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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은 입력될 수 없다, [열세 번째 아이]를 읽고 (독후감) by bohemian75 | Basic 2012-03-31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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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열세 번째 아이

이은용 글/이고은 그림
문학동네 | 2012년 0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인간성은 입력될 수 없다, 아름다운 미래 동화 (bohem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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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은 입력될 수 없다,

아름다운 미래 동화, <열세 번째 아이> 독후감

 

 

작년 봄부터 가을까지 200일간 경기도 변두리 외곽에 위치한 대학에서 조용히 일을 했었다. 그러다 퇴사를 하고 어느날 1년만에 서울의 지하철을 타게 됐을 때의 작은 충격을 아직 기억한다. 동작대교 주변의 한강으로부터 눈부시게 햇살이 쏟아져 들어와 나는 눈을 감고 한껏 그것을 느끼다가 전동차가 지하로 들어가 눈을 떴을 때 사람들은 모두가 같은 자세였다. 평일의 낮의 4호선은 사람이 많지 않아 승객은 모두 앉아 있었는데 몇 사람을 빼고는 전부 핸드폰을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머리의 고개를 숙인 각도며 스마트폰으로 예상되는 기계를 손으로 그러 쥔 모양까지 어찌나 비슷하던지. 나도 스마트폰의 소유자였지만 마치 아프리카에 살다 뉴욕에 처음 온 원주민 마냥 펼쳐진 풍경에 신기해했더랬다. 하지만 그 잠시였을 뿐 귀가할 때는 퇴근시간의 만원열차에 몸을 실으며 그런 공상적인 생각은 쉽게 잊혀지고 나도 집으로 걸어오며 핸드폰을 자주 꺼내들었다.

 

 그 경험 이후 어느날 동네 산책을 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 때는 삐삐가 생겨 친구, 연인과 삐삐에 얽힌 추억이 있었고, 그러다 PCS, 시티폰에 이어 전국민 성인에게 핸드폰이 보급되기 까지 새로운 통신기계가 생길 때마다 짜릿한 희열을 느꼈던 지난 날이 있었다. PC통신으로 전국 각지에 친구가 생기는 신기원을 이루다가 인터넷이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퍼지고 세계 어느 곳, 장소가 어디건 메신저로 채팅하고 메일로 안부를 전하는 편리함을 누리기까지의 눈부신 발전도 봤다. 그런데 이제 아이폰, 안드로이드폰이다 하여 스마트폰이 인터넷과 연결되어 삐삐 시절에는 상상도 못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놀라운 신세기였음을 두말할 필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집 앞 공터에서 그려본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는 스마트폰에서 홀로그램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였다. 작은 홀로그램으로 전화하는 상대방이 나오고, 목소리는 이어폰을 통해 듣는 그런 이동 전화기의 출현. 하여튼 어떤 새 테크놀로지 이던 간에 앞으로 10년 후에는 과거의 발전 속도를 기하급수적으로 따라잡는 변화가 있을 거라고 난 생각하며 집으로 들어왔다.

 

흔히 이러한 미래의 신기술이 보편화된 세계를 그리는 소설과 영화를 ‘공상과학’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일컫는다. 이 책 <열 세 번째 아이>는 2075년의 첨단과학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바로 그런 공상과학 소설이다. 동시에 특별하게 어린이가 주인공이고 어린이를 주 독자로 삼은 아동문학이다. <열 세 번째 아이>는 내게 여러모로 새로운 독서방식을 선사했다. 우선 책의 느낌상 반전이나 특이한 결말이 있을 것 같아서 미리 인터넷 검색을 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도서 앞 뒤 날개에 있는 몇문단의 소개글도 보지 않고 읽기 시작했던 점이 그것이다. 좋아하는 장르인 아동문학이라 반가웠던 데다 사이언스 픽션은 아주 오래전 아이작 아시모프 이후 처음이어서 설레였다. 어른 대상 서적과 달리 활자가 크고 여백이 넓어 읽기가 쉬웠고 중간중간 포함된 개성적이고 상상력이 담긴 기묘하기도 한 일러스트를 보는 것은 <열 세 번째 아이>만의 큰 장점이다.

 

 

작품의 시작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22살의 김선이란 이름의 박사가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다. 그는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새로운 유형의 맞춤형 인간으로서 소위 ‘첫번째 아이’라고 불리는 사람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나 ‘장시우’는 이제 14살이 된 학생으로, 그도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났고 그런 방식으로 태어난 순서에 따라 ‘열 세 번째 아이’라고 불리웠다. 시우에겐 자신을 만드는데 참여한 연구원인 엄마가 있고 시우는 우월한 유전자로만 이뤄졌기 때문에 학업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더불어 연구기관에서 시우의 성격, 지능, 신체사항을 종합해 진로를 다 정해줄 것이어서 시우는 그런 현실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정부와 엄마, 박사들의 치밀한 계획에 의해 감정적인 특성은 제거되고 이성적인 부분만 강조되어 주변 사람들, 같은 반의 유전자 조합 아이들의 감정생활을 이해못하는 차가운 아이 시우. 아니 그에겐 오히려 ‘인간적’인 감정의 표출이 유치하고 낭비적인 행위로 여겨질 뿐이다.

