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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질문과 마주할 용기에 대하여 (김연수 신작 리뷰) ^^ | Basic 2012-09-30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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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저
자음과모음 | 2012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극중 김지훈의 시점에서 소설적으로 재구성해 쓴 리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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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질문과 마주할 용기에 대하여 - bohemian75

 

 

영화나 드라마에서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이야기의 진실을 찾아 어둠의 핵심까지 들어가는 캐릭터를 볼 때마다 나는 궁금했다. 도대체 저들은 왜 저토록 간절하게 진실을 추구하는 것일까? () 이제 내가 그런 입장이 되어보니 중요한 건 진실 그 자체이지, 개개인의 삶이 아니라는 걸 알겠다. 그들의 욕망은 진실의 부력일 뿐이다. 약간의 부력으로도 숨은 것들은 표면으로 떠오른다. 진실은 개개인의 욕망을 지렛대 삼아 스스로 밝혀질 뿐이다.’ (p.101)

 

진남 앞 바다에서 출렁이는 밤 바다 사진을 바라보며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다. 대한민국 국군 병장이자 지극히 평범남인 내가 사실 이렇게 문학과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될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 첫사랑에 가까웠던 미연과 헤어지고 나서 지역 방송국 프로그램의 사연을 매일 듣고 찌질한 나의 연애사를 끄적이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실연의 상처인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생각보다 멘붕되어 우왕좌왕하는 나를 지켜보던 친구들과 스쿠버 동료들은 입대도 얼마 안 남았으니 일을 이제 쉬는게 어떻겠냐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옛 여자를 잊기 위해서라도 일에 몰두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내겐 아늑하고도 편안한 제2의 고향같은 심해(深海)속에서의 탐험을 조금이라도 더 누리고 싶었다. 여느때와 같이 관광객들과 유람선이 떠 있는 그 날 카밀라, 아니 희재씨를 만나고 알게 된 건 그러므로 어쩌면 내 청춘의 행운이자 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일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스스로 바다로 뛰어든 사람을 구조하는 일을 했던 그 날 나는 많이 놀랐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의 얼굴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그다지 그럴 것 같지 않은 외모의 젊은 여자였던 것에 우선 놀랐고, 무사히 구조하여 응급조치를 하자 깨어난 여자가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다시 바다를 향해 달려들어서 더욱 놀란 것이다.

 

그 때 있던 주변 사람들처럼 나 또한 저 여자 좀 이상하구나라고만 당시엔 생각했다. 곱상하고 표정이 냉정해 보이지만 일견은 꽤 사랑받고 큰 감수성 넘치는 아가씨로 보였기에 의외로 여겨져서, 20대 여자들에 대해 어느 정도 갖고 있던 선입견을 깨트린 사람이 희재씨였다. 희재씨는 태어나자마자 미국으로 입양된 입양인이었는데 길러주신 엄마가 돌아가시자 뿌리를 찾아 한국 이 곳 진남으로 찾아왔다. 진남 사람이라면 다 아는 유서깊은 진남여고가 바로 그녀의 생모가 1980년대에 다녔던 학교이며, 불행히도 그녀는 검모래 앞바다에서 몸을 던져 고인이 된지 24년이 흘렀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생활의 터전인 이 곳에서 태어난 희재씨는 취재차 다시 들렀는데 그럴 것 까지는 없었음에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알고 있는 한 최대로 그녀를 돕고 싶어 그녀의 허락하에 동행하며 친 부모를 같이 찾게 됐다. 태풍이 다가오고 있던 날에 진남여고 교무실에 들렀는데 뭔가 분위기가 싸하다. 희재씨가 최성식 선생님을 찾고 있었는데 모두들 희재씨를 차갑게 대하거나 아니면 무언(無言)의 약속이라도 한 듯 눈길을 피하는 모습들. 내가 마침 최성식의 얼굴을 대자보로 본 것이 생각나서 희재씨에게 안내했고 교육감 선거에 나온 후보가 그분 임을 확인하고 연락을 취했다.

 

희재씨의 엄마인 정지은씨의 학교 동창들과, 최성식의 부인 신혜숙의 진술들은 복잡하게 얽혀있을 뿐 아니라 추문(醜聞)에 가까운 버전도 섞여 있었다. 난 희재씨가 용감하게 진실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고 그녀가 꼭 진정한 사실을 밝혀내기를 어느덧 간절히 기원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온 동백꽃을 닮은 작은 여자가, 무심하고 때로는 악의적이기까지 한 어른들을 상대로 견디며 끈질기게 엄마의 죽음의 전모와 친부를 규명하고자 애쓰는 모습이 한없이 애처롭기만 했다. 그 용기는 어디서 기원한 것일까. 부유하진 못했어도 부모 밑에서 22년간 애정을 받고 자란 나로썬 한번도 상상해 보지 않았기에 아득한 일이었고 나라면 어땠을까 쉽사리 가늠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녀와 동행한 짧은 며칠에서도 내가 알 수 있었던 것은 관련인물들이 그 누구도 솔직하지 못했고 하나같이 자기 입장만 반복하거나 비열하기까지 한 말과 표정들로 일관한다는 거였다. 도대체 어떤 두려움이 그들의 얼굴에 그렇게 뻔뻔하고 차가운 가면을 씌운 것인지 희재씨보다도 궁금했는데, 함부로 희재씨의 아픔을 건드릴까봐 늘 한 발 물러서 있어야만 하는 자신이 아파 왔다.

