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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운명 같았던 순간 | 기본 카테고리 2018-08-0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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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언스플래시.jpg

          언스플래쉬

 

 

얼마 전,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고 넋두리를 하는 동생에게 매 순간순간이 얼마나 소중한데 그 소중한 순간들을 왜 밀어내려 하냐며 열변을 토했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나이가 들 수록(?) 찰나의 한 자락마저 더욱 아끼고 아끼게 되는 내 마음과는 달리, 너무 무심하게, 그리고 빠르게 곁을 스쳐 가는 시간이 아쉬워서였을까.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말에 괜히 더 감정이입이 되어 덜컥 흥분을 하고야 말았다. 학교에 임용된 이후에는 더욱 그렇다. 매 학기마다, 매 수업시간마다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 정신없이 마음을 쏟은 지 며칠이 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학생들과 헤어질 시간이 다가온다. 그렇게 맞이한 방학은 또 왜 그리도 쏜살같이 지나가는지. 사실 이번 겨울은 “방학”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논문 작업. 클래식과 재즈의 음악적/학문적/심미적 연관성을 폭넓게 다루어보고자 시작한 연구였는데, 아마도 내 인생에서 가장 다양한 클래식 음반을 접했던 시간이자 클래식에 대한 애정과 지식이 한층 더 깊어진 시간이기도 했다. 연구 도중 마음을 사로잡은 음반 중 하나가 오늘 소개할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베토벤 교향곡 5번과 7번이 수록된 음반이다.

 

고전과 낭만, 인상주의 시대에 걸친 여러 작곡가의 음반을 들으며 개인적으로 가장 신선함을 주었던 작곡가가 베토벤이었다. 아마도 고전주의 시대의 형식적이고 절제된 매력과 낭만파 시대의 자유분방하고 극적인 매력을 동시에 살려서 담아낼 수 있었던 유일한 작곡가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베토벤은 하이든, 모차르트와 더불어 빈 고전악파의 3대 거장으로 일컬어지지만 동시에 낭만파 시대의 문을 연 작곡가라고 평가될 만큼 그의 작품들은 그 당시로써는 기존의 틀을 깨는 혁신적인 음악이었으며, 시대적으로도 낭만주의와 상당 부분 겹쳐있다. 실제로 베토벤의 곡과 하이든, 모차르트의 곡을 비교해서 들어보면 그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음악은 예측이 가능한 정석과 같은, 궁정에서 연주될 법한 고급스럽고 귀족적인 느낌의 음악이라면 베토벤의 음악은 예측이 불가한, 마치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궁정을 휘젓고 다니는 말괄량이 혹은 돌연변이 같은 음악이다. 고전주의 시대의 교향곡들은 1악장이 가장 진지하고 무거운 반면, 마지막 악장인 4악장은 화려하고, 경쾌하고 가벼운 느낌을 주는 것이 주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깔끔한 결말 덕에 곡이 끝날 즈음엔 잘 짜인 해피엔딩 영화를 본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진다. 하지만 베토벤의 음악은 조금 다르다. 1악장부터 마치 돌진하듯이 시작된 곡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고조되어, 마지막 악장을 들을 때쯤엔 심장이 터질듯한 절정을 선사한다. 오히려 처음보다 마지막이 더 장엄하고, 곡이 끝나고 나면 편안함보다는 먹먹함, 심지어는 절정 뒤 찾아오는 공허함마저 느끼게 된다. 특히 베토벤 교향곡 5번과 9번은 점점 더 절정으로 치닫으며 마지막을 향해가는 대표적인 두 곡이라고 할 수 있다.

