스페인 작은 마을 보르자에 있는 성당 벽화를 오래된 신도인 80대 할머니 세실리아가 복원한 것이다그렇다! 전문가 아니고, 그냥 할머니다. 그냥 놔두면 예수님이 사라질 것만 같아 순수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덧칠한 결과이다참혹하다! 그런데 저 그림을 보겠다고 몰려든 관광객 때문에 조용하던 동네가 들썩거렸고 관광수입이 어마어마했다는 후문이다물론 그 뒷얘기보다 중요한 건 미술품 복원, 보존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라는 책에 위 사례가 나온다. 이 책의 부제는 미술품을 치료하는 보존과학의 세계로 미술품 복원 및 보존에 대한 내용이다. 이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 그림이 들려주는 복원 이야기 에서는 유명 미술작품의 복원 히스토리를,

. 미술관으로 간 과학자 는 과학이 미술품 보존에서 어떤 활약을 하는지를,

. 미술관의 비밀 에는 미술관 뒷이야기가 있다.


, 뒷이야기라고 표현한 이유는 구린? 이야기가 아니라 관람객이 보는 전시장 뒤쪽에서 벌어지는 우리가 알 수 없었던 미술관 이야기라는 뜻이다.


명화를 보는 건 좋아하지만 훼손되어가는 작품을 어떻게 복원하는지에 대해선 일자무식인지라 이 책의 내용이 궁금해서 서평단에 신청했다. 미술품 복원이라면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남자 주인공이 했던 일? 정도로 기억한다. 영화 보면서 그저 잘 생긴 남자가 뭔가 멋진 일을 하네! 저런 일도 있네! 라고 생각했고 대체 어떤 일을 하는지 몰랐는데 이 책의 1장을 보면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와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미술품을 복원하기 전에 해야 할 질문이 있다.


"왜 복원해야 하는가?"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누가 가장 잘 할 수 있는가?"


이탈리아의 미술사학자 페데리코 제리,

잘못된 한 명의 복원가는 비행기 폭격보다 더 큰 피해를 남길 수 있다.”

고 말했다.


미술폼 보존이 수리의 개념에서 학문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채 100년이 되지 않았다. , 어떻게 하려는지 보다 중요한 건 철학적 관점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누가일 것이다. 미술품의 먼지와 오염을 닦아냈는데, 그 미세한 먼지조차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저자는 이런 질문을 늘 한다.


미술품의 이염을 너무 깨끗이 지운 사례.

 

고흐가 편지에 남긴 기록과 색깔이 달라진 사례.

 

현대미술이나 미디어아트의 보존문제까지 독자로서도 생각해 볼 거리가 많았다.


2장은 조명과 빛에 따라 달라 보이는 미술품, 물감의 변천사와 재료, 미술품 연대 확인, 진위여부 등 과학이 미술품에 어떻게 활용되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이 장에서 보존가와 보존과학자를 구분하여 정의 내리고 있다.


보존가가 직접 작품을 다루고 상처를 치료하는 사람이라면, 보존과학자는 보존가의 활동에 필요한 과학적 정보를 연구하는 사람이다.“


저자는 보존가를 외과 의사로 보존과학자를 진단검사의학과 의사로 구분했는데, 각자의 영역에 맡는 일을 제대로 해야 하므로 이렇게 정리했다

분석은 과학자의 영역으로, 보존 처리는 보존가의 손에, 미술사적 해석은 미술사가에게 전문적으로 맡기는 것이 현명하다미술품 보존에서 여러 분야의 융합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크뢸러뮐러 미술관에 있던 고흐의 들꽃과 장미가 있는 정물 2003년 큐레이터 엘렌이 고흐가 그린 게 아니라고 했다. 고흐가 그리던 당시의 상황과 고흐의 스타일과 대조해봤을 때 아니라고 결론내린 것이다. 그러나 10년 후 고흐가 그린 게 맞다고 확인되었다. 이 작품을 분석하는데 과학이 적용되었다. 매크로 엑스선 형광분석법이다. 강한 엑스선 에너지가 대상물 내부의 원소를 자극할 때 반응하는 파장을 분석하여 구성 원소를 알아내는 방법이다. 겉으로 보이는 그림의 색과 형태가 아니라 그림에 분포하고 있는 구성 성분에 대한 정보를 지도로 만들어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고흐가 레슬러 그림을 그렸다고 테오에게 쓴 편지 내용도 확인이되었다. 남자 두명이 레슬링을 하는 위에 그려진 것이다.


