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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_Levels of Life [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 Basic 2014-06-01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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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저/최세희 역
다산책방 | 2014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내용 별점은 3과 1/2인데 여기는 반이 없어서 저렇게 선정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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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소설가인 영국 줄리언 반스의 2013년작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는 읽기 전 관련 소개글에서 픽션과 에세이를 결합한 독창적인 작품이란 사전 지식을 알고 독서를 시작했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1부와 2부가 완전한 허구라기 보다는 줄리언 반스의 시각에서 다큐멘터리처럼 구성된 장르임을 알 수 있었다. 재연 다큐멘터리처럼 주인공들 즉 프레드 버나비, 사라 베르나르, 펠릭스 투르나숑의 삶과 사랑을 그리고 있었다. 펠릭스 투르나숑은 필명인 ‘나다르’로도 불리운다.

 

프랑스 배우이면서 뭍 남성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사라 베르나르, 그에게 구애를 펼쳤던 모험가 프레드 버나비의 이야기가 1, 2부에 펼쳐진다. 모두 실존했던 인물들이다. 여기에 투르나숑, 즉 나다르는 열기구가 발명된 이후 기구에 빠져 살다가 기구에 탑승해서 최초로 항공 사진을 찍은 사진가로 등장한다. 셋의 공통점은 당대에 열렬하게 기구를 애호했던 모험가들에 속하였다는 것이다.

 

군인이던 프레드 버나비는 파리에서 사교계의 최고의 꽃이었던 사라 베르나르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렇지만 사라는 완곡하면서도 확고하게 그를 거절한다. 거절 사유는 버나비의 개인적인 매력과 조건의 문제가 아닌 자신의 연애관(결혼관) 때문이었다. 버나비는 진심으로 그녀에게 (만나고 데이트한지 3주만에) 청혼했는데 한 칼에 거절당하자 좌절한다. 그리고 한참후 서른 일곱에 영국에서 결혼했고 1885년 영국-수단 전투에서 전사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1부와 2부에서 펼치는 줄리언 반스의 이야기를 나는 묵묵히 따라갔다. 처음 들어보는 인물들이었으므로 충분히 흥미있었고, 반스 작가의 능수능란한 내러티브에 빠져들 수 있었다. 동시에 ‘이 이야기들이 마지막 3부와 반드시 연결되겠지’하면서 내심 설레이기도 했다.

그런데 다 읽고 났을 때 약간은 허탈했다. 프레드 버나비와 사라 베르나르의 드라마틱한 연애 사건, 기구를 타고 최초로 사진을 찍었던 나다르의 이야기가 줄리언 반스가 아내를 사별한 것과 어떤 연관을 갖고 있는지 잘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 번 읽고, 3부 <깊이의 상실>은 두 번 천천히 읽으며 재 음미했다. 역사속 인물들의 사건, 관계는 응당 줄리언 반스가 하고자 하는 말의 은유, 혹은 비유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소 아쉬었다.

 

그렇지만, 반스가 얼마나 아내를 사랑했는지 십분 느낄수 있었다. 더불어 상실감의 깊이, 모든 영역에 퍼져있는 고통,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 장례를 치른 전후로 ‘주변 지인’들에게 언어와 행동으로 상처입은 일들만큼은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감히 제언하자면 프레드 버나비, 사라 베르나르, 나다르의 이야기와 작가 개인의 아픔을 매개하려 했다면 분량의 배려가 더 있었어야 했다. 앞의 이야기를 더 길게 하던지, 뒤의 아내를 잃은 이후 겪은 변화와 혼란 파트를 늘렸어야 한다. 헌데 책은 정확히 3부가 거의 동일한 페이지인데, 반스 문학에 과문한 블로거 탓인지 구성적인 면에서 굉장히 미진하고 무언가 빠진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188페이지에서 한면에 걸쳐 반스는 배우자를 잃은 사람이 빠지기 쉬운 함정, 허영일 수 있는 감정을 자세하게 서술한다.

그렇지만 그 외에는 3부 전반적으로 반스는 자기의 아픔만이 특별하고,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상실감임을 드러내고 있다. 줄리언 반스의 그녀가 only one이었다는 걸 알겠고 그 유일한 사랑을 잃은 아픔이 얼마나 각별한지는 알겠다.

 

하지만 이 세상에 온리 원을 잃은 사람은 –당연하게도- 줄리언 반스 작가 한 명만이 아니다. 작가의 통렬한 표현들은 자칫하면 자신의 상실 경험만을 유일하고 특수한 경험으로 ‘형상화’하려는 우를 범할 수 있어 보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앞에 얘기했듯 뭔가 얘기를 하다 멈춘 듯이 길지 않게 끝나버려서, 편협함으로 오해받을 여지에서 벗어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픔을 누가 더 아프고, 깊은지 견줄 수는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내를 잃은 사람’과 ‘자식을 잃은 사람’의 아픔, 이것을 비교할 수 있겠는가? 아니 그런 시도를 하려는 가정부터 잘못된 것이지 않는가.  내가 알았던 남자분은 결혼 후 2년도 안되어 아내를 잃었는데 그러면 그 사람의 아픔은 반스가 아내와 함께 한 30년보다 덜 한 것인가.

 

그럼에도,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그 누구의 도움보다는 자신의 철학과 주체적인 경험속에서 사유(思惟)하였던 4년여를, 미화하지도 않고 숨기는 것도 없이 올곧이, 때로 담담하게 풀어낸 반스의 화법에 수긍하며 독서를 마쳤다. 그의 말대로 반스가 자신의 (앞으로의) 스토리 텔링과 작품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또 응원하겠다.

 

키에슬롭스키의 영화 <블루>에서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은 여인(줄리엣 비노쉬)의 마음의 결을 따라가는 듯 했던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세상의 전부였고, 우주가 선사한 가장 큰 선물이었던 아내를 사별한 반스에게, 외국의 평범한 독자가 위로를 줄 순 없겠지만, 앞으로 그의 창작활동을 지켜보겠다는 한 마디는 꼭 전하고 싶다.

 

<책 속에서>

독일어에 ‘Sehnsucht’라는 말이 있다. 같은 뜻의 영어는 없는데, 의미상 ‘무언가를 갈망하는 마음’을 뜻한다. 여기엔 낭만주의적이고 신비한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다. 작가 C.S루이스는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속에 ‘위로받을 길 없이 남아 있는 열망’이라고 정의했다. (p.186)

 

누군가가 죽었다는 사실은 그들이 살아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p.169)

마지막 이것, 마지막 저것. 그녀가 마지막으로 읽고 마지막으로 웃은 내 글. 그녀가 마지막으로 쓴 글. 그녀가 마지막으로 말한 온전한 문장. 그녀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 (p.163)
비탄과 대비되는 애도의 문제가 있다. 비탄은 하나의 상태인 반면, 애도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점에서 둘을 차별화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둘 사이엔 불가피하게 겹치는 면이 있다. (P.144)
비탄은 어쩌면 모든 패턴을 파괴하는 것을 넘어 훨씬 더 많은 것, 즉 패턴이 존재한다는 믿음마저도 파괴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믿음 없이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 패턴을 찾거나 재정립하는 척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작가들은 그들의 언어가 만들어내는 패턴들을 믿으며, 그것이 쌓여 생각으로, 이야기로, 진실로 이어지길 바라고 또 그것에 의지한다. 사별의 고통과 무관한 사람인든, 아니면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그들을 구원해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p.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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