  여러 가지 설정들이 낯설지 않았는데 내가 SF영화의 팬이었기 때문이었다. 시작은 애니메이션 <아톰>과 비슷했고, 감정을 느끼는 로봇 레오의 출현은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떠올리면  즉시 캐릭터가 뇌리에 연상되었다. 안드로이드 로봇들 사이에서도 각기 다른 성격으로 대립을 빚는 스토리는 전설적인 명작 <블레이드 러너>에서 묘사되었다. 한편 <이퀄리브리엄>에서는 미래 사회에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감정을 없애는 약을 투여하는 섬뜩한 사회상을 펼쳐 보여줬었다. 또 <가타카>에서 중요한 일을 수행하기 위해 사람들을 열성인자 출신과 우성인자 출신으로 분류해 우월한 사람을 뽑는 극단적인 이야기가 나왔는데, <열 세 번째 아이> 역시 유전자 인간 장시우가 등장해 나라의 최고 엘리트 부서의 직업에 진출시키려는 프로젝트가 존재한다.

 

 

승승장구하던 시우 앞에 어느날 엄마는 감정 로봇 ‘레오’를 데려와준다. 시우가 다니는 학교의 아이들은 모두 로봇과 함께 다니는데 로봇이 그들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면서 부모에게 시시각각 아이들의 현재 상황을 알려주는 역할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다수의 단일 감정 로봇과 달리 레오는 인간과 아주 흡사한 다양한 감정을 인간처럼 ‘느끼는’ 최근 개발된 로봇이라고 엄마는 자랑했다. 맞춤형 아이 장시우가 그 전에는 없던 우월함이 추가된 완벽한 아이이듯 레오는 기계이지만 다정다감하며 불쾌함도 감지하고 표현하는 완벽한 로봇이었다. 그러나 시우는 자신과 달리 희로애락을 느끼고 그때마다 드러내는 레오에게 이질감과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레오에게 입력된 기억들은 어떤 것일까? 완벽한 로봇이 되기 위해서 실패나 슬픔의 경험도 입력되어 있겠지?”(p.57)

 

 

로봇이 마치 핸드폰과 인터넷처럼 보급된 2075년의 미래에는 새로운 기술에 늘 병폐가 따르듯 한 가지 사회 문제를 껴안고 있었다. 사람들이 편리하고자 만들고 구입한 로봇이 더 이상 그전처럼 필요하지 않거나 새롭고 신기한 새 로봇이 출시되면 버려지는 현상이었다. 마을에는 ‘쓰지않는 로봇 수거장’이 있어서 사람들이 버린 로봇 쓰레기들이 처리되는데 갈수록 점점 쓰레기 더미의 크기가 커져갔다. 문제는 우리가 유기견들에 동정심을 갖듯 나름대로 기능이 살아있는 도우미 로봇들을 그저 싫증났다고 무분별하게 버리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어서이다.

 

시우는 앞서 말했듯 이성적 기능이 뛰어나게 제작된 아이여서 정말 냉철하고 논리적이다. 유나를 비롯한 몇몇 친구들이 로봇을 친구, 가족으로 여기고 로봇의 인권을 위하는 시민단체가 로봇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로봇 없이 인간이 혼자서 완성하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끊임없이 새로운 로봇을 만드는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로봇은 로봇일 뿐이라고 외치는 행동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게 사실이다.” 자신과 솔직하고 상호 교류적인 관계를 쌓으려고 하는 로봇 레오에게 시우는 인정사정없이 ‘불편한 진실’을 내뱉어 버린다. “네 경험과 기억이 가짜인 것처럼 넌 진짜가 아니야. 사람인 척 하면서 제발 귀찮게 굴지 말라고.”(p.90)

 

 

레오는 달랐다. 끔찍한 로봇 쓰레기 더미에 충격을 받았고 사람이면서도 잔인한 말을 서슴지 않는 시우에게 상처를 받기도 했다. 연구소는 감정 로봇을 만들면서 단순히 로봇들이 좀 더 다양한 감정을 구사하여 인간을 더욱 즐겁고 재밌게 해주길 바랬으나, 역설적으로 사람의 본능을 모델로 한 감정 로봇들은 점점 더 복합적인 감정을 스스로 발생시켜 갔던 것이다. 레오만이 아니라 많은 감정 로봇들이 그런 과정을 겪으며 인간들의 일방적인 폭력에 분노심을 생성시키게까지 이른다.

