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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난도의 내일

김난도 저/이재혁 저
오우아 | 2013년 07월

 

시린 겨울 눈 내리던 합격자 발표날에 부둥켜 안으면서 이제는 끝이다 어른이다 다시 시작이다 그 땐 그랬지’. 제가 20대의 푸릇푸릇한 인생을 경험하던 시기에 유행했던 가요의 한 대목입니다. 스무살에는 조숙한 문학청년답게 열아홉으로부터 불과 1년사이에 참 많이도 늙어버린 것 같다는 건방진 생각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일을 조금씩 더 해나갈수 있음에 희열감을 맛보며 보냈던 대학 때를 거쳐, 스물다섯 무렵에 원하던 직장에 들어가 이른바 필드의 현장감을 온 몸으로 느끼며 생애 처음 조직의 쓴 맛이란 것도 겪어야만 했습니다.

20살에는 10대를, 회사원일 때는 대학시절을 그리워하던 고질적인 과거 지향 습관을 간신히 고쳤던 것은 본격적으로 공부가 하고 싶어 들어간 대학원 생활 덕분이었지요. 어찌 됐든 좋아하는 열정을 가진 분야의 학문 세계로 첨벙 뛰어들 수 있었다는 것에, 비록 학자금 대출을 받아 나중에 갚느라 고생했어도 10년이 지난 현재에도 후회는 별로 안 남습니다.

 

서른 아홉인 지금에도 다시 스물 아홉 때 꾸었던 꿈을 위해 도전할 수 있을까?’란 질문앞에서 머뭇거리지 않기란 힘이 든 게 사실이에요. 모험심에 의문을 던지는 건 둘째 치고, 이루고 싶은, 바라는 일을 새롭게 꿈꾸고 욕망하는 게 가능한가라는 더 근원적인 화두와 마주치고 만다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제 주변의 또래 분들을 둘러봐도 같은 고민을 안고 있더군요.

 

20, 대학생과 취업준비생의 국민 멘토인 김난도 교수의 새 책을 펼쳐들면서 마음 한 구석에 오만한 선입견 하나가 스멀스멀 피어 올랐었다는 것을 먼저 고백합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에 유럽으로부터 촉발돼 광범위하게 퍼져나간 경제 불황의 이 시대에도 청년만의 패기로 자기 길을 과감히 헤쳐나가며 성취를 이룬 사람들도 존재하리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몇 몇 성공 인물 사례를 가지고 특별히 심각한 취업전쟁과 비정규직 문화가 팽배해진 한국 사회에 적용한다한들 임시 처방은 돼도 실제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까,하는 의심스런 매의 눈이 또 작동된 거죠.

그런데 그 동안 유지하던 온도에서 1도가 상승한 즉시 물이 끓고 불이 붙는 발화점처럼 어느 순간 갑자기 희망적인 기대를 확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건 밑져야 본전같이 책에 대해 대책없이 무의미한 자세로 독서를 시작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고, 창의적이면서 쉽지만은 않았을 영역을 개척하였을 동시대 사람들의 삶을, 최대한 마음을 열고 바라보자는 의식의 전환을 제 스스로 가졌기 때문이에요.

 

그간 여러 책들 중에 보면 통계학적, 계량적으로 사람들의 삶을 추적, 수집해서 이론화하여 학문적인 성과물을 발표하거나, 교양의 하나로 제시하는 서적들이 꽤 있었는데요. 그것도 나쁘지 않고 유의미하지만 어쩐지 인간의 삶과 생애를 그런 관점에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내게 유익한 게 뭔가 찾아본다는 게 석연치 않았던 것 같아요. <김난도의 내:>에서 KBS 다큐멘터리 제작과 연계하여 학제적이면서 실용적인 리서치를 한 부분이 우선 마음에 들었고, 교수님의 전작들을 떠올렸을 때 조사 연구(study) 말고도 플러스 알파의 그 무엇을 얻을 수 있으리란 믿음도 있었습니다.

 

제가 앞으로(in future) 평생 하고 싶은 일이 무얼지, 진짜 바라는 내 일(my job)의 정체란 무엇일지, 해답을 찾겠다는 구체적인 퀘스천마크를 머릿속에 넣고, 은밀한 흥분을 안은채 설레임으로 책을 읽어나갔습니다.

 

노트에 메모하고 포스트잇을 붙이고 갖가지 색연필로 밑줄을 그어가며 다 읽은 후에는 정말 많은 생각과 느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치밀한 연구자료와 실제의 살아 숨쉬는 젊은이들과의 만남, 인터뷰를 통하여 저자가 주장하는 이야기들에 공감한 페이지들이 많았고, 그 동안 막연히 알고 있던 명제들을 참된 진리에 가깝게 재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예컨대,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시대는 잘 하는 것, 스마트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 그것은 결국 일을 즐겁게 하는 게 생산성과 창의성을 높이는 거라는 걸 깨달았어요. 아직까지도 떨쳐버리지 못한 일에 대한 생각 중에 그래도 치열하게 남들 놀 때도 회사 나가서 일하면 그만한 보상은 주어진다는 관념이 있었는데요. <:>을 읽어가면서 그건 어쩌면 구시대의 유물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여러 사람들의 직업관에 귀기울이고 나서는 폐기해야 할 의식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동안 저를 비롯한 우리의 대부분은 너무 일(직업)에 대해 전투적으로 여겨왔던 건 아닐까 돌아보게 됐어요. 청년실업률이 높아만 가고, 대기업에 입사해도 몇 년 안에 이직하는 이들도 점점 늘어간다는 요즈음, 그저 일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일이기에 그랬던 거죠.

