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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3.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이라영/동녘] | 리뷰어선정도서 2018-08-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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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

이라영 저
동녘 | 2018년 07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제목 하나하나가 보석같다. 그 의미를 제대로 알고 나면 흔한 단어들의 조합이 아닌, 페미니즘에 대한 깨달음의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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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어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책이다. 꼭꼭 씹어 억지로 삼키듯이 한 장 한 장을 읽었다. 지금도 여전히 내가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제대로 적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요즘 핫한 주제, 페미니스트. 어딜 가든 페미들이 있고, 페미를 폄하하는 이들이 있고, 페미인 것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들이 있고, 페미들을 불편해하는 이들이 있다. 특히 댓글 속에서 그 존재들은 더욱더 치열하게 자리싸움을 한다.
과연 페미니즘은 무엇이며, 페미니스트는 누구인 것일까? 그것은 여성을 우월하다 여기며 남성을 깔아뭉개는 사상일까, 여성이든 남성이든 당연히 누려야 하는 공통의 인권을 말하고자 하는 사상일까. 그들은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불순분자들일까,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는 평범한 사람들일까.
작가는 진짜 페미니스트는 죽어야 증명이 된다고 말한다. 하하. 그러니 섣부르게 판단치 말자. 진짜 페미니스트가 없다고 제목에서 외치는 작가의 의도는 이미 동시대에서 그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뜻이 아닐까라고 혼자서 해석해 봤다.


들어가는 말: 보편의 재구성
p.10 나는 '진짜'를 지향하지 않는다. '진짜'가 되려는 윤리적 욕망은 때로 타인을 폭력적으로 규정짓고 배척하며 제압할 위험이 있다. '진짜'를 정의하고 선택하는 권력에 대해 의구심이 있다. 진짜 여성, 진짜 페미니스트, 여성이 있어야 할 진짜 자리, 진정한 여성의 삶을 알려주려는 사람들의 충고는 사양한다. '진짜'는 모르겠으나 내 삶과 나의 길, 나의 자리, 나의 역할, 나의 사랑은 '나'들이 찾아야 한다. 이 '나'들은 문화와 관습이 정해주는 자리가 아닌, 충분히 다른 세계를 갈망할 권리가 있다.

p.11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신이 주신 안정된 자리보다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한 나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삶의 다른 가능성. 이를 꿈꿀 자유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미친년'은 '제자리'에 있지 않는다. 계속 움직일 것이고, '나'는 오염되고 변태 되어야 한다.

미친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제자리, 결국 다수라는 권력에 의해 정해진 자리에 있지 않고 '나'의 길을 찾는 여자다.


1장 '진짜'는 없다
p.36-37 차별받는 사람들이 친절하길 원하는 마음은 여성을 '평화적인 언어' 속에 가두려 한다. 저항의 '올바름'을 강조하며 은근슬쩍 '저항'을 무력화하려는 전략이다. 여성의 역사를 지우듯이 여성의 말에는 '맥락'이 사라진다. 앉아서 소변을 보기만 해도 페미니스트가 되는 남성이 있는 반면, 평생에 걸쳐 제 몸으로 젠더 이슈를 직접 다뤄온 사람들이 한번 '실수'라도 하면 기다렸다는 듯 물어뜯는 태도가 과연 옳을까. 페미니스트의 과실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 여성의 성공은 개인의 능력이지만, 한 여성의 실수는 모든 여성의 실패로 만들려는 남성연대 사회의 비겁함을 지적하는 것이다.

박근혜의 잘못이 여자의 잘못이고, 그래서 여자는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는 무식한 결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p.39 '해봤던 사람들'의 경험과 지혜가 유용하지만, 동시에 '해봤던 사람들'이 두려움을 동반한 보수성을 지니지 않는지 경계해야 한다. "내가 해봤다. 그래서 안다"거나 "해봤더니 안 되더라"라며 해보려는 사람들에게 '바른길'을 제시하는 태도는 때로 억압의 얼굴로 나타난다.

p.40 진정성은 죽어야 증명된다. 진정한 페미니스트란 자신의 현재를 방해하지 않는 페미니스트다.

p.41 나는 페미니즘이 완전무결하며 언제나 '올바른 길'만 걸어왔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페미니즘에게 완전무결한 요구를 하며 정의를 가장해 페미니스트의 입을 봉쇄하려는 시도를 비판하는 것이다. '모두의 진정한' 평등과 정의를 위해 여성을 열심히 단속하는 그 마음의 진정성이야말로 의구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p.45 《혐오사회Gegen den Hass》를 쓴 카롤린 엠케Carolin Emcke는 이러한 걱정의 실체를 잘 표현하고 있다. "속에는 혐오와 원한과 경멸을 품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걱정이라는 모습을 띰으로써 용인할 수 있는 한계점의 위치를 옮겨놓는 것"이다.
...중략...
나의 걱정과 내가 걱정하는 그 대상의 관계를 잘 생각해야 한다. 많은 경우, '내가 걱정하게 만들 일을 하지 말라'라는 억압으로 향한다.

p.67 누군가가 인간으로서 기본적 권리를 주장할 때 그 권리가 자신을 불편하게 한다면 그동안 '특권'을 누려왔다는 뜻이다.

