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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독서 / 문유석 | 생각을 담다 2018-12-29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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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쾌락독서

문유석 저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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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결국 재미있어서 하는 사람을 당할 수 없고 세상 모든 것에는 배울 점이 있다.

 

독서란 원래 즐거운 놀이다.

 

세상에 의무적으로 읽어야 할 책 따위는 없다. 그거 안 읽는다고 큰일나지 않는다. 그거 읽는다고 안 될 게 되지도 않는다.

 

그저 어떻게든 나에게 영향을 주었던 책이다.

 

한 줄의 문장, 또는 한 단어가 기억에 남아 있다면 내게 그 책은 그 한 줄, 또는 한 단어이다. 만약 책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그 책을 읽던 시간과 장소의 감각이 되살아난다면 내게 그 책은 그 감각이다.

 

사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지나간 인연들이 아니라, 그로 인해 우리 안에 생겨났던 그 순간의 감정들이다.

 

그때 그 책의 무엇을 왜 좋아했고, 그로 인해 나는 어떤 영향을 받았던 것인지,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책을 가지고 노는 여러 가지 방법들에 대해 얘기하려한다.

 

어떤 책이든 자기가 즐기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 그리고 혼자만 읽지 말고 용기내어 책수다를 신나게 떨어야 더 많은 이들도 함께 읽게 된다는 것. 그걸 위해 기억 속의 책들을 찾아간다.

 

 

내게 있어 '독서'란 어떤 의미일까. 나는 무엇을 위해 독서를 하나 생각하게 된다. 즐거움의 쾌락에 중독된 것인지, 그저 지식 채우기에 급급해서 책을 읽는 것인지. 하루라도 책을 안보면 입안에 가시가 돋을 정도도 아니고, 그저 시간 때우기 용이라고 하기엔 놀 것이 너무 많다. 대학교 때는 그저 허세의 일환으로 유명 철학자들의 책을 옆에 끼고 도서관에 가는 것으로 족했던 시절이 있었다. 플라톤의 국가론을 앞에 놓고, 그 밑에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타나토노트>를 열심히 읽고 있었을 뿐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고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진리를 깨닫지도 못했다. 누구에게 말하면 그럴싸해 보이는 책이어서 그저 눈으로 훑었던 것일까. 독서도 달리기 경주하듯 옆사람 뒷사람 힐끗거리며 뒤처지지 않기 위해 읽어냈던 것 같다.

 

지식과 허세의 일환으로 읽었던 책들로 책장은 채워나갔지만, 내 마음의 깊이는 그다지 만족스러울 만한 성과를 가지진 못했다. 아마도 진정 내 것으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 순간 순간의 책 읽기가 내 인생에서 헛된 시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말을 빌려, 그 순간의 책들, 내 시절 시절을 기억하는 책들은 그저 우연히 그 순간 내 옆에 있었을 뿐이었고, 그 책속의 한 줄이 그때의 나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을 내주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니깐. 무언의 감각으로 기억 속 저편 어딘가에 남겨져 있을 것이다.

 

그 한 줄 한 줄을 발판 삼아 위로받고, 용기 얻고, 나아갈 힘을 얻었음에 충분했다. 때론 쾌락을 주기도 하고, 때론 지루함이란 무게를 이겨내는 고난의 연속이기도 했으며, 푸석한 일상의 그림자에 밝은 빛을 전해주기도 했으니깐. 고전100, 베스트셀러 무수히도 많은 책들은 하루걸러 하루 책장을 빼곡히 메워간다. 독서의 목록이 내 지식인양, 교양의 척도인양 생각하며 목이 멜 정도로 독서에 탐닉하기도 한다. 진정 내 쾌락을 채워 주는 게 독서인지, 책의 양인지 모를 정도다.

