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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의 세계와 새로운 극예술의 전개 - 부조리극의 탄생 | 문학 칼럼 2021-01-18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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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13, 프랑스 파리의 바빌론 극장에서 사무엘 베케트(1906~1989)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가 초연되었다. 이 연극은 여러모로 독특했다. 무대 장치는 앙상한 나무 한 그루뿐이고 등장인물도 극소수다. 1막이 열리면 에스트라공이 발이 부어 빠지지 않는 신을 벗으려고 애쓰는 장면이 나타난다. 곧 한쪽 다리를 절며 두 다리를 벌리고 걷는 늙은 사내 블라디미르가 나타난다. 두 사람은 함께 앉아서 고도라는 사람을 기다린다. 그런데 기다리는 고도는 오지 않고, 기다리지도 않는 포조러키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함께 떠들썩하게 대화를 나누다가 포조와 러키는 떠난다. 그리고 고도가 보낸 소년이 나타나 고도가 오늘이 아니라 내일 온다고 말하고 퇴장한다. 정적 속에서 해가 지고 달이 뜬다. 이런 흐름은 2막에서 그대로 반복된다.

 

 무대 위에서 낮이 지나고 밤이 깊어도 고도는 나타나지 않는다. 기다리는 내내 두 사람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눌 뿐이다. 비평가들은 두 사람의 대화를 유심히 경청하면서 의미와 복선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두 사람은 무의미한 대화만을 반복했고 두 시간이 넘도록 그런 대화만 오가다가 연극은 막을 내린다. 이 연극에는 기승전결로 구성되는 흐름이 존재하지 않고 등장인물의 의중이나 의지조차 드러나지 않았다. 이 생소한 연극은 다음날부터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졌다. 이 전위적인 연극은 1960년대 초반까지 유럽과 미국에서 크게 유행했다. 영국 비평가 마틴 에슬린은 사무엘 베케트, 외젠 이오네스코, 헤롤드 핀터, 에드워드 엘비 등의 작가들이 창작한 텍스트들을 부조리극이라고 명명했다.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의 한 장면.  필자 제공

 부조리극에는 유기적인 플롯이나 줄거리가 없고, 발단-전개-절정의 과정이 없는 직선적인 구조나 시작과 끝이 비슷한 반복적인 순환구조를 지닌다. 원칙과 규범이 작동하지 않는 고립된 시공간 속에서 선택이나 판단의 기준을 잃어버린 인간의 상황 자체가 주제로 제시된다. 등장인물들의 언어는 분절되고 무의미하게 반복된다. 플롯과 성격묘사, 무대장치 등을 과감히 제거한 부조리극은 극적인 흥미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정의하면서 카타르시스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무대 위 주인공의 비극적인 운명을 지켜보는 관객들의 내면에 두려움과 연민의 감정이 생성되고 그 과정에서 인간적인 정념이 순화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쉽게 감정을 이입하면서 울거나 웃는 건 그 안의 이야기에 몰입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허구와 현실의 경계는 잠시 허물어진다. 허구임을 알면서도 사람들이 극예술을 즐기는 이유다. 하지만 부조리극은 관객의 몰입을 거부하고 심지어 방해한다. 그러면서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상황자체를 보여준다. 그것은 바위를 지고 산을 오르내리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시지프의 운명과 흡사하다. 이런 상황은 관객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만 같다. 바로 당신의 삶과 닮지 않았냐고.

 

1950년대부터 시작된 부조리극은 20세기에 연달아 발발했던 두 차례 세계대전의 영향을 받았다. 1차 세계대전 때 인간이 발전시킨 과학기술이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것을 목도한 유럽인들은 깊은 허무주의에 잠식되었다. 그 결과 1920년대에는 합리성과 사회체제를 부정하는 경향의 예술작품들이 유행하였다. ‘다다이즘이라고 불린 이 시기의 예술운동에도 사람들을 달라지지 않았다. 경제대공황을 겪은 후 인류는 더 큰 전쟁을 벌였다. 기존의 상상을 뛰어넘는 위력을 지닌 원자폭탄이 등장했고, 인종말살 정책이 실제로 자행된 제2차 세계대전은 엄청난 공포를 불러왔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마자 세계는 미국과 소련을 기점으로 분열되었고, 핵무기 경쟁이 벌어졌다. 누군가의 오판 하나로도 인류는 멸망에 이를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했지만 군비경쟁은 계속되었다. 1950년에 벌어진 한국전쟁은 지엽적인 충돌이 세계대전으로 확전될 수 있음을 암시한 사건이었다. 상업화된 극예술은 현실을 포장하고 기만했고 사람들은 예술을 소비하면서 현실과 망각했다. 극작가들은 언제 멸망할지 모르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 존재의 무의미와 공포를 응시했다. 그리고 그들은 형식이 파괴된 혼돈의 연극을 창작했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 사뮈엘 베케트.  필자 제공