 

곁에서 레오를 지켜보던 시우는 무의식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민 박사의 정기검진을 받게 된다. 민 박사는 엄마와 함께 자신을 탄생시키고 평생 자신을 관찰하기로 했던 연구원인데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일을 버리고 ‘로봇 보호 센터’로 들어가겠다고 한 사람이다. 혼란함을 느낀 시우는 참고 참다가 민 박사에게 일을 그만두는 이유를 물어보자 그는 ‘누구도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만들 수는 없고 자기는 신도, 맞춤형 아이들의 아버지도 아니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해준다.

 

 

독서를 하면서 나는 처음엔 장시우라는 아이가 어떻게 살아갈까에 흥미를 갖고 읽어나가다가 차츰 장시우 프로젝트가 얼마나 인간들의 이기심의 산물인가를 서서히 느껴갔다. 그러다가 또 다른 주인공인 레오가 시우에게 친구가 되고 싶어 다가가는 장면들을 통해 얼마나 시우가 냉혈하고 무자비한지 레오와의 비교를 통해 통감할 수 있었다. 은연중에 난 시우가 반 친구인 유나와 동무 로봇 레오를 통해 자기의 문제를 깨닫기를 바랬던 것 같다. 그래서 시우가 ‘열 세 번째 아이’답지 않게 보통 열네살 어린이가 통과하는 사춘기의 감성에 빠졌을 때 진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최첨단 과학이라도 어쨌든 사람의 유전자를 지닌 존재인 시우의 흔들림이 기쁘고 사랑스러웠다. 그 때 엄마는 시우가 고민하고 방황하는 것을 두고 ‘너는 평범한 아이가 아니니까 이것 조차 문제없이 넘어갈거’라고 얘기해 주는데 그런 엄마가 갑자기 공포스럽게 다가왔다. 100페이지가 넘는 앞 부분까지는 연구원인 엄마가 좀 유별나고 극성스런 과학자라고 보긴 했어도 그렇게 무섭지는 않았는데...

 

 

시우는 이제 엄마를 믿을 수 없다. 늘 애틋하게 챙겨주는 민 박사가 자기의 유전자를 준 사람인지도 궁금하고, 감정 조절 물질로 자신을 조정하려는 연구소가 과연 장래를 보장하는지 다 의심스럽다. “내가 알던 것들은 모두 바뀌었다. 이제 무엇도 확신할 수 없다.”그런 가운데 일부 감정 로봇 사이에 주인 인간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일들과 소요 사태가 발생하고 누군가 컴퓨터를 해킹하고 바이러스를 퍼트려 중앙통제시스템이 오류를 일으킨다. 로봇의 감정이 철저히 제작자인 인간에 의해 관리되고 예측 가능한 범주에서만 행동한다는 정부기관의 말이 틀린 것으로 판명나자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그러자 연구소는 로봇 보호 센터를 반체제 조직으로 부르며 로봇들의 모든 감정칩을 회수하고 로봇들을 폐기하겠다는 발표를 하기에 이른다. 인간처럼 스스로 판단하는 로봇들이 국가에 위협적이란 것이다.

 

‘인간스러움’이 무엇인가를 잘 모르고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인간과 기계의 대비를 통해 참 인간다움을 얘기하는 <열세 번째 아이>는 그래서 철학적이다. 선진 문명의 미래상은 독해에 체계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지만 익숙해지면서 오히려 간결하고 명징한 주제의식 몇 가지에 텍스트가 집중하고 있음을 알수 있었다. 사람인 차니가 로봇인 시아를 좋아하고 로봇인 레오가 주인 지오에게 구타당하고 있는 로봇 나르를 대신해 몸을 날리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묻는 것이 테마의 하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이기에 비록 로봇의 감정일지라도 그것에 화답할 수 있고, 로봇이어도 감정이 있기에 노예처럼 맞고 있는 다른 친구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SF(science fiction)로만 본다면 이야기 틀 안과 밖에 몇가지 빈 틈을 지적할 수도 있긴 하다. 어린이 동화인 이 작품으로썬 14살 주인공 시우와 레오의 우정에 초점을 맞추면서 좀 더 자아의 변화에 관심을 가졌지만, 만약 미래에 저런 기술이 나온다면 그게 문제가 아니라 나쁜 인간 무리에 의해 로봇 군대가 만들어져 세계가 3차대전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적대관계인 강대국들 사이에 로봇으로 군인을 조직해 쉽게 전쟁을 일으켜 인류는 매일의 전쟁으로 몸살을 앓을 확률이 높다. 마지막으로 인간복제가 가능할 때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내려는 사람들도 나타나기 마련인데 이런 소재는 프랑스 작가 '마르크 레비'가 다루기도 했다.