네덜란드 기술직 젊은이들의 일에 대한 자부심, 이탈리아에서 가업을 잇거나 수백년된 수작업 장인의 길을 걷는 청년들, 구글을 비롯한 미국 벤쳐기업 직원들의 자유분방함을 하나하나 접하면서 새로운 가치관을 배우며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사회적 기업의 창시인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의 자세한 탄생 스토리를 읽으면서는 정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얼마 안되는 돈을 고리대금업자에 빌린 빈민 여성들이 그것을 갚느라 허덕이는 걸 보면서 20달러를 빌려주면서 시작된 소액 대출 은행이, 많은 관련 산업을 파생시켰고, MIT 교수의 아이디어로 빈민가에 그라민폰을 대여하면서 정보통신 양극화를 해결해나갔던 일들에 뒤늦게 벅찬 감동과 전율을 느꼈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제가 모르는 동안 따뜻하고도 실제적인 사회적 기업들이 계속 확장해 가며 지역과 나라를 변화시켜 갔다는 얘기에 부끄러워지기도 했구요. 일회적이고 즉흥적인 자선은 가난한 이들에게 의존감을 키워주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 에너지와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무하마드 유누스교수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할 수 있었어요.

 

일본 도쿄와 영국 런던에서 최근 각광을 받기 시작한 ‘Co-working’ 센터는 처음 들어봤는데 무척 관심이 가는 최신 트렌드였답니다. 프리타족과 프리랜서, 이 랜서(E-lancer:인터넷 기반의 프리랜서)들이 공간을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서로 커뮤니티도 형성하며 일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인 코워킹 플레이스의 미래가 몹시 궁금합니다!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었던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유럽의 선진적인 직업 문화에서 기술, 전문 교육이 대학 진학의 차선책인 게 절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취업과 배움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해 왔는데, 독일의 항공사 루프트한자의 교육기관에서 알 수 있듯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기업의 견습 현장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배움과 노동을 동시에 하는 구조가 가능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프리랜서가 정규직 직원을 이탈한 자들이 어쩔 수 없이 택한 길인 것만은 결코 아니란 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전문직 분야에서 프리랜서가 단순한 대체 인력으로 폄하되는 개념은 이제 글로벌 시장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네덜란드에서 말 발굽을 다루는 여성중에서 최초로 정상의 실력을 인정받은 로테의 당찬 포부, 의사의 길을 과감히 뒤로 하고 나무를 만지는 일이 진짜 자신에게 맞다며 행복해하는 청년, 이탈리아 포도농장에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와인 전문 사업을 펼치는 지오바니의 살아있는 눈빛. 그들의 목소리가 책 너머로 들려오는 듯 했고, 단지 해외 청년들의 성공 사례라거나 이색적인 라이프 스타일로만 다가오지 않더군요.

 

이들이 용기있는 선택을 하고, 결단을 내린 후에 그 일에 빠져들고 세상 흐름이나 유행과 동떨어져도 개의치 않는 모습이 존경스럽고 눈부셨습니다. 거만하지 않지만 확고한 자부심이 있는 청춘들에게서 진짜 품격있으면서도 자신만의 소신과 철학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삶의 많은 부분에서 자율과 책임은 가장 고민하게 되는 요소들인데, 직업에서 역시 마찬가지이겠죠. 책 속의 등장인물들도 자신이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는 것과, 수입을 얻고 스스로를 책임진다는 양자 사이에서 보이지 않게 부단한 노력을 했을 거라 여겨졌어요.

20대와 30대의 활력 넘치는 청춘답게, 그 무언가에 홀려서 그 일에 정신없이 빠져드는 주인공들에게서 꽂히다란 단어를 공통적으로 발견한 것만 같았습니다. 열정의 존재 유무가 자신만의 일과 직장을 결정하는 데 가장 핵심적이고 본질적이라는 진리를 <:>로부터 다시금 환기해 볼 수 있었어요.

 

무척 다양한 사람들의, 하나같이 다른 일(Job)의 로드맵과 청사진을 엿보았는데, 막상 독서 후에 남은 진리는 역시 몇가지의 심플한 깨달음이네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과 노동 조건의 차별이 전무한 네덜란드의 환경과, 세계에서 가장 휴가가 길면서도 시간 대비 생산효율성이 최고인 프랑스의 현실에는 더 이상 마냥 부러워하고 동경하기만 해선 안되겠다 싶어요. 현재를 만들기까지 근간이 되었을 그들의 역사와, 공동체가 지켜온 사회적 공감대를 하나씩 알아가야겠단 오기(!)가 불끈 샘솟았습니다.