 부조리극 작가들이 응시한 세계는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인류는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세계를 파괴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제 망할지 모르는 세계에서 자신의 욕망을 얽매여 일희일비하는 인간들은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의 페르소나들이다. 과학기술의 발달한 만큼 인류는 편리함을 누렸지만, 기계에 종속되고, 환경을 급속하게 파괴시켰다. 기후변화와 같은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가장 책임 있는 국가들이 제일 먼저 외면한다.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인간은 파괴와 차별을 멈추지 않는다.

 

 이 부조리한 세계에서 불안은 계속 가중된다. 프랑스 작가 까뮈는 자신의 철학에세이 시지프의 신화에서 인간의 윤리를 얘기하면서 무의미한 반복을 거듭하는 운명의 상징인 시지프의 행위를 새롭게 해석한다. 두 번째 바위를 굴리는 시지프는 처음 바위를 굴리는 시지프와 다른 존재라고.  이것은 부조리한 세계에 던져진 인간의 운명와도 같다. 어리석은 인간은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 그럼에도 이 세계를 살아가는 자들은 끊임없이 차이의미를 찾아내야만 한다. 이 노력을 멈출 때 인간의 삶은 쉽게 허무에 침윤된다. 그토록 지루하고 무의미한 대화를 반복하면서도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들은 살아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고도를 기다리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람과 말하고 또 말하는 것뿐이다. 아무 의미 없는 잡담에 불과하더라도 말이다. 코로나19 시대의 풍경들은 부조리극과 닮지 않았는가. 강요된 단절 속에서 소통을 염원하고, 무심했던 타인과 자신의 삶이 얼마나 긴밀히 얽혀 있는가를 깨닫는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과 멀어지면서 우리는 지루하게 반복했던 일상을 그리워한다. 일상을 되찾게 되면 다시 권태를 느낄지도 모른다. 이 아이러니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느냐에 따라 코로나 이후의 세계는 달라질 것이다. 에스트라공은 무심히 말한다. “우린 늘 이렇게 뭔가를 찾아내는 거야. 그래서 살아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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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기억과 일본 전후 세대의 무의식 -전후 일본과 디스토피아적 상상력 | 문학 칼럼 2021-01-17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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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됐고 결과는 끔찍했다. 두 도시를 합쳐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숨졌고, 수십 년간 진행된 방사능 피폭까지 합치면 그 피해는 측정이 불가능했다. 실제 원자폭탄이 투하된 현장에 있었던 일본 작가 이부세 마스지가 쓴 『검은 비』는 1945년 8월 6일부터 15일까지 생존자의 일기 형식으로 구성된 소설이다. 이 소설은 원자폭탄의 버섯구름 아래 펼쳐진 지옥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원자폭탄이 투하되자 일왕은 다급하게 항복을 선언했고, 일본은 미국에 점령당했다. 미군들은 태평양의 전투에서 겪은 일본군의 저항을 떠올리고 긴장했으나, 막상 일본에 상륙하자 정반대의 풍경이 펼쳐졌다. 결사항전을 펼칠 줄 알았던 일본인들은 지극히 순종적이었고, 특히 어린이와 여자들은 미군들에게 살갑게 대했다. 일본인들은 미군에게 협조했고, 냉전이 시작되자 미국의 동맹이 되는 것을 기꺼이 수락했다. 일본인들의 돌변에 미국은 당황했고 이것은 시카고대학 심리학과 교수 루스 베네딕트가 일본인들의 정신 구조를 탐구한 저서 『국화와 칼』(1946)를 집필한 계기가 됐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미군의 후방기지가 된 일본은 엄청난 경제특수를 누렸다. 이 시기에 유입된 달러는 일본이 전쟁 피해를 복구하는 발판이 됐다.

