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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 에이브라함스 감독의 [ 스타트렉 다크니스 ] 리뷰 | 영화가 왔네 2013-05-30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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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스타트렉 다크니스(디지털)

J.J. 에이브럼스
미국 | 2013년 05월

영화     구매하기

 

오우. 한 마디로 무척 재미있다. 영화 엔딩 타이틀이 흐를 때에야 감독이  J.J 에이브람스 라는 걸 알고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원래 스타 트렉 팬도 아니었기에 4년전의 작품은 미처 보지 못했는데, 조만간 <스타 트렉 더 비기닝>도 한번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서기 2,300년 경의 머나먼 미래. 세계는 '행성 연합'이라는 형태의 조직으로 재편되어 있었다. 그 속에서 우주 탐사용 개발 계획 목적으로 '엔터프라이즈 호'를 '스타플릿'이라는 행정 조직(아마 한 국가)에서 관할하고 있던 중이다. 짐 커크 함장(크리스 파인)은 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지구로 귀환해 있는데 그 와중 스타플릿의 한 기록물 보관소가 무차별 폭탄 테러가 벌어지는 일이 벌어져, 수뇌부의 브레인들이 사무실에 모여서 테러 사태의 주동자인 '존 해리슨'(베네딕트 컴버배치) 제거를 논하고 있다. 그런데 짐 커크는 뭔가 이상한 느낌을 설파한다.

존 해리슨이라는 범죄자가 뭣하러 단순한 '아카이브'(도서관)을 공격했냐면서, 이건 뭔가 '위협'으로 느껴지고 더 큰 목표가 있을 것이라고. 그 순간, 정확히 수뇌부들의 아지트는 정체 불명의 막강 화력 헬기의 공격을 받는다. 이 총격전으로 짐 커크의 직속 상사 크리스토퍼 파이크가 사망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사망한 파이크를 관할하던 '마커스 제독'은 존 해리슨이 실은 내부의 최정예 요원이었다는 사실을 밝히며 그가 워프( warp)하여 다른 행성으로 도주했으니, 커크에게 엔터프라이즈 호를 이끌고 그 속에 최신 무기 '어뢰'를 갖고서 가서 여차하면 해리슨 그자를 살해하고 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원래는 탐사만 수행하던 요원이었으나 크리스토퍼의 무고한 죽음을 목격한 커크는 동료처럼 믿는 부하 '스팍'(재커리 퀸토)와 함께 함선(Ship)을 이끌고 크로노스 행성으로 향하는데. 

 

스타 트렉의 세계를 거의 처음 입문했는데, 완전 반해버렸다. 오래전 '제5원소' 느낌을 풍기는 미래 세계의 모습, 스타 워즈와 비슷하지만 또 다르게 펼쳐지는 우주와 행성에서의 전투들, 뜻밖에 밝혀지는 거대한 반전과 음모. 셜록으로 반해버린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적절한 악역 캐스팅 등 모든 요소 요소들이 흥미 진진했다.

 

한마디로 최근 헐리웃 영화 중 비주얼 갑(甲)일 뿐더러, <아이언 맨 Iron Man 3>, <엑스 맨 X man 시리즈>도 약간 느껴지면서 새롭고 (내겐) 독창적인 미래 SF 였다!! ㅎㅎ

 

 

(No 스포일러)

내부의 적 이야기와 존 해리슨(칸)에 대하여 펼쳐지는 제독과, 커크, 스팍의 이야기들에서 어딘가 기시감이 몰려 왔다. 이것은 스타 트렉 극장판의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익숙한 '테러와의 전쟁'이야기이며 존 해리슨은 오사마 빈 라덴(혹은 후세인)이고, 클링온(크로노스) 행성은 아프가니스탄인 게 아닌가?! 그렇지만 대중 영화인 만큼 마냥 심오하기만 한 것은 아니고, 주인공이 현실을 알고 겪는 고뇌는 아이언 맨 '토니 스타크'보다도 깊이와 강도가 센 것은 아니다. 

 

필자가 <아이언 맨 3>리뷰에서도 피력하였듯, <스타 트랙 다크니스>도 90년대 액션 히어로 물의 느낌을 주어서 신기하고 반갑기조차 했다. 아이언 맨 3가 <트루 라이즈> <다이 하드>같은 코믹 활극, 한바탕 대소탕 이야기의 데자뷰였다면, <스타 트랙 다크니스>는 예전의 숱한 우주 행성-전투 영화들을 떠올리게 했다. 대작은 아니지만 소소한 우주 개발 영화들, <아폴로 13호>(톰 행크스 주연)에서와 같은 크루(Crew)들의 진한 사명감과 의리 같은 이야기들이 느껴졌다.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영화인데, 특히 몇몇 인상적인 액션 시퀀스들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우주를 인간이 직접 비행할 수 있는 장치를 착용하고 주인공들이 직접 문제 해결을 위해 공중의 타(他) 함선으로 스릴감 있게 향해가는 장면이 우선 떠오른다. 나머지는 지구에 불시착하여 악당과 벌이는, 스팍과 상대방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다툼이다. 마치 9.11 테러를 연상시키듯 거대한 비행선이 미래 도시의 마천루를 공격하여 아수라장이 되는 장면은 충격적인 스펙타클이었다.

 

여러가지로, 감독 제이제이 에이브람스의 역량에 박수를 쳐 줄만한 영화다.

 

 

 

기존의 시리즈 출연진들과 새롭게 가세한 초절정 매력남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조화가 무리 없이 잘 어우러졌다.

 

인간을 다른 공간에서 이동시킬 수 있는 워프 기술이 상당히 눈을 휘둥그레하게 했는데, 오래 안 나오고 몇초만 나와서 아쉬웠다. 아브라함스 감독은 예전에 스필버그 사단이 키운 '로버트 저멕키스'의 뒤를 잇는, 기술력을 완성도 있게 끌어내는 감독으로 안정적으로 자리잡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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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6~6/2 주간 MISSION 리뷰

 

 

이야기적인 면에서 허술하게 느껴졌달까 하는 점은, 워프 기술처럼 최첨단의 신체 이동술까지 있는 수백년 후 미래가, 왜 투명 인간 기술은 없을까 하는 것.^^ 그러면 워프 안 해도 더 군사 작전에 쓰이지 않을까? ㅎㅎ

 

 

 

written by 은령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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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맑은 주지스님의 지혜 [같은 하루 다른 행복] | Basic 2013-05-3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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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같은 하루 다른 행복

원빈 저
이지북 | 2013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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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출판사에서 제공해 주셔서 쓴 리뷰입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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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쿵푸 팬더>에서 뒤늦게 마스터의 자질을 발견하고 수련하는 주인공에게 스승이 늘 강조했던 것이 있다. 바로 내면의 평화’(Inner peace)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고 무공을 연마해도 실전에서 적과 마주할 때 자신의 마음의 평정을 찾지 못하면 패배한다며 말이다.