 

그중 이 음반에 실려있는 5번 교향곡은 “운명 교향곡”이라는 표제로 더 유명하다. 어쩌면 베토벤 교향곡 5번과 운명 교향곡이 뭔지는 몰라도, 1악장의 “빰빰빰 빰-“의 네 음표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베토벤은 이 네 음표가 “운명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라고 묘사했다. 실제로 1악장뿐만 아니라 전 악장에서 이 소절이 변형, 반복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소절이 각 악장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찾아가며 듣는 것도 베토벤 5번 교향곡을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다. 작곡을 하는 나로서는 어떻게 이 네 음표가 이토록 힘있고 완벽한 악상으로 전개될 수 있는지, 짧고 강력한 운명의 소리에서 화수분처럼 쏟아져나오는 그의 음악이 경이로울 뿐이었다. 특히 마지막 악장의 피날레는 트롬본과 피콜로가 더해져 찬란함의 끝을 들려주었는데, 온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반짝이는 불꽃축제를 감상한 기분이었다. 사실 낭만파 작곡가들의 곡은 그들의 상상력이나 낭만성, 서정성을 더욱 우선순위에 있어 때로 형식에서 벗어나거나 걷잡을 수 없는 공상의 세계로 빠져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에 비해 베토벤의 곡은 너무나 풍부한 감정선과 선율, 상상력 속에서도 형식의 미마저 갖추는 완벽한 곡이었다.

 

베토벤 5번 교향곡은 논문을 쓰며 다시 보게 된 클래식 곡 중 단연 1위였다. 다른 곡도 얼른 들어야 하는데, 한참 동안이나 베토벤 5번 교향곡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만약 클래식을 전공했더라면, 아마도 평생 베토벤을 연구하지 않았을까 하는 행복한 꿈을 꾸며 겨우 겨우 다른 작곡가의 곡들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음반을 추천하는 이유는 지휘자의 개성, 그리고 희소성 때문이다. 음반을 들어보면 베토벤 교향곡 음반들 중 명반이라고 꼽히는 푸르트 뱅글러나 카라얀의 해석과는 확실히 다른 그만의 매력이 돋보이는데, 개인적으로는 단순히 곡에 대한 해석뿐만 아니라 고전주의 시대에 혁신을 일으켰던, 급진적이었던 인물인 베토벤의 성향을 잘 담아낸 연주가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클라이버는 위대했던 명성에 비해 너무 적은 음반을 남긴 지휘자로도 유명한데, 이러한 희소성 역시 클라이버의 음반을 선택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세기를 휘어잡았던 지휘자가 남긴 몇 안되는 음악을, 그것도 베토벤 교향곡 5번을 만나게 된 것은 그야말로 내게도 운명 같았던 순간이었다. 무척이나 정신 없고 바빴던 이번 겨울 방학 동안 가장 여유로웠던 시간이기도 했다. 다가오는 봄날, “운명”을 찾고 있다면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베토벤 5번 교향곡을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Carlos Kleiber 베토벤 : 교향곡 5번 `운명`, 7번 Ludwig van Beethoven 작곡/Carlos Kleiber 지휘/Wiener Philharmoniker 오케스트라 | Universal / Deutsche Grammophon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명연이자 베토벤 교향곡 5번, 6번의 명반으로 꼽히는 연주가 담긴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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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미션 임파서블 6> 톰 크루즈의 스턴트가 일으킨 도미노 효과 | 기본 카테고리 2018-08-08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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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jpg

           <미션 임파서블 : 폴아웃>의 한 장면

 


톰 크루즈는 ‘책임감’의 배우다. 그 책임감이 영화로 화하여 나올 수 있는 작품이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라고 생각한다. 이 책임감은 단순히 톰 크루즈에게만 해당하지 않고 <미션 임파서블>을 이루는 모든 요소에 작용한다. 곧 개봉할 <미션 임파서블 : 폴아웃>, 그러니까 <미션 임파서블 6>에서 연출과 각본을 맡은 크리스토퍼 맥쿼리가 톰 크루즈의 책임감을 영화 속 에단 헌트에게 어떻게 적용하는지 살펴볼까 한다.

 

<미션 임파서블 6>은 <미션 임파서블 : 로그네이션>(2015, 이하 ‘<미션 임파서블 5>’)의 속편 성격이 강하다. (전편의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이 연임(?)한 배경이다!) 사건은 개별적이되 연루된 인물들이 전편과 연결된다. 이번에 팀 에단 헌트는 핵무기로 사용될 플루토늄을 나쁜 놈들의 손에 들어가기 전에 회수하는 ‘불가능한 임무’를 맡았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벅찬데 불가능을 더 불가능으로 몰아가는 변수’들’도 에단 헌트(톰 크루즈)를 골치 아프게 한다.

