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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김없는 세계에도, 끊임없는 공감을 | 독서 2021-12-07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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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

한나 렌 저/이영미 역
엘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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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SF의 새로운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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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넓고 명작은 많다. 한나 렌의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은 아마도 올해 가장 의미있는 발견이라고 해도 좋을, SF를 사랑하는 팬의 입장에서 오래오래 기억될만한 작품이다. SF는 과학과 상상력이 기반이 된 '다른 세계'의 이야기이지만, 역설적으로 나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세상을 성찰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SF에서 시공간을 초월하는 이야기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함을 말해준다. 세계관 내의 다른 존재는 현재 우리와는 다른 장애와 편견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사랑이나 기쁨, 행복과 같은 가치는 어떠한 기술로도, 시간과 돈으로도 영원히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아주 잠깐의 즐거움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는 숭고한 감정을 일으킨다. SF를 본다는 것은 결국 지금의 나와 현재의 세상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좋은 SF 작품은 그러한 감정의 고양이 한없이 벅차오를만큼 장대하게 일어난다. 한나 렌의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도 그렇다. 표제작을 포함한 <제로 연대의 임계점>, <미아하에게 건네는 건총>, <홀리 아이언 메이든>, <싱귤래리티 소비에트>, <빛보다 빠르게, 느리게>의 수록된 모든 작품이 절로 감탄이 나올만큼 훌륭한 걸작이다. 현존하는 SF 작가 중에서 테드 창과 앤디 위어, 켄 리우가 거장의 위치에 올라 있는 듯 하지만, 한나 렌 또한 이들과 동일한 반열에 오를 것이라 예상한다. (물론 우리 나라의 김초엽 작가님이나 김보영 작가님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을 포함한 이 책에 수록된 중단편들은 한 작가가 썼다고 믿어지지 않을만큼 다양한 소재와 형식을 갖고 있지만, 공통적으로는 미래의 '새롭고 낯선 세계'를 다룬다.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은 여러 평행 세계를 이동하는 현실을, <미아하에게 건네는 권총>은 뇌과학으로 사랑을 지배해버리는 시대를, <싱글래리티 소비에트>는 공산주의의 인공지능이 세계를 지배하는 대체 역사를, <빛보다 빠르게, 느리게>는 2600만분의 1초로 시간이 흐르는 저속화 재난의 세계를 다룬다.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은 여러 평행 현실을 자유롭게 오가는 세계의 이야기다. 다양한 메타버스의 세계를 연상하듯, 이들은 어떠한 결핍 없이 원하는 세계에 원하는 캐릭터로 여러 세계를 옮겨다닐 수 있다. 최근 비즈니스에서 많이 쓰이는 용어 중에 'seamless'라는 말이 있는데, '솔기가 없는' 이라는 뜻이지만 '매끄럽고', '끊김없는' 고객 경험을 비유할때 많이 사용된다. 이를테면 클릭 한 번으로도 상품을 구매하는 등 고객이 신경을 크게 쓰지 않고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경험을 몰입해서 하는 경우다. 이러한 'Seamless'의 끝판왕이 나와 가상의 여러 평행세계가 끊김없이 몰입될 수 있는 세계, 바로 '매끄러운 세계'이다.

 이 '매끄러운 세계'에서 매끄러운 세계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승각장애'를 가진 이들이다. 승각장애는 나로부터 다른 나로 이동하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가 없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 세계의 본질을 벗어난 비주류이자 그 세계에서는 정상적이지 않은, 말 그대로 '장애'를 가진 이들이다. 인생의 '백업 데이터' 없이 단 하나의 세계에서만 머물러야 한다.

 이들은 소수의 비주류이자, 그 세계의 세계관을 위협하는 '적'이기도 하다. 자신들이 갖고 있는 승각장애를 다른 이들에게 전파한다면? 그것은 그 세계관의 주류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테러일 것이다. 승각장애를 안고 있는 주인공 하즈키의 친구인 마코토는 승각장애를 일으키는 약을 매끄러운 세계에 뿌리는 테러의 역할을 맡는다. 하즈키의 선택은 그저 마코토를 '지켜봐주는 누군가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이다. 하즈키는 전 세계를 구하고, 자신을 희생하여 마코토와 승각 장애를 함께 나눠갖는다.