 

작년에 유행하고 여전히 사그라들줄 모르는 힐링이라는 개념에는 어쩌면 필연적으로 마음의 평화가 수반되어야 할 게다. 더불어 힐링의 반대 측면으로 볼수 있는 멘붕은 멘탈 붕괴, 그야말로 정신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것을 말한다고 하겠다.

 

우리는 여러 가지 길을 찾는다. 아픈 청춘들이 김난도 교수를, 인생 패배자들이 이외수 작가를 멘토로 여겼을 때 혜성처럼(?) 등장했던 분이 있었다. 베스트셀러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혜민 스님이었다. 필자는 아직 접하지 못했으나 여러 대중매체와 강연에서 그 분이 펼쳐놓는 얘기와 주제들은, 2013년 각종 사건으로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한국 사회의 독자층에 잔잔한 파문을 남겼음이 분명하다. 여기 또 한 권의, 스님 작가의 에세이집이 출간하였다.

경기도 의정부시 306 보충대 호국관문사의 주지로 계신 원빈 스님의 <같은 하루 다른 행복>이다.

 

트위터, 페이스북에 등록한 글들을 일정기간 취합, 정리하여 펴낸 요즘의 책을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어딘가 시류에 편승하여 급조된 듯한 인상 탓이었다. 하지만 페이스북 친구들과 여러 종교인들의 추천사를 일별하니 저자는 꽤 내공과 글발의 소유자일뿐더러 소통을 중시하는 따뜻함도 있다고 한다. 기대를 안고 책장을 넘긴다.

 

산만할 수도 있는 글편들을 차분히 읽으면서 나만의 어떤 것을 얻고, 느낄 수 있으려면, 몇가지 주제를 정하는 게 한 방법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불교가 말하는 평화’, 인류에 대한 자비라는 관점에서 읽고자 노력했고, 혹시 더 나아가 사회참여(운동)적인 메시지까지 있다면 좋겠다는 기대로 읽어 나갔다.

 

<같은 하루 다른 행복>의 앞부분에서는 란 존재의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들이 와 닿았다.

 

지금 우리는 저마다 인생이라는 작품을 쓰고 있습니다. 세계관, 사고관이 넓어지면 사소하게 마음에 걸리는 문제들은 정말 별거 아닌 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울고불고했던 가슴 아픈 일들이 한순간의 추억일 뿐이란 걸 깨닫게 됩니다.’(p.25 <‘라는 소설>)

 

자유의지를 원빈 스님은 인간의 선택권이라고 표현하셨다. 세상이 불공평해보인다면 그런 시선때문이라면서, 세상을 바꾸려면 당신의 을 바꾸란다. 마음과 눈의 창을 바꾸고 선택하라고 하신다.

불교의 자비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많이 궁금했는데 그것을 작가 스님은 사랑이라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관점에서 많이 설파했다. ‘받는 것은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주는 것은 베푸는 마음입니다. 기대하는 것보다는 베푸는 것이 훨씬 행복합니다. 사랑을 주세요.’(p.32)

 

갈수록 타인에 대한 관용이 희미해가는 요즘의 때, 원빈스님의 글들은 타인과 소통을 중시하고 화를 다스릴 것을 조근조근하지만 힘있는 어법으로 이어갔다. ‘다름은 축복입니다. 그로 인해 내가 배웁니다. 그가 있어 내가 배웁니다.’(p.36)

 

다가가는 것은 사랑이요, 물러서는 것은 두려움입니다. 세상과 자신과 소통하고 싶다면? 한 걸음 더 세상을 향해 다가서세요.’ (p.67)

많은 스님들의 글을 접한 것은 아니지만 내게는 법정, 성철 스님의 심오한 말씀들보다는 나보다 몇 살 나이차 안 날 것 같은 원빈스님의 글들이 친근하고도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부분이 확실히 많았다.^^

 

더욱 반갑고 친숙하게 다가온 것은 작가가 페이스북을 열심히 하는 신세대(!) 스님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동안은 내게도 SNS가 지인들과의 소소한 안부를 주고 받으며 일상의 힘듦에 서로 토닥여주는 인간적인 공간이었는데, 올해 들어 부쩍 정치적 이슈와 센세이셔널한 사고들이 주제로 개입하며 오염이 되어 슬슬 멀리하게 된 소셜네트워크였다.굳이 힙합 가수 리쌍이 겸손은 힘들어라고 하지 않아도 언젠가부터 SNS에는 자기 주장을 넘어 폭력에 가까운 언사들로 공격을 주고 받는 장이 되었다. 그런 SNS에서 겸손을 말한다는 건 꿈도 못 꿨는데 원빈 스님이 페북에 남긴 글들은 마음의 평정을 되찾게 했댜.

 

겸손이 미덕인 시대입니다. SNS가 발달할수록 겸손은 더더욱 중요해집니다. 소통의 기본이 겸손이기 때문입니다. / 내가 제일이다, 나만 정답이다, 이러한 강렬한 집착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어렵게 만들어놓은 소통의 기반들을 하늘로 날려보내지 않으시길.’ (p.83 <겸손>)

 

흔한 자기계발서에서 단골 레파토리로 펼치는 이야기들이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실제 그렇게 된다인데, 이 책에서도 그런 부분들이 없지는 않지만 원빈 스님의 차분하면서 진솔한 말투로 인해 좀더 스며드는 특성이 있었다. ‘두려움, 슬픔, 절망, 죄책감은 우리를 불행하게 느끼도록 유도합니다. 이것은 마이너스 감정입니다. 사랑, 기쁨, 희망, 자신감은 우리를 행복하게 느끼도록 유도합니다. 이것은 플러스 감정입니다. 선택하세요!’ (p.84)

 

굉장히 근원적이지만, 불교를 자세히는 모르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궁금해 할 수 있는 부분들을 친절하면서 상세히 풀어주는 글들이 인상적이었고 나도 배울 수 있었다.

 

불교에서는 고집을 버리라고 하는데, 직장/사회 생활에서 내 의견이 없어서 줏대 없어 보일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 고집(固執)의 한자어를 쉽게 풀어서 그 뜻을 설명해 주시는데 난생 처음 들어보는 의미로 무릎을 탁 치게 하였다. 고집 단어에서 ’()는 오랫동안[] 반복한 습관이 성벽[]처럼 내 주변을 꽉 둘러싼 상태를 의미한다. ‘’()은 행복[]이라고 판단되는 그것을 꽉 잡고 있는 상황이다라는 것! , 고집을 버리라는 것이 내 의견을 갖지 말라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의견을 반드시 가져야지 그렇지 않은 사람은 매력이 없고 심지어 무시당할수도 있다고 한다.

