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가끔은 쉬어 가도 돼。
http://blog.yes24.com/bohemian75
리스트 | RSS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Aslan
하루하루 이겨나가기 버거운 세상 니가 슬퍼질 때 무너질 때. 내가 너의 쉴 곳이 될게.ㄴ내가 곁에 있을게.
파워 문화 블로그

PowerCultureBlog with YES24 Since 2010

7·10·11·12·13·14·15·16·17기

1·2·3·4·5기 영화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9월 스타지수 : 별14,263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함
전체보기
샤론의 꽃 영화 이야기
본질 카테고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my saviour God to THEE
에브리 프레이즈
예블 Don't try so hard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
We welcome you here Lord
내가 나 된 것은
walk On water
나의 리뷰
Basic
영화가 왔네
나의 메모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태그
1세기 42 로빈슨 채드윅 봉테일 햇볕아 반가워 단순한 예수의비유 김기석
2016 / 02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월별보기
나의 친구
영화 파워문화블로거
최근 댓글
아무런 사전 정보나 .. 
저도 이 소식을 접하.. 
우와. 진짜 제대로 벽.. 
독특한데요. 저렇게 ..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 
새로운 글
오늘 181 | 전체 907795
2010-06-10 개설

2016-02 의 전체보기
하얼빈 의거 義擧의 순간 | Basic 2016-02-28 20:38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8463345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영웅 안중근의 마지막 이야기

박삼중,고수산나 글/이남구 그림
소담주니어 | 2015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돌아보는 항일가들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외침을 자주 당했던 우리나라는 그만큼 외세에 저항한 영웅들도 많이 존재했다.

 <영웅 안중근의 마지막 이야기>를 통해 세세하고 깊이있게 의사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안중근 의사는 당시 일제의 최고 권력자인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를 만주 하얼빈 역에서 총으로 저격해 살해했다. 러시아의 통치를 받으면서도 러일전쟁으로 일본의 영향력이 미치고 있던 하얼빈은 당시 열강들의 야욕이 복잡히 얽혀있었다.
보통으로는 형사사건이 일어나면 러시아의 재판을 받는 게 당연하지만 일제는 러시아를 압박해서 안중근을 뤼순감옥으로 데리고 갔다.
이때부터 철저하게 일본의 마음대로 재판이 진행되었고 1909년 10월 26일 저격후 다음해 3월 26일 안중근은 사형당하였다.

<영웅 안중근의 마지막 이야기>는 박삼중과 고수산나 작가의 진심어린 글로 독자에게 진실된 느낌을 전달해준다. 형식상으로도 독특하고 새로워 읽는 흥미를 배가시킨다. 거사를 준비하고 마침내 이토를 격살하고 이후 감옥에 수감되어 사형을 당하기까지 안중근과 직접 대면했던 일본인들과, 독립운동 동지, 어머니까지 일곱명의 사람들의 시선으로 풀어냈다. 조선의 천주교 사제 빌헬름 신부가 마지막으로 도마를 면회한 일로 마무리하며 삼중스님의 소회로 매듭짓는다.

참으로 격동의 시대였다. 명성왕후가 시해된 을미사변으로 조선인들은 울분했고 몇 년이 흐르며 을사조약을 체결하고 결국 치욕적인 경술국치로 나라의 주권을 일본에게 빼앗겼다. 임금은 무력했고 외교권, 군사권이 박탈된 상황에서 조선은 의병들이 봉기하게 된다. 천주교신자였고 성품이 바른 청년이던 안중근도 의병에 뛰어들고 국권을 잃자 중국으로 가서 항일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영웅 안중근의 마지막이야기>는 어린이·청소년 서적에 걸맞게 어렵지 않고 친절하게 역사의 사실들을 소설체로 차분하게 들려준다. 고수산나 작가의 서문처럼 이 책은 다른 안중근을 다룬 도서와 다른 점이 있다. 많은 위인전류 책에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거기에서 끝났다면 본서는 바로 거기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읽다가 중간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서 한참을 책을 덮어야만 했다. 식민지를 살고 있지 않기에, 동포들을 처참히 도륙한 원흉을 두지 않았기에 100년전의 조선인의 심정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한 채프터씩 읽어나갈수록 차곡차곡 쌓이는, 안중근과 곁의 동지들의 굳은 결의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각자 다른 인물들의 시각에서 씌었기에 부분부분 겹치는 얘기들이 나오지만, 그런 반복이 안중근과 독립지사들의 정신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안중근만 알았지 거사를 위해 함께 목숨을 걸었던 동지 우덕순, 유동하, 조도순에 대해 몰랐던 것에 가슴이 미어졌다. 이제라도 알고 기리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우덕순 열사 , 유동하 열사  