 

미국의 루스 베네딕트 교수가 일본인들의 정신 구조를 탐구한 『국화와 칼』.

 이런 정치적 변화와 함께 전후 일본 사회는 큰 진통을 겪었다. 전쟁을 유년기에 겪은 젊은 세대들은 전후 도입된 미국식 교육을 받고 성장해 ‘천황’체제에 세뇌되지 않았다. 희미하게나마 전쟁을 기억하는 그들은 한국과 베트남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부를 축적하고 과거 전쟁의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 정부에 비판적이었다. 더구나 전후 베이비붐으로 태어난 ‘단카이 세대’(1940~1950년대에 태어난 세대)가 대학에 진학하자 일본 사회의 분열은 점차 확연해졌다. 1960년대 일본의 고도 성장기에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은 1960년 미일안전보장조약의 개정에 반대하는 이른바 ‘안보투쟁’을 계기로 치열한 학생운동을 벌였다. 1960~1970년대 일본 사회는 반미·반핵·평화를 외치는 젊은 세대의 저항으로 들끓었다. 청년들은 대학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일본 정부와 맞섰다.



 그들의 저항은 좌절됐다. 그들이 성장기에 혜택을 입었던 고도 경제성장은 바로 자신들이 반대하던 미국의 달러에서 비롯한 것이었고, 일본 정부는 학생운동을 가혹하게 진압했다. 그토록 반정부적이었던 대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당시 급성장을 거듭하던 일본의 대기업에 편입됐고 물질적 풍요는 그들의 비판의식을 조금씩 희석시켰다. 그들의 세대는 급속하게 보수적으로 변해갔다. 1968년 세계를 휩쓴 진보운동의 바람이 일본 사회에도 몰아쳤지만, 일본의 전후세대는 일본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했다. 일본은 유럽과는 달리 섬나라인 데다 서유럽처럼 오랫동안 축적된 시민의식이 부재했다. ‘천황’체제와 군국주의는 한 세기 가까이 일본인의 의식을 마비시켰다.


 그러나 경제적 풍요도 전쟁의 기억을 일본인들의 뇌리에서 지우지는 못했다. 역사(기억)를 부정하면서 경제적 번영을 구가했지만, 기억과 현실의 괴리는 일본 대중문화를 통해 고스란히 반영됐다. 전후부터 지금까지 일본의 영화와 애니메이션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세계관은 ‘절멸 이후의 세계’다. 학생운동과 변혁운동의 실패로 일본의 젊은 세대는 너무 일찍 기성세대에 편입돼 버렸다는 자괴감에 시달렸다.

 

 현실의 견고한 벽에 좌절한 그들은 ‘환상’으로 도피했다. 그들의 환상은 화려하지만 우울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지금도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에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거론되는 마쓰모토 레이지의 ‘은하철도 999’, 데즈카 오사무의 ‘철완 아톰’,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 미야자키 하야오의 ‘미래소년 코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의 저변에 깔린 것은 ‘절멸의 공포’, 즉 디스토피아의 상상력이다. 이 작품들은 모두 인간이 생존이 위협받는 미래 사회를 다루고 있다.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스틸 컷. 사진=스튜디오 지브리

일본의 대표적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도 전쟁과 전후 세대의 방황이 짙게 배어 있다. 대표작 『상실의 시대』에는 1960년대 일본 대학의 우울한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태엽 감는 새』의 주인공은 꿈속에서 거듭 전쟁터의 풍경을 불러온다. 『1Q84』도 마찬가지다. 이 소설에는 ‘두 개의 세계’가 등장하고 주인공은 계속 두 세계를 오간다. 두 세계의 문학적 알레고리는 ‘기억’과 ‘현실’이다.