무조건 내 의견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상대방의 의견과 내 의견을 비교해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타인의 의견에 경청할 줄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이 와 닿았다.

 

<Eye Contact>라는 문단에서는 우리가 점점 스마트폰만 바라보는 현상을 지적했다. 만약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는 것이 어색하다면 반성 좀 하셔야 된다며. ‘스마트폰에는 시선과 마음을 그만 주고, 상대방 눈을 따스하게 바라보며 진정한 대화를 한번 해봐요.’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장소라는 의미로 사람에게 적정처(寂靜處)’가 꼭 필요하다는 대목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적정은 불교용어로 해탈, 열반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기독교인인 내게 생소하기도 했지만 넓은 맥락에서 누구에게도 피난처, 아지트가 있어야만 한다는 데에 백분 공감이 갔다. 원빈 스님에 따르면 눈에 보이는 공간뿐 아니라 사랑, 용서, 평화라는 의식이 작동하는 마음의 적정처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일종의 마인드 컨트롤일 수 있겠는데 그럴수만 있다면 아무리 많은 군중의 무리속에 있거나, 명동 한복판에 있어도, 언제나 어느 곳에서도 평화로울 수 있다고 한다.

 

원빈 스님은 출가 한 후에 사회에 의해 주입당한 일방적인 관념들을 버릴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출세 위주의 사회, 학벌로 차별하는 경쟁의 세상, 직업의 귀천을 구별하는 암묵적인 계급의식을 <같은 하루 다른 행복>에서 비판한다.

 

이 사회는 도대체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 것일까요? () 1등도 2등이 되면 실패자가 되는 사회, 이대로 우리에게 밝은 미래가 있을까요? 집단 최면에서 벗어납시다. 사회가 내게 주입한 잘못된 생각들을 벗어던집시다.’ (p.229 <아버지가 부끄러워> )

 

이 책을 읽고 나서 비로소 자비의 뜻을 조금은 더 깊이 알 수 있었다. 무조건적인 시혜와 베풂이 자비라고 피상적으로 알았는데 참된 불교의 자비란 그런 게 아니었다. 원빈 스님은 기록하기를 단순히 인정이 많은 것이 자비가 아니라고 한다. 인정이 있어도 지혜롭지 못하다면 그것은 단순한 오지랖일 뿐이다. 자비나 자비로운 마음을 행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지혜가 수반되어야 한다. 도움을 펼치려는 상대방의 상황, 처지를 살피고 그에 맞게 도우며 타이밍도 잘 맞추고자 노력해야 한다. 평소에 내가 생각했던 도움과 많이 비슷해서 왠지 뿌듯하고 기뻤다.^^

 

올해 들어 부쩍 나 자신이 화를 많이 다스리지 못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물론 응당한 부당한 사건과 상황에서는 분노도 해야 했지만, 서른 후반에 진입한 작년부터 사사 건건 불합리한 건 따지고 넘어가야만 직성이 풀려 했던 것 같다.

 

<같은 하루 다른 행복>의 곳곳에서 저자는 화(anger)를 많이 거론하고 그것이 왜 문제시될 수 있는지 조목조목 밝히기에 많이 뜨끔했다. 단순히 참아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화를 다스릴 줄 알아야한다는 원빈스님의 말들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 점만으로도 내게는 이례적으로(?) 완소 스님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얼마 전 부처님 오신 날에 공식 법회에서 대표스님이 했던 법회의 한 대목이 아직 기억 난다. 지금 우리 사회가 갖춰야 할 가치는 공동체 의식이라고. 언젠가부터 개인주의적인 생활에 익숙했고 계속 그것을 지향하려 했던 최근의 나를 돌아보게 했던 단어였다.

 

오래전의 경험이 책을 읽으며 잔잔히 떠올랐던 시간이었다. 필자가 대학원 수업을 이수했던 학교가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불교 재단 대학이었다. 강의를 들으러 분주히 왔다 갔다 하다가 스쳐만 갔는데, 캠퍼스 중앙에서 높은 곳에 사찰의 모습을 한 아름다운 법당이 있었다. 어느날인가 여유가 나서 무심코 들어가 본적이 있었다. 집에서 학교에 오기까지, 또 학교 내에서도 벽돌의 건물에만 (당연히) 익숙하다가 기와 지붕에 한옥이라는 것만으로도 이색적이고 다른 곳에 온 것 같았다. 문은 창호지로 인테리어 된 문들이 있었고 내부는 고요하게 기도를 드리거나 명상을 하는 학생들이 몇 명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신비로운 기운을 느끼며 그 곳을 나왔던 아주 오래전의 기억-.

 

부처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얼핏 알고 있어서 오해처럼 받아들였던 부분을, 상세히 읽고 나니 불교의 수행과 수련의 의미를 조금은 더욱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같은 하루 다른 행복>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가 속세를 부정하며 자신에의 도취에 젖은 외침이 아니었다. 그건 이 전문을 읽어보고 느낀 것이다.

 

요즘 세상 사람들은 그대와 관계를 맺으면 자신에게 어떤 이득이 있는가, 얼마나 기분이 좋아질까 같은 것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나 이해타산에 의해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의 마음은 기본적으로 더럽혀져 있다. 손익을 따져 더러워져 있는 것이 당연하게 되어 있다.

만약 그대가 그런 인간들밖에 만나지 못했다면, 차라리 혼자서 걸어나가는 것이 낫다.

마치, 무소의 머리 위에 솟은 하나의 뿔처럼.” (부처. <숫타니파타> 경전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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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소설 [모두에게 해피엔딩] (황경신 작) | Basic 2013-05-26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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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모두에게 해피엔딩

황경신 저
소담출판사 | 2003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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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예고 없이 눈물을 흘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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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이렇게 나를 뒤흔든 연애 소설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10년전의 작품에서.

생각해보니 예스블로그 이 공간에서 본격 연애 소설을 리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도 같다. 영화들은 많았지만.

 

걸작이라는 건 아니다. 이해안된다고 느낀 부분도 많았는데, 주로 주인공 가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B)란 남자와의 연애담이 그러했다. 하지만 그것만 빼고는, 이 소설, 통속적이지만 정말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대부분의 간결한 연애소설이 그렇겠지만, 줄거리는 어렵지 않다. 30대 여인 는 고등학교 때부터 오빠 친구 B를 좋아했다. 그런데 B는 다른 여친이 있었고 홧김 비슷하게 나는 다른 오빠를 좋아하는 척 한다. 나와 비는 절친한 사이이므로 서로의 연애 이야기를 모두 나누었다. 대학에를 들어간 이후에도 비와 나의 인연은 이상하리만치 어긋나고, 나는 연인을 두게 되었지만 진심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20대 이후에 나와 비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어장 관리하는 참 복잡스런 관계였다.