 

지금 내게 있어 '독서', 종이와 펜이 만나 그려놓은 작은 세계는 '탈출구'인 것 같다. 중독적으로 탐닉할 정도는 아니며, 너무 재미있어 자꾸만 읽고 싶어지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에 보여주기 위해 책을 읽는 것도, 딱히 보여줄 사람도 없으니 더더욱 아닌 것 같다. 팍팍한 일상에서 그저 작은 일탈, 탈출구 정도인 듯싶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찾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통해 내가 존재함을 느끼는 순간인 것 같다. 그들의 세계를 보며 부러워하기도 하고, 때론 따라해 보기도 하면서 그들과 대화하고, 내 생각을 글로 전달할 때 그 생생한 무언가에 자꾸만 끌린다.

 

책 속의 단 한줄, 내 마음을 이끄는 그 한 줄을 기억하려 애쓰고자 한다. 스쳐지나간 인연을 굳이 그리워하지 않듯이, 그때의 시간과 장소, 내 감각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했던 그 순간만이라도 기억하고자 한다. 그들의 세계 속에서 때론 웃고, 울며, 용기 얻으면서 그저 즐겁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독서를 만들어가 볼 생각이다.

 

-내게 있어 독서의 의미-


 

<쾌락독서>는 작가가 기억하는, 추억하는, 그때 그 시절 그가 머물렀던 작은 안식처이다. 그의 어린 시절, 소년에서 어른이 되어 가는 그 길목 길목마다 새겨진 조각들의 모음이었다. 작가 특유의 솔직하면서도 재치 있는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독서가 공부가 아닌 놀이라는 것을, 쾌락으로 자신의 삶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그의 삶의 한 장면 장면을 하나씩 꺼내놓는다.

 

문학 소녀, 소년을 꿈꿨던 이라면, 작가와 같은 시간에 머물렀던 이들이라면 더욱 공감하는 책이 많을 것 같다. 사실 처음 들어보는 책들이 많았다.(책을 보다보면, 정말 다방면의 독서광이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그가 마지막 말에서 전했듯이 이 책은 어떤 책이 좋고, 나쁘고 이걸 읽어야 한다라고 전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는 그가 독서를 하는 방법, 즐겁게 독서하는 법에 대해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 안에서 때론 공감하고, 생각하고 나만의 이야기를 덧대어 나가는 시간이었다.

 

내게 있어 독서가 갖는 의미를 생각하게 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기억 저편에 남아 있는 책들을 떠올리며, 그때 그 시절 속에 머문 나를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덧붙여 앞으로의 삶을 어떤 이야기들로 채워나갈지, 어떤 삶을 보고, 생각하고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지 무척이나 설레는 순간이었다.

 

글이란 쓰는 이의 내면을 스쳐가는 그 수많은 생각들 중에서

그래도 가장 공감을 받을 만한 조각들의 모음이다.

나는 그래서 책이 좋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가장 빛나는 조각들을 엿보는 것이다.

-책 속에서-

 

당신에게 '독서'란 어떤 의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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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 모두 꽃, 생각하는 것 모두 달 with 바쇼 하이쿠 선집 | 일.고.십 생각나눔 2018-12-02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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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바쇼 하이쿠 선집

마쓰오 바쇼 저/류시화 역
열림원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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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 모두 꽃

생각하는 것 모두 달

 

자신의 길에서 죽는 것은 사는 것이고

타인의 길에서 사는 것은 죽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하이쿠를 완성시킨 마쓰오 바쇼, 그는 속세를 초월해 은둔과 여행으로 평생을 일관했다. 그의 시는 미학적 추구도 도덕적 교훈도, 언어의 재치도 아니다. 인간 본래의 눈으로 자연을 바라보며 인간이 근원적으로 얼마나 고독한 존재인가를 한 줄의 시에 담았다.

 

하이쿠는 5,7,5 의 음수율의 지닌, 17자로 된 일본의 짧은 정형시이다. 진정한 시 세계에 대한 갈구, 인간으로서의 고독과 우수, 여행과 방랑에의 그치지 않는 동경, 뛰어난 문학성 등이 한 인간의 생애와 문학을 구성하고 있다. 바쇼의 하이쿠는 시대와 장소의 산물이지만, 시공간을 넘어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  

<작가가 전하는 말 속에서>

 