다른 작가 무라카미 류의 대표작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에도 자학하는 청년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미군 기지촌을 배경으로 ‘병든 선진 문화’에 물들어 환각 파티와 엽색 행각을 벌인다. 외면할수록 자신을 옭아매는 현실에 맞서 청년들은 기어이 자신을 망가뜨린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근래 『기사단장 죽이기』(2017)를 발표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최근 한 에세이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중국에 파병된 일본군이었으며 아버지의 부대가 민간인 학살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고백하면서 이렇게 적었다. “아무리 불쾌하고 눈을 돌리고 싶은 것이 있다 해도 사람은 이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역사라는 것의 의미는 없다.” 하루키는 올해 72세다. 이 고백에 이르기까지 그에게는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전쟁의 비극을 가르치지 않고, 전쟁의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의 현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2017년 펴낸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

 동의할 수 없는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가능한 저항의 방식은 바로 ‘상상’일 것이다. 그 상상이 다양한 텍스트를 만든다. 전후 세대 일본 작가들은 폐허에서 절멸의 세계를 예감하면서 지금-여기의 의미를 다시 물었다. 그러나 그들의 물음은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그 물음에 응답할 의무가 있다. 여기서 젊다는 것은 특정한 연령대나 특정 세대를 의미하지 않는다. 젊음은 숫자가 아니라 질문을 놓지 않는 ‘상태’일 것이다. 1960~1970년대에 대학생이었던 일본 작가들이 근래의 작가들보다 더 젊게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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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첸, 러시아 현대사의 역린: 푸틴과 안나 폴릿콥스카야 | 상처와 풍경 2021-01-16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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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더러운 전쟁

안나 폴릿콥스카야 저/주형일 역
이후 | 2013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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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냉전이 종식되고 소비에트연합의 공화국들은 차례로 독립을 선언했다. 연방의 맹주였던 러시아는 냉전 이후 소비에트연방을 유지할 힘을 상실했다. 그나마 구(舊)소련의 국토와 실권을 대부분 계승했지만, 러시아의 국가적 위신은 크게 손상됐다. 이때 ‘연방공화국’이 아닌 ‘자치공화국’ 체첸도 독립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미 소비에트연합의 해체를 겪은 러시아는 자치공화국까지 독립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었다. 체첸 지역은 카스피해에서 생산되는 원유의 송유관이 지나는 요충지였다. 더구나 다민족 국가인 러시아에서 체첸이 독립한다면 21개에 이르는 자치공화국들이 동요할 것은 자명했다.

러시아는 1994년 12월 무력 개입을 선택했다. 제1차 체첸전쟁의 시작이었다. 압도적인 군사력을 지닌 러시아군은 신속하게 진군해 체첸 수도 그로즈니에 이르렀다. 그러나 체첸군은 그로즈니에서 시가전을 전개해 러시아군 기갑부대를 패퇴시켰다. 뜻밖의 피해를 입은 러시아군은 무차별 폭격을 가하면서 여러 마을에서 약탈·강간·학살을 자행했다. 체첸군은 게릴라 전술로 끈질기게 맞섰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 희생만 70만 명에 달했고, 러시아군 역시 5000명 이상이 전사했다. 1996년 4월 체첸 독립 지도자 두다예프가 사망했지만, 전쟁은 계속됐다. 전쟁이 장기화하자 러시아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의 악몽을 상기하는 여론이 높아졌고, 전쟁의 참상이 알려지면서 국제적인 비판에 직면했다. 결국 러시아군의 철수와 5년 후 자치권 문제를 국민투표로 결정하는 것을 합의한 ‘하사뷰르트 협정’으로 전쟁은 멈췄다.

이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체첸 전역에서 이슬람 근본주의를 내세운 ‘와하비트’ 운동이 일어났고, 체첸 정부는 무력하기만 했다. 1999년 8월 와하비트 운동 지도자 샤밀 바사예프가 이끄는 반군들은 이웃 다게스탄 공화국의 마을 세 곳을 점령하고, 이곳을 발판으로 체첸과 다게스탄을 합친 이슬람 공화국을 만들고자 했다. 체첸 반군은 전선을 러시아 국토로 확장했다. 그들은 1999년 9월 러시아 모스크바와 볼고돈스크의 아파트, 쇼핑몰에 테러를 감행했고, 러시아군은 체첸에 영구주둔을 선언했다. 체첸 반군은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러시아군도 완강했다. 새로 권력을 잡은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전임자인 옐친과는 달리 강경책을 고수했다.
 