 

그건 두려움 때문이다. 일단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눈과 귀는 제멋대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p.213)

 

1987년 꽃다운 열여덟살이던 정지은은 조숙한 문학 소녀였다. 이번에 그분의 학급문집에서 김기림 시인의 바다와 나비라는 시를 희재씨를 통해 접한 후에 난 학창시절에 흘려 들었던 이 시의 의미를 깨닫고 한방 얻어맞은 듯 얼얼해지는 경험을 했다. 이제야 뒤늦게 한 사람을 통해 에 조금 눈을 떴지만 바다와 나비를 예전에 들었을 땐 뭐 이런 시가 있나? 하고 약간 비웃기까지 했던 나였던 거다. 이게 도대체 뭔 뜻인지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은 시였는데.

 

나비가 바다가 바다인 줄 몰랐다. 깊은 밤에 드넓은 바다가 청()무우밭인 줄로만 알고 여태껏처럼 반갑게 너무도 기쁘게 다가갔는데 둔탁한 수평선에 대책없이 몸을 부닥쳤고 깜짝 놀란 나비는 상처도 받았을 것이다. 아픈 몸의 고통이 겨우 나아갈 때쯤 온 몸을 축축히 적신 물이 마르길 기다려야도 했고. 그래서 3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나비는 서글프다는 이 시. 시인은 또 정지은은 어떤 사랑을 겪었길래 나비가 바다를 서글퍼하는걸 알았을까?

 

사랑에 실패하고 어쩌면 도피하듯 군대를 가려 했던 당시의 내게 희재씨는 불현듯 나타나 내 삶에도 적잖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음에 분명했다. 그것은 그녀에 대한 호감과 안타까움만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진남이란 곳의 적나라한 과거의 얼굴을 마주하는 거였고 그걸 알아가는 건 내게도 고통이었다. 필요에 의해 기득권 사람들이 묻어버린 과거가 희재씨에 의해 파헤쳐진다고 해서 지금의 진남 사람들이 얻게 될 눈에 보이는 소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불편한 진실이 희재씨의 아빠, 정지은이 24년전 사랑한 사람이 대체 누구냐 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나는 제대를 하고 나서의 20대 후반까지만 막연히 계획하고 있을 뿐 30대 이후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그려보지 못했다. 오히려 자랑스런 진남의 어른들이라 생각했던 40대의 정지은과 관련된 이들의 실체를 후에 희재씨가 부쳐온 편지들을 통해 하나씩 알아갔을 때 그래서 충격적이었다. 언론에서만 들었던 서울 용산참사의 비극,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자살 같은 사건들이 25년전 시골 바닷가 진남에서도 벌어졌었구나. 연애 편지라며 놀리던 동기와 선임들은 내가 골똘하게 희재씨의 편지를 읽는 것을 보고는 뭐 그렇게 진지하냐며 한 마디씩 했다.

 

1984년 진남조선소의 이상수 사장에게 노동자들은 열악한 근로환경의 시정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사측은 바로 진남의 용역깡패들을 동원해 그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려 했지만 평생 육체노동으로 단련된 이들에 오히려 밀렸고, 회사에 대응하기 위해 지도부가 조직되고 정지은의 아빠가 주도를 하게 된다. 극단적인 폭력으로 밀어붙인 진압은 화를 불러서 노동자 한 명이 과다 출혈로 사망하고 4명의 노동자는 생활관 화재로 죽는 참사를 빚었다. 정지은의 아버지는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농성을 하다 투신하여 생을 마감하고 말았던 연이은 끔찍한 죽음의 시대였다. 아버지의 자살과 노동자 사건으로 힘겨워하던 정지은을 도서관 담당의 총각 선생 최성식은 따뜻하게 다가갔고 사제간의 관계와 연인의 사이를 오가던 둘이 한 키스를 누가 목격하고 루머로 학내에 퍼져 논란을 일으키는 일이 생겼다. 한편 생활관 화제로 사망한 노동자의 딸 미옥도 진남여고에 재학했는데 지은을 증오한 미옥이 최성식 선생과 지은이 도서관에서 정사를 벌였다는 거짓을 퍼트리면서 일은 일파만파가 된다. 최성식과 결혼한 신혜숙 선생은 나중에 지은의 오빠가 최성식을 칼로 해코지한 일을 기화로 저열하게도 지은이 임신한 태아가 오빠의 자식이라는 말까지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지은은 뱃 속 아기를 행복을 주는 날개라고 부르며 87년에 무사히 낳았으나 얼마안가 바다로 뛰어들고 말았던 것이 희재씨가 가슴이 까맣게 된 채 알아낸 사실의 전말이었다.