마지막 장에서는 우리가 몰랐던 미술관에 대한 이야기였다. 특히 미국 게티 미술관의 화재예방 설계가 빛을 발했던 이야기는 놀라웠다. '게티파이어'라 불릴 정도로 심각한 화재였는데 게티 미술관에는 아무 피해가 없었다. 이와 정반대인 사례도 있다. 브라질은 장장 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국립 미술관을 다 태워먹었다. 예산을 삭감해서 기본 소방 설비마저 갖추지 않아 2000만점에 달하는 유물 중 90퍼센트가 화재로 소실되고 말았다. 인류사적 피해였다. 왜냐하면 1만2천년 전 인간의 두개골 '루지아'가 산산이 바스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마지막 에피소드, 액자에 대한 내용은 깨알 상식이었다. 특히 우리나라 화가 문신이라는 사람은 그림보다 액자를 더 신경 써서 만든 화가였다고 한다

 

위 그림은 고기잡이 배에서 그물을 당기고 있는 어부들의 모습이고 액자는 물질하는 해녀의 모습이다. 그림과 액자 모두 자신의 작품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 외 고흐와 쇠라, 몬드리안의 액자에 대한 생각까지 엿볼 수 있었다. 모두 처음 알게 된 내용이라 신선했다.


미술서적을 즐겨 보는 편인데 볼 때마다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어 재미있다. 앞서 읽은 <히포크라테스 미술관>은 몰랐던 화가와 그림을 많이 알게 되었고, 이 책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는 미술품 보존에 대한 지식과 그와 연관되는 여러 정보도 알게 되었다. 감동을 주는 책 읽기도 좋지만, 몰랐던 분야의 새 지식을 득하는 것도 책 읽는 기쁨중의 기쁨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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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에서 출발하는 명화여행~ | 기본 카테고리 2020-12-03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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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히포크라테스 미술관

박광혁 저
어바웃어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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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읽는 의학과 인문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책 <히포크라테스 미술관>의 저자 박광혁씨는 현직 내과의사이다. 그동안 그림과 인문학을 연결한 책들을 읽어왔지만 현직 의사가 쓴 책은 처음이다. 의사가 그림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했고, 좀 딱딱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했다. 그러나 책을 받아보니 쓸데없는 기우였고 만듦새도 마음에 들었다.

 

얼마나 내실있게 만들려고 했는지 저자의 노력과 출판사의 편집력을 보니 알 수 있었다. 책에는 전 세계 미술관을 순례하며 그림에 담긴 의학과 인문학적 코드를 찾아내어 관찰한 저자의 알뜰살뜰한 기록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그 어떤 명화 해설서보다 내용이 풍부했다. 이런 책은 편집에도 예술적 감각이 필요하다. 표지에 어떤 그림을 사용할 것인지 고심한 흔적이 보였다. 본문 내용에서는 텍스트와 그림간의 배치가 중요하고 무엇보다 원화의 색감을 얼마나 잘 살렸는지가 관건이다. 아무리 글 내용이 유려해도 기본이 되는 그림이 원래의 색감대로 나오지 않으면 예술책으로서의 가치가 훅 떨어질 수밖에 없다.

 

 ?? 목차만 봐도 그림 느낌! 오지 않나?

 

 

 

 

 

 

저자 박광혁씨는 갤러리아 나이트(galleria night)’라는 별명이 있다는데 아라비안 나이트를 비유한 것이라고 한다. 그림 한 점에서 기상천외한 이야기들을 밤새 쏟아낼 만큼 해박한 미술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세계 곳곳의 미술관을 찾아다니며 걸작을 만나왔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놀랐다. 내가 모르는, 처음 보는 그림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15장에 걸쳐 소개되는 그림의 양이 꽤 많은데 아는 화가보다 모르는 화가 투성이었다. 그동안 아주 유명한 화가의 유명 그림들을 소개하는 것을 중복해서 읽었다는 뜻이 된다. 클래식 음악도 아는 것만 계속 듣게 되는데 그림도 그랬단 말인가? 당황스러웠다. 모르는 화가에 대한 설명이니 내용도 다 처음 듣는 것이었다. 그나마 첫 장에서 다룬 화가는 고흐였고 연결한 다른 예술가는 차이코프스키와 로트렉이었다. 1장에서 아는 예술가, 아는 이야기들이 나와서 평소 읽던 미술책과 비슷할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던 거다.

