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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 : 어느 책에도 쓴 적 없는 삶에 대한 마지막 대답 / 빅터 프랭클, 완독서평 / 지 | 기본 카테고리 2022-02-26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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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빅터 프랭클

빅터 프랭클 저/박상미 역
특별한서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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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당신들이 나를 찾아온다.

당신들은 내게 말한다.

우리를 위해 살아달라고.

삶에 대한 의무감이 나를 에워싼다.

그래서 나는 당신들을 죽인 그들을 죽일 수가 없구나.

붉게 타오르는 태양 속에도

나를 응시하는 당신들의 눈빛이 있다.

푸른 숲속에도

내게 손짓하는 당신들이 있다.

당신들이 빌려준 목소리로.

지저귀는 새들이 나에게 말한다.

당신들이

내 목숨을 살려주었다는 것을.

(1946년, 프랭클의 시)


1905년에 태어난 빅터 프랭클, 그의 어린 시절은 따뜻하고 즐거웠다. 여느 행복한 가정의 서사가 시작될 때 등장하는 이야기처럼 엄격하지만 자상한 아버지와 늘 사랑을 베푸는 어머니, 친구같은 형과 여동생까지. 그런 그가 세계적인 심리학자, 로고테라피의 창시가가 되기까지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인생 자체가 로고테라피 심리학의 대표적인 표본이 되어, 지금까지도 역경을 인생의 걸림돌이라 여기는 많은 내담자들의 한 줄기 빛이 되주고 있다. 이런 그의 이야기를 담은 [빅터 프랭클]은 경어로 시작되어 유머러스한 그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과는 대비되는 어둡고 비극적인 그의 삶을 보여준다. 그리고 인생 전반에 걸쳐 그 것을 어떻게 극복하고 하나의 연구로써 승화시킬 수 있었는지 제시한다.


로고테라피가 안내하는 '삶의 의미 찾아내는 법'

① 창조가치 :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② 체험가치 :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③ 태도가치 :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자주 접했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는 다르게 빅터는 현실에서 삶의 의미를 추구할 것을 명시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무의식과 사회의 규범은 항상 갈등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삶은 시련의 연속이라 한 반면, 빅터는 무의식보다 현재 본인이 처한 환경에 닥친 시련을 극복하고 그 것을 본인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빅터는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아내와 부모님, 형을 잃고 만신창이가 된 채 현실로 복귀했다. 지옥과 다름없었던 곳에서 그가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로고테리피 정신에 입각한 그의 정신력 덕분이였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의 연속인 현실을 부정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느니 오히려 그것을 직면해서 작품으로 승화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수용소 이후의 빅터가 제시한 로고테라피는 다소 무겁고 깊은 느낌을 받았다. 책에 따르면 빅터는 선천적으로 회복탄력성이 좋은 사람이라고 언급된다. 이는 그가 애초에 삶을 즐기고 사건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특화되어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닥친 시련에 대해 무의식과 미련이라는 방해요소로 발목을 잡히지 않고 앞으로 진전할 수 있었다. 수용소 이전의 빅터 프랭클의 로고테라피가 마음의 공허함과 정신적 고통을 경감시키고 경험으로써 받아들일 수 있게끔 도모했다면 수용소 이후의 로고테라피는 버틸 수 없는 시련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그것을 삶의 의미로써, 인생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는 발판으로써 역할에 충실하다. 단순히 삶의 시련을 넘어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무의식에 가둬버리지 않고 삶의 일부분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로고테라피를 실천하는 것은 간단하다. 겪은 일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시련을 상처로 남기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이행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고통이 닥치는 순간, 왜? 라는 의문을 버리고 이 고통이 나에게 가르쳐주려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여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를 떠올리는 사람을 얼마나 될까. 로고테라피를 창시한 박사 빅터부터도 엄청난 정신력의 소유자임에 틀림없는데, 보통의 사람의 정신력으로는 완벽한 로고테라피를 실천하는데 애로사항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빅터 프랭클]을 읽고 과연 내가 로고테라피를 실천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좋아하는 철학가 에밀 시오랑은 말했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인간에게 최선이다."