 

김미옥이, 최성식과 신혜숙이 각각 증오라는 이유로, 사회적 명예와 가정의 유지를 명목으로 왜곡시킨 비밀과 거짓말들 속에, 정지은은 침묵으로 희재는 부적절한 불장난의 사생아로 남아 있을 뻔 했다. 그러나 진실로 감사한 것은 누군가 잊혀진 의문의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이가 남아 있고 그로 인해 얼룩진 과거와 정의롭지 못한 현재의 악순환 고리는 언젠가 끊어진다는 사실이다. 그 사람은 지은의 친구이자 진남여고 학생회장이던 조유진이었으며 그녀는 영화감독으로써의 소명의식과 한 친구의 자살의 공모자들이었던 그 시절 우리의 진실을 영상으로 제작했다.

 

희재 누나가 그동안 내게 들려준 인생의 이야기와 수많은 시들은 나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고 세계관을 바꿔놓았다. 84년부터 3년간 벌어졌던 죽음들, 죽음이 또 다른 죽음을 파생시킨 연쇄적인 어둠의 그늘들을 그녀가 온전히 망각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이제 누나는 할아버지를, 엄마를 죽음으로 몰고간 시절의 가해자들을 용서하겠다고 했다. 쉽진 않겠지만 진남에 와서 그토록 그리워했던 아빠의 존재를 알 수 있었던 것만으로 그럴 수 있겠노라고 지난 편지에서 썼다. “그리고 지훈씨를 알게 된 것도 소중했고요라며 말줄임표와 웃는 이모티콘으로 추신을 달았었는데. 이제 나도 답장편지를 쓰려고 한다. 한적한 토요일 밤, “가을이 여긴 성큼 다가왔네요.”로 시작한 이번 편지는 희재씨에게 군대에서 보낼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고 전혀 다른 성질의 내용을 써야 할 것 같다. 강원도 산골이라 부쩍 추워진 날씨 탓인지 괜시리 마음이 센치한 스물 네 살의 발신인 : 김지훈으로 부칠 편지엔 나도 용기를 내보아야겠다. 심장이 떨려 온다. 두근두근. 하고 싶은 말을 혹시 쓰지 못한다면 이 시만이라도 적어 보내야지.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 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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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찡한 풋볼 영화, 덴젤 워싱턴의 [ 리멤버 타이탄 ] Remeberi Titans | 영화가 왔네 2012-09-28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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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리멤버 타이탄

보아즈 야킨
브에나 비스타 | 2007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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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스포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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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타이탄>(2000년작)은 스포츠영화이며 학원(學院)영화이고, 그리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헐리웃 무비다.

 

1970년대 초반 흑백간의 갈등이 고조되었던 그 시기에 미국 버지니아의 한 고등학

교에선 ‘시범적’으로 백인과 흑인을 아우르는 교육을 하기로 한다. 그래서 탄생

한 TC 윌리암스 고교에는 풋볼(미식축구)팀에 새로 흑인 감독이 부임하는데 그로

인해 그때까지 수석의 위치였던 요스트 코치(윌 패턴)는 2인자가 되어 버린다.

 

이 작품을 본 적은 꽤 오래전이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꺼내본 영화는 예상보다 훨씬

더 감명깊었다. 제리 브룩하이머가 제작한 만큼 특유의 웅장함이 요소요소에 있었

는데 덴젤 워싱톤이(분 코치역) 나온다는 점 말고는 나름대로 작고 아기자기하다.

 

아시다시피 미식축구가 주제이기 때문에 주인공(학생)들이 그라운드에서 뛰고, 구

르고, 부딪히는 질감이 상당히 에너지 넘치게 묘사된다. 필자가 풋볼의 룰과 미국

에서의 영향력 등을 잘 몰라서 감상이 미흡했던 점도 있지만 그런 것을 뒤로 하

고 봤어도 눈물이 흐른 장면이 있었다.

 

아마추어 배우들을 캐스팅한듯 풋볼팀 아이들의 연기는 처음엔 낯설지만,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풋풋한 10대만의 사랑스러움이 시종일관 흐믓함을 선사했던 것 같다.

특히 주장 게리 버티어는 처음에는 다른 백인 청년처럼 흑인을 무조건 배격했지만

점차 풋볼에의 열정 하나로 이를 극복하는 모습이 꽤 설득력있게 다가왔다.

 

캠프 훈련 후 타이탄스 팀은 유대감이 강해지지만 버스를 타고 같은 노래를 부르며 돌아온 학교 운동장은 여전했다. 흑인인 레브가 버티어에게 하는 대사가 이렇다. “캠프는 끝났어. 이제 현실세계로 돌아온거야.”(Camp is over now. Back to the real world!)

 

본인이 생각지도 못하게 찡했던 장면은 바로 버티어가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한 후

의 것이었다. 소식을 들은 레브가 병실로 가고 그에게 허먼 분이 사고소식을 알리

는 그 평이한 씬. 조용히 병원 구석에 모여(?)서 이야기하고 위로하는 흑인과 백인

들. 그냥 평범한 영화일뻔 했던 <리멤버 타이탄>이 편견을 극복하는 위대한 스토리

로 자리잡는 순간이었다.