 

독자들도 고흐는 다 알테니까 1장으로 구성을 소개해본다. 저자가 암스테르담 고흐 미술관에서 만난 그림은 고흐의 유서 같은 그림 <영원의 문>이다.

1890년에 유화로 완성한 이 그림은 그로부터 8년 전 그렸던 소묘에서 시작되었다.

 

유화는 자살하기 두 달전에 완성한 그림이다. 당시 고흐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 예술가로 인정받지 못한 절망감과 경제적 궁핍까지 겹친 상태에 정신착란이 심해져 자주 발작을 일으켰다. 깊은 슬픔과 비통함을 이 노인의 모습에 투영한 것으로 보인다. 고흐가 남긴 자화상 중에 가장 비통한 자화상일 거라고 저자는 생각했다. 보통은 그림 설명을 작가의 상황과 연결하면 끝이 나는데 저자는 그러지 않는다.

 

<영원의 문>과 데자뷰를 이루는 음악을 소개하는데 바로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6<비창>이다. 차이코프스키가 죽기 9일 전에 발표한 <비창>은 자신을 위한 레퀴엠이었을 것이라고 하며 차이코프스키의 죽음에 얽힌 일화를 소개한다. 그는 동성애자였고 당시 러시아 사회에서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죽음으로 몰고 간 뒤 콜레라 감염으로 사망한 것으로 발표했다는 내용이다. 비통한 죽음을 소재로 한 그림과 음악을 소개하고 그것을 만든 화가와 작곡가의 마지막 모습을 재현했으며 동성애의 역사와 짧은 상식까지 더했다.

 

이 장에서 사용한 그림은 6점이나 되는데 텍스트의 순서에 부합하는 그림을 맞춤하게 배치했다. <영원의 문> 소묘와 유화, 동성애를 설명하면서 길버트 베이커의 그림 일부, 로트렉의 <침대에서>, 파벨 페도토프의 <비난 받아야 하는 것은 콜레라> 마지막으로 니콜라이 크즈네초프의 <차이코프스키 초상화>이다.

 

본문 내용에서 설명하지 않는 그림은 글씨체와 색상을 바꿔 그 그림에 설명을 붙였다. 보통 다른 책에서는 그림 하단에 본문 내용과 동일한 것을 복붙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나도 그림만 보고 안 읽고 넘겼다가 혹시나 하고 읽어보니 본문에 없는 설명이었다. 그림의 색감이 좋아서 맘에 들었는데 요런 디테일도 좋았다. 깨알 상식이라 할 수 있는 내용도 있었는데 동성애를 나타내는 무지개색은 화가 길버트 베이커에 의해 제안되어 지금까지 상징색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2장부터는 진짜 모르는 화가, 처음 보는 그림들이 많았다. 새로운 화가를 알고 그림을 감상하면서 마치 미니 미술관에서 도슨트의 설명을 듣는 기분이었다. 처음 보는 그림이라 한 번 보고 기억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고흐의 그림을 척 보고 제목까지 알아맞히는 것은 그만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히포크라테스 미술관에 자주자주 들러서 그림을 본다면 처음 보는 그림이 아니라 잘 아는 그림이 될 것이다. 어떨 땐 그림만 감상하고 또 어떨땐 도슨트를 불러내어 다시 설명을 들으면 된다. 이 미술관의 도슨트는 의사라서 더 재미있으니까.

 

이 책에서 그림과 연결한 질병도 다양하다. 자주 언급된 질병은 성병이었는데 위생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문란한 성생활은 성병을 창궐하게 만들었고 숱한 예술가들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그 외 머릿니처럼 질병으로 분류해야 할지 갸웃할 만 한 소재부터 조현병, 외과 수술, 나아가 굿닥터를 소재로 한 그림까지! 저자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고의 확장을 따라 가다보면 세계여행 역사여행을 너머 미의 여행을 하게 된다.

 

저자가 소개하는 인물 중에 반가운 사람이 있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얼굴만 보고 아는 사람이라 생각한 건 그 주인공이 너무 잘생겼기 때문이다. 9월에 나온 줄리언 반스의 책 <빨간 코트를 입은 남자>의 주인공 닥터 포지가 이 사람이다.