 

그러던 때 나의 어느날. 대학 조교로 일하는 친구의 대학이자 자신의 모교에 가서 길을 묻다가 에이’(A)를 만난다. 에이와 나가 만나고 친한 누나 동생 사이가 되어가는 앞부분의 모든 과정들이 어찌나 오글오글하던지.^^ 열 살이나 나이차가 나기 때문에 애초부터 나는 에이를 남자로 대하지도 여기지도 않는다. 하지만 에이에게는 운명적이게도 첫 눈에 반한 여자이고 말았다. 그리고 이때 나의 상태는 여전히 비와의 끈질긴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온 몸으로 사랑의 열병과 방황을 겪는 중이다.

 

에이와 나는 친해졌기에 에이도 그런 일들을 다 알고 있다. ‘가 일일이 다 말해준 건 아니었지만, 에이는 많은 것을, 아니 어쩌면 나 자신도 모르는 아픔을 알고 있다. 사랑하면 그렇게 되니까.

 

앞부분의 한참 오글거리는^^ 에이의 그녀를 향한 관심을, 한참 새벽쯤에 읽은 후 책을 덮으면서 신기하게도 기도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말도 안되게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나왔다. 기도는 대강 이러했다. “하나님. 에이의 모습이, 사랑이 너무 순수해서 눈물이 나요. 저도 비슷했던 그런 때가 있었으나 끝까지 그처럼 눈부시게 맑지를 못했음을 알았습니다. 끝까지 가는 스무살 에이의 마음은 정말 사랑인 것 같고, 부럽고, 찬란합니다.”

 

임팩트가 여운이 커서 일단 중단하고 다른 분야 책을 읽다가 어제 다시 끝까지 읽었다. 처음에 오글거림으로 시작한 책은 끝에 다시 한번 다른 버전으로 손발을 오그라트리며 끝맺음했다. 그리고 나에게선 눈물이 아니라, 흐믓한 미소가 흘러 나왔던 것 같다.

 

아니구나. 나도 에이같은 사랑을 했었구나, 라는 걸 <모두에게 해피엔딩>으로 어렴풋이 확신하게 되었다.

 

에게 그의 애정공세는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마냥 애처럼 보였던 게 아니고 그가 군대를 다녀온 이후에는 남자로 다가오기도 했으나 그래서 더욱 그에게 어서 멋진 여자를 만나라고까지 하기도 했던 . 누나에게 부담주는 게 싫어서 다른 여자애를 만났으나 3개월만에 깨지고 그는 다시 본격적(?)으로 그녀 바라보기 시즌2를 시작한다.

 

한편으로는 인터넷 용어로 치면, ‘가 열 살 연하남을 향하여 몇 년이나 어장관리한다고 욕할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황경신의 이 소설 속 인물들은 감정이 거짓이 아니었다. 아마 그래서, 가볍게 읽기 시작한 2003년작에서 당황스러울 만큼 벅찬 개인적 혼란을 겪었던 것이리라. (다행히 그 감동발은 이틀 정도 유효했다. ㅎㅎ)

 

그래도 그 시절, 어리석은 내가 그대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야. 이 세계가 끝날 때까지 지니고 갈 기억들을 그대와 나누어서 다행이야.

그러니 그대는 마음을 놓아도 좋아. 그냥 미소지어도 좋아.

그대와 만나서 기뻤고 슬펐고 울었고 웃었고 기억하고 또 잊었잖아.

 ( 에필로그 에서)

 

몇해전 가을과 겨울 사이의 어느 날, 그대가 내게 처음으로 당신이란 말로 이별을 건넸던 순간이 떠오른다. 나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그대란 말로 화답했었다.

<모두에게 해피엔딩>을 읽기 전에는 참 오글거렸던 말들이라 여겼는데, 오글거렸기에 끝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누구나 겪었을 사랑, 누구나 치르었을 이별, 언제나 세상 어디에나 존재했던 로맨스 소설 한 편에, 이럴 때가 아니라면 펼칠 수 없는 유치찬란했던 자신의 쑥쓰러운 이야기를 리뷰에 슬쩍 얹는다. 이렇게 묻어가보는 거지, .

 

항간에 주변 여자들에게서 권유받는 배우자 기도의 방법. 100가지는 세세하게 구체적으로 바라고 꿈꾸는 연인의 모습을 나열하며 하라는 거였다. 최근까지도 그런 이론(?)에 에이 무슨 백가지나~라고 생각했는데 예능 프로그램 <땡큐>에서 탤런트 염정아씨의 응답 얘기를 들으니 이런 쪽으로 귀 얇은 본인 또 휘청~

 

아무튼, 황경신씨, 소설 잘~ 읽었습니다!!

 

 

나는 이 되풀이되는 삶으로부터 벗어나,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걸어나가야 하는 것이다.”(p.193)

 

에이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는다. 이런 키스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만약 이 세상 어딘가에 완벽한 사랑이 있고, 그 완벽한 사랑이 나를 끌어안아 입을 맞춘다면 이런 느낌이 들까. 그러나 그 완벽한 사랑과 키스하는 순간, 이 세계는 끝난다. 모든 것은 사라진다. 찢어진다. 파멸한다.

나는 에이의 품에 안기어, 세계의 끝에서 울리는 그 목소리를 듣는다.

안녕, 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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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군사 재판 법정 영화 [ 어 퓨 굿 맨 ] | 영화가 왔네 2013-05-2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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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ray]어퓨 굿 맨 : 블루레이


소니픽쳐스 | 2007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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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도 못한 장면, 대사들에서 가슴이 뭉클했다. ㅠㅠ 1992년작, 존 그리샴 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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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률이 높고 잘 나가는 해군 변호사이지만 속물적인 톰 크루즈에게 여성 군무원 데미 무어로부터 변호 의뢰 한 건이 들어온다. 관타나모 기지에서 한 병사가 의문의 사망을 했는데 군대 관계자 의사가 밝힌 사인이 약물 중독에 의해서라고 한다. 사건의 범인으로 두 병사가 지목되는데, 한 명은 피해자에게 예전에 ‘코드 레드’라는 구타를 했고, 한 명은 몰래 어떤 음식을 먹인 정황이 있기 때문에 약물+구타로서 두 군인이 공범으로 지목되었다.