 

우리영화 ‘마이 파더’에서도 끝에 실제 주인공을 보여주듯이 본작의 에필로그도

“그들”이 그 이후 어떻게 되었나 알려준다. 처음엔 고만고만했던 타이탄스 축구

팀은 몇차례의 갈등을 겪은후 탄탄해져서 연승을 기록하더니만 결국 전국 대회 2등

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둔다. 그리고 다쳤던 선수는 장애인 스포츠선수가 되었고

어떤 이는 버지니아주에서 선생님이 되고 어떤 사람은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다, 등

등. 실은 기대를 많이 했는데 그저 평범한 사회인이 되고 교사가 되었다는 것에

필자는 약간 실망은 했다, 하하. 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각 영역에서 자기 일을 하고 무엇보다 학창시절 때의 우정을 간직하며 살고 있는 등장인물들이 더 살갑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꼭 스포츠가 아니어도 좋다. 내 고딩 시절에는 이렇게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벽을 허물어본 일이 있었을까. 문득 그 시절이 그립다.

 

9월 3번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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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낭비한 죄, 그것이 나의 죄목이었다.”는 어느 영화 대사를 떠올리게 한 소설 | Basic 2012-09-25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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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시간을 파는 상점

김선영 저
자음과모음 | 2012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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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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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보 아저씨는 훌륭한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우리 각자의 이야기가 남아있으니 말이다. - <반지의 제왕>에서


 #들어가며

낭랑 18세의 백온조란 아이. 참 맹랑하고 기발한 여고생이다. 5년 전에 소방대원인 아빠를 사고로 떠나보내고나서 철이 들기 시작한 온조는 엄마를 조금이나마 돕고자 알바 전선에 뛰어든다. 누구나 그렇지만 남의 돈을 번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고 사회의 쓴맛을 톡톡히 경험한 그녀는 자기 사업을 해보자고 결심했다. 글을 쓰고 있는 필자 자신도 몇 년전에 아버지를 여의고나서야 어른이 되기 시작했는데 돌이켜보니 갈수록 철학적인 사람이 되고 있었다. <시간을 파는 상점>의 온조가 나이는 나보다 한참 어린 고등학생이지만 ‘시간’에 대해 또래 누구보다 깊은 사색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인터넷 카페에 야심차게 쇼핑몰을 개점한다. 옛날에 봉이 김선달이 물을 팔았었다는데, 백온조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누구보다 시간이 소중하다는 점에서 착안해 새로운 틈새 시장을 개척한 것이다. 과연 장사가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지만 의외로 외뢰인에게 쪽지와 메일이 오고 꾸준히 관심을 받으면서 온조는 이 가게의 필요성에 확신을 갖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길면서도 가장 짧은 것, 가장 빠르면서도 가장 느린 것, 가장 작게 나눌 수 있으면서도 가장 길게 늘일 수 있는 것, 가장 하찮은 것 같으면서도 가장 회한을 많이 남기는 것’, 시간. 물리적 의미의 크로노스와 주관적 관점의 카이로스, 두 가지 양면성은 <시간을 파는 상점>의 화두이자 커다란 주제의식이다.


시간이란 흐르는 것이지만 흘러가버린 시간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p.46)


의뢰인 강토를 통해 할아버지를 만나는 온조는 자기가 하는 일의 가치를 그분을 통해 깨닫게 된다. 인터넷도 핸드폰도 하지 않으신다는 할아버지는 온갖 기기에 둘러쌓여 광속도로 사는 요즘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런 현상들이 소외감을 부추긴다는 뼈 있는 말도 온조에게 한다. 심지어 현대 사람 대부분이 똑같은 성분의 약을 먹고 하나같이 취해 있는 것 같다고까지 하고 온조는 새겨 들으며 삶이란 시간의 내용일 거 같다고도 한다. 할머니의 죽음을 방관한 강토의 아빠에게 할아버지가 소송을 걸었고 두 사람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강토가 시간을 파는 상점 주인에게 할아버지를 만나달라고 했던 것임을 알게 된 온조는 그 가족에 연민의 마음을 느꼈다. 할아버지와의 시간에 대한 대화는 온조의 첫 의뢰인 ‘네곁에’를 통해 알게 된 같은 학교 학생의 아픔과 잇닿아 있었다.


