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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업보와 운명에 대한 울림 | 독서 2021-08-1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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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리석은 자의 독

우사미 마코토 저/이연승 역
블루홀6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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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업보와 운명에 대한 울림을 주는 50년의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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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사회파 미스터리에서 다루는 본질적인 주제 중의 하나다. 인간은 왜 죄를 짓게 되었는가? 그것은 인간의 본성인가, 아니면 피할 수 없는 사회 구조적인 환경 때문인가? 거기에 대한 단죄는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사소한 잘못이든, 실수이든 여러 죄책감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비밀과 사연을 안고 산다. 저마다의 삶의 무게는 다르지만, 그러한 무게를 현실이 아닌 허구에서, 그것도 미스터리를 읽으면서 죄와 벌에 대한 무게를 재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나보다 무거운 삶을 짊어진 등장인물들을 보며 안도감을 느끼고, 때로는 생각없이 살아온 지난 과오에 대한 속죄와 반성을 하게 될 때가 많다. 죄와 벌을 다루는 사회파 미스터리가 강력한 울림을 주는 이유이다.

우사미 마코토의 <어리석은 자의 독>은 1965년, 1985년, 2015년의 시점에서 50년이 넘는 인생의 기나긴 여정 동안, 변하지 않고 함께 존재하는 우리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다룬 작품이다. 미스터리 장르지만 휴먼 드라마로서 인간에 대한 본성을 파고드는 '마음 저릿력'이 대단한 작품이기도 하다. 언뜻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와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의 잔상을 떠올리게 하는 이 책은, 시대에 풍파에 휩쓸린 인간이 기나긴 세월의 흐름 동안 절망과 분노에 어떻게 맞서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가난과 착취, 그리고 빠져나갈 수 없는 절망적인 환경이 놓여져 있을 때, 우리는 운명과 어떻게 맞서야 할까.

다른 사람에게 편승한 현자보다 오직 나 자신의 힘에 의지하는 어리석은 자. 이 책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은 남에게 의해 '어리석어져 버린' 자가 아닌, 나의 주체적인 힘에 의해 '어리석음을 선택한'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상황과 환경에 의해 좌우되는 인간이 아닌 나의 의지와 지식으로 진리를 향해 움직이는 마음. 니체가 한 말에서 시작된 이 말은 주요 등장인물의 행동을 설명하는 동력이 된다. 이 책의 제목이자 내용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한 '어리석은 자의 독'이란, 주변의 환경에 따라 휩쓸리는 운명이 아닌, 나의 의지로 운명에 맞서 싸우는 힘을 의미한다.

가슴 속에 독을 품으십시오. 어중간한 현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자기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아가는 어리석은 자야 말로 그 독을 유용하게 쓸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어리석은 자의 독입니다.

전체 이야기는 현재인 2015년과 과거를 오가는 총 3장의 구성으로 전개된다. 1장은 2015년의 요양원과 1985년 무사시노의 저택을 오가며 우연히 생년월일이 같은 두 여성 기미와 요쿄의 만남을 그린다. 동생 부부의 죽음으로 어린 조카 다쓰야를 떠맡아 키우는 요코가 기미의 소개로, 거대 저택의 입주 가정부로 들어가며 그 집의 아들 유키오와 엮이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2장은 현재와 1965년을 오가며 폐쇄된 탄광 마을 지쿠호 지방에서 비극적인 유년 시절을 보낸 등장 인물의 과거를 다룬다. 3장은 모든 비밀이 밝혀지며 복선이 회수되는 현재의 시점으로 마무리된다. 요코와 기미, 다쓰야, 그리고 유키오. 이들의 죄와 업보, 그리고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마무리될까.

빈곤보다, 굶주림보다 무서운 것이 이곳에는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절망이었다.