 

우선, 세계 평화를 수호하겠다며 러시아 크렘린궁(<미션 임파서블 : 고스트 프로토콜>(2011))을 비롯하여 전 세계를 쑥대밭으로 만든 비밀 정보기관 IMF에 감정이 좋지 않은 CIA는 견제 목적으로 이번 임무에 요원 어거스트 워커(헨리 카빌)를 끼워 넣는다. 플루토늄 회수 건과 관련, 중요한 열쇠를 쥔 일명 ‘화이트 위도우’는 <미션 임파서블 5>에서 에단 헌트가 검거한 솔로몬 레인(숀 해리스)을 호송차에서 납치해오라고 조건을 건다. 레인의 테러 조직 ‘신디케이트’에 신분을 감추고 언더커버로 활동했던 일사(레베카 퍼거슨)도 레인을 처리하겠다며 일을 더 복잡하게 한다.

 

본 사건에, 전편의 사건과 미스터리한 인물 둘이 네 배의 판 돈을 올리면서 에단 헌트는 맞서야 할 적도 많고, 고려해야 할 관계도 많아졌다. 에단 헌트가 맨몸과 맷집으로 부딪혀야 할 ‘자연주의’ 스턴트가 그만큼 많아진다는 의미다. (크리스토퍼 맥쿼리 왈, “실제 스턴트와 리얼 액션과 진짜 로케이션과 최소한의 그린 스크린이야말로 이 시리즈의 모든 것이다!”) <미션 임파서블 6>에서 톰 크루즈가 감당한 스턴트는 직접 헬리콥터를 몰고 절벽 사이를 날며 시도한 360도 하강, 파리 상공 높은 고도에서 뛰어내려 지정된 곳에 착지하는 ‘헤일로 점프 High Altitude Low Opening jump’ 등 실제 스턴트맨도 섣불리 감행하기 힘든, 그냥 연기라고 칭하는 게 미안할 정도의 아크로바틱한 액션을 선보인다.

 

‘맨몸’ 액션이 가장 주목받긴 해도 이 액션이 가능할 법한 상황을 만드는 건 각본의 영역이다. <유주얼 서스펙트>(1996)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적 있는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 최초로 두 편 연속하여 연출과 각본을 맡았다. <미션 임파서블 6>의 특징은 전편과의 연속성이다. <미션 임파서블 5>에서 IMF를 해체하려 했던 테러 조직 ‘신디케이트’의 수장 레인은 물론 그와 악연으로 엮인 일사의 존재는 액션 영웅의 존재를 밝히는, 각각 이벤트성 악당과 남성 주인공 보조의 여성 주인공이라는 일회성의 역할을 넘어 새로운 사건과 캐릭터와 결합, 인물의 깊이를 부여하면서 결과적으로 시리즈의 세계관을 확장했다.

 

 

2.jpg

             <미션 임파서블 : 폴 아웃>의 한 장면

 

 

세계관의 확장은 그만큼 에단 헌트에게 더 많은 임무와 액션을 요구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오랜 시간 함께하면서도 풀지 못한 주변과의 관계 개선 혹은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신구 캐릭터의 조화, 전편과의 연속성, 관객의 눈을 인질(?)로 삼는 현란한 액션 볼거리를 해시태그로 삼아 뽑아내야 하는 끝내주는 이야기. 이는 톰 크루즈의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만큼이나 크리스토퍼 맥쿼리에게 논리를 담당하는 좌(左)뇌의 이야기 스턴트를 필연적으로 부르는 것이기도 하다.

 

몸을 쓰는 톰 크루즈의 연기에 호응하여 머리를 쓰는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은 앞서 언급한 조건에 하나를 더 얹으려 톰에게 “이번 영화에서 원하는 단 한 가지”를 질문했다. 톰 크루즈 왈, “줄리아와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싶다.” 관객에 관한 책임감을 배우의 동력으로 삼는 톰 크루즈의 정체성처럼 세계 평화를 향한 책임감을 캐릭터의 비전을 가져가는 에단 헌트에게 <미션 임파서블 6>의 플루토늄 회수 이상으로 힘든 임무는 아내 줄리아(미셸 모나한)와의 관계다.