모스크바 국립극장 인질극을 벌인 체첸 반군들.  연합뉴스

 2002년 체첸 반군은 전세를 전환하고자 모스크바 국립극장을 점령하고 1000여 명을 인질로 붙잡았다. 그러나 푸틴은 러시아 수도에서 대규모 인질극을 벌이면서 시간을 벌고 협상을 이끌어 내려던 체첸 반군에 맞서 인질 129명을 희생시키는 정면 진압을 선택했다. 푸틴의 강경책에 세계가 경악했지만 연방 해체와 경제위기, 체첸전쟁으로 의기소침했던 러시아 국민은 열광했다.

진압작전으로 정치적 위기에 몰릴 것이라는 서방의 예측과는 달리 푸틴의 지지율은 80%를 넘어섰다. 2004년 푸틴은 압도적인 지지로 재선됐다. 푸틴의 강경책은 러시아인들의 자긍심을 일깨웠고 치솟은 석유 가격은 카스피해에 유전을 가진 러시아의 경제를 견인하는 요인이 됐다. 러시아군이 체첸의 송유관 통과 지역을 강력히 틀어쥐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2009년 체첸전쟁은 공식적으로 종료됐다. 체첸전쟁은 다른 공화국들의 분리 요구에 쐐기를 박은 사건이자 푸틴 장기 집권의 디딤돌이 됐다.

그러나 이 평가에서 전쟁의 비극은 누락됐다. 러시아 신문 ‘노바야 가제타’의 탐사기자인 안나 폴릿콥스카야는 체첸에 잠입해 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낱낱이 기록하면서 러시아 정부가 자행한 언론탄압을 고발했다. 그녀는 ‘러시아 일기’ ‘더러운 전쟁’ 등의 르포를 통해 민간인 학살을 비롯한 러시아군의 만행을 기록했다. 또 체첸 반군의 테러 현장을 취재하면서 러시아군의 강경 진압으로 희생된 인질의 가족을 인터뷰하는 등 러시아 정부의 인권 침해와 정책 실패를 고발했다. 안나의 르포 기사로 러시아 정부는 여러 차례 궁지에 몰렸다.

 안나는 끊임없이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2001년 체첸에서 안나는 러시아군에 억류됐고, 2004년에는 독극물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취재를 멈추지 않았다. 체첸 전쟁에서 자행된 러시아군 범죄를 추가로 폭로하려고 준비하던 안나는 2006년 10월 7일 자신의 아파트에서 살해됐다. 국제사회는 러시아 정부가 암살의 배후라고 지목했지만, 러시아 정부는 침묵했다. 2011년 러시아는 체첸 반군 지도자 중 한 명인 루스탐 마흐무도프를 살해 용의자로 검거했고, 암살 연루를 현재까지 부정하고 있다. 2008년 유럽의회는 브리핑실을 ‘안나 폴릿콥스카야 룸’으로 명명했고, 분쟁 지역의 여성활동가에게 주는 상에도 그녀의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안나 폴릿콥스카야상’을 처음으로 수상한 나탈리아 에스테미로바 역시 2009년 살해됐다. 다시 러시아 정부가 배후로 지목됐지만, 진실은 괄호로 남았다. 푸틴의 집권은 계속됐고, 체첸의 비극은 그루지야(2006)와 우크라이나(2014)에서 반복됐다.

 

안나 폴릿콥스카야를 추모하는 시민.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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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찾은 씨앗은 인류의 희망이었다 | 창 밖에는 태양이 빛났다(내 인생의 책) 2021-01-16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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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게리 폴 나브한 저/강경이 역
아카이브(Archive)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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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식물학자의 비극적인 삶. 코로나 시대에 그의 정신은 더욱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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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독일군이 옛 소련 레닌그라드로 접근하자 스탈린은 에르미타시 박물관에 소장된 200만 점의 미술품들을 후방으로 옮기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독일군이 노린 것은 에르미타시 박물관이 아니라 다른 박물관이었다. 바로 종자연구소였다. 종자연구소에는 러시아의 세계적인 식물학자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바빌로프(1887~1943)가 1894년부터 수집한 38만 개가 넘는 발아 가능한 씨앗과 뿌리, 열매가 보관돼 있었다. 소련을 점령해 게르만족의 ‘레벤스라움(Lebensraum·생활권)’을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던 히틀러는 유전학에 관심이 많았다. 게르만족의 생활권을 유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식량을 비롯한 생태 자료였다. 레닌그라드는 900일의 포위에도 항전을 포기하지 않았고 종자연구소도 보존됐다.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바빌로프가 유전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시기였다. 당시 러시아 북부 농지에 퍼진 ‘흰가루병’으로 농작물 작황이 크게 나빠졌고 전선의 병사들도 굶주리게 됐다. 엄청난 사상자 발생과 식량 부족으로 러시아 국민의 민심은 극도로 악화했고, 이것은 1917년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페트롭스키 농업학교에 재학 중이던 바빌로프는 흰가루병에 강한 밀 종자를 찾는 데 성공했고 서른 살의 나이에 농업학교 교수로 임용됐다.