이번 하이쿠는 일고십의 질문으로부터 시작해보려고 한다. '한 인간의 생애와 문학'의 어우러짐, 자연을 마음에 품은 채 삶의 여정의 떠나는 그의 흔적을 통해 그의 마음을, 우리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고독과 방랑, 삶에 대한 허무함과 외로움은 그의 여행길 길목 길목에 서 있는 이정표 같았다. 그의 발자취는 고독을 찾아 헤매이는 듯 싶기도 했고, 허무한 외로움에 온전히 취해있는 것 같기도 했다. 밀려오는 고독감을 굳이 떨쳐내려 하기 보다는 자연과 함께 온몸으로 부딪히며, 느끼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가 그의 마음을 온전히 간직하고, 느끼고자 시작했던 것은 바로 여행이었다. 혹은 방랑이라 할 수 있는 그 길 위에 평생을 보냈다. 끊어질 듯, 방황하듯 떠있는 부표처럼 그는 다시 되돌아오기를 반복했지만, 그 어느 것에도 자신을 묶어 놓지는 않은 것 같다.

 

안락한 삶에 대한 갈망과 평범한 일상에 안주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자신의 삶의 민낯을 마주보려 노력했다. 변하지 않는 듯 하지만, 계절 계절 마다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자연에 빗대어 자신의 마음을 담아내려 했다.

 

그가 여행을 떠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왜 여행이라는 길을 떠나야만 했던 것일까. ‘여행이 그의 삶에,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로 남아있는 것일까.

 

(Q.사람의 삶에서 여행은 꼭 필요한 것일까? 여행을 통해 어떤 점을 얻을 수 있을까?)

 

내게 있어 여행은 일상에 대한 일탈이었다. 반복되는 일상에 작은 균열, 새로운 곳을 향한 나의 갈망이자 도전이었다. 무언가를 얻고자 애썼던 것은 아니다. 그저 새로운 것에 대한 설렘, 짜릿한 기분을 만끽하는 즐거움에 대한 중독 혹은 갈증으로 여행이라는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 애썼던 것뿐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설렜던 마음과 그곳에서 느꼈던 한적한 여유로움이 자꾸만 기억이 나서 또다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닐까. 일상의 팍팍함에 목이 멜 때, 그저 어딘가에 자유로이 마음을 풀어놓고 싶을 때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행길에서 만난 작은 쉼이 다시 일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같다. 내게 있어 여행은 삶의 쉼표인 것 같다. 한 걸음 더 나아갈 힘을 주는 작은 위로가 필요할 때 여행을 떠난다. 그게 여행이 주는 큰 선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Q.자연의 유무와 시의 깊이에 상관관계가 있을까?)

 

자연과 시의 상관관계에 대한 답을 찾기 전에 자연, ‘가 갖는 의미에 대해 되새겨 보려한다.자연하며 느껴지는 마음은 편안함, 변함없는, 자연스러움이 떠오른다. 봄이 되면 파릇파릇한 새싹이 떠오르고, 푸르른 녹음이 우거지는 여름이 생각나고, 붉게 물든 가을과 새하얀 겨울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자연은 항상 그 자리 그대로 내가 찾아가면 있을 것 같은 편안함과 안락함을 전해주는 것 같다.

 

봄의 움트는 새싹의 모습을 보며, 새로운 마음을 다잡는 위로를 얻고, 푸름으로 물든 여름을 보며 뜨거운 열정을 생각한다. 가을의 청량한 하늘을 보며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때론 떨어지는 낙엽에 쓸쓸한 마음을 담아내기도 한다.

 

시가 내 마음을 담아내는 그릇이라면, 자연은 그릇의 모습을 담아내는 한 폭의 풍경 같다. 그저 풍경의 한끝자락에 머물며 계절의 흐름에 제 몸을 맡기며,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관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자연의 있고 없고와 시의 얕고 깊음을 내 나름의 판단으로 규정할 순 없지만, 그저 내 마음을 알아주는, 혹은 대변해주는 그런 존재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꾸밈없는 본연의 모습 그대로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빛나는 그 모습과 내가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소나무에 대해선 소나무에게 배우고,
대나무에 대해선 대나무에게 배우라.

그대 자신이 미리 가지고 있던 주관적인 생각을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생각을 대상에 강요하게 되고 배우지 않게 된다.