그렇다. 태어났다면 고통과 시련은 피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빅터 프랭클의 가르침을 잊지 않을 것이다. 이미 태어난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덩그러니 놓여진 것은 이미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빅터는 그의 삶 전체를 바쳐 고통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삶을 더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앞으로 다가올 고통을 기꺼이, 즐겁게 받아들여 마음의 면역을 키우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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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 이전의 샹그릴라 / 나기라 유, 완독서평 / 다행이야. よかった。 | 기본 카테고리 2022-02-2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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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멸망 이전의 샹그릴라

나기라 유 저/김선영 역
한스미디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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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간식으로 내줄게. 비축용 크래커에 바르면 맛있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자 유키가 환하게 웃었다.

"왠지 요즘 어머니는 정말 '어머니' 같아."

"응?"

"오후 간식이라니."

유키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뒤뜰로 나갔다. 열일곱살 유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갓난아기였을 때, 어린아이였을 때, 초등학생이었을 때, 중학생이었을 때의 유키를 떠올렸다.

─ '어머니' 같아.

그러게, 이제 와서 말이지. 서글픈 웃음이 나왔다. 나는 언제나 일 때문에 바빠서 유키의 곁에 거의 있어주지 못했다. 유키는 언제나 아무도 없는 아파트에 돌아와서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오후 간식은 한 번도 만들어준적이 없었다.

─ 늦었지만 기회를 얻어서 다행이야.


얼핏 보면 전혀 접점이 없어보이는 조합의 네 사람이 모였다. 네 사람이 '만났다' 라는 표현도 생각났지만 그들은 우연히 '만났다'라기 보다는 어떤 공통 속성을 지니고 '모였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작품은 유키의 현실도피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노우에 무리에게 괴롭힘 당하고, 심부름 담당인 학교폭력 피해자 유키는 머릿속으로 가해자 무리를 저주한다. 정말 고통스러운 저주는 아니고 주문할 음식을 잊어버린다던지 같은 가볍고 유머스러운 저주이다. 고통스럽고 잔인한 저주는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유키는 태생적으로 선한 인물같았다. 어느 날 뉴스에서 흘러 나오는 지구멸망설, 한 달 뒤면 지구가 멸망한단다. 그런데, 유키가 도쿄에 꼭 가야하는 이유가 생겼다.


급격히 시야가 흐려져서 손으로 눈가를 가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앞으로 한 달이면 죽는 이 마당에, 세상에 태어난 기쁨을 곱씹고 있다. 이런 막바지에, 어째서 내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어째서? 어째서?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나는 여기에 있는 누구보다도 머리가 나쁘다.

202쪽

신지는 야쿠자다. 정확히 말하면 야쿠자 아래 잡일을 도맡아하는 하수꾼이다. 몸을 쓰는 일밖에 할 줄 몰라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만 한다. 그리고 마음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들짐승같은 사나이다. 그런 그가 우연히 만난 학교폭력 피해자 유키. 미혼모 시즈카의 부탁으로 도착한 이 곳에서 유키를 구한다. 그렇게 뭉친 네 사람. 유키, 유키에, 신지, 시즈카. 쌩뚱맞은 조합의 네 사람의 여정이 시작했다.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전개가 펼쳐진다. 남긴 피붙이 하나 없어 스스로를 고독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은 신지,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 그가 기쁨의 눈물을 흘릴 만큼 가슴 벅찬 일은 무엇이었을까?


죄송해요, 하고 유키에가 작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고마워"

"네?"

"자기가 누군가를 상처 입혔다는 사실은 잊고 싶은 법인데, 계속 기억했다가 사과해줬잖니."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것을 너무 용서해도, 너무 용서하지 않아도 안 된다. 이 아이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고 있다. 당찬 겉모습과 달리 섬세하다.

241쪽

가수 Loco를 보겠다며 무작정 도쿄에 가겠다는 일념으로 전차에 탑승한 유키에는 유키가 없었다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는 좋은 집안의 미소녀였으며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상위 영역의 여학생이였다. 초등학생 시절 남몰래 도쿄에 가겠다며 혼자 앉아있던 그녀에게 유키는 따뜻한 위로를 건네준 적이 있었다. 유키에는 유키의 위로에 마음의 위안을 얻었지만 재회했을 때에는 어린 마음에 노골적으로 그를 무시했었다. 그럼에도 유키는 끝까지 유키에에게 진심이었고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타인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유키에에게는 누구에게도 말 못한 사정이 있었는데….


