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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 델라필드,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 1930년대 기혼자 여성으로 살아보기 | 기본 카테고리 2022-09-22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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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1930

E. M. 델라필드 저/박아람 역
이터널북스 | 202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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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8일

대문 옆에 크로커스 꽃 한 무더기가 핀 것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다. 상투적이지 않고 매력적인 표현을 찾고 싶어서 "독일 정원의 엘리자베스"가 되었다고 상상하려는 찰나, 요리사가 불쑥 다가와서 하는 말, 생선 장수가 왔는데 대구와 해덕대구만 있네요. 해덕 대구 냄새가 신선하지 않은 것 같은데 대구만 들일까요?

자주 깨닫는 사실이지만 사는 게 그렇지, 뭐.

86쪽


 

2014년 1월, 영국 멘체스터에서 사온 20대의 첫번째 다이어리가 생각난다. 두꺼운 연보라색 펠트지로 뒤덮인 꽃무늬 자수의 무지 노트, 그것은 결혼하기 전까지 작성했던 일기이자 배설구였다. 가끔 생각나서 들춰본 일기장에는 왜 이때는 이렇게까지 생각했지? 하던 시절의 부끄럼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는 대단한 작품이다. 나는 10년도 되지 않은 과거를 보며 지우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저자 E.M.델라필드는 그 과거를 무려 100년이나 보존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수중에서 샅샅이 읽혀지는 중이다. 이 얼마나 용기있는 작품인가.

화자는 기혼 여성으로 아이 둘을 키우는 평범한 여성이다. 그녀는 종종 클럽활동에 참여하며 때로는 본인의 행실에 의문을 품는, 그러니까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수 있는 여성이다. 아니, 되려 상류층 여인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를 읽다보면 어느새 클럽에서 칵테일을 마시고 있는 여인이 되어있다. 일기 형식으로 된 여타 작품과는 달리 아주 자세하게,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했는지 그리고 자그만한 삽화로 그려두기까지 해서 생생하기가 보통이 아니다.

 

 

메모 : 프랑스 사람들은 너무 자주 터무니없는 감상주의에 빠지는듯

주어만 바꾸면 내가 쓴 일기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디테일이다. 

집으로 가는 길에 '십자가와 열쇠'여관의 S 부인에게 놀라운 소식을 듣는다. 바버라 블렌킨솝의 약혼자라는 남자가 그곳에 묵고 있는데 노부인이 만나주지 않는 다는 것이다. 남자는 나이가 조금 들어 보이지만 굉장히 점잖은 신사라고 한다. 그러더니 내게 묻는다. 아기가 생겨도 히말라야에 가는 게 괜찮을까요? 한참 이런저러 얘기를 주고받은 뒤에야 이 모든 게 남의 사생활이라는 사실이 떠오르다. 어쨌든 뒤에서 쑥덕거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125쪽

타인의 이야기를 하던 도중 느껴지는 자괴감, 어쨌든 뒤에서 쑥덕이는건 바람직 하지 않다. 100년이나 지금이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다 해놓고서 아차 하는 맘이 드는 것은 다르지 않구나. 가끔 이렇게 사는게 맞나 싶을 때가 있다. 사회적 동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사실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닌데, 표현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비난하고 있는데... 이런 고민은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를 읽다보니 말 그대로 '터무니없는 감상주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 사는 모냥 다 비슷한데, 나라고 다를 바 있을까? 이상하게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는 근래 읽은 작품 중 가장 큰 위안이 되었다.


기원전 1700년 경 수메르 점토판 속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이야기다.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버릇이 없다', '도대체 왜 학교를 안가고 빈둥거리고 있느냐? 제발 철 좀 들어라.', '왜 그렇게 버릇이 없느냐? 너의 선생님에게 존경심을 표하고 항상 인사를 드려라.' 어디서 많이 본 레퍼토리 같다. 2020년대에서도 들을 법한 고대 점토판 속 어록을 보며 역사는 반복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리고 생각보다 사람 사는 일이 별 일 아니라는 사실이 웃기면서 동시에 위안이 된다.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는 '이렇게까지 자세히 알아도 된다고?'와 '1930년대 사람이 느끼는 것과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이 별반 다를 것이 없네'가 공존하는 작품이다.또한 페미니즘 작품으로도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된 이래 1930년대 한 기혼여성의 삶을 그려내며 현실적인 여성 그 자체를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기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 또한 대단했다. 아, 오늘부터 일기를 쓰면 2122년에 누군가 내 일기를 읽고 공감할 수 있을까?

