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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연재] 6화 | 읽을거리 2014-06-2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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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눈밭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따뜻한 개울물에서 올라오는 김이 꽃나무 사이로 안개처럼 퍼진다. 어디선가 꾀꼬리가 우는 듯하다.

이신은 멍하니 병풍 속의 그림을 바라보았다. 선화가 그린 것이 분명했다.

“당신 아내는 살아 있어. 내가 당신 아내를 발견해 조선으로 돌려보냈어.”

정이가 양귀비를 피우면서 그렇게 말했을 때 이신은 믿지 않았다. 양귀비 이파리를 물 때마다 종종 이상한 말들을 쏟아내는 그녀가 헛소리를 하는 것이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김흥진의 집에서 선화의 그림을 발견했을 때 정이의 말이 사실임을 알았다. 그날부터 이신은 아내 선화와 딸 난이를 찾기 위해 온갖 짓을 했다. 여동생과 그녀의 딸을 찾는다는 방榜을 장안에 빈틈없이 붙였고, 거액의 포상금까지 걸어두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형조에서도 따로 인력을 파견해 모녀를 찾아나서게 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소득이 없었다. 굳이 여동생이라고 한 것은 아내라고 했다가는 칙사의 처자식을 찾아드려야 한다고 조정신료들이 호들갑을 떨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대역죄로 숨어 사는 아내가 몰이꾼에게 쫓기는 짐승처럼 놀라 달아나버릴 수도 있었다. 아내는, 이신이 칙사가 되어 다시 조선에 돌아와 자신을 찾을 것이라고는 꿈에서도 생각 못할 터였다. 오히려 자신을 잡아들일 음모라고 여길지 모른다. 설사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아내는 조용히 자신을 찾아주길 원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녀는 어디 깊은 산속에 숨어 사는지 나타나지 않았다. 모녀를 봤다는 신고가 적지 않았지만 포상금을 탐낸 것일 뿐 사실인 적은 없었다.

지난 새벽, 안개 속에서 본 여자는 정말 선화일까. 이신은 자신이 없었다. 안개 때문에, 불면 때문에, 혹은 악몽 때문에 헛것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언제 집으로 돌아와 다시 잠이 든 것인지 그것도 분명하지 않았다. 새벽에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황제의 칼을 품고 김흥진의 집으로 날아든 것도 꿈이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그와 마주친 자객들은 현실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방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희미하게 귓가를 맴돌았다. 하지만 그 소리도 실제인지, 환청인지 알 수 없었다.

“나리, 나리…….”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는 혼몽한 상태에서 돌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신은 부스스 일어나 방 안 여기저기에 흔들리는 시선을 던졌다. 딸의 꽃신을 만들던 작업판이 보였다. 엊저녁에 잠이 오지 않아 등잔을 밝히고 잡은 딸아이의 꽃신과 송곳이었다. 고래 기름을 먹인 심지가 지직거리는 소리를 듣다가 그만 송곳에 손가락을 찔렸던가. 이제 그는 노련한 갖바치가 아니었다.

“나리, 내금위장 김창렬 대감이 다녀갔사옵니다. 나리께서 일어나시면 등청하시라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상감마마께서 칙사나리를 뵙고 싶어 하신다 합니다요.”

문을 열어보지 않고도 돌이는 주인이 잠자리에서 일어난 것을 알았다. 눈치가 보통이 아닌 놈이었다.

“날 깨우지 않고. 어명인데…….”

“나리께서 주무신다고 하였더니…….”

돌이의 뒷말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이신은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잠시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겨우 몸을 추슬러 의관을 갖추며 무슨 일로 임금이 자신을 찾는지 궁금했다. 그는 임금 앞에서는 칙사가 아니라 임금의 안전을 책임지는 내금위장이었다.

내금위장직을 맡아달라고 한 임금의 제의는 뜻밖이지만 그것은 일종의 명예직이었으므로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임금은 종종 칙사를 불러 황제가 자신을 입조시킬 의사가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때마다 이신은, 황제는 불필요한 일을 하지 않는다고만 대답했고, 임금은 그 대답이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어떻게든 이신을 구워삶아 입조 계획을 없애고 싶은 것이었다. 임금은 이신을 가까이 두고 싶다면서 조선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자신의 경호를 담당하는 내금위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이신은 내금위장이라는 직위가 마음에 들었다. 아버지 역시 오랫동안 광해 임금의 내금위장이었고, 돌아가실 때도 그의 내금위장이었다.