우리가 맞은 만큼 누군가를 떄려도 우리가 맛본 고통은 상쇄되지 않는다. 그것을 젊었을 때 이해했다면 조금 더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이해하려면 어느 정도 인생 경험이 필요해서, 이해했을 때에는 지나간 실수를 되돌아보는 처지일 때가 흔하다. 그러니 하다못해 더는 나빠지지 않도록 뒤늦게나마 막아보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부조리해도 우리에게는 그것이 성장이다.

254쪽

아들을 혼자 키우는 단단한 엄마 시즈카.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냐는 물음에 늘 점잖고, 건강한 훌륭한 사람이었다고만 답한다. 그러나 점잖고 훌륭한 남자와 아이를 가졌을 것이라고는 상상이 안되는 거친 그녀의 모습이 어딘가 아이러니하다. 홀로 아이를 키우며 힘든 내색 없이 살아왔던 그녀에게 한 달 이라는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헌데 하나뿐인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와 함께 도쿄에 가야한다고 통보한다. 그에게 쥐어주는 칼 한자루와 돈.

결국 그녀는 아들의 위험을 감지하고 아들을 찾아가 함께 여정을 떠난다. 야쿠자였던 전 애인, 사랑하는 아들, 아들이 좋아하는 여학생이라는 희한한 조합과 함께하는 마지막 한 달간의 시간. 아이러니하게도 무리 안에서 그녀는 삶의 소중함을 느낀다. 함께 밥을 지어먹고, 시간을 보내고 농담을 주고받는 평범한 가족의 일상. 시즈카가 그것을 느껴본 적이 언제였던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좋아요'를 누른다. 혹은 누르지 않는다. 상대방도 좋아요를 누른다. 혹은 누르지 않는다. 마지막 날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번식하듯 연결되어 간다.

385쪽

가수 Loco가 오사카에서 마지막 공연을 준비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의 마지막 공연일 뿐만 아니라 청중에게도 마지막 공연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우리는 번식하듯 연결되어 간다' 라는 말이 와닿았다. 지금도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와 연결되어간다. 인터넷에 접속해 누군가에게 게시물을 전달하고, 의도하지 않아도 같은 네트워크에 접속한 익명의 이들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우리가 진정으로 소중하게 생각해야할 것을 분간하는건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인간은 너무 많은 선택지가 주어지면 오히려 혼란스러워한다고 한다. 차고 넘치는 관계와 정보 속에서 우리는 정작 중요한 것들을 잊고 산다. 그것이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말이다.

그래서 [멸망 이전의 샹그릴라]는 극단적인 환경을 제시한다. 한 달 뒤에 지구에 혹성이 떨어져 모두가 죽는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가장 사랑하는 것을 추구할 수 있을까?

정답은 없다. 그러나 한 번 쯤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보며 최선을 솎아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극단적인 상황이 오지 않았음에, 최선의 것들이 내 곁에 있음에 "다행이야,よかった。" 라고 말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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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기의 달이 뜨면 / 에릭 라슨, 완독서평 / 처칠의 최측근 되어보기 | 기본 카테고리 2022-02-2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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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폭격기의 달이 뜨면

에릭 라슨 저/이경남 역
생각의힘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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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ccess is the ability to go from one failure to another with no loss of enthusiasm.

성공이란 열정을 잃지 않고 실패를 거듭할 수 있는 능력이다.

Winston Leonard Spencer-Churchill

[폭격기의 달이 뜨면]은 1940년과 1941년 경 영국의 총리 처칠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논픽션 작품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2차 대전 동안 일어난 크고 작은 상황을 열거해 놓은 형식으로, 처칠의 정치적인 행보뿐만 아니라 가족사, 개인사까지 두루 짚어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2차 세계 대전에 대한 정보보다 처칠의 인간적인 면모와 그의 가족들의 사사로운 사건들이 흥미로웠다. 특히나 친구이자 동료인 비버브룩에 대한 믿음과 집착은 위풍당당한 한 나라의 수장으로서 처칠이 아니라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가는 한 인간으로 비춰질 수 있게끔 느껴지게 만든다. 그래서 처칠의 인간적인 모습들과 그의 측근들이 겪은 재밌는 일화들을 중심으로 소개해볼까한다.