 '승각장애'라는 말이 존재하지도 않는 우리의 현실은 당연히 하나의 가능성만을 가지고 사는 '백업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다. 여러 평행 현실을 오가는 새로운 세계에서도, 승각장애라는 비주류인 친구를 위해 같은 문제를 공감한다는 것. 매끄러운 세계가 일반 세계 던지는 가장 숭고한 대답이다. 우리에게는 단 하나의 세계, 단 한 번뿐인 오늘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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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이란 곧 집중력 | 독서 2021-10-26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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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초생산성

마이클 하얏트 저/정아영 역
로크미디어 |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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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우리가 집중했던 것의 총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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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이 뛰어난 기업인들은 생산성이 더 많은 일을 해내는 것이 아니라 옳은 일을 해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사람들이다. 생산성이란 적게 일하고 더 많이 이루는 것이다."
 

누구나 노력을 다해서 일을 많이 하고 싶지는 않다. 일을 많이 한다고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일은 '성과'를 전제로 한다. 성과라는 것을 차치하고 어떠한 인격적인 선함과 과정의 치열함이 좋게 평가받는 것은 한번도 보지 못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일은 성과를 위해 존재한다. 그럼에도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하는 경우는 성과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성과의 과실은 늘 소수가 갖게 되고, 그 소수가 또 성취를 반복한다.

일을 잘 한다는 것은, 고용주나 상사의 관점에서는 원하는 성과에 대한 기대를 충족하거나 뛰어넘는 것이지만, 일을 하는 주체인 개인으로는 내 개인적인 행복을 보존하는 선에서의 성과이다. 개인 생활을 희생하면서 일에 몰빵하는 성과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을 잘 한다는 것은, 일의 성과와 개인의 행복을 조율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분야는 일을 잘하는 법보다는 시간을 관리하는 법이다. 일을 잘 한다는 것은 얼마나 시간을 잘 관리하느냐는 능력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시간은 정해져 있으며 늘 부족하다. 시간을 쓴다는 것은 나의 선택과 남의 선택이 얽혀져 있으며, 때로는 시간이 다른 존재에 의해 '쓰여지는' 경우도 많다. 그런 와중에 성과란 나의 업무가 외부적으로 발현되는 순간에 나타난다. 나의 시간은 어느 정도는 생산적인 일에 쓰여져야 한다. 생산적인 일이 되려면 복잡한 일의 핵심을 파악해야 하고, 낭비되지 않고 올바른 진단 속에 실행이 이뤄져야 하며, 무엇보다 시간이 쓸데없이 낭비되지 말아야 한다.

마이클 하얏트의 <초생산성>에서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여러 방법의 본질은 바로 '집중력'으로 귀결된다. 삶의 영역에서 무언가를 창조하는 일은 집중력에 달려있다고 한다. 우리는 더 많이 일하면서도 더 적게 얻고 있으며, 그 결과 이루고 싶은 일과 완수하는 일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생긴다. 하지만 생산성이란 적게 일하고 더 많이 일한다는 것이다. 넘치는 정보 속에서 개인의 가장 가치있는 자원 또한 집중력이다.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하얏트는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법으로 '모든 일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중요한 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효율적으로 일하면서도 성과를 내는 아홉가지 비법을 소개한다. 일단 무조건적으로 많이 하는 일에 대해 '멈추고', 불필요한 일을 '잘라내고', 내가 갈망하는 일을 집중하면서 '행동하라'고 말한다. 낭비되지 않은 시간과 주의력을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생산성이란 일을 더 잘하게 됨으로써 중요한 것을 추구할 '자유'를 주는 것이라는 부분이다.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업무는 남에 의해 귀속되고 주체적인 목소리를 낼 수가 없는 구조다.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목적과 성공의 의미를 정의해보고, 내가 집중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면 일의 생산성은 물론 나의 일상도 보다 풍요로워질 수 있다.

하루에도, 1주일에도, 가장 중요한 3가지 일만을 성취하는게 중요하다는 점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일단 목표와 성공의 의미를 명확하게 정의하게 되면, 나에게 불필요한 일들이 걸러질 수 있다. '할일 목록'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목록'이 중요하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그리고 내가 갈망하는 업무 영역을 선택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과감하게 위임해야 한다. 이상적인 1주일 계획에 따라 나만의 루틴과 리추얼, 그리고 집중해야 할 부분에 대해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 <초생산성>에서 말하는 시간 관리의 핵심이다.