시대이 어둠에 몰려 범죄를 선택하게 된 이들, 그리고 그 죄의 무게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절망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따라 인간은 어려움을, 때로는 극단적인 고통을 겪을 수 있다. 이러한 환경에 태어난 이들은 결코 그러한 삶을 선택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인간은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살아간다. <어리석은 자의 독>의 등장 인물처럼, 우리는 늘 어떠한 상황에서든 최선을 다하게 되어있다. 선인이든, 악인이든, 이들은 모두 나름대로 자기만의 최선을 다한 삶을 산다. 자신의 의지로 충만한 삶을, 최선의 선택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들의 삶의 무게는 제각기 다르지만, 자신의 운명의 무게를 짊어진 이들의 선택은 그마다 최선을 다한 것이기에 우리는 그러한 선택을 이해해야 한다.

다만, 등장인물의 선택이 악을 낳는다는 것에 대해서 여기에 동조하고 응원할 수만는 없다. 거리를 둘 뿐이다. 우리는 이러한 거친 삶보다 덜 절박한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다소는 절박하고 고통도 있지만, 이들보다 절박하지 않은 상황에 놓이게 되지 않음을 감사하게 생각할 뿐이다. 미스터리를 보며 마음의 정화를 하는 순간이다. 늘 감사한 순간. 자신의 의지로 만들어진 독은 더 이상 남을 해치지 말고 나 자신을 다지기 위해, 그리고 남을 위해 더 살기 위해 유용하게 써야 할 것이다. 결국 인생은 궁극적으로는 수지타산이 맞춰지게 되어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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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쓸모를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 | 독서 2021-08-11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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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1미터 개인의 간격

홍대선 저
추수밭 |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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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쓸모를 따지지 않는다.스피노자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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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있는 사람이 되라고 한다. 무쓸모의 감정이란, 참 말로 하기 어렵다. 인생을 살면서 무쓸모의 감정을 느낄 때마다, 그것을 이겨내는 것은 쉽지 않다. 인생의 가치는 쓸모에 의해서 성장한다고 믿는 세계관에서는, 쓸모란 존재의 이유이자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인생의 본질이기도 하다.

그런데, 쓸모란 내가 아니라 남과 조직에 의해 규정되어지는 것이다. 남이 나에게 내리는 쓸모의 정도를 갖고 내가 왜 그것에 얽매여야 하지? 나는 나, 너는 너. 쓸모의 세계관에서 벗어나는 순간은 다소간은 위안이 되는 순간이다.

쓸모의 세계관에서는 대가를 만든다. 쓸모를 위해 내가 희생했으니 반대 급부로 어느 정도의 성취는 받아야 하겠다, 그런 생각에 자기 중심적이 되고 보상심리가 작동한다. 하지만 우주는 그러한 쓸모의 세계관에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다. 우주의 입장에서는 모두가 동등했다.

우주는 내가 알 수 없는 가치를 초월해 있지만, 그 가치를 발하는 이유는 나에게 아무 것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주는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다. 단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모두가 똑같이 소중하다고 내가 느끼게 해줄 뿐이다. 왜 그렇게 남을 평가하고, 그렇게 쓸모를 따지고, 그렇게 집착하고 상처를 주고 힘들어 했을까. 결국 인간의 미덕은 행복해지는 것 뿐인데.

자연은 ' 이 사람'이 '저 사람'보다 낫다고 할 만한 어떤 것도 제시하지 않는다.

- 스피노자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1미터, 개인의 간격>.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기 안에 1미터 안의 행복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일 때 좋을지를 따지는, 그저 '좋음' 만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순간 책을 읽는 것이 너무 좋아졌다. 내가 알지 못했던 것을 아는게 좋아졌고, 내가 아는 것을 다시 모르게 되는 것이 좋아졌고, 앞으로 맞이할 것을 기다리는게 좋아졌다. 어떠한 습관도 영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좋음'을 표현할 수 있는 행복감을 조금은 더 느껴보고 싶다.

가장 두렵고 힘든 것은 보이지 않는 관념의 괴물이다. 관념의 괴물은 상상에 의해 증폭되고, 왜곡에 의해 더 두려워진다. 가장 무서운 것은 내가 제대로 대처할 수가 없는 것이다. 상대는 고통을 증폭시키는 관념인데, 내가 어떻게 여기에 현실적으로 대처할 수 있겠는가? 그저 나의 1미터 안으로 들어오자. 1미터 안, 나만의 '좋음'이 있으니까.