<시간을 파는 상점> 등장 인물들의 서로 다른 사연들과 작가의 생각이 담긴 글들이 서서히 서로 연결되어 가는 점이 매력적이고 날 잡아 끄는 강한 흡인력이 있었다. 요즘 대중문화와 일반문학에서 어느샌가 사라져버린 평범한 청소년들의 삶, 그리고 학교에서의 일상과 자잘한 상황들이 핍진성이 있고 은근한 미소를 짓게 한다. 이 세대 마지막 로맨티스트이자 불곰이란 별명을 가진 생물 선생님이 올 봄에는 꽃향기와 꿀벌이 사라졌다며 아이들에게 한 말은 교훈적이고도 되새겨 봄직 했다. “꿀벌은 자연이다. 아주 사소하고 작은 일부 같지만 실은 그것이 자연 질서의 전부인 것이다. 왜냐? 그것으로 인해 전부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아주 견고하기 때문에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것이 오히려 어이없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환경을 사랑하는 교사 모임에 속한 ‘쌤’의 일갈은 그저 입시만을 위한 수업이 아닌 자못 의미심장한 것이었어서 <죽은 시인들의 사회>의 키팅 선생을 떠올렸다. 5년전에 돌아가신 아빠의 빈자리를 불곰샘이 대신하게 되었을 때 온조는 당황스럽고 어색했지만, 환경단체에서 일하는 온조 엄마와 소울 메이트가 될 가능성이 농후했기에 비로소 새로운 사랑의 탄생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어느 한순간의 시간에 멈춰버리는 것은 아닐까? (p.124)


인터넷 상점을 계기로 만나게 된 파란만장한 사건들과 사람들을 통해 매일매일 성장통을 겪으며 자라가는 온조의 시간들이 벅차게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그랬는데, 까마득한 나의 열여덟살 때도 한편엔 성적 압박이 있었으나 친구들, 사랑한 음악과 영화들로 인해 웃기도 울기도 한 버라이어티한 고교시절이 있었는데 하며 과거를 회고했다.

가네샤의 시크한 지적대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는 시간 판매 상점은 분명 발칙하지만, 그 나이 때만이 기획하고 실천할 수 있는 아이디어이기도 했다. 넘치는 에너지와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갖고 있으며 서로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여고생들의 ‘오글거리는’ 직접 화법은 일견 낯설었지만 또래 문화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 들어 유쾌했다. 여자고등학교 출신 필자의 주변엔 정말로 난주처럼 내 기분을 먼저 알아차리는 ‘촉이 정확한’ 아이가 있었고, 혜지처럼 다가가기 어려운 얼음공주이다 어느날 갑자기 친구가 되고 싶다고 고백(?)해 놀래키는 아이도 있었다. 우리 때는 한 반이 50명 정도 였는데 최근에는 많이 줄었으니 친구들의 관계가 어쩌면 더 돈독할 듯도 싶다. 진정성있는 관계를 가꾸어가는 주인공들의 태도는 미숙한 점이 많았던 나를 돌아보게 하고 지금의 어른들 사이에서도 지켜져야 할 것들이었다. 자기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오려는 혜지에게 온조가 처음에 강경하게 건넨 말이 예컨대 그랬다. “사람을 알아가는 게 그렇게 간단한 일인 줄 아니? 그리고 너를 보여주지 않으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을 알고 싶어해?”


순수한 청년의 직감만큼 이 세상에 정확한 게 없다고 난 생각한다. 경쟁적인 요즘 세상, 갈수록 복잡한 사회가 입시 교육 속 아이들을 병들게 하고 있다고 흔히 말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따스한 우정과 반짝이는 생각들이 실종된 것은 아닐 거다. 정이현-나중에 엄청난 반전 캐릭터인-에게 난주의 애정을 대신 전하며 카페에서 온조가 나눈 대화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에 대해서도 적확했다. “누가 그래? 너 폼 잡는 게 멋있다고. 그건 그 사람을 잘 몰랐을 때 잠깐 드는 거지, 정작 상대를 사로잡는 건, 그 사람의 솔직함을 봤을 때 아니야? 방금 전 너의 모습처럼 말이야.”


아이들은 사랑을 갈망하고 있단 걸 이 청소년소설을 읽으며 새삼 알 수 있었다. 자식을 좋은 대학 보내자고 끊임없이 닦달하고 ‘엄친아’와 비교하는 교육이 사랑이라 착각하는 부모 때문에 한 아이가 자살을 생각하는 상황은 이제 드문 일이 아니다. 할아버지와 아빠의 불화를 지켜보며 발을 동동 구르던 강토는 외톨이가 되어가다 가까스로 온조의 진심어린 행동에 의해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었다. <시간을 파는 상점>의 절정은 정이현의 반 친구가 이현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메세지를 보내는 후반부 이야기였다. 지난 몇년동안 고등학생들이 각자만의 고통을 부여잡고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여러 끔찍한 방법으로 목숨을 포기한 뉴스들이 전해져 얼마나 가슴아팠던가. 잊고 있었는데 작년에 여학생 두 명이 왕따 사건과 관련해 옥상에서 뛰어내려 세상을 등진 일이 있었고 안타깝게도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터진 일이었다. 그리 멀지 않은 동이었을 뿐 아니라 나중에 알고 보니 필자 가족 중 한명의 친구의 딸이 사망자에 있었다고 해서 충격이었다. 그 여학생의 아빠는 경찰이셨다고 한다. 뉴스에서만 접하는 현실이라고 잊고 살기엔 나름대로 가까이에서 벌어진 일들이란 게 믿기지 않는다. 개개인의 비극을 막을 완벽한 방법은 사실상 있을 수 없지만, 꽃다운 학생들이 주변의 방치 속에 죽음을 선택하는 사태를 더 이상 우리 교육 시스템이 무력하게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이 든다.