바빌로프의 삶과 연구를 다룬 저서『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게리 폴 나브한, 강경이 옮김, 아카이브, 2010

 바빌로프는 1920년대부터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각 지역의 풍토에 적응한 식물들의 씨앗을 수집했다. 그는 파미르 고원, 남미의 열대우림, 사막과 고원지대까지 샅샅이 조사하면서 각 지역에서 자라는 생물들과 음식 문화를 조사했다. 그의 발길은 1920년대에 식민지 조선까지 닿았다. 바빌로프의 자료에는 한국의 인삼과 콩에 관한 언급도 담겨 있다. 또한 수분이 없는 모래언덕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호피족과 나바호족, 변화하는 기후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려고 여러 작물을 돌려 심는 농부들의 지혜를 과학적인 자료로 남겼다. 종자연구소를 세운 바빌로프는 천재지변이나 큰 전쟁 이후에도 살아남으려면 식량의 안정적 확보가 최우선이라는 생각을 지녔다. 세계의 과학자들과 지식을 공유해 미래의 식량 위기에 대비할 ‘세계종자연구소’를 세우는 것이 바빌로프의 원대한 꿈이었다.

그러나 스탈린이 집권하자 모든 것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스탈린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형질이 유전된다는 생물학의 기본지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귀족의 자녀가 부모의 계급을 그대로 물려받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스탈린의 이런 기질에 정확히 맞는 생물학자가 등장했다. 트로핌 리센코(1898~1976)였다. 리센코는 어떤 종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자라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라마르크적인 ‘획득형질 유전’을 주장했다. 이런 ‘리센코주의’에 스탈린은 관심을 보였다.

 바빌로프는 유전학에서 환경적 요인이 중요하다고 인정하면서도 리센코의 주장이 실제 종자연구에 적용되려면 훨씬 더 많은 자료와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요한 것은 리센코의 주장은 ‘과학’이 아니라 ‘계급의식’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스탈린의 총애를 받은 리센코가 학계를 장악하자 바빌로프는 1937년 모스크바에서 국제유전학회를 열어 리센코주의의 오류를 입증하고자 했다. 그렇지만 학문적인 논쟁과 자료의 과학적인 검토조차 반역 행위로 받아들인 스탈린은 학회를 취소해 버리고 바빌로프를 체포했다. 자료 수집을 핑계로 해외에서 스파이 행위를 했다는 죄목이었다.

 당시 소련에서는 농촌 지역의 식량을 징발해 도시 노동자에게 공급하는 과정에서 식량 부족이 만성화됐고 리센코의 학문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스탈린은 리센코를 옹호했고 바빌로프와 동료들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체포된 바빌로프는 400여 회에 이르는 심문을 받고 사형 선고를 받았다. 기록 조작과 혹독한 고문이 자행됐지만, 바빌로프는 자신의 과학적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국제사회의 비판이 높아지자 부담을 느낀 스탈린은 바빌로프의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바빌로프를 사라토프 지역의 감옥에 가뒀다. 그곳에 갇힌 바빌로프는 전쟁 중인 1943년 굶주림으로 사망했다. 인류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려던 과학자가 굶어 죽은, 스탈린 시대가 낳은 잔혹한 아이러니였다.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바빌로프                              출처=위키피디아

 바빌로프의 동료들도 포위된 레닌그라드에서 종자연구소를 지키면서 다수가 사망했다. 반면 리센코는 자신의 학문적 승리를 선언하면서 승승장구했고 소련의 과학계에서는 바빌로프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조차 금지됐다. 미국의 진화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는 바빌로프의 사망을 애도하면서 ‘과학역사 최악의 사기극’이라고 언급했다. 스탈린이 사망한 후 정치적으로 복권되면서 바빌로프의 업적은 다시 빛을 보게 됐다. 바빌로프의 연구소는 ‘N. I 바빌로프 식물산업연구소’라는 이름으로 개칭됐다. 1987년에는 그의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도 열렸다.