 

세계 평화 구현과 행복한 결혼 생활을 양손에 펼쳐두고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에단 헌트는 몇 번 고개를 까딱까딱한 후에 전자를 택할 터다. 액션 영웅으로는 독보적이나 배우자감으로는 낙제점인 에단 헌트는 직업의 위험도를 고려해 줄리아와 합의하에 헤어져 놓고 연락도 하지 않은 상태로 지금에 이르렀다. 불가능한 임무를 가능으로 바꾸기가 가장 쉬웠어요, 의 에단 헌트에게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이를 인간적인 면모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인간병기에 잠재한 이런 틈새는 각종 살 떨리는 액션이 난무하는 가운데서 인간적인 감정을 부여한다. 에단 헌트가 줄리아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란 자신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져 웬만해서는 위험한 상황에 말려들지 않도록 미리 조치하는 것. 하늘을 나는 핵무기도 떨어뜨리는 천하의 에단 헌트도 <미션 임파서블 6>에서 불의의 순간에 맞닥뜨리는 줄리아와의 운명은 어떻게 손써볼 도리가 없다. 그걸 매끈하게 손 써보겠다고 <미션 임파서블 5>에 이어 크리스토퍼 맥쿼리는 톰 크루즈에 버금가는 책임감으로 <미션 임파서블>(1996) 이후 가장 뛰어난 속편 중 하나(<미션 임파서블 3>를 꼽는 이들도 많다!)를 기어코 완성했다.

 

<미션 임파서블 6>의 부제 ‘폴아웃 Fallout’은 플루토늄이 악의 손에 넘어갈 경우 야기될 ‘방사능 낙진’의 의미와 더불어 ‘선택의 최종 결과’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에단 헌트는 착한 사람이다. 고집스러울 정도의 책임감은 융통성 없는 착함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오로지 세계 평화만을 위해 타협하지 않는 그의 선의는 매번 오해를 부르고 사건을 키워 에단 헌트와 그 주변을 옥죄는 족쇄로 부메랑이 되고는 했다. 그 운명의 족쇄가 조이는 힘이 세면 셀수록 그와 비례하여 톰 크루즈의 액션 난도는 높아졌고 그에 맞춰 영화는 더 흥미로워졌다. 톰 크루즈의 고집스러운 맨몸 액션이 영화 전체에 도미노 효과를 발휘할 때 어떤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미션 임파서블 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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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인생에 운이 있기에 얼마나 다행인가 | 기본 카테고리 2018-08-08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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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beales-53407-unsplash.jpg

        언스플래쉬

 

 

2009년 8월 16일, 제12회 세계육상대회 100미터 달리기 시합의 출발선에서 선수들이 긴장한 채 준비를 하고 있다. 이 날을 위해 선수들은 몇 년간 피땀을 흘려가면서 연습했고, 각 지역별 예선을 통과해 올라온 선수들의 실력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보다도 적다. 총성이 울리고 순위가 갈렸다. 한 선수가 경이적인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우사인 볼트였다. 9.58초라는 인간이 해낼 수 없는 영역일 것으로 여긴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난 이후에도 그의 압도적 우승의 기록은 이어졌지만, 그가 당일 세운 기록을 이후에 깨지는 못했다. 그날 그의 전성기였던 것일까?