# 마치며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김선영의 이 작품은 팍팍한 현재 동시대에 희망을 던지는 결말을 주어 점점 메말라가는 나같은 독자를 안도하게끔 했다. 소설의 엔딩이란 것이 어떤 텍스트나 논란의 여지와 아쉬움을 남길 수도 있단 걸 잘 안다. 소년이 극적으로 자신의 고민을 극복하는 설정이 냉정하게 따지면 비현실적일 만큼, 발생하는 실제는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아이들의 찬란한 생명력과 열정, 잠재돼 있는 이타심을 믿어보게끔 하는 것이 이와 같은 장르 문학의 가치이리라. <시간을 파는 상점>을 읽으며 온조, 난주, 이현, 강토와 함께 할수 있어 기뻤고 한국창작소설의 팬인 한 사람으로써 새로운 기대의 불씨를 되살리는 기회가 되었다. 청소년과 호흡하는 삶을 살려는 독자를 포함하여, 아이들의 생생한 삶이 듬뿍 담긴 글을 쓰려는 이들 모두에게 <시간을 파는 상점>이 전해주고 있는 전언(傳言) 한 가지를 책에서 옮겨와 본다.

네 절정은 지금이 아니다.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이 너의 절정이다. (p.204)

 

bohemian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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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 [ 광해 , 왕이 된 남자 ] 9월 첫 리뷰 (미션) | 영화가 왔네 2012-09-22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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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광해,왕이 된 남자

추창민
한국 | 2012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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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 류승룡, 한효주, 김인권, 장광 등 나름 초호화 출연진의 사극 <광해, 왕이 된 남자>가 극장에서 인기몰이중인 것 같다. 조금 늦은 개봉 후 1주일후 상영관을 찾아 관람 했다.

많은 반응들을 듣고 가서 인지 영화는 예상했던 바와 다르지 않았다. 베테랑 감독이 만든 웰메이드 사극 팩션 영화.

 

조선 15대 왕 광해군 시절 까칠한 왕 광해는 시시때때로 자기를 누가 독살할 것 같다는 생각에 노이로제에 걸려 있다. 충신 도승지 '허균'(류승룡)과 조내관(장광)이 있지만 마음을 놓지 못하는 광해는 도승지에게 자신을 빼닮은 대역을 찾아오라고 재촉하고 다행히 도승지는 '하선'(이병헌)을 찾아내 데려 온다.

 

 

가끔 조선시대 왕들을 생각하면 그 대단한 권위로 인해 눈부셔보이다가도, 암투와 암살이 횡행했던 시대에 얼마나 스트레스 였을까를 생각했다. <광해 , 왕이 된 남자> 에서는 바로 그러한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을 어쩌면 영화 최초로 가장 잘 드러내준 대중적 화법을 보여준 것 같다. 평범한 광대인 하선이 15일간 왕 노릇을 하면서 소소한 것들에서 빵 터지는 모습은 그래서 굉장히 있을 법 했다. 

꼭 왕 이 아니더라도 평민이나 천민이 갑자기 '양반 행세'를 함으로 인해 오는 여러가지 생각들, 양반의 허례허식과 체면치레에 급급해야 하는 모습들이 약간은 풍자적으로도 보였다.

 

류승룡의 연기가 역시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 청룡영화제에서 한미FTA 비판 발언을 서슴없이 하던 그에게서 개념 배우로서의 모습을 본 후 더더욱 팬이 되었었는데.^^ 도가니를 못봤었는데 조내관 '장광'씨도 너무 재밌었다. 만약 그 캐릭터가 없었거나 장광 이 아니었다면 분명 입체감있는 대화와 상황들이 없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10년전부터 격하게 아껴왔던 김인권 배우가 '도부장'으로 나와서 너무 즐거웠다. 그의 몸짓 하나하나에 팬심에 따른 의미 부여를 하며 행복할 수 있었다.^^ 하선을 돌려보내며 '조심히 가거라' 했을 때의 그 짧은 대사에서도 그의 따스한 성격이 묻어난다. 그리고 결말까지.흑흑..

     

추창민 감독이 <그대를 사랑합니다> 까지 연출했었는지는 몰랐다. 언제 꼭 봐야지 하고 있던 작품인데 찬 바람 부는 이 계절엔 꼭 봐야겠다. 이병헌이 이 영화에 대해 채널 CGV에서 김태훈씨랑 대화하는 프로그램을 봤는데, 정말 영화를 즐기는 배우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헐리웃 진출 등 여러 화제도 있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늘 모범적인 배우고 이런 연기자가 한국 영화에 있다는 게 참 든든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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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 자음과 모음 | Basic 2012-09-14 02:37
테마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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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백영옥 저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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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삶을 관통하는 말은 하기 힘들다. ( 8부. 도쿄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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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을 잊지 못해서 과거의 연인과 유령처럼 동거 중인 사람들이 우리 주변엔 생각보다 많아요.” (정미도)

 

열패감이라는 말. 나는 이 단어의 말 뜻을 잘 알지 못했었다. 대학 때 국문과를 다녔고 의무적으로라도 수많은 문학작품을 접했는데, 이 명사가 심심치 않게 소설과 시 속에 등장했었지만 20대 새파랬던 내가 의미를 알 리가 없었다.