 이처럼 세세한 이야기들을 도외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열세 번째 아이>가 갖는 어린이문학으로써의 가치는 쉽게 폄하될 수는 없다고 느꼈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걱정되었던 것이 소설이 디스토피아적이기 때문에 행여 이런 장르를 처음 접하는 아동에게 밝지 않은 세계관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 싶어서 였는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엔딩으로 감에 따라 그것은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그 어떤 소설보다도 인간성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눈물겹도록 마음과 마음의 소통을 따뜻하게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열세 번째 아이>는 아이들에게 권해줄 만한 감명깊은 창작동화 작품이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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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영화들] "페이스 메이커" 그리고 '댄싱 퀸' (by bohemian) | 영화가 왔네 2012-03-27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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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페이스 메이커

김달중
한국 | 201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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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메이커

난 영화를 보기 전까지 '페이스메이커'라는 일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알고보니 이 용어는 마라톤,수영같은 기록경기에서 다른 선수가 연습할 때 그 선수를 위해서 옆에서 같이 레이스 하는 선수를 말한다고 한다.  페이스메이커의 해당 선수가 국가대표이면 그도 같은 국가대표라고 하는데, 스탭의 일종일수도 있겠다. 이 작품은 마라톤에서 페이스메이커 일을 해 온 선수를 그리고 있는데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페이스메이커의 애환을 접할 수 있었다.

 

 주만호(김명민)는 전직 페이스메이커 국가대표로서 현재는 은퇴하고 친구집에서 보조로 일하고 있다. 그간 하는 사업에 다 망해서 빚이 있는데 동생이 외교관이지만 동생에게 절대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에 하루하루 일하며 살고 있는 만호. 그런 그에게 어느날 전에 자신을 기용했던 대한육상연맹 회장 박성일 감독(안성기)이 찾아온다.  이번에 런던올림픽에 마라톤 유망주가 나가는데 그를 같이 도울 페이스메이커가 필요하고 다시 한번 일할 생각이 없냐고 하는 제안이었다.

만호는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고 동생 주호와 단 둘이 억척스럽게 살아왔다. 어느날 자신에게 달리기의 재능이 있음을 알고 동생 뒷바라지를 위해서 페이스메이커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인데 그것이 만호의 일생을 바꿔놓아 버리는 형국이 되었다. 그도 마라톤 42.195km 전체를 뛰어보고 싶고 당당히 경쟁도 하고 싶지만 이미 페이스메이커로서 젊을 때 훈련되어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되었을 때는 자신의 꿈은 멀어져만 있었다. 하지만 만호는 동생이 외교부의 고위공무원이 된 것에 만족하고 그다지 잃어버린 꿈에 개의치 않는데, 문제는 동생이  그를 부끄러워 하는 상황인 현재가 되어버렸고 그런 형제의 모습이 참 안타깝게 느껴졌다.

자신을 외면하는 주호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시 한번 올림픽에 출전한 주만호.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런던 올림픽  마라톤 장면은 볼거리들과 더불어 감동적인 설정이 숨어 있었다. 계속 페이스메이커를 전전하는 형을 잊을 줄만 알았던 주호가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레이스를 한참 하던 만호는 20km가 넘어서 갑자기 다리 근육에 이상이 와서 스스로 못으로 찔러 피를 내며 근육을 푼 채 힘겹게 달리고 있었다. 이제 10km만 가면 자신의 할 일은 다 마치기에. 그런데 관중석에서 글쎄 동생 주호가 응원을 나온 것을 본 것이다. 이 때 어렸을 때 초등학교 운동회 때의 한 추억이 겹쳐진다. 어린이 만호가 열심히 달리다가 넘어졌고 만호는 창피하기도 하고 자신없어 멈춰 있는데 동생이 우산을 활짝 펴면서 응원을 했었다. 그것은 형제간의 둘 만이 아는 전력질주하라는 암호였다. 그런데 그 때처럼 지쳐있는 만호에게 주호는 빨간 우산을 머리 위로 높이 치켜 든다. 그리고 활짝 편다. 

 

 누구나 잃어버린 꿈이 있지 않을까 싶다. 영화 '페이스메이커'에서 주만호가 12.195km는 늘 의레 그렇게 포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공식적인 룰을 어기고 완주를 하고야 마는 주만호 선수는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영화가 끝난다. 

영화니까 그런건 아닌가 싶었는데 알고보니 황영조 선수가 바로 페이스메이커 출신이었고 케냐의 한 페이스메이커 선수도 완주를 하여 상위권에 든 사실이 있어서 더욱 놀랐다. 잊고 있고 포기했던 꿈을 형제간의 애틋한 사랑으로 이뤄낼 수 있음을 영화는 아름답게 보여줬고 그래서 나는 극장을 나오며 눈물을 훔칠 수 밖에 없었다.