 

그런데 군인들은 다른 진술을 데미 무어에게 하였다. 음식물에 약을 넣은 적이 없었고, 코드 레드는 직속 상관의 명령이었다는 것. 그런데 의사는 단호하게 약물 중독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직속 상관은 그런 명령 내린 적이 없다고 한다.

 

 

 

 

피의자 군인들이 거짓이던지, 그 정반대라면 ‘코드 레드’라는 군대 내 구타 비리 행위를 무마, 은폐하려는 엄청난 음모이다. 데미 무어는 철저히 젊은 병사들의 무죄를 믿고, 그러므로 음모를 강력히 제기한다. 허지만 아무런 증거가 없어서 변호를 맡은 톰 크루즈와 동료는 당황한다.

 

치밀한 법정 영화에서 변호인들이 자기 의뢰인들의 무죄를 위해 사악한 군 장성들의 음모를 추리하는 과정이 볼 만 했다.

 

미국 해군 내부의 이야기와, 법정의 치열한 언어 공방이 굉장히 전문적이어서 새롭고 지적인 자극을 줬다.

 

변호 일이 벽에 부닥쳐서 톰 크루즈가 다 때려치자며 주사를 부리고, 동료도 지쳐갈 때 그 동료가 데미 무어에게 물은 말과 이후 대사가 감명깊게 다가왔다.

 

 

 

 “당신은 왜 그렇게 저 장병들을 좋아해?”

 

“저 청년들이 최전방에서 있기 때문이지요. 내가 나라를 지킨다는 마음으로 임무를 수행해 왔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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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25주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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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 ] 9.11 이후 달라진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 리뷰 | Basic 2013-05-20 15:10
테마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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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

이현우 저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슬라보예 지젝이 이런 사상가였는지 정녕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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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 : 9.11 이후 달라진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리뷰

 

슬라보예 지젝의 몇 권의 책들을 깊이있게 파헤치는 이현우의 인문학서이다.

서평집이라면 서평집인데 방대한 저자의 지식, 무엇보다 지젝에 대한 아카데믹한 연구와 대중적인 문장력이 결합된 지젝 연구서였다. 지젝의 <실제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한 권이 주요 저서였지만 천천히 학습하며 읽어야만 했다. 책 두께가 두껍지 않아서 흔쾌히 선택했는데 시작이 어려워서 아차싶었지만 제1장을 읽고나니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고, 이현우만의 글 스타일이 있어서 놓을 수가 없었다.

두 번 이상 읽는다던지, 개념을 완벽히 터득했어야 하는데, 다른 읽을 인문학서의 서브 텍스트로 삼은 책이라 한번 정독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미흡한 리뷰에 양해를. ^^

 

잘 알려졌듯이 슬라보예 지젝은 라캉의 학문을 계승한 정신분석학자이다. 라캉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존재의 현실을 구성하는 세 가지 차원이 있는데 상징계 the symbolic’, ‘상상계 the imaginary’, ‘실재계 the real’ 이렇게 나눈다. 관련 연구자들은 RSI라고 한다.

 

지젝은 라캉의 RSI를 서양 체스게임으로 비유했다. (이현우는 우리식이라면 장기 말로 생각하라고 한다.) 상징계는 체스의 규칙으로 어떤 말이 어떻게 이동할 수 있는가가 이 규칙에 의해서 정의된다. 즉 상징계는 현실을 관장한다. 상상계는 실제 말의 이름인 기사(knight)가 게이머들에 의해 새롭게 호칭받는 메신저로 불리게 될 때 작동하는 또 다른 가상적 세계를 일컫는다. 다시 말해, 규칙을 떠나서(무시될 수도 있고) 말이 이렇게 가면 좋겠다고 소망하는 것이 상상계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실재계는 실제로 체스를 둘 때 예측 불가능하지만 현실로 벌어지는 예기치않은 침범이다. 예컨대 장기를 두고 있는 데 갑자기 어린 아가가 다가와 판을 뒤엎었다면 이것이 실재계라고 한다.

 

이현우가 독해한 지젝에 따르면, 9.11이라는 사건은 그 이전까지 미국과 세계가 자본주의적인 상징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실재가 침입한 사태라고 한다. 2001911일에 미국(과 우방 국들)이 지탱해온 민주주의와 이슬람/테러리즘의 근본주의가 사상 초유의 모습으로 격돌을 하게 된 것이다.

 

지젝에 대해서 유럽 지식인 사회가 다양한 여러 의견을 개진한 것을 이 책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에서 처음 알아서 좋았다. 좀 비판적인 것들이었지만 그동안 한국 학계에서 엄청나게 신봉되고 유행된 슬라보예 지젝의 면모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9.11 희생자들에게 저의 무조건적인 동정을 바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말을 안 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이 범죄에서 정치적으로 무죄인 이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크 데리다)

 

2001911 사태를 두고, 벌어진 당시에 주변의 대다수에서 이런 반응을 보였던 것 같다. “미국이 이라크나 아프간에 뭔 짓을 했기에 쟤네(테러리스트)들이 저렇게 극렬한 일을 벌인거냐?”라고. 이현우는 말했다. 우리는 제3세계의 참상에 대해서 그것이 텔레비전 화면상으로나 출현하는, 곧 우리의 사회적 현실과는 무관한 것으로 지각해왔다고. 기껏해야 연예인들의 자원봉사라는 프레임과 선행의 배경이 된 아랍, 중동이었다고 말한다.

 

이십대 중반을 막 지났던 나는 미국 패권주의에 대한 저항이 장난이 아니구나이 정도의 인식을 지인들과 공유하는 정도였던 것 같다.

 

처음 알았는데 저자 이현우는 영화들에 대한 관심도 상당하였고, 그래서 책이 좀 어려울 만 해지면 영화 얘기를 불쑥불쑥 해서 개인적으로 좋았다. 지젝과 연결되면서 거론했기에 마냥 쉽거나 재미있는 것만은 아녔지만. 오랜만에 <지옥의 묵시록>(코폴라 감독) 이야기가 나와서 흥미로웠는데 지젝의 관점을 이현우를 통해 읽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론 브란도가 연기한 커츠 대령은 베트남 전쟁에 투입된 군인 출신에서 괴물같은 존재가 되어서 미국이 자국 군인임에도 비밀리에 그를 제거하려는 이야기였다. 지젝은 영화를 거론하면서 현실에서라면 미국이 자기 전력을 커츠 대령에게 보냈을 것 같지 않다. 베트콩을 전략적으로 이용해서 커츠 대령을 제거시키고자 했을 것이라고 했단다. , 깜놀했다. 같은 영화를 보고도 그렇게 똑똑한 생각을 하다니... 하긴 지젝이 동유럽에서 최근 배출한 인문학자 중 가장 천재라는 소리를 괜히 듣는게 아니었다.