의관을 갖추고 방을 나서는 그의 눈에 또다시 딸아이의 꽃신이 들어왔다. 꽃신은 제법 모양을 갖추어가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아내의 당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선화를 찾으면 당혜부터 신겨주리라, 이신은 늘 생각했다.

“나리,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괜찮다.”

돌이는 주인이 준 가죽신을 신고 있었다. 아내의 당혜를 만들기 전 손을 풀 요량으로 돌이의 신발을 만들어 내밀었다. 돌이는 노비가 가죽신을 신을 수 없다고 사양했다. 이에 이신은 그런 말을 하는 자가 있으면 자신에게 끌고오라고 일렀다. 그후로 돌이는 언제나 가죽신을 신고 신나게 돌아다녔다. 이신이 밖으로 나오자 돌이는 서둘러 해명했다.

“소인은 나리를 깨우려 하였으나 내금위장께서 칙사님이 피곤하실 터이니 일어나면 말씀만 전하라 하시고 떠났습니다요.”

“피곤하실 터…….”

“예,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순간 이신의 머릿속에는 내금위장 김창렬이 새벽녘 자신이 김흥진의 집에서 자객들과 맞붙었던 것을 아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스쳤다. 그러나 공연한 생각이리라. 기나긴 불면으로 그의 신경이 과민해진 것이다.

칙사의 악질적인 불면은 이제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가 되었다. 새벽잠을 설치게 한다는 이유로 인근의 마을에서는 닭과 개를 키우지 못했다. 동네를 배회하는 개들은 돌이가 모두 잡아 죽였다. 심지어 포도청의 나졸을 동원해 인근의 까치집까지 모두 헐어버렸으니 김창렬도 칙사의 까다로운 잠버릇에 대해 들었을 것이다. 돈을 쳐주었음에도 개를 잃은 양반집에서 칙사에 대한 원성이 있었던 모양이지만 직접 찾아와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혹시 최 참의는 다녀가지 않았느냐?”

“참의 어른은 오시지 않았습니다요.”

이신은 최현수를 통해 대궐의 소식을 들었다. 내금위장이라 하나 이신은 매일 등청하는 관리가 아니었다. 그러니 조정에 무슨 변고가 생겼다면 분명히 최현수가 먼저 다녀갔을 것이다. 최현수는 조정에서 명나라가 아니라 청나라와 교역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보기 드문 실용주의자다. 그는 어린 나이에 등과해 광해군 때부터 방북 외교에만 전념해온 전문가였으나 명나라에 대한 충성을 대외 정책의 전부로 아는 반정 세력들 때문에 요직을 맡지 못했다. 이신은 최현수의 실용주의를 높이 사 그에게 참판이나 판서 자리를 추천해주겠다고 했다. 마음만 먹으면 간단한 일이었다. 임금에게 부탁할 것도 없이 정승들에게 눈치만 보이면 그들이 지체 없이 처리해줄 터이다. 그런데도 최현수는 한사코 사양했고, 이신은 하는 수 없이 최현수 모르게 그를 정랑에서 당상관인 참의 자리에 앉혔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이신이 최현수를 조정에 숨겨두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가당치 않은 말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이신이었지만 최현수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돌이야, 이리 다가오너라.”

이신은 하인을 가까이 불렀다.

“지금 당장 형조로 달려가 포졸을 데리고 김흥진 대감의 집 근처로 가거라. 주변을 샅샅이 뒤져야 한다. 그 근처에 내 여동생이 살고 있어.”

“예?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신은 대답 없이 돌이를 바라만 보았다. 돌이는 자신의 질문이 무례라는 것을 금세 깨닫고는 머리를 조아렸다.

“냉큼 달려가겠습니다요.”

형조에는 이신의 여동생을 찾는 업무만 전담하는 관리가 있어, 이신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왔고 병력을 동원할 수 있었다. 돌이는 쌩하니 마당을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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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강희진 저
비채 | 2014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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