자신의 경험을 지혜라 믿고 그들의 권력을 진실이라 믿는 인간은 걱정이라는 탈을 쓰고 존재한다. 그 탈은 탄압당하고 억압받는 상대에게서 경계심을 무너뜨린다. 동시에 그동안 누려온 '특권'을 불편하게 하는 존재들에게 완전무결을 요구하며 입을 막아버린다.
이것은 나와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약자다. 나는 자신을 '진짜' 엄마라고 스스로 믿으며, 그들이 어긋날까 '걱정'한다는 명목하에, 내 기준에 맞춰 그들이 행동하고, 변화하기를 요구한다. 또한, 아이들이 불합리한 상황을 조리 있게 전달할 때, 나는 심한 거부감을 느낀다. 즉, 인간이 상대를 동등한 인간이 아닌 물건(혹은 소유물)으로 느낄 때, 이것은 성별에서만이 아니라, 어디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2장 몸이 된 여성들
p.103 주름 없는 얼굴, 경제관념이 덜 형성된 상태, 아직 제 목소리를 낼 줄 모름, 성 경험이 없는 '처녀'. 여성은 흔적과 과정을 보일 수 없는 존재다.

전쟁은 끝났다. 그러나 여성들은 여전히 몸에서 해방되지 못했다. 그들의 몸은 인간 남성이 지향하는 상태를 향해 늘 노력하고, 죽을 때까지 그 기준에 스스로를 가둔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를 위해 사는가. '나'를 찾지 못한 여성들은 결국 몸일 뿐이다.


3장 장소를 향한 폭력
p.165 인간(남성)과 인간(남성) 사이의 폭력은 보편적으로 그냥 폭력이다. 하지만 여성을 향한 '인간'의 폭력은 대부분 가정 폭력, 데이트 폭력이라는 별도의 영역으로 넘어가면서 가정 문제와 연인 문제라는 사적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간다. 폭력을 대하는 우리의 인식 체계는 이 사적 영역 앞에서, 정확히는 '여성이 겪는 문제' 앞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창으로 여자를 위협한다는 어원을 지닌 '위엄 위威'처럼, 여성을 짓눌러야 이룰 수 있는 위엄이 남성성을 구성하고 있기에 여성을 향한 남성의 폭력은 남녀 '관계'의 일환으로 여긴다.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비대칭적 구조이고 법, 문화, 논리, 심지어 윤리이며 인간의 도리다.

p.173-174 '정절을 지킨다'라는 명목으로 성폭행 피해 여성의 자살은 사회적으로 권장되었다. 이들의 자살은 사회적으로 부추겨진 타살이다. 여성이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살한다지만, 실은 여성의 명예가 아니라 남성이나 집안을 위해 타살당한다. 이는 단지 사적 관계를 지배하는 수단에 그치지 않고 국가를 통치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는다. 은장도로 제 몸을 찔러 죽은 그 수많은 여자들의 목소리는 없다. 그들은 죽었고, 말할 수 없으며, 남은 남성들이 죽은 여성의 정절을 숭배한다. '열녀'는 여성 학대의 산물이다.

p.177 '성적 수치심'이라는 말을 성폭력 피해자에게 덮어 씌우는 방식은 바뀌어야 한다. 성폭력은 피해자에게 수치심을 전가하는 잘못된 '문화' 때문에 일단 공적 영역에서 잘 드러나지 않으며, 어쩌다 신고가 되어도 사법적인 관대함 속에서 죗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고 있다.

눈앞에서 다루어지는 문제가 공적 영역에 있는가, 사적 영역에 있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공적 영역에서 사람들은 객관적인 사실을 통해 그 이면에 숨은 진실을 알아내고자 노력하지만, 사적 영역에서는 그들만의 문제로 치부해 버린다. "남녀 사이의 일은 당사자들 빼곤 아무도 몰라. 정말 성폭행을 당한 건지 합의하에 한 건지 어떻게 알겠어. 같이 즐겨 놓고 당했다고 주장하는 꽃뱀들, 남자가 돈으로 보이냐. 여자 하나 잘못 만나면 남자 인생 조지는 건 한순간이야." 이런 반응은 심각했던 사안의 문제를 한낱 가십거리로 만들어 버린다. 피해자가 여성이고 가해자가 남성이라는 식의 접근이 아니라, 한 사람이 피해를 당했고 한 사람이 가해를 했다가 되어야 한다.