 

사상적으로 슬라보예 지젝의 좌표는 라캉주의 좌파라고 한다. 그리고 비교적 혁명가 타입의 정치 이론가에 해당하고 있다. 지젝이 테러리즘에서 떠올린 것은 1970년대 독일의 적군파 테러였다. 그 때 학생운동이 슈퍼마켓 폭파 등 과격한 노선을 걸었던 것은 그렇지 않고서는 대중, 시민들이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에 그런 행동으로 주장을 펼쳤다. 알카에다와 탈레반 등도 서방세계의 발전 이면에 자기네 국가와 민족이 피해를 당하는 현실을 일깨우기 위한 방식이었음은 인정할 일이라는 것이다.

 

지젝이 1990년대에 슬로베니아 대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이력이 있다는 것을 보고 또 놀랐다. 어쨌든 그는 정치 체험 후 본격적으로 이론 드라이브를 걸었고 그 요체는 민주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순수정치에서 정치경제학으로같은 모토로 드러났다.

 

지젝은 저서들에서 ()소련의 역사를 많이 거론했고 이현우는 충실히 해석한다. 딴건 몰라도 이현우의 소비에트 소련권 역사에 대한 지식은 정말 해박한 것 같다. ^^ 그 과정에서 알게된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는 새삼스레 참 서글프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소련과 침략국들과의 전쟁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국가가 911 이후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으로 또 한번 전화(戰火)를 겪었다. 최근 20년 동안 외세의 개입으로 이렇게 고통을 겪은 국가가 또 있을까 싶어 서글프다. 탈레반의 세력화같은 자국내 복잡한 문제도 한 몫 했지만, 보다 복잡한 중동의 지역학이 있었다. 중동의 대표적인 친미 국가인 사우디 아라비아, 쿠웨이트에는 석유가 있고 냉전이 종식된 90년대 이후 미국이 사우디, 쿠웨이트를 도운 것은 철저한 경제적 계산이 작용했다고 지젝이 밝히고 있었다.

 

냉정한 논리지만 미국의 석유 정책의 입장에서 사우디,쿠웨이트가 정치적으로 민주화되고 안정되는 것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단다. 그렇다고 현대 사회에 더군다나 대놓고 한 국가를 분열시킬수는 없는 노릇이고, 묘한 긴장감 속에서 애먼 주변 국가들의 불안정한 정치상황은 미국의 집중 관리 분야였다.

911의 주동자였던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가니스탄-소련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설적인 인물이고 미국이 80년대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빈 라덴 세력을 적극적으로 도왔다는 것은 정말 시대 흐름의 아이러니였다. 물론 미국이 자국 내에서조차 테러를 한,두번 겪은 게 아니었으나, 냉전 시대에 나름의 논리와 지능을 살려 육성했던 자가 이렇듯 충격적인 배신의 주동자로 돌아올 줄은 그 누구도 몰랐다.

 

9.11 이후 적어도 5,6년간 전세계가 당신은 부시 편입니까, 빈 라덴 편입니까라는 질문에 답하도록 시달려야만 했는데 지젝에 따르면 그 질문은 교묘하게 만들어진 것이고 일방적인 거였다. 탈레반을 만든게 CIA이기 때문에 테러와의 전쟁은 피해입은 미국 대 공격한 외부 조직의 구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미국이 자생시킨 애초의 시발점을 살펴봐야만 했다.

그래서 슬라보예 지젝이 보기에 애국적인 미국 지식인들은 물론이고 테러리스트를 소탕해야 한다고 격앙되고 동조한 유럽의 많은 지식인들도 한심했다고 한다. 과연 유럽 학자, 저널리스트들이 전부 미국 테러와의 전쟁에 동조했는지는 나로썬 의문시 되지만 어쨌든 사뭇 냉철한 의견을 견지해온 지젝이 놀라운 것만은 사실이다.

아마도 그가 동유럽 슬로베니아 출신의 지성인이라는 점이 테러에 대한 미국의 흥분을 한발짝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게는 했을 것 같다. 하지만 2005년에 영국 런던에서도 굵직한 테러가 발생했는데 지젝은 그런 일들로부터도 철저히 학자적인 시선을 유지했다는 게 더욱 놀랍기만 하다.

 

개인적인 어떤 일로 2009년 전후로 하여 미국 위주의 대테러 전쟁에 심각한 회의를 가졌긴 했지만, 지젝이 명쾌하고 너무도 손쉽게, 20019월 이후 장기간을 당신들은 미국과 서방세계의 구라에 당했다고 하니 어쩐지 허망하기도 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먹고사니즘이라는 변명으로 별 관심없던 역사 의식을 막상 그가 콕 찌르니 아무렇지 않을 순 없을 거다.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이하 실재의 사막)에서 뜻밖에 지젝이 헐리우드 영화 <슈렉>을 이론에 끌어들인 대목으로 눈길을 돌려본다.

 

본 리뷰어가 현재 가장 재미있고 의미도 있는 애니메이션으로 뽑는 <슈렉>에 대한 지젝의 평을 들으니 그의 냉정함이 제대로 드러났다. 슈렉의 주인공들은 실사의 로맨틱 코미디와 달리 선남선녀들이 아니다. 그간 동화를 바탕으로 한 디즈니 작품들처럼 파란 눈에 금발머리 왕자, 공주가 아닌 초록 대두 남주에 날씬하지 않은 평범한 여주가 나온 <슈렉>.

 

안데르센, 그림 동화를 비롯한 여러 가지 클리세적인 이야깃거리들을 재치있게 뒤집은 수작이라고 생각해 마지 않았었다. 음악들도 주옥같았고 말이다. 그렇지만 지젝의 매의 눈으로 보기에 슈렉의 전복성포스트 모던함은 명백한 한계를 지녔다고 한다. 단적으로 말하면 그 모든 패러디와 신선함에도 불구하고 결국에 <슈렉>이 똑같은 낡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한다. 지젝이 분석하기에 <슈렉>의 전략은 오히려 대중들이 보기에 적당히 비꼬음으로써 이게 조롱의 끝이고 재해석의 종결자라고 은연중에 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 한편으로는 학자와 비평가란 참 피곤한 삶이겠다는 생각도 필자는 솔직히 했다. 오락거리로 유쾌하자고 만든 <슈렉>같은 작품도 저렇게 일일히 따지다니. -_-

 

우리가 또 대다수 세계인들이 최선이라고 믿은 자유민주주의에는 함정이 반드시 존재한다고 지젝이 말했다. 물론 재벌2세도, 길거리 노숙인도 선거에는 똑같이 1표를 행사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제도이긴 하다. 20세기 이후에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롤 모델이라고 여겼던 미국, 프랑스의 민주주의의 허점을 지적한다.