1940년

콜빌은 자주 전화를 받았고 그때마다 처칠을 찾았다. "윈스턴을 찾으러 장미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콜빌은 일기에 그렇게 썼다. 그는 처칠에게 프랑스인들이 곧 항복할 것 같다고 말했다.

처칠은 말했다. "그들에게 말하게. …그들이 함대를 우리에게 넘긴다면 결코 잊지 않겠지만 만약 그들이 우리와 상의하지 않고 항복한다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야. 그들의 이름을 천년 동안 욕되게 할 것이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덧붙였다. "물론 아직은 그러지 말게."

129쪽

물론 아직은 그러지 말게… 이 부분을 읽고 피식했다. 오로지 물리학자 린드만에게 초점을 두고 어떻게해서든 승리를 쟁취하려는 처칠, 그가 자신만만하게 외친 결코 용서하지 않을것이며, 천년 동안 욕되게 할 것이다! 이후에 덧붙인 기운빠지는 이 한마디. 실행력이 뛰어난 처칠이지만 동시에 사리를 잘 살피는 훌륭한 계략가이기도한 그의 모습을 알 수 있었다.


메리 처칠과 그녀의 친구 주디 몬태규에게 조종사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두 처녀는 노퍽에 있는 주디의 시골저택인 브레클스홀Breccles Hall에서 '한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메리의 표현대로 "특별한 친구"가 되었고 …"건초더미에서 가벼운 애무를 하거나 그냥 정원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남자들은 대부분 20대였고 중산층 출신이고 미혼이었다. 메리는 그들에게 묘한 매력을 느꼈다.

197쪽

물론 훗날 메리 처칠은 적십자사에서 활동하며 자원봉사단으로 전쟁에 합류한다. 그러나 크고 작은 공습으로 사상자가 날마다 늘어가는 판국에 폭격기 조종사들과 저택에서 희희낙락하고 있는 모습은…. 생각해보면 국가에 큰 위험이 닥칠 때마다 목숨을 잃고 고통받는 이들은 힘없는 민간인들이었다. 영국 최고 권력자의 막내딸이 조만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조종사들과 이토록 평화로운 희롱을 즐기는 것은 큰 일도 아니리라. 하지만 읽으면서 썩 유쾌하지 않았다.


전쟁의 트라우마를 진정시키는 가장 보편적인 처방은 단연 차(茶)였다. 차는 전쟁을 견딜 힘을 주었다. 사람들은 공습이 계속되는 중에도, 산산조각이 난 건물에서 시신을 찾다 잠깐 쉴 때도 차를 끓였다. …선전 영화에서 차를 끓이는 모습은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의지의 상징적 비유로 사용되었다. …전쟁 중 런던을 다룬 한 연구 자료는 그렇게 밝혔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차 한 잔은 실제로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큰 격려가 되었다."

…린드만은 처칠과 각별한 사이였지만 그의 만류는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일주일에 3온스로 늘어난 차 배급제는 1952년까지 그 효력이 지속된다.

그러자 사람들은 사용한 찻잎을 다시 쓸 수 있도록 말렸다.

274쪽

처칠의 최측근 중 한명이었던 린드만은 전쟁으로 가장 심한 고통을 받는 계층이 노동계급과 일용직임을 언급한다. 동시에 차 배급과 사기에는 밀접한 연관이 있으므로 엄격한 차 배급제를 지양할 것을 간접적으로 제안한다. 그러나 처칠은 여전히 적은 양의 차 배급을 유지한다. 이로 인해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는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다. 영국 국민들의 차 사랑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차 배급제가 이루어진 나라는 몇 없을 것이니….


특히 부자연스러운 것은 그런 회색 바탕과 대조되는 핏빛이었다. 작가 그레이엄 그린Graham Greene은 폭탄을 밪은 건물에서 빠져나오는 군인들을 본 어느 날 밤 "먼지가 뽀얀 찢어진 잠옷에 핏빛 반점이 선명한 남녀들이 문간에 서있는 연옥"을 보았다.

309쪽

영국 전시소설의 대가 그레이엄 그린이 폭격의 현장에 있었구나. 그의 소설 [사랑의 종말The End of the Affair]의 배경이 폭격을 맞은 영국 런던이다. 루프트바페의 3차례에 걸친 공습은 영국을 무너뜨렸다. 하늘이 불타고 지상은 화염으로 가득찼다. 회뿌연 먼지는 사망자와 생존자를 가리지 않고 덮쳤다. 장면을 상상하며 읽으니 [사랑의 종말]의 장면 장면이 스치는 듯 하다.