 

대학 졸업과 함께 기다렸다는 듯 발생한 IMF1년간의 취업 재수, 그리고 작은 영상업계 신문사에 들어갔다가 이듬해에 역시 아담한 잡지사에 취재기자로 들어갔다. 열심히는 했지만 한 카리스마하는 기자쟁이들이 있는 곳에서 혹독한 기자수련기를 거쳤고 순진한 것을 순수하다고 착각한 나는 그야말로 울며불며 선배 언니기자의 가오를 못참고 잡지사를 뛰쳐나왔다. 생각해보면 그 일이 지난 한참 후에도 악연이었던 기자만을 떠올리며 몸서리치는 나였지만, 그 불행 때문에 잊고 있던 좋은 경험들이 더 많았음을 이제야 알겠다. 이상은, 이적, 봉준호, 조승우씨 등을 가까이서 알현할 수 있었던 취재들을 포함해 소위 잡지계의 생리와 바닥을 머리의 간접경험으로가 아닌 온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제는 10여년이 지난 하도 오래전이라 어디 가서 얘기하기엔 그 세계도 많이 변했을거 같아서 전혀 말하지 않지만, 신기하게 아직도 간혹 만나는 업계 종사자들을 통해 그렇게 바뀌지도 않았음을 느끼면 감회에 젖곤 했다. 백영옥이란 소설가는 내게 그런 맥락으로 다가왔다. 출판 불황 속에서도 지난 몇 년간 수많은 신진 작가와 장편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미안하지만 백영옥씨는 내 레이더망에 있지 않았다. 1억원 고료의 어마어마한 수상금을 탔다고 해도 나와는 너무 다른 계열의 장르작가라고 믿어 의심치 았았고, 본인 작품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로 떠도여전히 큰 관심사 속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다 몇 년만에 이 작가가 신작을 발표했단다. 제목도 참 오글거리는 적나라한 제목으로. 누가 만든 용어인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자꾸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같은 칙릿일 것 같았는데 좋아하는 리뷰어분이 평소와 달리 이 책에 좋은 평가를 내린 서평을 남긴 것을 보고 결심을 굳혔다. 그래, 배가 고프면 편식은 할 수가 없는 거. 지금 필자는 새로운 책에 목말라 있고 편애하는 작품만 골라 읽던 편중된 취향을 이제 고쳐 볼 때도 되었다. 그래서 잔뜩 기대를 안고 펼쳐 들게 된,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되시겠다.

 

서점에 가서 직원에게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찾아 주세요하는 데 왜 살짝 쑥스러웠을까? ‘아니에요, 제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요라는 뉘앙스를 얼굴에 띄어서 그랬으리라. 겉 띄지에 나온 저자 사진은 자연적으로 내가 잡지사에서 만났고 이후에 알게 된 여러 여성 피쳐 기자들을 떠올리게 했다. 서로 각자만의 재능으로 보이지 않게 피튀기는 글 전쟁을 벌였던 그녀들은 현재 인지도 있는 주간영화잡지로, 인터넷 매체로 진출해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속속 그분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겉으론 쏘 쿨 했던 내게도 잠재의식에선 도저한 열패감이 있었나 보다. 톡톡 튀는 문체로 현장(field) 경험이 묻어나는 대중적 내러티브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성공가도를 달리던 이러한 작가를 그래서 은근히 내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반성한다.

 

만날 수 없어도 존재하는 것만으로 어쩐지 안심이 되는 가족처럼, 그저 누군가 자신과 비슷한 고통을 견디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지훈)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모임>에는 세 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정확히는 그들의 상대 전() 애인들도 중요한 역할이긴 하지만. 마치 <냉정과 열정 사이>처럼, ‘윤사강이지훈의 시점에서의 실연 스토리가 번갈아 교대로 나오고 정미도라는 데이트 코칭 비슷한 일을 하는 커플 매니저가 그 중간에서 매끄럽게 얘기를 끌고가는 형식이다. 무척 동시대적(contemporary)인 코드들이 많아서 읽기에 흥미롭고 독해 속도도 빠른 점이 우선 좋았다. 트위터라는 SNS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에 초대하는 글이 뜬다. 우연히 서핑하다 그것을 본 몇몇 사람들이 광화문 시네마테크 옆 레스토랑에 토요일 오전 7시에 모인다. 거기에 선남선녀인 젊고 매력적인 남녀, 사강과 지훈도 포함돼 있다. 반신반의로 그곳에 집결한 실연당한 사람들. 사강과 지훈은 이 모임이 실연의 기념품 가게’, 즉 애인과 헤어지고 처치 곤란한 여러 선물들을 대신 처리해 준다는 아이디어 하나를 의지해 온 이들였다. 미도의 기획 하나로 진행된 이 날의 모임 행사에서 사람들은 물건들을 모두 내놓고 각자 마음에 드는 것들 하나씩을 가져간다. 실연을 당해 멘붕인 이들이 몸도 많이 상했을 거라며 미도는 보양식에 가까운 영양식을 참가자들에게 대접한다. 이후 열린 맞춤 영화제에선 화양연화’ ‘봄날은 간다’ ‘500일의 썸머같은 실연을 다룬 리얼한 영화들이 상영되고 이별에 대한 제의를 치른 사람들은 약간의 위안을 가슴에 안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스튜어디스인 사강이 기장인 유부남 한정수를 사랑했지만 막상 그가 이혼까지 하겠다 말하며 고백하자 이별을 선언한 모습이 애절했다. 그다지 생각해보지 못했던 승무원의 사랑이야기가 현실적으로 다가왔고 내내 그녀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사내 연애가 끝나고 계속 남자를 직장에서 만나는 상황만도 참 불편한데 그것이 하늘을 나는 비행기에서라면? 이건 뭐 뛰어내릴수도 없으니 이별 후에 누구나 겪는 아픔을 피할 도리가 없기에 사강이 안쓰러웠다.