 

이토 히로부미는 평범한 일본인이 아니었다. 명성왕후 시해를 배후조종한 사람이며 을사조약을 강제로 맺고 초대 통감을 지내고, 청일전쟁을 일으켜 만주에 권력을 행사하며 일제의 아시아 침략을 노리고 있었다.
안중근의 거사 성공을 거듭 읽어도 하늘이 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명량해전의 이순신 장군이 거둔 기적같은 승전처럼 말이다.

안중근의 저격은 우리가 현대 오락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마구잡이로 총질을 해대는 난폭한 그런 광경이 아니었다. 그때 현장을 목격했던 이들과 자신도 총을 맞은 만주철도 이사의 진술을 통해서도 이는 뚜렷이 드러난다. 일제가 나중에 떠벌인 것처럼 지각없는 폭력배 한 명이 정신이상자처럼 뛰어들어 총을 쏜 사고가 아니었단 말이다.
어른들은 우리의 독립운동의 역사를 아이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다. 왜곡하고 폄하해서 안됨은 물론이며 진실을 축소하고 간편하게 가르치는 것 또한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일제시대라는 암울한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 삼일만세운동이 있었고 유관순이 참가했다가 죽었고, 안중근, 윤봉길이 일본인들에게 총과 폭탄으로 저항했으니 훌륭한 분들이었다, 이런 단순한 기술로는 부족하다.

<영웅 안중근의 마지막 이야기>를 읽고 한일합병이 이루어진 배경에 열강들의 첨예한 대립이 있었고 처참히 나라를 빼앗기고 민족의 삶이 유린당하면서도 의병과 독립운동에 뛰어든 젊은이들의 이야기에 많은 걸 깨달았다. 식민지 상황과 그 속의 저항 운동은 단 몇 줄의 요약이나 몇 페이지의 상찬으로 다루어질 간단한 역사가 결코 아니었음을 절실히 배울 수 있었다.

안중근 의사 사후에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와 형제들은 중국에서 일본군인에 쫒겨나니며 계속 독립활동을 지속했다. 안중근을 사형시킨 것으로 모자라 일제는 열두살인 아들 분도에게 독이 묻은 과자를 주어 독살시키는 잔인한 일을 저질렀음을 처음 알았다. 부들부들 치가 떨렸다.

한편으로는 안중근이 수감하고 재판받는 기간에 교도소장, 경찰, 교화승같은 일본인들이 안 의사에게 존경을 느끼고 인간적으로 대우한 것에는 가슴 한 켠이 저릿했다.

 

끔찍한 만행을 저지르고 반성도 않는 일본에 화가 나지만, 소수여도 안중근을 기억하고, 여러 기념사업을 하는 분들도 있음을 알게 된다. 국적을 넘어 숭고한 인물로 제대로 평가하고 기념관을 설립하고 뤼순감옥을 보존해온 중국 정부에게도 고마움을 느꼈다.

거창한 애국심이란 단어로 수식되는 독립운동.

항일투쟁의 출발과 근원은 모두 동포에 대한 사랑과 자기희생임을 <영웅 안중근의 마지막 이야기>는 정확하고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아름다우며 사실적으로 묘사된 일러스트들은 또 다른 차원으로 마음을 흔들었다.

얼마전 위안부에 대해 아베 정부와 한국 정부간에 합의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베 총리는 지난 과오를 사과할테니 이제 더 이상 위안부를 꺼내들지 말아달라고 했단다. 이 논리에 따르면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탄압받고 고문당하고 징용자들이 학대받은 일들도 앞으로는 거론하지 말라는 위협이 가능하다.

한번도 남을 침략해보지 않은 우리민족의 역사는 자랑스럽다. 그렇다고 절대 잊어선 안 될 엄청난 일을 이런 방식으로 묻어서는 안 될 일이다.