현대 사회에서 직장인의 경쟁력이란 성실성이 아닌 집중력이 될 것이다. 집중력은 내가 선택하는 것에 대한 전략적 판단과 몰두하는 열정을 동시에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집중력이 최대한 활용되어야 하는 이유는 성공의 관점보다는 행복의 관점이다. 누구나 일을 효율적으로 마무리하고, 개인의 행복과 즐거운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싶다.

여전히 나에게는 모르고 있는, 알고 싶은, 배우고 싶은 분야가 밤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남아있고 그것을 쫓아가기 위한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밖에서 배우는 지혜가 일에 무쓸모하냐 하면 그것은 또 아니다. 지혜는 일에 크고 작게 도움을 주는 인사이트의 가장 큰 원천이기도 하고, 일을 빨리 끝낼 수 있는 축적된 에너지와 같은 것이다. 시간을 관리한다는 것은 일과 개인 모두에게 복되다. 집중력의 시간이 오늘도 즐거운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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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생각하기 위해 있는게 아니야 | 독서 2021-10-20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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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리사 펠드먼 배럿 저/변지영 역/정재승 감수
더퀘스트 |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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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신이면서 가장 우아한 뇌과학에 대한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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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에 대한 관심은 곧 자기 계발에 대한 관심이기도 하다. 제발 나의 뇌가 무사히 잘, 최대의 성능으로 돌아가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이면에는 도대체 인간의 뇌는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원리를 알고 싶은 호기심이 있다. 뇌가 과연 컴퓨터의 CPU처럼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제어한다면, 뇌를 더 잘 일하게 만드는 성능 업그레이드의 법칙은 무엇일까에 대한 관심은 예전부터 늘 있어왔다. 하버드대학교 법,뇌, 행동센터장이라고 하는 리사 펠드먼 배럿의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Seven and a half lessons about the brains)>은 뇌과학에 대한 가장 최신 이론을 다루면서도 명확한 인사이트를 주는 고마운 책이다.

생명체에게 뇌는 왜 필요하며, 우리는 어떻게 뇌라는 1.4kg의 기관을 갖게 되었을까. 리사 펠드먼 배럿은 뇌는 생각하는 기관이 아니라, 에너지가 필요하기 전에 그 필요를 예측하고 효율적으로 신체를 제어하는 역할인 '알로스타시스(allostasis)'를 하는 기관이라고 한다. 뇌와 몸이 일종의 '거래'를 하면서 이른바 '신체 예산'을 관리한다는 것이다. 결국 뇌는 신체예산이 적자를 내지 않도록 인간을 생존하게 하기 위하여 몸을 제어하는 효율의 원리로 움직인다는 의미이다. 생각하는 일 이상으로 인간을 효율적으로 생존시키기 위해 예측하고 제어하고 관리하는 일이라는 것.

가장 신선한 충격을 준 부분은 뇌는 감각 데이터가 도달하기 전에 미리 '예측'을 한다는 '예측 기계'라는 점이다. 뇌는 인간을 효율적으로 생존시켜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면 과거의 기억과 환경에 의해 뇌가 작동된다는 운명론을 받아들여야 할까? 뇌가 예측하는 방식을 바꾸면 된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새로운 경험과 활동을 통해 뇌의 복잡성을 높이고 뇌가 조정하는 패턴에 대한 경우의 수를 조금씩 더 높여줘야 한다.

어제까지 입력된 예측 프로그램을 같은 패턴으로 반복하는 것은 뇌의 복잡성을 떨어뜨린다. 뇌가 할 수 있는 예측의 범주를 벗어난 새로운 경험과 활동이 필요하다.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에 도전하여 뇌의 복잡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오늘 배우는 모든 것은 내일을 다르게 예측하도록 뇌에 씨를 뿌려줄 것이다' 이 책에서 발견한 가장 금과옥조보다 빛나는 통찰이다.

이밖에도 여러번 곱씹어보고 기억해둘 부분이 많은 책이기도 하다. 뇌는 거대한 단백질 덩어리가 아니라 '네트워크'라는 것, 뇌가 복잡한 네트워크의 유기적 정보처리를 통해 창의성을 발현하는 복잡계라는 사실, 또한 뇌는 양육이 필요한 본성을 가진 기관이며, 뇌는 사회적 현실과 작용한다는 사실까지 뇌의 존재이유를 알려준다.

