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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문학의 진수〈18세, 바다로〉 | Basic 2020-10-15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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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18세, 바다로

나카가미 겐지 저/김난주 역
무소의뿔 |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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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든 때가 있는가 보다. 요 몇주간 일본영화, 드라마를 엄청 보고 있는데^^

소설까지 만나게 되었다. 물 들어올 때 배 저어야지.


미지의 소설가. 처음 들어보는 일본 작가의 소설집.

게다가 그의 초창기 중단편집이라니.

이 세가지가 합쳐지니 읽기전에 뭔가 엄청난 '도전'을 하는 느낌이 있었다.


이러한 도전은 성공과 실패를 반복해왔는데

와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성공한 거 같다.


 『18세 』

주인공 도오루의 열여덟살의 어느 여름날을 그린 중편이다.

도쿄 주변의 소도시에서 평범한 고등학생인 도오루.

동성의 친구들과 아지트나 강가에 모여 껄렁거리는 게 삶의 주요한 일과다.

그에게는 아픔이 하나 있는데 7년전 친구가 죽은 것이다.

별 다른 꿈이 없고 술담배를 하고 음담패설을 일삼는

청춘들. 그렇지만 특별히 불량하거나 그런 아이들은 아닌 보통의 일본 남자애들이다.

서투르고 거칠고 어설픈 청춘들.


 '그리니치빌리지에 모여드는 흑인이나 비트족이 되려는 억지 몸짓처럼 보였다.'  (12쪽)



그러던 그들에게 작은 사건이 터지고 이는 얼떨결에 '큰 사건'으로 비화된다.

누군가 죽은 줄 알았는데 다행히 그러지는 않았다.


작가의 작품으로 처음 읽었는데 정말 술술 읽히는 중편이었다.

 

 『JAZZ』

 짧은 단편. 책 속의 주인공은 재즈를 유난히 좋아한다. 작가의 페르소나가 투영된 것 같다.

이 단편은 실험적이다. 은유적인 시적인, 몽환적인 표현들이 다소 난해하게 이어진다.

이런 단편을 만났을 때는 두 가지 반응으로 나뉘곤 한다. '뭐야? 어렵네' 하고 지나가거나

어렵지만 다시 읽어보고 싶은. '재즈'의 경우에는 후자였다.


이 소설집은 소재도 청춘기이고 작가 자신이 열여덟에서 스물 세 살 사이에 썼다고 한다.

그래서 뭔가 도전적이고 설익은 느낌이 있는데 그 나름의 푸릇푸릇함이 살아 있다.

 

 

 

『다카오와 미쓰코』

표제작은 아니지만 이 단편은 작품 속의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본 소설은 발표 후에 영화로도 완성되었다고 한다.

내용은 요약하자면 아주 단순하지만 단편만의 미학, 매력이 살아 있었다.


앞의 소설 '18세'보다 더 '한심'하고 마약까지 하는 젊은 군상들이 나온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패배자라 여기고 자조 한다.

 

"나는 이 사회의 쓰레기잖아. 아무것도 할 마음이 없어. 쓰레기니까 냄새나 풍기고. 코 막으라지 뭐."

  (69쪽)


커플인 다카오와 마쓰코는 우연찮게 '대박 사업' 하나를 시작한다. 일종의 보험 사기 같은 것.

그러다가 불의의 사고로 죽고 마는 다카오와 마쓰코.

그들의 친구이자 '보스'로 불린 주인공은 경찰에 불려간다.


한심한 계획을 늘어놓았던 다카오와 마쓰코에게 그저 '거 농담이 심한 거 아니야' 정도로 그쳤던 주인공.

그들의 주검이 놓인 병원 안치실에서 망연하게 서 있으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나카가미 겐지의 이야기의 가장 큰 매력은 '날선 느낌' '야생성'이었다.

청춘은 무한한 자유가 놓여있으나 그 자유의 방향이 항상 안전하기만 한 건 아니다.


날 생선처럼 퍼덕퍼덕이는 젊음을 겐지는 정확한 언어, 수려한 표현으로 소설에 담고 있다.



『잠의 나날』

아찔하고 불안정했던 10대를 그럭저럭 무사히 통과하고

이 소설의 주인공은 스물 세 살이 되었다.

그는 도쿄에도 진출했다.

예상은 했고 각오도 했지만 도쿄는 드넓고 잔혹함이 곳곳에 숨어 있는 도시였다.


내가 진짜 소설을 만났구나. 진짜가 나타났다고 느낀 표현은 이런 문단에서 였다.


 밤, 문득 생각이 나 기차를 탔다. 고향 역에 아침 8시에 도착했다. 보스턴백 하나 달랑 든 나는, 마치 등 뒤에서 포악한 범죄자가 협박이라도 하는 것처럼 헐레벌떡 아침의 플랫폼에 뛰어내려 여행자들과 함께 개찰구를 향해 걸어가다, 장딴지에서 생겨나 꼬리뼈를 타고 등으로 전해지는 뜨뜻미지근한 부유감을 느끼고 걸음을 멈췄다. 여기는 대체 어디일까?   (157쪽)




처음에는 화려한 도쿄의 삶에 기꺼이 뛰어들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한테 한 방 된통 맞고 그는 물러났다. 됴코는 없는 게 없는 도시이면서 동시에 모든 게 한심하기도 했다. (그가 느끼기에)


엔딩에서 한 도시의 바닷가에서 열린 불 축제에 친구와 간 주인공.

축제의 주최이자 참여자가 되어,  그 고장 공동체에 속했다는 걸 온몸으로 풍기는 사람들.


작가가 묘사하는 축제의 모습이 무척 수려하고 환상적이다. 주인공의 눈으로 바라본 축제가 한발짝 거리감을 두고 객관적으로 그려진다.


그렇다.  밤이 되면 폭력냄새로 그득한 불 축제가 시작된다. 횃불을 들고 신사에 오르는 참가자들은 하얀 옷을 입고 하얀 천을 머리에 묶고 이 고장 공동체에 소속된 익명의 인간이 되어 시내에 있는 신사 세 군데를 돈다.  예로부터 내려 온 거친 축제다.  (202쪽)


 

이같은 소설과 함께  『사랑같은』  『불만족』  『바다로』 세 편을 수록한 소설집

<18세, 바다로>.



작가는 젊은 나이에 권위있는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일본 문단에 등장했다고 한다.

 1976년에 전후 세대로서 최초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연이어서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예술선장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 책 <18세, 바다로>는 처음 알게 된 작가, 그가 처음 쓴 소설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것이 내게는 오롯이 그와 만나는 더없이 적합한 방식이었던 것 같다.


그 어떤 선입견도 없이, 그저 기대감 만으로 읽어갔던 중, 단편 소설들.

자연스런 번역 덕분에 원작에 대한 위화감은 전혀 없이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카가미 겐지는 서울에 와 6개월간 머문 후 '서울이야기'라는 중편을 펴내기도 했다.

윤흥길의 소설에 매료되어 번역하기도 했다고 한다.


일본 소설에 대해 많이는 모르지만, 이토록 뛰어난 작가를 이제야 알았다니 싶은 독서였다.

1992년에 마흔일곱의 아까운 나이로 작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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