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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용사전

박남일 저
서해문집 | 2014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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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용 사전』리뷰

 

<원칙> : 지배계급의 원칙과 피지배계급의 원칙은 서로 모순된다.

             (3장 p.204)

 

저자는 현 사회를 지배 세력과 피지배 세력, 착취하는 기득권과 착취당하는 민중의 관점으로 본다.

다소 음울한 뉘앙스가 전면에 흐르긴 하지만, 틀린 말도 아닐 것이다.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메카니즘을 모른다면 죄가 아니지만, 뻔히 알고도 당하고 산다면 그것은 어리석으므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박남일씨의 말들에 귀기울여 봄직 하다.

 

세상의 원리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제시하면서 저널리스트인 박남일은 우리의 생각들을 밑바닥부터 들여다보고 전복적인 변혁을 해야 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고수하고자 한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사물과 인간을 바라보는 우리 ‘눈’에서 시작하기에 그 시각을 제대로 함으로써 다르게 생각할 수 있고, 여태까지 당연시했거나 무관심했던 일들을 뒤집어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책을 열면서 비트겐슈타인의 언설을 인용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것을 ‘소비’하고 말며, 자본을 절대적이고 유일한 가치로 받아들여 신념으로 삼는 사회가 되버렸다. 재산과 권력이 주인이 된 세상에 다름 아니며 그것에 저항하려는 시도는 쉽게 무력화되고, 자본가 계층은 아래 계급들에게 체념을 가르치려고까지 하는 세계.

저자와 같은 사회주의자 지식인들의 기본적인 세계 인식은 그것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미화된 말의 포장지를 뜯어내면 거꾸로 된 현실이 비로소 보인다.’ (p.220)


요컨대 <어용 사전>의 확실한 컨셉은 반자본주의이고, 사상적으론 반체제적인 뉘앙스를 농후하게 품고 있는 도서이기도 하다.


연대기순이거나 인물순이 아닌 개념을 나열하는 집필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인문도서와는 많이 다른 방식으로 독해를 하게 된다. 하지만 작가의 논조가 워낙 일관되기 때문에 한 장 한 장 읽어가면서 제법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고, 읽고나서 풍성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때로는 재기넘치게, 때로는 신랄하게, 시종일관 확고하게 펼치는 단어들 중 인상적인 낱말들을 키워드별로 꼽아봤다.


명품 –일상의 착취를 망각하고 황폐한 내면을 감추는 데는 명품만 한 게 없다.

민영화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을 효율적으로 개혁하여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정부의 해묵은 논리가 아직 먹혀들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민영화’의 본질은

공기업을 사기업으로, 비영리기업을 영리기업으로, 다수의 생활 수단을 소수의 돈벌이 수단으로 바꾸는 것이다.


인재 – 유능한 인재 한 명이 10만 명의 범재들을 효율적으로 착취한다. 자본가는 인재를 통제하고, 인재는 노동자를 통제한다.

일자리 창출 –창출되는 것은 주로 비정규 일자리이고, 사라지는 것은 주로 번듯한 일자리이다. ‘일자리 창출’이란 불안한 일자리로 안정된 일자리를 대체하고 일회성 일자리로 지속적 일자리를 밀어내는 일이다. 없는 일자리 창출보다 있는 일자리 보장이 먼저이고,

버려진 노동자를 구제하는 것보다 일하는 노동자를 버리지 않는 게 먼저이다.


정경유착 – 정치와 경제는 본래 사이좋은 연인이다. 정치제도는 경제적 토대 위에 구축되고, 경제제도는 정치에 의해 보호된다. 정경유착 또는 정경일치는 자본가 국가의 보편적 본질이다. 그 때문에 경제 모순이 정치 모순을 낳고, 정치 모순은 경제 모순을 강화한다.

사실은 정경유착보다도 정치와 경제가 따로 존재한다는 착각이 더 문제다.


파업 –노동자계급의 파업은 자본가계급의 부당한 영업에 제동을 걸기 위한 것이다. 이윤의 원천이 자본이 아니라 노동에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파업, 즉 일하지 않을 권리를 비난하거나 막을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


힐링 –힐링은 고장 난 체제에서 피해 입은 이들에게 치유와 정화를 팔아먹는 이데올로기 상품이다. 아픔에 대한 근본적 치료 따위는 없어도 된다. 일회용 티슈로 눈물 한번만 닦아주면 그만이다. 그것이 힐링이다.


균형감각 – 진위(眞僞)가 대립하는 것들 사이에서 균형감각은 방관자를 낳을 뿐이다. 거기에서 필요한 것은 균형감각이 아니라 당파성이다. 한 발 물러선 균형감각보다는 노골적인 편들기가 낫다.


사회통합 – 밑도 끝도 없이 사회통합을 말하는 자들의 이력을 뒤져보면 사실은 사회 갈등과 분열의 원흉들인 경우가 많다. 지역감정을 이용해 인민을 분열한 자들, 빨갱이 사냥으로 사상을 분열한 자들, 기업 천국 노동 지옥을 위해 노동자를 분열한 자들, (…), 노숙자의 생명보다 콘트리트 건물을 중시하여 갈등을 일으킨 자들, 타인의 일용할 양식보다 자신의 골프채를 귀하게 여겨 빈부의 갈등을 부추긴 자들.

사회적 갈등이 통합을 가로막는 게 아니라 통합에 대한 맹목적 욕구가 사회적 갈등을 재생산한다.