그건 후대만이 답할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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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마킨, 어느 삶의 음악 / 가장 낮은 곳에서 바스라져간 영혼들 | 기본 카테고리 2022-09-21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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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느 삶의 음악

안드레이 마킨 저/이창실 역
1984Books(일구팔사북스) | 202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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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를 길들이고 복종시켰다고 믿는 그녀 역시, 이 남자의 삶은 지하 동굴 같아서 치욕과 고통, 차마 고백할 수 없는 행위들을 숨기고 있다는 걸 짐작했음이 틀림없었다.

(중략)

하지만 그는 거기 있었고 매 순간 자신이 연기해야 할 차례가 돌아올 것임을 이해했다. 대사를 받아치고, 명백하고도 어느 인물의 역할을 떠맡아야 할 것이다.

102쪽


러시아의 늦은 밤 어두운 기차 안, 시트는 헤져있고 노숙자, 부랑자, 창녀, 군인이 엉켜있다. 터널을 지날 때는 더욱 심연한 어둠이 실내를 감쌀 때면 발자국 소리, 심장소리의 리듬으로 간신히 승객을 구별할 수 있다. 작중 상황과 비슷한 경험에 이입해서 읽기, 오래된 습관이다. 첫 장을 읽고 중국의 기차 안이 생각났다. 여러 모로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본론으로 돌아오면, 화자는 심연을 벗어나 한 남자와 조우한다. 남자의 빵을 포장한 구겨진 악보, 그리고 어느 벽보 앞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는 한 젊은이 알렉세이 베르그.

작 중 "호모 소비에티쿠스"라는 생소한 단어가 등장한다. 화자는 호모 소비에티쿠스를 경멸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는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형체는 존재할까? <어느 삶의 음악>은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고통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1930년대 당시 스탈린은 소비에트 정치 체제로 새로운 인류, 즉 호모 소비에티쿠스를 창조할 것임을 선언한다. 호모 소비에티쿠스는 말 그대로 체제에 복종하고 충성을 다하는 소비에트 연방 체제 전용 신 인류를 뜻한다. 평범한 음악가 청년 알렉세이 베르그는 정치적 통치 하에 음악가의 삶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호모 소비에티쿠스로,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다. 그 선택은 베르그 기존의 음악적 삶으로 돌아오기까지 긴 세월을 돌아오게 만든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 중 하나인 화자의 호모 소비에티쿠스에 대한 태도 변화다.

내가 그들을 깨워 그들 삶에 대해 묻는다면 그들은 주저 없이 선언할 것이다. 간혹 발생하는 기차의 연착을 제외하고는, 자기들이 사는 나라는 천국이라고 느닷없이 확성기에서 전쟁의 발발을 알리는 냉혹한 목소리가 흘러 나온대도 이 무리는 몸을 털고 일어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전쟁을 맞을 준비를 하고 고통과 희생을 감수할 것이다. 누추한 이 기차역, 철로 너머로 끝없이 펼쳐지는 평원의 추위 속에서. 굶주림이든 죽음이든 삶이든 그 모두를 당연한 듯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중략)

입 안에서 맴돌지만 그저 피로 때문에 나오지 않는 말. 정신을 가다듬자. 돌이킬 수 없는 이 말이 빛을 발하며 터져나온다. 호모 소비에티쿠스!

18-19쪽

검정 혹은 회색의 투박한 외투를 입고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은 스탈린 시대로부터, 전쟁과 궁핍과 말 없는 인고의 세월로부터 빠져나오고 있는 듯하다. 베르그는 인파 속에 섞여 들어 지하철 쪽으로 발길을 옮기더니 그 입구로 흘러드는 시커먼 무리 속으로 사라진다. 그의 긴장된 발걸음에서 변함없이 의연한 결의가 느껴진다. 층계 발치에 내려선 군중 속에서 간신히 찾아낸 그의 모습은 다음 순간 사라진다. '호모 소비에티쿠스.' 경멸의 기운이 밴 목소리가 내 안에서 중얼댄다. 그 소리를 침묵시키기엔 나는 너무 졸리다.