이해하려고 했으면 될 것을, 왜 그렇게 쓸모를 따졌을까. 지난 날 후회되는 일도 많다. 슬픈 날도 많았고, 분노한 날도 많았다. 앞으로는 보다 더 이해할 수 있는 힘을, 간절히 바란다. 그저 그러면 좋을 것 같다.

스피노자는 자신의 파괴를 부정하고자 하는 본성을 욕망이라 봤고, 본성을 있는 그대로 추구한다는 점에서 인간을 기쁨을 느낀다고 했다. 과연 스피노자의 일생을 행복했을까? 그는 렌즈 가공하는 일을 좋아했고, 철학을 연구하는 일에 행복했다고 한다. 스피노자는 그랬으면 됐고, 그래서 의미있는 철학자가 되었나 보다. 그저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 그 일을 좋아하고, 그래서 그랬으면 됐다, 고 말할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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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쓴 우주에 대한 철학과 시 | 독서 2021-08-10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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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우주를 만지다

권재술 저
특별한서재 |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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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과 자연에 대한 철학과 시를 생각하게 하는 과학교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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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은 세계의 이치와 본질을 밝혀내는 과학이지만, 과학 교양서에서 등장하는 물리학은 한편의 시이자 철학 에세이로 읽히는 경우가 많다. 본질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역설적으로 과학 이야기는 아름답고 장엄하다. 과학자는 곧 철학자이자 시인이 된다고 했다. 과학을 이해하는 것은 복잡하고도 어려운 일이지만, 이해를 하기 이전에 여운을 전하고 마음을 울린다.

고전 물리학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이며, 우주의 모든 현상은 완전하게 예측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근대 이전 '총체성'을 운운하던 철학이나 문학의 범주가 떠오른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진리를 믿었던 절대를 믿었던 과학과 다른 학문들. 밤하늘의 북극성을 보고 삶의 지표를 찾았던 본질로의 탐구심이었을 것이다.

고전 물리학 이후 현대 물리학의 두 축이 양자론과 상대론이라고 한다. 양자론은 미시 세계, 상대론은 거시 세계를 대표하는 이론이다. 원자의 크기와 우주의 크기는 일반 사람들이 관념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범위이다. 우리가 연구하는 과학의 세계가 크면 클수록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절대성으로 설명될 수 없는 복잡미묘한 일들이 펼쳐진다. 마치 현대의 철학과 예술에서 맞이하는 현상과 같이.

양자론은 불확실성으로 설명된다. 양자론에서 모든 물리량은 정확하게 결정되어 있지 않고, 입자의 위치, 운동량, 에너지 등이 모호하기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결정론적 세계관'을 넘어선 '불확정성의 원리'가 지배한다는 것이다.

모호하고 불확실함. 현대인들이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느끼는 복잡한 모순이 양자론이라는 과학으로도 설명되는 것이라니. 그래서 양자역학을 이야기하면서 신과 종교가 나오고, 관찰의 의지와 목적이라는 철학적 명제가 등장한다. 빛은 입자이자 파동이고, 빛은 빛이라는 것. 같은 사람이 상황에 따라 착한 행동을 하기도 하고 나쁜 행동을 하기도 하듯이, 빛은 무엇으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이란다.

입자와 파동도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가공의 관념이라는 것인데, 이 책의 저자인 권재술 교수님은 이러한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해서 한 편의 시를 쓰셨다. 과학자는 곧 시인이라는 통념을 실천하셨다. 양자역학을 이야기하는데 감정의 뒷면에 대한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함을 이야기한다.

양자론이 고전물리학의 예측 가능성을 포기하게 만들었다면, 상대론은 고전 물리학이 가지고 있던 시공간의 절대성이라는 믿음을 포기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시간과 공간은 관측자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고 공간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시간은 더 빠르게 느리게도 흘러갈 수 있고 공간 또한 잡아 늘이거나 움츠러들게 할 수 있다. 오히려 절대적인 것은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 빛의 속도와 물리법칙이 모든 관찰자에게 동일하다는 것이다. 상대성 이론은 '진리가 없다'라는 말에서의 상대성이 아니라, 진리는 누가 보아도 진리이기 때문에 진리는 절대적이지만 보이는 현상은 절대적이 아니라고 한다.