댄싱 퀸

페이스메이커가 잔잔한 스포츠드라마로서 장점을 지닌 영화라면 그와는 정반대의 스타일의 <댄싱 퀸>은 황정민, 엄정화가 주인공인 코믹 영화라 할 수 있다.

 

 엄정화(동명으로 등장)는 대학 시절 신촌 일대를 주름잡는 댄싱 퀸이었지만 황정민(동명)을 만나면서 결혼을 하게 되고 고시생 남편을 돕고 딸을 키우며 에어로빅 센터 강사로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세월이 흘러 정민은 인권,노동쪽 일을 주로 하는 변호사로 자리를 잡았고  풍족하지 않지만 소소한 일상에 만족하고 살고있던 정화. 그녀의 친구는 어느날 왕년의 끼와 실력을 버리기 아깝다며 슈퍼스타 K에 나가자고 부추긴다. 못이기는 척 정화는 따라 나가 김완선의 히트곡을 열창하지만 심사위원의 비웃음을 사고 초라하게 무대에서 내려온다. 

하지만 우연찮게 이 영상을 눈여겨본 연예기획사 제작자에게서 정화에게 연락이 온다. 성인 컨셉의 댄스 여성 그룹을 데뷔 준비 중인데 예전에 신촌 마돈나였다는 걸 안다며. 그러나 공교롭게 그 때 남편 황정민은 친구의 공천으로 서울특별시 시장 경선의 후보가 되어 있었고 언론에 알려지면 남편에게 해를 끼칠까봐 몰래 연습실을 오가는 비밀 '이중생활'을 정화는 할수 밖에 없다. 

어쩌면 황당한 이야기들일 수도 있다. 아무리 변호사 신분이지만 어느날 용감한 시민으로 인터넷에 알려져 하루 아침에 서울시 시장후보가 된 정민도, 40대의 나이에 과거의 댄스 실력을 되살려 아마추어가 아닌 실제 댄스가수의 꿈을 이루는 정화도 말이다. 

아예 그래 영화니까 하고 웃고 잊어버리는 현실 도피의 픽션이라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의외로 '댄싱 퀸'은 개봉한지 한참 된 얼마전까지도 상영이 되면서 특히 영화속 나이대의 중년의 관객들에게 판타지지만 활력소로써 각광을 받고 있다는 보도를 봤다.

 

김명민이 나왔던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강마에는 후배에게 간곡하게 충고를 한다. 무턱대고 난 안된다고, 현실과 환경의 장애물이 너무 높다고 포기하고 있는 이에게 "꿈을 이루라는 게 아니야. 꿈을 꾸기라도 하란 말이야." 작년에 화제를 낳았던 노래 '여러분'의 가사에서는 '네가 만약 외로울 때면 내가 위로해줄께. 네가 만약 서러울 때면 내가 눈물이 되리."라는 가사가 있었다. 

'페이스 메이커'와 '댄싱 퀸'은 소재와 주제 모두 다르지만, 꿈과 사랑하는 가족들의 위로가 담겨있었다. '주만호'와 '엄정화'는 모두 자신의 인생에서 마지막 기회일지 모를 순간을 꽉 붙잡았고, 동생과 남편은 그들에게 결국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었다. 혹시 꿈을 꾸기엔 너무 나이 들었다고, 아니면 가족이 외면할 거라고 주저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올 해엔 다시 한번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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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을 안겨준 법정 영화, [음모자] 로버트 레드포드 감독, 제임스 맥어보이, 로빈 라이트 주연 | 영화가 왔네 2012-03-10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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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모자

로버트 레드포드
미국 | 201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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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바탕으로 한, 링컨 이후의 일을 다룬 시대극 영화

<음모자>

 

아, 오랜만에 감동적인 법정영화를 보았다. 사실 잘 만든 미국의 법정 영화는 현대적으로는 'The Firm'등을 비롯해 과거에 많이 있었었는데 언젠가부터 스크린에서 볼수 없었고 오랜만에 봤는데 역시 매우 드라마틱했다. 좀 다르다면 이 작품은 링컨 대통령 시대의 이야기를 담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는 일종의 시대극 영화다.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링컨 대통령이 암살됨으로써 미국 사회는 발칵 뒤집힌다. 대통령 음모사건에 가담한 8인중 1명의 '용의자'로 바로 메리 서랏(로빈 라이트)이라는 평범한 가정주부가 전쟁부 장관에 의해 기소됨으로써 영화는 시작된다. 북군 출신이었던 변호사 프레데릭 에어컨(제임스 맥어보이)는 요청을 받고 별로 내키지 않게 이 사건의 변호를 맡게 되었지만 사건을 조사할 수록 메리 서랏이 유죄인 증거를 찾아내지 못하며 점점 더 메리의 무죄를 확신해간다. 하지만 여러가지 입증 자료들은 메리를 반란세력을 숨겨준 죄인으로 몰아가고 결국 메리에게 교수형이라는 형이 언도된다. 하지만 최후의 방법으로서 민사 재판에 이 사건을 넘기게 된 에어컨 변호사는 교수형이 행해지기로 한 날 낮에 메리와 가족들을 찾아가 서로 사형을 면한 기쁨을 나누지만, 뜻하지 않은 일이 그들을 기다린다.