 

아니다, 그날은 그의 뒤에서 앞으로 적당히 순풍이 불고 있었던 것이다. 조사를 해보니 남녀 100미터, 110미터 허들, 멀리뛰기, 3단뛰기 세계 신기록은 8가지 중 7개가 순풍, 한 개는 바람이 없는 상태였다. 역풍이 불 때는 없었다. 모두가 같은 환경에서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아주 잘하는 선수들이 아주 적은 실력 차이를 가를 때, 또 그 사람의 개인의 실력의 베스트를 낼 때 이와 같은 아주 적은 환경의 차이가 금과 은을, 영원히 남을 기록과 평범한 잘한 기록을 가른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가 우승을 하거나 기록을 세우고 나면,
 

“얼마나 열심히 노력을 했으며, 얼마나 그가 재능이 뛰어난 선수길래 저렇게 잘했을까.”
라고 여기고, 그의 훈련법, 집안 환경, 어릴 때의 재능을 보려고 한다. 물론 선수 자신도 그렇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경향을 보면 그 한끗 차이를 가른 것은 바람의 방향이었다. 그날의 운이 좋았던 것이다. (이런 문제를 통제하기 위해 세계육상연맹은 초속 2미터 이상의 순풍이 불면 세계기록이라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우연 혹은 행운의 힘은 육상 경기 말고도 찾을 수 있다. 최근 <골목식당>이라는 프로그램을 자주 보는데, 원래부터 잘하고 성실하던 식당보다는 이상하게도 자기 고집이 있거나, 실수가 많은 그런 식당이 더 화제가 되는 것 같다. 나 또한 저러면 안되지라고 막 욕을 하면서 보고, 요즘은 백종원 씨의 정신건강을 염려하기까지 하니 몰입도가 상당하다. 자연스럽게 실제 저 가게가 어딘지 궁금해진다. 찾아보면 금방 알 수 있고, 진짜 많은 사람들이 찾은 후기를 볼 수 있었다. 이들은 비록 방송에서 욕은 먹었지만 어찌되었건 주변의 다른 식당들에 비해서 비교할 수 없는 지명도를 얻은 것은 분명하다.

 

서울시에만 12만 개의 식당이 있다고 한다. 1천만 명 시민이라고 하면 80명에 한 개꼴이다. 이들 중에는 미쉘린 별을 받을 식당, 수십년 동안 자리잡은 노포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초보 식당도 많다. 이들 중 극히 일부가 방송에 3-4주간 나왔다는 것은 실력일까, 행운일까? 만에 하나 이들 중 일부가 자신의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그곳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해도,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것은 너무 많은 변수가 관여하기 때문에 그 후의 일은 통제하기가 어렵다.


어찌되었건 내 느낌에 이건 행운의 영역이 큰 일인데, 욕을 엄청 먹으면서 <골목식당>에 나오고, 그후에 꽤 성공을 하게 된 식당 주인은 (특히 미숙함과 고집으로 혹평을 받았던 곳일수록 더욱), 자신이 이런 고난을 겪고 꾹 참고 버텼기 때문에 성공을 한 것이라고, 자신의 실력 덕분이라고 여길 확률이 매우 높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의 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실패하면 환경 탓, 잘되면 능력 덕분이라고 여기는 것이 사회심리학에서 반복해서 밝혀낸 사실이니 말이다.

 

이런 실태에 반론을 제기하는 책을 한 권 찾았다. 로버트 K 프랭크의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 다. 저자는 코넬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세계적인 경제학자다. 그는 자기 자신이 교수가 된 과정을 밝히면서 우연한 한 두 개의 선택이 지금까지의 길로 이어지게 했다고 고백한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어릴 때 야구선수로 나름 인정을 받았는데, 중간에 그만두게 되었고 그게 그 당시에는 너무나 큰 상심의 원인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렇지만 만일 야구를 했으면 자기 재능 정도였으면 프로야구선수가 되기도 어렵고, 된다해도 아마도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가 20대 후반 은퇴했을 것이라 진단을 했다. 반면 그는 20대 후반 같은 나이에 경제학 박사를 받고 강의를 하고 있었다. 만일 그가 야구를 계속 하겠다고 고집을 했다면?
 