아직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이 수두룩한데 그분들한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고 밝혀내지 않으면 과거는 반드시 되풀이되는 게 아닐까.


안중근과 동지들의 의연하고 용기있는 생애를 바라보면서 드는 생각이었다.

_은령써니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6)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2        
실존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 키에르케고르】 | Basic 2016-02-27 23:25
http://blog.yes24.com/document/8462067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키에르케고르

샤를 르 블랑 저/ 이창실 역
동문선 | 2004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어렵다. 근데 진짜다.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나 자신에게 있어 하나뿐인 진리

그걸 위해서 죽거나 살기를 바라는 그런 관념을 발견해야 한다.'

 

철학자 중에 키에르케고르는 국내에선 확실히 인기가 적은 것 같다. 칸트, 니체, 비트겐슈타인, 난해하다는 푸코까지 책은 엄청 많은데 이 철학자의 책은 손에 꼽힌다. 파스칼과 더불어 언제 꼭 알고 싶었던 철학자가 덴마크의 쇠렌 키에르케고르였다.

 

뭔가 입문으로 좋은 책을 찾았는데 별반 없었고 죽음에 이르는 병이 실린 책은 두께로 기가 질려 이 책을 선택했다.

프랑스 저자가 집필한 책으로 그리 중량감이 무겁지 않고 키에르케고르의 전기와 통찰을 두루 담은 듯 해 골랐다. 하지만 역시 두께가 얇다고(173) 어렵지 않은 건 아니었다. 우리나라에 나온 책으로 키에르케고르를 알고자 하는 것 자체가 어차피 고생스런 일이기에 감수했다.

키에르케고르에 접근하기 난처한 이유 첫째는 당시 덴마크를 둘러싼 시대상황을 지식으로 알기가 만만치 않음에서다. 국가로서의 틀을 갖추기 시작한 덴마크는 이전에 스웨덴과의 전쟁을 치른 후였다. 나라의 구심점을 잡을 정신과 종교가 필요한 상황이었고 통치자들은 독일을 주목한다. 지금은 덴마크와 독일이 완전 다른 나라지만 1800년대에는 문화적으로 독일의 변방(邊方)에 지나지 않았다 한다. 이에 덴마크는 기독교 분파인 루터교를 전략적으로 택하였고 국교로 삼게 됐다고 한다. 여기까지도 따라잡기 벅찬 역사였다.

 

그런 격동의 시기에 태어난 쇠렌 키에르케고르는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코펜하겐대학에서 공부했다. 그는 기독교 사상가임에 맞지만 감화나 교훈을 목적으로 글을 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뚜렷한 것은 그의 모든 저서는 한가지 목적, ‘기독교의 본질을 밝힌다는 것이었다. 마흔세살에 코펜하겐 거리에서 쓰러져 사망하기 전까지 그는 덴마크 신학계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논객으로 늘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는 인물로 살았다.

 

 

1841, 약혼녀 레기네 올센에게 약혼반지를 돌려보냄으로써 파혼을 선언한 일은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유명인의 연애사라 해도 당사자들의 사정을 어찌 확실히 알 수 있을까 싶다. 그래도 정설로 전해져 오는 것은 키에르케고르는 그녀를 사랑했지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근본적인 불안과 신학 논쟁으로 뛰어들기로 결심한 상황이 이유였다고 알려져 있다.

키에르케고르는 이후 작품들에서 올센을 여전히 잊지 못함을 종종 드러내어 후세의 독자들에게 애잔함을 선사했다.

치열한 작가이자 철학자의 길로 들어선 첫 작품은 박사학위 논문제출 후(소크라테스가 주제였다) 써낸 이것이냐 저것이냐였다. 이때 키에르케고르는 가명을 사용했는데 이후에도 대부분 가명이나 익명을 썼고 스무편 이상의 강론에서는 본명으로 발표했다.

서른한살부터 8년동안 이러한 책들이 출판된다. 두려움과 떨림, 반복(1843), 철학적 단편들, 불안의 개념(1844), 인생 행로의 제 단계(1845), 철학적 단편들에 대한 비학문적인 마지막 후서(1846), 사랑의 역사(1847), 죽음에 이르는 병(혹은 절망에 대한 개론1849). 등 팜플렛을 포함해 12편이 넘는 저서들을 썼다.