 

사형까지는 억울하다고 여겨진 메리의 죽음이 내겐 몹시 슬프게 다가왔다. 자료를 찾아보니 그녀는 미 연방정부가 생긴 이후 최초로 사형을 당한 여성이라고 한다. 교수형을 면할 수도 있던 순간 당시 대통령이 거부하여 공개적인 장소에서 다른 암살자들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그녀를 보는데 어찌나 울컥하던지.. 그 장면을 감독(로버트 레드포드)가 특별히 신파스럽게 라거나 슬로우모션이나 클로즈업으로 묘사한 것도 아닌데, 뛰어난 연기자인 로빈 라이트의 억울하고 슬프면서도 받아들이는 연기와 주변의 자연풍경, 마치 당연하다는 듯 지켜보는 남자 청중들의 모습이 겹치면서 굉장히 몰입도가 높게 다가왔던 것 같다.

 

 

In times of war, the law falls silent.

 

전쟁부 장관역으로 케빈 클라인이 링컨 암살 후 혼란스런 나라에서 범인 세력을 척결하려는 대표로 나온다. 어떻게든 메리를 그것도 만인앞에서 미 합중국의 합법적인 판결 하에 죽임으로써 나라의 기강을 잡으려하는 그 앞에, 에어컨 변호사는 이렇게 외친다. "장관님, 그건 정의가 아니라 복수에요." 하지만 전쟁부 장관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만을 고집할 뿐.

 

에어컨 변호사는 거의 홀로 외로운 법정 투쟁을 계속 한다. 그를 돕고 싶고 심정적으로는 측은히 여기는 이들도 있지만, 링컨 대통령이 죽은 후 나라는 너무도 불안한 상태이다. 한 법관인은 그에게 저렇게 말하기까지 한다. "전쟁시에 법은 침묵한다"라고.

 

다시 한번 사형제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그밖에도 많은 걸 순식간에 느껴지게 한 작품이었다.

 

영화의 말미에는 역시 미국의 상처 끌어안기처럼, 1년후에 미 법정은 그 이전의 불합리했던 재판 과정을 보수하고 좀더 국민이 정당하게 재판받을 권리를 옹호하게 되었다는 자막이 나왔다. 다행이긴 하지만 이미 처벌받고 사라져간 사형수들을 되돌릴 순 없는...

 

또한 극중 제임스 맥어보이는 눈앞에서 변호했던 의뢰인이 사형되는 걸 본 후 회의를 느끼고 변호사를 그만둔다고 한다. 그리고 언론계로 들어가 '워싱턴 포스트'에서 기자로서 최초의 사회부 부장기자가 된다는 자막도 나오고 그러면서 영화는 끝난다.

 

법이란 것은 정말 사회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체제라는 것을 다시금 느낄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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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화블로그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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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영화, '러브 레터' (1995,이와이 순지) / bohemian75 | 영화가 왔네 2012-03-0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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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레터]의 죽음, 사랑의 이미지

이와이 순지의 영화 읽기


뮤직비디오와 CF, TV 드라마를 거쳐 이와이 슈운지가 만든 최초의 장편영화인 <러브 레터>는 1995년 일본에서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한 작품이다. 또한 '키네마준보'가 집계한 독자선정 '95 베스트10'에서 1위를 차지해 지적인 관객들의 사랑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이후 우리나라에서 몇 년간 불법비디오로 돌면서 약 10만명 정도가 보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몇 년 후 극장개봉시 서울관객 70만명을 동원했다. 모 음료수 CF에 '자전거 돌리며 불빛을 내는 장면'이 패러디되고 '오겡끼데스까'를 소재로 한 개그가 유행하는 등 우리나라 문화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만큼 <러브 레터>는 개인적 취향을 넘어서 일본의 미학과 세계관을 잘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와이 슈운지가 연출, 각본 뿐 아니라 편집까지 맡아 했기 때문에 작가주의적 분석이 유효하며, 분석은 결국 슈운지 자체가 가진 의식적, 무의식적인 일본성을 파헤치는 것이 될 것이다. 대학에서는 미술을 전공했고 문학에도 조예가 깊은 그는 분명 천재적인 측면이 있다.