1941년

비버브룩의 입장은 확고했다. 그는 토라진 학생처럼 1월 6일 월요일에 애당초 장관이 되고 싶었던 적도 없다고 처칠에게 말했다. …그는 다시 한 번 새 의장직을 거절하면서 항공기생산부 장관직도 사임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지나친 요구였다. "자네를 놔줄 생각은 추호도 없네." 처칠은 그렇게 답장했다. "자네가 그렇게 비정사적이고 쓸모없는 고집을 부린다면 나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고 느낄 것이네." 보기에 따라서는 총리의 의견 전달이 아니라 버림받은 애인의 편지에 더 가까웠다. "…내가 얼마나 자네의 조언에 의지하고 위로를 받는지는 누구보다 자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자네가 이렇게 나오다니 믿을 수가 없네."

489쪽

애초에 처칠이 비버부룩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위임했다. 그는 전시에 급박하게 신설된 항공기생산부 장관직뿐만 아니라 처칠의 크고 작은 업무를 공유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비버브룩이 저토록 강경하게 사임을 주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비버브룩은 2차대전이 마무리 될 때까지 처칠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비버브룩은 처칠의 믿음직한 친구로, 든든한 조력자로써 영국사의 한 획을 긋는다.


"하지만 이건 진짜다. 카페드파리가 당했다. 죽은 사람도 부상자도 많이 나왔다. 그들도 우리처럼 춤추고 웃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에서 한순간에 거대하고 무한한 미지의 세계로 사라졌다."

일행이었던 메리의 친구 톰 쇼네시Tom Shaughnessy는 그 비극을 사후세계와 연결시켜 상상했다. "카페에서 급사한 사람들이 갑자기 살아나 여기 있는 우리를 본다면 이렇게 말할 거야. '계속해. 음악, 주세요. 계속해, 런던.'"

551-552쪽

만일 메리 처칠이 카페드파리에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있었다면 2014년까지 살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우연과 우연이 겹쳐 사라진 자와 살아남은 자로 나뉘었고, 살아남은 그들은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 했던가. 전쟁이 발발하던 이 시기의 선택은 몇가지 변수로 생사의 갈림을 결정지었다. 흥겨운 순간이 생존의 비명으로 뒤바뀌는 순간은 찰나였다. 여담으로 처칠의 딸 메리는 참 운이 좋은 여인네같다.


같은 주 수요일에 비버브룩 경은 처칠에게 또 다시 사표를 제출했다. "나는 정부 일을 그만두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오랜 우정을 인정하는 말로 문제를 얼버무렸다. "헌신과 애정으로 제 공식적인 관계를 끝내려 합니다."

"개인적인 관계는 그대로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그렇게 덧붙였다.

결국 처칠도 승낙했다.

… 5월 1일 목요일에 처칠은 비버브룩을 '정무장관(Minister of State)'에 임명했고 비버브룩은 "저를 그냥 보내주셔야 한다"며 거세게 항희한 후 그 직책을 수락했다. 하지만 그는 그 직책이 영국의 모든 생산 공급부처를 관할하는 위원회를 감독한다는 기본 임무만큼이나 모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523쪽

영원히 고통받는 비버브룩…. 그는 몇 번이고 처칠에게 사임의사를 표명한 듯 했다. 그러나 처칠은 만만치않은 상대였다. 정부 일을 그만두는 것을 승낙하면서 또 다른 직책을 부여하는 처칠, 그리고 마지못해 받아들여야하는 비버브룩. 그들은 정치적인 관계 이상의 끈끈한 우정으로 다져져있다. 그렇기때문에 비버브룩경은 결국 처칠에게 백기를 든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새로운 직책이 영국 대중들에게는 환영받았다. 어떤 면에서는 비버브룩이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정부 직책을 포기할 수 없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도 들었다.