 

지훈은 어떻게보면 주변에 꼭 한명은 있는 캠퍼스 커플의 장기 연애의 표본이었다. 한창 열정적이고 순수할 때 만나서 20대의 고민과 방황, 사회로 뛰어들어서의 고충과 성취들을 함께 하며 서로 모든걸 안다고 믿는 커플. 한순간 갑자기 현정이 헤어짐을 고했을 때는 독자인 나도 충격적이었고 한편으론 잘 이해가 안되었다. ‘우연과 낭만이 없다며 매몰차게 지훈을 떠나보내고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안된 지훈이 신호위반으로 범칙금을 100만원을 낼 정도로 이성을 잃게 한 현정이 참 독한 여자다 싶었기 때문이다.

미도는 어떻게보면 즉흥적이고 패기 하나로 실행한 실연자 조찬 모임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서 사내 대박 이벤트로 평가받는 의외의 결과까지 얻는다. 선한 의도로 이루어진 일들은 나비효과처럼 예상치 못한 곳에까지 효과를 미치고 결실을 맺는 것일까? 도쿄 아카사카 공원에서 만나게 된 사강과 지훈이 지진의 여파로 같이 돕다가 실연당한 사람들 조찬 모임에 갔던 이유를 나누던 절정 부분이 눈부셨다. 현실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닐지언정 누군가가 누군가를 위로하고 타인으로 인해 치유되는 만남이 불가능한 것은 아님을 이제 난 안다.

 

모든 연애에는 마지막이 필요하고, 끝내 찍어야 할 마침표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윤사강)

 

소설 속에 아침 모임에 모인 사람들이, 사강과 지훈이 서로의 아팠던 과거를 고해성사하듯 나눌 수 밖에 없었듯, 어쩌면 이 소설을 읽은 사람들이 만나거나 모인다면 책을 계기로 서로의 지난 연애의 한 자락을 얘기하고 싶진 않을까. 한 동안 그저 눈앞의 과제만 보고 살던 나에게 여자로써의 심장떨림을 느끼게 해 준 이가 내게도 있었다. 몇 년 전 짓눈개비가 내리던 2월에 만났다가 다음달에 갑자기 아버지가 소천하시는 뜻밖의 일을 겪으며 어쩔 수 없이 내 마음속에서 밀어내야만 했던 사람. 서른이 넘어서도 마치 대학생때처럼 모든 게 풋풋한 다시 시작일수 있구나 하며 경이롭기까지 했던 그 남자는 외국에서 오래 살다왔고 그리고 이혼남이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됐는데 알고보니 그 사람이 이혼했다는 사실이 무척 혼란스런 일임에 분명했지만 좋아하는 것이 더 먼저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일(?)이 처음이었던 나였고 그와의 사이는 점점 멀어져만 가는 걸 속절없이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이런 저런 개인적 일들이 휘몰아치면서 그와 완전히 절연하게 되고 무슨 의식처럼 핸드폰의 저장번호를 삭제하고 나서야 내가 그의 이야기에 눈물흘리고 감정에 동감하고 했던게 사랑이었음을 알았다. 그는 어디에서 잘 살고 있을까? 많은 것을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Westlife 풍 노래를 들을 때, N이라는 나라를 누가 얘기할 때, 소화가 안될 때 손으로 배를 시계방향으로 돌리는 자신에게서 가끔씩 그를 떠올리고 있다.

 

한 남자를, 한 여자를 사랑했었던 이들이라면 백영옥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에서 적어도 하나쯤에는 몰입하고 반드시 몇 개의 문장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랑이 그런 거기에. 둘 만 아는 거대한 실제했던 세계이고 한때 자신의 거의 전부였던 사라진 제국이기에. 슬픔이여, 안녕!

 

헤어져야 만나고, 만나야 사랑이 이루어진다. 그것이 정미도의 선택이자 이 비밀스러운 모임에 대한 대답이었다.’ (p.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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