 

곱씹어 볼수록 우리나라의 일 문화가 뼈아팠던 것은, 서구의 감탄스러운 정책과 직장 문화가 근원적으로는 인간을 향한 배려, 공동체에 대한 심도깊은 성찰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되었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 전 총리가 학교를 막 벗어난 청년들에게 고용을 창출하는 건 기성 세대의 의무라고 말할 때,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공약에 따라 바뀌는 게 아닌 기본적 마인드라는 걸 전달받았거든요. 11년전 월드컵 때 거스 히딩크가 한국 축구를 맡아서 선후배간에 서로 이름을 부르게 하고, 주전멤버와 대기멤버가 같이 앉아 식사하게 하면서 기존의 구태적인 체질 자체를 바꿔놓았던 과거가 떠올랐어요. 네덜란드의 직업에 대한 평등한 사상이 모든 영역에 폭 넓게 작용해서 축구 감독인 히딩크도 그랬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면 제가 지나친 걸까요.

다시 빔 콕 총리로 돌아와서, 그가 김난도 교수에게 전한 이 말이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쉽게 잊혀지질 않습니다. “돈은 아주 중요하죠. 일도 아주 중요해요. 하지만 사람은 일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일하는 겁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삶의 질이에요.”

 

<:>에 소개된 밝고, 진취적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채로운 모든 직종의 종사자들을 유일하게 대변하는 건 물론 아닐 거에요. 그럼에도, 정말 소중하지 않은 직업이란 없구나, 라고 당신도 되뇌이시게 될 겁니다. 보람을 느끼고, 작은 도움이라도 세상에 줄 수 있다면 어떠한 일이든 고귀한 거구나 라고요.

 

제가 가능하다면 평생 하고 싶은 진짜 내 일(my job)은 글을 쓰는 것이고, 작년부터 두 편의 대중소설을 쓰고 있는데 내년 가을에 국내 문학상에 출품하기 위해 애쓰고 있어요. 가까운 장래의 목표로 삼고 독학으로 꾸준히 문학 수업을 이어오고 있었는데 원대한 꿈을 품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죠. 그런데 얼마전 지인과 카페에서 수다를 떨다가 그 분께서 본격적으로 작가 공부를 해서 도전하는 게 어떻겠냐고 격려의 한 마디를 툭 던지셨었는데, 신기하게 그 후부터 제 속에 그러한 모험에 진심으로 자신을 던져보자는 의욕이 생겨났어요. 전혀 안 해 본 생각은 아니지만 꿈의 모양에 실체가 없었는데 차츰 명확한 그림과 영상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꿈꾸는 내일(future)2년에서 4년 사이에 작가로 등단하여서 프로페셔널한 저술가가 되어 매체의 광대한 바다에서 소통의 통로가 되는 작업(work)을 하는 것이 될 수 있었습니다.

 

정식으로 데뷔를 하게 된다면 이후에 방송교육원의 6개월 과정을 이수해서 드라마 대본을 꼭 한 편 완성해보고 싶기도 해요. 10부작, 20부작 미니시리즈 대본이 한번 쓴다고 해서 체택받아 제작, 방영되기란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로망인 걸요. <네 멋대로 해라>, <내 이름은 김삼순>, <베토벤 바이러스>처럼 풋풋하고 애틋하면서 훈훈한 작품을 단 한 편이라도 꼭 제작해보고 싶은 야무진 욕심을 버리고 싶지 않네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지속적으로 작가 생활을 유지하면서 예술적 감수성을 키워서 언젠가 <8월의 크리스마스>의 뒤를 이을 수 있는, 진한 여운을 오래도록 남기는 시나리오 한 편, 꼭 죽기 전에 써보고 싶다는 소망도 잃지 않았어요.

 

2007년에 오두막이란 장편 소설 한 편을 탈고하여 조용히 발표해 주위 사람들에게 돌려보는 것으로 만족했던 미국의 평범한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창작법을 전문적으로 배운 것이 아니고 단지 진심을 담아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쓴 소설은 인터넷에서 서서히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만 부를 발행했고, 2009년에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라는 예상치 못한 열풍의 주인공이 되었죠. 윌리엄 폴 영 소설가의 놀라운 성공을 바라보며 나 또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거침없이 표현해 보리라는 다짐을 해보게 되었어요.

 

<김난도의 내:>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의 한걸음, 한 걸음을 뒤따라서 저도 나만의 일을 좇아 가 보겠습니다.

어쩌면 이 세계에는 우리가 간절히 찾아 헤매는 꿈의 직업, 꿈의 회사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이 없다면 스스로 그것을 만들어보려는 시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설령 그 첫 번째 시도에서 실패한다면 왜 두 번째 시도는 할 수 없단 말인가? 삶이라는 긴 여정 위에서 어김없이 매일 찾아오는 내일처럼, ‘내 일도 수없이 다른 모습을 띠고 매일 우리를 찾아오고 있는데 말이다.” (p.235)

 

김난도의 내일

김난도 저/이재혁 저
오우아 | 2013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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