대상과 하나가 될 때 시는 저절로 흘러나온다.
그 대상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안에 감추어져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 그 일이 일어난다.

아무리 멋진 단어들로 시를 꾸민다 해도
그대의 느낌이 자연스럽지 않고
대상과 그대 자신이 분리되어 있다면,

그때 그대의 시는 진정한 시가 아니라
단지 주관적인 위조품에 지나지 않는다.

-마쓰오 바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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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을 시작하는, 일요일의 오후 | 끄적끄적 2018-12-02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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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02일 / 일요일의 오후>

 

어느덧 2018년의 끝자락에 머물러 있다. 1월의 설렘으로 시작했던 한 해가 이제는 아련한 그리움과 뜻모를 아쉬움, 후회감에 마음 한편이 허전해지는 듯하기도 하다. 그러다 스쳐간 하루하루의 흔적들을 되새기며, 차곡차곡 마음의 서랍 속에 그날의 흔적을 담아 넣는다. 허전한 마음을 채우기라도 하듯이, 돌아보면 아쉬웠던 그 시간들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드문드문 썼던 감사일기장을 열어보았다. 어느덧 9월의 발자취에 머물러있는 일기.. 꽤나 긴 시간의 공백을 가지고 있었던 일기장을 열어보다, 그간의 흔적 흔적을 찾아봤다. 처음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했던 4월부터 달마다 잊은 듯 뜨문뜨문 써내려갔던 이야기들..

 

감사했던 일들을 적어야하는데, 감사한 일보다 투정이 훨씬 많았던 일기들, 한껏 즐거움에 취하다가도 한껏 외로움을 가득 채우기도 하고, 이런 마음이었구나, 이런 시간을 겪었구나,, 돌아보기도 했다. 그 시간이 때론 그리워지기도 하고, 후회감이 밀려오기도 하고, 홀가분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돌아보면 아쉬웠던 시간 속에 서성이면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어떤 이야기로 채울지 고민을 해본다.

 

요즘 느끼는 고민은 글쓰기의 어려움이다. 특히 서평? 모든 독서를 서평이라는 틀에 맞춰 쓰려고 하다 보니, 책의 내용을 전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잘 써지지가 않는다. 예전에는 어떻게 서평을 썼는지 모를 정도로.. 어떤 글귀를 마음에 넣고, 담아서 표현해야 할지..그 방법을 잘 모르겠다. 이런 걸 방법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 그저 마음따라, 글따라, 손따라 써 내려가야 하는데, 자꾸만 꾸며내려고 하는 것 같다. 내 것이 아닌 듯한 옷을 입고 어색한 몸짓과 불편한 행동들로 낯설어진다.

 

자연스레 책속에 나의 마음을 묻어내는 게 어렵기만 하다. 자연스럽게 묻어서 전하고 싶은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어렵다. 서평이라는 암묵적인 과제가 발목을 잡는 건지, 책속에 내 마음을 담지 못하는 게 문제인지. 겉만 핥는 듯한 눈짓이 결국 탄로나 버린 듯하다. 마음을 한껏 적시지 못하는 기분이랄까. 자꾸만 멈추는 마음에 답답함이 앞선다.

 

조금은 서평이라는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부담 없이 편하게 책에 푹 빠져서 마음을 전달하는 연습을 먼저 해야 될 것 같다. 아마 독후감이 더 어울릴 듯한 이야기들로, 조금은 더 나를 들어내는 글이 될 지도 모르겠다.

 

정말 읽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왜 이리 담아내지지 않는 건지, 책과 이야기하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저런 일에 마음이 딴 데 머무는 건가 싶기도 하고, 집중을 못하는 기분이다. 또르르르,,, 책의 내용 전달보다 그저 책속에 묻어낸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써내려가는 연습을 해야겠다. 오늘은 꼭 숙제 마무리할 수 있기를..!