90년대 루이지애나 주지사 선거에서 전직 KKK단원 출신 후보의 대항마로 나온 민주당원은 부패한 이였으나 뽑아야 했고, 2002년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파 장-마리 르펜을 떨어트리려면 현직 자크 시라크에 투표해야 했다. 자크 시라크는 부패 혐의가 있었는데 르펜 반대주의 진영의 슬로건은 증오보다는 차라리 사취가 낫다였다는 이야기. 이탈리아에서는 시민 운동의 패착으로 베를루스코니가 권좌를 차지하고, 오스트리아에서도 극우파 인물이 자신을 정당화하며 외친 명분은 반 부패였다니, 어쩌면 2000년대 직전까지도 서구권의 정치도 그리 완전무결하진 못했던 모양이다.

 

9.11이후 10여년간 미국이 자유를 수호한다는 명분/목적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감행했지만 역설적이게도 미국 자국민들의 자유는 한껏 축소되었다고 지젝이 밝힌다. 공항에서 알몸 검색대를 지나야 하고, 암암리에 아랍 유색인종에 대한 불안감은 팽배해졌으며, 테러 단체의 뿌리를 뽑기 위해 잡아들인 수상한 사람들에게 고문도 불사한다는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이런 저런 미국의 과잉 행동과 중동에서의 군사 작전에는 담을 쌓고, 그건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미국인) 우리들은 자기 삶을 더욱 계발하고 개선해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람들은 또 어떤가? 지젝의 신랄함은 이런 부류들에게도 가차없었다.

 

, 오프라 윈프리 쇼같은 대중적인 미디어 매체에서 매주 쏟아내는 웰빙 정보들, 스스로의 정신과 자아 개발 서적과 프로그램들, 문화와 맞물려 신체를 단련하고 건강에 올인하는 이 모든 것들조차 미국에서는 소비주의적이고 상품화되어 버렸다. 서구 사회에서 개인주의적인 것이 문제시되지 않았으나 탈 미국적인 지젝의 눈높이에서는 심신의 자아 개발에 목매다시피 하는 미국인들의 열렬함에 호의적일 순 없었다. 무엇보다도 갈수록 상품화되어가기 때문에 그때 그때 최신 유행과 흐름이 급변하기도 하고, 사생활을 중시하고 보호한다는 미국의 텔레비전 쇼에서 유명인과 셀리브리티들의 내밀한 비밀이 폭로되고 고백하는 게 인기있는 것은 아이러니였다.

 

미 합중국의 대테러 전쟁과 관련하여 두 가지 태도는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고 지젝은 말하였다. 첫째는 인종차별적인 기독교 근본주의이고, 둘째는 관용적 자유주의 버전이라 불리운 것으로써 이슬람 근본주의(과격파)의 위협으로부터 무슬림들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2001년 이후 시간이 흐를수록 대테러전 양상은 후자로 옮겨갔다. 지젝은 그러나 이 둘 사이에도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둘 다 자기 파괴적 변증법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 초유의 빌딩 폭파와 수천명 희생자를 낳은 911 직후에 미국 당국이 삶에 위협적인 모든 것을 통제, 장악하려는 시도가 결국에는 진정한 자유로운(나아가 민주적인) 국민의 삶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꼭 엄청난 가시적인 피해를, 본토에서 공격당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미국은 이제 탈레반 조직을 완전히 하기로 결정했던 것 같다. 아무튼 엄청난 군사력과 정치적 에너지를 상당 기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지 폭격에 퍼부었다. 상식적으로, 미국의 군사 엘리트들이 작정하고 그것도 대놓고 공격했다면 게임 오버여야 정상이지만, 신기하게도 탈레반은 근절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또 평범한 우리는 그것을 잘 몰랐지만 애꿎게도 탈레반의 최후의 끈질긴 전투와 저항의 불똥은 알다시피 샘물교회 신도 납치 사건으로 비화되고 말았다. 참으로 비극적인 일이었다. 세계 정세에 물정을 몰랐던 교회 방문단은 너무도 손쉽게 탈레반에 피랍되었고 두 명은 끝내 잔인한 살해를 당해 당시 전국의 여론을 들끓게 했다. 종교적인 민감한 사안을 떠나 볼 때, (이 책에 나와 있는 얘기는 아님) 결국 우리 국민 두 명이 무장조직과 미 군사당국의 줄다리기에서 처참하게 희생된 사건이었던 게 아닐까? 다시 말하면 미국 때문에 한국 국민들이 희생된 사태로, 2002년 미선.효순 사건 이후의 트라우마였다.

 

미국이 세계에서 거대한 영토를 갖고 있고 의견 결정에 주도적인 국가이긴 하지만, 911 이후 많은 세계인들은 근심스러운 눈으로 대테러 전쟁을 지켜본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종교, 문명의 충돌을 넘어서 2001년 이후 지젝 말처럼 인류는 인간의 존엄과 자유란 무엇인가란 주제를 진지하게 다시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한 지성 한다는 교수, 작가, 기자들이 많은 매체의 지면에서 치열한 사상의 지평을 펼쳤음을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으로 재 확인했다.

 

911 직후, 1,2년간에 미국 정부와 당국은 긴급 사태였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공공연하게 미국은 전쟁 상태라 말하길 서슴지 않았고, 럼스펠드 장관은 테러와 직 관련된 용의자들을 고문할 수 있다고 말하고 다녔으며, 유력 잡지(뉴스위크 따위)의 논객들은 고문 문제를 의제화하며 국민들을 멘붕시켰다. 생각해보니 당시 나는 얼떨결에 영자 잡지 타임을 정기구독중이었는데 정말 지긋지긋할 만큼 매 회 테러 관련 기사들이 장식됬던 기억이 난다. 2002년의 한일 월드컵의 즐거운 추억과 대학원 수료 등, 이후 신변이 급변하면서 미국 테러 사건은 그냥 해외 소식 정도로 내게는 자리잡았던 것 같다. (뭐 어떻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으므로)

911이나 미국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한국의 영화광으로서 20034월 홍콩배우 장국영의 투신 자살이 사실 충격의 여파는 피부에 와 닿기도 했다. ㅠㅠ

 

철학자 카를 슈미트(Carl Schmitt)는 이런 말을 남겼다. ‘정치란 친구와 적을 구분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문구를 굉장히 부정적이고 사악하게 해석해 보노라니 나는 이런 결론도 도출할 수 있었다. ‘정치란 적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그러니 명백한 공격을 받은 미국 군사, 정보 당국이, 테러리스트들을 색출하는 데에 명분을 얻는 것에 지장이 있을 이유가 있었을까.. 물론 확실한 범인을 잡아 그들을 법정에 세워 처벌을 받게 하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이제 오바마 정부 2기이고 2년전에야 빈 라덴을 생포에는 실패하고 사살하여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수장시킨 지금에는, 이성적이고 국제적인 관점에서 지난 테러와의 전쟁 시기를 정리해야 하는 게 옳다.