철학과 서정성, 종교적 반성과 변증법, 설명과 서술이 결합된 드문 시도가 이루어진 저서들로 모두 평가받는다.

사색하는 철학자이며 논증하는 투사이고 항상 쓰는 작가, 그가 쇠렌 키에르케고르였다.

한편 덴마크 정교일치의 현실에서 골칫덩이인 이단아로 취급받았다.

당시 주교였던 뮌스테르는 나라에 속한 공무원이었다. 그는 주일에 거룩함을 설교하고는 바로 궁정에 식사하러 갔고 화려한 치장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키에르케고르가 보기에 그의 설교와 행실의 불일치는 성경적이지 않았고 참된 그리스도인에서도 먼 것이었다.

1854년 뮌스테르가 사망했을 때 장례식에서 새 주교는 고인을 진리의 증인이며, 사도들의 시대부터 우리 시대까지를 이어주는 성스러운 사슬의 고리들 중 하나로 치켜세웠다.

즉각 키에르케고르는 신문에 기사를 발표해 반박했다. ‘뮌스테르 주교는 진리의 증인이었던가? 그가 정말로 진리의 이 증인들 가운데 한 명이었나?’

그는 국교 사제들의 공공의 적이 되었을 뿐 아니라 코펜하겐 시민 전체의 분노를 샀다.

신문 지면을 통해 논쟁이 잇달으며 키에르케고르는 마르텐센을 격렬히 비난했다.

뮌스테르는 진리의 증인일 수 없으며, 기껏해야 그리스도의 고통에 괴테의 쾌락주의를 허용했을 뿐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뮌스테르와 더불어 교회는 순교자의 후광보다 이 세상의 부와 영광을 더 좋아했다는 것이다. 개별적인 개인이 아닌 국가(대중, 무리)는 교회와 양립할 수 없으며, 기독교는 바로 개인에게 직접 호소한다는 것, 그러므로 국가 교회란 있을 수 없고, 구원은 개인적인 문제이지 집단적인 문제가 아니며, ’정치적인문제는 더더욱 아님을 그는 강조하였다. ( 47page에서)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의 존재는 가능성이라고 보았다. 존재가 가능성이라면 개인의 존재는 불안을 느끼게 된다. 개인성이야말로 존재에 직면한 인간의 본질적인 양상이고 그 주된 측면은 불안임을 알 수 있다.

무한한 가능성 앞에서, 자신이 가진 가능성들이 지닌 한계 앞에서 인간은 자기가 스스로와 관계를 맺게 된다. 자기와의 관계에서 무력감을 깨달을 때 결국 절망이라는 상태에 도달하고 만다. 어떻게 이 절망을 극복할 것인가? 기독교인으로서 키에르케고르는 신과의 관계에서 해답을 찾았다.

신앙은 어떤 지적 확신도 전해 주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은 더 많은 것을 제공하여 인간 존재의 짐을 덜어 준다.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존재의 여러 가능성으로 말미암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이것 혹은 저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기로 선택하는 것, 즉 무엇보다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실제로 모든 것이 가능하며 긍정적인 가능성이 부정적인 가능성보다 더 확실치도 않다면, 개인은 모든 것이 가능한 분에게 자신을 맡기기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신앙이다.(57page에서)

개인은 세상과, 그 자신과, 또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된다. 이 세 유형의 관계가 존재의 근본적인 세가지 가능성을 의미한다. 키에르케고르는 이 세 토대에서 출발해 존재의 세 단계를 제시한다. 심미적 단계, 윤리적 단계, 종교적 단계가 그것이다. 그들 사이에는 경계 영역이 있다.

 

존재의 세 가지 영역이 있다. 즉 심미적·윤리적·종교적 영역이다. 이 세 영역 사이에 두 개의 경계 영역이 있다.