과학의 세계에서 관념이라는 개념은 낯설다. 인간의 관념에 따라 몹시도 이상해 보이는 세계가 과연 상대론이 생각하는 우주일까?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이 세상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세상이기 때문에 '인과율'을 위반하지는 않는다. 다만 인간의 관념에 따라 그 사건의 순서가 다르게 보일 수는 있다.

총을 쏜 사람보다 총에 맞은 사람이 빨리 보일 수도 있는 세상. 여기서는 이상하지만 저기서는 이치에 맞는 세계관. 이것이 상대론에서 세계를 맞이하는 태도다. 빨리 달리는 세상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고정되어 있겠으나, 그것을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상한 세상이 된다. 우리가 경험하고 느끼는 세상은 당연하게 생각되겠지만, 그것은 우리의 편견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과학은 자연을 탐구하는 학문이지만, 인간의 사고방식과 태도에 대한 위대한 교훈을 주는 분야이기도 하다. 현대물리학의 양자론과 상대론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이야기로 가득차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방식과 태도에 대한 생각할 지점을 만든다. 이러한 과학적 성취는 어쩌면 장엄하고도 아름답다. 평범한 이들의 관점에서는, 그저 인류가 만들어낸 과학자들의 위대한 발견을 그저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경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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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의 진정한 최애는 무엇일까 | 독서 2021-08-06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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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최애, 타오르다

우사미 린 저/이소담 역
미디어창비 |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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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 아이돌에 대한 덕질 이야기의 결을 섬세하게 보는 기분. 덕질을 덕질일 뿐, 최애는 자신에 이르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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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미 린의 <최애, 타오르다>는 '최애' 아이돌과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 한 소녀의 이야기다. 최애.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라는 뜻인데, 최근에는 아이돌 팬덤계에서 많이 쓰이는 말이다. 우리의 인생에서 '최애'의 의미는 무엇일까? 최애가 있다는 것, 나만의 덕질을 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애정의 대상을 향해 무언가를 하는 그 자체가 감사한 일이니까. 다만 '최애'의 존재가 인생에서 다른 그 무엇보다 가장 높은 곳에 있다면? 우리 일상의 다른 어떤 것보다 최애가 중요하다면, 다른 일상은 무슨 의미가 있게 될까? 그리고, 최애는 항상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 자리에 영원히 존재하는 것일까?

좋다는 것은, 정말 '그런 거다'. 이유가 없다. 이유가 없이 좋아함의 세계로 빠져들기 때문에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저 좋아한다는 그 자체가 생활의 활력을 넘어 존재 이유가 된다. 언제부턴가 덕질이 누구의 삶에서나 비중있는 수단이 된지 오래다. 팬덤은 대중의 인식을 넘어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에 대한 떨어질 수 없는 결속력을 만들고, 커뮤니티의 중심 세력이 된다. 우리 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일까. <최애, 타오르다>의 주인공 아카리는 마사키라는 아이돌 멤버를 최애로 좋아하는 18살 소녀다. 최애의 일거수 일투족을 쫓기도 하고, 인기 투표에 앞장서기도 하며, 최애의 마음을 대변해 팬카페에 글을 올려 팬과 감정을 교류하는, 팬덤에 의한 생활 그 자체로 살아간다.

아카리에게 최애와 함께하는 일상은 '척추'에 집약된다. 무의미한 것을 깎아내고 척추만 남는 듯한 인상처럼, 인생을 꾸미고 살찌우는 풍족의 삶이 아니라 그것에 역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남과는 다른 방향으로 역행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최애에 몰두하는 삶은 계속된다. '척추'에서 오는 의미는 삶의 무게를 함께 지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애와 함께 삶의 무게를 지닌다는 것은 어쩌면 '그러지 않을 수 없는' 선택지가 놓여진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사는 것은 과연 어떠한 삶일까.