 

 

집에서 저 정도의 옷을 입고 저런 자세를 취하다니! 저 오른손은 의사라기보다 모델에 가까워 보인다. 닥터 포지는 19세기 유럽에서 내로라하는 유명인들과는 다 아는 사이였고 그를 흠모하는 여성들도 줄을 서서 대기했다고 한다. 여성편력이 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에게 난소물혹 제거수술을 받으며 가까워진 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그림을 보자니 저 정도는 되어야 닥터 포지 옆에 설 수 있겠다 싶었다.

 

 

닥터 포지는 잘생긴 바람둥이로 유명했지만 자신의 본업에서도 빼어난 실력을 자랑했다. 그는 부인과의 권위자로 통했다. 외과, 부인과에서 유명한 논문을 여러 편 남겼고, 그가 처음 개발한 부인과용 의료기구들은 지금까지 사용될 정도로 탁월하다고 한다. 복부 절개수술에서도 명성이 자자했고, 1889년에는 프랑스 최초로 위소장연결수술을 성공했다. 닥터 포지 같은 사람을 보면 세상 참 불공평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 장 히포크라테스의 방에서는 책 제목 히포크라테스와 속표지로 선택한 인물을 설명하고 있다. 루벤스가 그린 루도비쿠스 논니우스의 초상화로 그는 이슬람 의학의 시대로 불리던 시기에 활약했던 의사였다. 그림 속 그의 방에는 히포크라테스의 흉상과 전집이 있다. 히포크라테스의 전집 가운데 금언집에는 그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문장들이 많은데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그가 남긴 기록이다. 금언집 첫머리에 나오는 아래 긴 문장에서 발췌한 것이다.

 

인생은 짧고, 테크네는 길며, 기회는 순간이고, 경험은 흔들리며, 판단은 어렵다.”

 

저자는 이렇게 해석한다. 여기서 인생은 의술이나 의학에 몸담은 의사나 의학자의 생애다. 지난한 의학의 길에 비해 의사의 삶은 턱없이 짧으니 한 눈 팔지 말고 의료와 학문에 매진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 책은 그동안 유명 그림 다루는 인문학 서적 좀 읽어왔다!고 젠체 하는 사람들에게 꼭 한 번 읽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처음 보는 그림으로 시작해 의학과 음악, 역사, 성경까지 종횡무진 확장되는 저자의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지적 충만함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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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기도 보기 싫기도 하게 만드는 작가라니!! | 기본 카테고리 2020-12-02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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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파국

도노 하루카 저/김지영 역
시월이일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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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갑자기 타인을 위해 기도하고 싶어졌다.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없기를 빌었다. 과로로 몸과 정신이 망가지는 사람이 없기를 빌었다. 치매로 자식의 얼굴과 이름을 잊어버리는 사람이 없기를 빌었다. 모든 수험생이 올봄부터 바라던 학교에 갈 수 있기를 빌었다.

2. 오른쪽 여자는 짧은 반바지를 입고 다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자리 간격이 가까운 걸 핑계 삼아 나는 그 여자에게 일부러 다리를 갖다 대려고 했다.

3. 커다란 토드백을 놔두고 갔기 때문에 나는 남아서 그걸 지키게 되었다. 그녀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에 가방 안을 들여다볼까 생각했지만...

4. 아버지는 여성에게 상냥하게 대하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지키고 싶었다.

 

위는 일본 소설 <파국>에 등장하는 인물의 생각을 열거한 것이다. 각기 다른 사람의 생각일까? 네 가지 모두 한 사람의 생각일까? 2,3번이 한 사람, 1,4번이 같은 사람일 것 같은가?

1~4번 모두 동일인 요스케의 생각이다.

 

주인공 요스케는 대학교 4학년 졸업반이고 공무원을 준비중이다. 대학 럭비부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몸이 좋고 꾸준히 관리하면서 유지하고 있다. 사귀던 여자친구 마이코가 바빠져서 관계가 소원해진 사이 친구의 공연에서 우연히 만난 아카리와 만남이 시작된다.