바빌로프의 연구에 담긴 진정한 의미는 바로 ‘다양성의 가치 존중’이다. 다양성이 소멸한 세계는 작은 타격으로도 큰 위기를 겪게 된다. 이것은 식물과 동물만이 아니라 인간에게도 적용되는 진리다. 오늘날 기업들은 더 많은 수익을 내려고 다양성을 무시하면서 유전자 변형 곡물을 팔고 있다. 또한 잦은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 가격 폭등으로 인류의 미래는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위기도 개발논리로 다양성을 무시하면서 숲을 파괴한 결과이지 않은가? 지금도 바빌로프의 연구를 이어받은 학자들은 전 세계 식물의 유전적 다양성을 지키고 있다. 2008년 노르웨이에 들어선 스발바르 국제 종자 저장고가 대표적 사례로, 전 세계 모든 재래식물의 종자가 영하 18도 상태에서 보존된 ‘현대판 노아의 방주’로 꼽힌다. ‘코로나 시대’인 2020년, ‘유엔세계식량계획’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교역의 감소와 낙후된 지역의 식량 위기로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노벨위원회는 선정 이유로 “국제적 연대와 다자간 협력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것은 인류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바빌로프의 연구 정신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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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풍경과 살아남은 자의 윤리 | 기묘한 울림 2021-01-16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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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해변에서

네빌 슈트 저/정탄 역
황금가지 | 201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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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 낙진 확산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신으로 바꿔서 읽었다. 징후의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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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27일을 기준으로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8000만 명을 넘었다. 존스홉킨스대의 코로나19 통계를 보면, 확진자 수는 8033만 명, 사망자는 175만 명이다. 이날 기준 세계인구는 78억3487만 명으로 추산돼, 세계인구의 1.02%가 코로나19에 걸린 셈이다. 1000만 명 증가하는 데 걸린 기간이 초반에는 30~40일이었으나, 확진자 수가 5000만 명을 넘은 뒤로는 보름 정도만 걸렸다. 가공할 팬데믹이 전개된 2020년의 이 같은 수치들은 무력감과 공포를 자아낸다. 과연 우리는 마스크를 벗고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2020년을 보내며 한 텍스트를 떠올렸다. 영국계 오스트레일리아 작가 네빌 슈트(1899~1960)의 소설 『해변에서』(1957)다. 이 소설은 1959년 ‘그날이 오면’이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2000년에도 리메이크된 바 있다.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 ‘그날이 오면(ON THE BEACH)’의 포스터.  필자 제공

 『해변에서』는 냉전 시대에 창작된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1963년 알바니아가 이탈리아에 핵 공격을 가하고, 이스라엘과 아랍국가 연합 사이에도 전쟁이 발발한다. 동시에 소련과 중국도 국경분쟁과 사회주의 노선 차이로 갈등하다 충돌한다. 소련과 중국의 전쟁을 주시하던 미국은 소련을 경계하다가 이집트인들이 벌인 테러를 오인하여 소련을 향해 반격에 나선다. 이를 계기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소련이 충돌하면서 전쟁은 세계대전으로 확장된다.

전쟁은 지극히 짧았다. 소련과 중국이 코발트 폭탄으로 서로를 공격한 것을 시작으로 미국도 수소폭탄을 사용했고 그 결과 북반구 국가들은 순식간에 절멸하고 만다.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남반구 국가들은 살아남았지만, 그들도 곧 절멸의 위기에 몰린다. 수소폭탄 투하로 생긴 방사능 낙진이 점차 남반부로 확산했기 때문이다. 태평양에 있는 오스트레일리아는 가장 피해가 작은 국가였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방사능 낙진으로 생존자들은 시한부 삶에 내몰리게 된다. 소설은 이 가상의 상황 속에서 전개된다.