뇌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쉬지 않고 작동한다. 뇌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뇌는 복잡하면서도 체계를 가진 네트워크로서 끊임없이 다음 상황을 예측한다. 오늘 입력된 뇌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마도 이후 변화된 복잡계를 통해 앞으로의 예측을 고도화할 것이다. 또한 다른 뇌와 상호작용하여 내 몸의 기준을 변화시키고 내일의 세계를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인식하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같은 세상에 살지만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인지한다.

뇌는 내 자신에 대한 본질이자, 인간 전체에 대한 본질이기도 하다. 뇌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사회적인 현실을 창조하였듯이, 뇌와 인간의 존재이유는 타인의 마음을 받아들일 자세와 다양성을 받아들일 준비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상을 맞이하는 것이다. 조금 더 열린 태도로 삶을 살아갈 채비를 갖추는 것. 뇌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한 삶의 가능성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내일을 위해 무한히 남아있다. 뇌는 오늘도 쉬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든 일하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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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도 우리와 함께 살아왔지요 | 독서 2021-09-24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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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저
자이언트북스 |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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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모순과 편향을 극복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 쌓는 공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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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들은 아주 잘 짜여진 기계 같단다."

  <지구 끝의 온실>은 '식물'이 주요 소재가 되는 SF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라는 책을 보면, 인류의 농업 혁명시기 '밀'이 증식되는 현상을 보고 '사람이 밀을 길들인 것이 아니라, 밀이 사람을 길들였다'는 표현이 있다. 인간과 동물 뿐 아니라, 밀과 같은 식물도 자신의 종족을 보존하고 확산하려는 전략과 계획을 가질 수 있는 발상은 놀라운 것이었다. 우리 주변에 가까이 있으면서, 인간에게 휴식과 편안함을 선사하는 식물. 식물은 재빠르게 움직이고 이동하지 않더라도 지구의 어엿한 구성원으로 존재한다. 마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혼을 갖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의 주요 소재는 세발잔털갈고리덩굴, '모스바나' 라는 식물이다. 근미래 21세기의 인류는 '더스트 폴' 이라는 재앙을 맞아 돔에서 생존하는 시대를 지나왔다는 설정이 나온다. 더스트를 피하기 위한 미래 인류는 거대 돔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소수의 선택받은 자들을 위한 것이었고 더스트 시대 이후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통해 다양한 생물종이 등장하게 된다. 이후 더스트 적응종들이 생태계의 풍경을 바꾸게 되는데, 더스트 생태학자 아영에게 어느 날 모스바나라는 미지의 식물이 나타나게 되고, 아영은 그 식물의 기원을 추적한다.

  모스바나는 더스트와 흡사한 특성을 가진 확산력이 강한 식물로 나온다. 모스바나는 더스트를 억제하는 효능이 있지만, 모스바나의 확산은 다른 생태계의 존재를 막는 이중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아영은 더스트가 자연 발생적으로 태어난게 아니라, 누군가의 인위적인 계획에 의해 만들어졌고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과연 모스바나의 기원은 무엇이고, 왜 만들어지게 되었을까? 

  '더스트'를 막아주지만 마을의 생태계를 위협하는 모스바나, 그리고 더스트에 안전하면서도 또한 그것 때문에 존재 자체가 위험한 '프림 빌리지'. 그리고 프림 빌리지 내에 모스바나 식물과 방어용 로봇과 드론을 연구하는 온실. 이들의 존재는 모두가 양면의 딜레마를 안고 있다. 모스바나는 기회이자 위협이고, 프림 빌리지는 안전하지만 불안하고, 온실은 식물과 로봇을 동시에 연구한다. 모순적인 존재가 만들어낸 모순적인 상황. 김초엽 작가가 말한 '온실'의 존재 자체가 말하는,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이 결합된 모순은 프림 빌리지를 영원히 지속시키지 못한다.

  모스바나는 성장 중에 푸른 빛을 내뿜는 특성을 가진다. 모스바나는 숲을 지키는 것과 파괴하는 것을 동시에 이루는 모순적인 존재이면서, 인간들에게도 아름다움과 고통을 동시에 선사하는 존재다. <지구 끝의 온실>의 배경이 되는 21세기의 미래는, 자연 재해와 기술의 폐해가 더욱 인간을 모순적인 상황으로 이끈다. 아름다우면서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아름답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은.