123-124쪽

초반부의 <어느 삶의 음악>의 화자는 호모 소비에티쿠스에 대한 비소를 숨기지 못한다. 화자에 눈에 비친 호모 소비에티쿠스는 맹목적인 바보들이다. 피로 때문에 뱉을 수 없다고 하지만 그들을 향해 터져나오는 비웃음을 참지 못한다. 호모 소비에티쿠스! (심지어 강조되어있다.) 그러나 베르그의 이야기를 들은 화자의 호모 소비에티쿠스를 향한 태도는 사뭇 다르다. 경멸의 기운이 뱄지만 안에서 중얼댄다. 경멸의 소리를 침묵 시키고 싶지만 수면욕에 져버린 나머지 내면의 소리로 울리는 '호모 소비에티쿠스'. 인고의 세월을 빠져나왔다는 표현은 그들을 향한 경건함 마저 느껴진다.

생존을 위해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삶을 선택한 이들을 누가 감히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그들은 작가였고, 피아니스트였으며 평범한 가정의 일원이였다. 후대는 왜 그들이 호모 소비에티쿠스가 되었는지 묻지 않는다. 또한 호모 소비에티쿠스 이전의 삶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주입된 선전과 생존에 밀접히 관련되었던 강압으로 인한 결과물, 호모 소비에티쿠스만 존재할 뿐이다. 그들은 어디에도 있으나 동시에 어디에도 없는 존재들이 되었다.

 

<어느 삶의 음악>의 작가 안드레이 마킨은 1995년 프랑스로 망명한 이후 본격적으로 문학 작품을 집필한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다만 그의 데뷔작에서 소련의 짙은 향기가 풍기는 것으로 보아 구소련 체제에서 문학 활동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었다. La Musique D'une vie, 내용은 감상적인 제목과는 거리가 멀다. <어느 삶의 음악>은 독재 통치 아래 비극적인 운명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한 청년이 이름을 잃은 나날에 도달할 때까지 함께 했던 음악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멋없이 이야기 하자면, <어느 삶의 음악>은 러시아 작가가 프랑스어로 집필한 러시아 작품이다.

그러나 소비에트 연방 체제에서 쓰러지는 풀처럼 탄압받았던 수많은 예술가들의 삶의 단편을 이렇게 함축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이 있을까? 역사를 그대로 서술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안드레이 마킨의 <어느 삶의 음악>처럼 고통을 아름답게 연주하는 작품은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작가가 프랑스에서 문학 활동을 했다는 것이 독보적인 한수였다. 스탈린 시대의 강인한 영혼을 노래하는 소설, 심지어 여타 러시아 작품에서 만나기 힘든 음유적인 <어느 삶의 음악>.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그들은 음악이 되어 아름다움으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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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앙 보뱅, 가벼운 마음 / 인생은 한 곡의 교향곡 | 기본 카테고리 2022-09-21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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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가벼운 마음

크리스티앙 보뱅 저/김도연 역
1984Books(일구팔사북스) | 202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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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아니, 전혀 이상하지 않다. 단 한 순간도 로망에게 돌아가 문을 두드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건 어쩌면 내 안에 있는 나약함이나 호의 때문일 수도 있다. 그건 마치 내게 무언가를 주면 받지만, 다시 가져가면 더 이상 원하지 않는 것과 같다. 내게는 떠나는 일이 정말 쉽다. 만일 내가 남자였다면 이런 마음을 가진 여자, 이를테면 무정한 여자와 사랑에 빠질 수 있을지 자문해본다. 무정? 아니,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겠다. 가벼움. 그게 더 낫다. 나는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아직 완전히 그렇지는 않지만 그 마음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내 마음은 티타티티타티다.

144쪽


가볍다라는 건 뭐랄까, 중의적 표현을 많이 가진 형용사 중 하나인 것 같다. 산뜻하고 깃털같음을 표현하다가도 경박스럽고 텅 빈 느낌을 지닌 표현, 크리스티앙 보뱅의 <가벼운 마음>은 어떤 쪽인지 궁금해지는 제목이다. 주인공 뤼시의 어린시절부터 시작한다. 부모님과 함께 서커스단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녀는 자연스레 유랑생활에 익숙해진다.