인사 청문회 – 인간의 일부는 청춘을 몽땅 건 이기적 경쟁을 거쳐 인재가 된다. 인재의 일부는 병역 면제,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증여세 탈루, 논문 표절 따위와 같은 비리 경력을 경쟁적으로 쌓은 뒤에 비로소 통치 권력자의 눈에 띄는 인사가 된다. 인사청문회는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이 정권 고위 각료가 되는 데 필수적임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그로써 보편적 인간들에게 양심과 도덕의 현실적 기준을 대폭 낮출 것을 종용한다.


침묵 – 인민이 아우성치는데 통치자의 침묵은 무도(無道)다. 아는 바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아서 막돼먹은 까닭이다. 침묵은 자신에게 불리한 진실을 은폐하는 데 유용한 수단이다. 때로는 말하는 입보다 침묵하는 입을 조심해야 한다.

 

 

이렇듯 촌철살인의 어법과 기발하기도 한 언어적 사유를 통해 작가는 독자의 가치관을 뒤흔들고 있다.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경제, 경쟁과 자본가를 위하는 교육에 대한 박남일의 따끔한 충고들은 과격한 표현법들이 많긴 하나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제언들이었다. 더군다나 소통 부재의 독단적인 정치환경에 놓인 요즘같은 때에는 오히려 주목해야 할 외침처럼 들리기도 한다.

또 다른 ‘어용 단어’들을 살펴보자.

 

 

 

국가대표 – 국가대표는 국가를 대표하고, 국가는 자본을 대표한다. 따라서 국가대표는 자본을 대표한다. 대부분의 스포츠에서 국가대표는 ‘스포츠 정신’이라는 헤드라인으로 피지배 인민과 지배적 자본 사이를 효율적으로 매개한다. 그 점에서 국가대표는 글로벌 자본의 마케팅 전사들이며, 그들에게 쏟아지는 찬사와 박수소리가 클수록 국가의 통치력과 자본의 지배력도 커진다.


– 돈이 가장 센 칼이기 때문이다. 칼은 돈이 되었고, 돈은 언제든 칼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자본은 흉측한 무기다.


사유 – 사유(思惟)가 올바르고 깊으면 당연히 사유(私有)를 부정하게 된다. 사유(思惟)하고도 사유(私有)를 부정하지 못한다면, 사유(思惟)가 깊지 않았거나 사유(私有)한 재산이 많은 경우다. 많은 재산을 사유(私有)한 사람에게 철학적 사유(思惟)를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도 그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다 -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말하는 사람치고 좋은 일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좋은 게 좋으려면 나쁜 게 나빠야 한다. 이처럼 주어가 생략된 말을 조심해야 한다. 그것은 대체로 은근한 협박이거나 얼빠진 굴종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은 없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으니 함부로 입 놀리지 말라는 경고다. 제 몸에 묻은 먼지 털리고 싶지 않거든 남의 몸에 묻은 똥도 못 본 척하라는 협박이다. 서로 먼지 묻고 똥 묻은 채로 찜찜하고 더럽게 살아가라는 충고다.

그 충고에 따르기 싫거든 제 먼지도 털어내고 남의 먼지도 털어주면서 수시로 심신을 세탁할 일이다. 그래야 일상이 개운하고 마음이 편안하다.


팩트 – 요즘 사람들은 의미보다 팩트(fact)를 중시한다. 그래서 흔히 “팩트만 말하라”고 한다. 물론 그들 주장대로 팩트 없는 의미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의미 없는 팩트 또한 아무것도 아니다. 삶에서는 백 가지 팩트보다 한 가지 의미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이에 반하는 ‘팩트 지상주의’는 필요에 따라 의미를 독점하거나 은폐하려는 의도일 뿐이다.

 

나는 책을 만났을 때 판단 기준으로 (대체로) 세 가지 준거를 갖는 편이다.

미학적 측면, 정서적 측면, 인식적 측면이 그것이다.

미학적으로 <어용사전>은 개념어 형식의 차원을 취해 어려울 수도 있는 내용들을 흥미있게 읽게 기획되었고, 개인적으로 폰트와 디자인에서 과거의 대학가 현수막과 대자보체를 보는 것 같아 이채로웠다.^^

하지만 리뷰어가 느끼기에 가장 취약했던 부분은 정서적 측면인데 단순히 내 취향이 아니어서 일수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매우 건조한 느낌에 처음엔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작가의 확신있는 신념 자체는 괜찮았지만 일부 강경하고, 논리 비약적인 언술은 궤변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강렬한 자기 주장을 담는 형식도 그다지 친절하지는 않아서 종종 거북했다.


그렇지만 가장 임팩트 있게 다가온 지점인 인식적 부분에서 큰 점수를 줄 수 있었다.

내게는 일부 낯설었던 내용들을 강력하고 센세이셔널한 기법으로 드러내는 어법과 그를 통한 개념들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처음 안 작가인 저자는 이론 설계자로서보다는 액티비스트이자 투사로서 내겐 부각돼 보였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읽고 나서 개별적인 개념과 어휘들을 되새길 때 비로소 제대로 파악되는 의미들이 많은 것 같다.

 

작가의 집필이 기존 정치계에 대한 저격수로, 진부한 언론에 대한 쓴 소리로서 역할을 하면서 활발하게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여덟 단어>, <마음 사전>과 같은 도서에서 보듯, 보통 고수가 아니라면 ‘사전’이란 타이틀로 현상을 해석하고 본질에 접근하는 책을 쓰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완전하게 동조하지 못한 면들이 있었지만) 나와는 180도 다른 프레임을 갖고, 전혀 다른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분석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카프카가 책이란 꽁꽁 언 바다를 깨는 망치와 같아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무언가로 강타당하는 기분이었다.

 2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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