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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백영옥 저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07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스스로의 삶을 관통하는 말은 하기 힘들다. ( 8부. 도쿄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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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을 잊지 못해서 과거의 연인과 유령처럼 동거 중인 사람들이 우리 주변엔 생각보다 많아요.” (정미도)

 

열패감이라는 말. 나는 이 단어의 말 뜻을 잘 알지 못했었다. 대학 때 국문과를 다녔고 의무적으로라도 수많은 문학작품을 접했는데, 이 명사가 심심치 않게 소설과 시 속에 등장했었지만 20대 새파랬던 내가 의미를 알 리가 없었다.

 

대학 졸업과 함께 기다렸다는 듯 발생한 IMF1년간의 취업 재수, 그리고 작은 영상업계 신문사에 들어갔다가 이듬해에 역시 아담한 잡지사에 취재기자로 들어갔다. 열심히는 했지만 한 카리스마하는 기자쟁이들이 있는 곳에서 혹독한 기자수련기를 거쳤고 순진한 것을 순수하다고 착각한 나는 그야말로 울며불며 선배 언니기자의 가오를 못참고 잡지사를 뛰쳐나왔다. 생각해보면 그 일이 지난 한참 후에도 악연이었던 기자만을 떠올리며 몸서리치는 나였지만, 그 불행 때문에 잊고 있던 좋은 경험들이 더 많았음을 이제야 알겠다. 이상은, 이적, 봉준호, 조승우씨 등을 가까이서 알현할 수 있었던 취재들을 포함해 소위 잡지계의 생리와 바닥을 머리의 간접경험으로가 아닌 온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제는 10여년이 지난 하도 오래전이라 어디 가서 얘기하기엔 그 세계도 많이 변했을거 같아서 전혀 말하지 않지만, 신기하게 아직도 간혹 만나는 업계 종사자들을 통해 그렇게 바뀌지도 않았음을 느끼면 감회에 젖곤 했다. 백영옥이란 소설가는 내게 그런 맥락으로 다가왔다. 출판 불황 속에서도 지난 몇 년간 수많은 신진 작가와 장편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미안하지만 백영옥씨는 내 레이더망에 있지 않았다. 1억원 고료의 어마어마한 수상금을 탔다고 해도 나와는 너무 다른 계열의 장르작가라고 믿어 의심치 았았고, 본인 작품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로 떠도여전히 큰 관심사 속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다 몇 년만에 이 작가가 신작을 발표했단다. 제목도 참 오글거리는 적나라한 제목으로. 누가 만든 용어인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자꾸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같은 칙릿일 것 같았는데 좋아하는 리뷰어분이 평소와 달리 이 책에 좋은 평가를 내린 서평을 남긴 것을 보고 결심을 굳혔다. 그래, 배가 고프면 편식은 할 수가 없는 거. 지금 필자는 새로운 책에 목말라 있고 편애하는 작품만 골라 읽던 편중된 취향을 이제 고쳐 볼 때도 되었다. 그래서 잔뜩 기대를 안고 펼쳐 들게 된,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되시겠다.

 

서점에 가서 직원에게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찾아 주세요하는 데 왜 살짝 쑥스러웠을까? ‘아니에요, 제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요라는 뉘앙스를 얼굴에 띄어서 그랬으리라. 겉 띄지에 나온 저자 사진은 자연적으로 내가 잡지사에서 만났고 이후에 알게 된 여러 여성 피쳐 기자들을 떠올리게 했다. 서로 각자만의 재능으로 보이지 않게 피튀기는 글 전쟁을 벌였던 그녀들은 현재 인지도 있는 주간영화잡지로, 인터넷 매체로 진출해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속속 그분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겉으론 쏘 쿨 했던 내게도 잠재의식에선 도저한 열패감이 있었나 보다. 톡톡 튀는 문체로 현장(field) 경험이 묻어나는 대중적 내러티브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성공가도를 달리던 이러한 작가를 그래서 은근히 내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반성한다.

 