뤼시는 이름을 하나로 정의하지 않았다. 오로라, 벨라돈, 마리, 뤼드밀라, 앙젤, 에밀리, 아스트레, 바르밥라, 아망드, 카드린, 블랑슈 등이 있다. 농담이라는 첨언을 덧붙였지만, 몇 개의 이름으로 사는 일은 가볍고 즐겁지 않을까 싶었다. 농담을 좋아하는 그녀, 만일 내가 그녀였다면 이름으로부터 정의되는 무거움에 거리를 두기 위해 수많은 이름을 사용했을 것이다. 고작 이름이라고 칭하기엔 그녀에게 "정착"은 무거워 보인다. 가출하기를 여러번, 뚱보 간호사의 집에 머물며 음악과 사랑을 느낀다. 운명적으로 다가온 음악, 뤼시의 가벼운 마음은 날개를 단다.


그렇게 여성이 된 뤼시는 사랑을 한다. 그것이 그녀가 정착을 선택한 단 한번의 사례, 결혼이다. 여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도 새겨 들어야할 뼈같은 어록이 등장한다.

감방은 매력적이고 편안하다고 해도 여전히 감방일 뿐이댜. 들어가기는 쉽지만 거기서 나오려면 크나큰 대가를 치러야 해. 로망이 네 교도관이 될 거라는 말이 아니야. 그는 매력적인 청년이지. 나는 더 안 좋은 경우를 말하는 거란다. 그건 너희 둘 다 감방에 갇히게 될 거라는 거야. 교도관도 없고 문도 없고 창살도 없고 자물쇠도 없지만, 감방은 그래도 감방이지.

97쪽

결혼을 선택하는 과정은 신속했다. 그녀는 운명을 믿었다. 그가 뤼시 영혼의 일부가 되는 일은 간단했다. 좋은 타이밍에 재능이 출중하고 매력이 넘치는 청년이었다. 그러나 예상대로 결혼생활은 오래 가지 못한다. 뤼시의 매력이자 강점, 가벼움은 결혼 생활을 압도한다. <가벼운 마음>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점 중 하나는 상처가 될만한 사정을 상처로 남기지 않고, 한 곡의 음악처럼 기승전결로 끝낸다는 점이다. 한 사건이 끝나면 다시 새로운 사건이 시작한다. 교향곡과 같이, 알레그로, 느리게, 미뉴엣, 론도...

 

그는 웃음을, 나는 눈물을 맡았지. 그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어. 우울증이 뭔지 아니? 월식 본 적 있어? 우울증은 월식 같은 거야. 달이 마음 앞에 슬며시 끼어드는 거야. 그러면 마음은 자신의 빛을 더욱 내지 못해. 낮이 밤이 되는 거란다. 우울증은 부드러우면서 캄캄해.

20쪽

우울증은 월식 같은 거야. 라는 말,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오래 머물 문장이다. 마음의 빛을 내지 못하는 것, 잠시 달이 끼어드는 것, 우울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가오는 자연 현상. <가벼운 마음>은 나도 모르는 새 위로가 된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 줄 모르고 슬며시 끼어드는 문장들이다. 세상의 무거운 마음을 가뿐하게 들춰버리는 <가벼운 마음>의 매력. 지란지교라던가, 단순한 사람과 가까이 하면 단순해 질 수 있다고 믿는다. 주인공 뤼시도 마찬가지지만 <가벼운 마음>은 독자의 마음을 가볍게 만드는 마술을 부린다. 내 삶에 집중하고 상대방에게 강요하지 않는 태도, 짐을 내려놓고 가볍게 가볍게 티타티티타티.

크리스티앙 보뱅의 작품은 한 장 넘기기가 아쉽다. 한 페이지에도 다채로운 마음이 스친다. 이상하다. 분명 화려하지 않은데 책 한권을 눈에 담고 싶다. <가벼운 마음>의 주인공 뤼시는 삶을 사랑한다. 조금은 충동적이고 이를 때도 있지만 매 순간 충실하다. 뤼시의 삶을 하루라도 살아볼 수 있다면,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다면. 한 문장, 한 단락을 모두 책갈피 하고 싶어지는 작품, <가벼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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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습관, 이시카와 유키 / 플랫폼 작가, 오늘부터 준비하시고 시작합니다! ✌🏻 | 기본 카테고리 2022-09-1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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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쓰는 습관

이시카와 유키 저/이현욱 역
뜨인돌 | 202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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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에 대한 애정이 글쓰기 기술보다 더 힘이 셉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인 그 후기에는 '이거 정말 좋아!' 라는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쓰면 그에 대한 애정이 글에 꽉 들어차서 읽는 사람에게도 전해집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지금 시대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마음을 소중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드러내 보세요.