소설의 주인공인 오스트레일리아 해군 장교 피터 홈스는 미국 핵잠수함 USS 스콜피언호에 파견된다. 북반구 국가들의 멸망에도 살아남은 잠수함들은 생존자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스콜피언호는 방사능 낙진으로 폐허가 된 항구 도시들을 뒤졌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그러나 누군가를 구조한다고 해도 그것은 소용없는 일이었다. 방사능 낙진이 곧 멜버른을 비롯한 오스트레일리아의 도시까지 덮칠 예정이었다. 우리는 수많은 영화 속에서 예고된 종말을 앞둔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목격한 바 있다. 재난 영화로 미리 체험했던 ‘종말의 풍경’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국가 시스템이 마비되면서 약탈과 폭력이 늘어난다. 수많은 사람이 사이비 종교에 빠져 구원을 갈망하고 어떤 이는 삶을 저주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수많은 디스토피아 영화가 재현했던 ‘익숙한 종말’의 풍경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전혀 다르게 묘사한다.

 

 북반구 국가들이 멸망했을 때 오스트레일리아를 방문하고 있던 미 해군 잠수함 승조원들은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돌아갈 조국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해군 병사들은 예전의 규율을 지키면서 생존자 수색에 참여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민들도 방사능이 다가오는 것에 동요되지 않는다. 골프를 치고, 산책하고, 요리하며, (오지 않을) 내년 계획을 세우면서 가까운 이들과 시간을 보낸다. 그들은 이미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남은 시간을 인간답게 보내고자 한다. 자신들이 관여하지 않은 핵전쟁으로 미래를 압류당했다는 사실을 의식할수록 남은 삶을 온전히 보내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한편 잠수함 스콜피언호의 장병들은 멸망한 미국 본토의 한 도시 시애틀에서 타전되는 생존 신호를 감지하고 출발한다. 그들은 가까스로 시애틀에 닿았지만, 그 신호의 정체는 허무했다. 부서진 창문에 달린 콜라병이 흔들리면서 모스 송신기를 건드린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로 귀항한 스콜피언호의 승무원들도 각자 마지막 날을 준비한다.

방사능 낙진은 예상했던 9월보다 한 달이나 빠르게 다가온다. 핵전쟁 후 방사능 낙진의 풍경을 담은 이 소설은 1957년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당시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것보다 훨씬 강력한 위력을 지닌 수소폭탄 실험이 성공(1952년)한 후였고, 미·소 냉전이 격화되고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방사능 낙진을 묘사한 이 소설을 주시했다. 영국 해군 예비역 장교로서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비밀무기 개발을 담당하던 부서에 근무했던 작가 네빌 슈트는 종전 후 오스트레일리아에 정착해 자신의 경험을 살려 핵전쟁이 벌어진 이후를 다룬 이 소설을 창작했다. 네빌 슈트는 자신의 소설에서 소수의 결정으로 수십억에 달하는 사람들의 삶을 앗아갈지도 모르는 무서운 현실을 경고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가 벌어졌을 때 이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는 가장 현실적인 경고가 됐다.

 

1959년 소설 『해변에서』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 ‘그날이 오면’의 장면.  필자 제공


코로나19 감염을 표기한 세계지도의 모습은 소설 속에서 방사능 낙진이 확산하는 모습과 흡사하다. 폐허처럼 변한 도시는 지난봄 봉쇄됐던 뉴욕, 우한과 비슷하다. 또 인간다운 마지막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코로나19로 단절·봉쇄된 도시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과 겹쳐진다. 보이지 않지만 치명적인 방사능은 코로나19와 닮았다. 방사능과 바이러스는 국적, 성별, 가족, 빈부, 사상을 가리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경계를 나누고 서로를 차별한다.

우리는 코로나19 사태를 통과하면서 그 경계와 차별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가를 깨닫고 있다. 재난은 인간에게 공포와 함께 특별한 교훈을 준다. 인간은 소멸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라는 점에서 모두 동일하다. 코로나19로 인한 고통을 겪으면서 역설적으로 우리는 모두가 고립됐지만 연결됐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마지막 만남의 자리에서/ 우리는 서로를 더듬어 찾고/ 그러면서 애써 말을 피한다.”(T.S 엘리엇)

 2020년을 보내고 2021년을 맞는 날,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다시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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