요제프 괴벨스는 처칠의 하원 연설이 '변명'만 가득할 뿐 알맹이가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나약하다는 조짐은 안 보인다."… 괴벨스는 일기에서 처칠에 대한 새삼스러우 존경심을 털어놓았다. "이 사나이에겐 영웅심과 교활함이 묘하게 뒤섞여 있다. 만약 그가 1933년에 정권을 잡았다면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몇가지 문제가 더 생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해결할 수 있고 실제로 해결할 것이다. 그래도 여느 때처럼 그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될 것 같다."

643쪽

괴벨스는 처칠을 존경함과 동시에 이길 승산이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실제로 이 시기는 일본이 합세하면서 독일군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는 시기였다. 괴벨스는 철저히 영국을 굴복시킬 심산이었고, 실제로 이어진 공습과 독일군의 영국진지 탈환은 영국을 점점 더 어둠속으로 고립시켰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세계 2차 대전은 독일의 완벽한 패배로 마무리된다.


작품 자체가 열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했다. 일단 방대한 양 자체가 그렇고 등장하는 인물들도 매우 다양하다. 그래서 읽는 내내 전체적인 맥락과 측근들의 시선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패전국과 미국이 중심이 되었던 머릿속의 세계사 부분에 영국이라는 나라가 완벽히 자리잡을 수 있었다. 또한 처칠의 인생 중 가장 중요한 시기 중 한 부분을 그의 둘도 없는 친구처럼 알고 싶다면 한 번쯤 읽어봐야하는 작품이다. 여담이지만 이 거대한 서사를 정복하고 나니 앞으로 그 어떤 책도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처칠과 같은 신념과 정복욕을 가진 자라면 꼭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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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공화국 / 안드레스 바르바, 완독서평 /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 | 기본 카테고리 2022-02-22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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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빛의 공화국

안드레스 바르바 저/엄지영 역
현대문학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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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r always springs from ignorance.

Ralph Waldo Emerson

1993년 4월 13일, 화자인 나와 마이아는 산크리스토발에 도착했다. 그곳은 푹푹찌는 더위와 짙은 녹음, 검고 깊은 에레강이 흐르는 곳이다. 이 곳에는 언젠가부터 어디서 나타났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아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주민들은 들개처럼 무리지어 다니는 아이들에 대해 동정심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주민들의 호의와 배려를 야만적인 행실로 답한다. 준비한 음식들을 모조리 망가뜨려놓거나, 관심을 보이는 주민의 물건을 낚아채는 등 사회화된 인간의 시선으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보인다. 그리고 다코타 마켓 습격사건을 기점으로 아이들과 본격적인 대립의 각을 곤두세운다.

아이들 중에서 권위와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든 것을 준비하고 일사불란하게 조직하는 아이도 없는 듯 보였다. 아이들 무리는 어떤 꼐략이나 음모에 따라 정해진 대로 움직이지 않았으며 …그와는 정반대로,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무슨 놀이를 하고 있는 듯했다.

90쪽

1995년 1월 7일, 경비원은 물건을 훔치러 온 아이들을 진압한다. 아이들의 뺨을 때리지만 그 것을 제지하는 이는 없었다. 이 후에 아이들의 습격이 시작되었다. 살육의 현장에서도 그들은 일사불란하지 않았다. 칼을 휘둘고 있는 아이가 있는가하면, 울고 있는 아이, 물건을 훔치는 아이 등 그들의 양상은 다양했다. 그들을 추적하기 위해 에레강 동쪽으로 수색을 시작하였지만 결과물은 뚜렷하지않았다. 산크리스토발 어른들에게는 아이라는 미명 아래 살인을 저지른 무리로써, 사건 이 후 수사의 방향성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러나 주민들의 아이들에게는 뭔가 다른 점이 포착되고 있었다. 그들은 32명의 소리를 듣기 위해 땅에 귀를 대며, 실제로 그들과 무언의 접촉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32명의 아이들은 그들을 포섭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만일 네가 생각하는 바를 그들의 방식대로 말할 수만 있다면, 그 아이들은 보다 쉽게 너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 아이들도 너와 똑같은 것을―다만 다른 곳에서―하고 있을 테니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열심히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것이 가장 우선이다. 그런 다음, 혼자 있으라. 그 아이들은 혼자 있으면서도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116쪽, 오타뇨의 「32명의 아이들에게 바치는 기도」