 

여기까지가 이 소설의 전반부 요약이다. 몹시도 평범한 이야기 같지 않은가? 제목이 파국이니 아무래도 이 평범한 주인공에게 무슨 큰 일이 생길지 기대하게 된다. 나는 그랬다. 제목에 끌렸다. 그런데 중반이 지나도록 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얼마나 어마무시한 일을 일으키려고 이렇게 조용한 걸까? 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그러나 내가 예상했던 파국은 일어나지 않고 소설은 끝난다. 물론 요스케 입장에서 보자면 파국이라 할 만한 결말이었다

 

나는 내가 뭘 잘못 본거지?싶어 다시 읽었다. 작가 소개를 보니 91년생이다. ‘도노 하루카2019년에 데뷔작 <개량>이라는 소설로 56회 문예상을 받았고, 올해 <파국>으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소설 두 작품이 모두 상을 받아 천재 작가로 불리우며 무라카미 류를 잇는 감각적인 소설가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그 소개를 읽으며 오래전 무라카미 류의 소설을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 현실과는 꽤 동떨어진 이야기, 약물에 찌들린 몽환적 분위기, 이해할 수 없는 등장인물의 행동에 불편함을 느껴 그의 소설을 다시 읽지 않았다

 

도노 하루카무라카미 류와 문체가 얼마나 비슷한지 비교할 수는 없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은 읽은 지 너무 오래 되었고, ‘도노 하루카는 이번 소설<파국>으로 처음 만났으니 말이다. 하지만 둘 다 불편하기는 했다. <파국>을 처음 읽었을 때, 주인공이 어떤 파멸의 순간을 맞을지에 포인트를 맞추다 보니 기대감이 불편함을 눌렀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불편함이라는 것도 다시 생각해보니 섹스 장면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스케와 아카리의 정사장면이 꽤 자주 나온다. 그리 아름답게 묘사되는 게 아니라서 대충 읽어 넘겼다. 어떤 소설을 좋아한다고 말할 때 작가의 서술이나 묘사 방식, 문체 때문이라기보다 그것이 내 취향에 부합하느냐 아니냐에 따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것은 실로 놀라운 발견이었다.

 

이 소설 <파국>을 읽고 서평을 써야했기 때문에 발견한 것이다. 아니었다면 한번 읽고, ‘뭐 이래? 극적이지도 않고 감동도 없는 평범한 이야기를 가지고 웬 호들갑?’ 하면서 던져두었을 것이다. 그런데 서평을 쓰기위해 다시 읽었다. 내가 발견하지 못한 게 무엇일까? 두 번째로 읽으며 요스케의 행동과 심리를 좇아가 보았다.

 

요스케의 아버지는 등장하지 않지만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가 여성에게 상냥하게 대하라고 했기 때문에 만나는 여자들에게 잘 대해주고 그녀들이 원하는 대로 들어준다. 그 외에 아버지의 영향력이라고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요스케에게 내면화된 도덕적 규범이다. 학교 경비원에게 공손하게 인사하고, 사회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안 되며,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남이 잘 되길 빌어야 한다 등은 자신의 행동을 제어하는 것이고 규범적 행동이다사회적 규범이 자신을 어떻게 제어하고 있는지 요스케는 자각하지 못한다. 그 억압에서 벗어나는 순간, 즉 자유를 만끽하는 순간은 섹스를 할 때이다. 마이코와의 관계가 뜸해진 사이에 시작된 아카리와의 늪같은 섹스에 요스케는 거침없이 빠져든다. 밤낮없이 이어지는 섹스에 아카리가 요스케의 건강을 걱정할 지경까지 이르고 아카리는 스스로 섹스중독이 아닌지 의심스러워진다.

 

호텔방을 나가지 않고 섹스만 하다가 텔레비전에서 상영되는 좀비물을 같이 보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깨끗한 도로를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리는 여자 좀비 앞에 건장한 남자가 있었다. 요스케가 보기에 그 남자는 충분히 피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여자 좀비는 그 남자의 등 뒤로 달려들어 쓰러뜨린다. 그리고 그의 목젖을 물어뜯는다. 남자는 좀비를 떼어내려 했지만 계속 목을 물어뜯긴다.

 

이 장면은 소설 마지막에 유사하게 재현된다. 요스케가 아카리를 뒤쫓다가 추행범으로 오해를 받고 경찰관에 의해 제압당하는 장면에서다. 쓰러져서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요스케. 그는 오해를 받아 경찰에게 잡히면서 오히려 안정감을 느끼며 이렇게 생각한다. 그들이 내가 말하는 걸 믿어줘서, 그게 기뻤던 거라고 이해했다. 그들에게 맡겨두면 나는 더 이상 쓸데없는 일을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요스케는 자신을 꼼짝 못하게 짓누르고 있는 경찰의 손을 따뜻하게 느끼며 물 속에 잠겨 있는 듯 기분이 좋아 이대로 잠들기로 한다.