아이러니는 심미적 영역과 윤리적 영역 간의 경계 영역이며, 유머는 윤리적 영역과 종교적 영역 간의 경계 영역이다.- 철학적 단편들에 대한 후서

 

변화하고, 느끼고, 감지하고, 멈추고, 물러서기도 하는 것은 개인이다. 개인은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넘어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거기에는 어떤 논리적인 필연성이나 변증법인 필연성이 작용하지 않으며, 그가 처해 있던 단계와 관계를 끊느냐 마느냐의 선택이 문제된다. (60 p에서)

심미(審美)가는 쾌락을 추구하는 자이다. 예술과 오락, 여성들과의 유흥을 통해서만 삶의 의미를 찾는다. 그러나 쾌락은 한정되어 있어서 공허와 권태를 벗어날 수 없고 종착점은 절망이라고 키에르케고르는 단언한다. 반면에 인간은 절망 속에서 개인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심미적 단계의 인간은 있는 그대로의 직접성으로 존재하지만, 윤리적 단계의 인간은 무언가 되어가는 인간이다. 그는 자신에 대한 성실함과 의무를 통해 거기에 도달한다.

윤리적인 삶에서 인간은 어떤 형식에 복종하며, 보편적인 것에 순응한다.

순간 속에 살기, 이례적인 존재가 되기를 그는 포기한다.

윤리적인 인간은 현실의 모순을 점차 이해하게 된다. 자신 속에 내재한 균열을 안다.

악과 부정의, 죄된 행위가 우리의 본성 속에 깃들어 있음을 깨닫는다.

쾌락에 지나치게 몰두해 있는 심미가나, 세상으로부터 초연한 아이러니스트라면 이같은 사실에 생각이 미칠 수 없다.

존재와 과오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윤리적인 것이 이루어 낸 발견이다.

의무를 완수하고 보편적인 것을 실현한다고 해서 죄로 물든 내면의 삶과 과오를 씻기에 충분치는 않다. 개인사의 비극에 상응하는 내면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윤리적인 인간으로 하여금 선택을 원하게끔부추기는 의지와는 무관한 이 내면의 의지는 바로 회개이다.(76page)

 

아이러니가 심미를 윤리와 연결시키는 경계였다면, 유머는 윤리와 종교적 단계의 사이에 놓여있다. 샤를 르 블랑이 해설하는 철학을 다시 읽는 입장인데 작가가 이 부분은 설명하기 쉽지 않다고 해서 나도 어려웠다. 대략적으로 이해하자면 유머는 아이러니를 뛰어넘는 차원의 삶에 대한 태도라고 보았다.

유머는 인간 조건의 한계를 인식함이자 우리의 영원성에 대한 인식과 유한성 간의 만남을 깨달음이다. 아이러니는 단지 이런 상태를 고발한다면 유머는 이같은 불일치 앞에서의 초연성이라고 한다.

 

원 저작물에 대한 누군가의 해석을 읽는 것이고 불어 특유의 번역체로 쉽지만은 않은 개념들이다. 그렇지만 그동안 여러 어려운철학책을 읽으며 깨친 하나는 어렵더라도 그것이 진짜에 대한 것이냐 아니냐 여부는 알 수 있단 사실. 한번 읽어서는 수용할 수 없겠음을 전제하고 읽어가니 조금은 수월하게 개념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기독교는 유일신교이며 계시 종교이다. 여기서 세 번째 단계로 제시한 종교적 단계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키에르케고르는 덴마크 국교(루터교)를 비판하면서 그리스도의 수난이 빠진 신앙의 허구성을  파헤쳤다.

키에르케고르가 보기에 우리 모두는 내면에 비밀과 형언할 수 없는 것, 신비한 무엇을 지녔는데, 이것에 나에게는 어떤 담화나 철학적 명상보다 더 중요하다. (81p)

성경 속 두 명의 인물로 의견을 피력하는데 창세기의 아브라함과 욥기의 욥이 그들이다.

아브라함은 노년에 얻은 외동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바치라는 명령을 따랐고, 욥은 재산가이며 의로운 사람이었는데 치명적인 병으로 끔찍한 고통에 시달렸다.

종교적 단계에서 키에르케고르는 3일과 7일에 주목했다. 아브라함이 종 2명과 아들을 이끌고 모리아 산 정상으로 가던 기간이 사흘이었고, 욥이 몸에 심대한 병의 공격을 받고 아무와도 상대하지 않고 침묵한 시간 7일이었다.