100쪽

"작문", 이라는 단어를 듣고 떠오르는 느낌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관심은 있지만 역량이 부족해 글쓰기를 망설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은 부끄러운 마음이 앞서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쓰는 습관>은 글쓰기를 좋아했던 한 소녀가 블로그를 개설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며 프리랜서 기자가 되기까지 일군 방법을 공유한다. 그녀의 책은 다정한 친구가 손을 맞잡고 알려주듯 즐겁고 소탈하다. 어라, 이 정도면 나도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묘한 기대감이 올라온다.

저자 이시카와 유키가 <쓰는 습관>에서 강조하는 몇 가지 규칙들이 있다. 그것은 즐거움, 꾸준함, 솔직함이다. 그녀 역시 글쓰기를 통해 일상의 즐거움을 되찾고 싶었고, 이런저런 일들을 일단 꾸준히 기록했으며 마음을 담은 글쓰기를 통해 인생을 바꾸었다고 언급한다. 책 <쓰는 습관>이 매력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작가가 되기 위해 투지를 갖고 직진해라!" 가 아닌 "난 이렇게 하니까 너무 좋았는데 너도 할 수 있지 않을까?"가 통했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귀여운 삽화와 타인(불특정 다수, 독자 모두)을 배려하는 그녀의 모습은 진심이었다.

우리가 글쓰기를 시작하려는 이유는 다양하다. 글쓰기를 그만 두는 이유도 못지않게 다양하다. 나 같은 경우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제대로 시작해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누군가 비평을 한다고 가정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저릿하고 심장이 두근거리기 때문이다. 또한 마음을 솔직하게 적는 일, 아직까지는 부끄럽다. 그리고 마음을 적어내려가다보면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이야기를 배설할 수도 있는데 독자에게 전달될 불편함, 그것을 감당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랬을까, <쓰는 습관> 168쪽의 내용은 이런 마음을 쓰다듬어 주는 듯 했다. 저자 이시카와 유키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상황과 누군가에게 상처받는 상황에 단호할 것을 제시한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세심하게 신경을 쓸 것을, 글쓰기로 특정 공간의 선순환을 도모할 것을 말이다.

매력적인 삽화, <쓰는 습관>은 귀여운 만화가 새 목차를 열어준다.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마음의 부담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일까. 그녀 또한 무거운 마음으로 글쓰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쓰는 습관>을 찾는 독자의 마음을 간파한 것으로 보인다. 목차 하나 하나 넘어갈 때마다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을 들켰다고 느꼈음에도 불편하지 않았던 것은 왜일까. 정말이지 글쓰기를 오래 해온 친구가 꼭 붙어 앉아 다정하게 설명해주는 듯한 책이다. 삽화를 누가 그렸을지도 궁금하다.

 

글을 써서 누군가에게 보여줄 용기가 생겼다. 그런데 위기가 닥쳤다! 꾸준히 글은 쓰지만 독자들이 금방 흥미를 잃는 것 같다. 이유가 뭘까?

저자는 독백이 아니라 누군가 읽는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주제를 갖춰야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일상을 나열하며 글쓰기 자체에 흥미가 생겼다면 그때 부터는 일상에 의미를 담는 연습을 해야한다. 글에 사소한 일상의 작은 깨달음을 담아내는 연습이다. '아, 이 작가는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이렇게 느꼈고 이런 점을 배웠구나'의 힘은 크다. 경험을 나열해 공유하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라는 사람이 느낀 특별한 감정과 소중한 교훈을 나누는 것은 누군가가 "나"의 글을 꾸준히 찾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쓰는 습관>, 결국 용기만 잔뜩 주고 글을 쓰는 방법은 알려주지 않는거야?

걱정 마시길. 후반부에는 구체적인 기술이 설명되어있다. 글쓰기를 습관화 하는 기술,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기술, 글쓰기가 즐거워지는 기술 등 저자 본인이 글을 쓰는 기간이 길어질 수록 느낀 순서대로 나열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글쓰기를 습관화 시킨 다음 권태로움을 극복하고, 글쓰기를 오래도록 유지하는 마무리까지. 세심하고 다정하다.