 

마지막 장면이 파국이라면 파국일 것이다. 준수한 외모의 법학부 대학생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대로 공무원이 된다면 그저 평범한 이야기였을 텐데, 사귀던 여성과 완전히 끝내지 않고 다른 여성과 맺은 깊은 관계가 파국으로 맞이하게 된다. 여기서 소설을 다큐로 받는 딴지를 걸어보자면 그걸 굳이 파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경찰에 잡힌 후의 이야기를 예상해보자면, 요스케는 추행범이 아니라 여자친구와 다투는 장면이 오해를 받았고, 말리던 남자와 시비가 붙은 거라고, 경찰서에서 가려지지 않을까? 그러면 폭행 정도로 양자 합의하에 풀려날 사안으로 보인다

     

그러나 요스케에게 닥친 이 결말은 파국이었다. 소설 도입부에서 남성 경찰관이 강제추행 혐의로 체포되었다는 뉴스를 보며 요스케는 죗값은 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정교육을 포함 사회화 교육은 그에게 규범적 인간이길 강제한다. 요스케는 겉으로 보기에 사회에 반하는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늘 규범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이런 인간의 보편적 심리를 작가는 요스케라는 인물을 통해 표현했다. 이드의 욕망은 수퍼 에고에 의해 컨트롤 받고 있지만 늘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더 하고 싶고, 그것을 했을 때의 쾌감이 더 크지 않나. 우리는 그런 모순되는 감정을 컨트롤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자라면서 그어진 테두리 안에서 지정된 행동만 하도록 교육받는다. 사회적 제재를 받는 것은 인생 파국이 되므로 금을 넘어가는 행동은 스스로 제어하기에 이른다.

 

평범한 규범적 인간이었던 요스케가 경찰에 잡히는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데 여기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어쩌면 인생이 끝난 것만 같은 상황에서 요스케는 오히려 따뜻한 편안함을 느끼니 말이다. 소설 전편에서 불안하고 찜찜한 기분이었는데 마지막까지 독자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이 작가를 문제적 작가라 칭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이 소설은 독자들의 숨은 욕망을 요스케를 통해 이끌어내면서 양가적 감정 때문에 불편하게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앞으로 도노 하루카가 만들어 낼 세계에 다시 발을 디딜 것인가? 엿보고 싶은 마음과 예측불가의 불쾌감이 동시에 인다. 아직 나오지 않은 소설에 대한 기대 아닌 기대를 품게 하는 것이 이 작가의 매력이 될 듯싶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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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초입에서 시인의 감성을 만나다~ | 기본 카테고리 2020-12-02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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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

김재진 저
김영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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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에 발행된 김재진 시인의 시집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를 가지고 있다. 평생 외로움을 친구라 여기며 살아왔다. 20여 년전에도 혼자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시를 그리 즐겨읽지 않음에도 시집을 샀던 걸 보니 말이다. 20년도 넘은 시집을 오랜만에 펼쳐보니 종이 색이 많이 바랬다. 무심코 펼친 면에 제목이 "너를 만나고 싶다"였고, 쳣 행에 연필로 줄을 그어 놓았다.

' 나를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표제시를 찾아봤다. 많이 펼쳐본 모양이다. 지문의 흔적이 아래쪽에 둥그러니 남아있다.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섭섭함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 보라.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4행에 줄을 그어 놓았다. 그리고 11행에는 네모로 둘러놓았다.

'완전한 반려(伴侶)란 없다.'

 

 

 

 

98년을 톺아보았다. 기억이 희미하다. 아픈 일이 있었거나 외로움에 빠져 있었던 모양이다. 20년 동안 시인은 시와 에세이를 계속 썼고 첼로를 연주했고 그림을 그렸고 지금은 명상센터를 운영하고 있다시인은 쉼없이 무언가를 했는데, 자신을 공감해주는 시라며 밑줄까지 그었던 독자는 20년간 무얼 했나? 생각해본다.

 

... 이렇게 쓰고 보니 너무 나이든 것 같다.

무슨 확인 사살도 아니고...

시작을 이렇게 올드하게 했나 싶어 다 지워버릴까? 하다가, 한 때 김재진 시인의 시를 읽었고 감동 먹었던 독자라는 걸 강조하고픈 마음에 그대로 진행해보기로 했다. 물론 시인은 모를테고 알아도 무슨 소용이랴.