 

참 신기한 것은 그런 역사적인 임무의 최전선에서 영화가 스타트를 끊었다는 것. 얼마전에 <제로 다크 서티>는 비교적 호평 속에 하나의 팩트를 재구성해 보여줬다. 어쩌면 지난 12년 과거에 벌어졌던 미국과 중동에서의 복잡한 히스토리(history)의 해석은 이제 막 시작한 것에 불과하다. <허트 로커>, <그린 존>처럼 영리하긴 하지만 뭔가 미군/백인 남성 위주의 작품 경향에서 이젠 지경을 넓힌 영화가 필요하달까?!

 

지젝의 성역없는 비판은 무려 스필버그 감독에게도 가해져서, 아직도 칭송받는 전쟁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전쟁이란 무조건 나쁜 거야라는 인도주의적인 주장을 담은 평범한 영화로 불리기도 했다. (이쯤되면 희대의 독설가 지젝님인게 아닐까 ) 하긴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마지막 장면은 톰 행크스 후손들이 국립 묘지에서 그를 기리고 성조기가 펄럭였어서 나도 오글거리긴 했다.

 

<실재의 사막> 저서가 2002년 책임을 고려할 때 현재에는 변화한 현실들도 꽤 있다. 가장 커다란 변화는 전쟁광 조지 부시가 퇴임하고 비교적 온건파인 오바마가 그것도 첫 흑인 대통령인 미국의 상황일 거다. 그런데 나는 한가지 의문점이 책의 말미에서 들었다.

 

지젝도 거론했고 그것을 이현우가 재인용하였는데 2002년 이후 새뮤얼 헌팅턴, 프랜시스 후쿠야마같은 논객들의 분석들이 많은 공감 혹은 논란으로 화제였다고 한다. 다 읽고 보니 슬라보예 지젝도 무시할 수 없는 ‘911’ 논객이었던 것 같은데, 왜 국내에는 유독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얘기만 회자되고, 미국 행정부의 급변하는 정황들만 보도되었던 걸까?

 

당시에 이라크 파병 문제가 논란이었기에 중요하진 않은 사안인지 모르겠지만, 지젝이 이렇듯 통렬하지만 의미있는 얘기들을 했는지 거의 전혀 몰랐다. 교수님들이나 기자들은 얼추 아셨는지 모르겠지만 내 기억에 일간지에서 별로 지젝 거론했던 기억이 없는데..

 

부디 나의 착각이었다면 정말 다행이고^^ 그게 만약 아니라면, 이런 생각이 하나 든다. 혹시 우왕좌왕 정신없던 미국 만큼이나 그 우방국에 발맞춰 긴급 사태였던 건가? 아니면 국내 정치 문제 해결만으로도 빠듯했던 건가.

 

이현우는 세상의 분쟁 사()라는게 다 그렇고 그런거지라는 회의적/양비론적인 태도도 문제가 있다고 했다. ‘뭐 어제 오늘 일인가, 둘 다 잘못 있으니 자기들이 해결해라라는 자세는 일견 틀린 것 같지 않다. 하지만 뒤에 감추인 본심은 내가 뭔 죄야?”라는 것이라고 했다. 이젠 그러면 안된다면서, 오히려 그래 나도 책임에서 면죄되지 않는다라는 전제를 갖는 것이 진정한 세계 시민적인 태도라고 한다.

 

한국인들만의 특유한 한국식 허무주의가 있다는 대목에는 씁쓸한 웃음이 났다. 적잖은 한국인들이 이 놈의 시끄러운 대한민국이라는 푸념이 일반화되 있고, 무슨 일이 크게 벌어지면 한국이 늘 그렇지, 라는 엄청 시니컬한 불만을 아무렇지도 않고 누구나 토로한다는 분석이다. ㅎㅎ 얼마전에 북한의 전쟁협박이 2주간 지속됐을 때 서양 언론들에서 분석 기사로 남한인들은 이런 저런 논쟁, 염려를 하면서도 서울 거리의 아침에는 출근, 통학하는 시민들의 평범한 일상이 계속됐다이랬었다. --;

 

한국에서 한 20년은 살아봐야 이해할 수 있는 경지니 그들이 알 리가 만무하다. ^^;;

 

앞서 카를 슈미트의 정치의 정의를 말했는데, 그렇다면 이것을 극복하는 지젝이 제시하는 대안적인 정치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지 말자로 내겐 들렸다. 비록 근자까지 유럽과 부시정권에서 극우들의 집권, 세력화 현상이 있었지만, 그래도 진정한 정치를 위한 열정을 가져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강대국들의 정치인들은 갈수록 탈정치화되며 정치란 단순히 복지,안보에 주력하며 사람들의 생활을 관리하는 행정 차원으로 축소하려 할 것이라 지젝은 예언했다. “그러한 제스처가 우파 포퓰리즘으로 나타나는 것이 민주주의의 곤경이다.”(p.207)

이러한 흐름에 대항하는 진보 집단에게 요청되는 것은 급진적 정치행위가 포함된다. 이것은 정치에 많은 것을 걸고 투신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신념과 끈기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현대에서 이것은 일종의 광기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정치는 미친 짓인 게 현실이지만 우리가 바로 정의로운 정치 행위에 미쳐야만 한다는 의미로 느껴졌다.

 

어찌됐든 간에, 거의 단 한 권의 책을 위주로 이렇듯 여러 갈래의 이야기들을 풀어놓은 이현우 저자의 노고에 강하게 매료된 시간이었다.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은 책이 주제로 삼은 지젝이 매력적이었고, 논의로 삼은 이야깃거리들의 성격과 범위가 확실한 인문서이다. 어려운 부분도 많고 지젝의 용어들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저자가 결론에서 밝히듯이 이제 슬라보예 지젝의 세계의 중심에 들어가긴 한 것 같다. :)

 

2002년에 해외에서 발간한 책을 바탕으로, 2년전에 풀어낸 것을, 나는 너무도 뒤늦게 읽었다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이제라도 슬라보예 지젝이 읽어낸 911과 세계 지성사의 흐름을 접했다는 것이 좋았다.

 

http://blog.yes24.com/bohemian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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