나는 신자인데 이런 관점으로 묵상해본적 없어 놀랐다. 아브라함의 3, 욥의 7. 그동안 그들의 내면에선 무슨 일이 있었을까, 키에르케고르는 아무도 진지하게 말하지 않은 이 점을 사색한 것이다.

그것은 불안이 아니었을까 하고 키에르케고르는 주장하는 것이다. 뭐라 설명할 순 없지만 내게도 깨달음을 주는 어떤 이야기였다. 당시 덴마크 주류 기독교계에는 믿음의 이런 측면이 거의 배제되었음을 키에르케고르는 날카롭게 지적했던 것이다. 

 

신앙은 역설이라고 키에르케고르는 주장한다.

신앙은 실존적인 선택으로서 결단의 모습을 띤다. 따라서 선택에 불가피하게 따르는 불확실성을(“난 올바른 선택을 했는가?”라는 물음) 항상 자체 내에 품고 있다.

신앙은 의식을 진정시키지 않으며() 대신 불안이 가중되는 불확실성으로 그를 던져넣는다. 거기에는 영혼의 영원한 지복, 그의 구원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상황에 의해 인간은 죄와 불확실성 속에서 개인으로서 절대적인 것과의 절대적인 관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신앙은 영적인 선택이다. 신앙을 갖는 것은 자족하는 세상 속에서 진정성을 찾으려는 근본적인 모색을 하는 것이다.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반복함이며, 희생을 원함이다. 삶은 잔잔한 대하(大河)가 아니라 사나운 돌풍이다. 그리고 그 진실은 고통이다.

기독교인이 되고자 노력한다는 것은 광풍에 타오르기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89p)

어쨌든 개인적으로 신앙을 깊이 돌아보게 했고, 그리스도의 수난이 빠진 당시 주류 종교를 신랄히 비판했던 키에르케고르의 철학에서 진실된 점을 발견한 시간이었다.

 

 

이번에 한번 훑어볼 수 있었단 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던 키에르케고르.

그의 주된 개념들은 불안, 절망, 유한성, (헤겔을 반박하면서 나온) 존재의 변증법, 개인과 국가 등이었다. 그의 이론들과 저작물들은 이후 많은 유럽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철학자들을 포함하여 사르트르의 실존주의까지 다양한 경향과 조류를 만들었다고 한다. 현상학적 실존주의라는 에드문트 후설, 하이데거에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작가로는 도스토예프스키, 카프카에 이른다.

    

원저에 언제 도전할지 모르겠지만(국내에 좋은 책이 발간되길) 키에르케고르는 신학과 철학, 문학을 하나로 조화시킨 글을 쓴 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경향에서는 게오르크 루카치의 소설 이론에도 지적인 바탕을 제공했다고 한다.(처음 안 사실)

에른스트 블로흐, 프랑크푸르트학파 중 한명인 아도르노, 신학자 폴 틸리히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넓음을 밝히며 <키에르케고르>는 마무리된다.

, 현대 사상가들이며 아직 현재진행형인 논쟁들이 많아서 격렬한 토론이 있기도 하지만 그만큼 의미심장한 사람이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속설로 전해오는 키에르케고르의 유언같은 말이 있었다고 한다. “세상에 불을 던지고 간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라고. 그 말이 맞다면 쇠렌 키에르케고르는 여전히 뜨겁고 영혼의 심연을 맹렬히 건드리는 불을 던지고 간 것이 맞았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한 책 <키에르케고르>였다. 

 

자아는 선택을 해야 하지만, 그에게는 올바른 혹은 그릇된 선택을 할 자유가 있으며, 그 댓가를 치른다. 그리고 자아를 미화하는 교만한 정서들의 유혹에 굴복하여, 막다른 길에 이르기까지 이 정서들을 남용한다. 빚을 지든지 과오를 범하든지 간에 그는 늘 세상 및 타인들에게 연류되어 있다. 그는 또한 고통받는 인간-하나님의 형태로 그에게, 그를 위해 온 초월성의 개인적인 부름을 받고 있다.

그는 자신 안에 머무를 수 없지만, 공들여 만들어지기를 기다리는 유일무이한 독자적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그곳으로 돌아와야 한다.