 

 

1. 죽음, 자연, 미의식


옛부터 일본인에게 자연은 혜택을 주는 것, 친밀한 것이었다. 이는 일본이 온대지방에 위치해 있어서 자연환경이 온화했고 농경사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과 자신을 일체화하고 살아가는 감정이 일본인의 모든 정신활동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자연과의 일체감은 자연을 즐기고, 현세를 구가하는 현실긍정의 사고를 만들어냈다. 한편 춘하추동과 사계절의 변화로 인해 자연의 변화에 대한 세밀한 관찰이 이루어졌는데, 이는 자연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키워냈고 이를 바탕으로 여러 예술과 생활습관이 생겨났다. 일본인의 자연관은 불교의 무상관으로 증폭되었는데 특히 선종사상과 결부되어 유겐, 와비, 사비 세계를 만들어냈고 다도, 정원, 꽂꽂이 등에서 있는 그대로의 꾸미지 않은 자연을 재현하게 된다. 일본인은 죽음에 대한 거부반응이 없이 자연과 일치시키며 오히려 미화하기까지 해왔다. 불교 선종의 일파인 조동종을 일본에서 시작한 도겐(道元)은 '생사문제에 구애받지 말고 죽을 때는 생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죽음에 철저하고, 살 때는 삶에 철저하여 순간순간을 전력을 다해 살아갈 것'을 주장, 이것이 무사도의 기초가 된다. 에도 시대에 정착이 되는 무사도는 죽음에 철저한 것이 완전한 삶과 이어진다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할복', '동반자살' 문화가 여기서 기인하고 현재 세계적으로 자살률이 높은 나라에 일본이 포함되어 있다. 일본의 영화들 중 '살인, 자살'이 많이 등장하고 공중파 TV 드라마에서도 엽기적인 죽음이 일반적인 소재인 것을 보면 일본에서 죽음이란 친근하기까지 한 문제일 듯싶다. 이러다보니 일본은 죽음과 자연을 결부시키고 자연스럽게 여기며 아름답게까지 생각하거나 표현하는 미학이 생겨났다. 36세에 자살한 시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1892~1927)는 죽음보다 더 나은 예술은 없다, 죽는다는 것은 사는 것이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했었는데 다음은 유서의 일부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얼음처럼 맑고 투명한 병적인 신경의 세계이다. (중략) 내가 언제 과감하게 자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단지 자연은 이런 나에게는 언제나 보아도 한층 아름답다." 또한 한 번에 피었다가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확 져버리는 사쿠라는 죽음의 미학을 상징한다. 이것은 가미가제의 젊은이들이 '당당하게' 죽을 수 있는, 그리고 죽게 하는 확고한 명분을 제공하기도 했다고 한다.

 

< 러브 레터>에는 두 명(두 건)의 죽음이 있는데 남자 후지이 이츠키의 현재의 죽음과, 여자 후지이 이츠키의 아버지의 죽음이 그것이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간직한 와타나베 히로코와 女 후지이 이츠키는 모두 그 죽음의 기억(아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의미심장한 것은 영화의 첫 신이 순백의 눈 위에 누워있는 히로코, 그리고 장례식 장면이라는 점이다. 죽음과 자연의 일체를 드러내는 장면이다. 이렇게 누워있을 정도인 히로코는 사실 정상은 아니다. 갑작스런 연인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고 약간은 사이코적인 면을 보여준다. 연인 후지이는 눈 덮인 산에서 죽었다(<나라야마 부시코>에도 나오듯 산 -특히 영험한 산-과 죽음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나 보다. 일본 특유의 종교로 산에 오르는 수행을 근본으로 하는 산악 종교가 있는데 산은 인간이 사는 세계와 다른 타계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에도 중기에 이르러 후지산을 이르는 '후지코'가 서민들에게도 일반화되었다). 女 후지이는 아버지가 죽은 당시 장례식장에서 문득 눈 속에서 냉동돼 모양이 그대로인 잠자리를 발견한다. 그리고 나서 곧바로 하는 혼잣말이 뜬금없이 ‘아버지가 돌아가셨구나’이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일본에서 잠자리는 나비와 같은 의미로, 혼, 영원한 생명을 의미하고 재생, 부활을 상징한다. 결국 일련의 죽음을 둘러싼 얘기들이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영상과 환상적인 음악에 힘입어 감상자에게 너무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런데 죽음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은 무반응이라는 것이 놀랍다. 영화의 처음에서 보여지는 장례식에서 죽은 자의 가족이나 친구들의 분위기는 아주 활기차고 아무렇지도 않다(우리나라 병원 영안실이나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굉장히 침울하거나 애통함으로 가득하지 않은가). 그리고 여 후지이 이츠키의 집에서도 초반부에는 아버지(남편, 아들)의 죽음에 대해 다들 무덤덤하게 얘기하고, 농담을 하고 웃기까지 한다. 소위 일본의 감정에 대해 얘기할 때 긍정적으로 쓰는 ‘절제’일 수도 있고, ‘다테마에’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연히 필연적으로 다테마에의 폭발 내지는 분출이 어느 한순간 이루어질 때 굉장히 영화가 파워풀하고 극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방에서 죽은 후지이에 대해 와타나베와 후지이의 모(母)가 대화할 때 후지이의 엄마가 갑작스레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 여(女) 후지이가 고열로 쓰러지자 비로소 죽은 남편/아들에 관해 대립하는 두 부녀의 신이 바로 그러했다. 그리고 해 돋는 산에서 미친 듯이 절규하는 와타나베의 모습에 110%쯤 감정이입하면서 가슴이 절절한, 최초의 기이한 체험을 가능케 했다. 우리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도 ‘절제된 죽음’이 나오지만 여기엔 곧 죽을 당사자가 나와서 스스로 삶과 사랑을 정리한다는 면에서, 남(男) 후지이의 모습이 전혀 안 나오는 <러브 레터>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전자는 죽음을 일상에 결부시키고 후자는 자연과 밀착시키는 차이 때문일까.