만날 수 없어도 존재하는 것만으로 어쩐지 안심이 되는 가족처럼, 그저 누군가 자신과 비슷한 고통을 견디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지훈)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모임>에는 세 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정확히는 그들의 상대 전() 애인들도 중요한 역할이긴 하지만. 마치 <냉정과 열정 사이>처럼, ‘윤사강이지훈의 시점에서의 실연 스토리가 번갈아 교대로 나오고 정미도라는 데이트 코칭 비슷한 일을 하는 커플 매니저가 그 중간에서 매끄럽게 얘기를 끌고가는 형식이다. 무척 동시대적(contemporary)인 코드들이 많아서 읽기에 흥미롭고 독해 속도도 빠른 점이 우선 좋았다. 트위터라는 SNS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에 초대하는 글이 뜬다. 우연히 서핑하다 그것을 본 몇몇 사람들이 광화문 시네마테크 옆 레스토랑에 토요일 오전 7시에 모인다. 거기에 선남선녀인 젊고 매력적인 남녀, 사강과 지훈도 포함돼 있다. 반신반의로 그곳에 집결한 실연당한 사람들. 사강과 지훈은 이 모임이 실연의 기념품 가게’, 즉 애인과 헤어지고 처치 곤란한 여러 선물들을 대신 처리해 준다는 아이디어 하나를 의지해 온 이들였다. 미도의 기획 하나로 진행된 이 날의 모임 행사에서 사람들은 물건들을 모두 내놓고 각자 마음에 드는 것들 하나씩을 가져간다. 실연을 당해 멘붕인 이들이 몸도 많이 상했을 거라며 미도는 보양식에 가까운 영양식을 참가자들에게 대접한다. 이후 열린 맞춤 영화제에선 화양연화’ ‘봄날은 간다’ ‘500일의 썸머같은 실연을 다룬 리얼한 영화들이 상영되고 이별에 대한 제의를 치른 사람들은 약간의 위안을 가슴에 안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스튜어디스인 사강이 기장인 유부남 한정수를 사랑했지만 막상 그가 이혼까지 하겠다 말하며 고백하자 이별을 선언한 모습이 애절했다. 그다지 생각해보지 못했던 승무원의 사랑이야기가 현실적으로 다가왔고 내내 그녀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사내 연애가 끝나고 계속 남자를 직장에서 만나는 상황만도 참 불편한데 그것이 하늘을 나는 비행기에서라면? 이건 뭐 뛰어내릴수도 없으니 이별 후에 누구나 겪는 아픔을 피할 도리가 없기에 사강이 안쓰러웠다.

 

지훈은 어떻게보면 주변에 꼭 한명은 있는 캠퍼스 커플의 장기 연애의 표본이었다. 한창 열정적이고 순수할 때 만나서 20대의 고민과 방황, 사회로 뛰어들어서의 고충과 성취들을 함께 하며 서로 모든걸 안다고 믿는 커플. 한순간 갑자기 현정이 헤어짐을 고했을 때는 독자인 나도 충격적이었고 한편으론 잘 이해가 안되었다. ‘우연과 낭만이 없다며 매몰차게 지훈을 떠나보내고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안된 지훈이 신호위반으로 범칙금을 100만원을 낼 정도로 이성을 잃게 한 현정이 참 독한 여자다 싶었기 때문이다.

미도는 어떻게보면 즉흥적이고 패기 하나로 실행한 실연자 조찬 모임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서 사내 대박 이벤트로 평가받는 의외의 결과까지 얻는다. 선한 의도로 이루어진 일들은 나비효과처럼 예상치 못한 곳에까지 효과를 미치고 결실을 맺는 것일까? 도쿄 아카사카 공원에서 만나게 된 사강과 지훈이 지진의 여파로 같이 돕다가 실연당한 사람들 조찬 모임에 갔던 이유를 나누던 절정 부분이 눈부셨다. 현실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닐지언정 누군가가 누군가를 위로하고 타인으로 인해 치유되는 만남이 불가능한 것은 아님을 이제 난 안다.

 

모든 연애에는 마지막이 필요하고, 끝내 찍어야 할 마침표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윤사강)

 

소설 속에 아침 모임에 모인 사람들이, 사강과 지훈이 서로의 아팠던 과거를 고해성사하듯 나눌 수 밖에 없었듯, 어쩌면 이 소설을 읽은 사람들이 만나거나 모인다면 책을 계기로 서로의 지난 연애의 한 자락을 얘기하고 싶진 않을까. 한 동안 그저 눈앞의 과제만 보고 살던 나에게 여자로써의 심장떨림을 느끼게 해 준 이가 내게도 있었다. 몇 년 전 짓눈개비가 내리던 2월에 만났다가 다음달에 갑자기 아버지가 소천하시는 뜻밖의 일을 겪으며 어쩔 수 없이 내 마음속에서 밀어내야만 했던 사람. 서른이 넘어서도 마치 대학생때처럼 모든 게 풋풋한 다시 시작일수 있구나 하며 경이롭기까지 했던 그 남자는 외국에서 오래 살다왔고 그리고 이혼남이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됐는데 알고보니 그 사람이 이혼했다는 사실이 무척 혼란스런 일임에 분명했지만 좋아하는 것이 더 먼저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일(?)이 처음이었던 나였고 그와의 사이는 점점 멀어져만 가는 걸 속절없이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이런 저런 개인적 일들이 휘몰아치면서 그와 완전히 절연하게 되고 무슨 의식처럼 핸드폰의 저장번호를 삭제하고 나서야 내가 그의 이야기에 눈물흘리고 감정에 동감하고 했던게 사랑이었음을 알았다. 그는 어디에서 잘 살고 있을까? 많은 것을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Westlife 풍 노래를 들을 때, N이라는 나라를 누가 얘기할 때, 소화가 안될 때 손으로 배를 시계방향으로 돌리는 자신에게서 가끔씩 그를 떠올리고 있다.

 

한 남자를, 한 여자를 사랑했었던 이들이라면 백영옥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에서 적어도 하나쯤에는 몰입하고 반드시 몇 개의 문장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랑이 그런 거기에. 둘 만 아는 거대한 실제했던 세계이고 한때 자신의 거의 전부였던 사라진 제국이기에. 슬픔이여, 안녕!

 

헤어져야 만나고, 만나야 사랑이 이루어진다. 그것이 정미도의 선택이자 이 비밀스러운 모임에 대한 대답이었다.’ (p.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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