 

하이쿠! 오늘은 너로 정했다...! 바쇼님 제게 힘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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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로 살기로 결심했다/ 김수현 | 생각을 담다 2018-12-02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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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김수현 저
마음의숲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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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운 삶>
“자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삶을 일구는 것이 나다운 삶이다.”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가치를 실현하며 살고 싶은지 무엇에 행복해지는 사람인지 나는 남과 어떻게 다른지 [자기감각]을 찾자.

 

나는 어떤 사람일까. 첫 번째 느껴지는 생각은 나는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결코 혼자서는 살 수 없는. 때론 고독한 자유를 꿈꾸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금 타인의 삶에 발을 들여놓기 일쑤다. 조금 더 어렸을 때로 돌아가보자. 자아의 형성과 관계 맺음에 연약했던 어린시절에는 더욱이 타인과의 관계에 민감하게 작용했다. 타인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나의 행동과 말을 결정지을 만큼 연약한 자아였기에 그만큼 타인의 존재감이 컸던 시기였다. 다시말해 나의 존재감은 타인의 존재감에 반비례했던 시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결정과 가치관, 신념이라는 것이 물들기 쉬웠고, 일관된 자기주장이 형성되기 어려워보였다. 타인의 행동에 휩쓸리기를 반복하고, 연약한 자아가 담금질하듯 단단해지기를 몇 차례 반복한 끝에 자기만의 행동과 신념이 생기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넘어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부터, 나의 미래에 대한 고민과 그 고민에 대한 해답, 그 과정사이에서 타인의 결정과 행동이 아닌, 오로지 나 자신만의 결정과 행동을 이끌어내는 연습을 시작했다. 아주 작은 행동, 이전에는 친구들과 함께가 아니면 결코하지 않았을 행동들, 독립적인 행동을 갖기 시작했고, 그러한 행동은 점차 독립적인 자아 형성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표면적으로는 자기 정체성이 형성되어가는 시기였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표면적인 행태일 뿐, 정신적인 자기 정체성의 지반은 여전히 연약한 시기였다. 청소년기를 벗어난 성인이라는 이름표를 앞세워 아이와 어른, 그 어중간한 위치에 서성이며 정신적으로 방황하기도 했던 시기이다. 이는 다시금 타인과의 존재감으로 인한 자기 정체성의 문제가 드러나는 시기이기도 했다. 독립적인 행태의 변화는 있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독립적이지 못했던 자아에 문제점이 드러났다. 다시금 타인의 존재감으로 나의 존재감이 얼룩지기도 했으며, 허약한 관계에서 오는 소외감과 비참함, 나 자신에 대한 자존감에 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이는 타인의 존재의 문제가 아닌, 자신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타인의 행동과 언어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그 방어막으로 내세웠던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었다. 타인의 시선위에 서성거리는 내가 아닌, 타인의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으로서의 에서 벗어나, 스스로 올곧게 서 있을 수 있는 단단한 나 자신을 만드는 것이었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고, 그들의 시선으로부터 영향 받지 않고,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내세웠던 방어적인 수단은 바로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자기 만족감' 이었다.

 

혹은 자기 효능감을 통해 ‘라는 사람의 위치를 선점해나가는 것이다. 이는 타인과의 존재로부터 완전하게 독립된 자아정체성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유인즉슨 이러한 우월감 또한 타인의 존재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이 존재해야 했으며, 그들의 위치를 통해 끊임없이 그들과 비교하며, 그들로부터 시선을 얻어 내야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나를 보며 느끼는 타인의 시선은 나의 만족감을 한층 끌어올리는 표현이기도 했다. 은근한 희열과 만족감 속에서 그렇게 나는 나 자신으로서의 모습을 만들어갔다. 그것이 내가 나일 수 있는, 나다운 삶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타인의 시선 속에 그려진, 그들이 잠깐 던지는 시선, 작은 관심에 그저 우쭐하며, 때론 비참해지기도 하면서 오늘도 허약한 관계의 줄다리기 위에 나를 올려놓는다. 끝날 듯 끝나지 않은 위태로운 줄다리기 위에 다시금 불안한 발걸음을 옮겨 놓는다. 

 

때론 허약한 관계의 경계 속에서 외줄타기를 하듯, 위태로운 나를 만난다.
타인과의 경계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 나는 나로 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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