, 신간에세이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의 서평단에 이 시집 사진 찍어 응모해서 당첨되었으니 서두에 화제로 쓸만 했다고 우겨본다.

 

 

 

 

 

신간의 정체성은 산문집이라고 했지만 목차에서 시의 한 소절 같은 문구들을 발견했다. 마음에 드는 제목부터 먼저 읽어보았다. 신기하게도 혼자가 돋을새김으로 내 망막에 꽂혔다. "반짝이는 것은 다 혼자다"를 펼쳤다.

 

p. 22

 

비어있는 공간에 음악이 잘 울리듯 혼자라는 공간 속에서 고독은 저만의 깊이를 갖는다. 아무도 없는 밤을 지새우며 장미는 저 혼자 향기를 품고, 길 위에서 방랑자는 외로움과 맞서는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은 그 모든 것에 반응하지 않고 묵연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외로움 또한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감정에 반응하지 않는 이는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으니 그럴 때의 외로움이야말로 텅 비어 가득한 충만함이다.

 

텅 비어 가득한 충만함이란다. 외로워 울며 밤을 지샐 때는 몰랐다. 비어 있음이 가득참이 된다는 것을. 시나브로 외로움이 늘 옆에 있어주는 친구 같아졌다. 이 상태를 충만함이라 불러도 되겠다. 내 상태를 싯구처럼 표현해 주었으니까. 물론 시인은 모를테고.

 

"삶은 모두 불꽃을 가지고 있다."

 

세상에나! 길고양이에게 한 말이다. 고양이와 선문답이 아닌가. 검은 고양이였지만 털은 빠지고 때가 묻어 병든 게 역력한 고양이에게 시인 자신의 심정을 투사하면서 했던 말이었다. 어머니를 보내고, 낯선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려던 때에 신산했던 자신의 모습과 비슷해 보이는 길고양이를 붙잡고...

 

고양이에게 해 주고 싶었던 말!

"지금 상처받아 고통 속에 있다 해도 삶은 저마다 불꽃을 가지고 있다. 아직 그 순간이 오지 않았거나 설령 그 순간이 지났다 해도 삶이 가지고 있는 불꽃은 결코 사그라들지 않는다."

 

자신에게 하는 말!

"누군가에 의지해 구차한 목숨 이어가지 말고 불꽃처럼 타오르다가 단숨에 꺼져버리는 인생이라면 좋겠다. 복받쳐 오르는 날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흐르는 것은 흐르는 대로 내버려둔 채 아무 일 없다는 듯 무심히 살다가 갔으면 좋겠다."

 

책 제목으로 쓰인 문장은 독자마다 다르게 읽히겠지만, 시인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자!

늦기 전에!

늦더라도 꼭 하자

 

제목과 같은 꼭지의 내용은 3년 전 소천하신 어머니의 이야기였다.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해본 적 없었던 모자지간이었다. 사랑한다는 그 한 마디를 하지 못해 오래 후회했다는 시인은 독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p. 69

사람이 떠난 자리엔 후회만 남는 법, 아끼지 않아도 되는 말을 아꼈다는 자책으로 나는 어둠 속에 탄식 하나 토해놓는다.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 언제라도 사랑한다는 말은 늦지가 않다.

 

이 책은 산문집이라고 하지만 한편 한편이 산문시 같았다. 나는, 아포리즘 같은 문장을 발견하면 성우인양 소리 내어 낭송해보고, 시인이 맘을 드러내면 내 맘과 꼭 같다며 손뼉을 치다가, ! 선배님! 하며 거수를 붙이기도 했다. 시인의 문장으로 모노드라마 한 편 찍었다. 관객은 없다. 혼자 연기하고 혼자 감탄하고 혼자 박수친다. 이것이 충만함?ㅎㅎ

 

 

 

이상하게도 영화 만추에서 현빈의 펄럭이던 코트자락이 떠올랐다. 이 책과 이 계절이 어울린다는 생각에 리뷰가 감정과잉이 되어버렸다. 살짝 부끄럽지만 이제 끝내야하는 이 마당에 다시 쓸 순 없다...

 

김재진 시인을 몰라도, 베스트셀러 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를 들어본 적 없는 독자라도, 이번 책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를 읽으면 시인의 감성이 깃든 따뜻한 위로와 사랑을 받게 될 것이다.

나는 길고양이를 대하는 시인에게 홀딱 넘어갔다. 물론 시인은 모를테지만!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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