주변과 속도를 맞추기가 어려운 아카리에게 최애 아이돌 마사키는 때로는 종잡을 수 없는 행보를 보인다.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고, 소속 그룹을 탈퇴하려고 하고, 은퇴까지 생각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최애 대상은 밤하늘의 북극성처럼 항상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다. 눈에 보일듯 안보일듯 흔들리는 최애를 바라보는 이의 마음은 어떨까? 마지막 그 순간까지, 남은 흔적이라도 붙잡으려고 하는 아카리의 절실함은 애처롭기 그지 없다. 이해받지 못하는 괴로움을 아는 주인공은, 최애인 아이돌을 온전히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나를 위한 존재로 남아있길 원하는 최애는 서서히 소실되는 것까지도 소중하다. 그렇게 까지라도 하지 않을 수 밖에 없는, 최애만 남은 인생이란 이렇다. 최애를 보는 아카리의 삶은, 절실함과 애처로움이 공존한다.

1999년생 작가인 우사미 린이 이 책을 쓴 나이는 21살이라고 한다. 젊디 젊은 작가의 감성으로 다져진 문장은 여러번 곱씹어볼만한 감정의 깊이가 느껴진다. 일상의 단편에서 툭, 끊어져버린 듯한 무미건조한 문장에는 작가의 무덤덤한 감정이 묻어져 있다. 차갑고도 차가운 일상에서 단 하나의 뜨거운 감정은 최애 아이돌을 향한 감정 뿐이다. 오롯이 한 대상을 향해 집중되었던 열정은 허탈한 종말의 과정을 거쳐 커다란 상실감을 준다. 아카리는 그저 최애를 향해 뜨겁게 살아왔을 뿐인데.

인생에서 좋아함의 대상이 오로지 '최애'라는 것에 집중된다면, 그 최애를 제외한 나머지에 대한 애정은 어떻게 될까. 최애와 극단에 있는 것들은 증오가 되고, 그 중간에 있는 것들은 무관심이 된다. '최애'라는 말에 숨어 있는 의미는 애정의 대상을 최상급 표현인 '최고'로 정한다는 것이다. 삶의 애정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은 최고와 그 아닌 것이 아닌 골고루, 적당히 풍요로워져야 할텐데.

누구에게나 삶의 무게는 다르지만, 무언가를 뜨겁게 사랑하고 이해하는 애정은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인생이라는 여정은 길고도 길다. <최애, 타오르다>의 아카리는, 혹은 어쩌면 우리 모두는, 최애에 대한 정점을 지나서도 인생의 긴 여정을 끝까지 버텨야 한다. 최애로 인하여 삶의 무게가 힘겨워지는 사랑이 아닌, 최애로 인하여 삶이 더 가볍고 즐거워질 수 있는 그런 사랑은 있을까. 누구에게나 탈덕과 입덕 사이, 잊혀진 최애와 새로운 최애는 여러번 반복될 것이다. 하지만 가장 최애여야할 존재는 아이돌이나 위인도 아닌, 바로 자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무거운 몸을 덜어 세상을 행복하게 살도록 바로잡아줄 수 있는 나 자신을 최애로 믿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긴 여정과 함께 하는 사람은 결국 나일테니까. 결국 그러한 여정을 함께 해 온 이가 바로 나의 최애였고, 최애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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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감정과 관계를 다스리기 위한 바운더리의 미덕 | 독서 2021-08-05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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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계를 읽는 시간

문요한 저
더퀘스트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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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감정과 관계를 다스리기 위한 바운더리의 미덕. 자존감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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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하는 가장 어렵고 복잡한 세계는 양자도 우주도 아닌 바로 사람의 '감정'이다. 감정은 하루 하루를 넘어 전체 인생의 본질이다. 인간 개개인이 감정도 어렵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관계의 틀에서 감정은 더욱 복잡해진다. 나의 감정과 상대의 감정이 같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같다. 오해하고 왜곡되어 때로는 관계가 틀어지고 인생이 힘들어진다. 심리학이라도 조금 알면 사람의 마음을 좀 더 알게 될까, 싶은 마음에 사람의 감정에 대해 최근 깊이 생각하고 있다. 늘 그렇듯, 책에서의 그럴듯 하고 좋은 얘기와 실생활에서의 실천은 다르다. 아마도 감정과 관계에 대해서는 우리 인생의 영원한 숙제이다.