성공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성공이 우연이 아닌 재능과 실력의 요인이 훨씬 많이 작용했다고 해석하고, 자신의 행운을 잘 못 느낀다고 저자는 말한다. 문제는 그런 인식이 타인의 아픔과 결핍에 대해 공감을 하지 못하고, 공공복지에 대한 저항, 모럴 해저드와 같은 반감으로 이어진다고 비판한다. 사회경제적 환경과 같이 자기 주변이 모두 비슷하기 때문에 잘 느끼지 못하고 사는 환경적 요소도 큰 작용을 한다. 앨런 크루거는 부모의 소득과 자녀의 소득사이의 상관 관계가 0.5로 매우 높은데, 이는 부모와 자식의 키의 상관관게와 거의 같은 수준일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부모와 자녀는 그걸 잘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기에 그 안에서 자녀의 노력 변수를 더 중요하게 볼 수 밖에 없다. (아마도 같은 환경안에서 결국 소득수준의 평균보다 못한 동류의 부모-자식사이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자신의 노력의 전체를 보는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골목식당>의 예도 그렇듯이 초기에 같은 시기에 같은 수준의 경험을 갖고 식당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초기의 작고 사소하다고 할만한 차이가 최종 결과에 있어서는 엄청난 차이로 증폭된다는 증거는 매우 많다. 저자는 미국에서 세금 신고를 할 때 회계사를 항상 고용했는데, 사용하기 쉬운 세금계산소프트웨어가 등장하면서 일부 회계사집단이 거의 모든 고객을 독식하게 되었고, 이후 고만고만한 소프트웨어들의 경쟁 속에서 몇 군데의 선호도가 높았던 터보택스라는 프로그램이 시장을 완전 장악하는 일이 결국 벌어졌다. 1등과 2등 사이의 차이는 진짜 미미하지만, 보상하는 차이는 상상할 수 없이 크다.


네트워크 사회가 되면서 롱테일 법칙이 등장했다. 과거와 달리 아마존과 같은 전자상거래 업체가 방대한 양의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판매를 하니 공간의 제한이 없어져서 수많은 제품을 검색해서 판매하게 되었다. 그 결과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는 업자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로버트 프랭크는 반론을 펼친다. 물론 일리 있는 말이지만,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애니타 앨버스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온라인으로 판매되는 음원중 상위 0.00001%의 매출이 전보다 훨씬 커졌다. 2007년 7%에서 2011년에는 15%로 증가했다. 비록 남이 잘 안 듣는 음악을 찾아서 듣기에 쉬워졌지만, 그럴수록 상위권 독식도 강해져서, 상위권 극소수가 가져가는 보상은 이전에 비해서 더욱 커지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때 초기에 상위권에 오르게 되는 것은 압도적 실력차가 아니라, 처음 일부 소수의 긍정적 피드백과 응원이라는 것이 연구에서 밝혀졌다. 누군가 아주 우연하게 “이 음악 좋은데”라고 추천하고, 별을 주는 행위가 종국에 비교할 수 없는 보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나의 오랜 고생과 노력, 실력이 드디어 빛을 발했다”라고 여겨서는 안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 책의 후반부는 이 문제의 해결책을 담고 있다. 경제학자인 저자는 소득세를 개정하는 것으로 고소득층의 탐욕을 억제하고, 더 걷어들인 세금을 공공영역에 투자해서 평등을 강화하자고 말한다. 고소득층의 지금의 부가 행운의 영역이 매우 크기 때문에 일정 부분 거둬서 운이 없었을 뿐이 다수에게 배분하는 것이 사회의 안정을 위해 타당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많은 반론이 있을 것이다. 실제 책에서도 가감없이 저자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소개하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할가는 앞으로 사회가 함께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또 국가마다 제각각 가진 문제가 다를 것이니 방법도 달라야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인간본성의 일면을 봤으면 한다.


내가 잘한 것은 내 재능이나 노력, 실력의 결과물이라고만 보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 그 경향은 성공의 과실을 100% 내 것으로 여기게 되는데, 문제는 현대 사회는 승자의 독식이 과하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 1%의 재능과 노력의 차이라면 1%, 많아야 2%의 결과의 차이가 정당할 텐데 1000%의 차이가 나는 것이 현실이다. 1000%의 재능과 노력의 차이가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우리는 운과 초기의 사소한 환경 변수에 대해서 감사하고, 이를 세상과 함께 나누려는 의지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세상을 함께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연민, 공감, 연대의 토대가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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