사진으로 첨부하진 않았지만 마지막 페이지의 [오늘의 글쓰기 소재]가 가장 좋았다. 글쓰기는 하고 싶은데 어떤 글부터 써야할지 막막한 사람들을 위한 가이드 라인이다. 글쓰기 강의, 브런치 작가 등 일반인의 작문 진입장벽이 낮아진 요즘, 나 또한 최근에 개설한 브런치 채널에서 이 가이드라인을 시도해보고자 하고 있다. 만일 플랫폼에서 글쓰기를 시작한 지 얼마 안된 "예비 작가"라면 이시카와 유키의 <쓰는 습관>으로 건강하고 따뜻한 작문 습관을 오래토록 곁에 둘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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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레 드 발자크, 어둠 속의 사건 / 끌어내리지 못하면 함락 당할 것이다. | 기본 카테고리 2022-09-1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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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둠 속의 사건

오노레 드 발자크 저/이동렬 역
민음사 | 2022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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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into that darkness peering, long I stood there, wondering, fearing, doubting, dreaming dreams no mortal ever dared to dream before.

-Edgar Allan Poe

어둠이 응시하고 있는 깊은 곳에, 나는 서 있었네. 방황하며, 두려워하며, 의심하며, 그리고 그 어떤 사람도 감히 두려워 꿈꾸지 못했던 꿈을 꾸며..

-에드거 알렌 포


어둠 속에서 길을 찾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방랑자는 달빛 한 줄기를 등대 삼아 갈피를 잡는다. 그러나 짐승과 덫으로 가득한 이 곳 1790년대 프랑스,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둠 속의 사건>은 아군과 적군이 모호한 채 시작한다. 주인공 미쉬는 시뫼즈 가문의 충성스러운 복심이지만 자코뱅파로 가장해 지내는 인물이다. 반대로 마리옹은 시뫼즈 가문의 집사가문 출신이지만 말랭의 대변인으로 시뫼즈 가문의 대척점이 위치한 인물이다. 시뫼즈 가문과 공르드빌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음모는 몇 년 후 말랭의 실종 사건으로 폭풍우에 휩싸인다.

발자크의 <어둠 속의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 시간적 배경인 프랑스의 근대사를 간단히 짚고 가야한다. 1793년 루이 16세 (마리 앙투아네트) 사형 후 부르봉 왕가는 폐지되고 공화국이 집권한다. 이 후 혁명의 이름으로 형장의 이슬이 된 귀족들이 생기며 저명한 가문의 인물들은 망명하거나 재산을 몰수 당한 채 조용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나폴레옹 집권 후 공화국은 저물고 만다. <어둠 속의 사건>은 바로 이 시기를 다룬 작품이다.


"피고인들의 이름으로, 본인은 그 무엇도 지우지 못할 여러분의 치명적 오류를 사전에 용서하고자 합니다!" 하고 그가 외쳤다. "우리 모두는 어떤 알 수 없는 마키아벨리적 세력에 농락당한 것입니다. 마르트 미쉬는 가증스러운 음모의 희생양이며, 불행을 돌이킬 수 없게 될 때에야 사회는 그 사실을 알아차릴 것입니다."

292쪽

최근 프랑스 부자들은 왜 부유하다는 것을 최대한 감추는지에 관한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농담삼아 한 이야기겠지만, 시민들은 더 가진 자를 끌어내리려는 혁명적 본능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였다. <어둠 속의 사건>에서는 그들의 혁명적 본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끌어내리지 못하면 함락당하는 절체절명의 순간들, 결국 가장 정의로운 자와 모두가 살리려 한 자들은 목숨을 잃고 만다. 살아남은 자들이라고 명예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도 아니다. 발자크의 작품은 아주 현실적이다. 그의 이야기는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당대의 정치 상황과 여타 여론을 담는다.

<어둠 속의 사건>은 1800년 상원 의원 클레망 드 리 납치 사건을 기원으로 집필된 작품이다. 실화와 픽션을 넘나드는 구성으로 한 편의 장편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어둠 속의 사건>을 읽기 전, 발자크의 작품자체를 "인간극"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묶어놓음이 의아했다. 발자크 자체가 문학의 한 분야가 된다니, 얼만큼 대단한 사람이길래? 라는 생각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자크 그는 진짜였다. 인물 묘사부터 미묘한 관계와 숨막히는 추격전을 영상처럼 집필했다. 긴장이 흐르는 다큐멘터리의 향이 스치는 문학 작품, 그 원조는 발자크가 아니었을까.

P.S 로랑스, 당신이 승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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