그들의 방식을 이해하기보다는 사회적 인간의 모습으로 접근했던 것 부터가 잘못되었을까? 혹은 아이들이 시사하는 바를 알면서도 그것을 외면하면서 터득해야했던 어른 세계의 법칙이 있었던 것일까? 어른들은 표면적으로는 아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끌어내야한다는 모습이 강했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도시를 위협하는 무리를 정복하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했을 것이다. 반면 아이들은 어떤 신화적인 존재로써 그들을 받아들였다. 요정과 괴물을 믿으며 동화를 읽으면 인물과 화자를 동일시하기도 하는, 어린 아이들에게 그들은 살아있는 이야기였다. 때문에 접근 방식에 있어서 전혀 다른 행보를 보였다. 사소하지만 유의미한 이 변화를 어른들은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다. 어른들은 여전히 정치와 언론의 도구로써 사건을 통제하려는 면모를 보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건의 정치적인 도구를 배제한, 32명의 아이들의 본질을 바라보는 계기가 발생한다.

그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 게 바로 그 무렵이었다. 아이들이 하나씩 둘씩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밀림의 아이들이 아니라, 우리들의 아이들이 말이다.

154쪽

길거리의 아이들이 아니라, 가정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의 실종은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하게끔 유도한다. 자녀를 잃어버린 자들은 시에 강경한 대책을 요구하며 울부짖는다.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에레강으로 향한 그들은 경이롭고 무시무시한 광경을 마주하게 되는데…


예전에 보았던 다큐멘터리에서 한 실험이 문득 떠올랐다. 곤경에 처했을 때 성장기 쥐와 완전히 성숙한 쥐의 행동양상과 뇌파를 분석하는 실험이었다. 성장기 쥐는 곤경을 발견한 즉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배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성숙한 쥐는 한 자리에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는 산크리스토발에 등장한 곤경이라는 이름의 32명의 아이들을 대하는 주민들의 모습과 같은 선상에 있다고 느껴졌다.

산크리스토발 주민들은 무지에 대해 각기 다른 태도를 보인다. 어른들은 개체에 대한 무지를 방어적으로 대하는 반면, 아이들은 무지를 신비와 호기심의 대상으로써 받아들인다. 무지의 언어를 습득하고 그들과 동화된 아이들은 완벽히 다른 삶을 맞이했다. 그들은 다시는 인간의 세계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사건을 겪은 이들의 기억 속 산크리토발은 언제까지나 신비를 간직한 곳으로 남아있다.

이 책의 제목은 [빛의 공화국]이다. 그러나 끝까지 읽어보기 전까지는 절대 그 제목의 유래를 유추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절정에 다다랐을 때 서늘한 충격과 경이로움은 여전히 내 맘에 머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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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 : 어느 책에도 쓴 적 없는 삶에 대한 마지막 대답 / 빅터 프랭클, 중간리뷰 ③ | 기본 카테고리 2022-02-18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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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빅터 프랭클

빅터 프랭클 저/박상미 역
특별한서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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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무주의자들의 태도, 만사를 부정하는 냉소주의자들의 태도는 악순환 관계에 있습니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은 단 한가지입니다. '폭로하는 자를 폭로하는 것' 입니다. 즉, 폭로하는 자의 오류를 폭로하는 것이지요 . 예를 들면, '폭로의 심리학'이라 불리는 '무의식의 심리학'을 폭로하는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우리에게 무의식을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력하게 주장해왔습니다. 프로이트의 일방성이지요. 하지만 나는 무의식을 파고드는 것을 어딘가에서 멈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62쪽

무의식을 드러냄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은연중에 나오는 말과 행동을 분석함으로써 문제의 근원을 발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하는 부분의 무의식만 드러낸다는 보장은 없다. 스스로 부끄럽고 은폐하고 싶은 무의식까지 내놓아야한다면 문제 해결이라는 초점에서 벗어날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박사 빅터는 무의식을 파고드는 것을 어딘가에서 멈춰야한다고 제시하지 않았을까. 로고테라피는 고통을 현실에서 수용하는 것까지만 언급한다. 내담자의 고통이 어떤 무의식에서 발현되었는지, 왜 그것이 고통으로 발전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고통을 본인의 것으로 만듦으로써 미래지향적인 태도에 보탬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할 뿐이다. 문득 일상에서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들이 내 마음을 좀먹는다면, 적당한 시점에서 놓아줄줄도 알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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