4장 같은 공간, 다른 자리
p.200 여성이 고급스럽고 값비싼 가방을 갖는 것에 사회가 유난히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 이유가 단지 가격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식구들을 먹이는 장바구니나 아이를 돌보기 위한 기저귀 가방이 아닌 오로지 자신을 위한 공간과 이야기를 소유하는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발버둥이다. 여성의 몸은 장소화되지만, 여성은 제한적으로 공간을 지니고 제한적으로 장소에 나타난다.
...중략...
여성의 이동권은 '전통적으로' 제약되어 있다.

p.217 '어린아이의 비극'이 사회적 반향을 크게 일으키면 한때의 '자비'로 난민을 포용하는 듯하지만, 언제든 '법의 이름으로' 추방할 수 있다. 난민을 '받는다'라는 입장에서는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난민들은 프랑스(유럽)에서 뭔가를 얻으려 '왔다'기보다 제 나라를 떠나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에 '떠난다'. 어떻게 그들은 제 나라를 떠나 난민의 신분이 되었는가. "세상 사람들은 열대 지방의 물고기들을 훑어갔지만, 어부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지하자원은 모조리 캐어갔지만, 광부들은 원치 않았다. 모든 것을 다 가져갔지만,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
드라마 〈용팔이〉 9회에서는 '불법체류' 여성의 출산 장면이 나왔다. 위급한 상황이지만, 죽는 것보다 병원에서 신분이 발각되어 추방당하는 것이 더 두려워 집에서 용팔이에게 제왕절개 수술을 받는다. 합법적으로 거주하지 않는  인간에게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애초에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았기에 죽음도 없다. '불법적' 존재가 드러나면 그는 소설 속의 삼바처럼 철저히 부정당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한국인이 '아니고', 신분증이 '없고', 의료보험도 '없다'.

p.229 '인종'은 생물학적 개념이라기보다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관계에서 만들어진 근대적 발명품이다. 특히 자본주의는 계층의 연대를 방해하기 위해 인종주의를 필요로 한다. 대중의 분노를 체제가 아니라 다른 인종에게 쏟아내도록 이끈다. 다인종 사회에서 비백인은 곧 이 장소에서 몰아내도 괜찮은 이방인이다. 상대적으로 인종 구성이 복잡하지 않은 한국 사회가 이 분노를 여성 혐오로 '해소'하듯이. 인종과 성별을 내세움으로써 장소의 주인이 되어 지배계급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착각은, 계급의식을 분쇄하고 싶은 자본주의가 대중에게 정확히 바라는 바다.

p.232 미쳐버린 여성들이 많다. 진짜 미칠 지경. 차오르는 말로 몸이 터져버릴 듯한 순간, 발화發火되는 순간, 그렇게 수도 없이 미쳐버릴 것 같은 순간에 다다른다. 여성의 '미침'은 때로 자신을 억압하는 자리(역할)을 벗어나는 행동이다.
'미친 여성'이야말로 가부장제가 자신의 존속을 위해 우선적으로 세울 수밖에 없는 금기인 것이다. 가장 상투적인 일반화의 옷을 입고 실행되는 금기 - 이것이 여성의 '미친/들린' 상태의 야누스적 얼굴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탄생시켰던 독일어에서 '미치다verrueckt sein'는 어원적으로 '자리를 약간 이동하다'를 의미한다. 있으라고 한 자리, 혹은 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자리에서 조금 벗어난 자리에 있는 것, 이것이 바로 '미친' 상태다.
여성이 자리를 이동해 적극적으로 '미친 상태' 되기를 추구할 때 가부장제는 두려움을 느낀다. 아무리 자유와 해방을 말해도 그것은 남성 중심이기에 여성은 그 자리에 있다.

하나의 국가에 동일한 임산부가 있지만, '합법'이라는 자리에 있는 임산부와 '불법'이라는 자리에 있는 임산부의 상황은 같지 않다. 불법 임산부는 이미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이 자신의 생존을 알리는 순간, 죽음보다 더 철저히 그들은 부정당한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위치는 엄연히 다르다. 남성과 같은 공간으로 이동하려는 여성의 시도는 남성을 두렵게 만들고, 그들의 방어 체계 안에서 여성은 '미친 존재'가 되어 철저히 무시당하고 부정당한다. 그러하기에 작가는 '적극적으로 미치기'를 권한다. 더 미치고, 또 미쳐서 있으라고 정해진 자리, 있을 것이라고 추정되었던 자리에서 내가 선택한 자리로 조금이라도 더 가기를 바란다.


어찌 보면 세상 모든 인간은 다른 존재다. 그런데 굳이 둘로 나눈다. 성별, 인종, 나이, 피부색.... 이름은 다 다르지만 그들은 세상을 이분법적인 사고로 본다는 점에서 동일한 역할을 한다. 문제는 나누는 역할을 늘 강자가 한다는 것이다. 약자는 그들의 필요에 의해 반대편에 서게 된다. 원해서 가지 않았는데, 처음부터 원했던 것처럼 세뇌당하고, 어느 순간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고 믿게 되었다. 오랜 기간, 수많은 사람을 거쳐 이루어진 편견과 차별은 어느 순간 약자가 약자를 억압하기 시작했다. 둘에서, 둘이, 또 둘로, 결국 끝없는 2의 배수를 생산하며 나의 정신과 삶을 해체시키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떠올려보자. '나'는 하나다. 그 하나를 위한 삶을 사는 것.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페미니스트 이라영이 내게 하려고 했던 말이 아닐까.

 


*이 리뷰는 예스 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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