 

 

2. 다테마에와 혼네


와타나베 히로코와 女 후지이 이츠키의 편지 교류 사이에서 다테마에와 혼네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일단 처음에는 그 둘의 편지 교환은 서로가 각자 다른 의미로 출발을 한다. 그리고 와타나베는 끝끝내 애인의 죽음을 알리지 않고, 바로 집 앞에서조차 女 후지이를 찾을 것을 포기하고 결국은 무슨 심정인지 편지들을 그녀에게 돌려보낸다. 이것은 여 후지이를 향한 배려, 즉 혼네라고 볼 수 있다(‘이것들은 당신의 추억입니다’라며 돌려보낸다). 그리고 女 후지이는 우연히 선생님을 통해 男 후지이의 죽음을 듣고, 상대방을 배려해서 자신이 그 사실을 알았다는 것을 또한 밝히지 않는다. 대신 편지의 첫 시작을 ‘예전에 우리 아버지도 돌아가셨죠’라고 우회적으로 시작한다. 이런 모습들, 그리고 서로를 통해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거나 가슴시린 추억을 재발견해낸다는 사실이 참 경이롭고 아름답다.

 

3. 사랑 중의 사랑은 ‘시노부코이’(忍戀)


요시다 겐코의 ‘부족(결핍)주의’에 관한 글의 첫 머리는 ‘과연 꽃은 활짝 핀 상태에서 보아야 하고, 달은 보름달일 때 보아야 하는가’로 시작한다. 이에 따라 남녀의 정, 연애 역시 만나는 게 다가 아니라 만나지 못해 근심과 그리움이 쌓이고, 지켜지지 않은 약속을 원망하고, 멀리 떨어진 님을 생각하며 기나긴 밤을 홀로 새우고, 옛날을 그리워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는 의식이 있다. 미나미 히로시는 이것을 일본의 부족주의, 혹은 일본식 마조히즘이라고 표현한다. 부족주의의 미학은 이후 유겐(幽玄), 와비, 사비에도 전승되는 것이다. 유겐이란, 표박(飄泊)하여 뭐라 말할 수 없는 데가 있는 것, 혹은 마음과 뜻은 있지만 확실히 말해버릴 수 없는 상태이며 그것은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뭔가 남겨놓은 모습이긴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궁극적으로 상태가 좋아지는 것이다. 즉 감정은 그것을 억제하면 억제할수록 순수해지고 강해진다는 게 일본적 감정설이다. ‘노’(가면악극)처럼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을 가능한 억제하여 감정의 내부적인 고조를 표현하는 것이 일본 전통 예술의 심리적 요소의 하나이다. <러브 레터>의 등장인물들 – 후지이 이츠키(남녀), 와타나베 히로코-의 관계 속에서 이것은 수시로 발견된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적인 것을 넘어서서 10대의 사랑의 수줍음이라는 것 자체가 이런 면과 연관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마치며 

 

흔하게 우리나라 멜로 영화와 드라마에서 유난히 연인의 비극적인 죽음코드가 등장하고 있지만 <러브 레터>처럼 몇 번을 봐도 어떤 절절한 느낌을 주는 영화는 드물다. 또한 <러브 레터>가 일본 평단 일부에서는 지나치게 감각적이고 탈 정치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고 하지만 오히려 비 일본인인 본인이 보기에는 분명 근원적으로 무척 일본적인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이 영화 속 에서처럼 사랑, 죽음을 연관시킨 강렬한 눈[雪]의 황홀하면서도 아련한 이미지는 아직 어떤 영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기에 겨울이면 반드시 다시 꺼내보게 되는 일본의 대표작인 것이다.

 

 

http://blog.yes24.com/bohemian75 (주소원)

3기 파워문화블로거

2012년 3월 영화부문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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