문요한님의 <관계를 읽는 시간>을 보면서 감정과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핵심적으로 소개하는 개념은 '바운더리'이다. 바운더리란 인간관계에서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분해주는 자아의 경계이자, 관계의 교류가 일어나는 통로로 설명된다. 자아의 진짜 모습은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관계 안에서 바운더리라는 형태로 실체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나와 남의 바운더리가 희미하게 되면 타인 중심적인 '미분화' 현상을 갖고, 나와 남의 바운더리가 뚜렷하면 '과분화' 현상을 갖는다고 한다. 이럴때 애착손상에 기인한 왜곡된 바운더리가 역기능적인 관계를 낳는다. 미분화 및 과분화, 바운더리 크로서(탈억제형)와 바운더리 가더(억제형)에 따라 바운더리 이상에 따른 역기능적인 관계는 순응형 (억제-미분화), 방어형 (억제-과분화), 돌봄형(탈억제-미분화), 지배형 (탈억제- 과분화) 으로 나뉜다. 이를테면 너와 나의 경계가 불확실하고 불안에 취약한 순응형은 거절을 못하고 남에게 얽매이는 고통을 겪는다. 자기 중심적인 지배형은 사람들의 감정에 끊임없이 관여하여 일방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관철시키려 한다. 이럴때 자기 스스로를 돌볼 수 있으면서도 자아 존중감이 강한 상태로 자신의 바운더리를 건강하게 해야 왜곡된 관계의 역기능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 표현 훈련으로 알려진 P.A.C.E 를 통해 바운더리를 세워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자동적인 반응을 멈추고, 내가 어떻게 느끼는 지를 자각하고, 나의 감정과 욕구, 책임을 조절해서, 솔직하고 정중하게 절제된 자기 표현을 하는 것. 어렵다. 하지만 잘 하고 싶다.

  나에 대한 삶의 결정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작은 것부터 결정권을 찾아와야 한단다. 내가 있어야 관계도 있듯이, '자기 세계'를 만드는 것은 이 책에서 말하는 바운더리 심리학의 최종 목표이다. 행복을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즐겁게 하는 것을 추천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맞다. 더욱 더 독서를 좋아한다고 말해야 한다. 정말 좋아하니까.

  다만 건강한 바운더리가 있는 자기 세계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의 감정을 다루고 실천하는 일이 어려운 이유는 하나의 틀이 아니라 양 극단의 '균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독립적이면서 친밀하고, 솔직하면서 정중해야 한다고 한다. 바운더리가 너무 희미하면 감정 전염이 쉽게 일어나고, 바운더리가 너무 강하면 공감의 부재를 낳는다. 바운더리를 너무 쉽게 넘나들면 남을 지배하려 하고, 바운더리를 너무 지키면 순응적이 된다. 이 책의 저자는 바운더리는 처음에 희미하게 생겨났다가 점점 뚜렷해지다가 정점을 지나면 다시 희미해진다고 한다. 자아가 확장되고, 성장하려면 한 개념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말로는 쉽지만 실천하는 것은 어렵다는 바로 그 '균형'. 균형이란 쉽게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에 이상적인 미덕이다.

  하루 하루 감정은 요동친다. 인생의 여정에서는 단 한번도 일관된 마음의 평화를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건강한 바운더리를 만든 것 같으면서도 상심과 불안은 불현듯 찾아오고, 떠나갔다가 또 다시 돌아온다. 자존감은 완성된 채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만드는 과정 속에 있는 듯 하다. 오늘도 변화하는 감정을 다스린다. 멈춤, 자각, 조절, 자기표현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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