(164page)

 

_은령써니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2)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하얀 나비 _ 수상한 그녀 | 샤론의 꽃 영화 이야기 2016-02-25 16:10
http://blog.yes24.com/document/8456746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하얀 나비

 

수상한 그녀 OST

 

원곡: 김정호

노래: 심은경

 

 

음 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일들은
음 그리워 말아요 떠나갈 님인데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 말아요

음 어디로 갔을까 길 잃은 나그네는
음 어디로 갈까요 님 찾는 하얀나비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 말아요

꽃잎은 시들어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 말아요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14)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5        
몽규 | 샤론의 꽃 영화 이야기 2016-02-23 01:26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8453199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동주의 감상평과 트윗들을 매일 검색해 보는데
자판기로 빠르게 쳤을 짧막한 글들에서 감동이 전율이 이는 글을 매일 본다.
몽규가 동주를 보며 무심한 듯
'아새끼래' 하던 표정과
(스포지만) 특고 형사에게 쫒기며 마지막으로 동주의 자취집 바깥에서 애타게 부르던 장면。
영화에서 유일하게 약한 모습을 보인 그 씬이 참 좋다.

후쿠오카 형무소 취조실 씬의 절창에서
너무 몰입해서 안압이 치솟아 핏줄이 터졌다는 뒷얘기엔… 아 말문이 막혔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9)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1        
미국적인 너무도 미국적인 | 영화가 왔네 2016-02-22 16:35
http://blog.yes24.com/document/8452395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영화]주토피아 (우리말녹음)

바이론 하워드
미국 | 2016년 02월

영화     구매하기

디즈니 신작 애니메이션 <주토피아>.

 

예고를 봤을 때는 '마다가스카르', '슈렉'같은 대단히 익살스러운 영화일 줄 알았다.

 

코믹하긴 했지만 정통 형사극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약간 의외였다.

 

 

동물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는 땅.

토끼들 일가가 모여사는 토끼굴에서 부모님 밑에서 평범하게 살던 '쥬디'는 경찰이 되는 것이 꿈이다.

 멀리 '주토피아'라는 큰 도시가 있다고 들은 쥬디는 어른이 되어 경찰이 되어 주토피아로 떠난다.

 

여태까지 작은 동물인 토끼가 경찰이 된 적은 없었고,

정의감과 애사심 넘치는 쥬디를 경찰소장은 무시한다.

그래서 그녀는 하루에 교통위반 딱지 100개를 띠라는 소장의 명령에 열심히 교통경찰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주토피아를 발칵 뒤집는 사고가 발생한다.

동물들이 갑자기 실종되어 버린 것.

의협심 넘치는 쥬디는 자기도 당당히 사건에 투입되길 고대하지만 소장은 콧방귀만 뀐다.

 

 

길에서 사기꾼 여우 '닉'을 만나게 된 쥬디는 닉과 티격태격하다가 친구가 된다.

우연찮게 사건의 핵심 단서를 알게된 쥬디-닉 콤비는 소장의 허락 하에 '동물 연쇄 실종 사건'에 투입되는데.

 

경찰학교의 다이내믹함, 신참내기 열혈 형사가 사건에 뛰어들며 벌어지는 액션과, 반전에 반전이 있는 스토리까지 경찰 -범죄 영화의 이야기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다소 무리스러워서 핵 재미는 못 느꼈다.ㅠ

 

그런데 역시 디즈니.

동물들 나라를 깨알같이 표현하며, 애니메이션인지 실사인지 구분이 안 가는 장면들,

스펙타클한 화면전환은 분명 아동과 극장을 찾은 어른도 만족시킨다.

 

 

그런데 이야기 소재와 결과까지 너무도 미국적이다.

중간에 '대부' 패러디라든가 이런 거는 극장에서 빵 터지라고 대놓고 만든 건데 '고요-'하니 뻘쭘했다.

나무 늘보의 캐릭터가 사랑스러웠다.ㅎㅎ

 

새로운 소잿거리 찾다가 찾다가 동물의 왕국까지 구현한 디즈니의 기획력을

확인한 신작 애니

<주토피아>였다.

_은령써니

2-22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8)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3        
1 2 3 4
진행중인 이벤트
나의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