  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이 가상의 미래에도 인류는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기대한다. 솔루션만 있다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근원적인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 솔루션은 계속된 새로운 문제를 야기시키고, 거듭되는 솔루션을 이어간다. 솔루션이라는 우산 안에서 인류가 그렇게 명맥을 이어가는 동안, 지수와 레이첼은 자신들만의 온실을 만들어낸다. 이들은 프림 빌리지에서 거래를 통해 서로의 원하는 것들을 충족시켜 가면서 살아간다. 서로가 필요한 '기능'으로.

  기능으로서의 관계란 서로간의 거래가 기반이 되지만, 기능을 넘어 애착의 감정이 들어가면 미묘한 애정과 갈등의 모순이 생기기 마련이다. 모스바나와 프림 빌리지, 온실이 만들어낸 딜레마는 레이첼과 지수의 관계에서도 모순을 만들어낸다. 거래와 애착 사이의 감정. 그리고 기능의 관계를 넘어 이들은 존재로서 인정받고 싶은 감정을 내비친다.

  모스바나도, 프림빌리지도, 온실도, 이들의 관계도 딜레마를 딛어야 하고, 모순을 견뎌야 하는 상황은 계속된다. 대립하는 가치 속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모순의 끝은 어떤 식으로든 종말이 되고, 종국에는 진짜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남는다. 그것이 서로에게 공통된 감정만은 아닐 수 있다. 어떤 이에게는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마음을 움직였던 감정이 될 수도 있다. 이 또한 영원히 겹칠 수는 없는 것이 딜레마의 끝이기도 하다.

  모순성으로 가득할 것만 같았던 이야기는 대안을 제시한다. 문제의 끝을 따라가보면 인간의 '편향'이 있으며, 그 편향은 어떤 방식으로든 극복되어야 하고, 그것을 통해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 앞으로도 깊이있는 시선으로 좋은 SF작품을 쓰실 것 같은) 김초엽 작가는 우리가 개입해 버린, 되돌릴 수 없는,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할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했다.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그것을 재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모순과 편향을 마주하지만, 그것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

  식물이 식물로 존재하는 식물인지 편향을 극복하고, '공진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모스바나와 인간 모두 존재하는 이유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결국 이 세계는 모순과 딜레마가 아니라, 공진화를 통해 만들어지는 세계였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와 다른 대상을 얼마나 모순이 아닌 공진화의 관점에서 보았던가.

  함께 공존하는 마음이 없이는, 문제와 솔루션은 끝이 나지 않고, 이야기가 완성되지 않는다. 지금도 우리는 수많은 문제와 솔루션의 끝없는 순환 속에서의 점으로 살고 있다. 인간이 문제와 솔루션을 만들고 해체하고 다시 만드는 동안, 우리는 다른 것을 돌아보는 마음을 얼마만큼 유지하고 있었을까. 우주는 인간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듯이, 지구 안에서는 인간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모두가 함께 존재하지만, 잘못되고 모순된 것들을, 우리의 마음으로 채울 수 있다면. 그리고 함께 어울려 진화하고 성장할 수 있다면. 오래오래 기억될 이야기들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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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업보와 운명에 대한 울림 | 독서 2021-08-1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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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리석은 자의 독

우사미 마코토 저/이연승 역
블루홀6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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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업보와 운명에 대한 울림을 주는 50년의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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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사회파 미스터리에서 다루는 본질적인 주제 중의 하나다. 인간은 왜 죄를 짓게 되었는가? 그것은 인간의 본성인가, 아니면 피할 수 없는 사회 구조적인 환경 때문인가? 거기에 대한 단죄는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사소한 잘못이든, 실수이든 여러 죄책감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비밀과 사연을 안고 산다. 저마다의 삶의 무게는 다르지만, 그러한 무게를 현실이 아닌 허구에서, 그것도 미스터리를 읽으면서 죄와 벌에 대한 무게를 재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나보다 무거운 삶을 짊어진 등장인물들을 보며 안도감을 느끼고, 때로는 생각없이 살아온 지난 과오에 대한 속죄와 반성을 하게 될 때가 많다. 죄와 벌을 다루는 사회파 미스터리가 강력한 울림을 주는 이유이다.

우사미 마코토의 <어리석은 자의 독>은 1965년, 1985년, 2015년의 시점에서 50년이 넘는 인생의 기나긴 여정 동안, 변하지 않고 함께 존재하는 우리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다룬 작품이다. 미스터리 장르지만 휴먼 드라마로서 인간에 대한 본성을 파고드는 '마음 저릿력'이 대단한 작품이기도 하다. 언뜻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와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의 잔상을 떠올리게 하는 이 책은, 시대에 풍파에 휩쓸린 인간이 기나긴 세월의 흐름 동안 절망과 분노에 어떻게 맞서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가난과 착취, 그리고 빠져나갈 수 없는 절망적인 환경이 놓여져 있을 때, 우리는 운명과 어떻게 맞서야 할까.

다른 사람에게 편승한 현자보다 오직 나 자신의 힘에 의지하는 어리석은 자. 이 책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은 남에게 의해 '어리석어져 버린' 자가 아닌, 나의 주체적인 힘에 의해 '어리석음을 선택한'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상황과 환경에 의해 좌우되는 인간이 아닌 나의 의지와 지식으로 진리를 향해 움직이는 마음. 니체가 한 말에서 시작된 이 말은 주요 등장인물의 행동을 설명하는 동력이 된다. 이 책의 제목이자 내용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한 '어리석은 자의 독'이란, 주변의 환경에 따라 휩쓸리는 운명이 아닌, 나의 의지로 운명에 맞서 싸우는 힘을 의미한다.

가슴 속에 독을 품으십시오. 어중간한 현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자기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아가는 어리석은 자야 말로 그 독을 유용하게 쓸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어리석은 자의 독입니다.

전체 이야기는 현재인 2015년과 과거를 오가는 총 3장의 구성으로 전개된다. 1장은 2015년의 요양원과 1985년 무사시노의 저택을 오가며 우연히 생년월일이 같은 두 여성 기미와 요쿄의 만남을 그린다. 동생 부부의 죽음으로 어린 조카 다쓰야를 떠맡아 키우는 요코가 기미의 소개로, 거대 저택의 입주 가정부로 들어가며 그 집의 아들 유키오와 엮이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2장은 현재와 1965년을 오가며 폐쇄된 탄광 마을 지쿠호 지방에서 비극적인 유년 시절을 보낸 등장 인물의 과거를 다룬다. 3장은 모든 비밀이 밝혀지며 복선이 회수되는 현재의 시점으로 마무리된다. 요코와 기미, 다쓰야, 그리고 유키오. 이들의 죄와 업보, 그리고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마무리될까.

빈곤보다, 굶주림보다 무서운 것이 이곳에는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절망이었다.

시대이 어둠에 몰려 범죄를 선택하게 된 이들, 그리고 그 죄의 무게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절망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따라 인간은 어려움을, 때로는 극단적인 고통을 겪을 수 있다. 이러한 환경에 태어난 이들은 결코 그러한 삶을 선택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인간은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살아간다. <어리석은 자의 독>의 등장 인물처럼, 우리는 늘 어떠한 상황에서든 최선을 다하게 되어있다. 선인이든, 악인이든, 이들은 모두 나름대로 자기만의 최선을 다한 삶을 산다. 자신의 의지로 충만한 삶을, 최선의 선택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들의 삶의 무게는 제각기 다르지만, 자신의 운명의 무게를 짊어진 이들의 선택은 그마다 최선을 다한 것이기에 우리는 그러한 선택을 이해해야 한다.

다만, 등장인물의 선택이 악을 낳는다는 것에 대해서 여기에 동조하고 응원할 수만는 없다. 거리를 둘 뿐이다. 우리는 이러한 거친 삶보다 덜 절박한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다소는 절박하고 고통도 있지만, 이들보다 절박하지 않은 상황에 놓이게 되지 않음을 감사하게 생각할 뿐이다. 미스터리를 보며 마음의 정화를 하는 순간이다. 늘 감사한 순간. 자신의 의지로 만들어진 독은 더 이상 남을 해치지 말고 나 자신을 다지기 위해, 그리고 남을 위해 더 살기 위해 유용하게 써야 할 것이다. 결국 인생은 궁극적으로는 수지타산이 맞춰지게 되어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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